210화· 인사드려·
서로의 행선지가 같다·
광서 남단의 흠주·
그렇게 동행이 결정되었다·
식사를 마친 후 계산은 무흔신투의 몫이었다·
자연스럽게 그리되었다·
문제라면
“원래 음식값에서 다섯 배로 내·”
“왜?”
“요리가 더 나왔잖아·”
“그건 반점에서 멋대로 내온 거잖아·”
“멋대로 죽어볼래?”
“낼게·”
무산쌍웅이 윽박지른 탓에 반점이 선심을 베풀어 추가되어 나온 음식값보다 더 많은 값을 내야 했다는 점이었다·
갈등은 있었다·
반점에서는 돈을 아예 받지 않겠다고 하고 이쪽에선 본래의 주문보다 다섯 배를 내겠다는 터라 실랑이가 벌어졌지만 결국 다섯 배를 내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덕분에 그 밤
무흔신투는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시발···· 이게 뭐야·’
제대로 호구 잡혀 조금씩 털리고 있었다·
이렇게 털리는 것이 습관이 되면 모조리 털릴 수도 있었다·
이해 안 되는 점도 있다· 반점이 돈을 안 받겠다는데 천공단은 왜 굳이 돈을 내겠다는 건가·
아니 잠깐만 그보다·
‘반점 놈들은 왜 돈을 안 받겠다고 한 거지?’
고민해봐도 무흔신투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매우 단순한 상황·
승룡반점은 하오문·
천공단의 친구인 걸 모르는 무흔신투로서는 알 수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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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 잠을 이루지 못한 건 청진자도 같았다·
객방의 창가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면서도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다가왔어·’
천공단과의 두 번의 만남·
첫 만남은 우연이었을 테지만 오늘의 만남은 의도된 것이다· 그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
그럼 떠오르게 된다·
애초에 천공단의 목적지는 흠주였을 것이다·
위치를 알아낸 건 대공자의 하얀 새일 터·
특별한 새인가? 추적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왜 접근해온 건가?
왜 동행하려는 건가?
왜 처음부터 목적지를 밝히지 않은 건가?
무얼 하려는 거지?
대공자가 전략적으로 선택지를 바꾼 것일 수도 있다·
그때그때 더 나은 선택지가 떠오르면 과감히 수정하는 자라는 뜻일지도· 그렇겠지·
한데 나에게 노릴 것이 있나?
없다·
운학에게는?
없다·
하지만 곁에 두려고 한다는 건 분명하다·
‘왜지···?’
알 수 없다·
생각은 되돌아간다·
처음 만남 때부터 다시 복기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건 같다
‘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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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청진자의 모습을 한 번씩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다·
하오문·
승룡반점의 점주와 삼십 대 여인은 길거리에 주저앉아 술나발을 불면서 한 번씩 청진자를 흘깃거렸다·
–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 같은뎁쇼·
– 그러게· 청진자 엄청 심각하네· 대공자랑 싸웠나?
– 다정하던걸요?
– 멍청아 강호잖아· 칼은 곁에서 날아오는 거야·
– 그럼 숨겨진 내막이 있단 건데···· 궁금해지네요· 대체 뭘까요?
– 나라고 알겠냐· 대공자의 행보는 이랬다 저랬다 어디로 튈지 예측이 안 되는걸·
– 하긴·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주님도 그렇게 당했다고 했다·
어어어··· 하다 보니 대공자와 친구가 되어 있었노라는 이야기· 그리고 그건 하오문에게 행운이었다·
– 우리 대공자는 뭐하고 있으려나·
– 연공 중이겠죠·
– 하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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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렸다·
후공은 객방을 벗어나 있었다·
인근 산야에 올라 깊어 가는 가을밤의 정취 속에 머물렀다·
함께한 건 색관조와 금섬·
두 놈은 이제 새로운 임무를 떠난다·
돼지 사냥이며 청진자 추적까지 잘 수행해냈던 것처럼 이번에도 잘 해낼 것이다·
임무를 기다리며 땅에 앉아 있는 두 녀석의 표정이 비장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렇게까지 비장할 일인가 싶어 후공은 그만 웃고 말았다·
어째 시간이 갈수록 사람 같은 건지·
믿음직스러운 수하 같은 건지 모를 일이다·
[맡겨주세요· 주인님!]
[그으으으으으윽!]
임무를 전하자 씩씩한 답이 들려왔다·
후공이 빙긋 웃었다·
“너희가 내 곁에 있어 너무 좋다·”
[····]
[····]
색관조와 금섬이 말없이 바라봤다·
들어도 들어도 좋은 말·
[주인님·]
“응?”
[춤춰도 돼요?]
“밤이야· 애벌레들 놀랜다·”
[까르르르르르 주인님은 애벌레 걱정도 하시네요·]
[큭큭큭!]
이내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까마득히 멀어져갔다·
후공은 한참이나 눈에 담고 있다가 시선을 거뒀다·
두 영물이 떠나간 곳은 흠주의 금원장·
금취객의 거취를 찾고 동선을 따라다닐 것이다·
녀석들이 돌아오면 금취객은 손아귀에 들어온 셈이 된다·
기회는 준다·
단 한 번의 기회·
운학을 두 번째 만나게 되면서 생각을 바꿨다·
영원히 비밀로 할 수 있는 기회·
**
그로부터 사흘 후·
금취객은 평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은신처인 동혈에서 머물며 천하제일인의 신검을 빼냈다 넣었다 했다· 손에서 놓을 줄 몰랐다·
계속 그곳에 있는 건 아니었다·
가끔은 동혈을 빠져나가 자신의 장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살펴보다가 조금은 실망한 눈빛이 되어 은신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운학이 서신을 보내왔다·
스승과 함께 온다고 했다·
자랑스러운 아들· 사랑스러운 아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
자신을 닮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오늘은 아니네·’
오늘이 아니란 건 알고 있다·
오려면 아직 멀었지만 괜히 조바심이 난다·
경공 실력이 더 늘었다면 조금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을 테지·
열흘만 더 동혈에 있자·
이 세상 누구도 모를 자신의 동혈에서 신검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지나는 길 위쪽에서 ‘그윽’ 하는 소리가 들려와 바라보니 저 높이 검은 깃털의 새가 날고 있었다·
금취객이 피식 웃었다·
‘웃기는 놈이네· 새 울음소리가 뭐 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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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서 중부를 관통할 즈음·
저마다의 아침 식사 후 출발하려던 청진자가 갸웃했다·
천화서고 대공자가 보이지 않는 탓이었다·
가까이에 있는 남궁연을 불러 물었다·
“대공자는 아직인가?”
“아··· 제가 말씀드린다는 게 늦었습니다· 두목은 들를 곳이 있다시며 간밤에 길을 떠났습니다· 어른께 말씀을 잘 드려달라 부탁하셨습니다·”
“갑자기 말인가? 대체 어딜 가야 하기에?”
“네 저희도 갑작스러워 두목에게 물었지만 행선지며 이유를 듣지 못했습니다·”
“허허····”
청진자는 황당해져 너털거렸다·
말도 없이 떠난 것도 황당하고 자신이 대공자의 움직임을 놓쳤다는 점에서는 당황스러웠다·
“원래 이렇게 제멋대로인가?”
“네· 제멋대로인 면이 많습니다·”
“그래?”
“네 그냥 보면 멀쩡해 보입니다만 실제 두목은 변덕이 극심해 저희도 당황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캐물으면 사람을 때립니다·”
“때린다고?”
“네 저도 따라다니는 동안 많이 맞았습니다· 소문과는 다른 면모가 많습니다·”
“허어··· 괴이한지고·”
자리에 없어서 진실을 실토한 것이라고 생각한 청진자는 기가 막힌지 바쁘게 수염을 쓰다듬었다·
“혼자 간 것인가?”
“아닙니다· 존재감 없는 노인 한 명을 기억하시는지요?”
“어 그래· 알고 있네· 늘 역용을 하고 있고 약간 주눅 들어 있던···· 천공단의 돈 관리를 맡은 사람으로 보이던 노인이 아닌가·”
“네 맞습니다· 그와 함께 떠났습니다· 그는 하도 맞아서 늘 주눅 들어 있습니다· 이번에 새로 천공단에 합류하였는데 합류 과정에서도 많이 맞았습니다·”
“허어·············”
청진자의 너털거림이 한없이 길어졌다·
남궁연의 연기력도 나날이 늘어갔다·
**
동혈 안·
신검을 매만지던 금취객이 아쉬운 눈길로 검을 내려놓았다·
“오늘부터는 아들을 기다려야 할 시간· 넌 나중에 보자·”
몸을 일으켜 동혈의 입구로 향했다·
기문진식을 해제하고 한 걸음 내딛자 한낮의 강렬한 빛이 쏟아져 들어와 잠시 눈을 감았다· 이 현상은 늘 겪어도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안력이 어느 경지 이상이 되면 어두운 곳에서 갑자기 빛을 봐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그 경지가 어디쯤인지는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후공 정도? 후후후후·”
눈을 감은 채 혼자 말하고 혼자 웃었다·
그렇게 다시 눈을 떴다가 놀라 다시 질끈 눈을 감았다·
‘뭐지? 헛것이 보이네? 왜 여우가?’
시야에 가득 들어찬 건 여우·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목이 잡혔다·
“강유·”
여우의 서늘한 음성·
금취객은 기운이 쭉 빠지고 몸이 떨려왔다·
기운이 빠진 건 맥문이 정확히 잡혀서였고 몸이 떨린 건 자신의 이름이 불린 탓이었다·
“강유라니···· 사람을 잘못 찾아····”
“금취객이라고 불러줄까?”
그 말에는 어쩔 수 없이 하얗게 질렸다·
“다 당신··· 누 누구···세요?”
“신검을 찾으러 왔다·”
“신 신검이라니···· 그걸 왜····”
하지만 이미 심장은 두근두근·
어떻게 안 걸까?
어떻게 자신을 찾은 걸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 천하에 오직 네 사람뿐·
자신과 지귀객· 그리고 친구인 동정용왕과 무흔신투밖에 없다·
동정용왕 장천이 발설했을 리 만무하다·
간단한 우정이 아니다·
무흔신투일 리도 없다· 애초에 신투는 누군가에게 붙잡히는 사람이 아니다·
후공도 없는 마당에 누가 무흔신투를 붙잡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찾아왔다· 그러니 머리가 한없이 복잡해졌다·
지귀객이 배신한 건가?
두 자루로는 성에 안 차서? 세 자루를 온전히 다 취하려고?
금취객이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내가 말했어· 미안해·”
목소리가 먼저 들리고 오른쪽에서 노인 하나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슬금슬금 다가왔다·
“댁은··· 또 누구?”
“나야·”
그 말과 함께 두 겹의 역용이 스르르 해제되며 근엄한 노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무 무흔신투 당신이 왜···?”
“나··· 잡혔어·”
“누 누구에게?”
금취객은 어안이 벙벙해 무흔신투를 바라봤다가 다시 눈앞의 여우를 바라봤다·
“인사드려· 천화서고 대공자셔· 나··· 많이 맞았어·”
“허어···· 이 배신자! 그걸 왜 잡혀! 그리고 좀 맞았다고 내 이야기를 했단 말이야!”
분노로 금취객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럼 그렇지· 역시 동정용왕은 아니다· 늙은 도둑에게 자랑하는 게 아니었는데 평생 누구에게도 잡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자랑한 것인데 이렇게 입이 싼 영감이었을 줄이야·
“나한테만 그러지 마·”
“뭐가 어째!”
“동정용왕도 불었어·”
“어??”
이제 금취객은 반쯤 넋이 나가버렸다·
“동정용왕이 대공자 앞에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구걸했거든·”
“그 그럴 리가·”
“야 잘 생각해 봐·”
“····”
바로 이해했다·
자신의 거처를 아는 건 동정용왕 장천뿐·
흠주를 찾아왔다는 건 장천이 다 불었을 때만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은신처는?
그때 답이라도 하듯 하늘 위에서 ‘그윽’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은 형형색색 아름다운 새·
하지만 분명히 얼마 전 들었다· 이상하게 우는 새의 울음소리·
‘깃털 색을 바꾸는 거야?’
그때 잡혀 있던 목이 놓였다·
철퍼덕 쓰러져 여우를 올려다보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운학이 내 손에 있다·”
“····”
바로 이해되지 않아 금취객은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자 여우의 고개가 비웃듯 틀어졌다·
“왜? 강선이라고 부를 걸 그랬나?”
“으으으으으으으····”
금취객이 몸을 으슬대며 떨었다·
강선 내 아들·
무흔신투를 사로잡고 동정용왕을 무릎 꿇린 이· 거기에다 이곳에 오고 있는 아들까지 그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다니·
이 모든 걸 해냈다고?
확인을 위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무흔신투를 바라봤다·
무흔신투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 순간 터져버렸다·
울음을 터뜨리며 머리를 땅에 박아댔다·
“살려주십시오· 제 아들을 살려주십시오· 저만 죽이십시오· 제발 제 선에서 끝내 주십시오· 뭐 뭐든지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살려주십시오·”
“내가····”
말이 중단되었기에 금취객이 눈물 젖은 얼굴을 들어 올려다봤다·
콰악!
여우의 발이 쳐든 머리를 찍어눌렀다·
“왜 널 살려두어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