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옛 이야기·
지진의 여파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후공도 백혼곡의 상념에서 벗어나 화설난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봉양목·
볼 수 없는 나무·
보이지 않는 나무·
화설난은 봉양목을 찾는 것이 영악초보다 더 힘들다고 했다·
세상 천지에 보이지 않는 나무가 어디에 있을 것인가?
그렇게 묻자 화설난이 웃었다·
봉양(奉陽)이란 이름에 답이 있다고 들려주었다·
해를 받드는 나무·
봉양목은 석양이 지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해님에게 인사를 건네지요· 하루 단 한 차례 일식경 정도·
흐물대는 아지랑이와 같은 모습이라는 말이 따라왔다·
떠날 때만?
아침 인사는 없습니까?
그 말에는 화설난이 한참이나 웃었다·
“고약하구나·”
후공은 화설난과 대화할 때도 내심 중얼거렸는데 다시금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난이도가 높다·
촉산은 넓고 눈에 띄는 시간은 고작 일식경(약 30분)이라니·
영악초를 먼저 찾은 다음 그 부근을 탐색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영악초와 봉양목은 해 아래 나란히 지낼 수 없는 것이다·
영악초가 땅을 뚫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시점에 봉양목의 기운을 빨아들이는 탓에 봉양목은 흩어져버린다· 즉 영악초를 찾음은 봉양목이 이미 사라졌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다행인 점은 장소가 특정되었다는 것·
촉산의 특이한 지질·
중원에서 가장 험준한 촉산은 봉양목이 서식하기 좋은 곳이라는 화설난이 보았던 고대 문헌의 기록에 기대보 는 수밖에·
이내 후공은 좌정에 들었다·
잠들지 않는 천공단의 대화소리 까르르르 그윽그윽 색관조와 금섬의 소리· 화설난의 웃음소리가 차츰 옅어져갔다·
제갈혜의 새근거리는 숨소리까지 아득히 멀어지는 가운데 후공은 심연 속으로 들어갔다·
**
끼이이이이!
색황조가 날았다·
눈부신 햇살보다 더 눈이 부셨고 아름다웠다·
오색찬란한 깃털의 화려함은 말할 것도 없고 두 눈은 타오르듯 붉다· 두 눈의 붉은 광채의 강렬함은 색황조가 그저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라는 듯 위압적이었다·
끼이이이이이이이!
긴 울음 소리 아래 쪽은 사천당가·
사천당가는 색황조가 하늘 위를 맴돌고 있음에도 누구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들 모두에겐 그저 늘 보던 광경인 것이다·
그리고 그 당가의 한 전각 안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할아버지 갑자기 뭘 찾았다는 소리가 크게 들리는 거예요· 저와 당초는 시큰둥했죠· 오밤중에 뭘 찾았다는 거야?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오호!”
“한 사내가 주루로 들어서더니 성큼성큼 다가와 저희 자리에 앉지 뭐겠어요· 이건 뭐지? 멍해져 바라보니 그가 말했어요· 술 한잔 대접하고 싶다고요· 그리고····”
“천화서고 대공자라고 했다?”
“네! 맞아요· 와아 그때는 얼마나 놀랍던지 심장이 떨어져나가는 줄 알았어요·”
은소소였다·
본가로 먼저 돌아갔던 그녀는 잠시 본가에 머물다 이제 외가에 도착했고 외할아버지와 마주앉은 터·
내내 동행해 자리를 함께한 당초도 그날이 떠오르는지 곁에서 생글거렸다·
“그다음엔?”
“그다음엔 날았어요·”
“뭐가? 파리가?”
“하하하하하!”
“하하하하!”
외할아버지의 말에 은소소와 당초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할아버지에 대한 강호의 평판은 지독하고 악독한 인물이라는 말이 늘 따라다녔지만 둘에게는 아니었다·
그저 유쾌하고 성격 좋은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 파리는 구름 위까지 날아갈 수 없어요· 한데 그는 저를 데리고 구름 위를 넘어섰어요·”
“으흥?”
비스듬히 기대앉아 있던 당가주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가 금번 흑전의 사태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태왕전장의 전서를 통해서도 파악했고 그 외 다른 경로를 통해 확인도 마쳤다·
그 결과 흑전에 대한 분노도 잠시 그는 천화서고 대공자라는 인물에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흑전의 음모는 모두의 예상 범주를 뛰어넘은 것이었고 가히 완벽에 가까웠다·
각각의 가문은 지정 장소가 달랐고
그 속에서 신선폐를 복용·
동행한 절세 고수들은 모두 의미 없어졌다·
만약 나라면?
만약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이런 가정을 해봤다·
그 생각의 끝에 떠오른 건 불완전한 승리·
자신이 신선폐를 해독했다 해도 모두를 구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한데 그걸 천화서고 대공자가 해냈다·
그는 번갯불에 콩 볶듯 빠르게 종결지었을 뿐 아니라 모두를 구해내기까지 한 것이다·
어디 그것이 전부인가·
거기까지였다면 강호에 찬란한 별이 떠올랐노라 생각하는 선에서 그쳤을 테지만 문제는 후공의 신검이다·
“소소야 그가 어떻게 날았지?”
“징검다리였어요· 하늘에 징검다리가 있는 것처럼 딛고 또 딛고 네 번인가 다섯 번인가를 딛고 솟구치니 구름 위였어요·”
“흐음····”
당가주는 침음성을 흘렸다·
천화서고 대공자가 후공의 신검을 다루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혹시 후공이 남몰래 남겨 둔 후계인가 했는데 방식이 달랐다·
“할아버지 누군가가 떠오르신 거예요?”
“후후 넌 눈치가 너무 빨라서 탈이야·”
“누군데요? 궁금해요· 말해줘요·”
당가주가 피식 웃었다·
“후공·”
“저도 그 생각은 했어요· 어떻게 신검을 다룰 수 있는 걸까? 분명 아무도 다룰 수 없다고 했는데··· 후공의 제자일까? 하고요· 경매에 나온 신검이 번쩍인 순간 팔다리가···· 으으으으 굉장했거든요·”
“할아버지 방식이 다르다는 건 후공도 날 수 있다는 거죠?”
물은 건 당초였다·
당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후공의 방식은 그보다 높은 차원이다· 아예 지력을 상쇄시키지· 이 할애비는 설명을 듣긴 했다만 너무 어려워 이해할 수 없었다·”
“와아 굉장해!”
“후후 그 외 또 무엇을 보았지? 빠뜨리는 내용이 없이 자세히 이야기 해보거라·”
“아 맞다· 그가 날아오르기 전 암천비를 막아냈어요·”
“어떻게?”
“그냥요·”
“날려버렸나 보구나·”
“아니오· 마주 앉아 있는 상태에서 발출했는데 암천비가 중도에 멈췄어요· 몽글몽글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
당가주가 갸웃하며 미간을 좁혔다·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
“환명?”
“환명이라니요?”
“아지랑이가 어떻게 피어난 거냐?”
“갑자기요· 손을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그냥 떠올랐고 머물렀어요·”
“아····”
순간적으로 할아버지의 얼굴이 반쯤 넋이 나가버렸기에 은소소와 당초가 무슨 일인가 하고 눈을 깜박여대며 불렀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당가주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상태·
아련히 예전 기억이 떠올랐고 사로잡혔다·
그때가 언제였던가·
거의 사십 년도 더 되는 듯한 과거·
후공과 제갈형님 그리고 풍제를 따라다니던 날들·
넌 왜 꺼지라는데도 안 꺼지고 귀찮게 따라다니냐는 구박을 들으면서도 꿋꿋하게 버텨 겨우 무리에 낄 수 있던 시기였다·
누군가를 묻어야 할 때마다
땅을 잘 판 게 크게 작용했다·
그래 넌 땅을 잘 파니까·
이런 말과 함께 인정받곤 했다·
주로 행선지를 정하는 건 제갈 형님이었고 후공과 풍제는 제갈형님을 좋아해 어딜 가자고 하면 가는 식·
무공을 펼친 걸 제대로 본 적이 있는가?
거의 본 적이 없다·
번 쾌 친이 나는 것이야 숱하게 봤지만 그 외 특별한 것이 없었다·
상대는 다가오기도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게 아니면 무시당하거나·
아예 너무 가치가 없는 존재일 경우에는 그냥 넘어가자고 돈을 줬다·
돈을 주라고 하면 돈을 건네는 건 언제나 자신의 몫·
돈을 받은 놈들은 정작 스치면 죽을 놈들 주제에 똑바로 살라고 훈계의 말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따라다니는 와중에 본 것이 환명·
그때 뭘 잡으려고 했더라?
그래 맞다·
청랑이다· 푸른 늑대·
영물로 불리는 청랑을 사냥할 때 보았다·
청랑은 몸놀림이 빠르고 눈치는 그보다 더 뛰어나 번번이 놓치게 되자 제갈 형님이 분통을 터뜨렸고 후공이 그런 제갈 형님을 달랜다고 덫을 설치했다·
청랑이 오갈 만한 길에 군데군데 수십 개의 투명한 아지랑이가 맺혔고 결국 이틀 만에 청랑을 포획하는 데 성공했다·
그때 물었고 그때 알았다·
후공 이건 뭔가요?
대답은 환명·
이 대단한 걸 사냥하는 데 쓰는 겁니까?
쯧쯧 너한테나 대단하겠지·
그렇게 또 구박을 들었다·
한데 소소의 말을 듣자하니 천화서고 대공자의 공법이 어찌된 일인지 후공의 환명과 닮은 것이다·
‘신검을 다루는 것도 그러하고····’
“할아버지이이이이이이!”
은소소가 가까이 다가와 귀에 대고 크게 내지르는 소리에 당가주 당명의 상념은 날아갔다·
“허허 귓청 떨어지겠다· 저리 좀 가라·”
손으로 밀어내는 한편 귀를 만지작거리자 은소소가 배시시 웃었다·
“자 이야기 해 보세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신 거예요?”
“생각은 무슨· 저녁에는 뭘 먹어야 하나 싶었다· 뭐 아무것이나 먹기로 하고 또 뭘 보았는지 마저 이야기를 해보거라·”
은소소가 입을 뚱하니 내밀며 갸웃거렸다·
“마저라고 하셔봐야 특별할 게 없어요· 주루에서 본 그 투명한 방패가 지천주 앞에서 다시 엄청난 범위로 펼쳐졌다는 것 그리고 할아버지도 아시다시피 천하제일인의 세 자루 신검을 다뤘다는 것·”
“신검의 위력은?”
“입이 쩍 벌어지는 정도?”
그러면서 은소소가 입을 또 쩍 벌렸기에 당가주는 그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할아버지 근데 왜 이렇게 관심이 많으실까? 혹시 이런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
“무슨?”
“제 혼처라든지 신랑감이라든지·”
“될까? 거절당할 것 같은데?”
“아이 뭐야! 할아버지 너무해!”
“하하하하 뭐 그건 네가 알아서 해라· 그 정도 인물이면 경쟁자가 한둘이 아닐 것 같은데 비집고 들어갈 틈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그 말에는 은소소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아요· 모르긴 몰라도 어마어마할 거예요· 무림맹의 군사도 천공단이니까 말 다했죠· 아 그러고 보니까 중요한 이야기를 빠뜨렸어요·”
“뭐냐?”
“저와 당초도 천공단에 들어갔어요·”
“누구 맘대로?”
당가주가 눈을 찡그렸다·
그 모습에 은소소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와아 대공자는 역시 대단해· 할아버지가 이렇게 나올 걸 어떻게 미리 알고 있었을까?”
“무슨 말이냐?”
“대공자가 그랬거든요· 천공단인 건 틀림없지만 동행은 안 된다고· 외할아버지가 무서워서 자긴 엄두가 안 난다고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제 허락해주세요· 대공자는 생명의 은인이잖아요· 저한테도 당초에게도 그리고····”
“내게도?”
“하하 맞아요·”
당가주가 따라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소소와 초가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하기에
천화서고 대공자는 자신의 목숨을 구한 것이나 다름없다·
생명의 은인이다·
그러니 만나봐야 한다·
또한 그가 어떻게 후공의 무공을 펼칠 수 있는지 아니 그 전에 후공의 무공은 맞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후계자인가?
아니면 무학의 뿌리가 같은 것인가?
‘풍제도 지대한 관심을 보일 것 같지만····’
우선 내가 먼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