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화· 나의 주인, 위대한 존재를 다시 만났다·
곤륜 장문인의 거처·
여섯 사람이 자리를 함께 했다·
주로 물은 건 후공·
그때마다 곤륜 장문인 제금이 답했고 사이사이 곤륜삼선이 보충하거나 미진한 부분을 설명하곤 했다·
“대공자 금번 일은 마교의 억측일세· 마교 측이 두 명의 사상자의 몸에 곤륜의 검상이 남겨졌다는 이유를 들어 몰아세우고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네·”
“곤륜의 검흔이 아니었습니까?”
“분명 곤륜의 검흔일 테지·”
장문인 제금이 분통이 터지는지 숨을 몰아쉰 후 말을 이었다·
“사망 추정일은 본 파가 도제(道祭)를 드리던 기간이었다네· 도제라는 걸 알렸음에도 우릴 의심하고 있으니 억측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도제란 도문(道門)의 제사·
열흘간 치러진 도제 때 곤륜의 제자들은 모두 곤륜에 있었노라는 말이 이어졌다·
누구도 빠져나간 적이 없다는 걸 몇 번이나 확인했고 심지어 검의 경지가 얕은 어린 제자들까지 점검했지만 그 기간 자리를 비운 적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후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대답에 의심의 여지는 없다·
도제 때문이 아니다·
애초에 곤륜이 마교를 건드릴 리가·
곤륜은 마교와 견줄 수 없다·
경쟁 상대도 아니다·
또한 만약 피치 못해 부딪혔고 죽였다 해도 사후 처리를 하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곤륜의 검흔이 남겨진 시체를 보란 듯 남겨둔다?
대체 어떤 멍청이가?
있을 수 없다·
그럼 마교의 수작인가?
그럴 리가·
곤륜에 도착해 소호탈마대와 마주해보니 도운연의 대처가 이해되었다·
포위와 압박이 괴이하다 싶었는데 운연은 나름 조심스럽게 접근한 셈이었다·
소호탈마대·
이놈들 생각보다 미친놈들인 탓·
그런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운연은 도리어 포위라는 이름 아래 소호탈마대가 곤륜에 오르지 못하게 막고 있던 셈이었다·
대 학살이 벌어질 수도 있음을 우려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동시에 곤륜이 스스로 범인을 가려낼 시간을 준 것이기도 하고·
그럼 결론은 하나·
너무 뻔하게도 제삼자의 교란·
이간질·
“장문인 근자에 곤륜과 갈등을 겪은 문파나 사람이 있습니까? 곤륜의 속가 제자도 포함해서 생각해보십시오·”
“그 부분도 이미 생각해보았네만··· 없네·”
“최근이 아니라면 오래전에 앙심을 품고 있을 만한 사람은 없습니까?”
“···없네·”
잠시 생각하던 장문인이 고개를 저었다·
“장문인 대답이 너무 빠르군요·”
“····”
장문인 제금이 물끄러미 바라봤다·
대공자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말은 명백히 자신을 책망하는 것이었다·
‘어린 친구가····’
제헌을 구한 이란 건 알고 있다·
고마움도 크다·
하지만 사람인지라 마음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곤륜 장문인인 자신을 질책하는 건 선을 넘은 것이 아닌가·
그건 함께 자리한 곤륜삼선도 같은 마음이었다·
모두 불편하고 언짢아져 헛기침을 쏟아냈다·
젊은 사람이 어찌 이리도 거만한 것인가·
강호에 큰 명성을 날리고 있다 해도 이건 예의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어디 그뿐인가·
대공자가 암향야를 대하는 태도도 그렇다·
어찌하여 암향야를 꿔다놓은 보릿자루 취급하며 대공자가 홀로 이야기를 주도하는지도 모를 일·
“암향야 그대의 생각은 어떻소이까?”
곤륜삼선 중 하나인 방극이 물었다·
암향야는 생각이 다르겠지· 암향야도 이 상황이 불편하겠지 예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할 테지 라는 마음이 담겼다·
당명이 불편할 리가·
도리어 당명은 곤륜이 한없이 같잖아졌을 뿐이었다·
감히 대형 앞에서 언짢은 표정을 지어?
지금 운연을 볼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신 대형 앞에서?
“곤륜은 도대체 뭐가 문제야! 천공단주가 생각을 하라면 생각을 해! 앙심을 품고 있는 놈이 분명 있을 것 아니냐!”
현경의 고수다·
호통에 금빛 안광을 빛내며 기운까지 일으킨 탓에 장문인과 곤륜삼선이 핼쑥해졌다·
**
그 시각·
곤륜산 초입에 세 개의 신형이 내려앉았다·
크르릉·
푸른 깃털의 청랑이 시뻘건 눈을 빛내며 주변을 둘러볼 때 칠십여 소호탈마대가 모여들었다·
“주군!”
모두가 부복하며 예를 갖췄다·
도운연이 빙 둘러보다가 입술을 달싹였다·
“일어나라·”
다가온 건 둘·
건곤신마와 청와신마의 눈은 이미 당혹을 넘어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주군의 두 호법·
몽허와 음희의 머리가 흐트러지고 핏자국도 엉켜있는 것이다· 모시러 갔던 소호탈마대주인 혈령신마도 격전을 치른 듯 머리가 헝클어져있고 옷까지 찢어져 있으니 주군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주 주군! 적을 맞이하신 것입니까?”
“그런 거 아니다·”
도운연이 답했지만 건곤신마와 청와신마의 눈은 이미 많이 돌아가버린 상황·
두 호법이 당했다·
대주가 당했다!
“주군 대체 어떤 새끼입니까! 어떤 새끼가 감히 주군을 해하려 한 것입니까!”
“주군 이쯤이면 곤륜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호로새끼를 당장 죽여야 합니다! 이 호로새끼야아아아! 어디에 있는 것이냐아아아아아!”
건곤신마와 청와신마의 절규가 곤륜산에 울려퍼졌다·
도운연은 찡찡·
하지만 두 호법 몽허와 음희는 넋이 나가버렸다·
‘주군께··· 어떤 새끼?’
‘호 호로새끼?’
“이 새끼들이!”
“호로가 어째!”
곧바로 건곤신마와 청와신마에게 달려들었다·
상대가 될 리 없었다· 건곤신마는 머리가 땅에 찍혔고 청와신마는 복부를 움켜쥐고 허물어졌다· 그 상태로 자근자근 밟혀갔다·
거기에 혈령신마도 가세했다·
마구 발로 짓밟으며 분노를 터뜨렸다·
“감히 누구에게 호ㄹ··· 그냥 오늘 죽어라아아아아!”
크르릉 크릉!
왜 그런지 덩달아 청랑까지 달려들어 건곤신마의 어깨를 물고 늘어지면서 비명과 고성이 오가니 그야말로 난장판·
그 광경을 바라보며 도운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이나 늑대나 답이 없는 상황·
이래서 곤륜에 올라가지 못했다·
이럴 줄 알고 있었기에 산 외곽에 머물고 포위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모두 그만!”
“주군 아닙니다· 저는 오늘 이 두 놈을 반드시 죽여야겠습니다! 죽어 죽어 죽어어어어!”
“어디서 죽은 척이냐! 당장 꿈틀거리지 못해!”
도운연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다시 한숨·
‘아버지 제게 왜 그러신 건가요?’
왜 제 곁엔 이런 놈들만 있는 겁니까!
*
도운연이 곤륜에 발을 딛었다·
쿠웅!
소리는 없어도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 곤륜은 깊은 적막에 빠졌다·
마교 소교주·
그 이름이 갖는 무게에 짓눌려 밤의 공기부터 달라졌다·
맞이한 건 당명·
그 곁에 곤륜의 장문인과 곤륜삼선이 함께 있고 또 그 곁에 젊은 서생이 다정한 표정으로 미소 짓고 있었지만 도운연은 다른 누구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고 오직 숙부 앞으로 나아가 고개를 숙였다·
“숙부님 그동안 강녕하셨습니까?”
머리가 거의 땅에 닿을 지경이었다·
“후후 들어가자·”
“네·”
고개를 든 도운연은 살짝 갸웃했다·
‘왜지?’
왜 숙부의 표정이 유달리 밝아 보이는 것 같지? 어찌하여 즐거워 보이는 걸까? 그저 날 만난 것 때문에?
‘착각인가?’
착각이 아니다·
당명은 그저 싱글벙글·
바로 곁에 선 대형이 흐뭇하게 운연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져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대화는 두 사람만의 독대·
함께 따라온 몽허와 음희는 전각 앞에 기둥이 되었고 그 앞으로 청랑이 어슬렁거리며 왔다갔다 했다·
음희가 안쪽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 한편 주변을 둘러보다 한 사람을 보며 눈이 가늘어졌다·
– 몽허 저놈 같지 않아? 천화서고 대공자·
– 흐음··· 그런 것 같군·
–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데?
음희의 전음에 몽허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젊다· 그리고 어떻게 봐도 천화서고 대공자에겐 무공을 익힌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반박귀진에 이른 고수라 해도 미약한 기운은 흘러나오기 마련인데 천화서고 대공자는 그야말로 서생이었다·
어떤 경지인가?
정녕 현경에 이른 것인가?
혈령신마 건곤신마 그리고 청와신마가 쏟아낸 합공을 힘들이지 않고 막아냈다고 했으니 그렇겠지·
– 놈을 죽여야겠어·
– 너 혼자?
몽허가 미간을 찡그렸다·
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 물론·
– 방법은?
– 미인계·
– 뭔 개소리냐·
– 왜? 내가 못할 것 같아?
– 천공단에 제갈혜가 있다던데 네 얼굴로 되겠냐!
– ····
음희가 일순 시무룩해졌다·
이번엔 몽허가 장담했다·
– 걱정 마라· 내가 기회를 봐서 죽인다·
– 설마 이곳에서?
– 그래·
– 기대되네· 비난은 받겠지만·
– 그깟 비난 받으면 어때?
– 호호 그렇지·
놈이 너무 젊다· 주군보다 어린 나이에 현경에 이르렀다는 건 향후 강호에서 주군이 이인자가 된다는 의미다·
이전에도 그랬다·
지존의 위에 한 사람이 있었다·
후공!
그래 후공은 논외로 치자·
너무 아득한 존재이므로·
그리고 존경할 만한 인물이고 재밌기까지 하니·
무엇보다 지존께서 좋아하는 이였으니·
하지만 천화서고 대공자는 아니다·
저런 애송이 따위가 후공과 같은 지위를 누려선 안된다·
그러니 암습·
반드시 죽인다·
– 그 전에·
– 응?
– 어떤 인물인지 볼까?
전음과 함께 음희가 청랑을 바라봤기에 몽허가 실실거리며 웃었다·
– 흐흐 좋지·
– 청랑 이리 와·
음희의 전음이 청랑의 귓가에 맴돌았다·
크르르릉·
청랑이 붉은 안광을 빛내며 천천히 다가갔다·
– 청랑· 저기 젊은 놈이다·
크르르릉·
청랑의 붉은 눈동자에 목표물이 가득 채워졌다·
– 물어!
음희의 전음이 떨어지자 마자 청랑이 달려갔다·
크르르릉 크르르르릉!
– 맞아 죽으면 어떡하지?
– 우리 청랑이?
– 후후 하긴!
그래 죽을 리 없다·
청랑은 보통 영물이 아니다·
지존도 잡지 못했다·
심지어 후공조차 잡는 데 애를 먹었다고 들었다·
후공이 길들인 다음 제갈 선생이 키웠고 제갈 선생이 떠난 다음 지존의 손길 아래 머물게 된 청랑·
우리 청랑은 그런 존재·
그러니 천화서고 대공자는 꽤 곤란해질 것이다·
감춰진 무공도 드러날 테지·
하지만 그럼에도 누굴 탓할 순 없을 터·
늑대가 사람을 무는 걸 어찌 탓할 수 있겠····
‘뭐 뭐여?’
‘왜 저래?’
득의만면 미소 짓고 있던 몽허와 음희가 멍해졌다·
청랑이 이상한 것이다·
크르르르릉 사납게 천화서고 대공자를 향해 달려가놓곤 대공자 앞에서 깡충깡충 뛰고 있었다·
그야말로 강아지가 따로 없었다·
크르르릉 사나운 울음 대신 헥헥거리고 있었다·
영물이 괜히 영물인가·
청랑은 알아보았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모습이 바뀌었음에도 다가가는 중에 알아보았다·
자신을 옭아맨 기운·
그 사람·
나의 첫 번째 주인 위대한 존재를 다시 만났다·
말을 할 수 있다면 크게 외쳤을 정도였다·
‘반갑구나·’
후공도 물론 알아보았다·
제갈 아우가 꼭 가져야겠다고 말해 수차례 실패 끝에 환명으로 덫을 놓아 잡았고 이후 길들였다·
그러니 청랑에게 첫 번째 주인은 후공·
헥헥헥·
혀를 내밀며 자꾸만 안겨드는 청랑을 진정시키고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꾸우우····
청랑이 귀여운 소리를 냈기에 몽허와 음희는 완전히 넋이 나가버렸다·
‘시··· 시발!’
‘뭐 뭔데? 뭐냐고!! 왜 안 물어!’
물 수 있을 리가·
그저 청랑은 놀랍고 반가울 따름이었다·
자신을 사로잡은 경이로운 존재·
다른 모습이어도 분명 그 사람이었다·
나의 첫 번째 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