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4화· 절세 고수들이 모인 밤·
현이신녀는 바라보기만 했다·
입술이 열리지 않았다·
‘대공자 반가워요·’
‘반겨줘서 고마워요·’
‘기다렸나요?’
마음으로만 말했다·
말은 이제 느리지 않게 할 수 있고 더듬지 않고도 할 수 있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떤 말이 더 좋을지 고르기가 힘들었다· 무슨 말을 해도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걱정도 되었다·
목소리가 떨려 나오면 어떡하지? 붉어진 뺨이 더 붉어지면 어쩌지?
그때였다·
[우와 신비가 왔네· 우리 신비가 왔어!]
[그윽 그윽!]
[아 맞다· 궁주님이지? 까르르르르르· 하마터면 죽을 뻔·]
[큭큭큭!]
색관조와 금섬이 날아와 반가움을 표했다·
현음신녀의 주변을 소란스럽게 날았고 금섬은 폴짝 현음의 머리로 뛰어내려서는 어깨로 갔다가 머리로 갔다 하면서 난리도 아니었다·
이어 색관조가 현이신녀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현이신녀님 어떻게 지내셨어요? 저희는 잘 지냈답니다· 오시는 길 고생 많으셨죠? 혹시 누가 해꼬지하지는 않았나요? 물론 그럼 다 죽여버리셨겠죠? 까르르르르르르르르· 꽃 구경은 하셨나요? 귀뚜라미는 보았나요? 아 내 정신 좀 봐· 아직 겨울이지· 까르르르르르르르!]
[극극!]
금섬은 이번엔 현이신녀의 앞으로 뛰어내려 빤히 올려다봤다·
현이가 미소를 머금었다·
귀엽기도 했지만 의미가 이해된 탓이었다·
그때와 같았다·
금섬을 처음 봤을 때 빙벽 안에서 이렇게 내려다보았었다· 그렇기에 금섬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날 우리 이렇게 봤죠? 기억나요?
“기억나지·”
[그으으으으으으윽!]
금섬이 앞발을 들어올리며 입을 쩍 벌리곤 기절했다·
그것도 잠시 이내 일어나 눈웃음치더니 폴짝 뛰어올라 현이의 어깨에 올라타 방방 뛰었다·
“하하하!”
현이는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웃음을 머금은 채 대공자를 바라봤다·
“대공자 다시 보니 좋군요·”
“저도 그렇습니다· 매일매일 언제 오시나 기다리느라 눈이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하하 그럴 리가요·”
현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듣기 좋은 말·
대공자는 언제나 말을 듣기 좋게 한다·
거짓말이란 걸 아는데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기에 실감했다·
대공자를 다시 만났구나·
[현이신녀 정말이랍니다· 주인님은 운남에도 안 가시고 사천에도 안 가시고 마교에도 안 가시고 쭈우우우욱 천화서고에서 기다리셨답니다· 까르르르르르르··· 엇?]
색관조가 너스레를 떨다가 입을 닫았다·
주인이 눈을 흘기고 있으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잠시
[아무튼 그런 걸로! 까르르르르르르르르!]
웃으며 천화서고 쪽으로 날아갔다·
그러곤 사람들을 깨웠다·
[다들 일어나요· 지금 자고 있을 때가 아니야!]
‘또 뭐야!’
‘잠 좀 자자·’
‘저거 또 시작이네·’
‘영물은 잠을 안 자나?’
천화서고 식솔들은 불평을 토해내며 이불을 끌어 머리까지 덮었다· 하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손님이 왔어요! 누가 왔는지 알아요? 아마 들으면 까무러칠걸! 까르르르르르·]
또 누가?
이 밤에?
까무러칠 사람이 아직 남았나?
[북해빙궁의 궁주님이 오셨어요· 그리고 또 누가 왔는지 알아요?]
그땐 이미 이불을 던지고 일어났다·
파파팟! 불이 사방에서 켜지기 시작했다·
들어본 것이다· 북해빙궁· 얼음과 눈에 싸인 신비 문파· 대공자님께서 다녀오셨다는 이야기도 떠올랐다·
그곳 빙궁의 궁주가 천화서고에 왔다고?
왜?
의문은 각자의 마음 속에서 빠르게 진압되었다·
이미 마교 교주와 사천당가주 그리고 화산의 검선이 왔다· 북해빙궁이라고 오지 말란 법이 없었다·
[그리고 궁주님과 함께 빙궁의 전설이 왔어요· 전설 속의 마녀··· 아니 미녀께서도 오셨답니다· 까르르르르르르르르!]
그 말에는 다 뛰쳐나왔다·
누구할 것 없었다·
화산의 검선과 능량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누가 왔다고?”
“사숙 귀가 어떻게 되셨습니까!”
“아니 빙궁이 왜 오냐고?”
“사숙 준비 단단히 하셔야겠습니다·”
“응?”
“상황을 보아하니 천하제일인을 뽑는 결전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이 등만 하자·”
“나쁘지 않습니다!”
검선과 능량은 농담을 주고 받고 있었지만 정신이 하나도 없는 이도 있었다·
노가주였다·
“왜 자꾸 와!”
그만 와!
천화서고는 무림맹이 아니란 말이오!
이쯤이면 무서워졌기에 노가주는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그리고
·
·
·
·
·
·
·
북해빙궁과 방 안에서 마주했다·
“허허 귀한 손님들께서 본 서고를 찾아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외다·”
덤덤히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래봤자 등은 이미 축축해지고 이마에도 송골송골 땀이 맺혔지만 애써 태연을 가장했다·
“가주 늦은 밤 무례를 범했거늘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현음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이었고 어린아이의 목소리·
노가주는 들은 기억이 났다·
북해빙궁의 궁주가 반로환동을 했노라는 큰아이의 말·
다 사실이었다·
큰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구나·
그래도 찾아오기까지 할 줄이야·
그리고 정녕··· 천화서고에서 격돌이 벌어지는 걸까?
“혹여 두 분은 미리 기한을 정해두고 오신 것입니까?”
“기약 없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시군요·”
다행이다· 우연히 모이게 된 듯하니 격돌은 아닐지도·
한시름 놓은 노가주는 편히 쉬시라는 말을 건넸다· 현음과 현이 그리고 큰아이가 방을 나서고 나서야 노가주는 마음껏 떨었다·
덜덜덜····
손이 떨려 손을 잡으면 다리가 떨렸고 다리를 잡으면 허리가 떨렸다·
“편 의원! 편 의원~~~· 어디에 있나· 약이 필요하네· 난 당장 약을 먹어야겠네에에에에!”
*
놀란 건 노가주만이 아니었다·
풍제와 당명이 놀랐고 검선이 놀랐다·
그리고 현음과 현이도·
“현음신녀 훨씬 보기가 좋구려·”
“그런가요? 그럼 풍제께서도 반로환동을 시도해 보는 건 어떤가요?”
“운연 때문에 사양해야 할 것 같소· 아들보다 더 어려질 수는 없지·”
“하하하!”
풍제와 당명은 대형에게 상세히 들었음에도 반로환동한 모습을 직접 보게 되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특히 과거 현음신녀와 인연이 있어 본래의 모습을 알고 있기에 더 했다·
“현음신녀 어떻게 반로환동을 이룬 것이오? 따로 공법을 창안한 것이오?”
검선도 놀라워하며 물었다·
어려도 너무 어려졌고 길에서 마주했다면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쳤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만큼 감쪽같았다·
“네 방법을 찾았습니다·”
“오호! 놀랍구려· 그럼 이 노부에게도 알려줄 수 있겠소?”
“어렵지 않습니다· 죽다 살아나면 가능합니다·”
“없던 일로 합시다·”
“하하하!”
웃음을 터뜨린 현음도 이내 궁금한 것을 물었다·
“자 이제 들려주세요· 어찌하여 천화서고에 이처럼 모여 계신지·”
현음에겐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이 없었다·
모두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고 있지만 지금 이 상황이 그녀로선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천화서고에 도착한다면 천공단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거늘 정작 천공단은 어디로 간 것인지 전혀 보이지 않고 강호에서 손꼽히는 고수들을 보게 된 것이다·
“이야기하자면 길어서·”
“간단히 말하자면 대공자 때문이고·”
당명과 검선의 말에 현음이 고개를 저었다·
“긴 이야기라면 더욱 환영이에요· 들어보죠·”
그렇게 이야기가 오갔다·
누군가는 둘러대고 누군가는 진실을 말했다·
이야기가 길어지는 중에 한 사람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현이신녀는 조금 걷고 싶어졌다·
긴 이야기는 그녀에겐 관심 밖· 마교 교주도 화산파의 검선도 사천당가의 가주도 모두 대단한 사람들이고 처음 만난 것이었지만 그녀에겐 크게 와닿지 않았다·
대공자는 빙벽을 녹인 이·
그리고 빙궁의 숙원이자 자신의 염원에 답한 이다·
빙벽 속 자신과도 인연을 맺은 대공자이니 지나온 길에서 여러 신비로운 인연을 맺었을 테지·
그렇기에 그녀는 이야기보다는 지금의 발걸음이 중요했다·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더 의미 있었다·
‘이곳이 대공자가 자란 곳····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구나·’
상상했던 모습보다 더 아름답고 더 운치가 있었다·
또 모두들 좋은 사람들 같고·
그때 그녀에게 두 사람이 다가왔다·
윤과 부몽이었다·
“윤이 신녀님을 뵙습니다·”
“부몽이 신녀님을 뵙습니다·”
현이가 미소로 반겼다·
들어서며 대공자의 두 아우라는 건 소개받은 터·
대공자와 얼핏 닮기도 해서 현이는 절로 호감이 갔다·
“잠을 청하지 않고요·”
“잠을 청할 수 있을 리가요·”
“혹시 할 이야기가 있나요?”
“네·”
부몽이 씩씩하게 답하고 밤하늘을 가리켰다·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좋아요·”
“빙궁의 고수분들은 여름에도 눈이 오게 할 수가 있다고 들었거든요·”
“물론·”
부탁이란 것이 눈인가?
눈이 내리는 광경을 보고 싶은 것인가?
현이는 두 아우가 엉뚱하다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 그런 엉뚱함이 즐거워지기도 했다·
“올겨울에는 눈이 자주 오지 않아서요· 그리고 이제 겨울도 끝나가니 천화서고에 눈이 내리게 해 주세요· 송이송이 커다란 눈송이로요· 함박눈으로요·”
“부탁드립니다! 눈송이를 내려 주신다면 평생의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영광이랄 것까지 없다·
현이에게 그건 평범한 일·
“그렇게 하죠·”
“오오오!”
윤과 부몽이 탄성을 터뜨릴 때는 이미 현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어디로 가셨지? 두리번거리다 밤하늘에서 발견했다·
윤과 부몽의 탄성은 더 커졌다·
“우와아아아아!”
“이야아아아아아아!”
밤하늘로 솟구친 현이가 잠시 허공에 머물렀다·
그러다 이내 양손을 펼쳤다가 모으며 합장했다·
쩌어어엉·
공명음이 들린 순간 현이신녀의 주변으로 얼음의 결정체 형태가 연달아 커다랗게 떠올랐다·
투명하면서도 하얀 얼음 결정체는 하늘의 방패처럼 끊임없이 떠오르고 회전하며 천화서고의 밤하늘을 뒤덮었다·
“허억!”
“헉!”
보는 것만으로 신비롭기 짝이 없어 윤과 부몽은 얼이 나갔다· 그 광경은 어느샌가 천화서고의 식솔들도 보고 있었다·
그러던 한순간
파아아앙!
하늘을 뒤덮은 얼음의 결정체 형태가 일제히 부서져 나갔다·
그 결과 하얀 눈송이가 쏟아져 내렸다·
“눈 눈이다!”
“와아아 눈이 와!”
윤과 부몽이 떨어져 내리는 눈을 만지며 멍해졌고 뛰쳐나온 천화서고의 식솔들도 눈송이 사이를 뛰었다·
거기엔 색관조와 금섬도 있었다·
[눈이다! 눈이 온다! 북해빙궁의 마녀··· 아니 미녀께서 눈을 내리셨어! 우리 눈싸움하자! 까르르르르르르!]
[그윽 그윽 극극극!]
어느샌가 쌓이기 시작한 눈 사이를 뛰놀았다·
“···굉장해·”
송화도 놀라 멍해졌고 약을 가져다주고 나온 편 의원도 얼이 나갔다·
노가주도 나와 하늘 위에서 천천히 하강하는 현이신녀를 무슨 선녀를 보듯 바라봤고 이내 지면에 쌓인 눈을 뭉쳐보면서 동공에 지진을 일으켰다·
‘약··· 약이 필요해·’
절세 고수들이 모인 밤·
현경의 고수들이 모인 밤·
천화서고는 실감했다·
또한 북해빙궁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