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화· 여기가 천화서고냐, 강호냐!
사람은 누구나 나름의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
부지런한 사람은 부지런한 대로 게으른 사람은 게으른 대로·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그렇기에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무슨 일이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노가주는 마음이 영 개운치 않았다·
큰아이가 돌아왔는데 놀랍게도 계절이 그대로·
몇 밤 지나지도 않았는데 돌아와버렸기에 체감상으론 거의 낮에 나갔다가 밤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디를 다녀온 것이냐는 물음에는 잠깐 바람 좀 쐬고 왔다는 식이었다· 바람을 이렇게 짧게 쐰다고?
그럴 리 없었다·
분위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이전과 사뭇 다르다·
다들 찡찡하다·
검선도 그렇고 사천당가주도 빙궁의 궁주도· 마교 교주님도 찡찡· 멀쩡한 건 계절이 계속 바뀌고 있는 천화서고를 미소를 지으며 걷고 있는 현이신녀뿐·
솔직히 현이신녀도 이상하다·
함께 다녀왔으면서 혼자만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면 더 기이하게 느껴지는 건 당연했다·
분명 무슨 일이 있는데····
그리하여
[까르르르르르! 무슨 일이 있었냐고요?]
노가주는 색관조를 불렀다·
금섬은 이미 노가주의 머리 위로 올라가 있었다·
“그래 듣고 싶구나· 넌 착하고 똑똑하니 들려줄 수 있겠지?”
[까르르르르르르르 난 착하고 똑똑해!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똑똑한 새의 이야기가 나갑니다요·]
“허허 그래· 어서 말해봐라·”
[할아버지 우린 무당산에 갔었답니다·]
“무당산? 무당파가 있는 그 무당산?”
노가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맞아요·]
“거 거길 왜 안 갔단 말이냐?”
[사람을 납치하러 갔어요· 노인이었어요· 까르르르르르르르!]
“뭐라고?”
[화공신타가 나타났어요· 화공신타 무섭! 하지만 금방 멋져지지· 까르르르르르·]
“화공신타라니 그건 또 누구냐?”
[무서운 사람 있어요· 곱추예요· 무섭게 생겼어요· 못생겼어요·]
“그래서? 혹시 큰아이가 화공신타와 싸웠단 말이냐?”
[까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화공신타가 주인님과 싸우다니· 너무 웃겨· 아이고 배 아파· 까르르르르르르르!]
[극극극극!]
색관조가 방 안을 정신없이 날아다녔고 금섬도 웃으며 노가주의 머리 위에서 방방뛰었다·
“정신 사납구나· 차근 차근 알아들을 수 있게 이야기를 해보거라· 넌 똑똑하면서 그러는구나·”
[아차 그렇지! 난 똑똑하지·]
색관조가 내려앉았다·
[흠흠 할아버지 잘 들으세요· 화공신타는 주인님의 적수가 못 돼요· 주인님이 숨만 쉬어도 화공신타는 사라져버려요· 여하튼 모두가 화공신타를 만났고 무당산에 있는 노인을 납치했어요· 그리고 고문했어요·]
“고 고문을 했다고?”
[네 찢어버렸어요· 근데 안 찢었답니다· 그다음 암향야께서 노인을 주물렀어요· 노인이 너무 시원했나 봐요· 좋다고 비명을 막 질렀어요· 다음으로 빙궁의 궁주님께서 노인의 손을 잡았어요· 살짝 얼었어요· 더 시원했겠죠? 그리고 마교 교주님께서 이렇게 말했어요· 바다가 보기 좋다고요· 이상했어요· 산이었거든요? 그러고는 노인에게 누구냐고 물었어요·]
“누군지도 모르고 그랬다고? 뭐 어쨌든 누구라고 하더냐?”
말이 뒤죽박죽이었지만 노가주는 핵심만 잡았다·
[위대한 이름~~· 지키는 이·]
“응?”
[그게 끝이에요· 그러냐면서 다시 노인을 돌려보냈어요·]
“그게 끝이라고?”
[네· 끝!]
“어째서?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데 끝이라고?”
[아참 그 이야기를 빠뜨렸네요·]
“오호!”
[무당산에서 우린 무당벌레도 잡았어요· 맛있었어요· 금섬은 일곱 마리나 먹었어요· 저는 세 마리· 까르르르르르르르르!]
그러면서 금섬과 함께 색관조가 날아가버렸기에 홀로 남은 노가주는 퀭해졌다·
색관조에게 똑똑하다고 했던 말은 취소·
이 정도면 그냥 똑똑한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똑똑하다고 해야 맞았다·
색관조를 봐온 것이 어디 하루 이틀인가·
말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겠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
그로부터 다시 며칠·
풍제는 여전히 고통받고 있었다·
“풍제 어떻게 하실지 생각해 보셨나요?”
“풍제! 기억을 잃은 사람에게 기억을 또 잊으라고 섭혼을 걸었으니 이제 검존은 영영 기억을 잃은 채 살아갈 것이오· 평생 나는 누굴까 나는 누굴까 이러면서 죽을 때까지 고민하다 생을 마감할 것이란 말이오!”
대책을 내놓으라며 쪼아대는 현음과 검선에게 시달렸다·
변명의 말은 많았지만 풍제는 변명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대공자가 후공·
환혼의 당사자이며 이번 일을 주도한 것도 실상 대형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 대형은 그날 이후 잘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대형은 그런 사람이었다·
한 번씩 이런 식이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모른 척해버린다·
그것이 또 유쾌해 풍제는 웃음을 흘렸다·
다시금 대형을 만났다는 것이 실감나는 것이다·
그 웃음이 오해를 불러온 건 당연한 일·
“풍제 지금 웃음이 나오나요?”
“허허 웃어버리네? 풍제 설마 즐거운 거요? 사람을 작살을 내놨는데?”
“흠흠·”
풍제는 헛기침과 함께 웃음기를 떨쳐내고 입을 열었다·
“무당 청인자에게 한 달을 기약했으니 그때가 되면 무당에 다녀오도록 합시다·”
“그래요· 그때는 꼭 기억을 되돌리고 와야 해요·”
“그전에 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소이까· 약왕문은 어떻소? 약왕문의 비약 중에 혹여 기억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지 않소·”
“약왕문은 무슨·”
곁에서 당명이 콧방귀 뀌듯 말했기에 검선이 갸웃했다·
당명이 말을 이었다·
“약왕문주 용악이 정신이 나가버렸다가 이제 겨우 회복하는 중이거든·”
“그럼 약이 있다는 뜻이 아닌가?”
“약이 아니라 천화서고의 진법으로 회복 중이지·”
“오호! 가까운 곳에 답이 있었구만·”
화산의 검선이 그걸 왜 이제야 말하냐며 웃고 현음의 얼굴도 밝아졌을 때였다·
쿠우웅!
쿠웅!
충격음과 함께 바닥이 흔들렸고 탁자 위 찻잔도 요동쳤다·
“응?”
“누가 온 건가?”
모두가 갸웃하며 바깥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내 들려왔다·
“부몽 이건 절대로 무당파가 아니다·”
“지당하십니다· 무당파가 다녀갔는데 또 무당파라니요· 사칭을 해도 사정을 알아보고 사칭을 해야지 강호인들은 아무 이름이나 너무 막 갖다댑니다·”
“내 말이· 또 검존은 뭐냐? 이런 식이면 검성도 있다는 거냐?”
“하하하! 화공신타는 또 누구고요· 왜 천화서고에서 화공신타를 찾는지 원·”
“웃겨 죽는다· 얼른 큰형님께 가자·”
“큰형님도 웃으실 테죠?”
“당연하지·”
대공자의 두 아우가 떠드는 소리에 다들 안색이 급변했다·
“어 어떻게 검존이?”
“기 기억이 돌아왔다고?”
“화공신타라는 건··· 그날 밤까지 모두 기억났다는 건데?”
방금까지 어떻게든 검존의 기억을 찾게 도와야 한다고 울분을 토해냈던 현음과 검선도 이미 죽상이 되어 있었다·
*
“큰형님· 또 무당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검존이라고 하면서 다 때려부술 기세로 검을 날리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미친 사람 같습니다·”
“큰형님 진법을 발동해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겠죠? 검존이라며 자신은 멋있는 이름 다 갖다붙이면서 화공신타 어딨냐고 난리도 아니니까요·”
두 아우의 말에 후공은 미소를 지었다·
“무당파의 검존이 맞다·”
“네?”
“왜요? 우리 서고에는 화공신타가 없는데도요?”
“본 서고에 있다·”
“네??”
“그거 나다·”
“네???”
윤과 부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큰 형님께도 별호라는 것이 생기신 걸까?
근데 신타면 곱추인데?
아니 그보다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엄청 화가 나 있고 다 죽여버린다고 떠들고 있으니 아무래도 큰 싸움이 날 것이 분명했다·
“큰형님 아무 염려 마세요· 없다고 둘러대겠습니다· 제 풀에 지쳐 돌아갈 테죠·”
“절대로 지치지 않아·”
“그 그런가요?”
“공손히 모셔라·”
“하지만····”
“아무 일 없을 거다· 뭐 전각 몇 채 부서지고 끝날 테지·”
*
그렇게 무당 검존이 들어섰다·
씩씩대며 당장이라도 칼부림을 할 것 같이 살기등등한 검존을 어르고 달랜 건 화산의 검선이었다·
“검존 우선 이야기나 들어보시오· 우리라고 사정이 없었겠소?”
검선이 달랠 때 현음과 당명 풍제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다· 물론 후공은 조금 더 멀리·
둘러앉은 자리·
찻잔이 놓였고 검존이 한 사람씩 훑었다·
기억이 맞았다·
풍제와 암향야 그리고 소녀와 미인·
소녀가 반로환동한 북해빙궁의 궁주라는 사실에 놀랄 틈은 없었다· 반로환동이고 자시고 그 밤 몸에 스며들던 한기는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릴 지경·
거기에 더해 한 사람·
흉측한 얼굴을 한 곱추의 이기죽거리던 목소리도 잊을 수 없었다·
한데 지금 보니 멀쩡한 얼굴의 천화서고 대공자·
잘생기기까지 해서 검존은 괜히 더 화가 났다·
“대공자 날 찢어버린다고 했던가?”
“죄송합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 같은데?”
“많습니다·”
“응?”
검존이 신경질적으로 미간을 좁혔다·
“저는 그저 풍제께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아직 어리고 보잘것없습니다· 그런 제가 어찌 천마신교 교주님의 명을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흉측한 얼굴을 할 수 있냐 물으셔서 그렇게 했고 크게 무례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검존은 기분이 언짢아졌다·
무슨 변명을 늘어놓는다 해도 뼈 하나는 분질러 놓겠다고 생각했는데 듣고 보니 이해가 되어 그것이 더 기분 나빴다·
검존의 시선은 이제 현이신녀를 향했다·
잠시 지난 기억을 떠올렸다·
아름다운 여인· 딱히 뭘 했다고 볼 수 없었다· 굳이 찾자면 미모 담당· 즉 별 의미가 없었기에 검존은 이내 현음에게로 눈을 옮겼다·
“현음신녀 손속이 잔혹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할 말이 있소?”
“물론이에요· 사실 저도 속았답니다·”
“속았다고?”
“풍제가 검존이 검존이 아니라면서 확신에 차 이야기하니 따를 수밖에요· 궁금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제 손속이 거칠었던 점만큼은 용서를 구해야겠군요·”
끄응 앓는 소리를 낸 검존의 눈길은 화산 검선을 지나쳐 풍제를 바라봤다· 사천당가주는 한패거리이니 따로 물을 것도 없었다·
원흉은 풍제·
대체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풍제 그대가 시작인 듯하군· 어디 들어봅시다· 이 노도를 이해시킬 수 있다면 이번 일은 없던 일로 하겠소·”
“허허 이유가 없을까·”
풍제가 너털거리며 말을 이었다·
“검존 본시 주화입마라는 것이 수면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화경에 이른 자라도 드문 일인데 현경의 고수가 주화입마로 기억을 잃는다니 어불성설이지·”
“그래서?”
“그래서 환혼에 관한 고대 문헌이 생각나더군· 문헌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거든· 환혼 당사자가 기억을 잃을 가능성····”
“환혼이라고?”
검존이 말을 끊었다·
“그렇지· 환혼·”
풍제가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검존은 이미 눈이 돌아가고 있었다·
“환혼?”
“그렇다니까·”
“환호오오오오오오오오온?”
“그 그렇지·”
검존의 옷자락이 미친 듯이 펄럭이고 가공할 기세를 뿜어내면서 두 눈이 불타올랐기에 풍제도 더듬거리고 말았다·
“환호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온?”
검존의 기세에 탁자가 바스러져갔다·
그 위에 놓인 찻잔도 가루가 되어 흩어졌고 바닥도 균열을 보였다·
다들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가 이내 밖으로 몸을 빼냈다· 남은 건 풍제와 검존뿐·
검존의 목소리가 더 크게 울려퍼졌다·
“환호오오오오오오온? 변명이 환호오오오온? 그걸 지금 믿으라고?”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천화서고의 식솔들이 놀라 뛰쳐나왔다· 그리고 보았다·
콰아아아앙!
전각이 산산이 부서지면서 두 인영이 솟구쳐올랐다·
대체 어디까지 솟구치는 건가?
모두 멍해져 바라볼 때 하얀 광채와 함께 검이 날았다·
투쾅!
검을 막은 건 묵빛 연기가 흐르는 괴인영·
염혼이었지만 천화서고 노가주를 비롯 식솔들은 그렇게만 보였다·
“저 저게 뭐냐?”
“검은 연기가 왜?”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현경에 이른 두 고수의 격돌·
검광이 스칠 때마다 굉음이 울렸고 괴인영은 둘에서 셋이 되었다·
이내 뭐가 뭔지 누구 누군지 볼 수조차 없었다· 하얀 광채와 괴인영이 부딪힐 때마다 그 충돌의 소용돌이에 전각이 부서져 나갔다·
콰광 쾅!
“풍제! 변명에 최소한 성의라도 있어야 하지 않는가!”
눈부신 흩날림 속에 호통이 터져 나왔기에 사람이 싸우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저 보기엔 어떻게 봐도 사람의 싸움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 천강아 몇 대 맞아줘라·
“하하하하!”
그 와중 들려온 대형의 목소리에 풍제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노가주는 혼절하기 직전·
여기가 천화서고냐 강호냐·
이미 강호·
현경의 고수들이 모두 모였다·
또 오고 있기도 했다·
천공단!
산 아래에 이르러 떠들썩하게 오르고 있었다·
“서둘러!”
“배고파!”
“나무관세음보살~~·”
삐리리리~~ 삐리삐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