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화· 아주 조금·
소향객은 악의가 끓어올랐다· 참기 힘들었다· 왜일까? 이유는 알고 있다· 천화서고 대공자· 놈의 태도 때문· 무심한 시선 때문이다· 신경을 자극해온다· 당장이라도 저 눈을 뽑아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소향객은 솟구치는 악의를 가라앉히려 술잔을 들어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유들유들한 미소를 띄워 악의를 덮었다·
“대공자 자네에게 궁금한 것이 많네·”
“저도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흐흐 그런가? 나부터 물어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먼저 고맙다는 말부터 해야겠군·”
후공은 갸웃해 보였다·
소향객이 너털거렸다·
“내가 제일 존경하는 이가 후공일세· 신검이 도난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황망했는지 모르네· 한데 더 놀라운 소식이 기다리고 있더군· 자네가 신검을 찾았다는 이야기에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지· 그러니 내 어찌 자네에게 고맙지 않겠나·”
“고맙다는 말씀은 너무 무겁군요· 그저 운이 좋았습니다·”
후공은 다정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차갑게 식고 있었다·
듣는 내내 소향객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사람은 입으로만 말하지 않는다·
눈빛과 심장도 말을 한다·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해온다· 그래서 어떨 땐 눈빛만 봐도 수만 마디의 말을 들은 것 같아진다·
존경을 입에 담았지만 눈빛은 허허롭다·
고맙다는 말에는 예쁜 포장지가 보일 뿐이다·
원래의 소향객은 이렇지 않다·
소향객은 고맙다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큰절부터 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너스레가 대단하다고 보겠지만 그건 너스레임과 동시에 소향객의 진심·
“허허 그게 운으로 될 일인가· 여튼 대단한 일이고 고마운 일이네· 한데 그 와중 궁금해졌다네· 자넨 어찌하여 신검을 다룰 수 있는 건가? 신검엔 내력이 담기지 않네만?”
소향객이 눈을 빛냈다·
알고 싶은 건 하나·
이 물음에 담긴 의미는
그대가 후공인가?
만약 대답이 어설프고 엉성하다면 계속 파고든다·
후공은 당연하게도
그 눈빛에서 숨겨진 진의를 읽었다·
“사실 그건 저 또한 궁금한 부분입니다·”
“으잉?”
“그저 되었습니다· 특별히 어떤 노력을 기울인 것도 아니어서 저로선 도리어 주변의 반응들이 기이할 따름입니다·”
꾸며낸 말은 힘이 약하다·
숨기지 않고 그저 순응·
순응이 모호함을 더해 의심을 날려버렸다·
“흐으음 괴이하군·”
더 추궁하려던 소향객이 침음성을 흘렸다·
천화서고 대공자가 후공일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의심이 있었는데 순식간에 옅어진 터·
‘그저 다룰 수 있다라·’
어찌 보면 내가 후공이라 밝힌 셈·
하지만 그 말을 눈앞에서 듣게 되면 아예 의심이 멀어질 수밖에 없다·
“대공자 혹시 누군가 신검을 찾으러 온 이는 없었나?”
“찾으러 온 이라····”
후공의 미소가 짙어졌다·
비로소 확신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요로선인이 기침과 가래의 추접스러움으로 스스로를 증명했다면 눈앞의 소향객은 반대· 모든 물음이 환혼에 대한 것이다· 자신이 소향객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었다·
질문이 그렇다·
첫 번째 물음은 그대가 후공이냐는 질문·
두 번째 물음은 후공이 찾아오지 않았느냐는 의미·
놈들의 의중이 엿보인다·
놈들은 내가 아직 살아있다고 믿고 있구나·
그럴 테지·
환혼은 실패했는데 자살을 했으니·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겠지·
믿을 수 없었겠지·
환혼 후 혼란스러움에 빠진 건 자신만이 아니었다·
환혼의 주체들도 수렁에 빠졌다·
이제 알아보자·
“있었습니다·”
“누구였나?”
“후공·”
“!”
소향객의 눈이 커졌다·
심장도 쿵하고 주저앉았다·
눈동자를 미친 듯이 흔들며 바라볼 때 들려왔다·
“전혀 다른 모습· 환혼되었다고 하더군·”
“···?”
“그리고 너도·”
“···??”
“환혼되었지·”
대답은 눈빛이 대신했다·
쿵쾅 쿵쾅!
심장의 요동이 대신했다·
소향객 스스로도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쯤이면 변명은 의미 없다·
당혹도 잠시 악의를 숨김없이 드러내며 우수를 내뻗었다·
절회장(切回掌)!
나선으로 회오리치는 강력한 기운이 지나며 탁자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죽인다! 아니 그 전에 눈부터 뽑아낸다· 닿으려 할 때 아지랑이가 떠올랐다·
환명· 지옥의 늪·
‘헉!’
소향객이 놀라 장력을 거두었지만 늦었다· 어느샌가 우측에서 손이 다가오고 있었다· 언제? 어떤 기척도 느끼지 못했거늘· 나는 소향객의 모든 무공을 흡수했거늘· 경지는 현경의 예· 놈의 경지가 이미 현경의 예를 뛰어넘었다고? 그럴 수 있는 건가? 신형을 휘돌아 손을 붙들어갔다·
스윽 스윽·
실패· 붙잡지 못했다· 손이 뱀인가? 미끄러지며 타고 온다· 방 안인데도 바람이 부는 것 같은 까닭은? 왜 그 봄바람 같은 기운에 내력이 흩어지지?
놀람과 의문은 거기까지·
목의 맥문이 짚혔고 연달아 십여 곳이 점혈되었다· 그야말로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많은 것이 오갔다·
소향객의 절기를 후공이 모를까·
환명이 떠올랐고
손을 타고 흐르며 허운이 운용되었다·
천람이 불어와 허운을 도왔다·
거기에 교릉이 잠복·
마혈까지 제압당해 굳어버린 소향객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천화서고 대공자를 바라봤다·
“후 후공이··· 네게 알려주었구나?”
“넌 이제 대답만 한다·”
“후공은··· 어디에 있지?”
그 순간 교릉이 발동·
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으가가가가각!”
소향객의 머리가 꺾여나갔다·
좌로 우로 뒤로 앞으로· 마혈이 제압된 상태임에도 팔다리가 멋대로 춤추며 휘어져 갔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뚜드득 뚜득 뚜드드드득!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통증과 함께 뒤틀어지고 구겨지면서 순식간에 줄어들어갔다·
눈이 어디에 있는가· 입은 돌아가버려 귀와 붙었고 다리와 발이 왜 눈앞에 보이는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으으으····”
절반이나 줄어든 채로 소향객이 신음을 흘렸다·
“이름·”
“····”
뚜드드드드드득!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는 더 구겨졌고 더 작아졌다·
고통에 영혼까지 떨려올 지경· 혹시 나는 이미 지옥에 온 것은 아닐까? 방금 나눈 대화는 과거의 회상일까?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기에
“이름·”
“악···무극·”
“본거지·”
“····”
잠시 머뭇거렸다가 눈이 마주치면서 악무극이 기겁했다·
“공동파·”
“응?”
“그 그전에··· 말할 것이 있다· 날 되돌려라· 환혼은 나 혼자만이 아니다· 네가 아끼는 이들이 우리 손아귀에 있다·”
“이런 놀랍군·”
전혀 놀라워하지 않았기에 악무극의 눈동자가 뒤흔들렸다·
‘이미 알고 있다고?’
*
소향객의 처소는 고요할 뿐·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대공자가 악무극과 마주한 시간도 어느덧 일다경·
움직여야 할 때였다·
비룡제천대주 공옥대주 금마적성대주는 각각 나아갔다·
누군가는 연향을 향해
누군가는 화설난을 향해 암부로·
누군가는 맹의 군사 모용곽을 향해·
셋을 잡아 대공자를 무력화시킨다·
*
화설난에게 향한 건 공옥대주였다·
처소로 스며들어 잠들어 있는 화설난을 바라봤다·
‘이 할망구는 봐도 봐도 신기하단 말이지·’
환혼으로 흡수한 기억 속 모습은 원래 이 모습이 아니었다·
젊은 나이면서 노파였다·
‘후후 나중에 너의 피라도 마셔야겠다·’
그러면 나도 젊어질지도·
생각도 잠시 화설난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마혈과 아혈을 동시에 점혈하고는 화설난을 깨웠다·
“···!?”
화설난이 놀라 튕기듯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몸은 그대로였고 비명을 질렀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놀랐어?”
공옥대주가 피식 웃었다·
대답은 없었다· 아혈이 점혈되었으니 대답이 없어야 마땅하고· 한데 들려왔다·
“그래 놀랍군·”
뒤쪽이었다·
공옥대주가 경악하며 몸을 돌린 순간 몸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누 누구?’
무당 검존이었다·
검존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길 바랐었다·
대공자가 색관조를 보내 전해온 말은 소향객을 포함 다섯·
환혼이 의심된다니? 대공자까지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 화공신타가 되었나? 듣고도 반신반의하였는데 이젠 환혼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검존은 화설난의 점혈을 해혈했다·
그리고 그땐····
*
“교 교주님?”
연향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눈 앞에 맹주님의 아우인 풍제가 보이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방 한쪽에 처박혀버린 비룡제천대주의 모습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풍제께서 자신을 해칠 리 없다는 것·
맹주님의 아우를 믿지 못한다면 누굴 믿을까·
“연향아 잘 지냈느냐·”
풍제도 반가워했다·
대형의 시녀·
천화서고에 송화가 있다면
무림맹에는 연향이다·
“교주님···· 이러시는 이유가 있으신 거겠죠?”
“없다면?”
“으음····”
연향이 잠시 고민하고는 입을 열었다·
“전 상관없어요!”
미소가 함께였다·
풍제도 따라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역시!”
“하하하하!”
*
금마적성대주는 검선의 손아귀에 떨어졌고 유성건곤대주는 빙궁의 궁주 현음신녀와 현이신녀에게 잡혔다·
그리고 나아갔다·
“대공자 네가 알고 있다고 해도 소용없다· 네가 아끼는 화설난과 시녀 연향 그리고 모용곽은 이미 우리 수중에 있다· 지금쯤 오고 있····”
악무극이 말을 멈췄다·
문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들어선 것이다·
화설난과 연향 모용곽일 것이라는 기대는 산산히 부서졌다·
낯선 얼굴도 있었고 낯익은 얼굴도 있었다·
소향객의 기억을 더듬던 악무극은 그들 중 몇을 알아보고는 넋이 나가버렸다·
‘풍제··· 암향야··· 화산의 검선 무당 검존·’
북해빙궁의 현음신녀와 현이신녀만 못 알아봤다· 하지만 알아본 이들의 면면만으로도 절망하기엔 충분했다·
“이 이게··· 어 어떻게····”
악무극이 놀라 더듬거렸다·
하지만 놀란 건 악무극만이 아니었다·
“무 무슨?”
“사 사람이 왜?”
“아아악!”
검선과 검존이 악무극의 모습을 보고 기함했고 현음신녀는 너무 놀라 괴성을 발하며 뒷걸음질쳤다· 심지어 현이신녀조차 움찔했다·
태연한 건 풍제와 당명뿐·
– 명아 우리도 놀란 척할 걸 그랬나?
– 형님 이미 늦었습니다·
둘은 자주 봐온 모습이라 별 감흥이 없었는데 다른 이들의 반응을 보자니 조금 흠칫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형님은 놀라지 않아도 됩니다·
– 왜?
– 마교 교주니까요·
– 아하· 그럼 넌?
– 아시잖습니까· 저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천당가주입니다만·
– 후후후·
그땐 이미 검선과 검존이 달려간 상태·
“대공자 이 사람은 누군가? 파악한 사람 외에 또 다른 이가 있었던 것인가?”
“어찌하여 괴물을 잡아둔 것인가? 소향객은 어디로 가고?”
환혼에 대해 궁금함을 풀게 되리라 기대했던 검선과 검존은 뜻밖의 상황에 질문을 화살처럼 쏟아냈다·
후공이 크흠 헛기침을 하고는 답했다·
“조금 구겨졌지만··· 이 사람이 소향객입니다·”
“뭐? 이 괴물이?”
“조금? 이게 조금?”
검존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풍제와 당명은 대형의 말에 백번 공감했다·
이 정도면 매우 조금이다·
쉽게 펴진다·
많이 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