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8화· 마교 폭주·
천포개의 흐느낌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고요한 밤·
한줄기 바람이 불어와 천포개를 스쳐 지나갔다· 늦봄의 따스한 훈풍은 마치 위로하듯 잠시 머물다 담을 넘어 사라졌다·
악인곡은 침묵으로 위로했다·
시간이 흐르고 또 흘렀다·
그 가운데 눈물이 쌓여가는 가운데 천포개는 하나씩 이해했다·
강호를 살아온 세월이 길다·
이 침묵이 위로라는 것을 모를 수 없다·
짐작이 맞았다·
이들은 자신을 구한 이들·
그리고 호운개와 설취개는 죽었다·
어떻게 죽어간 걸까 누구에게 죽음을 맞이한 건가·
아마도 최악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개방 방주·
들려온 말 중에 ‘환혼’이 있었다·
호운개는 제대로 본 것이 틀림없으리라·
방주가 말끔해진 이유는 환혼 때문· 분명 방주이지만 이미 다른 사람·
그들의 정체는 회영부·
악인곡은 회영부를 부서뜨리려 한다·
긴 울음의 끝·
설명이 없어도 설명을 들은 것 같고 듣지 않았음에도 들은 것과 같아진 천포개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방주는 환혼되었겠군요·”
맞은편에 앉아 있는 악인곡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시 침묵·
그래서 확답이나 다름없었다·
천포개는 긴 한숨만 내쉬었다·
더 이상 놀랄 일은 아니다· 이미 짐작하고 있던 바를 확인한 것뿐·
방주는 어디에 있을까·
어떤 몸이 되었을까·
고통을 받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 환혼된 것만으로 이미 고통일 것이다·
그렇게 여러 의문이 떠올랐다· 물어볼까 하다 천포개는 내심 고개를 저었다· 회영부의 쇄후존이란 자와 나눈 대화를 듣지 않았는가· 이들도 겨우 회영부의 실마리를 붙잡고 나아가는 듯하다·
하지만 이건 물어야 했다·
반드시 듣고 싶었다·
“여러분들은 누구입니까?”
이 모습이 실체는 아닐 것이다·
역용· 대체 누굴까?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천포개는 강호의 명숙들 절세 고수들을 떠올려 보았다·
‘화산의 검선 무당의 검존 빙궁의 현음신녀 천일수사 원적자 초은상인 자부선생····’
강호에서 긴 세월 잊혀진 이들의 별호까지 생각해 보았다· 거기에 풍제와 암향야는 없었다· 결이 다른 것이다· 후공이 떠난 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고·
검선과 검존도 아닐 것이다·
모습이 바뀐다고 성향까지 바뀔 리가·
그럼 대체 누구인가?
그렇게 천포개가 악인곡의 수장을 바라볼 때
그 미소는 이내 짙어졌고 변모했다·
끔찍한 미소로 드러나면서
“악인곡의 화공신타·”
“흡혈악·”
“독응마군·”
그 뒤를 검선과 검존이 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기억해 둬· 난 소악녀·”
현이와 현음이 이어갔다·
풍제와 당명은 그저 바라볼 뿐·
천포개를 믿지 못해서는 아니었다·
어느 때 어느 감정에 치우쳐 있을 땐 알고 있는 것만으로 독이 될 수 있기 때문·
제대로 된 대답을 듣지 못한 천포개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도 잠시
“나 또한 힘이 되고 싶소이다· 무엇이든 청하면 도움을 드리리다·”
“천포개·”
부른 건 우측에 앉은 풍제였다·
천포개가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쉬어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천포개의 고개가 떨어졌다·
수혈을 점혈당한 천포개를 부근에 눕힌 다음 풍제는 공령존을 향해 나아갔다·
“으으으··· 으어어어····”
구겨져 작은 항아리 크기로 뭉쳐져 겨우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공령존을 들어 올렸다· 눈이 어디에 있는 건가· 잠시 돌려가며 눈을 찾은 풍제가 섭혼을 시전했다·
“들어라·”
원래의 경지에선 섭혼의 영향력 밖에 있던 공령존이었지만 교릉에 깊이 침몰당한 지금은 무기력하게 섭혼에 빠져들었다·
“말···씀···하십시오·”
감숙성 너머 북단 모처·
세 사람이 둘러앉았다·
“악인곡이라 놀랍군· 화공신타가 그리 강한 자였나?”
“흑야존이 죽었다면 풍제와 암향야가 죽은 것도 이해 못 할 건 없다·”
“쇄후존 악인곡이 일곱이라고?”
“일곱· 하나를 더 감지했지만 동행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다·”
“왜지?”
“멀리서 다가오고 있었고 경지가 낮았으니·”
“일곱이라고 봐야겠군·”
“한데··· 이상하지 않나? 악인곡은 너무 갑작스러군· 만약 악인곡이 아니라 풍제와 그 일행이 역용한 것이라면? 그 가능성도 무시할 순 없다·”
“터무니없는 소리·”
“이유는?”
“나는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그대들도 보았다면 그런 생각은 할 수 없었을 터·”
“하긴 풍제의 동행은 여섯· 공동파에 나타난 풍제의 일행은 그러했지·”
“그래도 확인은 필요해·”
“물론·”
“일존은 아직인가?”
“아직·”
“단혼각의 일이 길어지는군·”
“서두를 건 없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일존을 기다린다· 그때쯤 귀운종으로 떠난 은령존도 돌아오면 좋겠군·”
회영오존의 말을 끝으로 시안조가 날아올랐다·
그 뒤를 쇄후존과 추인자가 따랐다·
거대한 독수리가 뒤따랐다·
청해성·
곤륜 부근·
푸르고 검은 물결이 빠르게 이동했다·
강을 넘고 산을 넘었다·
물결이 멈춰섰을 땐 백여 명의 인영으로 산봉우리에 서 있었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곳은 곤륜·
크르르르릉·
푸른 늑대가 곤륜을 바라보며 으르렁거리다 이내 포효했다·
청랑의 포효가 산을 뒤덮으니 산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고 산을 오르던 이들과 산자락 부근에 살고 있는 이들이 두려움에 몸을 움츠렸다·
“소주 곤륜은 이미 비어 있습니다·”
광명우사 냉선의 말에 도운연이 곤륜을 향해 손을 뻗었다·
“찾아라! 반드시 찾아 곤륜 장문인을 내 앞에 무릎 꿇려라!”
그 명에 소호탈마대의 신형이 쏘아져갔다·
“캬캬캬캬!”
“크크크!”
기괴한 웃음소리가 순식간에 멀어졌고 그 웃음소리보다 빠르게 몽허와 음희 그리고 청랑이 뛰쳐나갔다·
곤륜에 파고든 소호탈마대가 이내 사방으로 흩어졌다· 멀리 가진 못했을 것이다· 분명 부근에 있을 터· 그렇게 생각하며 가공한 속도로 쏘아져 갔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도운연의 두 눈은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기에
– 소주 잘하고 계십니다·
광명우사 냉선이 전음으로 칭찬했다·
– 닥쳐라!
도운연은 차갑게 말한 후 더욱 더 흉포하게 눈을 빛냈다· 지금은 그래야 할 때인 것이다· 칭찬에 헤벌쭉 웃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교의 섬서지부에서 전서가 날아온 터·
섬서지부장 마환수가 보내온 서신은 길었고 자세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
마교 교주의 죽음·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없다·
그때로부터 혈종마군이 되신 터·
악인곡의 일원이 되신 터·
상대는 회영부· 환혼을 다루는 이라는 내용도 마환수의 서신에는 기록되어 있었다·
회영부는 얼마나 강한 자들인가·
또 얼마나 잔혹한 자들이기에 아버지와 숙부 대공자까지 악인이 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직접 마주하지 않았음에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니 거기에 천마신교는 장단을 맞추어야 한다·
분노로 미쳐 날뛰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악인곡을 찾아 나서고 악인곡의 흔적을 알고 있을 만한 이들을 찾아내 심문하고· 그렇게 폭주하는 모습을 강호에 보일 필요가 있었다·
이미 광명좌사는 사천으로 향했다·
대규모 병력이 함께였다·
“찬살마!”
“찬살마가 명을 기다립니다!”
“너는 남쪽이다· 곤륜 장문인을 찾아라· 곤륜이 사라진 이유를 밝혀내라· 악인곡의 흔적을 찾아라!”
찬살마의 모습이 흐릿해졌다 싶을 땐 어느샌가 다른 산야를 딛고 있었다·
도운연의 명이 이어졌다·
“독마녀 너는 서쪽이다!”
“냉선 가자!”
독마녀가 떠난 뒤 도운연도 신형을 날렸다·
광명우사 냉선이 그 곁을 따르고 잠시 후에는 푸른 연기가 일렁이는가 싶더니 어느샌가 돌아온 청랑이 함께 질주했다·
“악인곡을 찾는다! 화공신타와 혈종마군을 찾는다! 천마신교는 악인곡을 세상에서 멸한다!”
도운연의 외침이 산야에 길게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 외침을 들은 광명우사 냉선은
‘좋구나 좋아!’
마음 속으로 박수갈채를 보냈다·
대공자를 만난 후로 천공단을 만난 후로 소주의 지력이 급상승한 느낌이었기에 냉선은 기쁨을 감추기가 힘들었다·
마교의 폭주에 어딘가는 부서지고 어딘가는 무너졌다·
건물이 허물어지고 주저앉음에도 좀처럼 사람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저 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부서지는 소리 그리고 분노에 찬 목소리·
“곤륜을 찾아라!”
“쥐새끼같이 숨지 말고 나와라!”
“악인곡과 결탁한 놈들은 하나라도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청해성이 요란해졌고 사천에서도 울려퍼졌다·
사천성의 경우는 사천당가까지 마교에 합류해 천지 사방을 들쑤시니 거의 벌집 수준이었다·
이미 악인곡에 관한 소문은 사천에도 청해성에도 널리 퍼져가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원한 적이 없음에도 머리에 악인곡이 각인되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청해성 남쪽 곤륜의 속가에 머물고 있던 곤륜 장문인 제금의 귀에도 들어왔다·
“장문인 마교가 곤륜을 찾고 있습니다· 우린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제광의 말에 장문인 제금이 눈을 가늘게 뜨고 턱을 문질렀다·
“제광 나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구나·”
“장문 사형 이게 지금 이해를 하고 말고의 사안입니까? 어찌 장문인이 되어 이리도 한가한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제광은 안색이 붉게 달아오르기까지 해 안 그래도 큰 머리가 더 커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금은 태평했다·
“넌 강호가 이리 급박하게 돌아간 걸 본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아 있습니다·”
제광이 고개를 저었다가 다시 끄덕였다·
“분명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후공과 그 패거리들이 강호를 천지사방 날뛸 때가 아닙니까·”
“그래서 하는 소리다·”
“침묵하던 그 패거리들이 이미 다시금 활보하고 있고 그 패거리의 요청에 따라 우리 곤륜은 지금 곤륜산을 떠나기까지 하지 않았느냐· 다른 문파도 같은 상황일 테고·”
제광이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사형 그 풍제와 암향야가 악인곡에 의해 죽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온 세상이 다 알고 있습니다· 장문 사형은 왜 다 듣고 들리지 않은 척하는지 이 사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과연 죽었을까? 그 풍제와 암향야가?”
“장문 사형 그 풍제와 그 암향야라니요· 후공조차 죽었다는 것을 잊었습니까?”
“뭐 그렇긴 하지· 하지만 지금은 대공자가 함께 있지 않느냐·”
“정신 차리십시오! 대공자는 신이 아닙니다!”
제광이 꽥 소리쳤다·
“그렇긴 해도 천재인 건 틀림없지·”
“하아···· 이렇게 여유를 부리다 마교에서 들이닥치기라고 하면 어찌 감당하시려 하십니까·”
“후후 설마 들이닥치려고·”
장문인 제금이 여유를 부리며 수염을 쓰다듬을 때였다·
“어이!”
갑자기 들려온 낯선 목소리에 제금과 제광이 놀라 소리난 곳을 바라봤다·
창가를 딛고 선 찬살마가 히죽 웃었다·
“너희 말이야·”
“내가 곤륜 장문인을 찾고 있는데 혹시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으려나?”
“모른다고?”
“그래 혹시 알게 되면 본교에 연락해· 그땐 찬란한 암살자가 곤륜 장문인을 찾아가게 될 테니· 나 간다!”
잠깐 눈을 깜박였을 땐 이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동안 창가를 바라보았다·
“후!”
“후우우!”
너무 놀라 숨을 참고 있던 제금과 제광이 동시에 숨을 뱉어냈다·
“사제야 아까 네가 무슨 말을 했지? 누가 죽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마교에서 곤륜을 찾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할 말이 없어진 제광은 그저 큰 머리를 긁적이기만 했다·
그렇게 마교가 폭주하는 청해성의 풍경을
시안조가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