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화· 화극이 불태우는 건·
정오를 막 넘긴 시각의 반양장·
뜨락을 걷고 있던 검선이 주변을 둘러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이었다·
한데 석양 아래 있었다·
나는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일까· 그래서 정신을 차려보니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 어느샌가 해 질 무렵이 된 것인가?
하지만 검선은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주위의 변화는 놀라웠다·
엄밀히는 석양과는 달랐다·
석양보다는 더 붉었고 태양빛에서 기인한 것도 아니었다·
‘땅도····’
땅도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색의 농도가 같다· 손을 들어 올려 바라봤다· 반투명한 붉은빛 속에 손도 불그스름하게 보였다·
‘회영부인가?’
그러한 검선의 생각은 검존과 현음도 같았던 모양·
“흡혈악 네놈 짓이냐!”
“흡혈악 놈들이 온 거야?”
독응마군과 소악녀의 모습으로 튀어나왔다·
검선은 두 사람에게 시선을 던졌다가 이내 뒤이어 나오는 풍제와 암향야를 바라봤다·
“덥군·”
풍제가 태평하게 중얼거렸다·
그건 암향야도 마찬가지·
“찜통이 따로 없습니다· 놈들은 우릴 아주 구워버릴 생각인가 봅니다·”
놈들이라 칭했지만 태평한 말투·
그 태평함이 증명했다·
회영부에서 온 건 아니라고·
회영부에서 온 것이라면 풍제는 태연히 덥다는 말 따위를 늘어놓지 않았을 것이다·
풍제의 염혼들은 멀리 사방으로 흩어져 경계하고 있고 염혼이 보는 건 풍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럼 대체 이건 무슨 현상이지?”
“이제 하늘이 무너지는 거냐?”
“그보다 화공신타는?”
뒤이어 현이신녀까지 나왔는데 대공자만 보이지 않았다·
“신타 뭐하고 있냐? 세상이 온통 빨간색이라고!”
“곡주 처자는 거야? 지금 잠이 와?”
“시발 어서 안 튀어나오냐!”
“더워 죽겠다고오오오오!”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 정도는 아니다·
가장 더운 여름날 정도·
애초에 더 더워도 상관없었다·
화경에 이르기만 해도 일상의 추위와 더위는 곤란함을 주지 못한다· 아무것도 아니다· 하물며 현경의 고수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냥 지금은 악인곡·
못된 놈들은 언제나 짜증을 내는 법이라 욕을 하며 채근했다·
그럼에도 화공신타는 나오지 않았다·
‘이것이 화극의 극의····’
‘대형이 화극을 이루었구나·’
대형으로부터 모든 이야기를 들은 두 사람·
풍제와 당명은 이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기뻐했고 다른 이들은 여전히 대공자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대공자가 펼쳐내고 있는 공능인가?’
‘대공자가 뭔가를··· 성취했구나· 한데 왜···?’
‘마음이 왜 이렇지?’
‘생각이 멋대로····’
더워서일까?
이 붉은빛 때문인가?
마음을 통제하기 힘들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고요가 깨지다니·
폭풍우가 치는 바다 위 거대한 파도가 무너지듯 덮쳐온다 해도 평정심은 해칠 수 없거늘·
한데 흔들린다·
진정하기 힘들었다·
맴맴맴~~ 맴맴멤~~ 매에에에에에에엠!
매미가 울었다·
한 여름인 줄 알고 나갈 때가 된 줄 알고 칠 년 동안이나 땅속에 머물러 있던 매미들이 튀어나와 격렬하게 울기 시작했다·
“나만 언짢은 거냐?”
“매미 새끼들아 조용히 안 하냐!”
“멍청한 놈들 정신 안 차리냐!”
“배고프다· 뭐라도 먹어야겠어! 그래 안 그래?”
“나도 찬성!”
괜히 매미들에게 신경질을 부렸고 또 웃기도 했다· 방금까지 식욕이 없었는데 갑자기 배가 고파지기도 했다·
그건 색관조와 금섬도 같았다·
두 영물은 멀리서 반양장을 보았고 그 일대가 붉은빛에 뒤덮여 있는 것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윽?]
[이게 뭔 일이야?]
덜컥 가슴이 내려앉아 붉은빛 안으로 들어갔다가 금섬이 눈매를 치켜올렸다·
[뭐? 배가 고프다고? 주인님 걱정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 못된 두꺼비 새끼야!]
[그으으윽?]
색관조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아가며 본 것이다· 악인곡 일당이 보였고 가까워지면서 주인님과 이어진 향선이 다시 연결되었기에 안심했다·
그런 다음에서야 금섬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진짜 배가 고프네· 흙이라도 먹고 싶을 정도야·]
[그러게· 알 수 없네· 왜 이렇게 신경질이 나지? 까르르르르르르!]
짜증을 내며 웃기도 했다·
[일단 뭐라도 잡아먹자·]
바로 그거야 라고 말하며 금섬이 앞발 하나를 쭉 뻗어올렸다·
그렇게 하강하던 한순간
붉은빛이 말끔히 사라졌다·
거짓말처럼 소실되었을 때 금섬이 머리를 긁적였다·
[어라 배가 안 고파?]
붉은빛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식욕이 뚝 사라졌다·
동시에 마음도 안정을 찾았다·
벌레를 잡으려던 계획은 취소·
바로 반양장으로 날아가 주인님 앞에 내려앉았다·
[주군 저희가 돌아왔답니다!]
“천화서고는 난리가 났겠지? 분명 울음바다가 되었겠지?”
[까르르르르르르르! 네 아주 난리가 났어요· 저희 그 바다에서 헤엄치다 왔잖아요·]
“후후 꼴 좋군·”
[까르르르르르르르!]
색관조가 방 안을 정신없이 날고 금섬이 앞으로 돌아갔다 뒤로 돌아갔다 하면서 방방 뛰었다·
[근데 방금 붉은 빛 보셨을까요? 희한하게도 빛에 닿자마자 막 신경질이 나고 배가 고파지는 것 있죠? 대체 어떤 미친 새끼가 붉은빛을 만들었을까요?]
“그거··· 나다·”
[네?]
“나였다고!”
[····]
축객령에 두 영물이 창밖으로 날아갔다·
[까르르르르르 주군은 엉뚱하셔· 심심하셨던 걸까? 까르르르르르!]
감숙성 북쪽 너머 모처·
얼굴이 없는 자가 있었다·
다른 건 있었다· 머리카락도 목도· 다른 모든 건 있었다· 그러니 실제로는 얼굴도 있을 것이다·
“탄외존이 늦는군·”
말도 했기에 입도 있을 테고·
하지만 볼 수는 없었다·
본 적도 없었다·
지금 얼굴 없는 자와 함께 자리하고 있었지만 회영삼존과 회영육존은 이전에도 얼굴을 보지 못했다·
회영이존·
그의 얼굴은 언제나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구름이 흐르는 것 같기도 했다· 안광을 끌어올려 바라봐도 그 안쪽을 볼 수 없었다·
그것이 불만일 순 없다·
얼굴 따위·
회영십존 중 그 누구도 이존의 얼굴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더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날카로운 검미의 청년·
회영삼존이었다·
회영육존 쇄후존도 바로 동의했다·
“지금은 머뭇거릴 때가 아닌 것 같군· 악인곡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때도 아니고· 날뛰는 건 마교와 사천당가만이 아니다· 온 강호가 분노에 차 악인곡을 찾고 있다·”
그는 직접 본 터·
마교 소교주를 보았고 각 문파와 세가의 분노도 보았다· 모두가 악인곡을 찾고 있었다· 떠들썩한 천공단까지 지금에 이르러서는 어디에서도 종적을 찾을 수 없는 상황·
그러니 더 이상 확인할 건 없다·
신속히 악인곡을 처리하는 것이 급선무·
회영이존이 웃었다· 입은 볼 수 없었지만 입이 있어야 할 위치의 안개가 호선을 그리며 짙어졌기에 그건 분명 웃음이었다·
“탄외존을 기다리면 손쉬워지지· 한 방울의 땀으로 될 일을 굳이 더 많은 땀을 흘려가며 해결할 필요는 없다·”
“이존 그대는 악인곡에 대해 꽤나 후한 평가를 하는군·”
“그럴 리가·”
회영이존이 고개를 젓고는 말을 이었다·
“천년의 약속이 다가온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이들이 악인곡인가?”
“아니지·”
삼존이 답하고 육존은 침묵을 지켰다·
육존은 침묵 속에서 ‘단혼각’을 떠올렸다·
회영부의 가시·
손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한없이 신경을 자극하는 이들·
악인곡은 단혼각에 비하면 부차적인 문제다·
지금도 회영일존은 단혼각을 쫓고 있기도 하고·
그러니 악인곡을 섬멸함에 있어 조금의 전력 손실도 입어선 안 된다는 의미였다·
그때 다시 이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는 일· 탄외존의 말대로 은령존이 죽었다면 탄외존이 돌아오는 건 기약이 없을지도·”
은령존과 탄외존은 쌍둥이·
창백한 혈색이 되어 탄외존은 은령존을 찾아 나섰다·
설명할 수 없는 감각으로 죽음을 직감했고 그 직감이 사실이라면 탄외존의 복귀는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기다리는 건 오늘까지· 내일은 반양장으로 간다· 응?”
선언하듯 말하던 이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얼굴을 뒤덮은 안개가 출렁·
보았다 싶을 때는 이미 이존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대로 천장을 뚫고 하늘 높이 날아오른 이존이 손을 뻗었다·
[끼이이이이익!]
목이 틀어잡힌 새가 발버둥쳤다·
노란 눈동자였고 순간 하얀 눈동자가 되기도 했다· 하얗게 물든 눈동자가 잠시 머물렀다·
시안조·
운용하는 이와 연결되어 있다·
하얀 눈동자가 될 때면 운용하는 이는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
뚜득·
이존이 손을 쥔 순간 시안조의 머리가 떨어져 나갔다·
‘가소롭구나· 단혼각·’
얼굴을 뒤덮은 하얀 안개가 천천히 흘러 비릿한 웃음을 만들어냈다·
회영부와 단혼각은 닮은꼴·
회영부의 또 다른 물결·
그들 단혼각도 시안조를 운용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갈라져 나간 물결이 큰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는 일·
단혼·
환혼의 길을 끊는다고?
가소로울 뿐이다·
회영이존의 얼굴을 가린 안개가 마구 출렁거렸다·
회영이존이 웃었다·
회영사존은 돌아가지 않았다·
탄외존이 포기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없다· 없다· 없다· 없다·
어디에서도 아우를 찾을 수 없었기에 돌아가야 했지만 마음의 방향은 다른 쪽으로 향했다·
아우를 죽일 수 있는 이들·
어쩌면 그런 능력을 갖춘 자들·
악인곡!
어느 순간부터 악인곡이 떠올랐다·
한번 떠오르자 계속 떠올랐다· 처음에는 가능성이었는데 계속 생각하자 어느샌가 확신이 되었다·
그놈들이다· 틀림없다·
근거를 말하라면 말할 수 없었다·
이건 그저 느낌이었다·
아우의 죽음을 그저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악인곡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떨쳐낼 수 없었다·
그러니 악인곡을 죽인다·
죽이기 전 확인한다·
아우는 어찌 된 것이냐고·
그가 나아가는 길·
나아가는 일대에 모두가 떨었다·
우러나오는 그 공포를 탄외존이 흡입했다·
누군가는 허무함에 빠졌다·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내력이 약한 이들은 두려움에 움츠러들었지만 강한 내공을 지닌 이들은 더 깊은 실의와 허무감에 허우적거리며 헤어날 수 없었다·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른다·
삶을 끝내자· 그렇게 죽게 된다·
하지만 현경에 이른 고수라면 다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없다·
그렇다 해도 영향은 크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승리한들 패배한들····
이렇게 떠오르는 마음과도 싸워야 한다·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
어느샌가 저 멀리 반양장·
반양장을 향해 탄외존의 기운이 거대한 파도처럼 뒤덮어갔다·
‘왔구나· 탄외존·’
후공이 알아차렸다·
동시에 화극의 극의가 펼쳐졌다·
오행의 화(火)로 가득한 세상·
외형을 태우는 불길이 아닌 마음을 불태우는 불길에 악인곡이 타올랐다·
“젠장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거냐고!”
“으하하하하하하하하!”
“짜증 나· 신경질 나!”
“배가 고프다고오오오오!”
누구는 화냈고 누구는 웃었다·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오행의 극의는 만상이 아닌 마음을 불태우니
허무함?
그저 열정(熱情)이 타오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