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3화· 서로 웃다·
여인의 이름은 연교교·
나이는 19세·
시녀는 아니다·
단혼각 칠 명주 중 하나의 딸·
단혼각에는 원래 팔호법과 칠 장로 십육 명주 삽십이 대주가 있었는데 모두 그대로인 건 아니었다· 호법은 셋이 남았고 명주는 일곱이 남았다· 장로들은 모두 죽었다·
그중 연교교는 오 명주(冥主)의 딸·
그녀는 그렇게 자신을 소개했고 그렇기에 후공은 그녀가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교교는 갸웃·
질문이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탓에 자신도 모르게 유도되었고 떠올렸다·
‘환혼이 또 있었냐고? 없었는데?’
생각해보려는 듯 교교는 미간을 찡그렸다·
없었던 일이 오래 생각한다고 떠오를 리 만무했다·
그 모습이 후공에겐 대답이 되었다·
‘없구나·’
생각지도 못한 질문은 암습과 같다·
표정과 반응을 통해 대답을 하게 된다·
어떤 대답보다 명확했기에 의문이 따라왔다·
그럼 그 두 놈은 누구지?
분명 정기신의 흔들림을 보았으니 최근에 환혼된 것이라고 봐야 했다·
그때 연교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자님 죄송합니다· 그 질문에 대답할 권한이 제게 없습니다· 부디 너그럽게 이해해주세요·”
“허허···· 생각 없이 던져본 말이었습니다· 제가 괜한 말로 소저를 곤란하게 했군요·”
교교가 쩔쩔매는 모습이 귀여워 후공은 미소를 머금었다· 송화를 보는 것 같았고 송화가 보고 싶어졌다·
또 묘빙빙과 닮았는데 빙빙은 빙빙대로 귀엽고 교교는 교교 나름의 귀여움이 있었다·
단혼각의 모두를 본 건 아니었지만
이곳은 사람 냄새가 난다·
단혼각주를 만나지 않았지만 교교를 보고 있자니 후공은 단혼각주를 얼핏 본 것만 같았다·
“연 소저 제가 사과의 의미로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선물요?”
후공은 손바닥을 내밀었다·
“아무것도 없는데요?”
“보이지 않습니까?”
“네?”
연교교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눈도 한차례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래도 손바닥 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손바닥에서 푸른 광휘가 꿈틀대며 일어났다· 새싹이 자라나는 것처럼 보였다· 이내 꽃봉우리가 생기더니 꽃봉우리가 터지며 꽃이 피어났다·
빛의 꽃이자 붉은 세 송이의 꽃이었다·
“와아아아아!”
연교교가 탄성을 내질렀다·
꽃도 꽃인데 향기가 방 안 가득 진동했기에 그녀는 방 안을 둘러보며 숨을 크게 들이쉬면서 향기에 취했다·
“대공자님!”
“제 선물이 마음에 드십니까?”
“너무나도요! 최고예요! 대공자님 그러니까 사실 천화서고는 꽃집이었던 걸까요?”
후공이 웃었고 연교교도 웃음을 터뜨렸다·
“선물을 드렸으니 질문을 더 드려보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무엇이든지요!”
“소저의 취미가?”
“요리요·”
“그럼 특기는?”
“요리요!”
“앞으로의 꿈은?”
“큰 반점에서 숙수가 되고 싶어요!”
“단혼각주께선 어디에 계십니까?”
“각주님께선 호수····”
거기까지 말하다 교교가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러다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하마터면 말할 뻔했어요· 대공자님은 짓궂으시군요·”
후공은 미소를 지었다·
말할 뻔한 것이 아니라 말했다·
호수의 동굴로 들어서기 전 느꼈던 기운은 단혼각주였던 모양·
그녀는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걸까?
그 생각은 접어두고 후공도 따라서 한숨을 내쉬었다·
“소저의 철두철미함은 정말이지 당해낼 수 없군요· 마음이 답답해질 정도입니다· 저는 혼자 있고 싶군요·”
“저기 대공자님···· 화나셨을까요?”
연교교가 시무룩하니 물러났다·
후공은 그녀가 가져온 찻잔을 들어올리며 창 너머를 바라봤다· 아름다운 꽃길 이십여 채의 전각· 그리고 어린아이들도 볼 수 있었다·
평온하고 평범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단혼각· 설산에 둘러싸인 호수 아래·
결코 평범할 수 없는 공간이다·
– 놀랍지 않느냐·
– 놀랍습니다·
–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말이야·
– 영웅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후공이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당명이 서 있었다·
– 두 놈이 환혼으로 잠입했다· 분명 회영부일 테지·
후공은 둘의 용모를 설명했다·
– 전하겠습니다·
당명의 대답은 명쾌했다·
의심은 없다·
대형의 말은 진리·
이 시대의 천하제일인은 특별하다·
당명이 물러난 후 후공은 색관조와의 연계를 시도했다·
즉시 답이 돌아왔다·
‘주인님!’
색관조는 금섬과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후공은 색관조의 시야를 통해 날아드는 눈덩이를 금섬이 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진짜 눈싸움을 하고 있었네?’
‘까르르르르 이제 막 시작했어요·’
‘단혼각이 회영부에 노출되었다· 높이 날아라· 주변을 살펴보자·’
‘넵!’
색관조가 금섬에게로 날아갔다·
금섬이 폴짝 뛰어 등에 탄 순간 색관조가 수직으로 솟구쳤다·
구름을 헤치고 나아갔다·
색관조가 안력을 끌어올리니 시야가 구름을 관통했다·
그렇게 날았다· 눈 덮인 산을 보았다·
‘없다·’
그 너머까지 날았다·
다시 날았다·
더 멀리· 그럼에도·
색관조를 낮게 날게 했다·
색관조의 깃털색은 파란색과 하얀색이 조화를 이루면서도 시시각각 변하며 하늘색과 동화했다·
‘주인님 없는데요?’
‘없네?’
‘눈에 파묻혀 있는 걸까요?’
‘그럴지도· 조금 더 살펴보자·’
소득은 없었다·
색관조나 금섬이나 기운을 감지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에서 후공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갸웃해졌다·
의문이 절로 따라왔다·
회영부로서는 단혼각을 끝낼 기회였다·
또 어렵게 얻은 기회이기도 했을 것이다·
한데 왜 전력을 기울이지 않는가?
답은 두 가지가 떠올랐다·
첫째는 여력이 없는 경우·
두 번째는 둘만으로도 충분한 경우·
두 번째라면 대단한 자신감이다·
자신감이 아니라면 모종의 방법이 있다는 의미·
‘죽일까?’
먼저 죽이는 것이 최선이긴 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사전 작업이 필수적으로 따라와야 한다·
단혼각이 인지하고 있어야만 한다·
단혼각 입장에선 그저 동료를 잃은 것이 되는 것이다·
죽인 다음에는 환혼을 증명할 길이 없다·
선제 공격도 명분이 없다·
같은 결과다· 환혼을 증명할 수 없다·
환혼 후 기억은 공유된다·
억울해하며 똑같이 행세한다면 밝혀내는 건 불가능·
제압한 다음 고문을 가한다면 실토하게 할 수도 있지만 단혼각이 고문을 가하는 걸 가만히 보고 있을 리 만무하다·
‘크흠 곤란하구만·’
그런 후공의 생각은 일행에게 빠르게 전해졌다·
– 곤란하구만·
– 단혼각은 결코 믿지 않을 테지요·
검선과 검존이 전음을 교환했고
– 사저 단혼각주는 대체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 걸까요?
– 물론 중요한 일이겠지만 상황이 묘해졌구나·
현음과 현이도 답답해했다·
반면 풍제와 당명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 만나면 된다· 그땐 알게 된다·
– 네 놈들이 먼저 도착하고도 속행하지 않았으니 기회가 있을 겁니다·
더 어려운 난관도 돌파해왔다·
– 확인 후 실행하지·
– 운이 좋군· 악인곡이 풍제의 무리였으니 이것이 일석이조가 아니고 무엇인가·
– 후후후·
양 호법과 목 호법도 전음을 나누었다·
실상은 회영부의 두 암주(暗主)·
흑암주와 백암주·
잠입은 둘·
외부 조력자는 없었다·
둘만으로도 충분히 끝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혼각을 일거에 날려버릴 방도를 지니고 있었다·
원래는 어제 도착했을 때 즉시 끝내려 했다·
하지만 섬악이 악인곡을 회유하려 떠났다는 걸 들은 다음에는 기다렸다·
섬악도 죽여야 했고 만약 악인곡이 함께 온다면 그들도 죽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한데 경사가 겹쳤다·
악인곡이 실상 풍제의 무리라니·
그동안 속았다는 분노보다 희열이 들끓었다·
박힌 가시를 두 개나 뽑아내는 셈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인해야 한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풍제의 무리가 살아있으니 그도 살아있을지 모른다·
‘그’를 확인하려다 회영십존이 거의 전멸하지 않았던가·
죽었겠지?
그 대답을 듣기 위해서 둘은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마주했다·
삼 호법 섬악과 함께 들어서 인사를 나누었다·
“허허 강호의 명숙들과 강호의 신성을 이렇게 만나게 되는구려·”
“섬 호법을 통해 이야기는 들었소이다· 꽤 거칠게 다루었습디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감탄하고 또 움츠러들기도 했다오· 물론 안심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가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던지· 허허허허····”
흑암주와 백암주가 비수를 감추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건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허허 솔직히 단혼각의 초대를 받을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지요· 너무 미워 마시구려· 환혼은 도통 구분해낼 수 없지 않습니까·”
검선도 너털거리며 응해 주었다·
뒤이어 검존은 퉁명스러움을 과장했다·
“본 도는 조금 섭섭하기도 하외다·”
“무엇이 말입니까?”
“단혼각주께선 우리를 손님으로 여기지 않는 것처럼 보이니 드리는 말씀이외다·”
그 말에는 섬악이 나섰다·
“허허 어디 사정이 없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그 말씀을 드리려 온 것도 있습니다· 각주께선 현재 이곳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멀리 계시진 않습니다·”
“수행 중이십니까?”
“그건 아니라오· 각주께선 호수 깊이 내려가 계십니다· 빙석을 취하려 가신 것이 이틀 전이니 곧 올라오실 겁니다·”
“빙석이라면?”
“허허···· 빙석에 관해선 각주께 직접 들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야기는 이어졌다·
물은 건 주로 흑암주와 백암주였다·
악인곡이 된 시점을 물었고 회영십존을 제거한 경위에 대해서 묻기도 했다·
대답은 풍제가 하기도 하고 당명이 하기도 했다·
어차피 죽을 놈들·
결코 살아서는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할 놈들이었기에 거짓없이 들려주었다·
“허어···· 놀랍구려·”
“대공자 흑야존을 상대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그를 어찌 상대한 것인가?”
“흑야존의 방심이 컸고 운도 좋았습니다·”
후공도 미소를 지으며 답해 주었다·
그 한편으로 의문도 깊어졌다·
다시금 둘의 정기신의 흔들림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직 결속이 완전하지 않다·
모자란 부분이 있다·
그건 곧 온전히 무위를 발휘할 수 없다는 의미였기에 다시금 무슨 자신감인지 모를 일·
“한데 이 노부 궁금한 것이 있소이다·”
말한 건 백암주·
그의 시선은 풍제에게로 옮겨졌다·
“풍제 이 노부는 진실을 듣고 싶구려·”
“무엇이든· 단혼각에 내가 숨길 이유 같은 건 없으니·”
백암주가 풍제의 눈을 깊이 응시했다·
흑암주는 암향야를 살폈다·
“어딘가에··· 후공은 살아있습니까? 돕고 있습니까?”
살아있다·
돕고 있지는 않다·
그저 앞장서 있을 뿐·
“대형은··· 없다· 어디에도·”
풍제의 눈동자는 깊어졌고 하염없이 가라앉았다·
당명의 눈동자도 마찬가지였다·
질문이 불쾌하다는 모습이 역력히 드러났기에
“··· 미 미안하외다·”
백암주가 사과했다·
하지만 마음은 달랐다·
– 그는 죽었군· 그는 죽었어·
– 후후 확인은 끝·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으며 서로 전음을 나눴다·
그들의 전음을 후공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