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1화· 조약돌의 약속·
회영부의 위치는 먼 서쪽·
신강성 북부 경계 너머 합밀·
그곳에서도 운부산·
산 전체가 진법이다·
산을 오르는 건 위험이 따른다·
산에 발을 딛고 있는 상황에선 무슨 일을 겪게 될지 예측하기 힘들다·
마치 천화서고와 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천화서고가 산 전체에 둘러놓은 진법은 살상진이 아니라는 점·
천화서고는 내부조차 대부분이 포획이요 분리였다·
영원한 어둠을 선사하는 영흑진도 시간 차를 두고 어둠이 짙어질 정도로 유한 성격을 띠고 있었다·
살상진을 구현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초식 동물 같은 사람들이라 모질게 군다고 군 것이 그 정도였다·
하지만 회영부가 같을 리가·
그러니 진입은 지하를 통해 나아간다·
후공이 그와 같은 뜻을 밝혔을 때
“대공자 여태 내 말을 듣지 않은 겐가?”
삼 호법 섬악이 반발했다·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쉰 섬악이 말을 이었다·
“산의 내부는 아홉 개의 층· 산의 내부 중턱부터 산 밑 초입 부분까지도 진법의 범위 안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나· 진법은 내력에 반응하고 일정 부분의 내력을 감지하면 발현하게 되네· 지하라고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지·”
“지하는 어느 곳이든 정교할 수 없습니다· 진법으로 방대한 지역을 방비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곳 단혼각의 호수도 그렇고 천화서고도 같습니다·”
이미 천화서고도 당한 적이 있었다·
육각망이 땅속을 휘젓고 다닌 탓에 진법의 일부가 훼손되어 천화서고는 악취에 시달려야 했다·
“대공자 천화서고를 무시하는 건 아니네만 회영부의 모든 진법의 묘용이 파괴적이라는 점에서는 천화서고와 비교할 수 없네· 차례차례 순차적으로 진법을 회피하거나 돌파해야 할 텐데 지하는 더 악조건이 될 것일세· 물론 그 부근에 큰 지진이 일어난다면 사정은 달라지겠지· 산을 몇 번이고 뒤흔들 정도의 지진이라면 말일세·”
“바로 그겁니다·”
“지진을 일으킨다고?”
섬악의 눈이 동그래졌다·
“섬 호법께서 산을 때려 뒤흔들면 됩니다·”
“때리다가 죽을 텐데?”
“땅속에서 때리는 건 어떻습니까?”
“내가 내력을 일으킨 순간 진법이 반응하면 죽게 될 텐데?”
“그럼 폭약을 써 보죠·”
“폭약? 대체 어느 정도의 위력이어야 하고 얼마만큼의 폭약량이어야 하는지 가늠은 하고 말하는 겐가?”
“어느 정도여야 합니까?”
“영뢰각의 신물인 만적탄(萬積彈)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물론 하나가 아니라 다섯 개는 있어야 할 테고 말이네·”
섬악의 말은 끝나가면서 힘을 잃었다·
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영뢰각을 알고 있는 탓이다·
영뢰각의 화력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건 영뢰각의 진천뢰· 하나만으로도 그 위력이 대단해 진천뢰를 구하는 것만도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했다·
하지만 영뢰각의 진정한 힘은
만적탄·
아는 사람은 알고 있다·
만적탄 하나가 진천뢰 일만 개의 위력·
또한 수백 겹의 적층으로 폭약을 압축했다 하여 만적탄이었다·
구할 수만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구할 수만 있다면····
“대공자 만적탄은 세상에 없다네· 영뢰각은 만적탄의 제조법을 실전한 지 오래네·”
자네도 모르는 게 있구만·
하긴 아직 경험이 많지는 않을 테니·
그렇게 섬악이 말을 맺었을 때
“만적탄 다섯 개면 되겠습니까?”
무슨 말인가 싶어 섬악이 갸웃할 때 후공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얻게 될 겁니다·”
색관조와 금섬은 밤을 지나쳤다·
아침을 맞이했다·
하늘의 공기는 시시각각 달라졌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다시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대기의 기온은 높아졌다·
산서성으로 진입하면서 검을 차고 있는 매서운 얼굴의 중년인이 산길을 걷고 있었기에 물었다·
[멈춰라·]
갑자기 들려온 중년 검수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 목소리를 들었는데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그가 벼락같이 검을 뽑아들었다·
“누구냐! 모습을 드러내라!”
[아이야 겁먹을 것 없다· 나는 영뢰각을 찾고 있다·]
“영뢰각?”
중년 검수의 미간은 더 깊이 패였다·
모습은 볼 수 없고 목소리도 기괴한 탓이었다· 또한 하늘에서 들려온 것 같다가 어느샌가 우측에서 들려왔고 마지막 말은 뒤쪽에서 들려온 것이다·
그렇기에 긴장과 동시에 절로 등줄기에 식은땀이 배어났다·
“누 누구십니까? 강호의 고인께서 어찌 저같은 하찮은 이를 겁박하시는지요?”
영뢰각은 핑계일 것이다·
산서 북서부에서 영뢰각을 모를 수 없다·
마치 산서 동서부에서 소요파가 어디냐고 묻는 격이었다·
그리고 종적조차 찾기 힘든 이런 고수가 영뢰각을 모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건 시비였고 그냥 하는 말이었다·
“제가 무언가 잘못한 적이 없으니 두려울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괜한 오해로 헛된 죽음을 맞이한다면 저의 억울함은 누구에게 하소연하겠습니까· 선배께서도 사람을 잘못 본 것이라면 괜한 악겁을 쌓는 것이 될 것입니다·”
[뭔 말이 그렇게 많아! 영뢰각이 어디냐고오오오!]
“정녕··· 영뢰각을 모르시는 겁니까?”
[모른다고오오오오오!]
[그으으으윽윽!]
우린 글자도 모른다고오오오!
금섬도 그렇게 한소리 냈지만 중년 검수는 더욱 오싹해졌을 뿐이었다· 그윽 이 소린 또 뭔가·
“그러니까··· 영뢰각의 위치는····”
[더 자세히!]
“자세히 말씀 드리자면····”
[고맙다아아아아!]
말이 끝났을 때 색관조와 금섬은 알려준 곳을 향해 날아갔다· 그럼에도 중년 검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이 진짜 고맙다는 뜻이었음을 이해한 건 일식경이나 지난 뒤였다·
짹짹· 짹짹·
차를 마시고 있던 영뢰각주가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허허···· 귀여운 새로구나·”
하얀 새가 창틀에 내려앉아 있는데 여길 봤다 저길 봤다 하는 모습이 귀엽기 짝이 없었다· 하얀 깃털은 학의 깃털인 양 정갈하니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좋은 일이 있으려나·”
시선을 거둬 차를 다시 한 모금 마실 때였다·
극극!
이번엔 갸웃했다가 영뢰각주는 웃음을 터뜨렸다·
어느샌가 하얀 새 곁에 청록색 두꺼비가 앉아 있는 것이다·
“하하 너흰 친구냐?”
새와 작은 두꺼비가 나란히 앉아 있으니 기이했고 서로 다투지도 않으니 둘이 잘 알고 있는 사이처럼 느껴졌다·
“두꺼비를 보면 복이 온다고 했는데 정녕 좋은 소식을 듣게 될 모양이다·”
[친구 맞아요·]
“푸후훅!”
찻잔을 끌어 입으로 가져갔던 영뢰각주가 뿜어버렸다·
“말을 한다고?”
[저만 해요· 두꺼비는 못해요·]
“허허 기이한 일이로고· 천화서고 대공자가 말하는 영롱한 새와 금빛 두꺼비를 데리고 다닌다고 들었는데 내게도 그런 기연이 찾아온 것인가·”
하얀 새이고 청록색 두꺼비지만 그럼 어떠한가·
천화서고 대공자의 영물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거둔다면 크게 기쁠 것 같았다·
[영롱이라면 이런 식일까요?]
색관조가 본연의 찬란한 깃털색을 드러냈다·
눈빛도 달라져 푸른 보석처럼 반짝였다·
금섬도 그땐 금빛을 발하였기에
“허억!”
영뢰각주의 입이 떡 벌어졌다·
“너희 너희는··· 천화서고 대공자의 영물이로구나· 그가··· 그가··· 살아 있었구나!”
이와 같은 새가 또 있을 리가·
이런 두꺼비가 있을 리가·
온 강호에 대공자가 죽었다는 소식이 파다했다·
검선과 검존도 풍제와 암향야도 죽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까르르르르르 주인님은 돌아가셨어요·]
[그윽 그윽 극!]
색관조와 금섬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주 죽었다고?”
[소리 좀 차단해 주세요·]
“어? 어·”
영뢰각주가 기막을 펼쳐 외부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했다· 대단치는 않아 완벽하진 않아도 주변에서 방의 소리를 듣는 건 무리였다·
[그냥 그렇게 알고 계세요· 까르르르르르!]
“맙소사· 살아 있구나· 그럼 너의 주인도 이제 오는 것이냐?”
[주인님은 오지 않아요· 멀리 계시거든요· 우린 심부름 왔답니다·]
“심부름?”
[만적탄 내놔요·]
둔기로 한 대 맞은 양 영뢰각주는 멍해졌다·
충격적인 상황이 이어지는데 어찌된 게 점점 강도가 세지고 있었다·
영뢰각주가 얼얼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만적탄이라니?”
[다섯 개·]
갈수록 가관·
영뢰각주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구나· 너의 주인이 만적탄을 어찌 알고 있고 어떤 위험에 처했는지 알 수 없으나 만적탄은 실존하지 않는다· 그것이 있다 하여도 건네줄 이유가 없다·”
[있잖아!]
색관조가 꽥 소리쳤다·
“·······”
멍해져버린 영뢰각주의 얼굴을 보면서 이내 색관조가 작게 소리 냈다·
[있잖아요· 그쵸?]
“없다·”
[이상하네· 주인님이 분명 있다고 하셨는데·]
“그만 가봐라·”
[암향야도 있다고 말했다던데·]
[마교 교주님도 알고 있다던데··· 이상하네·]
그 말에는 영뢰각주가 침을 꿀꺽 삼켰다·
풍제와 암향야가 대공자와 함께 있구나·
모두 살아 있었어·
기쁘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의미로 이건 협박이었다·
“너는 풍제와 암향야를 내세워 내게 겁을 주려는 것인가 보구나· 하지만 그 두 사람이 대공자와 함께 있다는 건 너의 말일 뿐·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은 없다· 무엇보다 있지도 않은 걸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암향야께서 말했어요·]
[풍제께서 말했어요·]
“??”
영뢰각주는 갸웃·
그때 금섬이 폴짝 뛰어 창문 밖으로 나갔다·
어디 가냐? 이 와중에·
금섬은 바로 돌아왔다·
빈손이 아니었다·
앞발에 조약돌 하나씩· 그리고 입에도 조약돌 하나·
그렇게 세 개의 조약돌을 영뢰각주 앞에 내려놓았다·
영뢰각주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세 개의··· 조약돌·’
지난날 중 하루가 번쩍하면서 머리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영뢰각이 위험에 처했을 때였다·
거의 멸문이 눈앞이었다·
상대는 진천문·
선대에 갈려나간 진천문은 혈야신이라는 절세 고수를 등에 업고 영뢰각을 압박해 왔다·
그때 만적탄을 사용하려고 했다·
죽음을 맞느니 함께 죽자·
한데 함께 죽지 못했다·
만적탄을 쓸 겨를이 없었고 진천문과 혈야신만 죽음을 맞이했다·
후공의 은혜였다·
후공은 지나가는 길이었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였지만 어찌 은혜를 받은 입장에서 대수롭게 여길 것인가·
‘후공 언젠가 꼭 이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어려움에 처하실 때면 저와 영뢰각은 기꺼이 나서겠습니다·’
‘넌 재밌는 말을 하는구나·’
후공은 껄껄 웃었다·
듣고 보니 재밌는 말이어서 그때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었다· 선명히 떠오른다·
그래 재밌는 말이었다·
후공이 어려움에 처할 때라니 그런 날은 오지 않는다·
‘그럼 만적탄을 드리겠습니다·’
‘허허 내가 쓸 일이 있을까?’
‘어··· 죄 죄송합니다·’
또 재밌는 말을 하고 말았다·
후공에게 만적탄이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내가 떠나고 없을 때라면 요긴할지도·’
‘아··· 그렇습니다·’
‘내가 아닌 누군가 네게 청하면 그때 건네도록 해라·’
‘제가 징표를 드리겠습니다· 그 징표를 보이는 이는 어린아이든 어른이든 늙었든 젊은 사람이든 은혜를 갚아야 할 사람으로 생각하겠습니다·’
‘번거롭다· 조약돌로 하자· 길가에 널린 평범한 조약돌·’
‘네·’
‘조약돌 세 개·’
‘네!’
그런 약속을 했었다·
그때가 떠올랐기에 조약돌을 바라보는 영뢰각주는 눈물을 그렁거렸다·
풍제와 암향야가 청한 것이겠지·
풍제와 암향야는 후공에게 이 약속을 들었나 보다·
“후공····”
영뢰각주 숙야청이 웃었다·
기억해주셨어!
기억하고 계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