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1화· 잊혀진다 해도, 죽는다 해도·
무엇을 원하는가?
천롱삭의 물음·
그건 후공만이 볼 수 있는 문장·
무엇을 원하냐고?
시간이 더 주어졌으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한 시진 정도·
그리고 또 가능하다면 수만 개의 생령과·
하지만 생령과는 없다·
그리고 생령과가 있다 해도 세상의 죽음을 멈출 수는 없을 터·
그러니 반각도 채 남지 않은 이 시간 안에 답을 찾아야 했다·
놈을 온전히 멸할 수 있는 길을·
길은 두 가지다·
그 마음을 천롱삭이 읽었다·
붕대 한 줄기를 휘날렸다· 그 안쪽 면에 글자가 떠올랐다·
– 첫째는 무엇인가?
오행의 각인을 이룬 효과였다·
강렬한 오행의 기운은 천롱삭에도 스며들었고 그로 인해 둘 사이의 연결은 정밀해진 상황· 천롱삭은 후공의 일부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놈의 생점(生點)을 찾는다·’
– 생점?
엽불은 재생한다·
그 재생의 근원점을 찾는다면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찾게 되면 그건 생점이 아닌 사점(死點)이 될 것이다·
놈의 머리는 아니다·
팔 다리도 아니다·
이미 끊어보았다· 잘라보았다·
그러니 함께 찾아보자·
후공은 검결지를 맺어 우수를 들어올렸다·
엽불을 가리켰다·
우우우우웅·
검결지에서 오색 광채가 증폭· 엽불을 향해 쏘아졌다·
쏘아져 나가며 수만 개로 분열했다· 그 광경은 폭죽이 수만 개로 나뉘어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미 쫓고 있는 수만 개의 강기 다발에 더해져 어두운 밤하늘을 질주했다· 빛의 그물이 덮쳐가는 것 같았다· 신비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그렇게 보았다·
수많은 빛 다발이 다가오고 곁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그 빛과 빛 사이를 마치 자신들이 휘돌고 뚫으며 지나쳐가는 듯했다· 누구 할 것 없이 자신이 그곳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휘도는 엽불에겐 공포였다·
네 마리 용과 더해진 수만 개의 빛 다발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이동하고 있음이다· 당장이라도 소멸될 것만 같아 웃음이 났다·
웃음을 짓고 나니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았다· 안정이 찾아왔다·
그래 여유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은 지금도 흐르고 있으니·
흐흐·
또 잃지 말아야 하는 건 귀심(鬼心)·
팔과 다리 머리는 잃어도 된다·
하지만 귀심만은 잃지 말아야 한다·
귀심은 귀기의 근원·
존재를 끝없이 유지시켜 주는 원천·
몸의 어느 부위를 잃어도 몸은 재생된다·
역설이다·
죽음의 기운이 영원한 삶을 안겨준다니· 그런 의미에서 귀기는 진정한 역천의 공능이라 할 수 있었다·
흐흐···?
엽불의 미소는 한순간 사라졌다·
상하좌우· 강기와 용을 피해 휘돌고 연기처럼 흩어졌다 모습을 드러냈다 하던 와중·
불쑥 손이 보인 것이다·
언제 다가온 건가?
누구의 손인지는 떠올릴 필요도 없었다·
붕대에 휘감긴 손· 천화서고 대공자의 무자비한 손길이었다·
회피·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어깨가 잡혔다·
스윽·
잡힌 순간 무언가 내부로 침투하려 했기에 엽불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귀섬(鬼閃)을 운용 스스로 어깨를 잘라냈다·
그만큼 여유가 없었다·
짓쳐든 공격은 어깨만이 아닌 것이다· 스아아악! 붕대 자락 한 줄기가 머리를 휘감아오고 있었다·
머리가 잘려나가게 두었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언제 잘라져 나갔냐는 듯 오른쪽 어깨가 새롭게 생성되었다·
귀기를 채웠음이다·
생성은 빨라졌다· 고통은 없다· 머리가 떨어져 나가면서 핑그르르 회전하던 시야는 곧바로 머리가 생성되며 회복·
두 마리의 용이 두 다리를 쓸고 지나갔지만 괜찮다· 새로 생겨난 두 다리로 허공을 박차며 물러났다· 거리를 벌렸다·
그때 새로운 광경이 보였다·
‘선?’
강기 다발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가느다란 선· 붉은색을 띠며 덮쳐오고 있었다· 가히 수천만 가닥이었다· 한데 과연 붉은색이라고 할 수 있나·
정확히는 색이 없었다·
눈으로는 식별할 수 있는 색이 아니었기 때문· 그저 귀심이 붉은색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았다 싶을 땐 수천만 가닥의 붉은 선이 전신을 휘감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니었다· 어떤 외력도 없었다· 그럼 이건 무엇인가?
‘향·’
엽불은 향을 느꼈다·
어떤 향인지는 알 수 없었다·
무향인데 향이 있다는 정도·
향을 다루는 자였나? 향선은 휘감기도 했지만 천화서고 대공자와 이어져 있는 것이다·
이 향으로 무엇을 하려고?
후공이 그에 답했다·
끝낼 때다· 새롭게 강기를 발출했다· 이번엔 쫓을 필요가 없다· 향선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강기는 향선들을 타고 엽불을 향해 빛의 속도로 나아갔다·
엽불도 볼 수 있었다· 느낄 수도 있었다·
향의 선을 타고 온다· 너무 빠르다· 벗어날 수 없다· 향을 떨쳐내지 못한다면····
조각 난다·
그 상념의 끝·
엽불의 몸이 산산이 조각 났다· 수만 가닥의 강기 다발이 전신을 관통하고 지나간 결과였다·
파스스 파스스·
조각나고 흩어져가는 몸이 연거푸 생성을 시도했지만 뒤이어 닥친 네 마리 자줏빛 용에 부서져 내렸다·
“끄 끝난 건가?”
“끝냈소이다! 결국 대공자가 엽불을 소멸시켰소!”
멀리 검선과 검존 현음이 경이롭게 바라봤다·
하지만 풍제와 당명 현이신녀는 아니었다·
‘아직··· 보여·’
‘엽불은··· 살아 있다·’
‘어 어떻게?’
청년의 모습이 된 풍제와 당명의 얼굴에는 불안이 떠올랐다· 현이신녀의 동공도 흔들렸다·
엽불의 시야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분명 조각나 흩어졌는데 엽불과 공유되고 있는 시야는 그대로· 그리고 검은 안개가 여전하기도 했다·
“아 아직이라고?”
“서 설마····”
뒤늦게 검선과 검존 현음도 그 사실을 깨닫고 얼어붙었다·
조각 나고 흩어진 몸 안에서 검은 불꽃은 춤추고 있었다· 폭압적인 강기들을 빗겨내었고 이내 광속으로 빠져나와 솟구쳐올랐다·
귀심이었다·
솟구쳐 오르는 중에 엽불은 신체를 회복했다·
기괴 그 자체·
“천화서고여 시간이 되었구나·”
후공이 엽불을 바라봤다·
천롱삭 안 유일하게 드러난 두 눈에서 자줏빛 광채가 불길처럼 타올랐다·
두 개의 길·
그 중 첫 번째는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원천을 찾은 것만이 성공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 두 번째 길로 나아가야 할 때였다·
천롱삭이 물어왔다·
– 두 번째 길은?
‘환혼·’
– 다른 길은?
그 물음에 후공은 신묘함을 느꼈다·
잠시 천롱삭이 살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물음의 기저에는 의미를 이해했음이 바탕에 깔려 있고 또 한편으로는 염려가 묻어나는 것이다· 붕대 주제에·
‘없다·’
– 하지만 그대가 귀(鬼)가 된다면·
이번에는 다른 차원의 염려였다·
환혼 후 그대가 귀가 된다면· 그대가 악이 된다면· 그리하여 섬멸의 대상이 된다면·
천롱삭이 이어 글자를 띄웠다·
– 그때는 내가 널 죽이겠다·
‘든든하군·’
– 그러니 다른 길을 찾아라·
희생이 따르더라도·
수많은 사람이 죽음에 이를지라도·
후공에겐 재밌는 말이었다·
‘난 돌아온다·’
– 가능한가? 그대는 돌아올 수 있는가?
두 번의 환혼·
원래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천화서고 대공자로 환혼했으며 다시 환혼이 가능한 십 년의 기간도 채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오행을 이루었다·
영혼에 오행을 각인하기까지 했으니 가능할 것이다·
‘돌아온다·’
– 그대는 모든 걸 잃을지도 모른다· 죽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약속했다·’
– 무엇을?
‘영웅이 되겠노라고·’
세 번의 환혼이라면 존재를 잊게 될지도·
영원히 기억을 잃게 될지도·
그래도 괜찮다·
영원은 이미 경험했다·
산 위에서 문득 가을 단풍에 취해 감탄했다면 그 순간이 영원이다· 평범한 하루를 마치고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빛을 무심히 바라보았을 때도 영원이었다·
어린 혜의 천진난만한 미소를 보고 있을 때도 영원과 같았다· 제갈유를 만났을 때 함께 하는 중에도 수많은 영원이 찾아왔다· 풍제와 당명이 함께할 때도·
천공단과 마주했을 때도·
남궁세가에서 소예를 바라봤을 때도·
첫눈이 내린 날 천천히 걸어 발자국을 남겼을 때도·
그리고 그리고
천화서고에서 깨어났을 때도·
이제 천둔공망이 해제되기까진 고작 서른 번의 호흡
벌써 균열이 가고 있음을 후공은 느낄 수 있었다·
그 여파가 온 세상에 드러나기도 했다·
또르르·
멈춰 있던 시체들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바 방금 눈동자가!”
“우 움직여····”
눈동자만이 아니었다·
시체들 중 일부는 끼릭 목을 돌리기도 했다·
동굴로 숨어들었던 이들은 동굴 입구에 멈춰 있던 시체 몇 구가 한 걸음을 떼는 것을 바라보며 덜덜 떨었다·
다락방에 있던 가족은 시체들의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
[죽은 자의··· 위안····]
[산 자의··· 영광····]
거리에 있던 이들이 산에 올라가 있던 이들이 호수로 들어가 갈대를 입에 물고 있던 이들도 수면에 아른거리는 시체를 보았다· 움직인다· 움직인다· 손이 천천히 발걸음이 한 걸음씩· 시체들의 눈동자에 기이한 빛이 맺혀갔다·
십(十)·
남은 열 번의 호흡 중·
‘은향(隱香)·’
후공은 엽불의 위치를 가늠했다· 천향오주가 측정을 도왔다· 무향보다 더 은밀한 은향을 전개· 엽불의 위치를 고정했다·
칠(七)·
오행을 기반 의식으로 환혼진을 띄웠다·
후공의 가슴 부위로 오색 광채가 떠올랐다· 두 눈의 자줏빛 광채는 흰자위가 사라지고 온통 검게 물들었다·
‘저건···?’
그 광경은 엽불에겐 더 이상 낯선 광경이 아니었다·
두 번째다·
오색광채 검게 물든 눈동자·
주란이 이미 보였던 광경·
‘무엇인가?’
그보다는
그때와 같다· 그때처럼 의식의 깊은 밑바닥에서부터 경고음이 들려왔다· 귀심이 떨고 있었다· 소멸된다· 소멸된다· 소멸된다!
엽불은 순간 연기처럼 흩어졌다·
그 움직임은 의미 없었다· 후공의 검게 물든 눈동자가 따라잡았고 은향은 길게 이어지며 시시각각 정확한 좌표를 보내오고 있었다·
– 그대에게 약속한다·
천롱삭이 글자를 띄운 순간
흩어지듯 유영하는 엽불을 향해 후공이 환혼을 전개했다·
몸이 빨려 나가는 느낌· 기이한 느낌과 함께 의식이 단절되기 전 후공은 천롱삭이 띄운 마지막 글자를 보았다·
– 난 그대를 지킬 것····
다 읽기도 전
후공의 시야는 바뀌었다· 주변 광경도 뒤바뀌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반가운 광경은
저만치 천롱삭을 두르고 있는 자신의 모습·
그 천롱삭 안쪽· 드러난 두 개의 눈동자가 미칠 듯이 흔들리고 있었기에
성공!
후공은 미소를 지었다·
엽불은 천롱삭에 갇혔다· 엽불의 몸을 차지했다·
곧바로 영혼에 각인된 오행을 확인했다·
그사이 귀기가 먹물처럼 번지며 의식을 잠식해 오면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들었다·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아픔이었다·
막을 수도 버티기도 힘들 정도· 머리가 뜯겨져나가고 터질 것만 같은 고통·
그럼에도 후공의 미소는 옅어지지 않았다·
아니 더 짙어졌다·
비록 엽불의 잔악한 미소로 드러났지만 드러나는 바가 무엇이 중요할 것인가·
‘따라왔다·’
오행이 따라왔다·
귀의 원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