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4화· 이러한 광채를 본 적이 있는가?
내가 처음이다·
내가 대공자를 처음 만났다·
점창의 장문인은 온몸의 피가 들끓는 것만 같았다· 그만큼 반가웠다· 그만큼 희열을 느꼈다·
죽음의 신(神)·
귀황이 소멸된 후 반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전자일 수밖에 없다· 기다리노라면 시간은 길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장문인에게도 반년은 매우 긴 시간이었다·
만날 수 있길·
소식이라도 들려오길·
하지만 아무 소식도 없었다·
하루 또 하루·
아무도 대공자를 만나지 못했다·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누군가 대공자를 만났다면 듣지 못할 수 없는데 말이다·
현 강호의 구조는 그랬다·
지금의 강호는 한 사람을 기다리는 중인 것이다· 그 한 사람에게 강호는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덜덜덜·
격정에 손의 떨림을 멈추기 힘들었다·
장문인은 애써 진정했다·
활짝 웃으려 하는 입가도 억지로 가다듬었다·
‘비무·’
그래 비무다·
대공자가 비무를 청해 오지 않았는가·
어떤 의미인가?
알고 있다·
‘대공자 찾아와주어 고맙네·’
마음으로 말한 후 장문인은 삼 층 누각에서 신형을 날렸다·
스릉!
자신의 거처에 있던 애검이 검집을 벗어나 날아들었기에 장문인은 우수를 뻗어 쥐었다·
그와 동시에 크게 외쳤다·
“무례한 자로다!”
대연무장에 내려서니 연무장에 있던 점창의 제자들이 외침에 놀랐다가 장문인을 알아보고 예를 갖췄다·
“장문인!”
그러다 보았다·
그제야 보았다·
장문인의 시선이 닿아 있는 곳·
장문인이 무례하다고 칭한 이·
죽립을 깊게 눌러쓰고 장포를 휘날리는 이·
살짝 드러난 입매가 웃고 있는 것도 같은 이·
“누 누구?”
바로 곁이라 할 만한데 언제 와 있었던 건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것에 놀랐다· 그러다 죽립인의 드러난 두 손의 붕대를 보고는 아예 뒷걸음질쳤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기도 했다·
그들도 알아본 것이다·
‘대 대공자!’
‘천화서고 대공자!’
그들도 내내 보길 원했던 것이다·
반년 전부터 붕대를 감고 있는 자만 보였을 정도였다· 붕대를 감고 있는 자가 있다는 소식만 들어도 달려가곤 했다· 아니었다· 아니었다· 화상을 입은 자였고 팔이 부러져 고정하려 붕대를 감고 있는 자만을 보았을 뿐이었다·
한데 오늘 그가 왔다·
이곳 점창에 그가 왔다·
장문인의 외침에 점창의 장로들과 제자들이 몰려나왔다·
그들도 알아보았기에 대연무장 주위를 가득 메운 채 숨 죽이며 바라봤다·
하지만 마음의 소리는 거대한 함성·
‘그다· 그가 왔어·’
‘대공자님!’
‘대공자····’
‘오셨습니까· 점창을 찾아와 주셨습니까·’
그때 후공이 죽립을 살짝 들어올렸다·
가려져 있던 두 눈이 드러났다·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는 무심한 눈이었다·
“점창 장문 나와 같은 자를 본 적이 있는가?”
본 적이 있네· 대공자·
잊은 적이 없네·
나만 아니라 모두가· 온 세상이·
“본 적 없다· 그리고 우습구나·”
“무엇이 우스운가?”
“붕대로 얼굴을 숨긴 채 묻고 있으니 어찌 우습지 않을까·”
아는 척할 수 없다·
말할 수 없다·
귀황· 엽불의 마지막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날로부터 지금까지 그 말을 잊은 적이 없었다·
“옳은 말이다·”
“나와 비무를 원한다고?”
“누군가 그러더군· 점창의 검격은 해를 쏘아 떨어뜨린다고· 그만큼 빠르고 그만큼 파괴적이겠지· 난 기대가 된다·”
점창의 사일검법(射日劍法)·
“거부한다면?”
“그대에게 거부할 권한 같은 건 없다·”
“광오한 자로다·”
점창 장문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물론 대공자는 광오해도 된다· 오만해도 된다· 그럴 자격이라면 충분했다·
하지만 불쑥 두려움이 차오르는 건 왜인가·
겁이 난다· 겁이 난다·
만약 대공자가 예전의 대공자가 아니라면····
기억만 잃은 것이 아니라 귀기에 물들어 있는 것이라면····
조금이라도 조금이라도····
그럼 죽게 된다·
지금 청하는 비무가 그저 점창의 몰락을 위한 빌미에 불과하다면· 엽불의 마음이 묻어 있어 천하를 피로 물들이려 하는 시작점이라면·
‘후후 괜찮아·’
장문인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우습다·
지금 대공자는 달빛 아래·
대공자는 달빛 아래에 있을 때 잘 어울린다·
그때도 그랬다·
지천을 상대할 때
지천에 딸을 납치당했을 때·
딸을 되찾아 딸의 몸에서 독기를 빼내 주면서 딸의 시선을 달로 향하게 했던 대공자를 어찌 잊을 것인가·
소저 달빛이 아름답습니다·
그날의 달빛을 잊을 수 없다·
딸을 구해준 이·
딸을 잃었다면 자신도 살아갈 의미를 잃었을 것이다·
그러니 대공자는 자신을 구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니 괜찮다·
대공자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다 해도·
잠시지만 두려워한 것이
그런 생각을 떠올린 자신이 한심스러워 장문인은 옅게 웃었다·
대공자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그대에게 점창의 검을 보여주마·”
그 순간 후공이 반응했다·
흔들·
신형이 쏘아지며 붕대에 감긴 손으로 장문인의 목을 노렸다· 검이 빛살처럼 그 손을 쓸어 갔다·
‘후예사일(后羿射日) 구곡전척(九曲箭剔)·’
사일검법의 절초가 이어졌다·
사양무광 사양요요·
한데
‘소 손이····’
비껴 간다· 해를 쏘아 떨어뜨리는 점창의 쾌검 사이를 연기처럼 흩어진다· 닿지 않아· 닿을 수 없다· 마치 손이 아닌 것처럼 검광 사이를 지나 목에 닿아온다· 목을 꿰뚫어온다·
목에 닿는 저릿한 감촉·
그에 놀라 장문인은 눈을 감고 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장문인은 숨조차 내쉬지 못했다·
아! 꿈이었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대공자는 원래 서 있던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대공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문인 이와 같은 무공을 본 적이 있는가?”
꿈이 아니었다·
장문인은 자신의 목을 매만지느라 대답이 늦어졌다·
“본 적이··· 없다·”
거짓이 아니었다·
정말 처음 보는 것이다·
대공자를 적으로 둔 적이 없었으니·
“그러한가·”
“그 그렇소·”
“다시 검을 들어라·”
장문인은 그 말을 따랐다·
대공자는 귀기에 물들지 않았다·
처음에 예상했던 대로였다·
대공자는 스스로를 찾으려 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 한다·
“장문인 이번엔 선공을 양보하지·”
“괴인 기고만장하지 마라!”
그 말과 함께 장문인의 신형이 폭발했다·
검만 보였다· 빛만 보였다·
하지만 후공의 눈에 비친 모습은
‘느려·’
폭발적이고 뭐고 한참을 기다렸다· 다가왔을 때 비로소 후공은 등 뒤에서 검을 뽑아냈다· 자줏빛 광채가 점창 장문인의 몸을 사분오열 쓸어 갔다·
대연무장을 둘러싼 점창이 놀라 경악성을 토해냈다·
장문인이 아예 자줏빛 광채에 휩싸인 모습인 것이다·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경악성은 곧 안도의 한숨이 되었다·
빛이 거둬진 후 장문인은 살아 있었다·
장문인은 검을 놓쳤을 뿐이었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또 장문인의 소맷자락만이 뒤늦게 사라락 떨어져 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장문인 이러한 검공을 본 적이 있는가·”
“없··· 없다·”
장문인은 더듬거렸다·
이번에는 진짜 꼼짝없이 죽는다 싶었고 당해 놓고도 정작 검공을 보지 못한 것이다· 봐야 봤다고 하지·
그 모습에 후공이 실망했다·
그건 천롱삭도 같았다·
펄럭 한 줄기 붕대 자락을 펄럭이며 후공의 눈앞으로 글자를 띄웠다·
– 뭐 이런··· 허접한 자가 다 있는가?
‘후후 말을 곱게 해야지·’
펄럭·
– 그럼 대단한 것처럼 말하지 말았어야 하지 않나· 그냥 머저리 새끼 주제에····
‘어허·’
후공과 이어진 탓에 함께 존재를 잊고 망가져버린 천롱삭은 글귀가 꽤 험해진 상황· 그래도 더는 떠들지 않았다·
후공이 장문인을 지그시 응시했다·
더 머물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 확인은 필요했다·
“점창 장문·”
장문인 초광이 바라본 순간
후공의 신형에서 세 줄기 자줏빛 광채가 솟구쳤다·
크르르르르릉!
검령과 번과 쾌였다·
점창의 밤하늘을 끝도 없이 날아오르는 모습에 장문인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모든 점창도 다를 것이 없었다·
대공자의 신검을 다시 본다·
대공자가 점창에 왔을 때도 보았고 엽불의 시야를 통해서도 보았던 신검의 유영이었다·
그 광경에 몇몇은 울음을 터뜨렸다·
장문인도 눈물이 맺히려 했기에 참아내려 애를 써야 했다·
원래는 네 개·
자줏빛 광채는 네 개·
네 마리 용이 된 적도 있었다·
이 광경을 다시 보고 싶었기에 말로 할 수 없는 기묘한 감정이 휘몰아쳤다·
“점창 장문 이러한 광채를 본 적이 있는가?”
“없다·”
“그래?”
“결코 없다·”
“한데 왜 눈물을 흘리고 있지?”
후공이 추궁하며 갸웃했다·
점창 장문인이 눈물을 닦고 추궁해오는 대공자의 눈을 바라보았다·
“무서워서 울었소·”
“그러한가?”
“그럴 수 있지 않소?”
“한심하군·”
후공이 혀를 차니 검령과 번과 쾌가 점창 장문인 주위를 조롱하듯 몇 바퀴 회전하다 되돌아왔다·
이제 떠나려한다는 걸 알기에 장문인이 물었다·
“그대는··· 어디로 가는 것이오?”
“알 것 없다·”
“저기····”
“응?”
장문인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그게··· 혹시 식사를 하지 않았다면 식사라도·”
“후후· 재밌는 자로군·”
후공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것이 점창 장문인이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마치 유령이었던 것처럼 대공자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어디에서도 다시 볼 수 없었다·
꿈인가?
아니다·
방금 전 일이 꿈이 아니었다는 건
떨어져 나간 옷자락이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공자가 서 있던 자리에 옅게 일어난 흙먼지도·
점창은 깊은 침묵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해야 할 일이 많은 것이다·
강호에 이 소식을 알려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점창에서 수많은 전서매와 전서구가 날아올랐다· 어떤 새는 사천으로 어떤 새는 신강으로 또 어떤 새는 운남의 하오문 지부로 향했다·
하오문 지부에서도 다시금 전서매를 띄웠다·
소식을 알려야 하는 것이다·
그가 돌아왔노라고·
그 광경은 후공도 보았다·
조금은 여유롭게 사천을 향해 나아가다 평소와 달리 많은 새들이 나는 것을 보고 의문을 품었다·
단순히 새 떼가 아닌 것이다·
발목에 서신을 매달고 있으니 확인이 필요했다·
달빛 아래 구름 아래·
날아가던 새를 향해 솟구쳐 올랐다·
덥석·
[끼이이이이!]
날다 몸이 붙들린 전서매가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긴 하늘·
한데 사람에게 잡힌 것이다·
심지어 잡힌 뒤에도 사람은 하늘에 떠 있는 채였다·
[끼이이이이이이!]
“조용 조용·”
[끼····]
진정시킨 후공이 발목에 묶인 서신을 풀어냈다·
날아온 지점은 점창산 쪽이다·
분명 자신과 관련된 것이리라·
전서매를 띄운 것이 너무 빨랐다·
그러면 의심은 떠오르게 된다·
‘사실··· 나를 알고 있었나? 내가 누구인지?’
서둘러 서신을 펼쳤다·
암호문이었다·
암호를 해독하는 시간은 짧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해독된 내용은
– 점창이 아미에 전하오·
괴상한 이가 점창을 다녀갔소·
붕대를 두른 자이고 자줏빛 검광을 발하는 이·
그는····
그 뒤의 문장에 후공의 눈매는 일그러졌다·
– 무서운 자·
강호를 위협할 이·
부디 조심하시오·
그 결과
펄럭·
천롱삭이 글자를 띄웠다·
– 미친 새끼였나·
후공도 동감이었다·
다시 점창으로 돌아가 뒤집어놓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식사를 하고 가라고까지 해놓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