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6화· 너무 보고 싶으면 도리어 볼 수 없다·
환호성만 내지르고 있을 것인가·
방방 뛰던 천공단은 이내 정신을 차렸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오행초를 찾아 촉산을 훑고 있었지만 그건 천공단주의 행방을 몰라서였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서였다·
하지만 이제 단주가 모습을 드러냈으니 만나야 했다·
잘 지낸 건지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많이 보고 싶었다·
비록 붕대에 감싸여 있을 테니 제대로 볼 수 없겠지만 괜찮다· 드러난 두 눈이면 충분했다· 단주의 그 눈빛과 어서 마주하고 싶었다·
“형님을 만나러 가자!”
“두목을 보러 가자구요!”
“가자아아아아아아!”
“왈왈 왈왈왈!”
[얼른 가자!]
색관조가 날아올랐고 천공단이 신형을 날렸다·
그러다 문득 항마삼협이 뒤돌아봤다· 때를 같이해 남궁연도 돌아봤다·
뭔가 허전해서였다·
착각이 아니었다·
항마삼협이 신형을 멈췄다·
저만치 서 있는 금적자를 향해 소리쳤다·
“선생 뭐합니까· 안 가실 겁니까!”
“혜야 어서 가자!”
남궁연은 제갈혜를 채근했다·
두 사람이 따라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금적자는 멍하니 선 채 바라보기만 했다·
정신이 나간 것 같은 모습이었다·
분명 방금까지 함께 방방 뛰었는데 왜?
그건 제갈혜도 같았다·
물론 제갈혜는 방방 뛰지 않았다· 갈취한 전서 내용이 확인된 직후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었다·
웃지 않았다 해도 같은 의미가 아닌가·
울어도 같은 마음인 건 분명한데 왜?
“에잇!”
어쩔 수 없이 천공단이 두 사람에게 돌아갔다·
다다다닷·
빠르게 돌아가 신경질을 부렸다·
“선생 뭐하자는 겁니까? 발이 땅에 붙었습니까?”
“아니 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생각을 떠올리기에 멍때리고 있냔 말입니다!”
“나무나무나무관세음보살· 무슨 변덕이실까요?”
“금피리 할아버지 왜 그래요?”
쏟아지는 비난과 채근에 금적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으··· 허····”
쥐어 짜내는 간신히 내쉬는 것만 같은 한숨이었다· 숨을 잘 쉴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언니·”
천산의 후계인 설영은 제갈혜 곁에 앉아 바라봤다·
제갈혜가 입을 열었다·
“난··· 못 가· 갈 수 없어·”
“왜요?”
“자신이 없어·”
“마주할 자신이 없어·”
이내 설영이 탄성을 발했다·
이해했다· 이해했다·
이해했기에 설영은 언니 얼굴의 눈물자국이 새삼스럽게 보였다· 다른 의미로 보였다·
천공단주를 만나면 모른 척해야 한다·
언니는 그럴 자신이 없다는 의미였다·
방금처럼 또 펑펑 울게 될 것이다는 뜻이었다·
그러면 들키게 된다· 감각이 예민한 데다 작은 단서만으로 모든 상황을 꿰뚫듯 간파하는 천공단주를 속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렇게 눈물을 쏟을 정도라면 더욱 더·
금적자가 얼어붙은 것도 같은 이유였다·
금적자가 너털거렸다·
“허허 단주를 속여야 하는데··· 속이고도 싶은데··· 속일 자신이 없군· 허허허 늙어서겠지·”
늙어서도 맞고 함께 여러 일을 겪어서이기도 했다·
단주의 예리한 시선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 멍하니 바라만 보게 될 것만 같았다·
“난 잘할 자신 있는데·”
“나도다!”
“나도올시다· 나무관세음보살!”
소천개와 은앙개 소림의 무광이 활기차게 답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었다·
생각해 보게 된다· 만약에 만약에·
마주한다면·
무산쌍웅은 머리를 긁적였다·
항마삼협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봤다· 어느샌가 금적자의 멍한 표정과 닮아 있었다·
낭인왕은 침울해졌다·
자신이··· 없어진다·
남궁연도 언교운도 모용진도 같아졌다·
너무 보고 싶으면 보러 갈 수 없구나·
너무 보고 싶으면 오히려 다가갈 수 없구나·
그런 것이구나·
그때 후공은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찻잔을 들어 입에 가져갈 때면 스르륵 천롱삭이 움직이면서 입이 드러났다·
당초의 눈에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죽립을 벗은 대공자 형님의 모습이 신기했고 목과 머리 쪽 허리 쪽의 붕대 몇 자락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하늘하늘 춤추고 있는 것이다·
그건 함께 자리한 당무와 당운도 같은 마음이었다·
당명의 두 아들·
두 사람에게도 경이로웠다·
존경심마저 품고 있었다·
두 사람에게 대공자는 백부님인 것이다·
아버지가 난데없이 천공단 부단주가 되고 대공자를 형님이라고 부르기로 했다면서 그날로 어리디어린 백부가 생겼다·
그때는 억울한 마음이 컸다·
그 뒤에도 그런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천공단 부단주가 된 건 가문의 영광이었다·
대공자는 백부님이 아니라 그 이상이어도 부족함이 없는 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길 사천 당가는 난폭하고 제멋대로라고 하던데 소문이 잘못된 건가· 아니면····”
후공의 시선이 당초에게서 당무에게로 옮겨졌다·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인가·”
“소문은 틀리지 않았고 숨기고 있는 건 맞소·”
당무가 순순히 인정했다·
“본가가 난폭하고 제멋대로나 그렇다고 미련하지는 않다오· 지금은 가주께서 부재 중이라 공손히 대접하고 있을 뿐이오· 가주께서 돌아오시면 언제든 그대를 향한 대접이 달라질 수 있소·”
“후후후·”
후공이 웃음을 흘리곤 말을 이었다·
“너무 솔직하군· 당가의 가주가 그 정도로 뛰어나다는 뜻이겠지· 그럼 가주와 마교 교주를 견준다면 어떠한가?”
“견줄 수 없소·”
“마교 교주가 더 뛰어나다는 뜻인가?”
“그렇소·”
“궁금해지는군·”
“그럼 이제 마교로 가는 것이오?”
차가운 목소리에 당무가 시무룩해졌다·
그 모습에 후공이 웃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 모습이었다·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대공자가 사라지고 없는 그 자리에 덩그런히 놓인 찻잔만이 꿈이 아니었노라 말해주고 있었다·
후공은 마교로 향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잠시 사천 당가 부근에 머물렀다·
무언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청난 속도였다·
속도만 놓고 보자면 결코 자신의 아래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보았기에 갸웃·
펄럭 천롱삭도 놀라 빠르게 글자를 띄웠다·
– 새잖아!
사람이 아니라 새·
보석같은 푸른 눈을 빛내고 있었고 깃털은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머리 위를 순식간에 스쳐 갔기에
파라라락·
신형을 솟구쳐 뒤쫓았다·
영물이다·
놓칠 수 없었다·
길들인다면 요긴하게 쓸 수 있을 터·
허공을 날아 순식간에 따라잡았다·
그렇게 손을 뻗으려 할 때였다·
[어머! 깜짝이야!]
색관조가 놀라 파다닥거렸다·
후공은 더 놀라버렸다·
“말을 한다고?”
[말하는 새 처음 보나요? 아니 그러고 보니 나도 처음 봐· 왜 붕대를 친친 감고 있는 거죠? 하늘은 어떻게 날 수 있고요?]
허공에 뜬 채로 새와 괴인이 마주 보면서 서로 궁금해하는 상황·
“괴이한 새로군·”
[까르르르르르· 누가 누구보고 괴이하다고 하는지 모르겠네요·]
“넌 무서워하지 않는구나·”
[무서워해야 하나요?]
주인님인데!
주인님을 만난 건데요!
검령과 번쾌친도 반가울 뿐이고요·
“보통은 그렇지 않나?”
[저는 보통 새가 아니니까요·]
“너의 주인은 누구지?”
[····]
그 말에는 천하의 색관조도 말문이 막혔다·
잠시 멍하니 바라봤다·
왈칵 눈물이 쏟아져내릴 것 같아서 솟구쳤다가 내려왔다 하면서 부산스럽게 날았다·
제 앞에 있잖아요·
지금 말하고 있잖아요·
그렇게는 말할 수 없었기에
[까르르르르르르· 주인이 있을 리가요· 내가 주인이 되면 모를까· 내기할래요?]
“내기?”
[누가 더 빨리 나는지· 이기는 사람이 주인·]
후공이 웃음을 터뜨렸다·
– 미친 새로군·
천롱삭도 어이가 없었다·
“어디로 가는 길이었지?”
[친구 찾으러 가는 길인데요?]
“친구?”
[말하면 아나요?]
“말해 봐라·”
[금섬이라고 있어요·]
“금두꺼비?”
[그건 됐고 내기 할 건가요 안 할 건가요? 하기 싫으면 각자 갈 길 가요·]
“하자·”
후공은 왜인지 기분이 좋아졌다·
새가 말을 해서인가· 새가 말을 재밌게 해서인가·
또 이 정도로 영특하면 길들일 필요조차 없었다·
[약속해요· 이기는 사람이 주인·]
[까르르르르르· 오늘 굉장한 수하를 거두겠구만!]
그러면서 날았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마치 주인이 되고 싶은 것처럼·
주인님이 결코 눈치챌 수 없도록·
‘자연스러워야 해·’
까르르르르르르·
신강의 하늘·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수많은 전각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던 후공은 하강했다·
공간의 한 부분이 진법·
순식간에 찢어내며 아래 쪽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마교에 내려섰다·
두웅 두웅 두웅!
진법이 훼손되면서 경고음이 천마신교 전역에 울려퍼졌다·
사방에서 천마신교의 고수들이 튀어나왔다·
침입자다!
누가 감히?
그때 침입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교 놈들아 이 색관조님이 이번에 모시게 된 주인님과 함께 왔다! 붕대를 감고 있어도 멋진데 영광으로 알아! 까르르르르르르!]
풍제는 부재 중·
맞이한 건 도운연이었다·
천마신교의 고수들이 에워싼 가운데 도운연의 심장 박동은 미칠 듯이 뛰었다·
‘대공자님·’
마음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고작 일식경 전 점창에서 날려보낸 전서매가 천마신교에 도착한 터·
그렇기에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빠르게 도착할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고 색관조가 동행한 것도 뜻밖이었다·
영특한 색관조가 ‘이번에 모시게 된’이라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면 하마터면 반가운 표정을 지을 뻔했다·
“비무를 원한다고? 무례함이 말로 할 수 없군·”
도운연이 차갑게 말을 뱉었다·
그런 도운연을 후공이 살폈다· 전신의 기운을 읽고 경지를 가늠했다·
그러곤 입을 열었다·
도운연이 미간을 좁혔다·
무례하다는 생각은 없었다·
대공자 형님은 지금보다 더 무례해도 된다·
대충 짐작 가는 바는 있었다·
훑었던 시선만으로 낱낱이 관찰된 것만 같은 느낌·
경지를 가늠하셨으리라·
분명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신 것이리라·
어떤 대답이 좋을까·
고민도 잠시
도운연이 답했다·
“도···도도·”
“뭐?”
후공이 미간을 찡그렸다·
천롱삭도 곧바로 글자를 띄웠다·
– 사람 이름이 도도도?
색관조도 미친 듯이 깔깔거렸다·
후공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진심이냐?”
도운연이 땀을 삐질 흘렸다·
혹시 그렇게 말하면 대공자 형님의 기억이 돌아오진 않을까·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꺼낸 말이었다·
태명으로 농담을 하신 적도 있으셨으니까!
그런 마음이었는데 정색이 돌아오면 땀이 날 수밖에 없었다·
“사실은··· 도···운연·”
“그런데 마교 소교주라고?”
도운연의 땀은 많아졌다·
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꼭 대공자 형님께서 ‘알 만하군’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은 것이다·
후공은 주위를 빙 둘러봤다·
모두가 하나같이 분노에 찬 눈빛이었고 당장이라도 전력을 다해 덤벼들 기세·
하지만 무슨 의미인가·
마교 교주가 없다·
풍제라 칭하는 이가 없으니·
그 말과 함께 창공으로 솟구쳐올랐다·
색관조가 뒤따르며 깔깔거렸다·
[멍청이들아 뭘 그렇게 무섭게 쳐다보고들 있냐·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까르르르르르르르르·]
아무도 따라가지 않았다·
따라갈 수도 없고 따라가서도 안 된다·
그저 사라져가는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분노에 찬 눈빛이었다·
살기를 분분히 뿌리는 눈빛이었다·
한참이나 그렇게 있었다·
그래야 한다·
지금은 지금은·
대공자는 멀리서도 들을 수 있으니까·
멀리서도 느낄 수 있으니까·
그러니 마음으로만 반가움을 표해만 한다·
‘대공자님····’
후공은 신강을 휘저었다·
혹시 풍혼마제를 볼 수 있을지 모르니·
풍혼마제·
풍제·
그라면 알고 있을지도·
물음에 답할 수 있을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았다·
엄청난 고수들·
그 중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한 청년·
‘반로환동?’
크르르릉·
푸른 깃털의 늑대가 미칠 듯이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