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9화· 목련의 비밀·
문장을 만들어낸 천롱삭은 기뻤나 보다·
만족스러웠나 보다·
– 하하하하!
한참이나 웃음 소리를 만들어내더니 복귀했다·
후공이 왼손을 슬쩍 들어 올리니 천롱삭이 손목에서 시작해 팔목까지 휘감겨갔다·
그 광경은 완전한 통제를 보여주었다·
기억이 돌아왔다는 증명의 끝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기다렸다는 듯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대공자아아아아아아!”
“으아아 대공자아아아아아!”
모산이 목청이 터져라 소리쳤다·
대공자를 이렇게 크게 부른 적이 있었던가· 그래 있었다· 모산으로선 지금이 세 번째였다·
화산이 폭발할 때 대공자를 두고 탈출했을 때가 첫 번째였고 타오르는 화산의 용암의 불꽃과 검은 연기 속에서 대공자가 솟구쳐 올라왔을 때가 두 번째였다·
모산은 두 번째만큼 기뻤다·
아니 두 번째보다 기뻤다·
이번엔 작게나마 모산이 보탬이 된 것이다·
우리 모산도 쓸모가 있었어!
외쳐 부르는 목소리는 모산만이 아니었다·
“하아··· 큰아이야·”
“큰형님!”
“큰형님! 돌아오셨습니까!”
천화서고 노가주가 격정을 주체하지 못했고 윤과 부몽은 달려들었다·
소리 없이 부르는 이도 있었다·
풍제와 당명은 마음으로 대형을 불렀다·
검선과 검존 현음과 현이도 마음으로 불렀다·
호칭은 달라졌다·
‘후공·’
‘맹주·’
이미 듣지 않았던가·
대공자가 후공· 무림맹주· 천하제일인·
처음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은 말로 할 수 없었다· 그날의 충격이 이제 잦아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다시 마주하게 되니 그때의 충격이 되살아나 마음이 진탕되는 것 같았다·
신검들도 주인의 귀환을 반겼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앙!
검령과 번쾌친이 멋대로 날아올라 자줏빛 광채를 길게 남겼다· 쏟아지는 아침 햇살과 잘 어울렸다·
일호 이호 삼호 사호·
그런 웃긴 이름으로 불릴 때마다 두려움에 떨었던 검령과 번쾌친이었다· 뭐라 불리던 주인과 함께한다는 것만은 좋았지만 검령이라 불릴 때 번과 쾌 친이라 불릴 때의 추억을 주인이 떠올리지 못하는 건 서글픔이었다·
하지만 이젠!
카르르르르르르르르릉!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이름이 돌아왔다·
주인과의 추억이 돌아왔다!
색관조가 그런 신검들 사이를 날았다·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까르르르르르 난 뭐 똑같네· 역시 난 대단하다니까· 왜 그렇지? 그야 주인님의 영물이니까 대단한 게 당연하잖아! 까르르르르르르르르르·]
색관조가 하강했다·
어느샌가 주인의 머리 위로 올라가 펄쩍 펄쩍 뛰고 있는 금섬 앞으로 향했다·
[야 타!]
바로 금섬이 올라탔다·
금섬을 태운 색관조가 구름 위까지 올라갔다·
[그으으으으으으으으윽!]
그 모든 광경을 후공이 눈에 담았다·
기억은 거의 채워졌다·
원래의 기억부터 채워지기 시작한 기억은 빠르게 스며들어 천화서고 대공자 때의 기억까지 모두 떠올랐다·
채워짐은 멈추지 않는다·
엽불을 상대할 때가 떠오르고 기억을 잃은 직후 온통 하얀 공간에서 한 사람 한 사람 바라보던 것도 떠올랐다·
그리고 방황하던 시간·
머물던 시간·
스스로 내면을 들여다보던 시간·
그 후 청성파 아미파 사천 당가·
그리고 그리고··· 지금·
‘괴이하군·’
모든 기억을 찾았기 때문일까·
오행초의 영향일까·
후공은 의아함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이곳에 있는 이들에게서 향이 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각자의 향이 달랐다·
화산의 검선에겐 매화향
무당의 검존은 난초향·
품에 안긴 윤과 부몽은 묵향이 났다·
할아버지인 노가주도 같은 향이 났다·
천향의 공법이 오주로 완성된 뒤에도 결코 이런 일은 없었다· 그때조차 각각의 기질이 향이 되어 느껴진 적은 없었다·
풍제는 소나무향이 난다·
당명에게선 대나무향이 났다·
빙궁의 현음신녀는 수선화· 수선화는 겨울 내내 피어 있는 꽃이니 잘 어울렸다·
모산은 감주나무·
천향은 오주가 끝이 아니었나 보다·
그 너머가 있었나 보다·
‘한데 왜 현이신녀는 수선화가 아니지? 왜 목련향이 나는 건가?’
괴이함의 정체는 현이신녀였다·
현음의 사저인 현이신녀는 왜 다른가·
왜··· 특별한가?
가시죠·
어디로?
천화서고로·
가야 할 곳이 정해졌다·
모산은 우물쭈물했다·
같이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인데 모산파 따위가 함께 따라가는 것이 맞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저기 우리도 같이 가도 됩니ㄲ····”
“당연한 말씀을·”
수락한 이가 천화서고 대공자·
모산이 뛸 듯 기뻐하며 뒤따랐다·
당명이 노가주를 업었고 검선과 검존은 각각 윤과 부몽을 들쳐 업고 달렸다·
색관조는 방향이 달랐다·
까마득히 멀어지면서 말했다·
[주인님 저흰 소식을 전하고 올게요·]
“그래·”
[까르르르르르· 천공단부터!]
후공이 풍제에게 전음을 보냈다·
– 그동안의 일을 들어보자·
– 대형 그동안은 제가 무림맹주였습니다·
– 후후 잘 어울렸을 것 같구나·
– 쩝·
풍제가 짐짓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웃은 풍제가 그동안의 일을 설명했다·
강호의 각대 문파의 수장을 불러 모은 일·
천화서고 대공자를 만나게 될 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주지시켰고 정보를 주고받을 때를 위해 공통의 암호도 만들었다·
하오문도 불러들였다·
민가에서 오고 갈 일상적인 대화에 호칭을 모두 ‘그’로 불리게 하는 데 하오문의 역할은 지대했다·
심지어 전음도 들을 수 있기에 강호인들은 전음으로라도 그날의 일을 언급하지 말라는 요청을 받았다·
– 당연히 반발하는 이는 없었습니다·
– 환혼을 요구한 이들은?
풍제는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깨닫고는 고개를 저었다·
– 없습니다· 알아듣게 설명했고 또 억지를 부릴 만한 사람들도 아닙니다·
환혼당한 이들이 있다·
공동파 장문인 개방 방주 소림의 릉인· 그 외에도 여럿·
원래의 몸을 찾을 수 있도록 얼려두었던 이들·
– 얼려둔 몸은 안강에 모아두었습니다·
– 십 년· 시간이 길겠군·
다시 환혼이 가능한 시간은 십 년·
– 네가 수고가 많았다·
– 그보다 대형····
– 응?
– 어디까지 기억나십니까?
– 전부·
– 그럼 검선과 검존 빙궁이 대형의 정체를 알게 된 것도?
– 후후 농담은·
– 그때 들렸습니다· 대형의 생각이 들렸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들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풍제가 웃지 않기에 후공은 멍해지고 말았다·
– 큰일이네·
– 큰일입니다·
풍제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이었다·
– 거기서 현이신녀에게 고백을 해버리실 줄은·
– 또 그런 대형의 생각이 들려올 줄은·
– ··········
소식은 강호에 빠르게 전해졌다·
원래 좋은 소식은 느리고 나쁜 소식은 빠른 법·
하지만 천화서고 대공자가 돌아왔다는 소식은 나쁜 소식보다 훨씬 빠르게 퍼져 나갔다·
모두가 갈망하는 소식은 그런 법이었다·
주위에 알리고 싶고 서로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어 안달이 나면 그 무엇보다 빠르게 전해진다·
내내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이·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이·
그저 막연히 ‘영웅’ 혹은 ‘그’라 칭하는 대신 확실히 부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천화서고 대공자가 돌아왔다·
영웅이 기억을 찾았다·
돌아오길 기다리며 불렀던 노래가 천하 각지에 다시 울려 퍼졌다·
그때는 희망을 담고 불렀던 노래였는데 이젠 기쁨에 찬 노래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강호인들의 발길은 안휘 북부로 향했다·
천화서고 쪽으로 향했다·
초대를 받지 않았고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그 부근에라도 있고 싶어서였다·
한 사람 또 한 사람·
천화서고에 손님이 늘어갔다·
천화서고는 잔치 분위기였지만 그 잔치는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하루가 다르게 절세고수들이 천화서고에 속속들이 모여드는 것이다·
늦은 밤·
후공은 처소에서 미녀도를 꺼내들었다·
미녀도의 연능화와 약속한 날은 한참이 지난 시점·
미녀도 안으로 들어가는 건 무리였다·
하지만 소식은 전할 수 있으리라·
출렁· 미녀도가 물결치며 그림 속 바위에 걸터앉아 있던 연능화가 움직였다·
– 후공·
– 늦었습니다·
– 그래도 다행입니다·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다 잘된 듯하니·
기뻐해주고 반가워해주는 연능화를 바라보며 후공이 입을 열었다·
–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 아····
그 말만으로 짐작한 듯하다·
연능화는 듣기도 전에 벌써 눈물을 흘리려 했다·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연능화가 웃었다· 울었다·
현음과 현이가 천화서고를 거닐었다·
– 사저 제가 후공에게 물어볼까요?
– 아니· 절대 안 돼· 그러지 말렴·
– 그럼 사저가 후공에게 먼저 이야기를 꺼내 보는 건 어때요?
– 그것도 무리야·
– 사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 그래도····
– 후공도 참 너무 느긋하네요· 왜 모른 척인지· 혹시 기억은 찾았는데 고백한 건 잊어버린 걸까요?
– 난··· 그랬으면 좋겠다·
부끄러워서·
내가 그럴 만한 사람인가 싶어서·
현이는 그런 마음이었다·
천화서고 대공자이자 후공은 모든 이가 좋아하는 사람· 모든 여인의 선망의 대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가 뭐라고·
그런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여기들 계셨습니까·”
바라보니 후공이었다·
현음신녀가 반갑게 맞이했다·
“오라버니!”
반긴 것도 잠시 현음신녀가 곧바로 작별을 고했다·
“어린 소녀는 밤이 깊어 이만 들어갑니다·”
그렇게 둘이 되어 후공은 현이와 천화서고를 거닐었다·
오가는 대화는 없었다·
목소리만 나지 않았을 뿐이다·
침묵 아래 전음이 오갔다·
– 현이신녀· 목련에 비밀이 있는데 알고 계십니까?
현이가 갸웃했다·
– 목련에 비밀이 있었나요?
– 목련은 꽃이 나오고 저문 다음에야 잎사귀가 나온다지요·
– 아!
뻔한 말이라 현이가 웃어 보였다·
– 알고 있었습니까?
– 그 정도는····
– 하지만 진짜 목련의 비밀은 그 뜻에 있습니다·
– 뜻이 있나요?
– 네· 무림맹의 시녀인 연향에게 들었습니다· 그때 연향은 답을 알려주지 않았는데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 어떤 비밀일까요· 궁금해지네요·
– 목련꽃은 잎사귀가 나기 전에 피어나는 성급함이고 그 목련꽃을 바라보는 사람은 또 잎사귀도 없으니 목련꽃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 그··· 그게····
현이신녀가 더듬거렸다·
알 것도 같은 것이다·
‘설마 목련꽃은 나를 말하는····’
성급한 목련꽃이 자신인 건만 같았다·
빙벽에 갇혀 있다 나왔을 때 후공을 처음 만난 순간 이미 그 순간 매료되었으니·
하지만 목련꽃만을 바라보는 이가 후공일 리가·
그럴 리 없다·
그래 그럴 리 없어·
현이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내 눈을 떴을 때 들려왔다·
– 현이신녀·
– ···?
– 그대에겐 목련향이 납니다·
– ···!
현이가 입을 틀어막았다·
별빛으로 가득 찬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 후공··· 그 말은····
– 크흠 이번이 두 번째 고백이로군요·
첫 번째는 답할 기회가 없었던 현이신녀는 이번에도 답을 할 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눈물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후공에게 훌륭한 대답이었다·
후공이 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현이가 그 손을 잡았다·
나란히 함께 걸었다·
후공은 어느 날인가 약왕문주 용악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 후공 목련향이 나면 그녀가 떠오릅니다· 왜 그런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 뭔 소리야?
이 뜻이었다·
목련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