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서생의 눈빛, 그 스산함이란
다들 갸웃했다·
그렇게 싸울 것처럼 성질을 내면서 끼어들면 어떻게 해버릴 것 같더니 왜 갑자기 딴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들을 놓아줄 생각도 없네· 또 그렇다고 천공단 중 누구에게 양보할 생각도 없고·”
“···?”
“···?”
그럼 싸우는 건 누구란 말인가?
의문에 답하듯
금적자가 한 사람을 가리켰다·
“이들을 상대하는 건 천화서고 대공자일세! 음하하하하하하!”
금적자가 좋다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항마삼협이 바로 박수를 쳤다·
“캬아 실로 탁월하십니다· 저희의 식견으로선 도저히 금적 선생을 따라가기 어렵군요·”
“하하하 이것이 꿩도 먹고 알도 먹고로군요·”
무산쌍웅도 그럴싸하다싶은지 클클클거리며 고개를 끄덕여댔다· 적도 상대할 뿐 아니라 이 기회에 천화서고 대공자의 무공 실력도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이들도 호응하며 기대된다는 듯 눈을 빛냈다·
별 걱정은 없었다·
만약 싸우다 밀리면 그때 가서 우르르 떼로 덤벼들면 그만이었다·
“이놈들이!”
음산오살의 첫째가 발작하듯 소리쳤다·
음산오살 모두가 이미 얼굴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천공단은 자신들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이니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일말의 긴장감조차 없는 모습이라니· 이럴 거면 도대체 나이는 왜 따졌단 말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천공단은 존중심 따윈 없었다·
“자 범 공자 출격하게에에!”
금적자가 시작을 알렸고
“서문가주를 상대했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보자고!”
“저 늙은이들에겐 자네의 낡은 검이 딱 어울려 보이네!”
“형아 잘하자!”
차례로 천공단이 응원을 보냈다·
후공은 녀석들을 피식 웃었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진지함이 결여된 놈들만 골라서 모아놨는지 다시금 어이가 없어졌다·
“자 그럼·”
척·
후공이 검을 집어들며 몸을 일으켰다·
이어 음산오살 쪽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다섯을 훑었다가 첫째의 어깨와 목 부위를 일견했다·
그러곤
성큼 계단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자·”
후공이 이런 한심한 짓에 놀아줄 리 만무했다· 이놈들이 싸우든 싸워서 누가 죽든 알아서 할 일이었다·
송화와 양소가 잠시 멍해져 있다가 황급히 주인을 뒤따랐다·
그러자 천공단이 부산스러워졌다·
“어디 가아아!”
“이대로 간다고?”
“이러는 게 어딨어!”
“에잇 안 싸우려나 보네·”
“우리도 가자고·”
금적자를 필두로 우르르 계단을 향해 달려갔다·
음산오살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거렸다·
‘이렇게 가버리는 건가·’
‘이게 아닌데····’
그래도 다 간 건 아니었다·
거지 둘이 남았다·
좋거나 희망적인 광경은 아니었다·
은앙개와 소천개가 탁자가 뒤엎어져 바닥에 쏟아진 요리들을 주워 먹고 있었다·
음산오살은 지켜보면서 땀이 나려 했다·
진짜 거지들이었다·
“사형 금피리 할아버지 참 못됐다 그치?”
“말해 뭐해· 이걸 엎어버리냐·”
“근데 사형아 우리도 얼른 가야지· 이건 싸달라고 할까?”
“포장 안 될걸·”
“그런가?”
그러더니 두 거지가 몇 개 더 주워먹고는 음산오살 쪽을 힐끗 쳐다보다 창문 쪽으로 가서 훌쩍 뛰어내렸다·
비로소 음산오살만 남았다·
휘이잉···
객잔 안인데 왜 바람이 부는 것 같을까·
쫓아가진 않았다· 원래라면 고함을 지르며 잔혹한 손속을 보여줘야 맞지만 음산오살은 참기로 했다·
일단 상대의 숫자가 많지 않은가·
금적자도 있고·
흉악스런 인상을 지닌 놈도 있고·
하지만 결정적으로 옴짝달싹 안 하기로 한 이유는 한 사람 때문이었다·
젊은 서생의 눈빛·
그저 훑어본다 싶을 때 신경이 곤두섰고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만약 검을 뽑았다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불길함이 머리를 사로잡았다·
특히 음산오살의 첫째는 시선이 자신에게로 옮겨지자 어깨부터 목까지 베어진다 싶었다· 하마터면 움찔해 목을 매만질 뻔 했다· 정신을 수습했을 때는 이미 상대는 계단 쪽으로 걷고 있었다·
그 스산함이란·
하지만 당장 아무도 내색은 드러내지 않았다·
첫째가 음산한 목소리를 흘렸다·
“후후 녀석들 운이 좋군· 하지만 언제까지 운이 따를지 두고 보자·”
음산오살은 두고 보기로 했다·
***
지붕 위·
금적자가 피리를 불었다·
그 곁에는 은앙개와 소천개가 나란히 앉아 멀리 밤풍경을 구경했다·
객잔에서 나온 후 부근 객방을 잡았는데 몇몇만 방에 묵고 대부분은 주변부에서 호위 임무를 수행했으니 나름 천공단이란 이름에 걸맞은 모습이었다·
“금피리 할아버지·”
한 곡조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소천개가 입을 열었다·
“오냐 거지야·”
“근데 아까 그 음산한 사람들은 왜 덤비질 않았을까요? 어째 쫓아오지도 않는 것이 패기가 없떠·”
금적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맞다· 요즘 젊은 것들은 패기가 없떠·”
금적자가 소천개를 흉내내며 말하니 두 거지가 낄낄거렸다·
“농담이고 실제로는 겁을 먹은 것 같더구나·”
“금피리 할아버지에게요?
“음하하하하 당연한 것 아니냐· 내가 예순둘인데!”
소천개가 엄지를 추켜세웠다·
“역시 나이가 깡패야· 근데 진짜 그 사람들 기운이 무섭던데 일전이 벌어졌다면 난처했을 것 같아· 보기보다 의외로 인내심이 많은 사람들이야·”
“겁을 먹으면 없던 인내심도 생긴단다·”
“언제 겁을 그렇게 주셨대요?”
“내가?”
금적자가 실실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실제로는 천화서고 대공자의 기세에 눌린 것 같던걸·”
“네? 언제요?”
곁에서 얌전히 있던 은앙개가 뭔 소리냐는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소천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짧은 순간에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는 걸 네놈들도 잘 알 텐데·”
“아니 그래도 그렇지· 그리 쉽게 눌릴 만한 자들이 아니지 않던가요?”
“그러니 대단한 것이지· 그러니 내가 대신 범 공자에게 싸워보라고 한 거고· 어? 방금 운율 괜찮지 않았냐?”
“캬아 천재인 줄요·”
소천개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감탄했다·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게 있구나·”
“두 개도 가능·”
“정녕 천공단 활동은 네 사형이 수락한 것이 확실하냐?”
“물론이죠·”
“그래? 흐음···· 천화서고 대공자를 꽤나 아끼나 보구만·”
“왜요?”
“왜긴· 개방 방주의 직계 제자가 둘씩이나 따라다니는 게 어디 쉽나· 너희 때문에라도 대공자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것이 아니냐· 혹시 개방이 천화서고에 무슨 빚이라도 있는 거냐?”
“있죠·”
“오호!”
그럼 그렇지· 역시 이유가 있었던 것이야 같은 표정을 짓는 금적자를 향해 소천개가 말을 이었다·
“고기를 많이 먹었어요·”
“응?”
“이마아아아아아아아안큼····”
소천개가 팔을 크게 벌려 천천히 거대한 원을 그려갈 때였다·
휘릭·
한 인영이 솟구쳐 지붕 위로 올라섰다·
송화였다·
“개방의 영웅분들 공자님께서 잠시 뵙자고 하십니다·”
“왜?”
은앙개가 갸웃했다·
“거기까진···”
은앙개와 소천개가 주섬주섬 일어나자 금적자가 송화를 매섭게 노려봤다·
“나는?”
***
은앙개가 투덜투덜댔다·
“건방진 새끼· 왜 사람을 오라가라야· 지는 발이 없어 손이 없어·”
“그래도 형아가 오라면 가야지· 대사형이 곁에 잘 붙어 있으란 말 잊었나 보네· 닭대가리인 줄 알았더니 붕어대가리·”
“지랄나셨습니다· 소천 대협·”
일 층으로 내려와 다시 객방이 위치한 4층으로 올라가면서 은앙개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건 소천개도 마찬가지였다·
“잠깐만·”
“헉! 이건 설마?”
둘은 날듯 달려가 천화서고 대공자의 객실 문을 부술 듯 열고 들어갔다· 펼쳐진 광경에 둘은 눈을 부릅떴다·
“말도 안 돼····”
방 안에는 잘 튀겨진 새우들이 고소한 향을 풍기며 반기고 있었다· 냄새부터 장난 아니더니 푸짐하기까지 했다· 술도 한 병 같이 놓여 있는 광경에 은앙개가 즉시 포권했다·
“대협! 부르셨습니까·”
“형아 불러줬구나·”
거지들의 장난에 후공은 너털거리고 말았다·
개방놈들의 너스레란· 어린 손자 같기도 해서 이놈들은 어떻게 된 게 미워하기가 힘들었다·
“와서 먹기나 해라·”
냠냠 쩝쩝거리며 잘도 처먹는 중에 은앙개가 새우살을 튀기며 물었다·
“야 너 뭐 우리한테 할 말이 있어서 부른 거 아니었어?”
“사형 새우를 왜 뱉으면서 말해· 아까워 죽음·”
“어 사치 부렸네·”
후공이 자리도 뜨지 않고 그저 지켜만 보고 있으니 눈치 백단인 은앙개가 먼저 말을 꺼내왔다·
“먹으면서 들어라· 최근 천화서고에 무림맹 안휘지부장이 다녀갔다·”
“어 알지· 돌려보냈잖아·”
“그때 좀 희한한 말을 들어서 말이야·”
“무슨?”
“천잠이 소란을 피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는 핑계를 대더군· 마치 대단한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절레거리기까지 하니 우습더란 말씀이지·”
천잠에 관해 파악하고자 후공은 넌지시 에둘러 물었다·
마침 천공단에 개방이 있으니 때를 기다렸던 터·
천하의 소문과 진실을 수집하고 섭렵하는 개방이 천잠의 일을 모를 리 만무했다·
“이런 우리 대공자님께서 빈정이 상하셨구만· 하긴 내내 무림맹이 코빼기도 안 보였으니 그럴 만하지·”
은앙개가 낄낄거리더니 이내 넌더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저어댔다·
후공이 미간을 좁혔다·
어째 은앙개의 모습이 천잠을 말할 때의 몽연몽과 닮아있었다·
“듣자니 대단했더라· 천잠놈들 아니 천잠육도 그놈들이 그런 식으로 미쳐 돌아갈 줄 누가 알았겠어·”
“육도(六刀)? 여섯 명인가 보군·”
“그치· 천잠노괴가 말년에 제자로 거둔 놈들인데··· 온갖 곳을 들쑤시고 다니는데 이놈들을 죽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버려둘 수도 없어서 난감했던 모양이야·”
은앙개가 주로 설명하고 소천개가 한 번씩 추임새를 넣으면서 이야기가 이어졌다·
마쳐 갈 쯤에 후공의 안색은 시커멓게 썩어 들어갔다·
은앙개가 갸웃하다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우리 대협 나리 안색이 다 죽어가시네· 놀라버린 거야? 생각하고 있던 그런 멋진 강호가 아니라서? 하하 이거 보기보다 순진하네·”
“형아 강호 맛이 어때? 굉장하지? 후공이 죽은 지가 언제인데 뭔 난리야 난리는 둥둥둥둥둥·”
“····”
강호 맛이야 후공이 어디 모르겠는가·
하지만 천잠의 경우는 얼이 나갈 지경이었다·
십오 년 전쯤 여섯 아이를 만났다·
산중에서였다·
아이들은 고아로 정처 없이 떠돌고 있었다· 그대로 지나칠 수 없어 후공은 부근에 있는 천잠노괴에게 맡겼다· 당시 후공으로선 오래 머무를 수 없는 사정이 있던 터·
아이들은 눈빛이 좋았고 근골도 뛰어나 잘만 가르친다면 대성할 싹이 보였기에 천잠노괴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잘 커 천잠육도라 불리게 된 건 알겠다만····
“어째 천잠에 대해 아는 눈치인데?”
안색이 썩었다 풀렸다 하는 걸 보며 은앙개가 물었다·
후공은 한탄하듯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일전에 몽연몽이 그랬던 것처럼 방금 전 은앙개가 그랬던 것처럼 후공도 그렇게 되었다·
대답은 소천개가 대신했다·
“바보 사형· 천화서고에 짱박혀 있던 형아가 천잠을 어떻게 알겠어· 이건 강호 맛이야!”
“하긴 그렇네· 강호의 맛이 무섭지·”
새우는 이제 온데간데없었다· 거지들이 부스러기를 주워먹고 있었다·
“다 먹었으면 나가봐라·”
“싫어!”
은앙개가 배를 퉁퉁 두드리더니 그대로 바닥에 벌러덩 누웠다· 소천개가 그 옆에 누운 건 당연한 수순·
“난 오늘 여기서 잘련다· 바깥은 위험하다구·”
“나도 나도· 여기서 형아랑 자야지· 둥둥·”
두 거지는 바닥을 뒹굴거렸다·
후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나쁘지 않군· 대신에 앞으로 너희가 채식만 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겠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은앙개와 소천개가 데굴데굴 구르면서 문 쪽으로 향해갔다· 발로 문을 열었다·
“대협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형아 잘 자· 둥둥둥·”
문이 닫히고 두 거지가 사라지자 후공은 천잠노괴를 떠올리며 진저리를 쳤다·
‘천잠노괴···· 내가 널 칭찬해야 하는 거냐 아니면 패야 하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