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천공단주 대회 (1)
“하늘이 왜? 또 비가 오나?”
금적자가 갸웃했다·
다른 이들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하늘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렸다·
“천둥도 안 치고 비도 안 오는데?”
“바람도 안 불고?”
다들 일전에 비가 내렸던 때를 이야기했다·
‘너스레는·’
후공이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
“저 높이 선회하고 있는 하얀 새가 안 보인단 말입니까·”
모두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고 그제야 고개를 끄덕여댔다·
하얀 매였다·
후공은 천공단과 조우 이후 줄곧 주위를 면밀히 탐지해온 터· 첫날 이후 무극살부의 위협은 없었지만 그들은 근처를 배회했고 청의인을 비롯 수상한 인물들이 오갔다·
그리고 저 하얀 매는 첫날부터 마차를 따라오고 있었다· 마차가 진행하면 날고 멈추면 주변을 선회했다· 또 객방에 들면 멀리 나무 위에 앉았으니 무극살부는 어떤 기회를 노리고 있음이었다·
그건 천공단도 인지하고 있을 터·
단지 진지함이 결여된 이놈들은 그저 능청을 떨고 있을 뿐이다·
“곱네 고와· 빛깔이 아주 고와·”
“선생 말씀대로군요· 예쁘게 납니다· 기품도 엿보이고요·”
금적자의 탄성에 항마삼협이 한마디 거들었다·
“캬아 구워먹으면 맛나겠네·”
“흥 저걸 구운다 한들 누구 입에 풀칠이나 하겠나요·”
이어 은앙개가 입맛을 다시며 목젖을 크게 일렁였고 그런 은앙개를 보며 묘빙빙이 핀잔을 주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묘빙빙만 모르는 눈치였다·
후공은 그녀를 위해 설명을 덧붙였다·
“무극살부가 아직 포기하지 않았고 무극살부의 추적꾼은 하늘을 날며 따라오니 우리도 우리 할 일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
묘빙빙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범 공자 지금 무슨 말이죠? 저 예쁜 새가 무극살부가 날려보낸 매라는 건가요?”
후공은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다른 이들은 이미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지라 반응이 달랐다·
“허허 추적매였나 보군· 이거 자네의 눈썰미가 대단하네그려· 한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하하하 선생! 놈들이 포기하지 않았다니 이보다 기쁜 일이 어디겠습니까·”
“축배라도 들어야 할까보이·”
금적자가 껄껄 웃었다·
“무극살부 놈들 근성 없다고 그렇게 욕을 했는데 의외로 괜찮은 녀석들이었구만·”
무산쌍웅도 태세를 급전환하며 무극살부를 칭찬했다·
뻔히 보이는 말장난에 후공이 썩은 미소를 지었다·
이들이 강호 밥을 먹은 지가 어디 하루이틀인가·
지금의 천공단 면면은 녹록치 않다·
이상한 놈들이라서 그렇지 실력까지 허술한 건 아니다·
묘빙빙만 빼고·
그때 금적자가 물어왔다·
“그래 할 일이란 건 뭔가?”
“추적매를 잡아야지요·”
“으잉? 왜에에에?”
금적자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그건 비단 금적자만이 아니었다· 다들 왜 새를 잡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후공은 미간을 찡그리는 것으로 추궁을 대신했다·
그러자 곧바로 금적자가 해명했다·
“이유야 아네만 새를 잡으면 더 이상 무극살부 놈들이 쫓아오지 않을 것 아닌가· 그럼 우린 어떻게 되겠나· 망하는 걸세· 무극이들에게도 기회를 줘야지· 사람이 빡빡하게 굴어서야 쓰겠냔 말이네·”
금적자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어댔다·
금적자 뿐만 아니라 다들 아주 큰일 날 것 같이 심각한 표정들이었다·
후공이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잡을 능력이 없다는 말을 참 길게도 하는군요·”
그동안 봐온 성향을 모를까·
도발하고 경쟁을 붙이면 상황은 달라진다·
등장할 때 말 몇 마디 누가 더 많이 하고 적게 했냐로 그 난리를 치던 놈들이다·
금세 천공단의 눈빛에 반항기가 돌았다·
후공은 장작을 더 지폈다·
“추적매를 잡으면 지루함이 덜어질 겁니다· 추적매가 사라진다면 무극살부는 초조해질 테고 서둘러 살행에 나설 것이니 왜 오지 않느냐 한탄할 일도 없어질 테지요·”
반응은 즉각 나타났다·
“오오오오오오오오! 굉장해에에에!”
“그거 괜찮군·”
“이런 난 왜 그 생각을 못한 거지? 그런 거라면 진작 잡을걸 그랬구만· 역시 천화서고 대공자의 명성은 헛된 것이 아니었군· 괜히 사람들이 천재라 부르는 것이 아니었어·”
“범 공자 당신은 왜 이제야 그걸 말하는 거에욧!”
묘빙빙까지 굳센 의지를 표명했다·
이제 천공단의 눈빛은 반짝반짝해졌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무슨 생각인지 묘빙빙이 입을 앙다물더니 한걸음 나섰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으니 다들 주목해주세요·”
시선이 모이자 묘빙빙이 말을 이었다·
“천공단 여러분께 한 가지 제안을 드릴까 해요· 우리가 함께한 지도 제법인데 아직까지 천공단에는 대표자가 없는 실정이에요· 누가 알면 위아래도 없는 곳이라며 쌍욕을 하지 않겠나요? 그러니 저 추적매를 잡는 자가 위대한 천공단주가 되면 좋겠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실없는 녀석· 위대한 천공단은 또 뭐냐·’
후공은 내심 콧방귀를 뀌었다·
천공단이 몇 명이라고 단주씩이나 뽑는다는 건지·
아무 의미도 없는 걸 가지고····
그렇게 내심 시큰둥하니 천공단을 둘러보던 후공은 하마터면 사래가 들릴 뻔했다·
화르르르!
천공단 녀석들의 눈빛이 탐욕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천공단주···· 위대한 천공단주····”
금적자의 동공 흔들림이 장난 아니었다·
삼협이며 쌍웅에 거지들까지 눈빛이 탐욕으로 쩔어갔다·
“묘 소저 천재적인 제안이오·”
“천공단주라 너무 멋지지 않는가!”
“일상에서는 개방이지만 은밀한 곳에서는 천공단주!”
“하하! 일상에서는 소천개지만 은밀한 곳에서는 두목!”
은앙개와 소천개도 주먹을 불끈 쥐었다·
천공단이 언제 은밀한 적이 있었느냐만은 그딴 건 지금 상황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는 분위기였다·
금적자가 소맷자락을 펄럭이며 성큼 나섰다·
“예법에 노인공경이 우선이니 내가 일순위로 시작하지!”
“어린 거지를 두고 어른이 먼저 나서면 반칙!”
“연약한 여자에게 양보해야 맞는 것 아닌가욧?”
“묘소저가 어딜 봐서 연약하다는 거요!”
이내 순번을 정하는 문제로 고성이 오갔다·
멱살만 안 잡았을 뿐 흉흉해진 천공단은 결국 합의점을 찾는 것이 빠르다 싶었는지 어깨를 걸친 채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는 속닥속닥 논의를 시작했다·
순번은 제비뽑기였다·
앞쪽 순서는 개방의 차지였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로 뽑힌 건 소천개·
소천개가 의기양양 나서는 모습에 금적자가 초조한 기색으로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제발··· 제발··· 나가리 되라····”
소천개는 하늘을 잠시 올려다봤다·
추적매의 위치를 가늠하는 듯하더니 이내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오오! 날아오르려는 건가!”
누군가가 탄성을 터뜨리는 순간
파앙!
흙먼지가 일며 소천개가 치솟아올랐다·
정녕 새가 날고 있는 지점까지 날아 매의 모가지를 잡아채고 올 기세였다·
소천개의 신형은 십여 장(약 30미터)까지 순식간에 솟구쳐 올랐다·
후공은 고개를 옅게 끄덕였다·
성공여부를 떠나 감탄했다·
‘제법이구나·’
소천개의 하늘을 향한 질주는 십여 장쯤이 한계였다·
그쯤에 추진력을 잃고 뚝 멈추더니 서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소천개가 추락하며 안타깝게 부르짖었다·
“안 돼에에! 새야 이리 와아아!”
올 리 없는 새를 아련히 부르던 소천개는 빙글빙글 회전하며 지면으로 추락해갔다· 하지만 땅에 부딪히기 직전 파라락 신형을 틀어 지면에 안착했다·
후공은 의미심장한 눈길을 보냈다·
‘신법의 기틀이 놀랍군·’
튕겨져 오를 때의 폭발적인 가속은 가히 ‘신법과 은신의 개방’이란 말이 헛되지 않을 만큼 훌륭한 모습이었다· 또 착지할 때의 변화나 대처의 능란함은 소천개의 재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특급살수라 해도 소천개가 마음먹고 달아난다면 잡을 수 없을 터·
추적매를 잡는 건 잡으면 좋고 잡지 않아도 다른 쪽의 기대가 있었다·
후공은 천공단의 무공 수준을 확실히 알아두고 싶었다· 적을 모른다면 이쪽의 한계와 수준을 명확히 해두어야 하는 것이다·
무극살부가 기회를 노리고 있다면 그건 틀림없이 치명적이고 예상치 못한 그 무엇일 것이다· 그렇기에 후공은 추적매를 잡는다는 핑계로 천공단의 실력을 보고자했다·
“꼬마 녀석이 대단하구만·”
“거의 닿을 뻔했다구!”
“뛰어다니는 건 역시 개방이지!”
천공단으로부터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과도한 칭찬에 소천개가 연신 히죽거렸다·
한편
금적자는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내 ‘제발 제발’ 하면서 실패하길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던 금적자는 결과를 보고 나서야 안색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이내 은앙개가 나서니 다시금 안색이 핼쑥해졌다·
은앙개가 몸을 풀며 입을 열었다·
“소천 대협 훌륭한 신법이었습니다만 아무래도 대협은 대가리를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듯하군요· 새도 아니고 날아갈 생각을 하다니· 후공이라면 모를까 무슨 수로 하늘을 난다는 건지· 쯧쯧쯧····”
“흥! 은앙 대협은 뾰족한 수가 있나 봄?”
“물론입니다· 제 대가리는 실용적이니까요·”
은앙개가 땅바닥을 훑더니 돌멩이 하나를 쥐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건 도구를 사용하기 때문이랍니다· 소천 대협은 한마디로 짐승만도 못하다는 뜻이지요·”
보아하니 은앙개는 돌을 날려 새를 맞출 생각인 듯 보였다·
은앙개가 그 자리에서 빙글 빙글 회전하더니 회전력이 집중된 한순간 손가락을 튕겼다· 돌멩이가 맹렬히 하늘로 쏘아져갔다·
피이잉!
파공음을 내며 쏘아진 돌은 속도가 너무 빨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오십여 장 밖에서 형체를 확인할 수 있었고 그쯤부터 속도가 공기의 저항에 부딪혀 부스스 파편화되어 갔다·
추적매까지의 거리는 제법 남은 상태로 은앙개가 자랑하던 도구는 허공에서 소실되었다·
은앙개가 하늘을 보며 시무룩해 있자 소천개가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도구가 어떻다구? 바보 사형 같으니! 더 큰 돌을 던졌어야지· 짐승보다 못한 멍청이가 여깄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의외라는 듯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아직 젊은데 탄지의 능이 놀랍구만·”
“그냥 빌어먹기엔 아까운 실력이 아닌가·”
후공도 은앙개를 높이 평가했다·
탄지 전 회전은 전사(轉射)였다·
멋으로 돈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에 전신의 기운을 한 점에 집중하는 전사로 탄지를 시전한 것이다·
이십 대 초반에 이 정도의 탄지를 구사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있겠는가· 십룡칠봉이라 불리는 젊은 세대의 고수들 속에 두어도 손색이 없을 만한 실력이었다·
다음 차례는 무산쌍웅·
둘은 조용히 허리춤에서 비수를 꺼내들더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추적매의 위치를 가늠했다·
선회하는 중이라 이동 방향까지 계산할 필요가 있었다·
이윽고 둘의 입에서 기음이 터졌다·
“끼야야야약”
“끼야야야야아!”
얼굴도 흉악하게 생긴 놈들이 기합도 흉측하기 짝이 없었다·
묘빙빙이 깜짝 놀랐다가 ‘시발놈들 놀래라’ 라고 입모양을 냈다· 그사이 비수는 하늘을 질주했다·
슈우우우웅·
공기를 찢으며 추적매를 향해 매섭게 질주하던 두 자루의 비수는 90여 장을 뻗어가다 힘없이 떨어져내렸다·
추적매와는 고작 20여 장을 남겨둔 터라 무산쌍웅의 얼굴이 일그러지니 원래 흉악한 얼굴이 더 끔찍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