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왜 강호의 어른 같은가·
하지만 후공의 마음을 알 리 없는 화운이다·
‘착각?’
내심 불안해졌다·
혹여 이대로 없었던 일이 되어 쇄금현침진이 눈앞에서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후공이 피식 웃었다·
“부문주 세상에 부모자식간이 아니고서야 이유 없이 잘해주는 일이 있으려고요·”
“아···”
화운이 탄성을 토해냈다·
실망한 건 아니었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고마움으로 넘쳐난다·
솔직히 안도했다·
그로선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 것 같았다·
“대공자께선 금공단을 원하시는 것이로군요·”
독양충은 당연히 건네야 한다·
그리고 쇄금현침진은 따로 분리해서 봐야 한다·
그 효용이나 가치와 견줄 수 있을 만한 것은 금공단뿐· 이는 아버지의 회복과 약왕문의 전체 운명이 달린 일이니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하하 재밌는 말씀을 하십니다· 귀문에 금공단이 있기는 합니까?”
“···?”
화운은 바로 이해가 되지 않아 갸웃했다·
‘본문에 금공단이 없다고?’
의문은 바로 해소되었다·
“금공단 대부분은 약왕문주께 쓰였다 싶습니다만· 설령 남아있더라도 극소량일 테지요· 그 정도는 예기치 못한 상황을 위해 남겨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화운은 멍청해지고 말았다·
실제로 아버지께 아홉 개의 금공단이 투여되었고 남은 것은 고작 두 개에 불과했다· 금공단을 제련함에 걸리는 기간은 이십 년· 재료를 찾는 것도 쉽지 않고 제련 성공 확률도 높지 않은 탓이었다·
늘어놔도 자신이 꺼내야 마땅한 변명의 말을 대공자가 대신 해주고 있으니 얼이 나갈 지경이었다·
‘이건··· 착각이 아니지 않은가·’
대공자는 어떻게 봐도 약왕문을 염려해주고 있었다·
자신은 쇄금현침진을 얻기 위해서라면 남은 금공단을 모두 건네줄 생각까지 품고 있었거늘 대공자는 훗날까지 마음 써주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유 없이 잘해주는 사람이 어딨겠느냐고 해놓고 정작 그리 하고 있다·
화운은 이쯤 되자 대공자가 다르게 보였다·
분명 외모는 젊은 서생인데
마치 강호의 어른과 마주하고 있는 느낌·
감싸여지고 다독여지는 기분이 들었다· 힘 내거라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래서 천공단도 대공자 곁에 맴도는 건가· 그 말에 순응하는 이유가 무력에 짓눌려서가 아닌 그저 함께하는 게 좋아서였던 것인가?
괜스레 화운은 눈가가 젖어들어갔다·
‘쯧쯧····’
그 모습에 후공은 내심 혀를 찼다·
화운의 모양새가 딱 질질 짜기 직전인 것이다· 배려해준 건 맞지만 또 우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
“부문주 어째 눈이 빨갛습니다·”
“····”
“격식 차릴 것 없습니다· 하품을 하고 싶으시면 그냥 시원하게 하십시오·”
“····”
화운이 뚱해졌다·
하품이라니····
창피하기도 하고 괜스레 서운하기도 해서 눈물이 쏙 들어갔다· 그리고 말도 퉁명스럽게 나왔다·
“그런 거 아닙니다·”
“아니면 됐습니다· 거 성격 있으시네·”
“····”
마음을 추스른 화운이 입을 열었다·
“그럼 대공자께서 원하신 건 무엇입니까?”
“원신단입니다·”
“네? 원···원신단을 말입니까? 그걸 왜?”
겨우 진정했는데 화운은 다시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이제 놀라기에도 지칠 지경·
원신단은 내공 상승과 무관할 뿐 아니라 치유와도 관련이 없었다·
“부문주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런 게 아니라··· 어디 전쟁이라도 치르러 가십니까?”
대공자가 원신단을 알고 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그보다 원신단의 용도가 문제였다· 원신단은 거의 목숨을 건 격전에서나 쓰이는 것이다·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 혹은 수적인 열세에서 격전을 치르다보면 지닌 바 내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거나 잠력까지 격발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 경우 승리를 취했다 해도 원기의 손상이 필연적으로 따라오니 폐인이 되고 만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하지만 원신단은 그런 상황에서 원기를 붙들어주고 보호해주니 생사를 가르는 대결에서 폭발적인 일격을 위한 비장의 한 수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전쟁에 뛰어들거나 원수를 죽이러 가는 건가 싶었던 것이다·
후공은 그저 멀뚱하니 바라봤다·
‘이놈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
금공단이야 있으면 좋긴 해도 약왕문주를 생각하면 무리·
그럼 남은 건 원신단뿐이었다·
다른 영단은 삼악을 이루기 직전인 자신에겐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무위나 내력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보통의 영약은 효과가 미미하고 과장 좀 보태면 한 끼 식사에 불과하다·
아주 특이한 영물이나 영초가 아니라면 백년산삼조차도 배를 채우는 용도가 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천공단의 수준도 영단으로 내공을 상승시키는 수준은 지났다· 개방 아이들조차 이것저것 많이도 먹었을 테고 묘빙빙 또한 정신 상태가 기이하긴 해도 내력이 부족한 건 아니다· 영단은 한계가 있고 어느 시점부터 중요한 건 깨달음이다·
그런 점에서 유용성을 따져보자면 원신단이 최선이었다· 사고를 전환해보면 어떤 측면에선 금공단보다 원신단이 더 낫기도 하다·
금공단은 중상을 당한 상태에서 치유 개념·
원신단은 중상을 당하기 전에 폭발적인 기세로 상대를 궤멸시킬 수 있으니 굳이 치유고 뭐고 할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화운 이 녀석은 평소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인가· 원신단이 있다고 당장 누굴 죽이러 가는 것이냐는 발상이라니· 녀석의 뇌가 궁금해지는 후공이었다·
“그냥 예비용입니다만·”
“···네·”
너무 앞서 나갔다 싶었나 하는 자각으로 화운이 나직이 답했다·
하지만
“서른 개 정도면 좋겠습니다·”
“네? 서 서른 개요? 그 정도면 전쟁을 치르····”
“예비용·”
“···네·”
화운이 다시 숨을 골랐다·
어째 대화가 이어질수록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대공자를 전담했던 아우가 왜 그렇게 어수선해 보였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어찌된 게 대공자의 말투가 한 번씩 짧아지는데도 위화감조차 느껴지지 않는 건 또 뭔지·
“대공자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독양충을 어디에 쓰시려 하십니까?”
“삼악을 이루려 합니다·”
“····”
화운이 갸웃했다·
환청인가?
듣긴 했는데 아무래도 정신이 없다 보니 이상한 소리를 들은 듯했다· 얼른 머리를 두어 번 빠르게 젓고는 다시 물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방금 말씀을 못 들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셨지요?”
“삼악을 이루려 합니다·”
“····”
정신이 나간 것이 아니었다·
화운은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하 대공자께선 농담도 잘하십니다· 하하하하하하하!”
대공자가 정신이 나간 건 아닐 테니 이는 농담이 분명했다·
그런 화운을 후공은 뚱하니 바라봤다·
화운이 친한 척 삿대질까지 해가면서 웃고 있는 것이다·
‘이놈 보게·’
버르장머리 없는 걸 떠나 독양충만 원한다는 점에서 당연히 이악은 통과했다고 보는 게 상식이거늘· 그걸 이루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언제까지 웃고 있을 겁니까?”
“하하하하아··· 아아아···?”
화운의 웃음기가 서서히 말라갔다·
이어 당혹스러운 표정이 되어 더듬거렸다·
“그 그럼··· 삼악이··· 정말입니까?”
“부문주 어디 아픕니까?”
“····”
화운은 눈도 깜박이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렸다·
삼악에 도전하는 이를 눈앞에 두고 있음이다· 그럼 정녕 이악을 성취했다는 뜻인데····
그게 되는 것이었단 말인가?
사람으로서 가능한 일이란 것인가?
그런 경악에 답이 들려왔다·
“운이 좋게도 육각망과 영악초를 구해 복용을 마쳤습니다· 꽤 고생을 했으니 독양충까지 흡수해 끝을 볼 생각입니다·”
“····”
꽤 고생을 했다니 화운은 식은땀이 급격히 증가했다·
고생이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육각망과 영악초는 고생 수준이 아니다· 하지만 대공자의 말투는 약이 좀 쓰네 정도의 발언이었다·
***
화운은 대공자를 지하석실로 안내했다·
크르르르····
석문이 열리자 천장의 야명주 아래 넓은 석실이 드러났다·
화운이 천화서고 대공자에게 목함을 건넸다·
“독양충입니다·”
“이틀이나 길면 사흘 정도 걸릴 것 같군요·”
“부디 성취를 이루시길 기원하겠습니다· 혹여 변고가 있을 시 말씀드린 대로 조치해 주십시오·”
석실 좌측의 붉은 벽돌을 안쪽으로 밀면 석문이 해제된다는 이야기를 이미 전한 터였다·
대공자가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는 것을 보며 화운은 돌아섰다·
지상의 입구로 올라온 화운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화청이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반시진(1시간)·”
화운이 짧게 답했다·
이틀이나 사흘이라니 어림없다·
이삼 일이라는 건 독양충의 내단이 체내에 자리잡아 안정화되기까지 필요한 시간· 하지만 이는 그저 이론이 그렇다는 것뿐이다·
솔직히 반시진조차 여유 있게 잡은 것이다·
화운은 믿지 않았다·
이악을 달성했다는 것도
독양충을 통해 삼악에 이른다는 것도·
사람이라면 할 수 없다· 아니 애초에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반시진이나 말입니까?”
화청이 의아해했다
“최대치를 이야기한 것뿐이다·”
둘 다 독양충의 극악무도한 악취를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대화였다· 독양충의 내단까지 갈 것 없이 외피에서 뿜어져나오는 악취조차도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이제 곧 튀어나올 테죠·”
“후후 물론이다· 처참한 비명과 함께일 테지· 검은 왜 차고 들어간 건지····”
금방 나올 거면서·
둘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무시해서가 아니었다· 천화서고 대공자는 은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는가· 단지 사람이라면 튀어나와야 마땅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 시진(2시간) 후·
화운과 화청의 눈동자는 초점이 사라졌다·
반시진은 애저녁에 지난 상태· 이젠 나오겠지 곧 나오겠지 하다 보니 어느덧 한 시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진작에 비명이 터져나와도 나왔어야 하건만 신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것이다·
“아···· 아직 목함에서 꺼내지도 않았을 겁니다· 바라보면서 고심하고 있을 겁니다·”
“그···그렇겠지?”
“···물론입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두 사람 모두 자신 없는 목소리였다·
시간은 계속 흘러 어느덧 두 시진(4시간) 경과·
둘의 안색이 핼쑥해졌다·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이었다·
“정녕··· 삼악에 도달하는가?”
“····”
이쯤 되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정황이 삼악에 이르려 함을 증명하고 있었다·
천화서고 대공자는 천부적인 재능에 더해 의지력조차 상상을 초월하는 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형님·”
“···?”
“그의 능력이라면 아무래도 만향지서를 건네····”
화청은 만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스스로 삼악에 도달한 자의 재능이라면 만향을 피워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솟구쳤다·
하지만 말을 끝맺기도 전에 화운의 호통이 터져나왔다·
“닥치지 못할까!”
“····”
“너는 은인을 죽일 셈이냐!”
“죄 죄송합니다·”
“만향지서에 대해서는 이 시간 이후 입 밖으로 거론도 하지마라· 이건 명령이다!”
“네·”
화청은 순순히 수긍했다·
제아무리 고대의 절학이라 하지만 훼손되어 칠주 중 고작 일주만 남겨진 만향지서인 것임을 다시 상기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