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히히히·
소천개와 은앙개였다·
“형아 우리 다녀왔어!”
“두목 거기 서서 멍하니 뭐해?”
가르마·
8대 2의 비율·
기름진 머리·
다가오는 두 거지의 행태를 보고 있자니 후공으로서는 숙연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소예에게 애도했다·
반면 거지들 입장에선 즐거운 시간이었나 보다·
뚱하니 쳐다보고 있자니 은앙개와 소천개가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두목 난 말이야· 이제 절대로 옷 갈아입지 않을 거다· 이 옷이 남궁소저와 함께 나란히 걸었던 옷이거든·”
“형아 진짜 오래 살고 볼 일인가 봐· 내게도 이런 날이 다오네· 이제 이 옷은 대대손손 가보야·”
“하하하 거지새끼들· 누가 들으면 옷 많은 줄 알겠네·”
웃으며 대화에 끼어든 건 이제야 기어나온 묘빙빙이었다·
은앙개와 소천개가 함께 깔깔 웃어대면서 근사하게 머리를 쓰다듬는 시늉을 했다·
후공도 그 모습에는 참지 못하고 그만 웃고 말았다·
“둘러보는 건 꽤 만족스러웠나 보구나·”
“여기? 남궁세가? 두목 난 아무것도 못 봤어· 둘러볼 정신이 어딨어· 남궁 소저 쳐다보기도 바쁜데· 안 그러냐 사제야·”
“맞아· 남궁 누나는 선녀야· 너무 예뻐· 그리고 사람이 엄청 고급져· 다정하고 품위가 있어서 누구랑은 다르더라·”
말을 맺어가며 소천개가 묘빙빙을 장난스럽게 바라봤기에 묘빙빙이 코웃음쳤다·
“미적 감각하곤· 통통해야 매력적인 거야·”
“헤헤 그렇긴 해·”
이후 쓸데없는 대화가 오갈 뿐이어서 후공은 그저 흘려들었다· 의식의 한 부분은 여전히 천향이 남겨진 참새들을 쫓고 있었다·
‘이백오십여 장···· 이백칠십여 장···· 녀석들 점점 멀리 가네·’
사백여 장 부근만 되어도 쓸 만해진다·
거기에 의식의 연계가 명확하다면 더 좋고·
사백 장이면 작은 마을일 경우 전체가 포착되는 범위요 큰 도시라면 번화가와 외곽 초입까지는 감지해낼 수 있는 거리다·
‘크흠···· 삼백 장은 이제 돌파했고····’
그때 은앙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목 이번 천룡대전 비무에서 최종 승자가 받는 상품이 뭔지 혹시 들었어?”
흠 상품이라· 그런 게 있긴 했다·
후공은 예전 천룡대전에 참석했던 때를 떠올렸다· 한 번은 영단이었고 또 한 번은 섭독주였던가· 그러니 이번에도 비슷한 수준이리라·
“글쎄·”
“그거 보러 가지 않을래? 여기 천하제일미녀랑 함께·”
은앙개가 슬쩍 묘빙빙을 바라봤다·
천하제일미녀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은앙개를 향해 엄지를 들었다·
후공은 피식했다·
은앙개며 묘빙빙이며 정녕 한패거리가 다 되었다·
“크흠···· 그래 볼까?”
이제 여유는 충분하다·
걸음을 옮기며 한줄기 의식은 열어두었다·
‘삼백오십 장····’
참새들과 연계의 명확함은 옅어져 갔다·
“그런데 그 상품이란 건 아무 때나 볼 수 있나 보지?”
“응 형아 그건 고기거든·”
“···고기?”
···그것은 새였다·
멀쩡히 살아있었다·
심지어 형형색색 귀엽기까지 했다·
약 십여 평의 공간에 천장까지 덮인 울타리 안에 있었고 또 가만히 앉아있긴 했어도 분명 살아있었다·
분명하게도 고기인 건 맞지만 또 고기가 되기 전의 상태여서 새를 향해 고기라고 부르는 건 새에게 여간 실례되는 말이 아니었지만
천공단에게 배려 따윈 없다·
“고기야! 우리 또 왔어· 형아도 왔으니까 멋지게 한번 날아 봐 줘·”
소천개가 애원하고
“근수가 뭐 이래? 야 너 몇 그릇 나오냐?”
“고기 따위가 여간 진중한 게 아니야·”
묘빙빙과 은앙개가 떠드는 사이 어느샌가 새의 이름은 ‘고기’로 굳어져 갔다· 하지만 새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후공의 얼굴은 흥미롭다는 표정이 되어 있었다·
‘색황조(色凰鳥)인가· 이걸 용케도 구했군·’
새의 이름이야 짓기 나름이지만 이 새는 종(種)으로 보자면 색황조였다·
머리 쪽은 붉은 깃털·
턱 밑은 노란 깃털·
몸통은 백색과 붉은 색상이 섞여 있다· 수리의 혼종으로 작은 몸체에도 불구하고 매우 빠르고 힘이 좋다·
그 때문에 누구는 전서매로 활용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사냥용으로 사용했으며 또 다른 이들은 애완조로 기른다·
작고 귀여운 몸체만 보면 사냥은 무슨 사냥일까 싶지만 색황조의 날을 세운 발톱은 길고 강력하며 날개 힘까지 좋아서 토끼는 물론이고 사슴까지도 발톱으로 찍어 날아오를 수 있었다·
매우 희귀해 후공도 단 두 곳 사천당문과 밀교에서 운용하는 걸 보았을 뿐이었다·
“형아 이 고기 뭔 줄 알아보겠어?”
“크흠···· 글쎄·”
“색황조래· 귀엽게 생긴 주제에 하루에 천 리를 날아간다지 뭐야· 물론 뻥이겠지만· 뭐 어쨌든 엄청 맛있겠지 않아?”
소천개가 끝을 이상하게 매듭지어버린 탓일까·
번쩍!
내내 눈을 감고 있던 새가 눈을 떴다·
투명하리만치 맑고 파란 눈동자를 빛내며 소천개를 원망스럽게 쏘아봤다·
소천개가 깔깔거렸다·
“와아 눈 떴다· 처음 떴어· 고기야 울고 있었던 거 아니지? 멍청아 내가 농담한 거야· 설마 이 형님이 널 먹겠니·”
새는 한동안 새침하게 쏘아보다가 다시 눈을 감았고 석상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삐친 어린아이처럼 귀엽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후공은 의문에 사로잡혔다·
‘왜 눈동자 색이····’
밀교와 사천당문에서 본 색황조의 눈동자는 모두 타는 듯한 붉은 빛이었거늘 어찌된 게 눈앞의 새는 선명한 청광을 띠고 있는 것이다·
밀교의 파골법사가 말하길 색황조의 가장 큰 특징이 적안이라고 했던 말도 떠올랐기에 갸웃해질 수밖에 없었다· 의문을 가지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깃털의 배열과 윤기도 조금 달라 보이는 느낌이었다·
혼종의 혼종인가?
의문이 이어졌지만 후공은 바로 생각을 떨쳐냈다·
혼종이든 아니든 무슨 상관인가· 새를 가져다 키울 것도 아니고 있어봐야 번거롭기만 할 뿐이다·
후공이 모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쯤에서 돌아가자· 다들 고기에게 인사 건네도록 해·”
번쩍·
새가 다시 번쩍 눈을 떠 이번엔 후공을 노려봤다·
후공은 살짝 손을 들어 흔들어 주었다·
돌아가는 길에 다시 확인해 보니 참새들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사백여 장 부근에서 흐릿하게 머물더니 이후 선이 끊어진 것처럼 더 이상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
그 밤·
안휘 남부의 어느 골목·
인적이 드문 길·
중년 남자는 처량해 보였다· 길가 나무에 기대앉은 채 머리를 무릎에 파묻고 있었다· 손은 축 처져 늘어졌다· 복색도 하필 흑의여서 더 음울해 보였다·
쫓겨난 건가? 마음의 상처를 입었나? 실연이라도 당한 것일까? 아니면 집안에 누가 아픈가?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기 마련이다· 지나는 사람들은 중년인을 흘깃거리며 길을 지났다·
밤이 더 깊어졌다· 사람의 왕래는 사라졌다· 이젠 정말이지 아무도 안 지나갈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이 중년인에게 더 나은 걸 수도· 하지만 반시진 만에 사람이 나타났다·
“카악 퉤!”
건달이었다·
거칠게 침을 뱉은 건달은 중년인 앞에 섰다·
건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가끔 이런 새끼들이 있어· 처량하게 세상 다 산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앉아 있다니까· 야 너 뭐하는 새끼야? 왜 그러고 있어?”
대답은 없었다· 건달이 낄낄거렸다·
“이거 이거 상처를 크게 받았구만· 내가 또 그런 건 전문이지· 삶이란 말이야 참 우스워·”
건달이 히죽이며 말을 이었다·
“더 큰 고통이 오면 지금 고통은 별것 아니란 생각이 들거든· 내가 그동안 편하게 살았구나· 시발 내가 아주 복에 겨웠구나 하면서 정신이 번쩍 든단 말씀이지· 자 그런 의미에서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놔 봐·”
중년인은 미동조차 없었다·
건달은 머리를 후려갈겼다· 중년인의 머리가 출렁였다·
“어우 이 새끼 맷집 봐·”
건달이 발로 머리를 후려깠다· 그래도 안 움직인다·
“아니 시발· 사람이 말을 하면 대답을 해야지 얼마나 처맞아야····”
건달은 말을 멈췄다· 중년인이 고개를 든 것이다· 하지만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중년인이 웃고 있었다· 입을 귀까지 찢은 채로 활짝 웃고 있었다· 눈빛은 핏빛· 어두운 탓에 죽은 피 같았다·
“너··· 너 뭐야?”
건달이 주춤했다·
중년인이 웃으며 말했다·
“나? 나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네가 누구인지는 알지·”
“날 안다고?”
건달은 본 적이 없었다· 이런 끔찍한 눈빛과 사악한 웃음은 장담컨대 처음이었다·
“그래· 알아· 아주 잘 알지· 넌 오늘 나의 저녁 식사야·”
눈빛만큼이나 끔찍한 말이었다·
“이 미친 새끼가 뭐라는 거야!”
질려버린 건달이 달아났다· 하지만 그건 소망에 그쳤다·
“커헉!”
손길에 목이 잡혔다· 건달은 두 발이 땅에서 들려 대롱거렸다·
‘어떻게 움직였지 언제 목이 잡혔지?’
건달은 보지 못했다· 몸이 덜덜 떨려왔다·
“사 살려 주십····”
중년인이 웃었다·
“참 좋은 세상이야· 음식이 말을 다하고· 그렇지 않아?”
건달이 빌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그래 없겠지· 넌 곧 죽을 테니까· 넌 내 뱃속에 들어가 있을테니까까까까까까까·”
뚜득·
들린 채 건달의 목이 꺾였다·
아직 죽은 건 아니었다· 덜 꺾였다·
중년인이 팔을 끌어당겼다· 건달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웃는다· 운다· 웃는다· 말한다·
“나는 누구? 나는 누구?”
건달은 떨었다·
‘누구냐니····’
건달은 목이 아파서도 끔찍해서도 또 본 적도 없어서 답을 할 수 없었다· 중년인이 눈앞에서 다시 웃는다· 묻는다· 빠르게 묻는다· 나는 누구? 나는 누구? 나는 누구? 나는 누구? 나는 누구? 나는 누구? 나는 너· 나는 누구? 나는 누구? 나는 누구? 나는 누우우우우우우구? 건달은 무서워 울었다· 말을 왜 계속 반복해···· 그만 좀 제발····
하지만 더 무서운 건 따로 있었다· 나는 누구? 나는 누구? 나는 누구? 나는 누구? 나는 누구? 나는 누구? 나는 누구? 나는 누구? 나는 누구? 이렇게 말할 때마다 중년인의 얼굴이 계속해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정말 이자는 누구일까?
어떻게 얼굴을 계속 바꿀 수 있지?
바뀌는 얼굴 중엔 건달 자신의 얼굴도 있었다· 중년인은 여자가 되기도 노인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으캬캬캬! 어쨌든 잘~ 먹겠습니다아아아아아아 하하하하!”
중년인이 건달의 목을 깨물었다·
‘먹는다는 게····’
피가 빨려나간다· 건달은 몸이 나른해졌다· 천천히 의식이 사라졌다가 돌아왔다가 아예 끊어졌다·
건달의 몸은 볼품없이 쭈그러들었다· 중년인은 뒤쪽 숲속으로 끌고 가 땅에 내던졌다· 하지만 작별인사를 하는 건 잊지 않았다·
나는 예의 바른 사람이야·
머리를 숙이고 처연히 합창했다·
“무병장수하세요·”
아 이미 죽었지· 낄낄 거렸다·
다시 다시· 제대로·
“자아알~ 먹었습니다아아아 맛있었습니다아아아 맛이 끝내줬습니다아아아아 으캬캬캬캬캬캬캬캬·”
중년인이 품에서 옥병을 꺼냈다·
마개를 열어 건달의 시체에 부었다·
치이이익!
연기가 일며 시체가 녹아내렸다· 건달은 삽시간에 한 줌 혈수로 변해 감쪽같이 사라졌다·
중년인이 히죽 웃었다·
“으캬캬캬! 남궁세가 가주의 딸이 그렇게 아름답다던데 그년은 어떤 맛일까· 얼마나 맛있을까· 마지막으로 먹어야지· 아껴먹어야지· 맛있을 거야· 시발 빨리 먹고 싶어·”
중년인이 돌아서 허공을 응시했다·
어이 이봐 다들·
너무 날 나쁘게 생각하지 마·
나 귀오령·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야·
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