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숨 쉬는 것 정도?
하도 어이가 없어 남궁연은 헛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걸 참아야했다·
처음 세 개의 주사위를 띄울 때만 해도 놀라 흠칫했는데 그 주사위들이 떠있는 채로 각각 한 면씩 방향이 휙휙 바뀌는 것을 보면서부터는 그냥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 뒤의 상황은 뭐 말할 것도 없었다·
허공에서 맹렬하게 돌던 주사위가 동시에 멈추는데 왜 똑같이 1이 나오고 왜 또 6이 나오는 건지 도대체 그걸 어떻게 식별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또 정확히 그 순간에 멈추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도무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광경이라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릴 지경이었다·
그때 운용자가 빈정거렸다·
“도신께선 언제까지 한 번씩 원통 안을 쳐다만 보고 있을 겁니까? 연습한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그 말에 남궁연이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참고 있을 때 후공이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연습은 다 끝났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할 테니 모두 까무러칠 준비나 하고 계십시오·”
말을 맺은 다음 후공은 원통을 흔들었고 남궁연은 느낀 바를 머리에 기록했다·
– 두목은 재밌는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 되리라·
**
도박장 책임자는 독안미녀(獨眼美女)였다·
사십 대 초반의 미부인인 그녀는 외곽의 주루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중 다급히 달려와 보고하는 수하의 말에 두 눈을 서슬 퍼렇게 빛냈다·
“금전 10만 냥이 날아가게 생겼다니 넌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대주님 헛소리가 아닙니다· 36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십팔 십팔 십팔! 이렇습니다· 시팔 진짜 보고 있는데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지금 당장 가셔야 합니다· 일곱 번째 연속으로 나온 걸 보고 뛰쳐나온 것입니다· 지금쯤 열 번을 채웠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자는 채울 수 있는 사람입니다·”
“가자!”
황당한 말이었지만 수하가 거짓을 고할 이유는 없다·
금전 10만 냥이 날아가면 안 된다· 특히 오늘은 털리면 곤란하다· 다른 날도 마찬가지지만 오늘 밤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무마시켜야 한다·
‘죽여서라도 반드시 막아야 해·’
독안미녀가 솜씨 좋은 칼잡이들을 이끌고 도박장으로 들어섰을 때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도박장의 모두가 한 젊은 서생을 둘러싸고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즉시 찬물을 끼얹었다·
“문 걸어잠가라아아아!”
철컥 철컥·
문이 잠기는 소리와 함께 서른세 명의 칼잡이들이 도검을 빼들었다· 갑자기 험악해진 분위기에 환호성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다들 뒤쪽으로 물러나기 바빴다·
독안미녀의 시선이 후공을 향해 날아들었다·
“나 독안미녀 긴 말하지 않겠다· 어떤 속임수를 사용했는지도 묻지 않으마· 배려 차원에서 금전 백 냥을 챙겨줄 테니 조용히 떠나도록 해·”
“독안이라고?”
후공이 갸웃했다·
미녀인 것도 모르겠고 두 눈도 다 멀쩡한 것이다·
독안미녀는 여유롭게 소매에서 검은색 안대를 꺼내 한쪽 눈을 가렸다·
“깜박했네·”
후공은 일순 멍해졌다가 이내 웃고 말았다·
“하하 넌 재밌게 사는구나·”
독안도 그렇지만 별호에 미녀를 당당히 붙이고 다니는 녀석이 있을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하지만 말투가 문제였다·
“사는구나?”
독안미녀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어린놈이 반말이나 찍찍하고 버르장머리가 없구나· 생각이 바뀌었다· 우선 네놈에게 예의를 가르친 다음 널 보낼지 말지 결정하겠다· 진초!”
진초가 이름이 불리자마자 후공을 향해 쏘아져갔다·
삼 장여 앞까지 이른 순간
쿠웅!
진초가 없어졌다· 사라져버렸다· 분명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는데 소리가 난 쪽을 보니 오른쪽 벽에 처박혔다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언제 날아갔냐·’
독안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서생 앞쪽에 어느샌가 또 다른 젊은 놈이 서 있다· 실력 면에서 가장 신뢰하던 진초였기에 그 진초가 벽에 붙다시피하며 커컥대고 있었기에 그녀의 한쪽 눈은 시린 빛을 발했다·
바로 뒤쪽을 향해 앙칼지게 소리쳤다·
“문 열어드려라아아아!”
철컥 철컥· 부산하게 문을 여는 광경에 후공은 또 다시 웃고 말았다· 걸음을 옮겨 독안미녀에게 다가갔다·
독안미녀가 커다란 보따리를 내밀었다·
남궁연이 대신 받아 안을 살폈다· 전표며 금전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바로 물었다·
“얼마입니까?”
“금전 육만 냥입니다· 깎아 주십시오·”
남궁연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후공을 바라봤다·
후공이 피식 웃었다·
“독안미녀·”
“네? 네·”
“난 제왕객잔에 머물고 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후공이 독안미녀를 지그시 바라보자 그녀가 슬그머니 눈을 아래로 깔았다·
그 사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전해라·”
“···!”
그녀의 머리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 외에 다른 사람은 생각할 수 없었다·
**
하오문주는 한껏 눈을 찡그렸다·
그 앞에는 독안미녀가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대고 있었다·
“독안아 그러니까 육만 냥이 털렸다고?”
“네 살려주십시오·”
“야 원래 이럴 땐 죽여달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살고 싶····”
“알았다 알았어· 그냥 살아라· 천년만년 살아라 이년아·”
“감사합니다·”
하오문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애초에 네가 상대할 수 없는 놈이 아니었던 거지·”
“그자를 알고 계셨던 거군요?”
“아니· 누군지는 몰라·”
“네? 대 하오문의 문주께서 모르는 사람이 있단 말입니까?”
독안미녀의 한쪽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게· 근데 놈은 나를 알고 있는 것 같단 말씀이야·”
“분위기 싸한데요?”
“야 그거 내 대사 아니냐·”
“죄송합니다·”
“흐음···· 어쨌든 내가 관찰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관찰당하고 있었던 거다· 분위기가 아주 싸해· 뭐 만나보면 알겠지· 돈도 찾아와야 하고·”
“문주님·”
“왜?”
“부디 조심하십시오·”
“야 불길하게 왜 그래! 죽길 바라는 거냐?”
“죄송합니다· 놈은 제왕객····”
“알아!”
**
후공은 기다리며 사천당문의 문주 당명의 말을 떠올렸다·
[후공 하오문주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한 가지만 대보라고 했더니 제법 근사한 말이 흘러나오지 뭐겠습니까·]
[제법?]
[네 뜻밖이었습니다· 글쎄 하오문주가 되면서 다짐한 게 있다는 겁니다· 뭐냐고 물으니 각 성마다 각 지역마다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 보육 건물을 짓고 돌보는 것이라고 말하지 뭡니까· 그래서 돈이 많아야 하고 악착같이 벌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미친놈이네·]
[흐흐 그렇죠·]
이후 하오문주와 마주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괜찮은 녀석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인정해주자 설표는 그게 좋았는지 하오문에 대해 온갖 이야기를 해댄 탓에 후공은 그리 관심도 없고 또 알고 싶지도 않았던 하오문의 구조며 관리방식 심지어 하오문의 신물과 기밀에 해당하는 것까지 듣게 되면서 얼떨결에 거의 전문가가 되고 말았다·
그래놓고 잊고 있었건만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니 정녕 삶이란 예측 불가다·
이것도 인연·
향후 강호에 있어 하오문은 도움이 될 것인가·
도움이 될 것이다·
사황천의 다른 일맥이 유령곡이 혹은 귀운종이 음지에서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런 날이 온다면 친구는 많을수록 좋다·
하오문 또한 친구로 둔다면 필요할 때 적절한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개똥도 약이 될 때가 있는 법이니·’
되도록 안 썼으면 좋겠다만····
**
객방 안에서 마주하였다·
소개는 간단히 마친 터· 안휘 북부를 뒤흔든 천화서고 대공자가 자네였냐면서 하오문주가 몇 번이나 놀라워했고 한참이 지나서야 진정했다·
그리고 이내
객방 내 탁자를 사이에 둔 채 후공이 차를 권했다·
“하오문주 드셔보십시오· 향이 제법 좋습니다·”
“독은 없겠지?”
“하하 제가 독을 넣을 이유가 있겠습니까?”
“내가 색황조를 노린 걸 알고 있잖나· 그래서 도박장을 거덜내버린 거고· 앙심을 품을 만하지·”
후공이 미소를 머금었다·
“앙심 같은 건 없습니다· 그저 도박장을 찾은 건 만남을 청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제가 훔치려는 자에게 직접 찾아가면서까지 그러지 말라고 하는 건 모양새가 우습잖습니까·”
“크크 그렇긴 하지· 그래서 자네의 용건은 뭔가? 색황조를 포기하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포기하신다 해도 저로선 딱히 얻는 것이 없으나 문주께선 얻는 게 많을 겁니다·”
하오문주가 고개를 갸웃했다·
“포기하는데 얻는 게 많다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많습니다· 첫째는 제 돈 금전 6만 냥을 대가 없이 드릴 참입니다·”
“흐흐···· 에이···· 원래 그거 우리 건데 생색이구만· 뭐 그렇다 치고 둘째는 뭔가?”
“장봉에 있는 만호객잔도 드리겠습니다·”
“만호객잔? 그걸 왜····”
그러다 깨달았는지 이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이야 천재라더니 자네 진짜 그럴싸하구만·”
오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고 계획대로 진행되었다면 색황조는 색황조대로 훔쳐내지 못했을 테고 만호객잔만 쓸데없이 잿더미가 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했다· 정녕 관찰당하고 있었음이 사실로 드러난 셈이지 않는가·
“설마 또 있나?”
“아직 많습니다·”
“허허 기대되는군· 또 뭔가?”
“셋째는 문주의 목숨을 한 번 구해줄 생각입니다·”
“으잉?”
너무 뜬금없어 하오문주 설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황스럽군· 누가 날 노리고 있단 말인가? 내가 죽는 거야? 왜 난 모르고 있지? 그게 누군가?”
“접니다· 제 손에 죽습니다·”
“왜에에에?”
“저는 누군가 제 물건에 손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보통의 경우 죽입니다·”
“허어···· 그런데 이번 한 번은 살려주겠다?”
하오문주가 기가 막힌지 한동안 말을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다가 겨우 다시 입을 열었다·
“죽일 자신은 있나?”
“숨 쉬는 것 정도?”
“자네 말이 좀 심하구만·”
여태 실실거리던 하오문주의 안색이 굳어졌다·
후공이 빙긋 웃었다·
“이렇게 가까운 간격에서 문주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마치 이런 식입니다·”
찻잔을 쥐고 있던 후공이 손가락을 튕긴 순간
쿵·
하오문주의 머리가 탁자에 처박혔다·
혼혈이 찍혀 잠시 기절했던 하오문주가 깨어난 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 후였다·
“하오문주 하오문주!”
“어····”
하오문주는 고개를 들고는 얼떨떨하니 두리번거렸다· 여전히 맞은편에 앉아 있는 천화서고 대공자를 바라봤다가 이내 객방을 둘러보고 또 자신의 몸도 훑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어난 거지? 설마 대공자가 날 기절시켰다고? 언제? 어떻게?’
하지만 그 외에 다른 건 생각할 수가 없었기에 비로소 하오문주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숨 쉬는 것 정도라는 게····’
진짜였다·
“하오문주 기절로 끝냈으니 말씀드린 대로 제가 목숨은 한 번 구해드렸습니다·”
“그 그게··· 그렇게 되는구만·”
하오문주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뭔가 잘못됐다· 색황조가 문제가 아니었다· 대체 자신은 누굴 건드린 건가·
“드릴 것이 아직 두 개가 남았습니다· 문주께선 마저 들어보시렵니까?”
“으으···· 솔직히 좀 무서워지네만··· 듣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