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온 강호가 적이 된 듯하다·
대공자는 그저 미소만 짓고 있다·
하지만 천산신녀는 보채지 않고 대답을 기다렸다·
대제자의 목숨을 거두었으니 이제 소요파와의 전쟁은 불가피하다· 천공단주는 머뭇거리지 않고 실행에 옮겼으니 이미 다음 계획은 있을 것이다·
무엇일까? 그녀는 스스로 떠올려보았다· 만약 자신이 결정을 내려야하는 존재라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
천산신녀는 면사 안에서 눈만 두 번 깜박였다·
그저 막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때 대공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은 간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신선께서 나타나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신선이라고요? 호호호 갑자기 말인가요?”
천산신녀는 기대하고 있던 터라 그만 웃고 말았다·
“원래 신선이란 분들이 그렇잖습니까·”
“그래 무어라 하시던가요?”
“도망쳐!”
“····”
면사 속 천산신녀의 얼굴이 뚱해졌다·
대공자의 말이 이어진다·
“그 한마디를 꽥 지르시더니 구름을 타고 떠나버리셨습니다· 어디를 그리 바쁘게 가시는지·”
“그래서 이제 도망치는 건가요?”
“네 도망칩니다· 감당 못 할 일을 저질렀으니 멀리 도망가서 숨을 겁니다· 무서우니까요·”
“하하 진심은 아니겠죠?”
천산신녀는 농담으로 여겼다·
무섭다고 말하면서도 대공자가 웃고 있는 것이다·
“크흠··· 진심입니다· 제가 무서우면 이렇게 웃는 얼굴이 된답니다·”
“····”
다시 면사 속 천산신녀의 표정이 뚱해졌다·
후공은 그 모습을 보았지만 더 설명해줄 생각이 없었다· 시간을 당겨야 한다· 바로 금적자를 돌아봤다·
“금적선생·”
“단주 말씀하시게·”
“대운루 루주를 만나고 오십시오· 그에게 이리 전하십시오·”
루주에게 해야 할 말과 이후 합류 지점을 알려준 다음 항마삼협을 지목했다·
“혹시 모르니 안전하게 가죠· 삼협께선 남궁 형과 함께 표국에 동행하시고 합류지점으로 곧바로 돌아오십시오· 들으셨다시피 도망쳐야 하니 다들 서둘러주십시오·”
“하하 그럼세·”
“하하하 조금 늦더라도 형님 먼저 떠나시면 안 됩니다·”
도망쳐야 한다는 말에도 천공단은 누구도 묻지 않았고 토를 달지 않았다·
*삐이익 삑삑!
대청마루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루주는 귓가에 붙다시피 울린 피리 소리에 화들짝 깨어났다·
“아니 어떤 새끼가 장난을 쳐도··· 어?”
루주는 바로 싸대기를 갈기려다 손을 멈췄다·
상대가 금적자였다· 루주는 어정쩡하니 손을 끌어와 머리를 쓸어넘겼다·
“선생이셨습니까? 난 또 어떤 상놈의 새끼인가 했습니다·”
삐이익 삐이익·
금적자가 성질을 피리소리로 대신했다·
루주가 껄껄 웃었다·
“농담입니다 농담· 근데 혼자 오셨습니까?”
“어 그렇게 됐어· 다 도망칠 거라·”
“네?”
“그놈 죽였어·”
“네??”
“염가놈·”
루주의 입이 쩍 벌어졌다·
“우와아 진짜 죽여버렸습니까? 와아 생각지도 못했네· 결단력 대체 뭡니까?”
루주는 혀를 내둘렀다·
이제 없던 일로 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
죽고 죽이는 일만 남았다·
한데 도망친단다·
절로 헛웃음이 터지는 루주였다·
“설마 영원히 도망다닐 생각입니까?”
“하하하하!”
“아닙니까?”
“영원히는 무슨· 이 보 전진을 위해 백 보 후퇴라고나 할까·”
“이여어~~ 백 보나 후퇴해버리는 겁니까?”
“천공단주는 통이 커· 도망치는 것도 규모가 다르지·”
“크으··· 진짜 장난이 아니긴 합니다·”
그러면서 루주의 목소리가 일순 은근해졌다·
“지난밤에 제가 이상하고 따끈한 소식을 들었는데 말입니다·”
“응?”
“얼마 전 천룡대전에서 천공단주가 엄청난 위용을 드러냈다고요·”
“하하 들어버린 거구만·”
“자세히 좀 들려주십····”
“길어· 다음에·”
“끄응 다음에 꼭입니다· 그래 뭘 도와드리면 됩니까?”
“별일은 아니고 두 가지만·”
**
태인표국의 표사와 쟁자수가 염화평의 싸늘한 시체를 끌고 소요파 산문에 도착했다·
산문 앞에서 멈췄다·
표물 운반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곳에서 기다려야 하고 그러면 나타나게 되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내 바람이 일더니 소요파 제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엇이고 누가 보낸 것인가?”
소요파 제자들의 눈길이 커다란 정육면체 나무 상자에 닿았다·
표사가 싱글벙글 웃었다·
“의뢰인은 천화서고 대공자라고 했습니다· 내용물은 원래 소요파의 것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보물이냐고 물으니 아니라더군요· 소요파에 그리 소중하지도 가치도 없는 거라고· 그래서 갸웃하긴 했습니다· 한데 이거 묘합니다· 하아 냄새가 아주····”
“응?”
“받을 땐 몰랐는데 운송하는 내내 냄새가 은근히 피어오르는 겁니다· 정녕 이런 꽃향기는 처음입니다· 여러 꽃향기가 섞인 듯한데 기분까지 좋아진달까요·”
“열어보라·”
“제가 말입니까?”
소요파 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뚜둑·
나무상자 한쪽을 뜯어낸 표사가 사색이 되어 뒷걸음질 쳤다·
“으허억!”
**
소요파는 뒤집어졌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경악은 분노가 되었으며 살의가 되었다·
장문인 월령자의 분노는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즉시 사대 호법이 소환되었다·
“목호와 월호! 너희는 신행단과 함께 승곡을 샅샅이 뒤져라· 놈들의 행태가 겁이 없고 분별이 없으니 필시 승곡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신행단은 소요파 최정예 십이단 중 하나·
목호와 월호가 52명의 신행단과 함께 나섰다·
“도주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적호와 청호! 너희는 각기 천행단과 주행단을 이끌고 승곡의 너머부터 추적을 개시한다· 전서매를 통해 각기 소통하라!”
지시는 이어졌다·
“장로 청령자는 들어라·”
“하명하십시오·”
“그대는 정행단을 이끌고 천화서고로 간다· 멈추지 마라· 전력을 다해 나아가 천화서고를 장악하고 가주와 친족들을 본 파로 끌고 오라!”
“명을 따릅니다·”
다른 장로들도 임무를 받았다·
“장로 진령자! 그대는 본파의 모든 속가에 전서를 띄운다· 그 무엇보다 천화서고 대공자를 찾는 일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명시하라!”
소요파의 속가제자들은 천하각지에 없는 곳이 없다·
그들은 비상시 소요파의 눈이요 귀가 된다·
“장로 추령자는 들어라!”
“장문인의 하명을 기다립니다·”
“산서성에는 소요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산서제일가인 진주언가에서 나서준다면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라· 또한 하북성과 산동성 쪽으로도 하북팽가와 산동악가에 전서를 띄우라·”
“명을 따릅니다·”
소요파의 천라지망이 펼쳐졌다·
그물은 촘촘하고 단단하다·
그 누구도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무모한 행동의 결과는 참담할 것이다·
월령자는 장담했고 소요파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날 밤부터 소식이 들어왔다·
승곡을 샅샅이 훑었던 신행단은 천공단의 행적을 찾지 못했다· 태인표국 주변에서 목격자가 나왔지만 그뿐이었다·
돌아온 신행단은 새로운 목적지를 부여받았다·
섬서성과 호북성으로 향했다·
다음 날은 정행단과 주행단의 전서가 도착했다·
성과는 아직이었다·
사흘째·
정오 무렵 진주언가로 떠났던 전서매가 발목에 답신을 매달고 돌아왔다·
소요파는 빠른 회신을 흡족히 여겼다·
하지만 정작 답신의 내용은 이외였다· 아니다· 그건 가히 충격적이라 할 만했다· 그건 결코 소요파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그 내용인즉
– 진주언가는 분명하게 밝힙니다·
천화서고 대공자가 소요파를 적대시하였다면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모호하고 설령 잘못된 것이라 해도 진주언가는 개의치 않습니다·
천화서고의 적은 진주언가의 적이며
천화서고의 친구는 진주언가의 비호를 받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명시합니다·
이날로부터 소요파는 진주언가의 적입니다·
천룡의 맹세는 수많은 겨울과 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무슨····”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아니 어찌하여 천룡이····”
한 통의 서신이 소요파의 지도부를 뒤흔들었다·
오늘부터 적이라니 말이 나오지 않는다· 도대체 천화서고 대공자와 진주언가가 어떤 관계이고 어떤 인연이기에 이런 날선 반응이 나오는지 소요파는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당혹스러운 건 서신의 후반부다·
천룡의 맹세·
강호인 중에 ‘천룡’의 의미를 모르는 자는 없다· 이는 십대세가의 연대를 뜻하는 것이다·
다음 날 이 의문에 종지부가 찍혔다·
하북팽가와 산동악가에서 돌아온 전서는 진주언가와 하등 다를 것이 없었다·
“····”
“····”
“····”
모두가 아예 할 말을 잃었다·
십대세가 중 세 곳이 소요파를 적으로 명시했다·
아니다· 네 곳이라고 해야 한다· 천공단에 남궁세가의 대공자가 버젓이 활동하고 있다· 또한 이는 세 곳의 회신이었을 뿐이었으니 다른 세가의 반응도 다르지 않으리라·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천라지망 7일째·
천화서고를 장악하러 간 장로 청령자로부터 소식이 들어왔다·
전서매가 가져온 결과물은 처참했다·
천화서고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진법의 발동으로 부상자가 속출했다고 했다· 절반가량이 당했고 천화서고는 바깥출입이 전무하여 그 누구도 손에 넣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설상가상이었다·
안휘 북부 명문가들·
백화장 염화각 청월문 대륙전장 등의 고수들이 천화서고를 비호하고 나섰고 심지어 천화서고에 당했던 서문세가까지 그 힘을 보태고 있는 가운데 대치 중이라고 했다·
하루하루 최악의 소식만 돌아왔다·
천화서고 대공자의 행적은 여전히 묘연하여 찾을 수 없는데 어찌된 게 도리어 그의 영향력만 확인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끝은 아직 아니었다·
그날 오후부터 하나의 이야기가 승곡을 휩쓸기 시작했다·
“자네 소문 들었나?”
“소문?”
“소요파 장문인의 대제자가 죽었다고 하더라고·”
“헐! 병인가?”
“병은 무슨· 살인청부에 당했다던걸·”
“왜에에?”
“몰랐는데 그자가 여자를 그렇게 밝혔다지 뭔가· 그래서····”
반점에서 나돌고
“뭔 개소리야· 살인청부는 무슨· 그거 천화서고 서생이 손을 썼다던데·”
“서생이? 와아 서생이 겁이 없네·”
“근데 묘해·”
“또 뭐가?”
“소요파 장문인이 살인청부 조직의 우두머리를 보호하고 있다는 말이 돌아·”
“왜에에?”
“나야 모르지· 그냥 소문이 그런 거니까· 패나 돌리자고·”
도박장에서도 말이 오갔다·
술과 노래가 오가는 기루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대인 그 이야기 들으셨나요?”
“소요파 장문인 대제자 이야기는 아니겠지?”
“호호호 이미 들으셨군요· 근데 왜 죽었나 모르겠어요·”
“쯧쯧 월향이 넌 허당이구나· 원래 그자가 여색을 그렇게 밝혔다더라·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여자를 다섯을 죽였다나 여섯을 죽여다나·”
“헉 말도 안 돼·”
“놀랬냐? 소문으로는 죽은 여인의 아비가 전 재산을 들여 살수를 고용했다고도 하고 또 다른 이야기로는 천화서고라는 곳에서 나서서 죽였다고도 하더라·”
“천화서고요?”
“뭐 이야기가 그렇다는 거지· 나도 잘 모른다· 한데 소요파의 기세에 눌려 원통함을 풀지 못했던 집안에선 천화서고 방향으로 큰절하고 난리가 났다던걸·”
“호호호 그럼 잘 죽었다는 거잖아요?”
“어허 그래도 사람을 막 죽이고 그러면 쓰나·”
“역시 대인이셔· 오늘따라 특별히 멋져 보이세요· 모르시는 것도 없으시고·”
“요년 요년· 말 이쁘게 하네· 엉덩이 팡팡해야겠다·”
“어딜 때려요 흥분되게· 호호호호!”
그날 밤이 끝나기도 전에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당연히 소요파의 귀에도 들어갔고 모두가 당혹을 금치 못했다·
결코 공표한 적이 없었고 비밀로 해야 할 이야기가 퍼졌다· 어느 시점까진 반드시 숨겨야 할 이야기거늘 하루아침에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라니·
소요파 내 영민한 이들은 바로 한곳을 지목했다·
“소문이 구체적이고 일시에 퍼진 걸 보면 이 또한 천화서고 대공자의 의도이며 필시 하오문이 개입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당장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무슨 조치를 취한단 말이오?”
“····”
답은 없었다·
그건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것이다·
“하오문을 어떻게 잡겠다는 거요? 그대는 설마 모든 기루의 기녀들과 주루와 반점의 점소이들 짐꾼들이며 도박장의 사람들이 전부 하오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오?”
“그 그게····”
“모두 잡아들여 누가 하오문인지 가려내기 위해 그들 모두를 고문이라도 할 참이오? 그렇지 않아도 민심이 흉흉해진 이 마당에 참 좋은 계책이구려·”
천라지망 8일째·
천라지망이라는 말은 무색해졌다·
아니다·
도리어 소요파는 포위당한 듯하다·
진주언가 산동악가 하북팽가 남궁세가·
그 외 천룡의 연대·
또한 안휘 북부 명문가들의 연맹·
한편 천화서고는 진법으로 두르고 있어 철옹성이다· 그 와중에 민심은 빠른 속도로 소요파를 외면하고 있었다· 하오문까지 천화서고를 돕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어찌된 일인가·
그저 천화서고 대공자를 적으로 삼았을 뿐인데 어느샌가 사방이 적이다· 놀랍게도 온 강호가 적이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