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흔적을 지우고, 흔적을 찾는다·
북교산에는 원래 주인이 있었다·
문서화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강호인이라면 다 안다· 북교산의 주인이 녹림 북교채임을·
그런 북교산에 강호인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몰려드는 탓에 주인된 북교채주 입장에선 웃음꽃이 활짝이었다·
호황도 이런 호황이 없었다·
소가 아주 잘 팔렸다· 어디 소뿐인가· 돼지도 키우고 있어서 돼지도 돈벌이가 쏠쏠했다· 사냥을 금지했기에 북교산에서 뭘 구워먹고 싶다면 녹림을 통해야 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었다· 상도덕 없이 사냥하는 놈들도 많았다· 그런 놈들 중에 녹림은 만만하다 싶으면 잡아다 패고 강한 자들은 못 본 척 눈감아주었다· 속으로만 욕했다·
판매는 주로 수하들이 했다· 하지만 가끔은 채주가 직접 나설 때도 있었다·
명성 높은 자들을 상대할 때였는데 지금도 그 경우였다·
“돈·”
북교채주가 소를 건네고 손을 내밀었다·
그 손바닥에 돈이 놓였다·
“여기·”
“뭐여? 모자라잖아·”
북교채주가 미간을 찡그렸다·
언교운이 실실거렸다·
“깎아주십시오· 너무 비쌉니다·”
“이게 비싸다고? 채주인 내가 직접 소를 끌고 여기까지 왔는데 깎아버린다고?”
“직접 끌고 오셨다고 소가 더 커진 건 아니잖습니까·”
“헐···· 명문가 자제 말하는 본새 보소· 요새 진주언가 무슨 일 있어? 집안 사정 안 좋아?”
“그냥 달아두세요·”
“와아 후기지수가 녹림에 외상을 달아버리네· 천공단 진짜 이러기야?”
“대신 같이 드시죠·”
“그래도 돼?”
“하하하!”
빠른 수긍에 언교운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전에도 몇 번 만나본 적이 있는데 북교채주는 사람이 생긴 게 호랑이 같으면서도 말하는 건 재밌었다·
잠시 후
소 한 마리가 통째로 구워졌다·
둘러앉은 인원은 많았다· 서른 명 정도·
천공단 북교산 조와 무림맹 섬서 지부장 그리고 최근 북교산에 도착해 싸돌아다니고 있던 만박자와 불평진인 거기에 오다가다 만나 안면을 튼 기타 등등들과 형산파의 젊은 제자들도 함께였다·
이내 한 점씩 입에 넣는데 사르르 녹아내리니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한데 한 사람만은 달랐다·
무림맹 섬서 지부장 구양수의 안색이 진지할 따름이라 금적자가 물었다·
“생각이 많아 보이네?”
“생각은요· 맛있으면 저는 표정이 이렇게 묵직해집니다·”
구양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금적자가 바로 코웃음쳤다·
“개소리는···· 무림맹이 따로 알아낸 게 있는 모양이구만· 이야기 해보게· 성숙노괴라든지 공청석유라든지· 호열자도 좋고 말이야· 여기서 죽치고 있는 것도 이제 슬슬 지겹단 말이지·”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보다?”
금적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기에 모두의 시선은 구양수에게로 향했다·
공청석유보다 라는 뜻이다·
호기심과 의아함이 솟구쳤다· 최소한 지금 시점에선 그런 게 존재할 리 만무한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무림맹이다· 섬서지부장이다· 어쩔 수 없이 모두의 눈에 기대감이 떠올랐다·
심지어 이미 공청석유를 습득하고 지난 밤 성숙노괴의 울음소리를 들었던 천공단마저 눈이 가늘어졌다·
구양수가 실실 웃었다·
“쌍둥이입니다·”
“응?”
“근데 남자아이 하나 여자아이 하나입니다· 신기하더이다·”
“어···?”
다들 멍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바보가 아니다· 이해했기에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와아아아! 축하하네· 쌍둥이가 최고지!”
“이야~ 아니 어떻게 쌍둥이를· 대박 터져버렸네· 하하하하!”
“그걸 왜 이제 말해!”
“와아 언제 낳은 겁니까?”
“랄라라~~~ 랄라~~~·”
“늦둥이에 쌍둥이에 보고만 있어도 배부르겠구만·”
다들 축하의 말을 건넸다·
과연 ‘그보다’였다· 이쯤이면 공청석유도 ‘따위’에 불과하다· 지부장의 안색이 왜 편치 않았는지도 이해했다·
보고 싶었나 보다·
또 불안하기도 했을 테지· 이 장소에서야 태평히 떠들고 있지만 북교산 전체로 보면 여긴 언제 어디서 칼 맞아도 이상할 곳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축하 다음엔 걱정이었다· 축하만큼이나 한참 동안 염려의 말이 흘러나왔다·
섬서 지부장 구양수가 껄껄 웃었다·
“누가 보면 나만 목숨이 하나고 다른 분들은 여러 개인 줄 알겠습니다· 목숨이야 다 똑같은데 누가 누굴 걱정하는 겁니까·”
“그래도 다르지·”
“무서울 것 없습니다· 그저 저는 한 사람만 안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누구?”
“화공신타·”
“아!”
금적자가 짐짓 크게 탄성을 터뜨렸다·
화공신타가 단주니까·
천공단은 저마다 혀를 내둘러댔다·
다른 이들도 공감된다는 듯 모두 고개를 끄덕거렸다·
화공신타는 최근 화두로 떠오른 인물·
마승과 염라수를 단숨에 해치웠다는 이야기는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마승과 염라수가 화경의 예(藝)에 이른 자들임을 감안하면 최소 화경의 극(極)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봐야했다·
경지는 초기와 중기 후기를 칭함에 각각 예(藝) 중(中) 극(極)이라 한다·
같은 화경의 경지라도 차이는 극명한 터라 화공신타의 등장은 강호에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근데 실존 인물 맞아? 금적자 자네 생각은 어때?”
물은 건 만박자였다·
금적자는 내심 뜨끔했지만 태연히 입을 열었다·
“난 헛소리라고 보네· 이 강호에 자네가 모르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된다고·”
“그치?”
“당연하····”
쿠우우웅!
금적자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엄청난 굉음에 잘려나갔다· 땅도 흔들렸는데 거의 몸이 들썩일 정도였다·
모두 놀라 두리번거렸다·
“뭐여?”
“산사태야?”
쿠웅 쿠우웅!
뭘 때려 부수는 건가· 산을 때려 부수나? 누가?
답은 곧 들려왔다·
주변이 삽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일단의 무리가 좌중을 쓸고 지나갔다· 어디 가냐고 물을 새도 없었다· 뿌옇게 일었던 먼지가 가라앉기도 전 다른 쪽에서 신형 하나가 나타나 소리쳤다·
“채주님!”
북교채 녹림도였다·
“무슨 일이냐?”
“화공신타가 나타났습니다· 성숙노괴를 쫓고 있습니다!”
“뭐?”
모두 튕기듯 일어나 신형을 날렸다·
어디냐고 물을 건 없었다· 굉음을 따라가면 되었고 목소리도 들려왔다·
“성숙노괴! 쥐새끼 같은 놈·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는지 보자!”
쿠웅 쿠우웅!
뭘 어떻게 박살내는지 굉음이 연이어 터진다·
일행은 곧 격전지에 도착했다·
북교산의 열 세 개의 봉우리 중 용두봉(龍頭峰)이었다·
이미 먼저 온 이들이 수천 명에 달했다· 그러고도 인파는 빠르게 늘어갔다·
더불어 용두봉은 더 이상 용두봉이 아니었다·
용머리 형상을 닮아 용두봉이란 이름이 붙은 암석 기둥은 이미 절반이나 부서졌고 남은 부분마저 부서져내리고 있었다·
부수고 있는 건 성숙노괴였다·
정확히는 화공신타가 성숙노괴를 집어던져 부수고 있었다·
정녕 용두봉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대체 얼마나 처박힌 건지 성숙노괴의 몰골은 이미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 이 무슨····”
“말도 안돼·”
“서 성숙노괴가····”
주변의 경악성 속에 만박자도 알아봤다· 이미 핏덩이에 고깃덩어리에 가까웠지만 틀림없이 성숙노괴였기에 만박자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시발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듣도 보도 못한 자가 화경의 중에 이른 성숙노괴를 피떡으로 만들고 있으니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천공단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명만 들었지 화공신타로서의 단주의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다·
바삐 전음이 오갔다·
– 혀 형님 맞아?
– 그 그러게·
항마삼협이 더듬거렸다·
어떻게 봐도 화공신타와 천공단주가 같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인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 진짜 죽이는 것 같은데?
– 계획이 바뀐 걸까요?
– 그럴 리 없는데 말이지·
금적자와 낭인왕도 다른 의미로 당혹을 금치 못했다·
상황은 극단적이었다· 승부 또한 이미 따질 것도 없었다·
“크으으으으···· 그만 제발 그만·”
내던져진 성숙노괴가 겨우 상체만 세운 채로 비굴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지켜보는 이들은 손에 땀을 쥐었다· 원래 누구 편도 아닌데 저절로 성숙노괴를 응원하고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그만? 누구 맘대로?”
바라보던 화공신타가 클클거리며 웃더니 우수를 내밀었다· 성숙노괴의 몸은 자석에 이끌린 듯 허공을 가르며 끌려갔다·
척!
손아귀에 목이 잡혔다· 성숙노괴가 괴로워하며 몸부림쳤다·
“크으윽 크으윽!”
“그만할까?”
“제발····”
“근데 아까는 왜 그랬냐? 왜 먹어버렸냐! 왜 나를 화나게 한 거냐!”
뭘 먹었다는 걸까·
대체 뭘 먹었기에 패고 있단 말인가·
먹을 수도 있는 거지·
화공신타의 말이 이어졌다·
“나를 화나게 했으니!”
눈동자를 희번덕거렸다·
그러곤 그대로 성숙노괴의 목을 움켜쥔 채 암벽에 머리를 때려박았다·
쿠웅! 쿠웅! 쿠웅!
부딪힐 때마다 암벽이 부서지며 돌이 튀었고 쩍쩍 갈라졌다· 성숙노괴의 머리도 쩍쩍 갈라지는지 머리가 피로 뒤덮였고 지켜보는 이들도 쿵쿵거릴 때마다 움찔거렸다·
“시발 누가 나서서 말려야 하지 않아?”
북교채주가 다급히 소곤거렸다·
낭인왕이 인상을 찡그렸다·
“자살하게?”
“그래도 저건 너무 심하잖아·”
“병신아 도망갈 준비나 해· 모르겠어? 여차하면 다 죽어·”
“끄응·”
북교채주도 반박할 수 없었다·
상황을 봐선 산채며 소들이며 다 놔두고 도망가야 할 판이었다·
그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화공신타였다·
“응? 뭐야?”
성숙노괴의 머리를 몇 번 더 암벽에 때려박은 뒤였는데 지금은 흔들고 있었다· 팔을 흔드는 대로 성숙노괴의 머리가 팔랑거렸다·
“야! 너 왜 그래?”
모두 알아차렸다·
죽은 것이다· 하긴 여태 산 것도 대단했다· 늦었다· 성숙노괴였으니 버텼지 다른 사람 같았으면 수십 번 죽었을 터·
“이런··· 죽어버렸네· 하아··· 지도를 먹어치우고 죽어버렸어·”
화공신타가 한숨처럼 말을 내뱉더니 짜증이 나는지 발을 굴렸다· 쿵쿵! 그 울림에 사방에서 지켜보던 이들이 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는 모양·
화공신타는 어떡하지 어떡하면 좋지 라며 중얼거리다가 다시금 이미 죽어버린 성숙노괴의 머리를 암벽에 처박기 시작했다·
쿠웅 쿠웅 쿠웅!
돌가루가 튀고 또 피가 튀는 광경에 모두는 더 물러났다·
심지어 천공단조차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다 화공신타의 시선이 모두에게 향했다·
“야!”
“····”
“너희 중에 말이야·”
“····”
“배 잘 가르는 사람 있냐?”
배는 대부분 잘 갈랐다·
배를 왜 가르려는지도 알 수 있었다·
아까 들었으니까·
성숙노괴가 공청석유의 위치를 표기한 문서를 먹어치운 것이 분명했다· 그걸 찾으려면 배를 갈라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나서겠는가·
결과가 훤히 보이는데· 배를 가르고 나면 머리가 깨질 텐데· 그래서 잘 가름에도 지목당할까 봐 눈을 아래로 깔았고 뒷걸음질쳤다·
그 덕분에 절벽 끝에 있던 한 놈이 밀려나 추락사할 뻔한 걸 그 곁에 있던 이가 가까스로 잡아 끌어올렸다·
“아무도 없어? 야 거기 너!”
“네? 저요?”
지목 당한 건 낭인왕이었다·
아주 소스라치게 놀라버렸다· 형님인 걸 아는데도 심장이 쿵쾅거렸다·
“칼 가지고 다니네? 배 좀 가르냐?”
“이 이거··· 장식인데요·”
“에휴 모자란 새끼· 뭐 어쩔 수 없지· 냇가로 가서 내가 가르는 수밖에·”
이어 모두를 쭉 둘러봤다·
“반나절 준다· 모두 떠나도록 해· 그 후 여기서 내 눈에 띄면 죽는다·”
모두 떠날까?
아마 대다수는 떠날 것이다·
후공은 그리 생각했다·
성숙노괴의 죽음을 보았으니 그 죽음이 참혹했으니·
그리고 이제 화공신타도 사라진다·
공청석유의 비밀과 함께 성숙노괴와 함께·
이쪽의 흔적은 지워지고
적의 흔적은 드러날 것이다·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이미 와 있기도 하고·
– 수고하셨습니다·
– 하아··· 죽는 줄·
– 하하 그럴리가요·
성숙노괴의 전음에 후공은 미소지었다·
끔찍한 미소로 드러난터라 모두가 혼비백산 도주하기 시작했다·
후공은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하늘 위 커다란 백학이 까마득히 멀어지고 있었다·
‘····’
멀어짐에도 눈 앞에 있는 듯 하다·
후공은 백학을 타고 있는 이를 또렷이 볼 수 있었다·
그도 본다·
날갯짓 한 번·
백학이 순식간에 멀어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