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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Chapter 127

네가 밟아온 것 (15)

원립의 일 수와 서은현의 일 수가 부딪혔다·

무광과 혈광이 부딪혔다·

티잉!

맑은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맑다·

그리고 약하다·

원립의 입가에 비웃음이 가득 차올랐다·

“있는 대로 위엄은 잡더니만 이게 끝인 거냐?”

약하다·

수도자도 아니다·

그냥 범부가 칼을 잡고 세게 휘두른 수준·

어찌어찌 자신의 일격을 막아 내긴 했지만 겨우겨우 막아 낸 것에 불과하다·

그게 끝이었다·

원립은 알아차렸다·

‘나만 힘이 빠진 게 아니야·’

그를 상대하는 잔챙이들 역시 힘이 잔뜩 빠져 있다·

‘이놈들만 쓸어버리면 정말로 내가 승자가 된다!’

그는 입가에 한껏 미소를 지었다·

“백날 그 멍청한 유리검으로 두들겨 봐라· 산산조각을 내 주마!”

혈광을 줄기줄기 뿜으며 그가 결인을 맺었다·

쿠구구구!

그의 주변으로 피 구름이 인다·

그리고 피 구름 사이에서 혈목(血木)들이 자라나며 핏빛 숲을 일구기 시작했다·

서은현은 물론이고 주변에서 그를 도우려 결인을 맺던 결단기 수도자들 역시 인상을 쓰며 핏빛 숲에서 도망쳤다·

‘놓치지 않는다·’

한 마리 한 마리 전부 다 잡아 잘근잘근 씹어먹어 주마·

원립은 그리 생각하며 우선 가장 성가셨던 벌레·

서은현을 향해 날아갔다·

이미 핏빛 숲에 갇혀 멍청하게 칼질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원립의 눈에 비췄다·

“잘 가라· 그래도 인상 깊었다·”

쿠구구구!

그의 손에서 핏빛 나무덩굴이 나와 서은현에게 쏟아진다·

그리고 서은현이 유리검을 들고 나무덩굴을 튕겨 내기 시작했다·

원립은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한참 약해졌군· 곧 쓰러지겠어·’

“뭘 보여 준다고 하지 않았나? 애처롭게 발버둥 치는 모습은 더 보고 싶지 않은데 이만 죽····”

그리고·

투웅!

서은현의 검이 핏빛 덩굴을 쳐 낸다·

“음?”

뭔가 이상하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체력을 소모하면 처음보다 약해지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원립은 방금 느껴진 반탄력에 미간을 찌푸렸다·

‘처음보다 강해졌다?’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분명히 처음보다 강하다·

‘기분 탓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원립은 입술을 질끈 씹었다·

콰앙!

서은현의 검이 다시금 그의 덩굴을 쳐 내고 그의 핏빛 숲을 밀어낸다·

착각이 아니었다·

그의 검은 분명 처음보다 강해져 있었다·

‘하지만 미미한 수준이다· 신경 쓸 것 없어·’

“그대로 죽어라!”

키이이잉!

혈마진해광!

원립의 손 위로 혈해(血海)의 정경이 고이며 서은현을 향해 내리꽂혔다·

서은현은 그에게 내리꽂히는 핏빛 물덩이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눈을 감고 검을 들었다·

단악검법·

유곡!

그는 물덩이를 향해 날아들어 그 틈새로 파고든 후 그대로 몸을 비틀어 올리며 물덩이를 베어 내었다·

촤라락!

원립의 법술이 일견에 갈라진다·

원립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쿠웅!

서은현이 다시 지상으로 착지한다·

그리고 착지한 자리에는 그의 발자국이 깊이 남았다·

콰앙 콰앙 콰앙!

그가 움직일 때마다·

한 번의 초식을 사용할 때마다·

발자국의 깊이가 깊어진다·

‘공격력의 증폭률이 점차 증가한다?’

마치 눈덩이를 굴리는 것처럼·

그가 한 번 검으로 원립의 법술을 베어 내고 후려칠 때마다·

그의 초식이 점차 강맹해진다·

원립은 다른 수도자들을 쫓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놈부터 이놈부터 잡아야 해!’

위험했다·

원영기에 올랐던 그의 육감이 운명의 불길함을 예고하고 있었다·

‘봉명인까지 얻었다! 내가 질 리 없어!’

“수(水) 류(流)!”

촤르르륵!

혈수가 솟구치며 서은현을 향해 핏빛의 강이 되어 그를 뒤덮는다·

그리고·

단악검법 괴암·

서은현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검무(劍舞)였다·

그의 검무는 단 하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듯 미친 듯이 휘몰아치며 강물 하나하나·

핏방울 하나하나를 모조리 쳐서 튕겨 내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무위!

그리고 서은현의 검은 여전히·

한 번 원립의 법술을 쳐 낼 때마다 꾸준히 강해지고 있었다·

꾸준히·

* * *

단악검법 최종오의·

우공이산(愚公移山)은 다음과 같은 절기였다·

첫째 산외산부진을 사용하여 자기 자신의 몸에 있는 기운이 단 한 올도 바깥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한다·

둘째 그 상태를 유지하며 이십일 초 천지(天池)의 초식으로 상대와 합을 부딪치며 생겨난 모든 흐름과 힘의 잔류를 다시 거두어들인다·

셋째 공곡전성의 초식을 거기에 다시 적용하여 상대의 힘까지 전부 몸에 담아 되치며 휘두른다·

넷째 산중호걸의 초식으로 그 모든 자잘한 힘들을 한 번 휘두를 때에 일 점 집중시켜 반발을 강제로 억누른다·

다섯째 첩첩산중과 능곡지변의 초식으로 몸에 가해지는 부담을 최대한 분산시켜서 땅으로 흘린다·

어렵게 설명했지만·

한 줄로 설명하면 상대와 한 합을 주고받을 때마다 상대의 힘을 자신의 초식에 끌어들여 계속해서 자신의 공격을 강화하는 절기였다·

그리고 억지로 상대의 힘을 끌어들인 대가는 시전자의 죽음이었고·

그러므로·

우공이산을 한 번 사용한 무인은 상대와 싸우는 한 끊임없이 강해지고·

결국에는 거두어들인 힘을 억누르지 못해 몸이 터져 죽는 것이 그 운명·

콰앙!

원립의 공격을 초식에 거두어들이고 다시 그 힘을 담아 받아친다·

그리고 산외산부진의 원리로 되쳤던 힘까지 완벽하게 낭비하지 않고 다시 상대에게 흩뿌린다·

점차 내 공격이 강해졌다·

어느덧 원립이 법술을 날리기만 하면 튕겨 나가지 않는 데에 급급해하던 나는 원립의 법술을 정면에서 막아 내고 있었다·

우공이산을 펼치는 한 한 번 상대와 무기가 부딪칠 때마다 ‘최소’ 1푼씩 힘이 강해진다·

그리고 나는 어느덧 수천 번의 공격을 원립에게 내지르고 있었다·

푸콱 푸콱!

전신을 흐르는 거대한 힘을 견디지 못하고 몸 곳곳이 터져 나갔다·

하지만 수도자의 좋은 점은·

슈르륵····

재생력이 인간의 것이 아니란 것이다·

김영훈이 우공이산을 펼칠 때와 내가 우공이산을 펼칠 때·

유지 시간 자체가 다르다·

콰앙 콰앙 콰앙!

내 발자국은 점차 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한 발을 내디뎠다·

쩌엉!

내 참격이 원립의 숲을 찢어 버리며 길을 텄다·

녀석이 만들어 낸 숲은 다시 재생하는 듯했으나 나는 다시 한 걸음을 내디디며 검을 휘둘렀다·

한 자리에서 놈의 검을 막아 내는 데에만 급급하지 않는다·

나는 이제 명백히 놈을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원립은 이를 악물며 그의 단검 법보를 꺼냈다·

끼야아아아!

그의 핏빛 창 법보·

창 법보에서 피 안개로 이뤄진 한 마리의 귀왕이 몸을 드러냈다·

촤락!

그가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귀왕에게 먹이자 귀왕의 몸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더욱더 강한 기세를 내뿜는다·

놈이 핏빛 숲을 찢어놓은 나를 향해 창을 들고 달려왔다·

나는 두 눈을 감았다·

어차피 전신에서 피가 흘러 안 보느니만 못하다·

무(武)를 익힐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자·

눈을 감고 의념의 세계에 진입하였다·

붉고 푸른 선들·

수도자의 의식 영역을 만든 이후로는 그 의식 영역에만 의지하여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의식 영역은 결국 의념의 흐름의 상위 호환이었으니까·

하지만 오랜만에 절정 고수 시절로 돌아가 붉고 푸른 실을 마주하니 예전에는 몰랐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실이 원래 이렇게 많은 것을 담고 있었나?’

적에게서 뿜어지는 실은 붉은 빛·

감정으로 치면 분노 혹은 살의이다·

하지만 그 살의 속에 무수히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다음 순간 어디로 움직일 것인지부터 시작하여 왜 이런 움직임을 지었는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는 무(武)를 통해 어느덧 상대의 마음을 투명하게 비춰 보고 있었다·

눈앞의 귀왕은 사실 원립의 꼭두각시·

그러므로 귀왕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은 원립의 감정이었다·

공포와 분노 수치심 모멸감 약간의 기대·

그것이 원립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이었다·

‘내 마음은 어떻지?’

나는 문득 귀왕과 부딪히며 원립의 감정이 아닌 내 감정이 궁금했다·

‘아아··· 그렇구나·’

내 감정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이 고통의 끝에 다가올 죽음에 대한 기대·

그랬다·

나는 죽고 싶어 하고 있었다·

‘나는 죽음을 바라고 있구나·’

우공이산의 초식을 한 번 펼칠 때마다·

이제는 전신의 근육이 터져 나가는 것 같았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몸을 움직일 때마다 전신 곳곳에서 피가 터졌다·

발자국이 더더욱 깊어진다·

하지만 이 무지막지한 고통 속에서도·

나는 죽음을 앞에 두자 절대적인 평온함이 느껴지는 것을 인지하였다·

‘이게 이번 삶의 끝인가·’

나는 검을 휘두르다가 죽을 것이다·

몇 번의 삶 동안 그랬던 것처럼·

죽음을 앞두자 몇 번이나 찾아왔던 주마등이 내 앞을 스쳤다·

최초의 삶부터 시작해 10번에 달하는 죽음·

900년에 달하는 삶·

그 압도적인 삶 속에서 10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해 왔던 빛났던 사랑·

인간의 삶이란 이리도 덧없는가·

나는 도대체 뭘 위해 검을 휘두르고 있는가·

휘리릭!

문득·

나는 내 고통 속에서 검을 휘두르던 중·

내 마음을 참오하다 아무것도 없는 어떠한 영역을 발견하였다·

공(空)·

모조리 비어 있다·

‘왜 난 아직도 살아 있지·’

삶은 고통일 뿐이다·

음혼귀주문을 통해 깨달은 것이 아닌가·

빨리 어서 끝나고 다음 생으로·

그냥 그렇게 넘어갔으면 좋겠다·

그리 생각할 때였다·

―삶이 허무함으로 가득 차 있다면 함께 보낸 시간들도 허무하셨나요?

따스한 손이 왠지 검을 잡은 손 위에 올려지는 듯했다·

‘어···?’

어떠한 광경들이 눈앞을 스쳤다·

그것은 그녀와 함께했던 나날들이었다·

좋았던 일들 아쉬웠던 일들 고통스러웠던 일들····

그리고 눈앞을 스치는 장면들은 그것에서 멈추지 않고 더더욱 나아갔다·

김영훈과 신마전을 세우고 승승장구했던 일들·

무공의 새로운 경지에 이르렀던 일들·

제자들을 가르치던 중 계화가 내게 종이꽃을 접어 선물해 주었던 일·

제자들을 구하고 죽었던 일·

스승님을 만났던 순간·

그분에게 열 번의 절을 올리고 죽었던 순간·

주마등이 아니었다·

내 주마등은 이렇게 빛나지 않았으니까·

내가 죽을 때는 늘 허무한 삶의 순간들만이 스쳐 지났으니까·

이것은····

‘아 그렇군·’

무색유리검 제삼형·

총천(總天)의 진짜 능력은 삼천 자루의 무색유리검을 한데 모아 강화시키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정(情)·

무색유리검은 인간의 정(情)을 끌어올리는 법보였다·

북향화가 무색유리검을 만들며 인간의 칠정을 이용한 괴군의 회로를 연구했다는 것을 잊었었다·

그녀는 괴군의 괴뢰를 모방하여 이 법보에 인간의 정(情)이 깃들 수 있게 설계한 것이었다·

인간의 의식이 칠정을 비롯하여 수십 수만 수억 개의 감정이 엮여 만들어지듯이·

무색유리검은 한 개 한 개의 회로가 겹치고 겹칠 때 그 무수한 회로의 조합이 수억 개의 감정을 만들고 그 감정이 다시 무색유리검 안에 또 하나의 식(識)을 만드는 식이었다·

키이이잉!

무형검을 불어넣었다·

무형검은 본디 강환이 섞인 나의 의식 덩어리·

그리고 무색유리검에 담긴 인공 의식이 내 의식에 닿자 내 의식을 증폭시키기 시작했다·

무형검의 위력이 커진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내가 처음 총천을 발동시켰을 때도 느꼈던 힘·

내가 방금 새로이 발견한 무색유리검의 힘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파아아아앗!

무색유리검이 빛나기 시작했다·

무색유리검에 담긴 인공 의식이 내 감정을 자극한다·

그리고 내 강렬한 감정을 받아들여 그대로 무형검에 더하기 시작했다·

그랬다·

무색유리검은 내 감정을 받아들여 힘으로 전환시키고 있었다·

콰아아앙!

귀왕의 창이 내 일 검에 터져 나가 버렸다·

창에 들러붙어 있던 귀왕도 역시 함께 폭발하며 사라져 버렸다·

원립이 당황하며 계속해서 법술을 부리고 스스로의 몸을 자해하면서까지 더욱더 흉험한 혈법술들을 불러냈다·

녀석은 제 몸을 깎아 나를 막고 있었고 나는 전신을 폭발시키며 녀석에게 전진하고 있었다·

이미 그 고통에 나는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는지도 몰랐다·

나는 눈을 감고 의념의 흐름만을 느끼며 앞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내 마음을 관조하였다·

아무것도 없는 공(空)의 영역·

그 허무한 영역에 무색유리검이 지난날의 감정들을 불어넣고 있었다·

좋았던 순간 기분 나빴던 순간·

기뻤던 순간 노했던 순간 슬펐던 순간 즐거운 순간 사랑스러웠던 순간 미웠던 순간····

‘그런가·’

이 삶은 덧없다고 생각했다·

원립을 죽이면 언제라도 죽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색유리검이 그녀가 남긴 의지가 내게 말하고 있었다·

이 삶은 마냥 덧없는 것만은 아니라고·

‘그런데···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나는 죽을 것이다·

삶이 덧없지 않다는 것을 알아도·

강대한 적을 향해 전신을 폭발시키며 그렇게 죽어 갈 것이다·

‘나도 압니다· 당신과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놈에게 죽었고 나 역시 녀석과 싸우다 죽겠지요·’

이 삶이 덧없지 아니하면!

총천연색으로 가득 차 있다면 무얼 하느냔 말이다!

인간의 의지는 정해진 운명 앞에서 이리도 허무한데!

콰아아앙!

감정이 격렬해짐에 따라 무색유리검이 더더욱 무형검을 증폭시켰다·

원립과 나의 사이가 뻥 뚫렸다·

녀석이 결인을 맺으며 더더욱 흉험한 법술을 준비했다·

‘아 저건····’

못 막는다·

저 법술과 같이 동귀어진할지언정·

지금까지 강화시킨 우공이산의 힘으로도 더 이상 막는 게 불가능했다·

이미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격차라는 게 있지 않은가·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정해진 한계라는 게 있지 아니한가·

그 순간이었다·

‘···영훈 형님이었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겠지·’

―한계?

어쩐지 김영훈의 내단을 넣어 둔 품속에서·

무언가 따스한 것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기분 탓일지도 몰랐다·

―왜 칼을 휘두를 때 그런 것부터 생각하느냐?

그의 내단에서부터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기운은 마치 아침 햇살 같았다·

황금빛으로 타올랐던 그의 능광도·

문득 나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내 옆에서는 김영훈이 능광도를 함께 휘두르고 있었다·

현실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고통에 정신이 반쯤 나가 버린 내가 보고 있는 허깨비·

하지만 그 허깨비는·

영훈 형님이 말할 것 같은 말을 똑같이 내뱉었다·

―한계가 있으면 어쩌겠냐· 그래도 살아가야지·

단악검법과 단맥도법·

무형검과 능광도·

나는 어느새 김영훈의 무(武)를 따라 그와 똑같은 움직임을 하고 있었다·

그 역시 우공이산을 펼치고 있었다·

쿠웅 쿵! 쿵!

내 발자국이 깊어질 때 그의 발자국도 깊어진다·

나와 그의 동작이 겹쳐진다·

―살아간다는 게 그런 게 아니겠냐·

―잘난 놈 있고 그 위에 더 잘난 놈 있어도·

―뭐 어쩌겠냐· 이 자리에서 내가 받은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냥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는 수밖에·

이 대화는 뭘까·

허깨비가 말하는 게 아니다·

실제 있었던 대화·

회사에서 들었던 말인 것 같다·

―무와 삶이 다르지 않은 이유가 뭔지 아나?

허깨비가 싱긋 웃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이 몸을 받아서 태어난 이상 한계를 생각하지 않고····

허깨비의 너머로 이 세계로 넘어오기 이전의 김영훈과 내 모습이 보였다·

―이 자리에서 내가 받은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

김영훈과의 짧은 기억과·

허깨비의 목소리가 겹쳐진다·

―그저 잡념 없이 나아간다는 것·

―그냥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는 수밖에·

부드러운 그러나 어쩐지 굳은살이 박인 가냘픈 손이·

등 뒤에서 나를 밀어 주었다·

김영훈이 나보다 앞서 가며 나를 끌어 주었다·

그래 잡념을 없애자·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라는 한계가 있을지언정·

어찌하겠는가·

지금 이 자리에서·

이 순간 할 수 있는 걸 하자·

삶이 덧없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니 운명의 한계는 더 이상 생각지 않고·

그냥 검을 휘두르자·

나는 내 손에 들린 무색유리검과 그에 겹쳐진 무형검·

둘을 보며 생각했다·

둘은 곧 내 삶·

그렇다면·

나는 다시금 내 옆에서 함께 우공이산을 펼치는 존재를 바라보았다·

그는 김영훈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허깨비의 모습이 점차 내게 다가오며 내게 겹쳐졌다·

‘아 그렇구나·’

나는 지금껏·

김영훈이 밟아온 발자국들을 쭉 따라왔구나·

눈앞에 보이는 것·

김영훈이 지난 삶 막바지 보여 주었던 발자국들을 끊임없이 쫓아왔다·

하지만·

옆에서 춤을 추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결국 나 자신이었고·

김영훈의 목소리는 오히려 이제 뒤에서 들리고 있었다·

―앞만 봐라 서은현!

가냘픈 손과 함께 우직한 손이 동시에 내 등을 떠밀었다·

―네가 밟아온 것을 믿어라!

나는 그제야·

그제야 지난 삶에서 내가 왜 [다음] 경지를 보는 데에 실패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원립이 고통을 줬다느니 한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김영훈을 따라 했다·

월도입천에서부터 우리의 길은 서로 갈라졌음을 깨닫지 못했다·

그만큼 빠르지 않아도 된다·

내 검은 황금빛이 아니어도 된다·

공간을 가르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나는 김영훈이 밟아온 길의 끄트머리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자 다음으로·’

이 너머를 밟으면 그가 걸어온 길에서 벗어나게 될 터였다·

‘영훈 형님· 당신이 밟았던 영역 저도 밟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밟아 가자·

나는 김영훈이 밟아온 길을 벗어나 내가 밟은 이 영역에서 외쳤다·

“월도(越道)!”

미안하지만 형님·

이 영역의 이름은 감히 제가 짓겠습니다·

당신이 밟아온 길을 기려·

그리고 제가 처음 밟은 이곳을 기려·

“답천(踏天)!”

김영훈의 의지를 대신하여 그렇게 우렁차게 우짖으며·

나는 무색유리검을 휘둘렀다·

부웅!

하늘을 뒤덮었던 놈의 혈해(血海)가 그대로 반쪽이 나 갈라졌다·

슈릉 슈르릉!

운명에 대한 잡념을 전부 버려 공(空)이 된 내 마음 안쪽·

그 공이 단순한 허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무형검이·

내 마음의 구현화가·

공(空)과 하나 되기 시작했다·

―강환은 사실 하나·

―무와 나는 일체·

지난 삶의 영훈 형님이 남겨 둔 글귀·

이제야 이해가 간다·

천지인의 논리에 따라 강환을 쪼개고 그 천지인이 전부 나였음을 깨달으며 강환을 무형검으로 녹여 내었다·

하지만·

아직 안 녹인 강환이 하나가 남아 있지 않은가·

내단(內丹)·

나는 아홉 개의 강환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은 열 번째 강환이 하나 남아 있었다·

공(空)을 깨달은 순간 내 금단의 중심에 자리 잡은 내단이 금단의 안쪽에서 녹아들며 무형의 기운이 되어 내 손에 쥐여진 무형검과 하나가 된다·

김영훈의 체외 내단은 어찌 되었든 이 영역에 이르는 길 중 하나였던 것이었다·

내 체내에 있던 내단과 완전히 연결된 무형검이 단전을 시작해서 전신에 깃들기 시작했다·

그래 전신에·

근섬유 한 가닥 한 가닥에·

그 모든 혈관에 무형검이 깃든다·

나는 이제 곧 무형검 그 자체가 되었다·

김영훈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그 역시 능광도가 전신에 깃들며 마침내 새로운 영역을 밟았을 터·

열 번째 내단을 녹여 낸 순간·

무형검의 진짜 공능이 내 손에 들어왔다·

김영훈과는 다른 길을 가겠다는 의지가 만들어 낸 작은 기적·

어느새 나는 원립의 바로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혈관 한 올 한 올에 무형검이 깃든 지금·

더 이상 우공이산의 영향으로 내 몸은 폭발하지 않았다·

육신의 내구도가 극한으로 치달았다·

나는 그 상태에서 원립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월악(越岳)!

단순한 가로 베기·

원립이 방어법술을 펼쳤다·

김영훈의 능광도라면 이 영역에서 공간째로 베어 내며 원립을 회쳤을 터·

하지만 나는 비슷하지만 조금 달랐다·

슈웅!

새로운 영역에 도달한 무형검은 그대로 원립의 방어막을 투과(透過)하여 방어막 안쪽·

원립의 몸만을 베어 냈다·

“···어?”

방어막을 펼친 원립이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푸콱!

분명 방어가 제대로 됐을 텐데 방어막이 깨지는 기색조차 없이 베여 나간 스스로의 상태가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

촤르륵!

놈의 몸이 다시금 재생을 시작했다·

하지만·

부웅!

나는 다시금 놈의 몸을 베어 냈다·

부웅 부웅 부웅!

방어막을 펼쳐도 소용없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원한다면 얼마든지·

아무런 저항 없이 그의 모든 방어와 공격을 뚫고·

내 무형검은 끊임없이 놈의 몸을 베어 내기 시작했다·

궤적의 자유뿐만이 아닌 물질과 비물질의 자유를 손에 넣었다·

놈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때·

나는 최종 일격을 가했다·

월도답천(越道踏天) 무형검(無形劍)·

무형의 검이 모든 방어와 공격을 투과해 그대로 놈의 금단(金丹) 그 안쪽에 있는 원영(元靈)을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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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Score 9.5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On the way to a company workshop, we fell into a world of immortal cultivators while still in the car. Those with spiritual roots and unique abilities were all called to join cultivation sects, living prosperously. But I, having neither spiritual roots nor special abilities, lived as an ordinary mortal for 50 years, complying with fate until my death. That’s what I thought. Until I regres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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