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갯불 (1)
파아아앗!
환한 빛과 함께 우리는 공간 압력을 받는 허공간으로 방출되었다·
그와 동시에 귀환광계진이 빛나며 내가 진법에 입력해 놓은 광한계의 좌표와 연동된다·
우리는 광한계를 향하여 강하게 쏘아 올려졌고 어마어마한 공간 압력으로부터 유화가 우리를 지켰다·
쿠구구구구!
천인기 수사들 중 실력이 있는 이들은 타인의 공간 압력을 대신 맞아 주며 다른 이들을 데리고 비승하기도 하였다·
그런 천인기 수사들은 자신이 본래 맞아야 하는 공간 압력보다 더한 압박을 받으며 비승해야 했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느라 안면이 찌그러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에 원영기 수사인 나와 실질적으론 범인이나 다름없는 규백을 데리고 비승하는 유화도 마찬가지였다·
유화의 얼굴은 공간 압박과 고통에 짓눌려 잔뜩 찌그러져 있었고 나는 그녀의 뒤에서 생명력을 공급해서 그녀가 짜부라지는 것을 막아 주며 함께 비승하였다·
쿠르르릉!
천겁과 다름없어진 그녀의 연주가 울릴 때마다 주홍빛 강물이 위쪽으로 솟구쳤고 공간 압력을 떨쳐 내었다·
[언제든 기력이 떨어지면 말하시오 교대해 주겠소·]
[아직 괜찮습니다·]
나 역시 천 지족 원영기에다가 답천까지 얻어서 전신이 어지간한 천인기 수사 이상으로 단단했기에 교대해 줄 수 있었다·
나는 그녀의 등 뒤에 매달려 가며 주변의 풍경을 보았다·
아름다운 성계의 별하늘들이 이지러지며 우리 아래쪽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침을 삼켰다·
‘이번에 올라가게 되면 어쩌면 또 회귀 시점이 고정될지도 모르지·’
회귀 시점이 고정되는 기준은 몇 번을 생각해 봐도 알 수 없었다·
차원을 넘는 것인가 하면 진마계에 갔을 때는 시점이 고정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비승하는 것이라면 시점이 고정이 될까?
‘···일단 가 보자·’
시점이 고정되든 되지 않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왔다·
‘지금까지 인생에 부끄러운 점은 없었으니····’
설령 고정되더라도 그저 감사하며 앞으로 나아가자!
얼마 후 유화가 나와 교대를 청했고 나와 그녀는 번갈아 가며 교대로 공간 압력을 정면에서 맞았다·
그렇게 사흘이나 지났을까·
파아아아앗!
저 멀리 익숙한 영기의 흐름이 느껴졌다·
나는 유화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제 시작이오· 긴장하시오·]
[예·]
파아아앗!
난 저 멀리서 보이는 빛살에 눈을 찌푸리며 곧 나를 덮쳐 올 차원 장벽의 충격에 대비하였다·
‘무형검!’
나는 무형검을 곧추세우며 차원 장벽으로 딸려 갔고 얼마 후·
번쩍!
우리는 마침내 비승에 성공하여 광한계로의 귀환에 성공하였다·
파아아앗!
* * *
촤악!
익숙한 영기다·
여태껏 희박하게만 느껴졌던 하계의 티끌 같은 영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바다와 같은 천지영기가 내 몸을 감싼다·
그리고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익숙한 옷을 입은 사축기 수사가 다가왔다·
“어서 오시게 이곳은 광한계 건곤중역 건곤성의 비선대라네· 자네들은··· 으응?”
그리고 그는 내 경지를 훑어본 후 내 뒤에 있는 규백과 유화를 훑어보았다·
“···아니 원영기 하나에 축기기 하나··· 그리고 저건··· 노예 종족인가?”
규백을 보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무심하게 노예 종족이라고 말하자 규백의 눈에 일순간 분노가 스쳐 지나갔다·
“너희 뭐냐? 어떻게 비승한 거지? 혹시 허공간에 사는 괴물들인 건가?”
그리고 다음 순간·
유화는 부드럽게 웃으며 금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연주를 시작하였다·
투웅―
그녀의 연주는 제대로만 듣는다면 너무도 아름다웠으나 제대로 듣지 않고 현상만을 느낀다면 오로지 천둥소리로만 들릴 터·
그리고 그녀의 주변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주홍빛 강물과 천둥소리를 들은 인근의 사축기 수사들의 안색이 와락 일그러졌다·
[심족 첩자다!!!]
[일단 쳐 죽여라!]
[구 구현 3단계 심도공법이다! 모두 피해!]
다음 순간 사방으로 주홍빛의 천뢰가 흩뿌려진다·
사방에서 천인기 수사들은 물론이고 사축기 수사들의 비명 소리 또한 들려 왔다·
천인기 급의 공격력인 환람연하가 사축기 수사들에게 위협이 되진 않지만 축을 쌓을 때마다 천겁을 맞아야 하는 사축기 수사들로썬 지금 유화를 상대한다는 것은 어지간히 실력에 자신이 있지 않으면 앞으로 수행을 포기한다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었다·
그러나 지휘관이 없지는 않았는지 냉엄한 목소리가 사축기 수사들을 휘어잡았다·
[전원 정신 차려라! 모두 저 심족 첩자를 중심으로 차륜전을 펼치며 접근해라! 몇 발 맞아도 상관없다· 건곤성에서 천겁에 도움이 되는 부적 및 단약을 지급할 것이다!]
그 말에 허둥지둥 유화의 공격을 피하던 사축기 수사들이 대열을 다잡고 법술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천인기 수사도 아니고 다수의 사축기 수사들이라면 제아무리 구현 3단계에 이른 심족이라도 위험하다·
하지만·
“자 그럼·”
나는 유화의 뒤에서 그녀의 어깨를 잡은 후 허공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답천으로 하나된 무형검이 허공에서 인지를 끊어 가른다·
의식뿐이 아닌 기운을 기운뿐이 아닌 우리의 생명 그 자체를 일순간 베어 내서 사축기 수사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우리는 하늘로 빠르게 날아올랐다·
“조심해라 건곤성에는 전역에 결계가 쳐져 있다· 저기 저곳이 하늘길에서 건곤성을 나가는 출구야·”
규백은 구름이 날개 한 쌍 모양으로 갈라진 지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전 규련이 요족들을 그녀의 몸체에 태워서 데리고 나갈 때 지나쳤던 구름이었다·
나와 유화는 그 말을 듣고 방향을 전환해 그녀가 알려 준 길을 따라 무사히 건곤성의 결계에서 빠져나왔다·
그렇게 우리는 성공적으로 비승하여 비선대에서 빠져나왔다·
* * *
“이제 어디로 가실 거죠?”
유화는 익숙한 주홍빛 강물의 형태로 변하여 인근 산맥에 내려앉아 우리에게 물었다·
“저는 일단 진룡맹으로 돌아가 서휼의 동향과 제자 백녕의 상황을 알아볼 것입니다·”
“나도 그럼 따라가서 함께 서휼의 동향을 알아보도록 하지·”
유화의 말에 규백은 그녀를 따라가겠다고 했고 나는 둘에게 말했다·
“저는 아무래도 인족 영역 측에 볼일이 있는지라 잠시 인족 영역에 다녀와야겠습니다·”
“그래 다녀와라·”
“차후에 다시 만나지요·”
나는 규백과 유화에게 작별인사를 한 후 빠르게 헤어졌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천뢰번을 가져가려는 진선이 강림하기 전·
금신천뢰문으로 가 선보를 훔쳐 지족 영역으로 향한다·
물론 이렇게 한다고 해도 양수진에게 원한이 있는 진선이라면 어떻게든 금신천뢰문에 저주를 내릴 테지만 일단 할 수 있는 걸 해 보기로 했다·
‘너무 빨라서도 늦어서도 안 돼·’
진선이 오기 전에 너무 빨리 선보를 훔치면 선보를 들고 오래도록 도망을 다녀야 하니 비효율적이며 진선이 오기 직전에 선보를 훔치면 서휼이나 현음의 아가리에 선보를 꽂기 전에 나 혼자만 벼락을 맞을 수 있다·
‘선보를 훔쳐서 딱 지족 영역 서휼이나 흑룡왕의 영지에 가져다 놓기 적당한 시간을 계산해 거사를 진행한다·’
서휼의 밑에 있던 당시 굳이 천뢰번을 바로 훔치지 않았던 것은 내가 서휼의 눈치 속에서도 정신이 피폐해져 가고 있기도 했지만 시간 문제도 있었다·
괜히 몇십 년이나 앞당겨서 선보를 훔치면 몇십 년 동안이나 금신천뢰문의 추격을 받아야 할 테니 말이었다·
나는 인족 영역으로 날아가며 계획을 짰다·
‘우선 뇌령도로 가 금신천뢰문에 대한 전반적인 걸 알아봐야 해·’
천뢰번의 위치 특징 생김새·
누가 지키고 있는지 등·
‘어디에 있는지 알고 어떻게 생긴 건지 알고 어떻게 운반해야 하는지만 알아내면 천뢰번은 내 손에 들어온다·’
웃기는 일이지만 내 능력들은 은근 도둑질에 치중되어 있었다·
무형검은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자물쇠를 해체할 수 있었고 월수궁무록은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거리를 활보할 수 있다·
거기에 음혼귀주문으로 저주인형을 만들어 놓으면 저주인형을 조종해서 조사하는 이들을 헷갈리게 만들 수 있으며 흑룡 진혈이 지닌 태음의 힘으로 한밤중에는 존재감이 크게 옅어진다·
‘거기다가 내가 익혀 온 공법들은 절대다수가 토 속성·’
번개와는 상극인 속성이기에 금신천뢰문에서 나를 막을 이들은 아마 없을 터였다·
‘좋아 천뢰번을 훔치러 가자·’
나는 마음을 다잡고 인족 영역·
뇌령도로 향하였다·
* * *
쿠릉 쿠르르릉····
뇌령도 인근에는 늘 먹장구름이 번뜩이며 곳곳에서 우렛소리가 울렸다·
나는 월수궁무록을 사용하며 존재감을 감추고 뇌령도 인근으로 접근했다·
우우웅!
뇌령도에는 여느 인족 천공도들이 그렇듯이 커다란 결계가 둘려 외부인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시운도의 명적에 이름을 등록하지 않은 인족이 함부로 결계를 통과해 진입하면 곤혹을 겪게 될 터·
하나 나는 걱정하지 않고 결계 위에 손을 댔다·
우우웅!
결계는 반발하려는가 싶었으나 나는 결계 위로 괴군의 회로를 깔기 시작했다·
결계의 아주 작은 일부가 그대로 괴군의 꼭두각시로 변화하였다·
“개문·”
철컥!
나는 결계의 문을 쉽게 따고 들어간 후 주변을 살폈다·
‘이곳이 뇌령도····’
우릉 우르릉····
어두운 느낌은 아니었다·
그러나 곳곳에 구름이 떠다니며 구름 안쪽에서는 푸르거나 혹은 누런 번갯불이 번뜩였다·
‘일단 정보를 모으자·’
나는 뇌령도에 있는 시장으로 잠입하여 일단 금신천뢰문과 천뢰번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로 했다·
며칠 후·
나는 천뢰번과 금신천뢰문에 대한 정보를 상당히 모을 수 있었다·
금신천뢰문은 뇌령제일종문이었던 뇌운각을 밀어내고 자리를 잡은 문파였다·
그 과정에서 뇌운각 소속 사축기 원로를 금벽호가 일격에 격살했다는 소문은 뇌령도 곳곳에 파다하게 나 있었다·
‘아마 그 원로는 연위겠지· 그리고 연위는 후손 연진의 몸을 입은 채 진마계에 가 있을 터·’
금신천뢰문의 신물인 천뢰번은 금신천뢰문이 자리를 잡은 뇌운봉의 가장 높은 봉우리·
그곳에 있는 사당에 보관되어 있으며 평시에는 장문인만이 꺼낼 수 있었다·
물론 태상 장문인이나 원로원 역시 천뢰번을 꺼내는 것은 가능하나 원칙적으로는 장문인이 관리하는 신물이 천뢰번이었다·
‘천뢰번은 주로 문파 제의 때에 꺼내진다· 그리고 평소에는 천뢰번의 경비가 빽빽하지만 오히려 문파 제의 이후에는 조금 경비가 느슨해지는군·’
천뢰번이 봉해진 사당은 금신천뢰문의 제자들 중 급수가 가장 높은 이들이 교대하며 감시를 했는데 이들의 경지는 창천개벽문의 일운 제자처럼 원영기 경지가 한가득이었다·
‘경비는 아무 문제가 안 된다·’
여차하면 전부 밀어 버리고 가져올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천뢰번이 봉해진 뇌운봉이라는 곳은 금신천뢰문의 중앙에 있는 봉우리·
‘내가 천뢰번을 가지고 나오면 뇌운봉 인근에서 수련을 하는 천인기 원로들이 눈이 뒤집혀 달려들 터다·’
사실 그래도 상관은 없다·
어차피 흑룡 진혈을 격발시켜서 뿔과 비늘을 드러낸 채로 훔칠 거였으니까·
나 용족이오 하고 훔치면 어차피 욕은 용족이 다 얻어먹으니 훔치다가 들켜도 문제는 없었다·
내가 현재 가장 걱정하는 것은 금신천뢰문의 현 태상 장문이자 유일한 사축기 수사인 금벽호였다·
‘과연 사축기 대원만인 연위를 격살한 것은 금벽호 단독의 실력인가 아니면 천뢰번이 있었기에 가능한 요행인가·’
후자라면 금벽호고 뭐고 두들겨 패고 강탈해 오면 된다·
하지만 전자라면 상당히 골치가 아파졌다·
‘제일 좋은 방법은 일단 금신천뢰문 제자로 위장을 한 다음 사당 가까이에 가서 천뢰번을 훔치고 얼른 월수궁무록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그게 가장 깔끔하다·
그럼 일단 어떤 제자로 위장을 하는 게 가장 효율적일까·
나는 금신천뢰문의 제자들 역시 조사하기 시작했다·
금신천뢰문 인근 영역을 돌아다니며 금신천뢰문의 제자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행동 양식 특징 배경 등을 알아냈다·
그렇게 몇 주간 금신천뢰문의 뒤를 캘 때였다·
“흠···!”
나는 그러던 중 익숙한 얼굴의 남성이 한 여성과 다정하게 거리를 걷는 모습을 보고 몸이 굳었다·
‘···오랜만이군 전명훈·’
나는 그날 이 세상에 떨어지고 금신천뢰문에 납치된 후·
내가 본 것 중 가장 행복해 보이는 전명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연인인 듯 보이는 여인과 거리를 거닐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진선을 만나기 전의 녀석은 저런 상태인가·’
너무 괴리감이 컸다·
금신천뢰문이 망한 후 산발한 머리에 시뻘건 적포를 입고 말라붙은 핏자국이 선명한 그 얼굴과는 너무도 다르다·
‘···내가 천뢰번을 어떻게 처리하지 못하면 전명훈은 결국 그렇게 되겠지·’
전명훈 자체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진선의 강림으로 피해를 볼 이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나는 그렇기에 전명훈을 비롯한 이 뇌령도 전체를 구하겠다고 다짐했다·
천뢰번이라는 흉물을 더 좋게 써 줄 이에게 가져다주어 모두가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만들자·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나는 전명훈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네가 가장 적당하겠지·’
근시일 내에 전명훈을 납치할 계획이었다·
‘며칠 정도만 네 신분을 빌려 쓰겠다 전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