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와 공연 (5)
저벅 저벅····
내가 행정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내가 용족인 것을 알아본 몇몇 지족들이 허리를 숙이며 다가왔다·
“용족 어르신께서 찾으시는 게 있으신지요?”
“비켜라 내 알아서 찾겠다·”
“예 예····”
나는 흑룡족의 모습을 하고 최대한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가오기 힘든 분위기를 만들었다·
내 분위기를 읽은 지족들은 허리를 숙이며 멀리 가 버렸다·
‘어디 보자····’
나는 행정 건물 안쪽·
13개 대형 종족의 각 상징이 걸려 있는 복도로 걸어갔다·
이 복도를 넘어서면 13개 대형 종족만을 위한 행정 업무반이 따로 있었다·
복도에는 갈림길이 있었고 나는 용족 표시가 된 갈림길로 들어갔다·
이 너머로는 용족만 들어올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나는 흑룡진혈을 더욱 활성화시키며 용족 중에서도 음(陰) 계열 신통을 다루는 용족의 표시가 그려진 갈림길로 향했다·
‘여기서부터는 흑룡족 혹은 해룡족이나 수룡족 등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소형 서 장군이 발견한 공간은 바로 이곳·
나는 복도를 걷던 중 석재 복도에 음각된 흑룡 표시 중 하나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흑룡 진혈의 힘을 불어넣자 갑자기 흑룡 표시로 손이 쑤욱 들어가졌다·
‘역시····’
벽 형상을 하고 있는 결계였다·
나는 결계를 관통해 숨겨진 공간에 입장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
저벅 저벅 저벅····
얼마간 숨겨진 공간으로 향하는 통로를 걸었을까·
저 아래로 아래로 계단을 내려간 나는 썩 넓은 공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간의 왜곡률을 보니 역시 압축 공간인 듯 상당히 넓은 부지가 나왔다·
파아앗!
그리고 천장에 박힌 영석이 마치 태양광같은 빛을 내고 있어 대낮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규련의 목화 농장 급의 크기로군····’
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부지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부지에는 천장에서 뿜어지는 광량을 이용해 잔디가 자라나 초원을 이루고 있었다·
초원 곳곳에는 시원한 계곡이 흐르고 있었고 좋은 향기가 나는 나무들이 자라나 있었다·
그리고 초원의 중심·
그곳에는 커다란 장원이 있었다·
장원 안쪽으로는 멋스럽게 기와로 지붕을 쌓은 저택이 여러 채 있었고 그 안쪽에서는 한 명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천천히 장원을 향해 다가갔다·
주변에는 기이하게도 결계나 금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 그렇군·’
나는 장원에 가까이 다가가며 알 수 있었다·
장원에 다가갈수록·
정확히는 장원 안에 인기척을 내는 이에게 다가갈수록 음양의 흐름이 제멋대로 흐른다·
천지영기가 마구 회전하며 뒤엉켰기에 금제고 결계고 설치하지 ‘못한’ 것일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내가 장원의 앞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
탁탁탁탁―
장원 안쪽에서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장원의 문이 벌컥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튀어나왔다·
“서휼 님 오셨나요?”
오혜서였다·
“···안녕하십니까·”
그리고 나는 정말로 오랜만에 만난 옛 동료를 향해 딱딱하게 인사했다·
“서휼 님께서 보내서 왔습니다·”
“아 서휼 님께서요? 이리 들어오세요·”
오혜서는 서휼이라는 말에 활짝 웃으며 나를 장원 안으로 들였고 나는 그녀를 따라 장원 안 저택으로 들어갔다·
“부인 서휼 님께서 보내신 손님 오셨어요!”
“예 아가씨· 준비하겠습니다·”
“음?”
그리고 나는 저택에서 오혜서를 맞이하는 중년의 부인과 저택 곳곳에서 일하는 인부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런 금제도 결계도 없는데 바깥에서는 분명 인기척이 오혜서 한 명의 것이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오니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곧바로 이들의 정체를 알아채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강시로군·’
전부 다 사람의 살 내음이 나는 강시들이었다·
즉 진짜 사람의 시체로 만든 강시들인 셈이었다·
‘소름 돋는 저택이군·’
나는 깨끗하게 관리되는 저택의 이면을 보며 헛숨을 들이켰다·
중년의 부인은 상냥하게 웃으며 나를 안채로 안내했다·
얼마 후 안채에서 나는 오혜서와 대면할 수 있었다·
“서휼 님이 무슨 얘기를 해 주셨나요? 평소라면 직접 오셔서 얘기하시는데····”
“···서휼 님께선 혜서 님이 잘 지내시는지 확인하고 오라 하셨습니다·”
“어머 정말인가요?”
“예·”
“흐음····”
‘···? 뭐지?’
나는 오혜서의 의념을 읽으며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계속 그녀에게 질문을 이어 나갔다·
“최근 생활에 불편함은 없으십니까?”
“없어요· 서휼 님께서 전부 다 챙겨 주시는걸요?”
‘거짓말이군·’
“몸이 편찮으시거나 혹은 건강에 대해서 염려되는 부분이 계십니까?”
“전혀 없어요· 완전 멀쩡해요·”
‘거짓말이다·’
“정신적으로 뭔가 힘들지는 않으시지요?”
“후후 서휼 님도 참· 서휼 님이 계신데 뭐가 힘들겠어요·”
‘또 거짓말이다·’
나는 속으로 침음성을 흘리며 물었다·
“혹여나 바깥으로 나가거나 하고 싶으시지는 않으신지요?”
“바깥이요? 에이 서휼 님께 못 들으셨어요? 서휼 님하고 며칠에 한 번씩은 단둘이 봉명주 거리를 거니는데 정말 좋거든요· 바깥으로 이미 나다니고 있어서 뭐····”
‘이건 거짓말은 아니다· 하지만 뭔가가 조금 더 있는데····’
내가 생각을 정리할 때였다·
“그나저나 서휼 님은 매일 제 호풍성혈변 공법 수준을 확인해 주셨는데 그쪽은 확인해 주시지 않으시는 건가요?”
“호풍성혈변 말씀입니까····”
“공법 수준 좀 잠시 확인해 주세요· 부탁드려요·”
“···예 그럼 일단 나가서····”
“에잇!”
그러나 그녀는 좁은 방 안에서 수결을 맺더니 영기를 운행하기 시작했다·
기이이잉―
방 안에 있는 천지영기가 오혜서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흠칫 놀랐다·
나 역시 호풍성혈변 공법은 알고 있다·
그러나 호풍성혈변에 이런 기능 따위는 없었다·
내가 흠칫 놀랄 때였다·
여태껏 살짝은 익살스럽고 살짝은 행복에 절은
한참 밝은 얼굴을 유지하고 있던 오혜서가 삽시간에 얼굴을 뒤바꾸며 나를 노려보았다·
싸아아―
방안이 조용해진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당신 누구죠·”
“····”
“서휼이 보낸 사람 맞나요? 서휼이 보냈다면 나와 그가 주기적으로 산책을 다닌다는 걸 모를 리가 없는데?”
“····”
‘어떻게 할까·’
흑룡 진혈과 원유의 얼굴로 만들어낸 가짜 신분을 벗고 말할까?
하지만 위험했다·
만약 오혜서가 서휼에게 세뇌라도 된 상태라면 내가 왔다는 것을 서휼에게 즉시 고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그리고 내가 이것저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나를 관찰하던 그녀가 갑자기 경악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뒷걸음질을 쳤다·
“아···!”
“···?”
오혜서의 목소리가 떨려 왔다·
‘뭐지? 뭔가에 화들짝 놀랐다· 나를 보고 뭔가를 알아챈 의념이다· 뭘 생각한 거지? 혹시 저택의 사용인들을 부르려는 건가?’
그러나 이어진 그녀의 말은 내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서은···현?”
“···!!!”
나는 무표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화들짝 놀라 오혜서를 바라보았다·
“서은현! 맞지? 그 얼굴 기억나! 시간 감각이 말도 안 되게 이상해져서 몇십 년 전에 본 얼굴이었는데 서은현!”
나를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노려보던 오혜서의 표정에서 의심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러나 나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뭐지? 내가 서은현이라는 걸 어떻게 알아차린 거지?’
“아하하 정말 오랜만에 동향 사람을 만나니까 너무 반갑네·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서 대리님이라고 불렀던 거 같은데· 글쎄 너무 오랜만에 네 얼굴을 보니까 그냥 이름이 나오는 거 있지? 후후····”
나는 오혜서의 앞에서 한동안 얼어 있다가 굳은 표정으로 얼굴을 매만졌다·
얼마 후 얼굴에 씌여진 혈체피갑이 벗겨지며 내 원래 얼굴이 드러났다·
“···오랜만이군·”
“그래 정말··· 정말로 오랜만이야·”
우리는 잠시 서로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 오혜서가 내게 물었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지 않아? 얼굴까지 바꿨는데·”
“음?”
“내 능력인데 말이야····”
“잠깐 말하지 마라!”
“음?”
나는 오혜서가 함부로 그녀의 능력을 발설하기 전에 막았다·
“···혹시 누군가한테 네가 얻은 능력을 말한 적 있나?”
“음 없어· 처음에는 서휼한테 말하려 했다가 생각을 고쳐먹었지 뭐야· 아 그나저나 넌 왜 얼굴을 그렇게 하고 들어온 거야?”
그녀의 물음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서휼하고 안 친해서 말이지·”
“아하 그렇구나·”
오혜서는 꺄르르 웃으며 말했다·
“나도 사실 서휼 별로 마음에 안 들어· 혹시 눈치챘는지 모르겠는데 이 저택 사용인들 사람으로 보여?”
‘음?’
오혜서는 엄청난 비밀을 말하는 듯이 소곤거리며 말했다·
“저거 다 시체들이야· 그리고 항상 나를 감시하고 있어· 그리고 서휼이 오면 나를 관찰했던 걸 서휼한테 그대로 일러바쳐·”
“····”
“그리고 서휼도 있지 처음엔 굉장히 좋은 사람인 줄 알았거든? 그런데 있지· 나한테 어느 순간 최면? 세뇌? 그런 걸 걸기 시작하더라고· 그때부터 알았어· 서휼이 미친놈인걸·”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오혜서는 예상외로 서휼에 대한 것을 전부 꿰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 능력을 깨우치기 전에는 정말 멋지고 다정하고 상냥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얼마 전에 원영기에 이르면서 능력을 다루는 법을 어느 정도 몸에 익히니까 서휼에 대한 환상이 전부 박살 나 버렸어· 서휼이 나한테 걸어 놨던 세뇌들도 함께 말이야·”
그녀는 얼마간 내게 한참 수다를 떨었다·
나는 쉴 새 없이 수다를 떠는 그녀를 보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회사에서 종달새라는 별명을 달고 다니며 회사원들 사이에서 가장 동경받았던 여직원 오혜서·
그녀는 서휼에게 잡혀 있음에도 내가 알던 그때의 그녀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는 여전히 밝았다·
“오혜서 원한다면 데리고 나가 줄까?”
나는 오혜서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 말에 얼마간 침묵하더니 미소지으며 말했다·
“아니 괜찮아·”
“···?”
“내 능력 말이지 극한으로 갈고닦으면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도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우리가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해서 이 세계에 떨어지게 되었는지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런데 그게 여기 남는 거랑 무슨 상관이지?”
“상관있어· 내 능력을 갈고닦기 가장 좋은 상대가 서휼이거든·”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서휼에 대해서 알아보자고 생각해서 내 능력으로 그를 알아봤어· 그리고 나는 ‘서휼’의 이야기를 역순으로 짚어 가며 알아가는 중이야· 서휼은 정말로 많은 일을 벌였더라고· 그래서인지 그와 인과관계가 많은 이들이 엄청나게 많아서 내 능력이 극한으로 단련돼· 그리고 또 그러다 보니 서휼 자체에 대한 흥미도 생겨서 최근에는 서휼이 왜 저런 인간이 되었나 알아보려고 하는 중이야·”
“엄밀히 말하면 서휼이 인간은 아니지·”
“어머 생각해 보니 그러네·”
오혜서의 능력은 도대체 뭘 하는 능력인 걸까·
마치 앉은 자리에서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분명 선수 혈통 관련한 능력이 아니었었나?’
그런데 어째서 전지(全知)와도 같은 능력으로 변화한 것일까?
문득 그렇게 생각하니 그녀가 내 회귀에 대해서도 알아차릴지 궁금했다·
“나도 읽고 있는 건가?”
“맞아· 읽고 있어·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어렵지 않았는데 너는 좀 어려워· 책장의 무게가 굉장히 무거운 느낌이랄까···· 그리고 또 뿌연 안개 같은 것들도 있고··· 그런 것들 때문에 잘 읽기 힘드네·”
“흠····”
나는 그녀와 얼마간 대화를 나누고 피식 웃었다·
“그래서 너는 서휼 곁에 계속 있겠다는 거지?”
“응·”
“···그래· 조심해· 너도 알겠지만 숨 쉬는 것처럼 수작을 부리는 데에 능한 존재야·”
“그렇긴 하더라고·”
“···무사한 걸 봤으니 난 갈게·”
“조금 섭섭하네· 서휼은 어차피 며칠은 여기 안 오는데 자고 가지 그래? 사용인들 눈 때문이라면 내가 힘을 쓰면 어떻게든 할 수 있긴 해·”
“아니 미안하지만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왔다·
처음이었다·
이 세계에 온 뒤로 처음으로 가슴이 조금 가벼워졌다·
오혜서는 서휼에게 10할의 확률로 이용당하거나 세뇌당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앉은 자리에서 전지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 주며 상대를 ‘읽어 내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오혜서는 서휼에게 쉽게 당할 것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초반에는 조금 당했을지 몰라도 점차 능력을 깨우치며 도리어 서휼의 수를 읽어 내고 있다·’
어쩌면 그녀는 내 동료들 중 가장 걱정할 필요가 없는 동료였는지도 몰랐다·
내가 장원을 나갈 때였다·
우우우웅!
뒤쪽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며 저택의 강시들에게 닿았다·
그러자 강시들은 눈이 희미하게 풀려 그 자리에 멈춰섰다·
오혜서의 목소리가 울렸다·
“선수 유리공작의 힘이야· 격하의 존재가 빛에 닿으면 잠시 바보가 되거든· 강시들도 네가 오늘 왔던 건 잊어버릴 거야· 그럼 잘 가·”
“···그래 너도 잘 있어라·”
나는 홀가분하게 오혜서를 등지고 숨겨진 공간에서 빠져나왔다·
치직 치지직····
내 육신은 이미 이제 거의 기화되었다·
하지만 생의 마지막에서 목표했던 것 중 하나는 이룰 수 있었다·
‘정말····’
살아 있기를 잘 했다·
나는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이번 생의 마지막 공연을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하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찌릿 찌릿····
내 기묘성심전에 아득하게 먼 곳에서 기묘성채가 감지되기 시작한다·
괴군 조연이 진룡맹 영역에 발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