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면(多面) (5)
우우우웅!
용맥이 몰려든다·
그리고 몰려든 용맥은 한데 뭉쳐 거대한 영력의 덩어리를 만들었다·
“혈령(血靈)·”
나는 초창기 지족의 원영을 생성할 때 뇌령도 곳곳에 흩어서 뿌려 놓았던 원영의 조각을 가져와 영력의 덩어리에 집어넣었다·
“기괴고의 령(靈)·”
그런 후 그 덩어리에 기괴고를 집어넣어 의식을 만든다·
우우웅―
시야가 둘로 분할되었다·
나는 내 눈앞에 떠오른 은은한 붉은 기가 맴도는 원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원영의 시점에서도 ‘내’가 보였다·
혈영의 술과 기괴고의 술 등을 합쳐 만든 제2의 원영이었다·
앞으로 이 제2의 원영이 살아 있는 이상 나는 원영이 터져도 제2의 원영을 소모해 한 번은 구사일생을 노릴 수 있다·
스르륵····
난 제2의 원영을 원유의 몸에 집어넣었다·
쿠구구구구!
원유의 몸에서 기운이 치솟으며 결단기 대원만이었던 원유가 원영기가 되었다·
원유는 일종의 내 도구였기 때문인지 원영기 수준이 되어도 천겁은 없었다·
이것으로 이제 당장 내게 원영기 수준의 전력만 최소 둘이었다·
홍범과 원유·
치지직····
나는 원유의 체내에 내 저주문을 잔뜩 불어넣어 원유를 유사시 언제든 저주인형으로 쓸 수 있도록 개조했다·
원유가 바퀴벌레 급으로 질긴 그 생명력을 이용해 내 저주인형으로 나를 보조한다면 내 힘은 한 단계 올라갈 터였다·
“경하드립니다 주인님·”
홍범이 옆에서 구부정한 허리로 뒷짐을 지며 말했다·
“아니다· 고작해야 쓸 만한 저주인형 정도일 뿐이니····”
나는 홍범을 보며 말했다·
“오히려 이 녀석보단 홍범 네가 더욱 기대되는구나·”
“허허 과대평가이십니다·”
“과대평가는 무슨····”
나는 홍범에게서 느껴지는 따끔따끔한 기운을 보며 피식 웃었다·
지독할 정도의 독기(毒氣)·
독(毒)은 겉보기에는 약해 보일 수 있지만 쓰기에 따라서는 어떤 병기보다도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더군다나 배합만 잘 한다면 경지에 상관없이 치명상을 입히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기에 홍범의 경지 자체는 원영 초기일지라도 녀석이 독을 사용해서 치명상을 줄 수 있는 대상은 몇 단계 위의 수도자도 포함이 될 터였다·
‘거기에 홍범이 익힌 독공(毒功)····’
수도자의 독공과 무림인의 독공은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무림인의 독공은 주머니 같은 곳에 독을 숨겨 놓았다가 유사시 무기에 독을 발라 상대를 중독시키거나 가루 형태로 뿌리거나 혹은 음식에 타거나 바람에 흩뿌리거나 물에 푸는 형태로 하독(下毒)하여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이 일반적인 무림인들이 익히는 ‘독공’이었다·
그러나 수도자의 ‘독공’은 달랐다·
그들은 체내에 독기(毒氣)를 축적하여 독을 축적하고 배합할 수 있는 독단(毒丹)을 배양하여 그 안에 독을 보관했다가 체내에서 발출한다·
독공을 익히는 수사의 경우 강한 독기를 지닌 독약을 찾아 먹고 그를 통해 수행을 증진시키고는 했다·
그런 독수는 대다수가 자신의 독단에 보관한 독에 대해서는 면역력을 가지고 있었고 독과 독을 배합하여 끝없이 많은 무한한 독을 만들어 싸우는 것이 그들의 특기였다·
그리고 홍범의 경우 초창기·
그러니까 축기기 시절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독공에 대한 지식을 조금 알려 주었으나 그 이후부터는 자신이 독공을 독학하여 듣도 보도 못한 독약을 배합하고 독공을 스스로 발전시켜 나가 독에 한해서는 이미 나조차도 한참 전에 뛰어넘은 상태였다·
“네 독은 나라고 해도 쉽게 해독할 수 없으니 앞으로 네가 내 큰 힘이 될 터다· 유의하고 있어라·”
“허허··· 제 독이야 별 것 아닙니다· 이런 물질적인 독들이야 시간만 조금 들이면 해독이 가능한 평범한 독이지요· 진정한 독중독은 주인님의 저주독(詛呪毒)이니 그 앞에서는 제가 어떤 독을 개발했더라도 감히 댈 수가 없습니다·”
“뭐 저주는 술법이니 독이라고 할 수야 없다만··· 여하튼·”
나는 홍범을 쳐다보았다·
홍범이 화형을 해내고 원유도 원영기에 올랐다·
원유야 사실 유사시 쓸 예비 목숨 및 저주인형 정도의 용도를 가지고 있다지만 어쨌든 나는 이로써 전성기의 모든 전력을 되찾은 것이었다·
“이제부터 네 역할이 막중하다·”
“예 새기겠습니다·”
나는 며칠 전 전명훈이 천뢰번에게 홀렸던 것을 떠올렸다·
진선과 관련된 존재들을 상대로는 절대로 방심하면 안 된다·
천기를 보고 안심하며 정려를 불렀다가 뇌령도가 증발했던 기억·
서휼과 신경전을 벌였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나로선 진선과 관련된 이들의 계교가 얼마나 음흉하고 음험한지 알 수 있었다·
‘전명훈이 정려를 부르기 전에 구출하긴 했다만··· 그때 정려는 전명훈의 상단전의 뇌기를 움직여서 녀석에게 분명 무슨 짓을 했다·’
그걸 알아낸 이상 방심할 수 없다·
차라리 과잉 대응이라 할 정도로 준비를 해야 했다·
‘지금 당장 금신천뢰문 위쪽에 천벌의 주인이 나타난다 해도 이상할 게 없어·’
나는 홍범과 원유를 보고 그들의 저 뒤쪽에 있는 금신천뢰문의 본관을 바라보았다·
나는 현재 원유를 원영기로 승급시키기 위해 금신천뢰문에서 조금 떨어진 계곡에 나온 상태였다·
“그나저나 올 때가 됐는데····”
내가 하늘을 바라볼 때 저 멀리서 금빛이 번뜩이며 헌위가 날아왔다·
그녀는 이전과 달리 시종으로 보이는 천인기 수사를 전혀 숨기지 않고 대동하고 왔다·
그리고 내 앞에 도달한 그녀의 시선이 원유와 홍범에게 향했다·
“흐음 네 애완 요수가 화형했다는 얘기는 들었다만··· 옆에 그건 또 뭐냐?”
“제 전력 중 하나입니다· 제 부하라고 생각해 주시지요·”
“뭐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겠지···· 오히려 네 전력이 상승한다면 나야 좋다·”
헌위는 씨익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준비는 잘 되어 가느냐?”
“예· 차근차근 세력을 불리려 합니다· 안 그래도 최근 본문에 제 추종자가 많이 생기고 있어 거사를 벌일 때 일이 쉬울 겁니다·”
“후후 아주 좋군· 그래서 오늘 나를 부른 이유는?”
“이전에 했던 밀약의 내용을 수정하고 함입니다·”
“호오?”
나는 몇 년 전·
금신천뢰문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자 하는 헌위와 밀약을 맺었다·
밀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봉래궁 호법 헌위와 금신천뢰문 차차기 문주 금은현은 다음과 같은 밀약을 맺는다·
1· 만약 금신천뢰문이 불의의 사고로 인해 정통성을 잃게 되었을 때 봉래궁의 호법은 금신천뢰문의 후인을 도와 금신천뢰문을 새로 재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2· 위 과정에서 봉래궁의 호법은 새로 재건할 금신천뢰문의 정통성을 지지해 주며 정통성을 증명하기 위한 재건 금신천뢰문 수뇌부의 결정을 무조건 지지해 준다·
3· 정통성의 지지에 재건할 금신천뢰문이 본래 규모의 최소 2할 이상을 복원하는 데에 성공한다면 금신천뢰문은 봉래궁을 대표하는 일인을 금신천뢰문의 명예 원로로 임명하여 준다·
4· 재건 금신천뢰문은 차후 임명될 명예 원로를 통하여 봉래궁과 금신천뢰문 간의 자매 결연을 약조한다·
5· 재건 금신천뢰문은 차후 사당을 세워 옛 금신천뢰문의 선조들을 기리며 금신천뢰문과 결연을 맺은 문파의 인원들이 참배를 할 수 있도록 한다·
이상이 헌위와 내가 맺은 밀약의 내용이었다·
우선 밀약의 1항에 나오는 ‘불의의 사고로 금신천뢰문이 정통성을 잃는 일’이란·
내가 차후에 천뢰번을 훔칠 때를 대비한 일이었다·
전명훈을 키워도 도저히 답이 없으면 유사시 천뢰번을 훔쳐서 수계에 봉인해야 하니 맺은 밀약·
‘만약 전명훈이 답이 없다면 천뢰번을 훔쳐 내가 새로운 금신천뢰문을 천명하고 금신천뢰문의 본관을 다시 수계로 이관한다·’
그리고 2항의 ‘재건 금신천뢰문의 정통성을 지지해 준다’는 내용은 금벽호 및 원로진들의 반대가 있어도 봉래궁의 호법인 헌위가 이를 지지해 준다는 뜻이었다·
또한 금신천뢰문의 ‘정통성’이라 할 수 있는 금신천뢰문의 신물 천뢰번·
그러한 ‘정통성을 증명하기 위한 재건 금신천뢰문 수뇌부의 결정을 무조건 지지’한다는 말은 내가 수계에 천뢰번을 봉인하러 간다는 것을 도와주고 지지해 준다는 의미였다·
1 2항이 내가 새로운 금신천뢰문을 통해 천뢰번을 봉인할 수 있게 원조한다는 조항이라면 3 4 5항은 헌위를 위한 조항이었다·
3 4항으로 인해 금신천뢰문과 봉래궁은 밀접한 관계가 되고 5항으로 인해 금신천뢰문의 선조들을 기린 사당에 헌위의 아버지인 헌원이 참배를 갈 수 있게 해 주기 위한 내용들이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그녀의 아버지인 합체기 태수 헌원은 아직까지도 자신의 정인을 그리워하는 모양이니 나와 헌위가 굳이 혼인을 하지 않아도 이런 방식이라면 충분히 서로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
나는 천뢰번을 봉인할 수 있고 금신천뢰문은 멸망을 피하고 헌위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헌원은 딸을 통해 정인의 흔적을 느낄 수 있으니 일석사조인 조약이었었다·
본래대로라면 나 역시 이 정도에서 만족하려 했다·
하지만 며칠 전 전명훈이 천뢰번에게 무슨 짓을 당한 것을 생각하자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원래는 저를 추종하는 추종 세력을 문파 내에서 많이 만들어 천뢰번을 가지고 나가 따로 문파를 천명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정통성이 증명이 되겠지·”
“하지만 만약 제가 유사시 금신천뢰문의 세력 일부뿐이 아닌 천뢰번 하나만을 가지고 나와도 저 개인을 금신천뢰문이라고 인정해 주는 조항을 추가했으면 합니다·”
“···?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헌위는 눈을 찌푸렸다·
“내가 네놈과 손을 잡기로 한 건 아버님께서 ‘금신천뢰문’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제자가 하나도 없이 천뢰번과 너 개인만을 ‘금신천뢰문’이라고 인정한다면 아버님께서는 결코 너를 ‘금신천뢰문’이라고 인정치 않으실 거다·”
“저는 금신천뢰문의 장문인 자격을 뜻하는 금씨를 하사받았으며 또한 금신천뢰문의 모든 공법을 익히고 있습니다· 거기에 금신천뢰문의 정통성을 뜻하는 천뢰번만 있다면 장문인 자격으로 새 제자들을 받아들여 금신천뢰문을 또 하나 만드는 건 일도 아닙니다·”
“흐음··· 별로 설득되지 않는군·”
난 헌위의 의념을 읽었다·
‘설득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에 드는 조건을 내놓으라는 거로군·’
“뭘 원하십니까?”
나는 그녀가 무언가 이권을 원한다고 파악하고 질문했다·
어차피 그녀가 원하는 건 금신천뢰문과의 관계로 인해 자신의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었다·
그러니 금신천뢰문과 그녀의 관계를 상징할 수 있는 명예직이야 얼마든지 만들어 줄 요량이 있었다·
하지만 이어진 헌위의 말은 내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나와 도려나 쌍수는 안 맺겠다 했지?”
“예 그렇습니다만····”
“그럼 네가 내 양자로 들어와라·”
“···??”
“문파의 소속은 혈연에 상관없으니 네가 내 양자가 되더라도 금신천뢰문을 재건하는 데에 배분상의 문제는 없겠지· 사실 나이 차를 생각하면 원래부터 이쪽이 맞았겠지· 나 역시 그 쪽이 아버님에게 할 말이 더 많으니 서로 좋은 조건이 아니냐?”
“····”
‘별로 나이 차도 안 나는 게 이 무슨····’
나는 어이가 없어 잠시 벙찐 상태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의외로 진심인 듯했다·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집게손가락으로 누르며 말했다·
“···양자···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군요·”
“흠 그럼 나도 밀약을 수정하기 힘들 거 같은데····”
“대신 저를 보좌할 부문주를 양자로 삼으시는 건 어떠십니까? 장문인이야 상징적인 것을 많이 맡는 자리라서 제가 헌위 님의 양자가 된다면 금씨 성을 당신에게도 부여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문주라면 굳이 금씨가 아니어도 되며 도리어 실권에 있어서는 장문인보다 많은 권한을 가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흐음····”
어차피 부문주는 원유로 둘 생각이어서 상관이 없었다·
“뭐 좋다·”
다행히 내 설득이 먹힌 모양인지 헌위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단 나도 조건이 있다·”
“무엇입니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너 하나를 금신천뢰문으로 인정하고 지지하라는 건 솔직히 말이 안 된다· 그러니 유사시 네가 천뢰번을 수득해 금신천뢰문을 따로 세우더라도 금신천뢰문 내에서 너를 따르는 인물이 ‘최소 셋’은 있어야 한다· 알겠느냐?”
“저까지 포함 총 네 명이어도 된다는 겁니까?”
“그래· 머릿수를 맞출 수 있느냐?”
나는 머리를 굴렸다·
‘일단 천뢰번을 봉인한다고 하면 연위는 무조건 찬성할 테니 연위의 후손인 연진은 내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일단 한 명·
‘진휘 금벽호 등은 아무리 그래도 내가 천뢰번을 탈취하겠다고 하면 눈이 뒤집히겠지· 전명훈은··· 설득하려면 진실을 말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놈이 미쳐 버릴 수도 있으니 절대 안 되고 전명훈과 한 몸인 금소해도 마찬가지····’
나는 금신천뢰문의 요인들 그리고 또 나를 추종하는 제자들을 떠올렸다·
‘나를 추종한다는 녀석들도 금신천뢰문 체제에 속한 나를 추종하는 거지 다들 금신천뢰문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서 절대 내가 하는 짓을 받아들일 리 없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설득할 수 있을 만한 이를 추려내기 시작했고 이윽고 한 명의 후보가 더 나왔다·
‘홍수령· 홍수령이라면 내가 유사시 설득할 수 있을 수도 있겠어·’
이것으로 두 명·
‘그리고 마지막은··· 원유가 태극진뢰신을 익혔으니 원유 역시 금신천뢰문의 제자라고 우기면 된다· 이렇게 하면 사람 수는 맞춰진다·’
이렇게 세 명·
나까지 포함해 전부 네 명의 인원이 맞춰진다·
“예 인원은 맞출 수 있습니다·”
“좋아 그럼 밀약을 수정해 주지·”
우리는 밀약에 특약을 추가했다·
대강 불의의 사건으로 인해 내가 천뢰번만을 훔쳐서 도주하게 되면 내가 3인의 금신천뢰문 소속 제자를 받았을 시 그녀는 우리 넷을 ‘정통성을 갖춘 새로운 금신천뢰문’으로 인정하고 지지하겠다는 내용의 특약이었다·
‘이것으로 조건은 갖춰졌다·’
만약 전명훈이 내 예상에 미치지 못해 빨리 성장하지 못한다고 하면 나는 천뢰번을 훔쳐서 내 추종 세력과 함께 ‘새로운 금신천뢰문’을 세운다는 명목으로 천뢰번을 들고 도망칠 계획이었다·
그러나 만약의 경우·
전명훈과 천뢰번 사이에 어떤 사건이 터져서 내가 급히 천뢰번을 훔쳐야 할 경우가 생긴다면 내가 바로 천뢰번을 훔쳐 도망쳐도 3명의 지지자만 있다면 나는 헌위와 봉래궁에게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만약 내가 천뢰번을 훔쳐서 도망쳐도 금신천뢰문만 추격해 온다면 충분히 버틸 수 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금신천뢰문이 인족 총연맹에 ‘배신자 서은현’을 수배하는 것이었다·
금신천뢰문 문파 한 개의 전력은 감당할 수 있었지만 인족 총연맹의 실력자들이 쫓아온다면 버티기 힘들 수도 있었기 때문·
하지만 헌위와 이런 밀약을 맺었으니 유사시 인족 6대 종문 중 하나인 봉래궁이 나를 지지해 줄 것이고 수배서가 나돌 일도 없을 터였다·
헌위는 밀약을 수정한 다음 돌아갔고 나 역시 금신천뢰문으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만약의 일이 일어나기 전 홍수령을 설득해야겠지·’
나는 홍수령의 동부를 찾아갔다·
‘과연··· 홍수령은 이런 얘기를 한다면 받아들여 줄까?’
금신천뢰문의 멸망을 막기 위한 일이었지만 진선과 엮인 이상 제대로 설명할 수도 없었고 내가 하려는 짓은 배신이었다·
‘내가 이런 제안을 한다고 해도 폐쇄적인 그녀의 성격에 장문인에게 말하기는 않겠지만····’
아무리 나랑 명목상 쌍수 상대라고는 했지만 이런 ‘배신’을 받아들여 줄지는 의문이었다·
‘그녀가 수락할지 하지 않을지는 모르겠군·’
그녀의 성격상 내가 이런 얘기를 한다고 다른 누구에게 발설할 일은 없었기에 문제는 없었으나 정말 문제는 그녀가 나와의 동행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의 동부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러마·”
“···예?”
나는 너무나도 시원하게 수락해 버리는 그녀를 보며 벙찐 표정을 지었다·
“뭐 나야 연구랑 수련만 제대로 하게 해 주면 문제없다· 거기에 너도 사실상 본문의 모든 뇌도공법을 익혔고 금씨 성도 지녔고 뭐 네 말마따나 천뢰번까지 전부 획득하면 정통성으론 크게 문제없겠지·”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나는 너무나도 시원하게 수락한 그녀를 보며 얼떨떨하게 물었다·
“이건 사실상 현 장문인과 태상장문에 대한 배반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렇게 쉽게 수락하셔도 되는 겁니까?”
“안 될 게 무어냐· 원래 금신천뢰문의 역대 장문인들 지도자들은 대대로 금신천뢰문을 위해 몸을 바쳐 왔다· 나는 말은 안 하지만 그들을 늘 존경해 왔지· 그리고····”
홍수령은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 역시 내 눈을 피할 생각하지 마라· ‘오직 금신천뢰문을 위해서’라는 의념을 줄줄 흘리면서 배신이니 뭐니 내숭 떨어 봤자 나한테는 안 통한다·”
그녀가 웃었다·
“네가 뭘 하려 해도 너는 본문에 해가 되는 일을 하려 하는 게 아니지 않으냐?”
“····”
나는 말없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홍수령은 말이 없는 나를 보며 말했다·
“이것 하나만 약속해 다오·”
“···무엇입니까?”
“만약 네가 말한 일이 일어나고 네가 천뢰번을 수득해서 어떻게 할 일이 생기면 아마 본문의 장로와 원로들이 총동원되어 너를 잡으러 갈 것이다·”
“그렇겠지요·”
“네가 실력을 숨기고 있단 건 이미 알고 있다· 나와 대련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내가 전력을 다한다 해도 네게는 안 되겠지· 너와 잠시나마 대등해지려면 내가 생명과 모든 수행을 격발해야지만 가능할 터···· 네 본 실력은 아마 태상장문과 비등 그 이상이겠지·”
나는 흠칫 놀랐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고 의념도 잘 다스렸다·
“만약 네가 원로진과 장로진들을 상대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손속에 자비를 두어 그들이 죽지 않게 해 다오·”
“···한 명도 죽지 않게 하겠다고 약조하겠습니다·”
“좋아· 그 정도면 되었다·”
나는 시원하게 수락한 홍수령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하다 물었다·
“···헌데 원영기 장로인 제가 왜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녀와의 대련에서 진심이 된 적은 없었다만 나는 최선을 다해서 그녀가 내 본 실력을 가늠할 수 없게 해 왔다·
그런데 너무나 뜻밖에도 홍수령은 내 본 실력에 대해서 감을 잡고 있는 것이었다·
내 질문에 홍수령은 찡긋 웃었다·
“여자의 감이다·”
“····”
그 모습에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감사합니다·”
내가 할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 * *
쿠릉 쿠르르릉!
“죽어라 서은현!”
나는 전명훈의 번개를 피하며 여전히 녀석을 두들기고 있었다·
‘점점 실력이 좋아지는군· 아니····’
홍범이 원영기가 되어도 일상은 다름이 없었다·
나는 여전히 전명훈을 가르쳤고 창천개벽문의 방식으로 녀석의 수행을 끌어올리는 데에 열중했다·
그리고 그건 꽤 성과가 있었는지 최근 전명훈의 수행과 실력은 전체적으로 빠르게 오르고 있었다·
콰지지직!
붉은 번개가 살아 있는 듯이 움직이며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나를 향해 쏘아졌다·
피싯!
번개가 순간 예리한 검날처럼 변하며 내 뺨에 작은 상처를 내었다·
“···놀랍군·”
나는 순수하게 경탄하며 전명훈을 바라보았다·
‘적뢰진경도 이제는 완전히 다른 공법이라고 할 정도로 진화했다·’
“앞으로 한 백 년만 있으면 내 뺨에 상처 두어 개 정도는 더 만들 수 있을 거다·”
나는 일부러 전명훈을 자극하는 듯한 말을 하며 전명훈을 두들겼다·
전명훈의 의념은 내 말에 자극받아 더욱 붉어졌고 그럴 때마다 녀석의 번개도 더더욱 강렬해졌다·
전명훈의 분노를 북돋는 것 역시 수련의 일환이었다·
전명훈은 금신천뢰문에서 오냐오냐 받고 있었기에 내가 녀석의 분노를 자극하며 수행을 끌어올리는 것이 상당히 효과가 있었다·
“빌어먹을!”
콰지지지직!
전명훈은 모든 뇌전을 내게 뿜어내고 방전되어서 바닥에 드러누웠다·
나는 쓰러진 전명훈에게 말했다·
“오늘도 수고했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성장하면 된다·”
녀석은 숨을 몰아쉬며 분노를 다독였고 나는 그렇게 오늘치 수련을 마친 후 내 동부로 돌아갔다·
‘빨리 성장해라 전명훈·’
천뢰번을 훔칠 계획은 세워 놓았지만 그건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보험이었다·
가장 좋은 건 전명훈이 자신의 능력을 각성해서 천뢰번을 자신의 손으로 봉인하는 것·
금신천뢰문의 멸문을 피하기 위해서는 전명훈을 하루빨리 키울 필요가 있었다·
* * *
“···빌어먹을 빌어먹을!”
전명훈은 자신의 동부로 간 서은현을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젠장! 아직도 안 되잖아!”
그는 신경질적으로 일어나 발을 굴렀다·
‘더 더 필요해···!’
서은현이 모르고 있는 것이 있었다면 전명훈의 붉은 의념은 분노뿐이 아닌 ‘열등감’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최근 전명훈의 열등감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더 더···!’
그리고 전명훈은 자리에 앉아 공법을 운용하며 뇌기를 끌어모았고 그 뇌기 안쪽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집중했다·
우우웅!
소곤소곤소곤····
기이한 목소리가 적뢰진경보다 훨씬 진화한 구결을 알려 주었다·
더더욱 번개를 다스리는 데에 적합한 구결이었다·
츠츠츳!
전명훈은 목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몸에서 뭔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쨌든 목소리의 말을 따라 법력을 인도하면 더더욱 강한 힘을 얻었으니까·
‘목소리’에 집중할수록 어째선지 열등감과 분노가 이상할 정도로 더 심해지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원래부터 열등감은 있었으니까·
‘반드시··· 번개의 인도를 따라 서은현을··· 뛰어넘는다!’
서은현을 뛰어넘기 위한 의지에 따라 전명훈은 차근차근히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