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겁 (5)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일단 중요한 건 눈앞의 적이다·
‘헌위와 헌원이 동시에 적이 된 상황이다·’
헌원은 현재 인족 구역에서 멀리 떨어진 건곤성에서 영상을 보내는 중이었고 헌위는 내 앞에서 공격을 쏟아내는 중·
하지만 나는 빠르게 판단을 마치고 움직였다·
부웅!
의식이 가속하며 나는 무색유리검을 꺼내 헌원이 비췬 수경을 향해 휘둘렀다·
쩌어엉!
헌원이 채 반응할 틈새도 없이 수경이 그대로 박살 났다·
그리고 그 틈을 타 헌위가 쏘아 보낸 빛 덩이가 아슬아슬하게 내 등을 스치고 지나쳤다·
위험하기 그지없었던 판단!
하지만 나는 빠르게 천기를 읽어 보았다·
‘다행히 액운이 사라졌다·’
합체기쯤 되면 단순히 비췬 영상만으로도 신통을 부릴 수 있었기에 선조치는 필수였다·
나는 싸늘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헌위와 눈을 마주쳤다·
“이렇게 되어 유감이다만 아버님의 명은 절대적인지라 어쩔 수 없구나·”
“그렇습니까· 이해합니다·”
“얌전히 잡혀라· 아무리 네가 소문난 천재라 해도 원영기와 천인기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 하물며 상대가 나라면 더더욱·”
“실력에 자신이 있으신가 보군요·”
나는 무색유리검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지난번 대충 날린 일격을 막아 보고 나를 상대할 수 있을 만하다고 여긴 건 아니겠지?”
그와 동시에 평범하게 팔을 뻗고 법력을 쏘아 내던 그녀가 갑자기 자세를 바꿨다·
쿠웅!
그녀는 발을 구르며 마치 권법(拳法) 같은 자세를 취했다·
‘무공? 아니야····’
자세에 실전성이 없었다·
오로지 보여 주기 위한 자세·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절도 있어 보이는 동작이었다·
무림인의 식견에서 보자면 단순히 절도 있는 자세를 취할 뿐인 겉멋만 잔뜩 든 기수식·
그러나 ‘무림인’이 아닌 ‘수도자’의 시점에서 본다면 저것은 의미가 또 달라졌다·
‘저 동작이 하나의 결인이다·’
찌릿 찌릿 찌릿····
공기가 따끔거리는 느낌이다·
지금까지의 헌위와는 느낌이 달랐다·
살짝 맹탕이었던 것 같았던 그녀의 기세가 정반대로 바뀌며 소름 끼치는 흉악한 기운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쿠구구구구!
“···!!”
일대가 마구 진동하기 시작했다·
“보여 주마· 봉래궁주와 그 직계에게만 허락되는 신(神)의 가르침을····”
다음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검을 내밀었다·
‘막아야 한다’는 느낌이 내 뇌리 영혼을 적시는 것이 느껴진다·
“음양산(陰陽山)·”
하늘에서부터 붉은 양기가 땅에서부터 푸른 음기가 휘몰아치며 태극(太極)이 되어 휘몰아쳤다·
거대한 태극의 형상은 세계 전체에 휘몰아치는 듯하더니 그대로 하나가 되었다·
쿠웅!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이건····’
나는 검을 들고 헌위의 바로 앞까지 쇄도해 있었으나 동시에 내 검은 그녀의 몸에 닿지 못했다·
태극의 형상!
세계를 덮고 내 몸을 뒤덮은 거대한 태극의 형상이 원구형의 주박(呪縛)이 되어 나를 가두고 있었다·
꾸구구구구!
태극의 형상 안쪽에서 어마어마한 압박이 느껴졌다·
“오행산(五行山)·”
이어서 헌위가 낭랑한 목소리로 다른 자세를 취하며 전신으로 펼치는 결인을 맺는다·
용맥(龍脈)!
천지간에 흐르는 거대한 대지의 용맥이 치솟아 올랐다·
그녀의 의지에 의해 치솟은 용맥은 그대로 오행의 기운으로 분리되는 듯하더니 나를 가둔 태극의 옥 주변을 돌며 태극의 형상 주변으로 오색의 띠를 둘렀다·
키잉!
나는 태극과 오행의 기운이 합쳐지며 나를 두른 이 주박의 힘이 더더욱 강해짐을 깨달았다·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산(太山)!”
그리고 나는 빠르게 뇌리를 굴리며 이 주박의 정체를 알아냈다·
‘축복?’
이 주박의 성질은 일종의 축복이었다·
내가 안에서 움직일 수가 없다지만 동시에 이 주박은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지켜 주고 있기도 했다·
‘왜 내게 축복을 걸어 주려는 거지? 아니지 제길!’
나는 헌위가 가하려는 공격을 알아채며 이를 질끈 악물었다·
꾸구구구국!
상당한 압박이 몸을 짓누르고 있어 움직이기가 번거로웠다·
쿠웅!
헌위가 자세를 바꾼다·
그녀의 양손에는 각각 흑색과 백색의 빛무리가 휘돌고 있었다·
각각이 성스러운 기운을 흘리는 기운과 진득한 마기(魔氣)를 흘리는 기운이었다·
“열제(裂帝)!”
짝!
그녀가 흑백의 기운이 맴도는 양손을 부딪쳤다·
그런 다음 그녀는 다음 발을 내디디며 내가 갇혀 있는 음양오행의 옥에 달려들어 부딪친 양팔을 활짝 벌렸다·
그와 동시에 나는 나를 가둔 음양오행의 옥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걸 느꼈다·
나에게 ‘축복’의 형식으로 걸어 준 후 내 기운과 동화시켜 버린 음양오행이 그대로 일곱 조각이 되어 분해되어 버렸다·
나는 전신에 흐르는 기(氣) 자체가 그대로 잘게 분해되는 느낌과 함께 빛무리에 파묻혔다·
* * *
쉬이이이이―
헌위는 그녀의 눈앞에 생겨난 반경 약 5백 리에 달하는 거대한 먼지구름을 보며 무표정하게 손을 털었다·
“해치웠나····”
이 정도면 되었을 터였다·
봉래궁의 최고위 공법인 태산열제공의 일격에 직격한다면 동 경지라도 즉사였고 그보다 윗 단계인 천인기 후기나 대원만이라 해도 치명상을 피할 수가 없었다·
‘원영기 대원만인 녀석에게 쓰기에는 조금 과분한 일격이었다만 그래도 나름 금신천뢰문의 천재인 녀석이었으니 격에 안 맞진 않겠지·’
헌위는 먼지구름을 쳐다보며 서은현의 원영이 튀어나오기를 기다렸다·
이 일격이라면 원영기 수사의 연약한 육신쯤은 가루가 되어 버렸을 테니 원영만 포획해서 그녀의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면 이번 ‘돌발 임무’는 끝이었다·
‘나름 재밌는 녀석이었다만 아쉽게 되었군·’
그녀는 혀를 차며 손을 휘저었다·
휘이이이―
그녀의 손짓에 바람이 불어오며 그녀의 전방 5백 리의 먼지구름이 일시에 걷힌다·
그리고 그녀는 흠칫 몸을 떨었다·
휘이이이―
“···!”
전신에서 연기가 나는 나신(裸身)의 남성이 한 자루의 유리검을 들고 이빨이 드러나도록 웃은 채 서 있었다·
나신의 남성 서은현은 히죽 웃으며 죽은 피를 한 움큼 내뱉으며 말했다·
“3천 년 동안 천인 중기라고 소문이 나셨길래 본래 저희 금신천뢰문에서는 헌 선자에 대해서 둔재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스륵····
그는 입가의 피를 닦으며 충혈된 눈으로 헌위를 바라보았다·
“그에 대해서는 금신천뢰문을 대표해 사죄드리겠습니다· 이런 공법을 익히고 계셨다면 시간이 조금 걸릴 수도 있었겠다 싶어지는군요·”
“···놀랍군· 이걸 맞고 살아 있어?”
헌위는 진심으로 감탄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연체공법이라도 주워다가 익혔나 보군· 하지만 그 정도가 끝이겠지·’
위이이잉!
다시금 천지영기가 진동하며 음양오행의 기운이 구체의 형태로 서은현을 뒤덮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양손에 흑백의 힘이 서리기 시작했다·
“대단하구나· 그럼 어디 한 번 더 맞아 보거라·”
“···흐하·”
하나 다음 순간·
서은현이 검을 휘둘렀다·
‘뭣!’
소리도 인식도 반응도 채 따라가지 못했다·
어느새 헌위는 서은현의 무색유리검이 그녀의 음양오행의 옥을 뚫고 그녀의 가슴에 쇄도해온 것을 목격했다·
어쩔 수 없었다·
헌위는 공격을 위해 모았던 선마기(仙魔氣)를 방어를 위해 돌리며 서은현의 공격을 막아 냈고 다시금 섬광이 천지사방을 뒤덮었다·
쿠구구구구!
섬광이 잦아들고 보인 것은 한 손으로 무색유리검을 내리누르는 서은현과 서은현의 무색유리검을 양손으로 잡은 채 필사적으로 막고 있는 헌위의 형상이었다·
“놀랍군요 헌 선자·”
서은현은 진심으로 감탄한 듯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
그의 무식한 힘에 놀란 헌위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뭐···?’
그리고 하늘에 드러나 있는 그녀의 천기는 필패(必敗)를 상징하는 천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서은현의 말이 이어졌다·
“당신이 익힌 공법도 저와 비슷하다니····”
* * *
나는 그녀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녀는 여려 보이는 팔로 내 검을 잡고서 막아 내고 있었다·
어떻게 요수공법을 익혀 육신의 힘을 극한까지 단련한 내 검을 자신의 양팔로만 막을 수 있을까?
간단한 대답이었다·
그녀 역시도 요수공법을 익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가 익힌 것은 천족의 공법이기도 했다·
“태산열제공이라는 것은 천지족의 힘을 전부 다루는 공법인 겁니까?”
천족은 법력과 법술을 지족은 육신과 생명력을 주로 단련한다·
하지만 천족은 이론상 천 지 심족의 모든 공법을 익힐 수 있기에 천족 중에서는 간혹 다른 종족의 공법을 익히는 이들도 나온다·
그중에서도 법력을 중시하는 천족의 공법과 육체를 중시하는 지족의 공법을 둘 다 익히는
수련법을 일컬어 법체쌍수(法體雙修)·
혹은 천지족의 수련법을 전부 익힌다 하여 천지쌍수(天地雙修)라고도 불렀다·
그리고 헌위의 태산열제공은 그러한 천지쌍수의 공법이었던 것이었다·
꾸구구국····
‘3천 년 동안 천인기 중기까지밖에 못 도달한 게 이해가 되는군·’
그녀는 심각한 둔재가 아니었다·
자질로만 따지면 그냥저냥 평범한 범재라 해야 할까·
도리어 범재의 자질로 천지쌍수의 수련법을 병행하며 천인기 중기까지 도달한 것이 대단한 것이었다·
그만큼 천지쌍수의 수련 방식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마련이었으니 말이었다·
“미친··· 말도 안 되는···· 네가 어떻게 천지쌍수의 수련을 해 왔단 거냐···?”
그리고 그런 만큼 내 근력을 확인한 헌위의 동공이 파르르 떨려 왔다·
“수선을 시작한 지 백 년도 안 된 네놈이 천지쌍수로 나를 압도할 정도까지 올라왔다고···? 말도 안 되는····”
“····”
확실히 내 성장은 겉보기만 보면 말이 되지 않는 성장 속도긴 했다·
그녀는 망연자실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게··· 진짜 천재인 건가·”
“····”
나는 대답하지 않고 검을 쥔 손에 더더욱 힘을 주었다·
쿠구구구!
그녀가 서 있던 대지가 그대로 움푹 파이며 그녀는 땅 밑으로 박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슈칵!
나는 일순간 큰 폭으로 힘을 주어 그녀의 손에서 벗어나 그녀의 머리통을 쪼개 버리고 금단 직전까지 무색유리검을 박아넣어 그녀를 반쯤 갈라 버린 후 검을 회수했다·
치지지직····
그녀는 천천히 재생을 시작했고 나는 그런 헌위를 보며 말했다·
“일반적인 천인기 수사라면··· 아니 천인기 대원만이라 해도 대비 없이 헌 선자의 공격을 맞으면 분명 갈려 나갔을 겁니다·”
그만큼 그녀의 태산열제공은 흉악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그녀를 근력으로 압도했던 것 역시 그녀의 태산열제공이 육신 자체를 ‘출구’로 하여금 기운을 ‘발출’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진 공법이라면
창령성광오채대법은 순수한 ‘육체’ 그 자체를 성장시키는 데에 주력이 된 공법이라는 차이였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내가 요수공법으로 진화시킨 후 선수의 힘과 괴군의 회로까지 체내에 일시적으로 깔아 사용했기에 그녀를 제압할 수 있는 것뿐이었다·
‘순간 답천으로 몸을 보호하지 않았으면 분명히 서은현 미숫가루가 되었겠지····’
천 지족의 힘· 괴군의 회로 거기에 선수의 힘 그리고 답천 무형검을 몸에 둘러서야 겨우겨우 몸이 멀쩡할 수 있었으니 더 이상 헌위의 공격의 위력을 설명해 봤자 불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의복의 술법으로 다시금 가루가 된 옷을 재생해 입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약속이 결렬되어 유감입니다·”
헌위를 인질로 삼거나 해서 건곤성 비선대로 돌격하거나 해 볼 생각도 해 봤지만 바로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봉래궁주 헌원이 자식을 대할 때 드러내는 의념으로 보아 그는 딱히 헌위에게 애착이 없었고 도리어 인질과 함께 나를 통째로 갈아 버릴지도 모르는 인물이었다·
‘건곤성 비선대는 이용을 못 하게 되었다·’
나는 하늘로 날아올라 시운도를 떠나며 상념에 잠겼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합체기 태수가 거하며 사축기 수사들이 득시글거리며 순찰을 도는 건
곤성으로 쳐들어가 비선대를 이용할 만큼 간이 크진 않았다·
‘그리고 헌위가 익힌 태산열제공은 결국 헌원의 본명공법···· 태산열제공이 천지쌍수의 수련방식을 주로 하는 공법이라면 합체기에서도 한두 단계는 뛰어넘는 위력을 지니고 있겠지·’
내가 알기로 헌원은 합체기 초기의 수사였으나 방금 전 헌위가 보여 준 태산열제공을 떠올리자 헌원의 본 실력은 절대로 초기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대일로는 사축기 대원만도 버거운데 사실상 합체 중후기 수사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지·’
건곤성을 깔끔히 단념한 나는 머리를 굴렸다·
‘그렇다면 어디를 통해서 수계로 내려가야 하지?’
일단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봉명주 최하층이었다·
봉명주 최하층이라면 하계로 내려갈 수 있으니 시도해 볼 만했다·
‘물론 요족들이 득시글거리는 봉명주까지 찾아가서 서휼의 눈과 오혜서의 능력을 피해 봉명주 최하층에 내려가 준 합체기 관주사자 규련을 넘어야 하니····’
난이도 자체가 미쳤다는 것만 아니라면 당장 실행에 옮겼을 터였다·
‘그럼 다른 방법은····’
나는 또 다른 방법을 떠올렸다·
바로 마계에 있는 ‘공령지’였다·
‘공령지를 이용하면 하계로 내려갈 수도 있다····’
하지만 공령지는 안정된 비선대가 아니었고 중간에 공간 폭풍에 휘말려 어디론가 떨어질 가능성도 컸다·
‘어디로 가야 하지····’
이미 정려에게 걸려 있는 봉인으로 추정되는 무언가가 상당히 풀려나간 상태였다·
어쩌면 얼마 안 있어 그 인력을 느끼고 천벌의 주인이 찾아올지도 몰랐다·
고민은 빨랐다·
‘공령지로 간다·’
안 그래도 한시가 급한데 의뭉스러운 서휼 놈의 눈치나 보면서 시간 끌 수가 없다·
괜히 정려를 서휼의 아가리에다 꽂는다는 계획을 세우는 것도 녀석을 상대로는 어떻게 꼬일지 몰랐다·
‘무엇보다 물어볼 것도 있고 말이지····’
나는 헌원이 연위를 향해 보인 태도를 기억하며 이를 갈았다·
‘분명 내게는 헌원이 자신을 못 알아볼 것이라 했었다···!’
그렇게 호언장담했지만 결국 한눈에 보자마자 알아보며 격노하여 일이 이렇게 꼬였으니·
반드시 이번 일에 대해 추궁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