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천(劫天) (4)
“···그게 사실이냐 서은현·”
전명훈이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전명훈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의 전말을 대강 설명해 주었다·
전명훈이 천벌의 주인을 직시하고도 상당히 멀쩡한 것 같았기에 사실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정말로 다행히도 녀석은 녹아내리거나 죽지 않고 어찌어찌 천벌의 주인에 대한 얘기를 해도 미치지 않았다·
‘아까 이 녀석··· 자기 명을 알 거 같다고 중얼거렸지·’
아무래도 그것과 관련이 있는 듯싶었다·
“···이상이 지금까지 내가 천뢰번을 훔치려 했던 이유다·”
“···그런가·”
“···그래· 어떻게 이런 정보들을 미리 알고 있었냐는 건 말하기는 힘들다· 다만 네가 천상금뢰지체를 타고 났듯이 나도 그런 비슷한 걸 가지고 있다고 말해
지·”
“····”
전명훈은 한참을 멍한 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흐 흐하··· 그래· 이해했다· 서은현·”
그는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쥐며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우리는 머저리 같은 놈들이었다는 걸· 네 말을 들었다면··· 흐 흐흐··· 제길· 흐하하하! 으아아아아!”
“····”
나는 착잡한 표정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쩔 수 없겠지·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상황을 파악했으면 일어나라·”
“···알겠다·”
전명훈은 절망과 암울함에 빠졌으나 광기에는 빠지지 않은 얼굴로 일어났다·
그는 금신천뢰문의 상공으로 떠올라 외쳤다·
[본문의 생존자들은 전부 이곳으로 오라!]
쿠구구구!
전명훈이 뿜어내는 뇌기를 보고 얼마 후 수많은 하뢰 제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들어라 본 금신천뢰문은 진선 이상의 존재에게 멸문당하였다!]
술렁술렁····
[그리고 너희 모두 천기를 읽어 봤겠지만 다들 수명이 20년 안팎으로 줄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모든 제자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그 사실은 틀렸다! 20년이 아닌 너희 모두 길어야 3년 안에 천겁이 내려올 것이다!]
술렁술렁····
“그 금 원로님· 그렇다면 저희는 어찌해야 합니까? 저희는 천겁을 맞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가 저희가 감당 못 할 수준이라고 알고 있습
다!”
[그래 맞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태상장문과 문파의 어른들이 모조리 사라진 이 상황에서 나 원로 금명훈이 명하겠다!]
쿠웅!
그가 발을 구르자 뇌전이 모이며 전명훈의 뒤편·
뇌전으로 이뤄진 어마어마하게 큰 전각이 나타났다·
멸뢰내천궁의 수법 중 일부였고 전명훈이 익힌 적뢰천겁공의 공능이었다·
[너희 대다수가 수계에서 광한계로 올 때 비승을 겪었다고 안다· 맞는가?]
“그렇습니다!”
[그때와 똑같이 너희가 이 안으로 들어가 진법을 펼치고 내가 너희를 보호하며 다시 수계로 내려갈 것이다!]
그 말에 좌중이 또다시 술렁였다·
“원로님 그렇다면 광한계의 이 풍부한 자원을 버리고 다시 수계로 가야 한단 말입니까?”
[그렇다· 너희도 보이지 않느냐? 너희의 수명이 촉박하다!]
“하 하지만 수계에 간다고 해서 반드시 산다는 보장도 없지 않습니까?”
[여기 남게 되면 ‘무조건’ 죽는다· 하지만 수계로 돌아가면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너희는 살 수 있다! 어찌할 거냐!]
전명훈의 서슬 퍼런 질문에 하뢰 제자들은 다들 공포에 질린 얼굴로 서로서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수 수계로 가겠습니다!”
[좋아 잘 선택했다· 모두 이 안으로 들어가라! 비승해 올 때와 같이 진법을 짜라! 비승할 때에 없었고 비교적 최근에 입문한 제자들은 다른 제자들에게 배우거라!]
그의 일사불란한 지휘 아래 금신천뢰문의 제자들은 전부 그가 소환한 뇌전의 전각 안쪽으로 들어갔다·
전명훈은 금신천뢰문의 남은 잔재들을 챙겼다·
그리고 뇌전의 전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쿠구구구구!
뇌전의 전각이 압축되며 전명훈의 손 크기에 딱 맞게 들어왔다·
그가 소매를 펄럭이자 전각은 그의 소매 안쪽으로 들어왔다·
녀석이 금신천뢰문 문 내에 있는 제자들을 수습하는 사이 나는 내가 봉인되었던 봉령당으로 갔다·
내 봉인되었던 봉인석 옆에는 홍범의 봉인석이 있었다·
나는 일단 홍범이 봉인된 옥구슬을 챙겼다·
녀석의 봉인을 풀어주려면 시간이 필요했으나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전명훈 그나저나 지금 뇌령도 바깥으로 떠나 임무를 맡고 있는 제자들도 있다· 그들은····”
“알고 있다· 녀석들도 전부 데리고 갈 것이다· 다만····”
그는 어두운 안색으로 말했다·
“태상장문께서 명귀계로 임무를 보낸 몇몇은 지금 데리고 올 수 없다·”
“···알겠다·”
“하지만·”
그가 말했다·
“진마계로 파견 간 몇몇은 지금 그들의 뇌도공법과 감응이 된다· 그들은··· 어쩌면 데리고 갈 수 있을지도 몰라!”
“···!”
“일단 가자!”
“알겠다·”
나는 전명훈과 함께 움직였다·
파아아앗!
우리는 비둔술을 펼치며 뇌령도 바깥으로 나가 타지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제자들을 데리고 왔다·
간혹 나를 알아보고 기겁하며 도망치려는 제자들도 있었다·
그런 녀석들은 일일이 설명할 시간이 부족했기에 일단 잡아서 오행혈주번을 박아 넣어 금제를 하고 잡아 왔다·
그렇게 인족 총연맹의 천공도 곳곳으로 파견을 나간 금신천뢰문의 제자는 전원을 회수할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천벌의 주인이 나타났던 곳과 멀면 멀수록 천겁이 떨어질 시일이 훨씬 많이 남았기 때문에 외부에 있던 제자들에 대해서는 훨씬 안심할 수가
있었다·
“그럼 전명훈 이제 남은 제자는 몇이지?”
“진마계에 파견 나간 제자 13명· 그리고 추가로 1명을 포함해서 14명 남았다·”
“추가 1명은 뭘 말하는 거냐?”
전명훈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청뢰 제자 연진· 그 녀석도 진마계에 있지 않나·”
“···그 녀석은····”
“문파의 배신자라는 거냐?”
전명훈은 고개를 저었다·
“그 선조는 배신자가 맞지만 그 후손인 녀석은 분명한 금신천뢰문의 제자다! 그러니 연진까지도 전부 구해내서 우리와 함께 간다!”
“···알겠다·”
나는 전명훈의 각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파아아아앗!
나와 그는 잔마계를 향해 날아갔다·
진마계를 향해 날아갈 때였다·
쿠릉 쿠르르릉!
번쩍!
먹장구름이 하늘에서 일렁이는 듯하더니 어느새 거대한 금뢰가 나를 향해 떨어졌다·
“···!”
콰르르릉!!
나는 황급히 산외산부진의 초식을 쓰며 금뢰를 막았지만 어마어마한 고통이 전신을 엄습했고 정말로 생명의 위기를 느꼈다·
“뭐냐 방금 건?”
“····”
“서은현?”
나는 말없이 하늘을 노려보았다·
‘시작되었다·’
멸신겁천으로 운명을 조금 비틀어 놓은 결과·
그 대가로 얻은 무수한 재액(災厄)이·
쿠구구구구!
전신을 누르는 압박감이 더 강해졌다·
멸신겁천의 재액은 다음과 같이 찾아온다·
멸신겁천으로 뒤바꾼 운명의 뒤틀림이 모조리 재액의 형태로 찾아온다·
그리고 그 재액을 견디기 위해 희생 제물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지금의 희생 제물은 나 자신·
그러므로 멸신겁천으로 뒤튼 운명의 뒤틀림을 받아 내야 하는 것도 나였다·
그렇다면 천겁을 뒤튼 재액은 어떤 식으로 찾아오는가·
당연하게도 천겁을 뒤튼 재액은 천겁으로 찾아왔다·
한 마디로·
나는 내 자신에게 금신천뢰문 전체에 쏟아질 천겁을 전부 몰아넣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서은현 뭐가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잖나·”
전명훈의 으르렁거림에 나는 어찌 된 상황인지를 말해 줬다·
그 말을 들은 전명훈이 말했다·
“혹시 그 멸신겁천이란 공법· 나와 연결할 순 없나·”
“뭐?”
“나 역시 그 희생 제물이란 것으로 등록할 수 없느냔 말이다·”
“흐음····”
“나는 천겁 따윈 상관없다· 전부 법력화시켜 버리면 끝이니까·”
“가능하긴 하다· 다만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려·”
“그럼 됐다· 일단 수계에 가는 것부터 생각하지·”
“그래·”
우리는 계속해서 진마계로 날아갔다·
나와 전명훈은 진마계 입구를 지키는 사축기 수사들을 바로 쓰러뜨리고 진입할 준비를 했다·
“그럼 빨리 가지·”
“잠깐· 기다려라 전명훈·”
“음?”
나는 그 자리에서 기묘성심전을 공명시켜 김연과 연결되었다·
지난 몇 년·
내가 금신천뢰문에 쫓길 당시 김연과 연결되어 그녀를 통해 기묘성채의 방향성을 조절했다·
그를 통해 나는 지족 진룡맹 쪽을 습격하고 그 덕에 현재 규련도 역시 살아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김연에게 한 가지를 더 부탁했다·
[···이걸 해 줄 수 있겠어?]
[네 은현 오빠· 당연하죠· 지난 8년 동안 은현 오빠가 말을 걸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말··· 정말 좋네요·]
[미안해 연아· 어쩌면··· 이번에 또 몇 년 동안 연락을 못 할 수도 있어·]
[···그런가요·]
그녀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어쩔 수 없네요· 하지만··· 반드시 돌아오실 거죠?]
[응·]
[그럼 됐어요· 비익무를 연습하면서 지낼게요· 안 그래도 은현 오빠가 알려 준 방법으로 삼화취정에도 막 접어들었어요· 삼화취정에서 오기조원에 도달하는
법은 기묘성심전의 구결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오기조원도 큰 문제 없이 시간을 들이면 도달할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의식을 가속시키며 그녀와 잠시 담소를 나눴다·
마음 같아서는 훨씬 긴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8년간 못 나눈 대화가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그녀에게는 미안했지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럼 연아· 나중에 다시 만나자·]
[네 오빠!]
츠츠츳!
나는 꿈 밖으로 나와 전명훈을 쳐다보았다·
“됐다· 이제 가지·”
“그래·”
말을 하며 하늘을 보니 어느덧 다시금 내게 천겁이 쏟아지기 직전이었다·
‘내가 천겁을 견디지 못하고 죽으면 그대로 멸신겁천이 해지되고 운명을 피했던 이들 역시 바로 천겁을 맞아야 할 거야·’
나는 최대한 오래 버티기로 마음먹으며 이번에 내리친 천겁을 맞았다·
쿠르르릉!
“끝났나?”
“그래·”
“가지·”
우리는 그대로 진마계의 차원문에 돌진했다·
다행히 금신천뢰문의 제자 13명은 빠르게 찾을 수 있었다·
대다수가 인족 1 2차 점령지 인근에서 임무를 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연진 뿐이었다·
‘연진을 어떻게 찾지····’
역시 기괴고라도 박아 두었어야 했나·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전명훈이 어느 한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연진은 저쪽 방향에 있다·”
“음? 뭐?”
“저쪽 방향으로 쭉 가면 있다고 했다·”
“허어··· 그게 네 능력인가?”
“뭐 번개들이···· 아니 됐다· 설명해 줘도 이해는 못 하겠지·”
전명훈은 설명을 더 하려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우리는 인족 점령지를 떠나 연진을 찾으러 가기 전·
금신천뢰문의 작은 사당을 인족 점령지 안에 하나 지어 놓고 그 안에서 무수한 선조들에게 인사를 올렸다·
나 역시 내 스승인 진휘에게 절을 올렸고 전명훈 역시 그리했다·
파아아앗!
절을 올린 우리는 곧바로 인족의 점령지에서 나왔다·
진득한 진마계의 마기가 우리를 반겼으며 전명훈은 연진이 있다는 곳을 향해 무작정 날아갔고 나는 그 뒤를 쫓아갔다·
번개의 목소리라는 것이 그를 계속 인도하는 모양·
나는 다시 한번 하늘을 보았다·
‘점점 천겁이 거세지고 있어·’
아까까지만 해도 사축기 후기 급의 일격이었는데 이제 느껴지는 천겁의 힘은 슬슬 사축기 대원만에 수렴하고 있었다·
‘빨리 수계로 가야 해· 아니면··· 내가 죽고 멸신겁천이 풀릴 수도 있다·’
연진을 찾으면 더 이상 지체할 시간 따윈 없었다·
‘바로 공령지를 통해 하계로 내려간다!’
오늘에야말로·
예전에 준비해 뒀던 공령지와 장생진 원유를 이용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