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天), 지(地), 인(人)
“신호하면 너희 둘이 각각 이 진 위로 올라가라·”
“이건 무슨 진입니까?”
“서은현 넌 앞으로 지(地)다·”
“예?”
“전명훈 넌 앞으로 천(天)이다· 나는 인(人)의 자리에서 너희 천지를 섞으며 위뢰제의 기운을 보조할 것이다·”
그녀는 말을 하며 끊임없이 손을 움직여 천지영기를 움직이며 진법을 짜고 있었다·
진법의 맥(脈)이 그녀가 위뢰제를 지내라고 보낸 제자들의 방향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며 위뢰제를 하나의 거대한 진법 속에 가두는 것이 보인다·
‘대단한 진법 실력이군····’
과연 4만 년이나 살아온 노괴답게 다재다능한 모양이었다·
연위는 진법을 계속 설치하며 말해 주었다·
“일단 이 태극의 진은 너희 둘의 힘을 교류하게 만들어 너희가 단숨에 힘을 합쳐 더더욱 강한 힘을 끌어낼 수 있게 돕는 진이다· 일단 서은현 너는 빨리
명훈과 나를 희생제의 제물로 포함시켜라·”
“예?”
“뭘 모른 척하느냐 전명훈의 천상금뢰지체는 뭔가 뇌겁을 흡수할 수 있다고 전승된다· 나도 한때 장문 후보까지 갔었는데 그런 걸 모르겠느냐?”
“아 전명훈은 알겠습니다만 연위 님은 왜····”
“잘 들어라 이제부터 우리는 전명훈이 법력화시킨 번개 즉 전명훈의 법력을 이 태극의 진으로부터 흡수해 내 유도에 따라 네 몸에 적공시킬 것이다· 알겠나
서은현?”
“그게 가능합니까?”
나는 그 말에 놀라며 되물었다·
그녀는 대수롭잖다는 듯 말했다·
이어지는 이유는 광오했으나 듬직했다·
“가능하다· 나니까 가능하다·”
나는 혹시나 싶어 그녀에게 물었다·
“만약 그게 된다면 혹시 저도 천인기에····”“아니 불가능하다·”
“····”
“태극의 진은 효율이 너무 안 좋다· 전명훈의 부담을 덜어 주고 천겁을 최대한 분산하기 위해 너를 지의 자리에 놓았을 뿐· 본래 서로의 힘을 흡수하는 게 본의인 진법이 아니라서 어쩔 수 없다·”
“예 뭐··· 알겠습니다·”
듣자 하니 아무래도 법력 전수는 거의 천분지 일 단위로 효율이 떨어진다고 했다·
다만 효과가 떨어지더라도 그 정도의 법력만으로도 상당히 도움이 될 터였기에 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럼 진을 짜지요·”
“오냐 일단 둘이 마주 보고 서라·”
나는 전명훈과 눈을 마주 보고 섰다·
그녀가 우리 발밑에 추가로 진법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진에 너와 전명훈을 연결할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로를 싫어했지만 서로와 함께 성장하다가 드디어 이해한 기묘한 사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녀석의 목소리가 생생히 들려오는 듯했다·
서로 각자가 맡은 바를 최선을 다 해내자고·
그렇게 서로를 보며 그렇게 다짐했을 때였다·
“흠 그런가· 뭐 도와줄 건 없소 소저?”
“진법에 대한 애매한 이해로는 날 도울 수··· 흐아아악!”
그리고·
찰나·
나는 눈을 비볐다·
어느덧·
저 멀리 동쪽에서부터 여기까지 이어진 구름이 반으로 쪼개져 있고·
흑의 무복을 입은 젊은 남성이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연위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었다·
그가 금빛이 맴도는 갈색 눈동자를 빛내며 연위에게서 손을 떼고 말했다·
나는 그 오랜만에 보는 반가움에 절로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영훈 형님!!!”
“아 서 대리· 전 과장· 다들 오랜만이군·”
“···엥?”
나는 흥분했으나 김영훈은 우리를 직급으로 불렀다·
그제야 내 기억 속에서 그는 나와 이번 생에서 일면식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걸 찾아낼 수 있었다·
‘아··· 그런가·’
나는 반가운 영훈 형님이었으나 동시에 그는 나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약간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전명훈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눈을 뒤룩거렸다·
“무슨 소리냐 서은현· 이 남자가 김영훈 부장···이라고?”
“오 전명훈이· 그동안 잘 지냈나?”
“····”
전명훈은 김영훈의 말투를 들으며 그가 아침 인사로 늘 김영훈 부장에게 듣던 말투였다는 걸 기억해 낸 모양인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 아니···· 김 부장··· 님이 어떻게····”
“흐하하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잘들 지냈냐니깐?”
나는 껄껄 웃으며 우리를 보고 반가워하는 김영훈을 바라보았다·
나는 김영훈을 보며 옅게 웃었다·
‘잘 지냈냐’라·
나는 그동안 잘 지냈는가·
무수한 회차의 기억이 지나갔다·
정말 쉬지 않고 달려온 회차들····
한 번 한 번의 삶이 극악한 난이도였지만 그 어느 것도 허투루 보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분명·
“···예 잘 지냈습니다·”
잘 지냈던 것이리라·
김영훈은 씨익 웃으며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좋군· 그럼 자네들도 여기에 와서 다들 어찌어찌 잘들 강해진 것 같은데· 사내가 마주했으면 역시 칼로 대화를 해 봐야겠지?”
전명훈은 그렇게까지 변한 김영훈을 이해 못 하는 모양이었다·
다만 나는 그의 호승심을 이해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죄송합니다만 형님· 그렇게는 안 되겠습니다·”
당연히 나도 미친 듯이 근질거린다·
다음 생에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온단 말인가?
나는 김영훈이 자르고 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구름 줄기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
동쪽에서부터 끝도 없이 자국이 이어져 있었다·
그뿐이 아닌 영기의 흐름마저도 잘려 있었고 그 흔적은 내 의식 영역을 넘어 머나먼 동쪽에서부터 쭉 이어져 있었다·
한 마디로 김영훈은 수십 리에 달하는 내 의식 영역 밖에서부터 나는 물론 사축기의 의식을 지닌 연위마저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이곳에 도달했
는 의미였다·
얼마나 성장한 건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고 당장이라도 그와 겨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시간은 없었다·
나는 김영훈에게 우리가 처한 상황을 대강 설명하였다·
“흠··· 그러냐·”
얼마 후·
김영훈은 내 얘기를 들은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천겁이란 번개가 하늘에서 내리친단 말이지? 그동안 수도자 놈팽이 놈들 때리면서 그런 것도 있다 듣긴 했는데···· 그것도 그 정도의 기세를 지닌 너 정도도 두려워할 만큼 강력한 번개란 말이지?”
“예·”
“···좋다· 그럼 나도 도와주지·”
김영훈은 흔쾌히 우리를 도와주겠다 말하며 칼집에 손을 얹고 근처에 걸터앉았다·
“그럼 그게 내려올 때 말하려무나·”
말을 마친 김영훈은 눈을 감았다·
난 그런 김영훈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연위는 김영훈을 보며 뭔가를 알아챘다는 듯이 공포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최대한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었다·
어쨌든 우리를 도와주니 협력은 하지만 김영훈과 함께 있고 싶은 눈치가 아니었다·
“참 그리고 그 무슨 희생 제의? 그런 거·”
김영훈은 내가 연위와 전명훈에게 희생제를 나누는 것을 보며 말했다·
“나도 같이 나누겠다· 내게도 걸어라·”
“예?”
나는 흠칫 놀라 말했다·
“이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 영훈 형님은 금신천뢰문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 말에 김영훈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금신···뭐 문과는 관계가 없다· 하지만 나는 너희 직장 동료가 아니냐?”
“····”
“····”
“다 같이 열심히 비누 만들던 사이· 이왕 다시 만났으니 동료들끼리는 삶도 죽음도 같이 하는 게다!”
김영훈은 전명훈을 돌아보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전명훈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나는 정말로 오랜만에 만난 ‘김영훈’이 내가 알던 ‘김영훈’들과 여전히 닮았다는 생각을 하며 웃었다·
“···예· 그러지요·”
이윽고·
우리는 하늘을 보며 때를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 3시진이 전부 지났다·
마침내·
쿠릉 쿠르르릉!
하늘에 어마어마한 기운이 몰리기 시작했다·
저것이 전부 내가 몰고 온 흉운(凶運)이자 재액·
이 세계를 파멸시킬 수도 있을 만큼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그리고 연위가 입을 열며 외쳤다·
[금신천뢰문의 제자 전원!]
그녀의 영언이 사방 곳곳에 울려 퍼졌다·
[위뢰제를 시작해라!]
금신천뢰문 쇄천봉 곳곳·
그 바깥의 대산맥 곳곳에서 위뢰제의 제의가 시작되었다·
쿠구구구!
그와 동시에 위뢰제의 제의가 시작되는 곳곳에 진법을 깔아 놓은 연위가 진법을 발동시켰다·
위뢰제의 기운에 영력이 서리고 그 영력들이 다시 쇄천봉 정상으로 몰려든다·
쿠구구구구구!!!
정상으로 몰려든 위뢰제의 기운은 천(天)의 자리에 있는 전명훈을 거쳐 지(地)의 자리에 있는 내게로·
나를 거쳐 인(人)의 자리에 있는 연위에게로 흘러 들어갔다·
[하늘께 고하오니 예로부터 저희 인간들은 나약하기가 짝이 없어 늘 하늘의 자비를 바라 왔습니다· 저희는 폭풍에 휩쓸리고 산불에 비명 지르며 해일에
기고 폭설에 함묵하며 천벌을 두려워했습니다· 지금 하늘 아래 선 이 미천한 몸들도 마찬가지옵니다· 저희는 마땅히 하늘을 두려워하고 존숭하며 약자인 인간입니다·
부디 인간의 몸으로 인간의 자리에서 이 미천한 인간이 고하오니· 어린 인간들을 위해 노를 푸시어 자비를 베푸소서!]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연위는 끌어모은 위뢰제의 기운을 하늘로 올려보냈다·
파아아앗!
하늘로 올라간 무형의 기운이 천뢰에 닿자마자 신기하게도 천뢰의 기세가 조금 줄어든 것이 느껴졌다·
“됐다· 위뢰제가 지속되는 동안 계속해서 천뢰의 기세가 줄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막는 것뿐이다!”
번뜩!
하늘에서 빛의 기둥이 떨어져 내렸다·
콰르르릉!
다음 순간·
김영훈이 앞으로 나와 도를 뽑아 들며 나를 바라보았다·
“직접 대결하면서 보여 주고 싶었다만··· 뭐 미리 보여 주도록 하마·”
처억!
그가 자세를 잡았다·
“답천(踏天) 너머의 경지를!”
나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보여 주십시오·”
당신은 그것에 어떤 이름을 붙이셨습니까?
다음 순간·
나는 김영훈이 어떤 이름을 붙였는지를 알 수 있었다·
“월도(越道)·”
츠츠츠츳!
김영훈의 전신이 황금빛으로 뒤덮였다·
김영훈은 일순간 황금빛 그 자체가 된 듯했다·
그 자신의 무(武)와 하나 된 답천·
그리고 자신의 무에 마음을 불어넣는 그 너머·
김영훈은 그 경지에 이미 도달해 있었다·
하늘을 향해 쇄천봉을 박차고 날아오르며 김영훈이 외쳤다·
“쇄천(碎天)!”
찰나마저 지워 버리고 하늘로 날아간 그가 천겁의 자락을 베어 내며 내지른 이름·
월도쇄천(越道碎天)·
그것이 그가 정의 내린 답천 너머·
그만의 구현 3단계이리라·
[나는 쇄천봉에서 이 경지에 도달했기에 이를 쇄천이라 이름 붙였다·]
김영훈의 은은한 심어가 뇌리에서 울려 퍼졌다·
‘그렇습니까·’
[너도 보아하니 쇄천에 올랐구나·]
김영훈이 기쁜 듯이 말했다·
[올라와서 같이 대련하진 못해도 같이 천겁을 베어 보며 깨달음을 확인해 보자·]
나는 옅게 웃으며 심어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다만 저는····]
척!
나는 자세를 잡으며 무형검을 끌어올렸다·
[월도쇄천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음?]
쿠릉 쿠르르릉!
뇌성벽력 소리가 분명히 뇌도공법을 전부 잃었을 내 몸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무형검은 그대로 선수의 힘과 합쳐진다·
그리고 선수의 힘은 천족으로서의 내 힘과 연결되어 있다·
천지심이 오밀조밀하게 엮여 간다·
김영훈의 월도쇄천은 순수한 무(武)의 경지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순수한 무공만은 아니니·
마땅히 다른 이름이 붙어야 한다·
츠츠츠츳!
나는 무형검에 마음을 불어넣으며 마침내 월도(越道)로 시작하는 마지막 경지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월도겁천(越道劫天)·”
타앗!
쩌어엉!
내 일 검이 김영훈보다도 높이 날아올라 천겁을 살라 버린다·
이전에는 김영훈의 발끝을 쫓아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무형검을 얻은 순간부터 나와 그의 길은 갈라졌다·
그러니 마땅히 나아가야 할 길도 다르리라·
그는 쇄천을 나는 겁천을 휘두르며 그렇게 우리는 천겁 속에서 서로를 등지고 멸망을 막을 춤을 추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