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둥 (4)
투두두두두―
나와 김영훈은 수상비를 펼치며 남해를 가로질렀다·
‘느리게 가는군·’
김영훈과 내 속도라면 해룡궁까지는 순식간에 갈 수 있었기에 이런 식으로 느리게 가는 건 분명히 이유가 있었다·
아마 김영훈 자신도 청문령의 상태를 보러 가는 것이 마음이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김영훈의 뒤를 쫓아가며 점차 남해의 곳곳이 뒤바뀐 것을 알아챘다·
‘원래··· 곳곳에 작은 섬들이 있었는데····’
섬 같은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전의 전투에 의해 모조리 섬들이 가라앉은 모양이었다·
나는 천천히 앞서 가는 김영훈에게 물었다·
“한 가지 여쭐 게 있습니다·”
“뭐냐·”
나는 청문력의 체내에서 나왔다는 괴석에 대해 질문했다·
“그 괴석은··· 북향화 그녀가 계속 사용했어도 문제가 없는 것이었습니까?”
“아니· 나중에 알아보니 괴석에서도 광기가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게 발견되었기에 북향함대의 선원들을 모조리 괴뢰로 교체해야 했지· 다만 어째선지 북향화만큼은 광기에 침식되지 않았다· 고작 축기기 후기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
“음···?”
‘어떻게 된 거지?’
그녀의 정신력은 나도 믿고 있었지만 어떻게 한 것이란 말인가?
“잘은 모르지만 그녀가 항상 가지고 다니는 노리개가 하나 있다· 그녀는 노리개가 자신을 보호해 준다고 굳게 믿고 있더구나· 진짜인지는 모르겠다만····”
“····”
“아 그리고 청문령이 알려 준 괴석에서의 지식 추출법을 사용해서 그녀가 괴석의 지식을 일부 추출한 후 그녀는 괴석을 한데 모아 봉인했다· 재밌는 건 말이지··· 그 노리개다·”
“···예?”
나는 예상외의 말에 흠칫 놀랐다·
“그녀가 말하기를 이 세상에 괴석을 봉인할 수 있는 물질은 그 노리개밖에 없다고 하더군· 도대체 무슨 물질로 만들었는지 참··· 나도 묻고 싶더구나·”
“···?”
나는 그 말에 이상함을 느꼈다·
‘그 노리개는 답천사막에서 발견되는 취령옥으로 만든 건데····’
굉장히 흔한 법기 제작 재료였다·
그런데 그 노리개가 괴석을 봉인할 유일한 물질이라고?
그러나 이상한 것은 이어지는 김영훈의 말이었다·
“그 노리개에 괴석을 전부 봉인한 후 노리개를 북향함대 주함(主艦)의 동력로에 놓고 주함에서 다른 북향함대로 힘이 이어지게 만들어 더더욱 북향함대의 통제를 강화하더군· 내가 볼 때 그녀의 재능 역시 청문령에 못지않은····”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노리개에 괴석을 [봉인]했다고?’
봉인이라는 건 안에 공간이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노리개는 내 단화로 내가 제련한 법보였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노리개 안에 공간 따위는 없었다·
혹시나 회귀로 인해 법보들이 겹쳐지는 특성으로 노리개가 변이된 건가 싶었지만 정작 무색유리검을 뜯어 봐도 물질이 변형되거나 공간 같은 게 생기는 낌새는 없었다·
‘도대체 뭐지?’
노리개의 기능은 상호 간의 ‘통신’뿐이었다·
그 이상의 기능은 없었다·
‘북향화가 뭔가 했나? 감이 안 잡히는군·’
지금으로선 일단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어쩌면 괴석에서 추출했다는 지식이 뭔가 도움이 됐을지도 모르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김영훈을 따라 달렸다·
김영훈은 능광도의 공능이나 가속은 쓰지 않고 순수한 본인의 무공 실력만으로도 바다를 건너는 수상비를 펼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를 따라가다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현 3단계에서는 수명이 대략 3백 년 더 늘어나는군·’
정확히는 343년 정도였다·
‘이건 뭐 축기기도 아니고·’
천인기에 버금가는 경지에 올랐건만 수명이 올라가는 수준은 고작 축기기였기에 나는 조금 어이가 없어짐을 느꼈다·
그리고 또한 궁금증이 들었다·
“영훈 형님·”
“뭐냐·”
“형님 본체는 현재 쇄천 너머인 겁니까?”
“그렇다만?”
“그럼 혹시 수명이 얼마나 늘어났는지는 아십니까?”
그러나 나도 수명을 묻고 나서 아차 싶었다·
‘김영훈은 본인 수명을 알 수가 없겠군·’
아예 칠성제를 안 지냈는데 수명을 어찌 안다는 말인가·
그러나 이어진 김영훈의 말에 나는 흠칫 놀랐다·
“음··· 아마 최소 만 년은 넘지 싶구나·”
“···예?”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다· 다만 그렇게 느껴진다·”
‘만 년? 아니 그것보다····’
나는 어마어마한 시간 단위에 놀랐으나 정작 사축기 합체기는 수십만 년 단위로 수명이 늘어나니 이상할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더 놀란 건 김영훈이 ‘자신의 수명을’ 알았다는 것이었다·
천족 지족 심족은 저마다의 특유의 기질이 있었다·
그렇기에 심족이 힘을 드러내면 천지족이 알아채고 지족 측에서 힘을 쓰면 천족 측에서 요기라고 하여 알아채는 이유였다·
그리고 그런 기질은 천인기가 된 내 눈에는 더더욱 잘 보였다·
‘김영훈은 천족 공법을 익히지 않았다·’
여실히 느껴졌다·
그는 천기를 보는 건 불가능했다·
“어떻게··· 수명을 아신 겁니까?”
내 질문에 그는 고민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뭔가··· 이전과는 달리 내 혼(魂)이 도달할 종착지를 알게 된 느낌이다· 이 경지에 달하니 혼이 더 높은 곳에서 바라는 방향대로 인력에 의해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게 느껴진다·”
“음····”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김영훈이 수명을 읽은 이유를 알아챘다·
‘지족과 같은 방식의 수명 읽기인가·’
기 혼 명의 계위는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서로 서로가 연결되어 있기에 서로 서로의 변화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렇기에 기의 계위에서 수행을 쌓는 요족들 역시 천지간을 흐르는 거대한 영기의 흐름을 읽어 운명 비슷한 것을 읽는다거나 본인들의 수명에 대해 어림짐작을 할 수 있었다·
같은 논리로 심족의 경지 또한 일정 이상이 되면 천 지족의 감각이 아니더라도 본인의 수명을 읽는 게 가능한 모양이었다·
‘새로운 걸 알았군·’
그렇게 서로에 대해서 궁금한 것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얼마나 달렸을까·
우리는 마침내 수계의 남쪽 끝자락·
해룡궁이 있는 해역의 위쪽에 도착했다·
‘천문관이 있는 곳으론 생각해 보니 처음 가 보는군·’
이전에도 해룡궁에 왔었지만 특별히 천문을 관측한다는 공간은 들어간 적이 없었다·
서휼이 하도 수작을 부려 놓은 것도 있지만 해룡궁 내부에서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나는 해룡궁 바깥 어딘가에 적당히 있으려니 하며 신경을 꺼 왔었다·
‘생각해보면 천문관도 와 봤어야 했는데 말이지·’
어쩌면 전횡이 알게 된 무시무시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도 있지 않은가·
“천문관이란 곳은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김영훈에게 묻자 김영훈은 하늘을 가리켰다·
“저곳에 있다·”
“···예?”
“따라와라·”
파앗!
김영훈은 허공을 밟으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바다 아래 있는 게 아니었었나?’
나는 의아함을 느끼며 그를 따라 날아올랐다·
세계의 남쪽 끝에 있는 세계순력 너머로 천문을 관측하는 줄 알았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천문관은 저 위쪽에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천문을 관측하는 곳이면 높은 곳에 있을 확률이 높겠지·’
얼마간 김영훈을 따라 허공으로 올라갔을까 내 의식 영역에 결계에 뒤덮여 육안으론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나타났다·
‘저건····’
거의 해룡궁에 맞먹을 정도로 거대한 어떤 건물이었다·
그 건물은 마치 등선향처럼 허공에 떠 있는 천공도에 지어져 있었다·
천공도의 크기는 작았고 아무래도 인위적으로 만든 티가 많이 났다·
‘그리고 고도(高度)도 등선향에 비해 조금 낮군·’
나는 그렇게 느끼며 천문관으로 진입하려 했다·
그러나·
콰아아아앙!
나는 강력한 척력(斥力)과 함께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나가 버렸다·
“크윽 이건?”
“조심해라· 원래도 섭명함이 뚫고 들어가기 힘든 수준의 결계대진이 펼쳐져 있었다만 청문령이 이전 안쪽에서 진법을 강화한 후로 더더욱
강력한 결계가 되어 버렸다·”
“···원래는 어떻게 뚫었습니까?”
“섭명함의 주포를 쏟아부어서 뚫고는 했지·”
“흐음····”
나는 성가심을 느끼며 무색유리검을 한 자루 꺼내 들었다·
우우웅!
머리 뒤쪽으로 삼태극이 떠오른다·
나는 삼태극의 힘을 빌어 그대로 검을 내리쳤다·
꽈아아앙!
어마어마한 폭음이 울리며 결계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쿠구구구구―
“···차원 장벽을 우그러뜨릴 때도 그랬지만 새삼 네가 괴물이 다 됐다는 게 느껴지는구나·”
김영훈은 질린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걸 한 번 깨부술 때마다 얼마나 성가셨는데····”
“예? 차원 장벽보다 한참은 강도가 약합니다만····”
“그야 그렇지만 한 번에 부수는 걸 실패하면 더더욱 강한 반탄력이 생겨서 굉장히 까다로운 결계였다· 그런데 별로 힘도 안 들이고 한 방에 박살 내다니····”
김영훈은 혀를 내두르며 나와 함께 무너진 결계 너머로 넘어갔다·
내가 막 천문각에 발을 디뎠을 때였다·
우우웅!
나는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을 느꼈다·
‘이건····’
또였다·
서휼 특유의 ‘정신이 맑아지는 주술’이 천문각 전체에 걸려 있는 게 느껴졌다·
‘이 녀석은 도대체 무슨 용도로 이런 주술을 자기가 짓는 건물마다 깔아 놓는 거지?’
심지어 정신 건강에 좋으라고 깔아 놓는 것도 아니다·
전부 나중에는 본인이 세뇌해 버리면서 굳이 이런 주술을 깔아 놓는 저의가 궁금해졌다·
심지어 어쩐지 천문각에 걸린 주술은 해룡궁에 걸린 주술보다 훨씬 강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번 서휼 녀석이 수작을 부려 놓은 곳들을 다 한 번씩 다녀 봐야겠어·’
나는 서휼의 말을 기억했다·
‘해룡궁 봉명성 흑색성 등선향에서 기축을 쌓았다고 했었다·’
어쩌면 기축을 쌓는 것과 뭔가 정신이 관련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일까·
어찌 되었든 녀석의 속셈을 더 알아볼 수 있고 서휼의 정법(正法) 기축을 쌓은 방법에 대해 알아볼 수도 있을 테니 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영훈 형님?”
나는 문득 김영훈이 해룡궁에 들어온 이후로 말을 하지 않고 멈춰 있다는 걸 알아챘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사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김영훈은 지금 자신의 손으로 베어 낸 청문령이 있는 곳에 오기가 껄끄러웠던 것이리라·
“···아니다· 가자·”
그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앞장섰다·
나 역시 이를 악물고 그를 따라나섰다·
‘청문령··· 어떻게 되신 겁니까·’
얼마간 천문각의 안쪽으로 진입했을까·
나는 천문각 곳곳에 글자가 패여 있는 걸 발견했다·
‘저건···?’
천문각 자체는 자동 수복 법술이 걸려있는 탓인지·
분명 김영훈과 청문령이 한바탕 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멀쩡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원이 안 된 채로 패여 있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 부분들이 삐뚤삐뚤하게 쓴 ‘글자’라는 걸 깨달았다·
“영훈 형님 저것들은····”
“청문령이 남겨 놓은 글자다· 우리도 정확히 저게 뭘 뜻하는 건지는 모른다·”
“그렇습니까····”
나는 청문령이 남겨 놓은 글자들을 하나하나 읽어 갔다·
산(山)····
정상(頂上)····
삼십삼(三十三)····
“···?”
하나같이 알다가도 모를 단어들뿐이었다·
얼마 후 나는 김영훈과 함께 천문각의 중앙에 들어섰다·
“···저건····”
“봐라·”
김영훈은 천문각의 중앙에 있는 ‘것’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게 내가 봉인한 청문령이다· 끝내··· 저렇게 변이해 버렸지·”
“···아아····”
나는 김영훈의 말에 아연한 표정을 지으며 ‘청문령’을 바라보았다·
청문령은 거대한 [소금 기둥]으로 변해 천문각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소금 기둥의 아래쪽에는 또 한 개의 단어가 적혀 있었다·
나는 삐뚤빼뚤 적힌 그 단어를 천천히 읽어내렸다·
“···알현실(謁見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