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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Chapter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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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3)

나는 서립의 얼굴로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이전의 일을 떠올렸다·

두 번째는 이전과 달리 내가 사귀자고 했었었다·

강민희도 받아들였고·

그리고 그녀와 다시 사귀게 된 지 3일째·

그날의 저녁이었다·

* * *

퇴근 시간·

나는 강민희에게 차였다·

3일 만에·

“후우····”

나는 사내 흡연장에서 담뱃불을 비벼 끄며 뒤를 돌아보았다·

노을은 거의 지고 있었고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이제 괜찮겠냐?”

“어· 말했잖냐· 덕분에 3일간 위로는 충분히 됐어·”

나는 피식 웃었다·

이래저래 우리는 악우(惡友)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담배 한 개비를 더 꺼내 불을 붙였다·

“가 봐 이제·”

“적당히 펴 인마·”

“남이사· 넌 이제 전 남친일 뿐이야· 썩 저리 가· 훠이·”

“사흘간 사귀고 헤어지는 건 아마 우리밖에 없을 거야·”

나는 이 기묘한 상황에 큭큭 웃었다·

첫 연애 때는 그녀 쪽에서 사귀자고 하고 헤어질 때는 내가 말했지만 어째 이번에는 반대가 되었다·

“사귀긴 뭘 사귀어· 그냥 심리 치료 기깔나게 받은 거지· 나중에 치료비는 네 계좌로 입금할게·”

“말을 해도 꼭····”

“왜· 막상 보내 주려니 아깝지?”

“됐어· 난 간다·”

나는 흡연장 문을 열었다·

뒤쪽에서 강민희의 목소리가 들렸었다·

“내 심리 치료는 이제 됐으니까 네 후배나 신경 좀 써 줘 병신아· 보는 내가 숨이 콱 막히더라·”

“음? 누구? 조? 김?”

“김연 이 새끼야· 조 씨는 사내놈인데 네가 왜 신경 써· 걔가 요새 점심시간에 맛집 찾아서 너한테 보여 주는 건 걔가 미슐랭이라서가 아니라 같이 밥 먹으러 가자는 거잖아?”

“···? 밥은 회식 때 다 같이 먹잖아? 연이는 또 왜 잘 보라는 건데? 걔 요새 힘들대?”

“하 씨발··· 이 병신 같은 새끼···· 빨리 썩 꺼져· 복장 터지려 하니까· 내일 봅시다 서 주임님·”

나는 실없는 소리를 하는 그녀에게 인사를 하며 뒤를 돌았다·

“네~ 내일 봬요· 강 대리님·”

그날이 우리가 가장 가깝게 지냈던 마지막 날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정말로 ‘사이 안 좋은’ 사원들이 되었을 뿐이었으니까·

* * *

‘음 생각해 보니 나는 그때 병신이 맞았군·’

강민희가 김연을 가지고 농담하는 줄만 알았다·

당시 내게 김연은 귀여운 후배 느낌밖에 없었으니까·

여하튼 그날 이후로 강민희와 내 관계는 기묘한 관계가 되었다·

공적으로는 굉장히 사이가 안 좋은 사이·

그러나 사적으로는 입으로는 싫다 할지언정 마냥 미워하긴 힘든 사이·

그래·

악우(惡友)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원수’에서 ‘악우’가 된 이후·

이전처럼 숨이 막힐 정도로 어색하고 불편하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뭐 이 정도가 명귀계 본종에 대한 정보다· 명귀계 자체에 대해서는 나도 정보가 거의 없어서 모른다만··· 일단 재밌는 건 허곽 장로님이 내가 타고난 자질을 보고하자 본종에서는 ‘명귀계로 오지 말라’고 했단 거지·”

“음 그건 기이하군요· 도대체 어째서입니까? 강 원로님이 가지신 자질이라면 오히려 명귀계가 적합지 않습니까?”

“그러게 말이다· 다만 들리는 말로는··· 명귀계 본종에서 전하기를 명귀계는 ‘높은 분’이 늘 시선을 주고 있기 때문에 내가 가면 도리어 위험할 수 있다더구나·”

“높은 분들이라····”

나는 이전 생에서 서휼이 주었던 정보를 떠올렸다·

‘명귀계는 개열기 진인들이 항상 주시하고 있다·’

듣기로는 명귀계에는 진선계로 갈 수 있는 편법이 존재하니 그를 위해 개열기 진인들이 성계에서 항상 명귀계를 주시한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그런 곳이라면 오히려 강민희가 가면 위험할 수도 있겠어·’

강민희는 말을 하다 말고 주변을 더듬거렸다·

달각―

곧이어 그녀는 근처 탁자에서 기다란 곰방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불·”

치이이이―

그러자 방 안의 도깨비불이 움직이며 그녀의 곰방대 끝에 푸른 귀화를 붙여 주었다·

‘공공장소가 아니고 눈치 볼 일 없다 싶은 곳에서는 실내에서 담배 피는 습관까지··· 변한 게 없군·’

“내 방이니까 담배 좀 피울게· 불편하면 말하렴·”

“하하 원로님이 원하시는데 어찌 제가 막겠습니까·”

“음····”

내 대답에 강민희는 잠시 나를 쳐다보았다·

“너 얼굴에 쓴 그거· 술법이지? 잠시 해제해 봐·”

“아··· 예·”

나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흑마면의 술법을 풀었다·

원유의 미모가 강민희의 앞에 드러났다·

“오··· 너 진짜 예쁘게 생겼다· 흠··· 그런데 전혀 인상이 다른데 왜 이렇게····”

“예?”

“아냐· 그냥 예전에 알던 사람 느낌이 조금 나서· 은근슬쩍 돌려서 싫다고 말하는 것까지 똑 닮았네·”

그렇게 말하면서도 강민희는 딱히 불을 끄지는 않고 곰방대를 물 뿐이었다·

후우우우―

시퍼런 연기가 그녀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은은한 영기가 섞인 것이 상당한 영초를 담배로 쓴 모양이었다·

‘돌려서 싫다고 한 걸 알았으면 조금 꺼 주면 안 되나·’

지구의 것처럼 발암 물질이 있지는 않았지만 담배는 흡연장에서만 피워야 한다는 나와는 달리 그녀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곳이라면 차내에서나 실내에서 곧잘 피우곤 했다·

3주간 사귈 때도 나는 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드라이브 갈 때도 차내에서 담배를 피워 대서 불편해 죽을 뻔했다·

자기 차였다지만 나와 그녀가 정말 안 맞는다는 걸 확인한 계기였었다·

‘나도 꽤 감정이 생생하군· 2천 년이 넘은 일인데 아직도····’

강민희와 안 맞았다는 게 참 여실히 생각난다·

“서립이라 그랬지?”

“예·”

“너무 죽음이 짙어서 혼(魂)은 어떻게 생겼는지를 모르겠는데··· 그래도 너 정도 자질이면 천인기도 쉽게 도달할 거 같고· 아마 내 분체 정도 경지는 금세 따라잡을 거야·”

“감사합니다·”

“지원 좀 제대로 받고 운이 좋다거나 기연이 좀 따르면 아마 500년 안에 사축기도 가능할 수도···· 뭐 어쨌든· 앞으로 잘 지내 보자· 귀혼각에 안 받아 준 건 내규가 그러니까 이해해 줘·”

“예 당연히 이해합니다·”

강민희는 싱긋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이상하게도 강민희가 만지는 어깨는 그렇게 울컥하지 않았다·

“궁금한 건 다 풀었지? 이제 가 봐·”

나는 강민희에게 인사를 하고 귀혼각에 있는 그녀의 집무실에서 나왔다·

그녀를 통해 나는 한 가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역시 100년 전과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나와 전명훈이 연락한다는 건 최악의 선택지일 뿐이었다·

* * *

‘역시 연이를 데려오길 잘했어·’

김연은 현재 시운도에서 명적에 등록을 하고 괴군에 대해 여러 조사를 받고 있었다·

나는 시운도에서 기다리며 생각했다·

아마 지금 나와 전명훈이 연락을 한다면 둘 다 욕이나 바가지로 먹고 연락을 끊을 터였다·

그렇다고 태수의 명으로 억지로 만나자 하면 겉으로야 웃어 주겠지만 이제 사적으로는 더 멀어질 테였다·

연이는 그래도 부서의 모든 사람들이 귀여워했던 후배였으니 강민희도 정색하진 않을 터였다·

시간이 지난 후 김연은 시운도에서 나왔다·

“다 끝났어?”

“네·”

나는 그녀의 의념을 읽으며 그녀가 뭔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예정이야?”

“····”

잠시 침묵하던 김연은 [그녀]의 왼팔을 꺼내들었다·

“은현 오빠 오빠도··· 어째선지는 모르지만 기묘성심전을 익히고 계시지요·”

“응· 인연이 닿았거든·”

“그렇다면 어쨌든 오빠도 이 왼팔에 담긴 깨달음을 보셨단 거겠죠?”

“그렇지·”

그녀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 눈빛에 함칫 놀랐다·

그녀의 눈빛은 이제껏 없었던 열의로 타오르고 있었다·

“알아낼 생각이에요·”

꾸욱····

[그녀]의 왼팔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김연은 결의로 불타는 눈빛을 더더욱 불태웠다·

“괴군이 남겨놓은 기묘성심전의 극의· 거기서 보았던 그 장면은 도대체 무엇을 상징하는지· 그가 무엇을 얻었기에 무엇을 잃었기에 미치광이 괴군이 되어서 그런 짓을 벌여 온 건지····”

어째서일까·

이제까지의 생에서는 본 적이 없었던 강한 결의였다·

어째서 그녀는 이전의 생과는 달라졌을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그 이유를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이번 생의 김연은··· 내가 지도해 줬다고는 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절정에 올랐어·’

무(武)는 무엇일까·

수많은 정의가 있고 그중에 하나는 분명 ‘스스로를 강하게 하는 것’이었다·

스스로를 단련해 나가는 기술이자 학문·

그것이 무학이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절정경에 올랐다·

그것은 단순히 눈곱만큼 힘이 강해졌다는 뜻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을 이겨 내는 무수한 극기(克己)가 필요한 것이다·

물론 그것만 있었다면 그녀는 여전히 미쳤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가 그녀와 연결되어 그녀의 꿈에 현몽해 끝없이 대화를 나누며 그녀가 괴군의 광기에 의해 물들지 않게 해 주었다·

이번 생의 김연은 가장 완벽한 상태의 김연인 것이었다·

“괴군에 대한 진실을 알아내고··· 알아내서·”

김연은 단단한 각오를 다진 채 내 앞에서 말했다·

“복수할 거예요·”

“복수?”

“네· 제가 그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복수를요·”

복수한다는 김연이었지만 어쩐지 그녀의 의념은 굉장히 차분했고 악의도 없어 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괴군에 대해 뭔가를 정했다면 내가 그녀의 태도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었다·

천인도 천부산으로 돌아가자 태수들이 나를 맞아 주었다·

김연은 전명훈 홍범 등과 함께 천부산 인근에 동부를 받고 수련을 시작했다·

다만 홍범은 지족 영역에 가 있었고 전명훈은 거의 매일 금신천뢰문의 잔해에 가 있었기에 세 사람이 만날 일은 거의 없었다·

‘이제 김연을 통해서 강민희와 접선을 하면 되겠다만····’

생각 외로 급격히 태수회가 소집되었다·

나는 천부산 정상으로 불려갔다·

그곳에는 태수들 8인의 투영체가 나타나 있었다·

우우웅―

그 중에서는 건곤성에 있는 헌원의 투영과 비밀에 잠긴 수사인 태열전의 투영 역시 있었는데 이는 건곤성에서 요양 중이라 투영조차 보내기 힘든 그와 비밀에 싸인 태열전까지 참여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안건이 걸린 회의라는 것이었다·

나는 헌원의 환영이 내게 보내는 기묘한 눈초리를 무시하고 자리를 잡았다·

“그럼 태수회를 시작하겠네· 모두 모여 주어서 고맙군· 서 수사와 헌 수사는 출타 중이었어서 몰랐을 테지만 얼마 전 절대 좌시할 수 없는 보고가 올라왔네·”

총연맹주인 준제가 무거운 목소리로 회의를 시작했다·

“바로··· 인족의 동맹이었던 흑룡족의 흑룡왕 현음이 현재 우리를 배신했다는 정보일세·”

“···!”

“그게 무슨···!”

태수회가 술렁였다·

위령선은 걱정이 큰 침음성을 흘렸고

헌원은 무표정하게 팔짱을 낀 채 검지손가락을 팔에 대고 톡톡 두들겼다·

그리고 그동안 말이 없던 태열전이 입을 열었다·

그의 투영은 다른 태수들과 달리 제대로 윤곽이 잡히지 않았고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나는 목소리로 인해 그가 여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고의 의미로 응징하고 올까요?”

“그건 태수회에서 논의 후 정하도록 하지· 일단 사건의 개요를 말해 주겠네· 며칠 전 진마계의 입구가 붕괴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네· 그리고

진마계의 입구를 지키던 사축기 수사들에게서 ‘서휼’이라는 이름의 용족이 ‘흑룡왕의 명을 받아’ 진마계의 입구를 붕괴시켰다는 정보를 받았지·”

아무래도 이 태수회는 내가 벌인 일로 인해서 벌어지는 회의 같았다·

“그리고 지족에 문의해 보니 서휼이라는 용족이 있느냐는 질문에 해룡족을 이끄는 대군의 이름이 서휼이라고 하더군· 그리고 최근 실종되었다고 했네· 위령선이 진마계의 입구로 파견 가 현장을 조사했고 총군사인 위수가 의식공법으로 추혼술을 써 사축기 수사들의 혼을 조사해 당시의 기억을 읽어 냈네· 지족에 있던 첩자로부터 받은 정보에 의하면 해룡족 대군 서휼의 얼굴과 진마계의 입구를 습격한 자의 용모가 똑같았고 위령선은 진마계의 입구 부근에서 상당량의 요력과 선수의 힘의 잔해를 발견했다네·”

준제의 말을 총연맹 총군사이자 위령선의 여동생인 위수가 받아 이었다·

“최근 실종된 서휼 그리고 진마계의 입구를 습격한 괴인 흑룡족의 방계인 해룡족 배후로 지목된 흑룡왕 그리고··· 최근 지족에게서 수주를 받아 어떠한 저주를 완성하는 중이라는 흑룡왕의 하부 조직 흑린어령문···· 그런 것들을 종합해 볼 때 현재 흑룡왕 현음은 저희를 배신할 확률이 높습니다·”

태수 응연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 자신을 서휼이라 칭한 괴인이 서휼이 아닐 수도 있지 않소? 서휼이란 자를 음해하려 지족의 내부 파벌이 그를 흉내 내 일을 벌였다든가····”

“제 추혼술로 사축기 수사들의 혼을 뒤져 나온 기억으로 볼 때 서휼은 제 이름과 배후를 밝히기는 했지만 직후 진심으로 증거를 인멸하려 했습니다· 다행히 사축기 수사의 독에 당해서 어쩔 수 없이 그들의 혼을 놓쳤지요· 따라서 누군가가 서휼이라는 자를 음해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으나 진정 서휼 본인일 수도 있습니다·”

위수의 말에 장내에 모인 태수들의 안색이 안 좋아졌다·

개진이 한숨을 쉬었다·

“흑룡왕··· 합체기 대원만 중에서도 특출난 전투력을 가진 그가 어째서 이런 시기에 하필····”

그때 헌원이 팔짱을 낀 채 냉엄하게 말했다·

“역시 그때 죽여 버렸어야 했지 않소· 그때는 이용 가치 운운하면서 괜히 나를 말리시더니 일이 복잡하게 되었군·”

아무래도 헌원은 이전에 흑룡왕과 싸운 적이 있고 흑룡왕을 죽이기 직전까지 몰아간 전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응연은 그 사건에 대해서 생각나는 것이 있는지 말했다·

“아 나도 들은 적 있소···· 4만 3천 년 전이었었나? 헌 수사와 수사의 약혼자가 힘을 합쳐 흑룡왕을 상대로 기적처럼 승기를 잡아 엄청나게····”

그리고 그 말에 헌원은 갑자기 정색하고 응연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나는 헌원의 투영체에서 어마어마한 분노의 의념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위령선과 위수 남매는 동시에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응연에게 말했다·

“응 수사!”

“응 수사 헌 수사 앞에서 ‘그녀’에 대해서 말을 꺼내는 건 금기라는 걸 잊었습니까?”

그 말에 응연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흠흠· 미안하오· 요새 업무가 많아서 잠시 잊었던 것 같소·”

그러나 헌원은 으르렁거리며 씹어뱉듯이 응연을 향해 말했다·

“그걸 잊어? 어떻게?”

“아니 헌 수사· 미안하오· 내가 실언했소·”

“업무가 많아? 네놈이 건곤성주인 나보다 업무가 많다는 거냐? 네놈도 나처럼 눈알이 한번 파여 보면 못 잊지 않겠나?”

쿠구구구구!

헌원의 투영이 보내는 살기에 응연이 기겁하며 벌벌 떨기 시작했고 준제가 눈을 찡그리며 헛기침을 햤다·

그러나 헌원은 준제의 눈치에도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그때였다·

“헌 수사·”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태열전의 목소리가 헌원에게 닿았다·

어느새 그녀는 헌원의 투영에 다가가 있었다·

흠칫!

그리고 나는 순간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잠깐! 저 태열전이라는 자····’

“그만 노기를 가라앉히시지요· 응 수사야 아직 8천 세밖에 안 된 어린 수사라서 그런 것이니 이해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

그녀의 말에 헌원은 움찔거리는 듯하더니 한 번 응연을 노려본 후 노기를 억눌렀다·

어쩐지 무의식의 단위에서 그녀를 꺼려 하는 것 같았다·

그를 본 준제는 태열전에게 말했다·

“태 도우 너무 헌 수사를 압박하지 마시게· 헌 수사에겐 상당히 마음 아픈 일이었잖는가· 응 수사도 앞으로는 조심해 주시고· 몇백 년 전 태수회에서 헌 도우에게 그런 일도 있었으니····”

어쩐지 준제는 헌원의 눈치를 보는 듯했다·

의념을 읽어 보니 아무래도 헌원 본인보다는 헌원과 관련된 뭔가를 신경 쓰는 모양이었다·

태열전은 그 말에 다시 본인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태열전을 한참동안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그녀는 내 시선을 느낀 것인지 잠시 나에게 시선을 준 후 놀랍다는 듯이 눈에 이채를 띄었다가 고개를 돌렸다·

준제는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다시 되돌렸다·

“그래서· 어쨌든 흑룡왕 현음의 배신에 의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의논해 보겠네·”

* * *

태수회에서는 흑룡왕 현음에게 응징을 가하자는 쪽과 일단 추이를 지켜보자는 쪽으로 갈렸다·

그리고 결국 일당 서휼을 잡아서 추혼술로 어찌된 일인지를 알아보는 것과 동시에 흑룡왕과 흑룡족에게 강력한 항의를 표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만약 흑룡족이 총연맹에 아무런 변명조치 하지 않고 명명백백한 배신을 드러낸다면 그때 태열전이 흑룡왕을 응징하러 가겠다고 한 후 태수회가 종료되었다·

“그럼 논의한 대로 위 수사가 현음에게 말을 전해 주시게· 그럼 이것으로 오늘 태수회는 파하도록 하지·”

천부산 정상에 모인 투영체들이 사라졌다·

헌원은 나를 잠시 쳐다보다 거의 막바지에 사라졌고 태열전은 불투명한 분체를 다루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태 도우 분체를 다루기가 힘드십니까?”

“아 서 수사· 이해해 주십시오· 분체나 투영을 보내는 술법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라서 말입니다· 어떻게 해제해야 하는지 늘 헷갈리곤 한답니다·”

“그렇군요···· 태 도우 한 가지 여쭤보아도 되겠습니까?”

내 질문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어쩐지 예상이 가는 질문이군요· 제가 처음 태수회에 들어올 때도 모두가 식겁했고 이후 응 수사도 처음 태수가 되셨을 때 제 정체를 듣고는 기겁하셨지요· 서 수사도 그런 것이겠지요? 아니 서 수사는 조금 다를 수도 있겠군요· 저와 같으니····”

나는 그녀의 말에 작게 탄식을 터트렸다·

“태 도우 당신은··· 역시 심족입니까?”

그녀는 심족이었다·

그것도 어전 일 보에 도달한 합체기 수준의 심족·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나는 태열전이 생각보다 엄청난 존재였음을 알게 되었다·

“맞습니다· 수도공법에는 자질이 없어서 결단기 수준입니다만··· 우연히 심족의 길로 들어가고 존자께 사사하여 투혼을 전수받아 마침내 이 경지에 다다랐습니다·”

태열전은 분체로 웃어 보이며 말했다·

“저는 오늘 처음 볼 테니 제대로 소개를 해 드리지요· 제 이름은 태열전· 함천존자의 직계 제자 23명 중 한 명입니다·”

우우웅!

나는 분체에게서 느껴지는 소름끼치는 예기가 내 목을 베어 버리는 환상을 보았다·

스릉―

분체는 허공을 움켜쥐었고 천지영기가 뭉치며 한 자루의 유엽도를 만들어 내었다·

“지나가다 심족끼리 만났으면 응당 해야 할 게 있겠지요?”

나는 그 가공할 살기에 식은땀을 흘리며 동시에 아찔한 흥분을 느꼈다·

“영광입니다· 한 수 가르쳐 주시지요·”

* * *

지족 진룡맹·

흑룡왕의 동부·

그 안쪽에서 흑룡왕 현음은 수하에게 보고를 받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도대체 왜 이렇게 일이 꼬인 게냐· 서휼은 지금 어디로 간 거고 왜 진마계의 입구를 그 녀석이 내 이름을 대며 박살 냈다는 게야!”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수하를 물렸다·

“이런 젠장할···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게지···· 계획이 어그러졌다·”

얼마간 자리에 홀로 앉아 고민하던 현음은 눈을 감았다 떴다·

그는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내려가 그의 동부에 있는 지하로 내려갔다·

“아무래도··· 본체와 교신해 봐야겠어·”

얼굴을 굳히며 지하로 내려간 흑룡왕의 동부에는 고요만이 내려앉았다·

한두 시진 정도는 말이었다·

콰아아아앙!

어디선가 날아온 괴광선이 현음의 동부를 강타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철컥철컥철컥철컥····

기묘한 성채가 흑룡왕의 동부로 날아들고 있었다·

탱화

스릉―

유엽도가 움직인다·

“후배님은 몇 초식이 적당하신가?”

그녀가 물었다·

어차피 분체일 테니 나와 그녀가 장기전으로 싸우는 것은 그녀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한 일이었다·

그런 만큼 단기전에 서로의 손속을 가늠해 보는 것이 가장 좋을 터였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10초· 그 정도면 적당하지 않겠습니까?”

“호오 10초식이나? 감당할 수 있겠나?”

“예?”

“10초식이면 후배를 죽이기에 충분한 것 같은데····”

“하하····”

나는 너무나도 광오한 그녀의 말에 절로 실소가 나왔다·

과연 합체기 수준의 심족이라면 이 정도 자신감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디 해 보시지요·”

“좋아 원한다면····”

우우웅―

그녀의 유엽도가 허공을 갈랐다·

익숙했다·

저건 장익의 품새와 똑같았다·

장익의 제자라는 것이 허언은 아닌 듯 그녀는 장익의 정신 나간 수준의 정밀한 기예를 펼쳐 내려 하고 있었다·

완전히 그와 똑같다·

‘하지만 다르다·’

천족의 예지·

지족의 영기 추적·

심족의 의념·

김영훈의 지각과 귀왕의 명각·

그 모든 감각을 사용해서야 그녀가 펼쳐 내려는 투혼의 궤적을 겨우 쫓아갈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궤적을 쫓아가며 알 수 있었다·

그녀의 것은 장익의 것과는 같지만 다르다·

티잉―

정지된 세계에서 그녀의 말이 울려 오는 듯했다·

심어(心語)가 여태껏 들어 본 적 없을 정도로 맑고 낭랑하게 울려 왔다·

[너 투혼을 한 번 본 적이 있군· 스승님의 것을 말이야?]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녀는 내가 자신의 궤적을 익숙한 눈초리로 쫓으며 반격기를 준비한다는 걸 알아보고는 눈에 이채를 띠었다·

선과 선이 이어진다·

그녀가 유엽도를 휘두르는 궤적에 따라 마치 혈관과도 같은 영맥이 이어졌다·

하지만 장익의 사보멸천도와 다르게 태열전의 유엽도는 영맥을 잇고도 주변의 천지영기를 빨아들이지 않았다·

기운의 크기는 더 증폭되거나 커지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어째선지 그녀의 절기가 장익이 보여 준 것보다 더더욱 흉험하고 끔찍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제대로 못 막으면 최소 몸이 발기발기 찢긴다·’

압도적인 ‘힘’!

강력을 넘어선 패력(覇力)!

원래는 순수한 무(武)의 기예만을 겨루려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나는 그런 여유만만한 생각 따위는 집어치우고 바로 삼태극을 띄웠다·

동시에 바로 단악의 초식을 사용했다·

공격으로 마주 상쇄시키지 않으면 그대로 상반신이 사라질 거라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공격을 시작했다·

심천탱화도(心天幀畫圖)·

칠화왕(七華王)·

제일화(第一華) 금신천왕(金身天王)·

오싹!

일순간 그녀가 만들어 낸 유엽도의 궤적·

그 궤적의 영맥들이 일순간 크게 황금빛으로 빛났다·

‘저건···!’

다음 순간 그녀는 마치 황금빛 붕조처럼 춤을 추며 내게 쏘아져 왔다·

김영훈의 그 정신 나간 속도에 비하면 한참이나 느린 일격·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느리다는 걸 알면서도 피하는 게 불가능했다·

콰드드득!

“끄허억!”

나는 왈칵 피를 내뿜으며 어느새 전신에 화상을 입었음을 깨달았다·

‘이 이게 무슨···!!’

쿠과과과광!

저 뒤쪽으로 뒤늦게 충격파가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빠르게 주변 환경을 인식했다·

‘여 여긴···!? 이런 미친···!!!’

이곳은 시운도였다·

태열전의 일격(一擊)에 나는 인족 구역의 중앙에 있는 천인도 천부산 정상에서 가장 외곽인 시운도까지 튕겨 나온 것이었다·

쿠구구구구!

대기가 이지러지고 충격파로 인해 곳곳이 우르릉거렸다·

피부의 화상은 곧바로 재생했으나 내장이 진탕된 것 같았다·

헌원의 공격이 하나하나가 극심한 외상을 입었을지언정 내상은 거의 없었다는 걸 생각하면 태열전의 것은 정반대였다·

오히려 헌원과는 달리 눈에 띄는 외상은 거의 남지 않았지만 축적되는 내상이 끔찍할 정도로 많았다·

‘온다!’

나는 바로 태세를 정비하고 천부산에서부터 느껴지는 살기에 반격을 준비했다·

칠화왕·

제사화(第四華) 은람천왕(銀籃天王)·

그것은 혼돈(混沌)이었다·

회색의 혼돈이 어느 순간 눈앞에서 휘몰아치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혼원(混元)이 되었다·

혼돈의 구체는 백색과 흑색이 뒤섞인 회색(灰色) 같기도 청색과 적색이 섞인 자색(紫色) 같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음양(陰陽)이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뒤섞였다는 것·

‘아 헌원이 왜 태열전에게 저자세였는지 알겠군·’

심족의 천겁은 차치하고 이걸 헌원이 맞으면 연위가 뒤틀어 놓았다는 그의 음양이기가 폭주해 버릴 터였다·

나는 전력으로 요수공법을 운용했다·

요수공법에 뇌도공법의 이치를 더한다·

거기에서 공법을 역행(逆行)시켰다·

음양의 교류가 끊기고 음양이 체내에서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체내에서 흩어지는 음양의 흐름을 괴군의 회로로 체계화시키면서 내 통제에 따르게 만들었다·

그렇게 자세를 취했을 때 나는 어느새 혼돈의 구체가 내게 다가온 것을 느꼈다·

슈르륵―

혼돈의 구체가 체내로 흡수된다·

본래라면 전신이 뒤틀려 죽었어야 할 일격이었지만 도리어 역행하는 중인 체내의 음양의 흐름과 맞물려 상쇄되며 내 체내의 흐름을 정상으로 되돌린 후 혼돈의 구체가 사그라들었다·

요수공법 뇌도공법 괴군의 회로를 가진 나밖에 시전할 수 없는 파해법이었다·

[놀랍군· 그걸 이런 식으로 파해한 건 네가 처음이다·]

어느새 태열전이 내 앞에 도달해 있었다·

[그럼 다음 것도 막을 수 있을까?]

제이화(第二華) 제삼화(第三華)·

연격(連擊)·

적주멸천왕(赤珠滅天王)·

유리호천왕(瑠璃護天王)·

적색(赤色)의 불꽃과 청색(靑色)의 귀화가 태열전의 쌍수에서 빛났다·

‘각각이 인척력을 가지고 있다·’

우드득!

맞으면 물리적으로 뼈와 살이 분리될 터였다·

하지만 나는 눈앞의 공격보다 그가 숨겨 둔 다른 수를 경계했다·

‘유엽도가 사라졌다·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라·’

단악검법·

의해은산!

츠츠츠츳!

내 원영은 검(劍)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색유리검에 불어넣고 휘두르는 용도가 아니었다·

의해은산의 본질은 심검이 아닌 ‘힘의 통합’이었다·

내 모든 힘이 의해은산의 안쪽에서 검으로 통합되었다·

나는 문자 그대로 ‘모든’ 힘을 검으로 변화한 의해은산의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와 동시에 내 전신에 깃든 힘은 전부 빠져 내 몸은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다·

내 체내에서 일어난 일이었기에 태열전조차 바로 알아채지 못했고 그녀의 쌍장이 나를 때렸다·

그러나 청색과 적색의 쌍장은 무력화된 전신에 닿자마자 그대로 경맥을 휘돌더니 의해은산의 구결에 의해 내 원영 안쪽에서 하나로 통합되었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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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Score 9.5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On the way to a company workshop, we fell into a world of immortal cultivators while still in the car. Those with spiritual roots and unique abilities were all called to join cultivation sects, living prosperously. But I, having neither spiritual roots nor special abilities, lived as an ordinary mortal for 50 years, complying with fate until my death. That’s what I thought. Until I regres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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