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護) (3)
‘흠 제2의 인격이라····’
정신병자가 된 것 같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미 정신병자가 맞았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내가 정신이 멀쩡해 보이지만 사실 처음 칠성제를 지낼 때 정신이 나갔다가 다시 미쳐서 돌아온 것일 뿐·
나는 이미 한참도 전에 미쳐 있었다·
‘인격의 분리라····’
방금 잠들었을 때는 서립과 분명히 끊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느껴진다·
다시 서립과 내가 이어졌다는 것이·
‘아마 진짜로 인격이 분리된다면··· 그것도 나쁘진 않겠군·’
서립과 연결된 걸 느끼며 나는 내가 죽으면 서립이 같이 회귀할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영혼 자체가 아직도 하나인 느낌이었으니 내게서 떨어져 나가진 않을 터였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회귀의 고독을 조금 더 잘 이겨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서립이 딱히 무섭거나 하진 않았다·
서립이 내 몸을 뺏을 수 있을 능력이 있다고도 생각지 않았고 만약 그런 능력이 생긴다고 해도 나에게 자신의 인격이 변한 걸 알릴 정도로 본체인 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와 서립 사이에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 것은 없었으며 우리는 한 몸이었다·
즉 한 몸인 만큼 그에게 몸을 뺏겨도 그러려니 할 생각이 있었다·
어차피 서립 역시 나일 뿐이었으니까·
‘뭐 좋아· 그럼 그건 둘째치고····’
나는 몸을 추슬렀다·
드르륵―
요사채 안쪽으로 연이가 차를 끓여 가지고 왔다·
“오빠 차 좀 드세요· 스님한테 차 끓이는 법 배워 봤는데 굉장히 잘 끓이세요·”
“아 고마워·”
나는 그녀가 주는 영차를 마신 후 내가 누운 자리를 정리하고 요사채의 방을 둘러보았다·
‘서책이 꽤 많군·’
승려들의 생활 공간인 요사채에도 곳곳에 책장이 있었고 책이 많이 꽂혀 있었다·
나는 그 중 아무 책이나 골라 하나를 읽었다·
‘음 이 동화는 수계에서 봤던 건데····’
나는 익숙한 동화책을 주르륵 넘기고 다시 집어넣었다·
지성이면 감천을 주제 의식으로 한 동화책은 광한계에도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 외에도 몇몇 불가공법에 대한 서책들을 읽어 보며 불가공법과 칠화왕에 대한 이해를 넓혀 갔다·
얼마 후 기묘성심전을 사용하는 김연이 말했다·
“은현 오빠 태 스님께서 부르세요·”
“아 그래· 그럼 이제 가 보자·”
난 서책들을 책장에 집어넣고 그녀와 함께 태열전 접객당에 다시 도착했다·
그곳에는 태열전이 몇몇 서책들을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서 수사가 원하신 불가공법들입니다· 의식공법도 있고 연체공법도 있으며 그냥 공법도 있지요· 종류별로 있으니 가져가 익히시면 됩니다·”
나는 감사를 표하며 서책을 집어 조금 읽어 보다가 흠칫 놀랐다·
“잠깐··· 다들 하나같이 원영기부터 익혀서 합체기에 이를 수 있는 공법이 아닙니까!?”
기껏해야 축기기 결단기 정도의 공법서일 줄 알았던 나는 공법들의 가치를 알아보고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꼈다·
태열전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저는 천족공법에는 자질이 없어서 수도공법으로는 기껏해야 결단기인 몸입니다· 제게 해당 공법서들은 경전 주해로서의 가치 외에는 가치가 없습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무엇을 원하다니요· 말씀드렸잖습니까· 제겐 큰 가치가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서 수사에겐 무상으로 드리겠습니다· 같은 태수기도 하니까요·”
“으으음····”
나는 의식공법 연체공법 천족공법들을 한 번씩 의식으로 훑어본 후 내게 가장 도움이 되겠다 싶은 것들만을 하나씩 챙겼다·
“감사드립니다·”
“별 것 아닙니다·”
나는 태열전에게 인사를 한 후 그녀와 몇 마디 담소를 더 나누었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궁금증이 들어 한 가지를 묻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태 도우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녀와 만나며 계속 궁금했던 것이었다·
“무엇입니까?”
“당신이 도달한 구현 그 이름은 심천탱화도입니다· 맞습니까?”
“그렇지요·”
“저는 심천탱화도를 맞아 보며 그 구현의 본류가 당신이 익힌 결단기 공법· 즉 천족공법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랬다·
그녀는 무림인으로 치면 기공으로 입천에 도달한 것·
중경계 출신인 그녀가 무림인의 내공심법을 익힐 리는 없었으니 천족공법을 익혀서 입천에 도달했다고 보는 게 맞았다·
한마디로 청문령이 선각후통에 집착해서 입천에 도달했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소리인 것이었다·
나는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만약 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수도공법에 대해 집착을 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닐진대 도대체 그들은 왜 다 심족이 되지 못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내 말에 태열전은 씩 웃으며 말했다·
“저는 수도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종교인이기 때문입니다· 불종(佛種)에 귀의한 몸으로서 칠화왕의 믿음을 극한으로 발전시켜 나갔고 그 결과 구현에 도달한 것이지요·”
“흐음····”
결국 핵심은 수도공법 그 자체에 대한 집착이라기보단 수도공법 안에 있는 특정한 깨달음을 극점으로 갈구했기 때문에 구현에 도달한 것이라는 소리였다·
나는 문득 청문령에 대한 안타까움과 의문이 들어 그녀에게 질문했다·
“만약 선가공법으로도 입천에 도달할 수는 없습니까? 예를 들어 선각후통을 갈구하여 입천에 든다든가····”
“이론상 가능은 합니다· 다만 선가공법은 불가공법보다 훨씬 더 난이도가 높을 것입니다·”
“어째서입니까?”
“불가공법은 의념이란 존재를 정의하고 그 교류를 파악하는 내용이 항상 들어 있습니다· 애당초 칠화왕께서도 의념의 형상으로 우리의 안에 깃들어 있다고 하시니까요· 하나 선가공법은 아닙니다· 오직 자기 자신이 홀로 수행하는 게 가능한 부류이지요· 그렇기에 선가공법은 불가공법에 비해 구현에 드는 난이도가 아득하게 높답니다·”
“흐음····”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녀는 선가공법과 불가공법의 차이를 하나 더 설명해 주었다·
“불가공법이 칠화왕에게 그 근간을 구한다면 선가공법은 절대 다수가 [하늘]과 [땅]에게 그 근간을 구합니다· 천족공법과 지족공법이지요· 특히 천족공법은 [하늘]을 근원으로 두는 만큼 익힐수록 도리어 인간의 의념은 신경 쓰지 않게 되기 때문에 더더욱 구현은 요원해집니다·”
“으음··· 그렇습니까·”
아무래도 선가에 속하는 천족공법은 익히면 익힐수록 도리어 구현의 깨달음에서 멀어지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나 역시 경지를 높이면 높일수록 천족 지족 심족에서 요구하는 깨달음이 상반되는 걸 느끼곤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는 그녀와 몇 마디 말을 더 나눈 후 그녀에게 감사를 표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많은 깨달음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같은 태수로서 그리고 같은 심족 첩자로서 잘 부탁드리지요·”
“하하하 심족 첩자라니요· 저는 스승님에게서 독립하겠답시고 뛰쳐나온 것이라 첩자가 아닙니다만··· 서 수사만 첩자인 게 아니실지·”
내 농담에 그녀는 역으로 농담을 받아쳐 주며 나와 연이를 배웅해 주었다·
나는 태열사의 정문 앞에서 문득 한 가지가 더 궁금해져 질문했다·
“참 그러고 보니 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이는 별로 말씀하고 싶지 않으시다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혹 본인의 이름과 태열사 태열전의 이름이 같은 것은 어떤 연유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
“혹시 이게 무례한 질문이었다면 사과드립니다·”
“음 아닙니다· 그렇게 엄청난 질문은 아니니까요· 별 것 없습니다· 저는 본래 이름이 없습니다· 그저 태열사에서 태어나 자라났지요· 진짜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딱히 알 생각도 없습니다· 저는 줄곧 이 태열사의 이전 주인이셨던 큰스님에게 탱화를 배우며 태열사를 제 자신과 동일시해 왔습니다·”
태열전은 친절하게 자신의 이름의 내력을 설명해 주었다·
“큰스님은 제게 다시 세속으로 돌아가 원영기에 들어 부모님을 찾으라고 하시고는 법명도 주지 않으셨지요· 하지만 저는 태열사와의 인연을 저버리기 싫어 제 자신의 법명을 제가 정했습니다· 태열사 태열전의 이름과 같이 태열전으로 말입니다·”
그녀는 합장을 하며 우리를 배웅했다·
“제 이름은 태열전· 이름조차 받지 못했던 태열사의 말 안 듣는 망나니일 뿐입니다·”
우리 역시 그녀에게 합장을 한 후 돌아섰다·
그녀와의 만남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 주고 많은 것을 얻게 해 주었다·
나는 태열사에서 다시 천부산으로 올라와 연이에게 부탁했다·
“민희 언니요?”
“응· 혹시 가능할까? 전명훈은 원래 전부 사이 안 좋았고 너도 알다시피 나랑 강민희 사이가 그렇게 좋았던 건 아니잖아?”
“으음 두 분이 사이가 안 좋았다고요?”
어쩐지 김연은 두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유를 몰라서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네 뭐· 일단 제가 한번 연락해 볼게요· 어차피 민희 언니 만나서 해야 할 얘기도 있고··· 저도 민희 언니는 보고 싶었으니까요·”
“그래 고맙다·”
얼마 후 김연은 흑색귀골곡에 연락을 넣었다·
그리고 답장은 빠르게 왔다·
끼야아아아―
흑색귀골곡에서 온 귀신 한 마리가 나와 김연이 수련하는 수련장으로 온 것이었다·
내 앞에서 비익무를 수련하던 김연은 귀신을 쳐다보았고 귀신이 김연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기묘성심전으로 귀신과 의식을 연결했다·
얼마 후 귀신에게 답변을 들은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 오빠! 민희 언니가 보름 정도만 있으면 만날 시간이 되니까 보름 후에 당장 만나자 하세요!”
“오! 역시····”
사내에서 가장 귀여움을 받던 김연이었다·
저렇게 빠르게 답변을 받다니·
그러나 나는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잠깐 서립으로 본 강민희는 지금 여유가 꽤 있어 보이는데· 왜 굳이 보름 후에 만나자는 거지?’
말 그대로였다·
현재 나는 서립의 몸으로 강민희와 꽤 친해진 상태였다·
그녀는 이상하게 서립에게서 아는 사람 느낌이 난다면서 상당히 빠르게 서립과 친해지고 있었다·
덕분에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꽤 여유 시간이 남는다·
‘그런데 왜 굳이 보름 뒤에?’
나는 뭔가 이유가 있을까 생각해 보다 천기를 읽어 보았다·
‘보름 뒤가 광한계에서 1년에 한 번 음기가 가장 강해지는 날이군·’
일종의 동지라고 생각하면 좋았다·
굳이 그때여야 할 이유가 뭔가 있는 듯싶었다·
그리고 보름이 지났다·
* * *
우우우웅!
‘나’는 비둔술을 통해 하늘을 날고 있었다·
최근 나는 흑린어령문의 여러 임무를 수행하며 벌써 공적치도 3백 점을 모았다·
700점을 모으거나 그 사이에 천인기에 이르면 귀혼각에 정식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임무를 하나 수행하는 중이었다·
무려 귀혼각주인 강민희가 내게 직접 내린 700점짜리 임무였다·
‘왜 강민희가 이날 연이에게 만나자고 한 건지 알겠군·’
쉬이이이익―
나는 밤하늘을 가르며 비둔술을 써 인족 총연맹 운도 지대의 바깥·
운도 지대 동쪽 한음택(寒陰澤)이라는 거대한 늪지대 지대에 들어섰다·
한음택은 음기가 짙은 늪지대 지대였으며 인족이 아닌 파충류 형태의 천족인 엽타족 영역이었다·
나는 엽타족 영역 외곽·
인족의 접근이 허용된 곳까지 가 음기가 강한 곳을 찾았다·
‘여기가 좋겠군·’
나는 적당히 음습하고 깊은 늪지를 찾아 흑색귀골곡에서 데리고 온 귀신들을 풀었다·
안 그래도 음습한 한음택에 한밤중에 수많은 귀신 떼가 풀리자 어마어마한 귀곡성과 흐느낌이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끼야아아아아―
으흑흑흑····
아아아아아아아!
이전과 달리 귀선규마결이 궤도에 오른 후·
나는 죽음의 형상을 귀신들을 자극하지 않도록 바꿀 수 있었기에 귀신들은 그렇게까지 나를 공포스러워하며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진을 맞춰라!]
내가 귀왕으로서 명을 내리자 귀신들은 일제히 내 명에 따라 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강민희가 내게 가르쳐 준 진이었다·
얼마 후 한음택의 늪지 위로 귀신들로 이뤄진 거대한 도안이 나타났다·
그 도안은 거대한 귀왕을 그리고 있었으며 귀왕의 얼굴에는 수(壽)라는 글자가 역으로 뒤집혀 적혀 있었다·
나는 주변의 음기와 귀기를 끌어모아 결인을 맺고 진언을 읊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파아아앗!
한음택의 음기를 흡수하던 진법은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음기를 내뱉기 시작했다·
싸아아아―
주변이 더더욱 음산하고 공포스러운 기운에 물들었다·
나는 그 공포스러운 기운이 절정에 달했을 때 모든 결인을 완성하고 마지막 진언을 내뱉었다·
[부휴비혜문(腐䝗秘徯門)· 개(開)!]
촤아아아아!
일순간 거대한 맹수에 의해 공간이 찢겨지는 듯하더니 그대로 도안이 그려진 일대가 순식간에 썩어 버렸다·
그와 동시에 나는 시커먼 어둠이 줄기줄기 광한계로 넘어오는 걸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음 이러고 있으니 무슨 대악마 소환 의식이라도 하는 것 같군·’
전 여자 친구 소환 의식일 뿐인데 말이었다·
얼마 후 시커먼 어둠이 잦아들며 나는 점차 어둠 너머에서 넘어오고 있는 뭔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머리를 산발하고 주변에는 기천에 달하는 귀왕(鬼王)을 이끌고 있었으며 양손에는 시커먼 귀조를 달고 있는 거대한 귀물(鬼物)이었다·
이윽고 그 귀물이 귀조가 달린 손을 광한계의 대지에 박아넣은 후 광한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치이이이―
나는 음혼귀주문에 귀선규마결을 씌워 고통이 느껴지지 않게 한 후 기다란 사슬을 만들어 그 귀물의 양 팔목을 묶었다·
그런 후 나는 상공에서 귀물을 광한계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얼마 후 약 팔 척 정도는 될 정도로 기다란 몸을 가진 팔척귀물은 마침내 광한계의 대지를 밟는 것에 성공했다·
그 귀물을 뒤따라온 수많은 귀왕들은 귀물이 광한계로 들어오자 안타깝다는 듯이 비명을 지르며 어둠 너머에 남아 있었고 내가 뚫어놓은 어두운 공간은 점차 닫혀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팔척귀물의 몸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츠츠츠츠―
마침내 팔척귀물은 인간 여성 정도의 크기 정도로 작아졌고 어둠 속에서 나신의 여성이 되었다·
[후우우우····]
마치 귀곡성과도 같은 숨결이 주변 한음택을 휩쓸었다·
반경 70리에 해당하는 영역의 늪이 그 숨결 하나에 얼어붙어 버렸다·
[따뜻하군· 역시 광한계가 좋아·]
그녀는 씨익 웃으며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자 주변의 귀기가 호응하며 자연스레 그녀의 몸을 덮었고 얼마 후 그녀는 흑색귀골곡의 검은 장포를 입은 모습으로 변했다·
‘저것이····’
흑색귀골곡 흑색 원로·
강민희 본체(本體)였다·
나는 머리칼을 늘어뜨리며 그녀의 앞에 고개를 조아렸다·
나 역시도 이제는 흑색귀골곡의 특색인 흑색 장포를 입고 있었기에 나와 그녀는 명백한 상관과 수하처럼 보였다·
“흑색귀골곡 음혼 제자 서립· 원로님께서 내린 임무를 수행 완료했습니다·”
[아 그래· 수고했다 서립·]
그녀는 숨결 하나하나에 새하얗게 서리를 내뱉으며 웃었다·
[집무각에 말해서 공적치를 부여해 주마· 그건 그렇고··· 가져왔느냐?]
“여기 있습니다·”
나는 분체가 자주 피웠던 곰방대를 그녀에게 바쳤다·
[아 고마워· 샛길에서는 이런 게 안 되니까 말이지·]
내가 맡았던 공적치 700점짜리 임무·
그건 바로 귀혼각 부각주이자 흑색 원로 강민희 본체가 ‘샛길’에서 광한계로 진입할 수 있게 돕는 것이었다·
[후우우우····]
도깨비불을 써 곰방대에 불을 붙인 그녀는 적당한 곳에 걸어갔다·
그러자 그녀의 그림자에서 최소 천인기 급으로 보이는 귀왕들이 일어나며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의 물을 얼려 얼음 의자를 만들어 냈다·
강민희는 얼음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얼음은 그녀가 내뿜는 한기에 더더욱 견고해지며 바싹 얼어붙었다·
강민희는 얼음 의자에 앉아 곰방대를 피웠다·
그녀의 입에선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다·
[원래는 이 임무를 줘서 공적치로 귀혼각에 들어오게 해 주려 했는데····]
강민희는 나를 보며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분체로 봤을 땐 몰랐는데 본체로 보니까 네 죽음··· 정말로 깊구나? 이건 뭐 정말 명계의 가장 어두운 밑바닥에서 죽음의 신을 마주하고 다시 기어 올라온 귀왕이라고 해도 믿겠는데? 후후····]
“····”
[네 재능 다시 보니까 단기간에 약간의 깨달음만 있으면 천인기가 될 수 있겠어· 공적치를 써서 귀혼각에 들어오는 것보다 천인기를 노려 봐· 공적치는 아껴 뒀다가 필요할 때 쓰고· 알겠지?]
그녀의 친절한 제안에 나는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원로님· 그리고··· 이만 저는 가 보겠습니다·”
나는 강민희가 왜 바로 흑색귀골곡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음택에 자리를 잡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오늘은 그녀가 김연과 만나는 날이었다·
강민희는 김연과 연락하며 ‘전명훈과 서은현은 데리고 오지 말 것’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그렇기에 나는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될 터였다·
그러나 강민희는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서립아· 이리 와· 나 만날 사람도 있는데 아직 오려면 시간이 있어야 하거든· 그때까지 말동무나 좀 해 줘·]
“으음··· 그럼 그분이 오시면 저는 가도 되겠습니까?”
[너 나 싫어하니?]
“아 아니요····”
[왜 자꾸 가려고 해· 같이 있어도 돼· 그냥 고향 친구 같은 애 만나는 거니까····]
나는 얼떨결에 강민희와 같이 있게 되었다·
얼마간 나와 그녀는 대화를 나눴고 나는 어느 순간 강민희의 머리를 빗겨 주고 있었다·
[아아 아· 아· 음음·]
“괜찮으십니까?”
“음음· 아아아· 음음음·”
그녀는 영언에서 육성을 내기 시작하며 말했다·
“음 좋네· 머리 잘 빗는다· 누구한테 배웠어?”
‘너한테·’
“예전에 가르쳐 주신 분이 계십니다·”
“누군진 몰라도 훌륭하게 가르쳤네·”
나는 그녀가 피곤할 때 머리를 빗겨 주던 기억을 되살려 머리를 빗겨 주며 가끔 두피 지압도 해 주었다·
강민희는 내 손길을 느끼며 곰방대를 한 번 빨았다·
푸른 연기를 피워 올리며 그녀는 잠시 말이 없었다·
“춥더라고· 샛길은··· 명귀계와 직결된 곳이라 명귀계의 귀기와 음기가 쏟아져 들어온 곳이었거든·”
“그렇습니까?”
“그래서 이런 온기가 그리웠는지도 모르겠어· 분체로도 간접적으로 느끼고는 있었지만 본체로 느끼는 온기가 확실히 더 각별하네·”
그녀는 내 손길에 머리를 맡기고 얼마간 편하게 쉬었다·
“어깨도 주물러 드릴까요?”
“부탁해·”
나는 자연스럽게 예전에 강민희가 좋아했던 순서대로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
밤하늘 아래 마냥 차갑기만 하던 그녀의 어깨에도 점차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파아아앗!
저 멀리서 연분홍빛 둔광이 날아왔다·
연이였다·
나는 약속을 어기는 것 같아 못내 불편했지만 강민희가 가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남아 있었다·
타앗!
둔광 속에서 연이가 나왔다·
그녀와 강민희의 눈이 마주쳤다·
탁탁―
강민희는 곰방대를 바로 꺼서 저물도에 집어넣고는 반갑게 김연을 맞아 주었다·
“연아~ 완~ 전~ 오랜만이다! 우리 귀염둥이! 잘 지냈어?”
“언니~ 잘 지내···진 못했는데 그래도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어요·”
강민희는 김연의 양 볼을 두 손으로 누르며 귀여워해 주었고 김연도 반갑다는 듯이 헤실헤실 웃었다·
얼마간 웃고 떠들던 강민희는 김연에게 나를 소개해 주었다·
“얘는 서립이야· 내 시중 들어 주는 친군데 같이 있어도 괜찮지?”
“아 물론이죠· 안녕하세요 민희 언니 동생인 김연이라 합니다· 언니도 굉장히 예쁘게 생기셨네요!”
“어··· 음··· 음··· 감사합니다·”
뭔가 정정해야 할 말이 있었지만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잠시 만나서 떠들썩하게 회포를 풀던 그녀들은 이내 근처 바위로 가 토둔술로 자리를 만들고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서 기가 빨리는 느낌이었지만 일단 버텨 보았다·
그러던 중이었다·
강민희와 얘기를 나누던 김연이 헛기침을 하더니 조금 진지한 목소리로 강민희에게 말했다·
“민희 언니·”
“응? 왜?”
“언니 다른 동료들도 만나 보셨어요?”
“동료들?”
“회사··· 사람들이요·”
“···아니· 못 만나 봤어· 소식은 그럭저럭 들어보긴 했는데 굳이 찾아보진 않았고··· 전명훈 그 새끼··· 죽었다면서?”
“···? 과장님 안 죽었는데요?”
“아··· 뭐 무슨 문파랑 통째로 어떻게 됐다는 거 같았는데···· 잘못 들었나 보네· 에이 그냥 뒈지지· 왜 안 죽었어 그 새끼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는 내심 안도하는 의념을 흘리고 있었다·
“헤헤 뭐··· 은현 오빠가 어떻게 구해 준 것 같더라고요·”
“····”
“···저 민희 언니·”
“왜·”
“저····”
얼마간 고민하던 김연이 우물쭈물거리다가 슬쩍 나를 보더니 내가 알아듣지 못하게 한국어로 말했다·
“저··· 은현 오빠랑··· 사귀게··· 됐어요·”
김연은 강민희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얼마간 그녀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김연이 강민희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괜찮··· 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