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護) (4)
강민희는 그 말을 듣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두 사람의 의념을 보았다·
김연은 부끄러움 미안함 걱정 등의 의념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강민희는····
“후우····”
의자 등받이에 어깨를 기댔다·
그리고 갑자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아··· 정말··· 속이 드디어 뚫리네·”
“괘 괜찮으신 거에요?”
김연은 안색이 안 좋아져서 물었다·
강민희는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응· 괜찮다니까 연아· 말했잖아? 우리 둘 다 장난식으로 사귄 거고 서로 별 감정 없어· 회사에 있을 때부터 너네 둘 뒤에서 밀어준 거 보면 모르니?”
“어··· 그렇지만····”
“오히려 그 멍청이 새끼가 어떻게 네 마음을 알아차린 거야? 난 그게 더 궁금하다 정말···· 내가 회사에 있을 때부터 얼마나 답답했는지 아니? 고구마 열 개는 한 번에 처먹은 느낌이었다니까· 이제야 고구마가 좀 내려가는 거 같네· 예전에 소화 안 되던 음식이 소화돼서 내려간 느낌이야·”
“언니····”
강민희가 말을 이어 나갈 때마다 김연의 의념은 착잡해지고 있었다·
“괜찮다니까! 정말··· 나는 이미 여기서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 항상 주변이 복작거려서 별로 안 외로워· 애초에 말했잖아· 난 남자를 사귈 팔자는 아니라니까·”
“····”
“그러니까··· 축하해 연아· 그리고 만약 그 멍청한 새끼가 너 힘들게 한다거나 멍청한 짓 하면 나한테 말해· 내가 네가 부리기 쉽게 귀왕으로 제련해 줄게·”
“앗 그건 괜찮아요· 저도 괴뢰 제작은 할 줄 알아서····”
“아하하하! 그거 멋진데?”
오싹!
나는 두 사람 사이에서 필사적으로 의념을 조절하며 의념이 흐르지 않게 제어했다·
두 사람은 얼마나 웃고 떠들었을까·
이내 새벽녘이 다가오자 점차 둘 다 한숨을 쉬었다·
“이제 곧 헤어져야 하네요·”
“그러게 아쉽다· 다음에 시간 날 때 또 만나자·”
“다음에는 언제 만나실 수 있으세요?”
“음 사실 아마 다음에도 이 날이 아니면 힘들 거야· 어지간하면 샛길에서 수련해야 하거든· 그래서 아마 한두 해 정도만 흑색귀골곡에 머물다
다시 샛길로 들어가야 하니까·”
“샛길은··· 힘들지 않으세요?”
“그리 힘들진 않아· 친구도 엄청 많거든· 너도 알면 놀랄 거야·”
“그러면··· 조금 다행이네요·”
“그래~ 걱정할 거 없다니까?”
그러나 김연은 강민희를 보며 걱정스럽다는 의념을 지우지 못했다·
“···언니· 이제 슬슬 가야 하는데···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도 될까요?”
“음? 뭔데?”
“···만약 은현 오빠한테 아직 마음 있으신 거면 제가 포기할 수도 있어요· 두 분이 솔직히 사내에서 사이좋았던 거 모르는 사람들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말씀해 주세요·”
‘내가 얘랑 사이가 좋았다고?’
“내가 걔랑 사이가 좋았다고???”
강민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아무래도 그건 연이가 오해하는 듯싶었다·
우리는 악우였다는 뜻은 사적으로는 ‘마냥 미워할 수 없다’는 뜻이지·
공적으로는 대놓고 으르렁거렸고 사적으로도 상당히 티격태격했었었다·
어떻게 우리 관계를 보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건가·
“난 항상 걔랑 만나면 싸워 댔는데?”
“그런가요? 제 눈에는··· 싸운다기보단 소꿉친구들이 짓궂은 장난하는 걸로만 보였거든요·”
“저런··· 그게 아니라 내가 너한테만 장난 연애 썰을 풀어서 그렇게 들린 게 아닐까?”
“···언니 만약 마음이 있으신 거면··· 정말로 말씀해 주세요·”
“····”
강민희는 뭔가 짜증이 난 듯 눈을 찌푸렸다·
“야 김연·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마음 없다고· 장난이었다고· 우리 둘 다 진지하게 생각 안 하는데 왜 네가 난리야? 그만 좀 해· 너희 둘 진지하게 응원하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진지하게 응원한다는 의념은 진실이었다·
그러나 김연은 안타깝다는 의념을 짓눌렀다·
“···네· 알겠어요·”
“그래 아까부터 축하한다고 해 줬는데 왜 자꾸 그러는 건지 원···· 그나저나 아까 얘기 중에 뭐 부탁할 거 있다 하지 않았니?”
어느새 해가 완전히 떠올랐고 한음택의 음기가 잦아들었다·
김연은 강민희에게 전명훈과 명귀계로 간 금신천뢰문 제자들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얘기를 들은 강민희는 놀랍다는 듯이 탄성을 터트렸다·
“전명훈··· 껄떡대는 거 말고 그렇게나 성장했구나···· 하긴 거의 100년이 되어 가는데 아직도 그때 그 시절 그대로면 그냥 멍청이인 거지·”
“····”
“뭐 어쨌든 그러니까 전명훈한테 샛길을 이용하게 해 달라는 거지?”
“네·”
“음 뭐··· 가능은 한데· 아 그 새끼 또 나한테 껄떡대진 않겠지?”
“아마··· 그러진 않을 거예요· 전 과장님··· 많이 성숙해지셨으니까요·”
“그래···· 진작 좀 성숙해지지·”
강민희는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용하게 해 줄게· 단·”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샛길에 진입하려면 내 말을 따라야 하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내 말을 거부하면 안 된다고 알려 주고··· 지금 전명훈이 천인기라고 했나? 천인기 대원만?”
“예· 은현 오빠 말로는 아마 시간만 있으면 사축기가 될 것 같대요·”
“음 그럼 안 되겠네· 만약 서은현이나 너 혹은 다른 동행인을 대동하려면 허락해 줄 수 없다고도 전해 줘· 지난번에 샛길을 지나간 금신천뢰문 사람들은 가장 높은 경지가 원영기였고 대부분 결단기였어서 모여서 가는 걸 허락해 준 거야· 하지만 사축기에 들려 하는 천인기 대원만이라면 그 혼(魂)이 너무 커서 여럿이 동행해 버리면 샛길이 무너질 수도 있거든·”
“아··· 네· 전할게요·”
‘음 이런····’
나는 전명훈과 동행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안타까웠다·
나 역시 금신천뢰문 제자들에겐 애착이 있었고 명귀계의 비밀들 역시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수(壽)의 축을 쌓을 기회기도 했는데· 다음 기회로 넘겨야겠군·’
그리고 전명훈에게도 안된 일이긴 했다·
‘최소한 연진을 같이 데려가면 연위의 조언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명귀계 유경험자인 연위라면 전명훈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터였다·
* *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된 거 바로 연위에게 물어봐야겠군·”
나는 서립으로 둘의 대화를 전해 들으며 천인도에서 나와 뇌령도로 향했다·
뇌령도 금신천뢰문의 잔해 위·
그곳에는 전명훈이 떠서 전경을 바라보고 있었고 연진은 그 인근 봉우리에서 열심히 수련 중이었다·
“전명훈 연진· 이리 와 봐라· 일단 할 얘기가 있다·”
“뭐냐·”
“앞으로 명귀계에 가게 될 거라면 그 유경험자인 연위에게도 물어보는 게 좋겠지· 연진 연위와 연락할 수 있나?”
“예! 연락하겠습니다!”
얼마 후 자리에 앉아서 뭔가와 교신하는 듯하던 연진은 전신이 꿈틀거리는 듯하더니 눈을 떴다·
우웅!
그의 눈빛이 바뀌어 있었다·
연위였다·
“오랜만에 부르는군· 이 늙탱이에게 뭔가 물어볼 게 있나?”
“뭐 잘 지내는지 안부도 물어볼 겸 명귀계에 대한 정보를 여쭤보려 연락했소·”
“나야 굉장히 잘 지내지· 최근 귀여운 제자들을 받아서 귀여워해 주는 중이지· 수계 정복 기획도 꾸리고 있고···· 할 게 많아서 아주 좋다·”
연위는 얼마간 자신이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지를 털어놓은 후 되물었다·
“그나저나 명귀계에 대해 묻고 싶다고?”
“그렇소· 명귀계에 대해 아는 게 있소?”
“명귀계라··· 음침한 곳이었지· 그리고 번성한 곳이었고·”
얼마간 연위의 입에서 명귀계에 대한 정보가 흘러나왔다·
나와 전명훈은 명귀계에 대한 정보를 받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말을 마친 연위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참고로 약 4만 3천 년 전 정보라 부정확한 것이 있을 수도 있다· 참고하거라·”
“알겠소· 그래도 그 정도면 되었소· 그나저나 추가로 한 가지 더 묻고 싶은 게 있소·”
“뭐냐?”
나는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헌원의 약점·”
“호오?”
이번 생의 시작·
그 첫날부터 헌원과 추격전을 벌이느라 고생을 해야 했다·
심지어 잡혔으면 바로 다음 생이었으니 죽을 힘을 다해야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헌원의 약점에 대해 알고 있다면야 문제가 안 될 터였다·
연위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약점이라···· 원래 놈에게 약점 같은 건 없었다· 사실 지금도 건곤중역에 있는 한은 녀석에게 약점은 없어· 그 녀석은 사실상 동 경지 내에서 무적이다·”
“···!”
그 말에 나는 헛숨을 들이쉴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게 가능하오?”
그렇다면 헌원에게 대응하려면 무조건 건곤중역 바깥으로 나와서 상대해야 한다는 거다·
“아니 당신이 헌원의 약점을 찔러 뭔가 치명상을 입혔으니까 녀석이 그렇게 건곤중역에 갇히게 된 것 아니오?”
“음 약점이라니· 내가 놈의 태산열제공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어서 잘 싸웠던 거지· 음혼귀시문에서 ‘빌려’왔던 음혼귀시문의 신물도 한몫했고· 음혼귀시문의 신물을 희생하고 내 축 하나를 깎아서 녀석에게 치명상을 입힌 게다· 녀석에게 약점은 없었었어·”
“···아니 빌려온 신물이라면서 희생해도 되는 거요?”
“몰래 빌려온 거라서 괜찮다·”
“····”
‘···몰래 빌려온 거면 ‘훔친’ 거라고 해야 하지 않나?’
나는 문득 의문이 들어서 질문했다·
“그나저나 선배께서 태산열제공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하셨는데 헌원과 싸울 때 알게 된 게 맞소?”
“아니 헌원에게 직접 설명을 들은 거다만?”
“음?”
“설마 처음부터 우리 둘이 볼 때마다 운명적으로 안 맞는 걸 느끼고 으르렁거렸으리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우리도 4만 년 전 그날 전까지는 상당히 친한 사이였다· 떼놓을 수 없는 사이였지·”
“어떤 사이셨길래?”
“정혼자였거든·”
“···???”
이어진 연위의 말에 나는 충격을 금할 수가 없었다·
“4만 3천 년쯤 전 당시 나는 금신천뢰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봉래궁주와 정략 결혼을 하기로 했다· 헌원도 수락했고· 우리 둘이 힘을 합쳐 흑룡왕도 죽이기 전까지 몰아갔었지· 흑룡왕을 살려 주는 대신 그는 우리와 동맹을 맺고 인족과 함께하기로 했으니 인족 총연맹에서도 엄청나게 우리에게 감사를 표했었지· 후후····”
“····”
나는 충격적인 사실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 * *
‘본체도 어마어마한 얘기를 듣고 있군·’
나는 난데없이 밀려드는 정보의 파도에 머리가 아파 오는 걸 느꼈다·
어느덧 강민희와 김연은 서로를 한 번 안아 주고 헤어졌다·
김연은 연분홍빛 둔광에 휩싸여 저 멀리로 날아갔고 어느새 해가 완전히 뜬 한음택에는 나와 강민희만이 남게 되었다·
“알아듣기 힘들었지? 자꾸 외계어로만 대화해서·”
“하하 아닙니다· 영광이었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그나저나 서립·”
“예·”
강민희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슬슬 정체를 말하지그래?”
“···예?”
“그 빗질이랑 어깨 마사지는··· 3주간 걔랑 사귈 때 그 새끼한테만 가르쳐 준 거였거든· 그런데 네가 완벽히 따라 한다는 게 이상한 거지· 처음 볼 때부터 얼굴을 가리고 있고 죽음으로 혼을 못 보는 것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우우웅―
강민희의 왼손이 시커먼 귀조로 변했다·
“너 맞지? 정말 징글징글하다· 어떻게 여기까지 따라올 생각을 하니· 뭐 예상은 했다만····”
그녀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구에서처럼은 안 될 거야· 너는 오늘 여기서 죽을 거니까·”
부웅!
그녀가 내게 귀조를 휘둘렀다·
“죽어라 빌어먹을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