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護) (5)
강민희는 아버지가 없었다·
그녀가 아주 어릴 때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다행히 보험은 많이 들어 둔 덕에 강민희와 어머니는 부족한 삶을 살진 않았다·
다만 그녀의 어머니는 무속 신앙에 빠져 있었다·
강민희가 7살 당시·
강민희는 어느 날 심한 열병을 앓았다·
그 당시 일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말하길 7일 밤낮으로 그녀가 악몽을 꾸며 몸져누웠다고 했다·
지금도 강민희가 7살 당시 쓴 그림일기장에는 그때 꾼 악몽이 남아 있었다·
검은 가사를 입은 거인이 연꽃에 앉아 하늘 위에서 강민희의 집을 내려다보는 그림일기였다·
강민희의 어머니는 그녀가 열병에서 나은 후 본인이 자주 찾아가는 무당 장군선녀에게 강민희를 데리고 갔다·
강민희는 아직도 처음 무당을 찾아갔던 때가 아직도 기억에 남았다·
―귀신! 큰 귀신이 들렸어! 이렇게나 큰 귀신은 처음 보는군· 태생이 귀신들이 좋아하게 음기가 강한 아이야· 강력한 음기가 귀신들을 불러들이고 있어· 귀신을 쫓아낸 이후에는 신내림을 받아야 해!
까무러칠 듯이 펄쩍 뛰며 놀란 무당의 말에 강민희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그러겠다고 답했다·
강민희의 의사는 상관없었다·
그리고 강민희에게 들렸다는 귀신의 영향인지·
아니면 열병을 앓은 여파인지·
그녀는 항상 몸이 약했다·
잔병치레가 잦았고 운동도 잘하는 편은 안 됐다·
그랬기에 강민희는 더더욱 무당을 자주 찾아가게 되었다·
정확히는 강민희의 어머니가 그녀를 자주 끌고 갔다·
무당에게 갈 때마다 무당은 기묘한 제사 의식 안에서 강민희에게 깃든 귀신을 쫓아낸다며 작두를 탔다·
하지만 그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고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될 때까지·
무당은 끊임없이 제사를 지냈지만 강민희의 안에 들렸다는 귀신은 쫓아내지 못했다·
―어떻게 된 게지!? 시간이 지날수록 귀신의 힘이 커지고 있어! 오늘은 장군님의 힘을 직접 빌어서 쫓아보세! 굿 값은 저기 매니저한테 말하게·
―말도 안 되는! 이리 큰 귀신이 있단 말인가!? 오늘은 내가 장군님을 직접 몸에 받아 장군님을 현세에 현현해 쫓아내겠어! 매니저 오늘 굿 값 계산해 보게·
―내 무당으로서의 생명을 걸고 네 놈을 쫓아내고 말겠다 악귀야! 매니저! 장군님과 천지용신님들 전부 불러서 대제사를 치르려 하니 일정 짜 놔! 민희 어머니에게도 굿 값은 알려 드리고····
자기가 모신다는 장군님보다 매니저를 더 많이 찾던 무당의 태도가 변화한 건 강민희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였다·
―히 히이익! 아 알겠다· 그래· 귀신이 아니었어· 큰 귀신이 붙은 게 아니었어! 너! 네가! 너 본인이 내가 본 그림자 자체였구나! 애초에 인간이 아니라 사람 몸을 빌려 태어난 귀신이었어! 히 히히힉···! 자 잠깐· 그림자가 귀신이 아니라 네 본인이면 그럼 네게 들러붙은 건 뭐지? 분명 점괘에는 들러붙은 게 있다고 나왔는데···! 저게 저게저게저게저게저게···! 자 장군님 장군님 어디 가십니까! 장군님!!!!! 저만 두고 가지 마십···끄르르륵···!?
강민희에게 큰 귀신이 있다고 말한 무당은 갑자기 입에서 거품을 내뿜더니 그대로 졸도해 버렸다·
그리고 응급실로 실려 간 무당은 다시 깨어난 후 모든 기억을 잃고 백치가 되고 말았다·
듣자 하니 3살 때 당시의 지능만이 남았다고 했다·
강민희의 어머니는 강민희에게 든 귀신조차 쫓아내지 못하는 무당의 실력에 의심을 가지고 있던 차 그런 사건까지 일어나자 결국에는 무속에 관한 관심을 끊었다·
대신 기독교 신자가 되어 기도를 다니기 시작했지만 강민희는 교회에 가지 않았다·
그 대신 유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몸이 약했지만 상관없었다·
약하게 태어난 건 귀신 같은 게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약하더라도 강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귀신이 들렸다는 무당의 말은 허언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무당에게 찾아가지 않게 된 순간부터 강민희는 어느 순간 자신을 따라다니는 그림자 같은 걸 보게 되었다·
어머니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말하게 되면 이제는 교회도 같이 끌려가게 될 테니까·
강민희는 대신 더더욱 운동을 열심히 하고 학업에 열중했다·
저 검은 그림자는 불안한 정신과 심리적인 문제로 보이는 것이라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심리학과 뇌과학에도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그 무엇으로도 검은 그림자는 떨쳐 낼 수 없었다·
어느 순간 검은 그림자는 점차 형체가 뚜렷해졌다·
그것은 어떨 때는 그녀의 어머니의 형상을 했고 어떨 때는 지인을 어떨 때는 무당을 어떨 때는 그녀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녀가 고등학교에서 점차 학년이 높아질수록 그림자는 뚜렷해지다 못해 사람과 비교하기가 힘든 수준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림자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강민희는 무시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강민희의 주변에 해괴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크나큰 사건은 아니었다·
그녀 주변으로 가면 자주 새똥을 맞는다거나 비 오는 날 우산이 사라지거나 사고를 당할 뻔하는 둥·
이상하게 운이 없어진다든가 하는 일이었다·
특히 그녀와 친하게 지내던 이들일수록 더더욱 큰 부류의 불운을 당하게 되었다·
곧이어 학교에는 소문이 돌았고 그녀의 주변에는 사람이 없어졌다·
그림자는 그녀에게 말했다·
―입에 칼을 물고 열두 시에 거울을 보면 네 미래의 남편감을 알게 된대· 한번 해 보자· 너는 성공할 거야· 재능이 있으니까·
강민희는 무시했다·
―무당이 썼던 부적을 따라 그려 보자· 내가 같이 그려 줄게· 네가 쓴 부적은 효험이 있을 거야· 내가 보장해 줄게·
―마녀들이 썼던 마법 약에 관심이 없어? 내가 제조법을 알려 줄게·
―역오망성에 어떤 힘과 지혜가 깃들어 있는지 궁금하지 않니?
기이하게도 언제나 오컬트적이거나 사악해 보이는 지식과 저주 등에 대해 강민희에게 속삭이던 그림자는 어느 순간부터 본인이 그 힘을 직
접 사용하기 시작했다·
―내가 네 대신 해 봤어· 열두 시에 칼을 물고 거울을 봤더니 남편감이 보이더라· 놀랍게도 너는 결혼을 못 하던데? 너는 남자가 없을 팔자인 거지·
제멋대로 강민희의 운명을 점쳤고·
―내가 네 대신 부적을 그려 봤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선물로 줘· 효험이 있을 거야·
어느 날은 자고 일어났더니 방 전체에 A4 용지로 만든 부적이 붙어 있었으며·
―널 좋아한다던 남자애가 있지? 그 애 머리카락을 구해다가 인형에 넣고 찔렀어· 아마 반년은 학교에 못 올 거야·
점차 힘이 강해지고 뚜렷해지며 사람처럼 말할 수 있게 된 그림자를 보며·
강민희는 그제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는 귀신이 붙어 다닌다는 것을·
그리고 이 귀신은····
―누구도 너랑 어울릴 수 없어· 네 격에 맞지 않아· 너는 네가 얼마나 대단한지 스스로도 몰라· 걱정하지 마· 네 격에 맞지 않는 사람은 전부 내가 쳐내 줄게· 네게 다가오지 못하게 해 줄게·
그녀의 주변으로 누구도 함부로 다가오지 못하게 계속해서 주변으로 불운을 흩뿌렸다·
강민희는 사람을 사귈 수 없었다·
그걸 알게 된 이후로는 누구도 자신과 친해지지 못하게 벽을 두었다·
언제나 앞에서는 웃었지만 뒤에서는 모든 감정을 버렸다·
그녀가 마음에 거리를 둔 사람은 그렇게까지 불운해지진 않았으니까·
대신 드라마나 영화에 빠져 살았다·
거기에 나오는 가상의 등장인물들은 언제든지 사랑해도 불운해지지 않았으니까·
그녀가 드라마를 보며 비밀 사내 연애를 꿈꿨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의 태도는 목욕용품 회사에 취업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 어디 갔지?’
어느 순간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날아갈 것만 같았다·
늘 곁에서 불길한 예언을 암송하던 그림자는 목욕용품 회사가 만드는 비눗물에 그대로 씻겨 내려간 것 같았다·
‘이 회사에 있자·’
그녀는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해방된 기분·
처음 한 취업·
신입들을 챙겨 주는 상사들·
그리고 처음 가진 회식 자리에서 은근히 그녀를 챙겨 주는 입사 동기·
우연히도 출퇴근길도 같으며 똑같이 사내 연애에 동경을 가진 마음·
회식 이후의 취기 등·
모든 것들이 맞물려 그녀는 서은현과 사귀게 되었다·
처음에는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모든 생각은 서은현이 커피를 쏟으며 반전되었다·
절대 쏟아질 커피가 아니었다·
그러나 강민희가 보았을 때 ‘누군가’가 서은현의 등을 툭 떠밀었다·
서은현은 그것에게 부딪혀 오현석의 서류에 커피를 엎질렀고 사람 좋던 오현석은 이상하게도 그날 특히 더 격노했다·
뭔가에 씌기라도 한 것처럼 퇴근 후 90분에 걸쳐 그를 훈계했고 그 시간 동안 강민희는 식은땀이 났다·
없어진 게 아니었다·
해방된 게 아니었다·
그냥 잠시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서은현이 그녀에게 우산을 주고 가서 감기에 걸린 다음 날·
강민희는 결심했다·
그녀의 마음 안으로 더더욱 서은현이 들어오기 전에·
미리 쫓아내 버리자고·
그 이후 강민희는 전력을 다해 서은현과 헤어지기 위해 노력했다·
일부러 서은현을 데리고 드라이브를 가 차 안에서 담배를 뻑뻑 피운다든가·
서은현이 부먹을 하려 하면 눈이 뒤집혀서 엎어 버린다든가·
서은현이 양념을 시키면 무조건 후라이드를 시킨다든가·
서은현에게 민트초코를 억지로 먹인다든가 등·
결국 두 사람은 헤어졌다·
강민희의 기억으로는 그녀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었다·
사실 헤어질 때의 기억은 잘 안 났다·
서로 횡설수설하다가 어찌어찌 헤어졌었다·
그러나 서은현의 불운은 계속되었다·
전명훈은 계속해서 서은현에게 짜증을 냈고 서은현은 어디가 안 좋은지 계속해서 말라만 갔다·
그래서 사표를 쓰려고 했다·
서은현에게 찾아가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자신이 사표를 쓰겠다고 했다·
그때도 횡설수설해서 뭐가 어땠는지 생각은 안 났다·
그러나 사장이 그녀의 기획서를 보고 호봉을 높여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또다시 사장의 옆에서 그림자를 보았다·
―여기 있자· 점괘를 쳐 봤는데 여기 있으면 무궁무진한 미래가 온다는 점괘가 있어·
그림자의 말을 무시하려 했지만 그림자는 어느새 서은현의 목 위로 기어가 서은현의 목을 잡고 그녀에게 말했다·
―여기· 있자· 점괘가 좋다니까?
“····”
강민희는 어쩔 수 없이 남기로 했다·
회사에서 그녀는 늘 칭찬받았고 승진도 빨랐다·
하지만 한시도 편한 적은 없었다·
늘 그림자가 그녀를 따라다니고 있었기에 평생 벗어날 수 없단 생각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 날·
산사태가 일어났고 그녀는 등선향에 떨어졌다·
등선향에 도착한 그녀는 누구보다 먼저 이상을 알아차렸다·
평생 그녀를 따라다니던 그림자가 사라졌으니까·
더 이상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흑색귀골곡에 납치된 이후·
귀도공법을 익혀 갔다·
그녀는 본인의 그림자가 일종의 귀왕이라고 짐작했다·
굉장히 강력한 귀왕·
최소로 잡아도 원영기 급의 귀왕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언젠가 그 귀왕을 만나도 본인이 다시 제압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서 경지를 올렸다·
정말로 전력을 다해서·
그렇게 그녀는 흑색 원로가 될 수 있었다·
사축기에 오른 날·
그녀는 ‘어쩌면’ 하고 기대감을 가졌다·
어쩌면 이제 다시는 그 귀왕이 나타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서립’이란 제자가 들어왔다·
처음 보는 서립을 보며 강민희는 강력한 기시감을 느꼈다·
분명히 어디선가 봤다·
분명히·
이런 종류의 기시감은 틀린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분명히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서립에게 깃든 이상할 정도의 짙은 죽음·
그건 인간의 것이 아닌 귀신이나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서립은 알게 모르게 서은현과 비슷한 행동을 했다·
‘뭐지 도대체?’
서은현이 일부러 흑색귀골곡에 분체를 보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다·
서은현이라면 그럴 리 없었다·
왜 자신이 있는 흑색귀골곡에 분체를 음습하게 파견한다는 말인가·
그녀가 알고 있는 전명훈이나 오혜서라면 몰라도 서은현은 그런 짓을 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거기에 서립은 그녀가 서은현에게만 가르쳐 준 빗질이나 안마 등을 간혹 해 주곤 했다·
서은현의 분체도 아니다·
그렇다면 한 존재밖에 없었다·
그림자·
그녀를 따라다니던 존재·
그것이 마침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흑색귀골곡 제자의 신분으로·
타인들의 눈에도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함부로 속단할 수 없었다·
저 그림자가 타인의 눈에도 보이는 이상 저것은 그녀가 알던 그림자일지 아닐지 몰랐다·
그렇기에 강민희는 본체로 직접 보고자 했다·
그리고 본체의 귀안으로 본 직후에야 강민희는 판단을 내릴 수가 있었다·
저것은 그 그림자다·
그 그림자와 같은 아니 그 그림자를 한참 넘어서는 짙은 어둠·
마치 저승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듯한 죽음의 형상!
그리고·
은근히 풍기는 서은현과 같은 분위기·
마침내 그녀는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서립은 그녀를 지독하게 따라다녔던 그 빌어먹을 그림자다·
아니 최소한 그 그림자와 관련은 있다·
강민희는 얼마간 그림자가 주는 서은현의 손길을 느낀 후 결심했다·
그렇다면·
‘너를 죽여서 정체를 제대로 알아내겠어·’
그녀를 괴롭혀 왔던 그림자를 이제는 떼어 낼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