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護) (7)
우우웅―
정신이 바싹 깨어난 느낌이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나는 지금 강민희에게 쫓기고 있었지만 동시에 또 다른 ‘길’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이 길을 걸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머릿속에 그대로 흘러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알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떻게 이 길을 가야 하는지·
길을 걸으려면 무얼 해야 하는지·
그것을 전부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죽음과 죽음·
그리고 피와 목숨의 강으로 이뤄진 길·
‘자양광마공 비혼진마공 염마비전의 시식비례본 안혼진결····’
비율의 의식에 기묘성심전을 연결해서 마공에 대한 지식들을 요구했다·
완전한 기억을 넘겨받는 건 불가능하지만 대략적인 잔상은 넘겨받을 수 있다·
비율이 보아온 비혼진마공 염마비전의 시식비례본 안혼진결 등의 마공들·
그 마공들을 ‘본 적만’ 있던 비율의 기억 속 장면들·
그 ‘장면’들과 귀선규마결을 바탕으로 마공들을 통합한다·
통합은 빨랐다·
은람마공과 염마비전의를 제외한 다른 마공들이 전부 합쳐진 구결들이 뇌리에서 떠돌았다·
비혼진마공 시식비례본 등의 흡수계 공법·
자양광마공 등의 방출계 공법·
안혼진결 등의 의식공법·
기타 등등이 귀선규마결을 기반으로 비율의 기억 속 장면들로 인해 내 안에서 구현되고 통합되어 새로이 통합된다·
눈앞의 강민희가 내뿜는 모든 귀왕들을 잡아먹어 즉시 힘으로 바꿀 수 있다·
원하기만 하면 상대의 전력을 깎아 내 경지를 올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길이 옳은가·’
나는 문득 길에 들어가기 전 내가 과연 이 길에 들어서는 것이 옳은지 생각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아니지····’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역시····’
남을 희생시키기 싫다·
강민희의 것을 함부로 뺏는 것도·
한 번 죽은 귀왕들을 다시 잡아먹는 것도·
나 자신이 강해지고 나 자신이 높아져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도(道)이다·
자신을 깎고 깎아 아침에 얻어 저녁에 죽을 각오로 임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 도이다·
그런데 어찌 남을 희생시켜 얻은 것이 나의 힘이 될 수 있겠는가·
남의 것은 남의 것일 뿐·
그것을 빼앗는다고 내 것이 될 순 없다·
‘그래·’
찌이이이잉―
나는 기묘성심전을 사용해 의식 영역을 뻗었다·
그리고 반경 1천 리 내에 사는 한음택의 생명체들에게 의식으로 신호를 보냈다·
두두두두두두!
내 의식 신호를 받은 한음택의 생령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사실 강민희가 힘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대부분의 생령들은 도망쳤고 남아 있는 생령들은 최소 결단기 이상의 생령들로 강민희의 힘의 여파 정도는 견딜 수 있는 녀석들이었다·
놈들은 각자 비둔술이나 활공술 등을 써 빠르게 천 리를 넘어 도망쳤고 나는 방금 만들어 낸 공법을 사용했다·
‘그렇다면 남의 것을 탐하지 말자·’
타자의 것은 뺏지 않겠다·
대신 빌릴 것이다·
그리고 빌리는 대상은 역시 타자가 아닌 천지자연·
주인 없는 이 세상의 것이다·
쿠구구구구구구!
반경 1천 리에 달하는 주변 한음택의 대지·
추운 와중에도 꿋꿋하게 자라나는 식물들이 있던 한음택의 대지가 말라붙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마공으로 인해 한음택의 생명력이 말라 버리기 시작했다·
마공·
대막사해성(大漠死海成)·
버썩―
반경 1천 리의 한음택이 일순간 버썩 말라붙으며 사막으로 변했다·
동시에 한음택에 흐르던 생명력과 기운은 전부 내 안쪽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누구도 희생시키지 않는 마공이 내 안에서 내 힘이 되어 주었다·
나는 동시에 ‘길’을 바라보며 힘을 얻었지만 동시에 ‘길’에는 진입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체·’
나는 차가운 머리를 식히며 본체에게 의지를 전달했다·
‘연위에게 명귀계의 비술을 전해 받아라· 지금부터 강민희를 치료한다·’
연위가 헌원을 치료했다는 비술·
얼마 후 본체 쪽에서는 연위에게 비술의 구결을 전해 들어 내게 전송했다·
봉령휴(封靈觿)의 술법·
찢어진 상대의 정신에 강제로 쐐기를 박아 봉합하는 법술의 이름이었다·
‘본체 봉령휴의 술을 완성해서 내게 넘겨라· 나는 천인기에 도전한 후 술을 넘겨받아 강민희를 치료한다·’
나는 본체에게 의견을 전달한 후 대막사해성으로 끌어모은 기운을 법력으로 전환시키며 천인기에 이를 준비를 했다·
피잉―
강민희의 의념의 선이 나를 노렸다·
나는 빠르게 산군월악비를 사용해 그녀의 공격을 피했다·
‘역시 충분히 일류를 넘어선 실력이다·’
그녀는 예전부터 그랬다·
문득 나는 강민희에 대한 어떠한 감정이 솟아오르는 걸 느꼈다·
* * *
‘일류라····’
나는 서립의 감상을 전달받으며 코웃음을 쳤다·
‘귀왕화된 영향인지 서립이 너무 감상적이 됐군·’
과민 반응이다·
강민희가 일류였다고?
절대 아니다·
철컹 철컹!
연위에게 전달받은 봉령휴의 술을 준비하며 나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손아귀 사이로 반투명한 은빛 쇠사슬이 만들어졌다·
마치 오행혈주번과 같이 봉령휴의 술은 반쯤은 혼의 계위에 걸쳐 있는 법술이었다·
때문에 내가 여기서 완성하고 의식을 통해 서립에게 전달해도 되었다·
하지만 나는 서립에 대한 냉소는 서립에게 전달시키지 않았다·
‘감상에 빠진 서립이 강민희를 과대평가하고 있군·’
쓸모없는 감정에 기억이 왜곡되고 있다·
강민희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그녀는 지구 시절에 이류 무인에 턱걸이한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저 서립이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평가를 상향하는 것뿐이었다·
‘봉령휴를 넘기겠다 서립· 냉정해져라· 네 스스로도 지금 문제가 생기는 것 같지 않나·’
* * *
‘문제가 있다고? 내게?’
확실히 강민희의 실력에 대한 건 내 추억에 보정이 들어가서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본체가 필요 이상으로 냉정해졌다고 생각했다·
마치 머리에 얼음장이 들어선 것 같았다·
‘···알겠다· 유의하지·’
나는 수상쩍음을 인지하며 본체에게서 봉령휴를 넘겨받았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강민희의 의념을 피하며 눈을 반개했다·
츠츠츠츠츠―
그러나 나는 내 의식 영역으로 주변을 덮었다·
무인의 의식 영역과 수도자의 의식 영역은 차이점이 있다·
수도자의 영역은 투명하다·
맑기는 하지만 그것으론 감지만이 가능할 뿐 다른 것은 할 수 없다·
하지만 무인의 영역은 총천연색이다·
모든 색상을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붉은 선과 푸른 선이 발전한 영역·
‘적색 영역’과 ‘청색 영역’이 전투에서는 중요한 영역이었다·
붉은 영역은 그 일대 전체에서 상대가 공격해올 모든 경로를 예측한 선이 겹쳐지고 겹쳐져 발생하는 영역·
그리고 푸른 영역은 내가 공격할 수 있는 모든 경로가 겹쳐지고 겹쳐져 발생한 영역이다·
적색과 청색·
그리고 이 적색과 청색은 내가 알고 있는 두 가지 의념의 색과 가장 닮아 있었다·
칠정의 분노와 슬픔·
분노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상대가 내게 보내는 적의(敵意)는 분노와 가장 닮아 있으니까·
그렇다면 검푸른 색의 청색과 내게 최적화된 경로의 청색은 어떤 의미로 닮았는가·
‘호(護)·’
슬픔의 본질은 자기 보호이다·
그렇기에 자신에게서 뻗어 가는 의념은 자신을 보호하고 수호하기에 최적화된 청색의 의념으로 표현되는 것이었다·
어째서인지 나는 문득 태열전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녀에게 칠화왕에 대해 대담을 나누던 중 그녀는 유리호천왕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유리(瑠璃: 청금석)로 된 갑주를 입으신 유리호천왕은 인간을 고통과 괴로움에서 보호하고 수호하시는 왕이십니다· 그분이 계시기에 인간이란 존재는 상처를 입고 쓰러질지언정 그분의 보호 아래 언젠가 다시 상처를 딛고 일어나게 되지요· 그렇기에 그분은 호법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어째서일까·
나는 시퍼런 귀화를 입은 강민희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한껏 날을 세운 것처럼 연약해 보였다·
마치 유리처럼·
그녀의 의식 영역은 전체가 붉은빛·
그러나 달리 말해 보면 그녀의 시점에서 저 붉은빛은 전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푸른빛이었다·
나는 저 푸른 갑주를 뚫고 그녀의 영혼에 봉령휴를 박아넣어야 했다·
뚫을 수 있을까·
아니 뚫어도 되는 것인가·
나는 그 고민 아래에서 귀조의 폭풍을 뚫고 한 걸음 한 걸음 강민희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 경지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키이이이잉―
원유의 몸에 박아 넣은 혈영이 내 영향을 받아 점차 내외합일을 이루기 시작했다·
천인합일!
춘(春) 지선이립(志仙而立)·
천인기의 구결이 빠르게 뇌리를 스쳤다·
동시에 내 원영은 점차 거대한 귀왕으로 변해 갔다·
그와 함께 원유의 혈체·
서립의 몸이 계위를 넘어 점차 귀물화되는 것이 느껴졌다·
점차 피부가 반투명해지고 곳곳에 푸른 귀화가 감돌았다·
대막사해성으로 끌어모은 막대한 천지자연의 힘이 내 깨달음에 의해 변화한다·
천인 초기 경지·
하(夏) 불혹천명(不惑天命)·
천인 중기 경지·
추동(秋冬) 천순종심(天順從心)·
천인 후기 경지!
나는 막대한 천지영기를 단 한 올도 놓치지 않고 체내에서 소화했다·
그럴수록 나는 점차 완연한 귀물로 변화했고 강민희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점차 내 덩치가 커지며 곳곳에서 마치 서 장군처럼 귀기로 이뤄진 두개골들이 올라와 머리를 이뤘다·
나는 열여덟 개의 머리를 가진 귀왕이 되어 강민희의 앞에 섰다·
부웅!
그녀의 귀조가 허공을 찢으며 나를 노렸다·
나는 봉령휴를 잡으며 귀화가 타오르는 눈을 반개했다·
[어쩌면 강민희·]
천인 대원만·
천원(天圓) 고종명(考終命)·
[우리가 좋아했던 건 그저 장난만은 아니었을지도 몰라·]
한 걸음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그녀의 의념이·
그리고 나 자신의 의념이 새어 나왔다·
나는 스스로를 관조하며 강민희가 껄끄러웠던 이유를 더더욱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만큼이나 그녀를 당당하게 마주했던 게 대체 얼마 만인가·
어쩌면 우리는 그 당시 생각외로 진심으로 사귀었던 것 같다·
어쩌면 진심이었기에 그동안 껄끄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진심이었기에 오히려 서로 장난 취급을 해 왔던 건지도 모른다·
‘네가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지 전부 알 수는 없다·’
그렇지만 껄끄러운 관계 이전에·
악우로서 이 정도 위로는 해 줄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진심을 담아 봉령휴를 그녀에게 박아 넣었다·
그녀의 귀조가 내 몸을 뚫어 버릴 것을 예상하고 넣은 일격·
하지만 놀랍게도 봉령휴는 그녀의 푸른 영역 안쪽을 그대로 관통해서 들어갔다·
그녀의 무공 경지가 부족해서인지 그것이 아니면 그녀가 나를 허락한 것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분명히·
닿았다·
콰드드득!
경지 차가 많이 난다면 연위와 헌원처럼 한쪽이 자신의 경지를 깎아 내야 가능한 정신 봉합·
하지만 천인기 대원만과 사축기 초기다·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았다·
그때였다·
위이이잉―
나는 푸른 의념들 사이로 언뜻 보이는 연분홍빛 의념을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맑은 정신으로 연분홍빛 의념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아····’
나는 이전에 그 아이들에게 선물을 받았었구나·
내가 혼인을 축복해 주었던 아이들이 눈앞을 스치며 동시에 위엄 있는 한 존재의 음성이 내 뇌리로 어떠한 구결을 집어넣었다·
지이이이잉―
그것은 천인기 대원만의 구결이었다·
단순히 고종명이 아닌 완전히 다른 구결·
‘이게 내가 그들을 축복해 준 대가로 받은 건가····’
그렇다면 어째서 지금까지는 받지 못했고·
어째서 서립의 몸을 쓴 지금에야 받은 것인가·
그것이 못내 궁금했다·
치이이이이―
어느새 나는 봉령휴가 강민희의 안쪽으로 들어가 그녀의 정신 일부를 봉합했다는 걸 눈치챘다·
어느새 우리는 귀물의 형상에서 다시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사막이 된 한음택의 중앙에서 우리는 아침을 맞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림자가 아니었구나·”
강민희는 잠시 나를 보며 침묵하더니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너는 서은현이라는 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