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녕하셨습니까 (3)
나는 탱화도에 그려진 용의 움직임을 다시 한번 훑어본 후 최상층에서 나왔다·
고궁에는 주로 수 속성 공법들이 많았고 그 중에서도 염해귀로옥(鹽海歸露玉)이라는 공법은 나조차도 가슴이 흔들릴 정도로 강력한 공법이었다·
하지만 익히는 데에는 바닷물을 마시거나 그도 아니면 물과 소금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있어야 했기에 지금 당장으로선 익힐 방도가 없어 그냥 저물도에 넣어 두기만 했다·
그 외에도 몇몇 수 속성 공법이 눈에 들어오긴 했지만 별로 눈에 띄는 건 없었다·
나는 고궁에서 나와 아까 눈여겨보았던 해란과를 따서 저장해 놓은 후 흑린어령문과 합류하기로 했던 인제단 영역으로 날듯이 뛰어갔다·
주변의 열기가 굉장히 뜨거웠기에 귀왕화하여 육신의 열기를 식히며 날아가야 했다·
인제단 영역 역시 해제단과 비슷하게 넓었으며 곳곳에 있는 가옥과 석조 건물에서 영력 파동이 흘러나오는 게 아직도 뭔가가 많은 듯했다·
흑린어령문과의 접선지에 도착하니 그들은 전부 챙길 만한 걸 챙겼는지 얌전히 기다리는 중이었다·
[곳곳에서 영력 파동이 보이던데 전부 챙기진 않은 모양이오?]
“하하 아무래도 지금 다들 챙겨온 저물도가 상당히 차 버려서 말입니다· 3층에 올라가서 원하던 것을 얻으려면 이제 자리를 비워 둬야 하니까 말이지요·”
[흐음 그런가· 알겠소· 그럼 이제 가 보도록 할까?]
“좋습니다·”
현귀는 빙긋 웃으며 우리를 인솔하여 나아갔다·
그리고 우리가 시뻘건 불길로 뒤덮인 어떤 샛길 같은 곳에 이르렀을 때였다·
“흐음····”
현귀가 샛길을 들여다보며 눈을 찌푸렸다·
나 역시 사람을 추적해 본 경험이 있었기에 왜 그러는지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이미 지나갔군· 자국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어·’
현귀는 콧잔등을 살짝 찌푸렸다·
“여러분 선객이 먼저 앞서가신 모양입니다· 저희도 서두르지요· 이 발자국이면 아마····”
[요족들이군·]
나는 제각각인 발자국들을 보며 말했다·
현귀도 고개를 끄덕였다·
“요족을 이끄는 교염은 혈교족 출신이고 혈교족은 피를 바쳐서 재염을 잠시 만족시켜 주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얼른 가시지요·”
우리는 점차 걸음을 서둘렀다·
얼마 후 저 앞쪽에 진득한 혈무가 보이기 시작했다·
‘혈제인가····’
나는 문득 눈을 찌푸렸다·
원립으로 인해서 혈제 등 인신 공양류의 제사는 싫어하는 걸 넘어서 혐오하는 나였다·
조금 더 혈무 방향으로 들어가자 아까 만났던 교염과 요족 무리가 보였다·
‘흠··· 요족들은 숫자가 그대로고··· 그렇다면····’
자세히 보자 요족들을 데리고 있는 교염은 본인들의 피를 조금씩 나눠 뽑아 혈제로 바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걸 본 현귀는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이런 젠장 선배님 여러분! 저 요족 놈들이 이제 보니 재염을 길들이려 하고 있습니다! 놈들이 재염을 부리게 된다면 골치 아파지니 지금 뒤를 쳐야 합니다!”
현귀는 동시에 흑룡 형태의 기운을 모아 혈무 안쪽으로 날렸다·
쿠과과과광!
폭음이 울리며 안쪽에서 교염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 빌어먹을 인족 놈들··· 다 들었다· 그래 네놈들 인족에게 기습 공격을 당하는 건 한두 번이 아니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마· 하지만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재염을 길들여서 너희를 어찌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3층으로 올라가고 다시 내려올 때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것이다· 그러니 불필요한 싸움은 그만두도록 하는 게 어떻느냐?]
‘음 우리를 해치려는 게 아니라는 보장만 있다면 굳이 싸울 필요는 없긴 하····’
“닥쳐라 더러운 지족 놈· 우리 인족은 네놈들의 헛소리 따위는 듣지 않는다!”
“이 어르신에게 뭐라고 지껄이는 게야! 죽어라 쓰레기 같은 지족 따위들!”
“감히 대 인간족의 앞길을 막다니 오랜만에 지족 고기 맛 좀 보겠구나!”
교염의 말을 들은 흑린어령문 수사들은 하나같이 그를 향해 야유하며 투기를 뿜기 시작했고 교염은 혈무 안쪽에서 노하는 듯하더니 외쳤다·
[오만하고 독선적인 인족 놈들 같으니· 그렇다면 재염의 힘을 보여 주마···! 아무리 쾌락 살인마인 네놈이라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음?]
교염은 누군가에게 쾌락 살인마라며 조롱을 해 댔다·
‘흑린어령문 수사 중에 그런 녀석이 있는 건가?’
정말 방심할 수 없는 녀석들이다·
만약 쾌락 살인의 경향이 심한 녀석이라면 여기서 제거를 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화르르르륵!
그리고 혈무 안쪽에서 핏빛을 머금은 흑염(黑炎)이 이쪽으로 튀어나왔다·
거대한 흑염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불의 파도가 되어 우리를 덮쳐 왔다·
[저게 재염인가?]
나는 흑염 안쪽에 깃든 고통과 원한을 어렴풋이 느끼며 귀화를 뿜어냈다·
“맞습니다· 저주로 이뤄진 불꽃··· 그게 녀석의 무서운 점이지요· 오롯이 저주도 아니고 오롯이 불꽃도 아니기에 제압하려면 반드시 저주술사와 화염술사 그리고 음기가 필요합니다·”
쿠구구구구!
흑린어령문 수사들이 앞으로 나서 음기로 이뤄진 벽을 세웠다·
나는 재염을 관찰하며 탄성을 흘렸다·
그리고 동시에 재염의 뒤쪽에서 피로 재염을 조종하는 요족 무리도 눈에 담았다·
‘재밌군· 피를 모아 재염에게 먹여 조종하는 건가· 피 속에 든 영기가 핵심이겠어·’
나는 그 조작법에서 어쩐지 원유의 혈체를 오혜서에게 뺏겼던 것과 비슷한 느낌을 느꼈기에 유심히 그를 관찰했다·
태극으로 혈(血)을 손에 넣어 육신을 통제한다·
잠시 그들의 술법을 관찰하던 나는 왼손을 뻗었다·
[잘 보았다·]
화르르륵!
36개의 눈에서 귀화가 뿜어졌다·
[하면 나도 친히 답례를 해야겠지·]
나는 왼손을 들어 올리며 읊조렸다·
[음혼(陰魂)·]
쿠구구구구!
내 칠규(七竅)에서 저주문이 흘러나왔다·
칠규라고는 했지만 두개골인 얼굴들의 경우 코뼈가 없었기에 코가 합쳐져 6개의 구멍인 상태·
그리하여 총 108개의 구멍으로 저주문들이 뿜어져 나온다·
내 저주는 축기기 당시 이미 108개니 몇천 개니 하는 개수의 한계 따위는 이미 넘어섰다·
그때부터 사실상 내 저주는 개수보다는 [밀도]와 [범위]로 판단해야 할 정도였다·
축기기 당시에는 반경 3장을 꽉 채울 정도의 저주문을·
결단기 당시에는 반경 300장을 채울 정도의 저주문을·
원영기 당시에는 반경 30리를 꽉 채울 정도의 저주문을·
천인기 때는 반경 3천 리를 채울 정도의 저주문을 만들 수 있었다·
그렇다면 사축기에 이른 지금은 어떤가·
[후으으으―]
숨결을 내뱉는다·
지금 상황에서 적인 요족 무리들을 제외하고 같은 편인 흑린어령문 수사들조차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심지어 항상 날 은연중에 깔보고 무시하던 현귀마저도 이 순간만큼은 그런 기색이 사라지고 흥미롭다는 기색이 생겨날 정도였다·
[귀주(鬼呪)·]
쏴아아아―
증룡진인의 저물도 2층·
도거층 전체가 시커멓게 물들기 시작했다·
* * *
인족 요족 그리고 장목족과 비익족을 제한 나머지 몇몇 천족 무리들·
한령족 영린족 엽타족 수사들은 그때에서야 수류층의 끝자락·
도거층으로의 입구에 도착한 상태였다·
“후우 화시들 체내의 마탁액 말고는 건질 게 없군요·”
“저희 중에는 마수가 없어서 나중에 마도공법을 익힌 수사에게 파는 게 가장 낫겠군요·”
“뭐 마탁액이 나쁜 건 아니다만··· 화시와 목숨을 걸고 싸워 얻은 대가라기엔 너무 형편없긴 하외다·”
“휴우 화시들을 제하면 나머지는 인족 요족 그리고 사축기 선배분들이 전부 가져가셔서 1층에선 뭘 건지기도 힘들군····”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도원도인 수류층이니 그럴 수 있지 않겠소? 다들 힘냅시다· 진짜 저물도는 도거층이외다· 굳이 3층은 안 가도 2층에서 적당한 법보나 공법서 영약만 챙겨도 남는 장사요·”
“그렇긴 하지··· 1층은 애초에 물건을 두는 층이 아니니· 그럼 우선 2층으로 가 봅시다들!”
10여 명의 천족 수사들 모임은 희희낙락하며 도거층으로 올라가려 했다·
그때였다·
치이이이―
“···?”
“흐 흐이익! 저 저게 뭐야···!”
10여 명의 수사들의 얼굴에 경악과 공포 절망이 깃들었다·
“도 도대체 2층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란 말이냐!!!”
2층 도거층·
그곳이 있는 위쪽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양의 저주가 폭포처럼 아래로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공포에 질려 도망쳐 버렸다·
* * *
세상이 암흑천지로 물들었다·
내 앞에서 위세를 드러내던 재염 역시 그 자리에 얼어 버렸다·
나는 재염을 파악했다·
아마 이 녀석을 만들어 낸 존재의 수준을 생각하면 처음 만들어질 당시에는 이 정도보다 훨씬 강했을 터였다·
그러면 아무리 나라도 이 녀석을 상대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을 흘러 독기가 약해졌군·’
수십만 년의 세월이 지나며 한참 약해진 것이 지금의 재염이다·
나는 재염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재염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거리더니 이내 내 손이 닿자 그대로 그 자리에서 벌벌 떨기 시작했다·
치이이이―
나는 천지사방에 흩뿌렸던 저주문을 일 점으로 귀일시키기 시작했다·
콰르르륵!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저주문은 지난번 나와 다른 저주술사들이 흑린어령문에서 만들었던 저주문과 비슷한 수준의 독기를 풍기고 있었다·
원영기 당시에는 여럿과 힘을 합쳐서 그런 걸 만들었지만 사축기가 된 지금은 혼자의 힘으로도 그런 것쯤은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재염은 내가 내뿜는 저주문의 독기에 밀려 완전히 쪼그라들었고 해일처럼 거대했던 재염의 크기는 주먹보다도 작게 줄어들었다·
녀석은 요족들의 피를 먹어서인지 도망치지도 다른 행동을 취하지도 못하고 옴짝달싹 못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구경하고 있던 현귀가 소리쳤다·
“지금입니다 꺼뜨리십시오!”
그제야 흑린어령문 수사들은 퍼뜩 정신을 차린 듯 각자의 법술을 날려 재염을 꺼뜨려 버렸다·
치이이익―
하지만 사실 재염은 내 저주문의 기세에 너무 쪼그라들어 있어서 굳이 법술도 필요 없었고 그냥 발로 밟아서 꺼 버렸어도 될 정도였기에 그들이 쓴 수계 법술에 큰 의미는 없었다·
현귀가 그들에게 눈짓을 보내며 말했다·
“어떻습니까 제 말대로 하길 잘 했지 않습니까?”
그의 말에 흑린어령문 수사들은 안도의 기색이 감돌았다·
“역시 현귀 도우로군·”
“믿고 있었네· 후후····”
겉으로만 보면 나를 영입한 것을 자축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들이 풍기는 의념의 찜찜함을 보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내 시선이 요족들을 향했다·
[호오 빠르군·]
놀랍게도 교염은 순식간에 3층으로 도망쳐 버린 상태였다·
하기야 방금 전의 그 저주를 보고 도망치지 않았다면 패기 있는 장부거나 미치광이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른 요족들은 그제야 슬슬 교염이 도망친 것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천인기 요족들은 그 사실에 얼굴이 하얘지더니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36개의 눈에서 저주문의 잔향을 풀풀 풍기며 말했다·
[이리 와라· 모두 잠시 물을 것이 있다· 궁금한 것을 해결하면 모두 편히 쉬게 해 줄 테니 걱정은 말거라·]
내가 미치광이 쾌락 살인마도 아니고 전의를 잃은 이들을 죽일 이유는 없었기 때문에 최대한 친절한 말투로 그들에게 제안했다·
3층까지 올라와 우리 측 목표를 방해하지만 않으면 2층에서 편히 쉬며 있게 해 줄 요량이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요족들은 공포에 질려 식겁하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흐아아아아!”
“어르신 살려 주십시오!”
“젠장 난 여기서 빠져나가야겠어!”
“도망쳐! 노괴에게 잡히면 죽는다아아!!!”
그들은 하나같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팔방으로 혼비백산했다·
하나같이 본체로 변해 미친 듯이 도망치는 그들을 보며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꼈다·
[···안 죽일 건데····]
아무래도 하나같이 각박하게 살아온 탓에 내가 죽일 거라고 오해한 듯했다·
하기야 인족의 인성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다·
아니면 흑린어령문 쪽에 미치광이 쾌락 살인마라고 불리는 녀석이 있기 때문에 그 녀석을 두려워한 것일 수도 있었다·
‘이럴 땐 또 도움이 안 되는군· 흑린어령문 놈들····’
괜히 악명 높은 놈을 저물도행에 데려와서 시선이나 끌리잖는가?
그러나 여기서 녀석들을 놓아주기에는 그들이 재염에게 썼던 제어술에 대해 물어야 할 게 있었다·
‘원유의 몸을 완전히 서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할 방도를 찾을 수도 있으니 꼭 필요하다·’
[이놈들 게 섰거라···!]
오오오오오―
뚝 뚜두둑 뚜두두둑!
나는 공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내 죽음의 기운에 의해 주변이 사막화되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모래 먼지가 날린다·
대막사해성·
단면개산(斷面開散)·
쿠구구구구!
내 어깨 위에 붙어 있던 ‘죽음의 형상’들이 내 몸에서 뽑혀 나오기 시작했다·
18회차를 살아온 나 자신의 죽음·
그 형상들····
그 형상들은 내 몸에서 뽑혀 나오자마자 각자가 가진 귀기로 육신을 형성했다·
한 명 한 명이 귀선규마결을 극성까지 익힌 귀왕이나 다름없는 분신들이 18기나 생겨났다·
그 대가로 나는 목 위쪽이 없어졌지만 상관은 없었다·
머리가 없어진 건 어차피 한두 번도 아니니까·
[놈들을 잡아 와라·]
오오오―
오오―
오오오오―
한 명 한 명이 천인기급 귀왕 수준의 죽음의 형상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요족들을 향해 날아갔다·
각각이 귀선규마결과 대막사해성은 물론이고 육극음뢰신 음혼귀주문을 전부 사용할 수 있으며 무공도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으니 잡아 오는 게 어렵진 않을 터였다·
소름 끼치는 귀곡성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 * *
두두두두두―
마족(馬族)의 분파인 쾌마족 출신의 요수·
주마는 본체로 변해 네 발로 미친 듯이 달려나갔다·
‘제발 나를 쫓아오지 마라! 제발! 천지신명이시여 제발 저를 보우하소서!’
그의 머릿속에는 미치광이 사축기 노괴가 그를 쫓아오지 않을까에 대한 걱정밖에 없었다·
한눈에 봐도 정신 나간 존재인 걸 알고는 있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어깨에 ‘업적’을 자랑하듯이 걸어 놓은 저 악랄한 노괴와는 절대 마주치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교염 그 빌어먹을 상어 대가리 놈· 그 멍청한 오기 때문에 이게 다 뭐란 말이냐!’
하지만 전부 틀어졌다·
노괴는 이제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그들을 잡아 살육하기 시작할 터였다·
어쩌면 정신병자 노괴 치고는 많이 참아온 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주마는 그래도 2천 년을 살아오며 저런 미치광이를 한둘은 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욕정’을 쉬이 참지 못했고 하루에 한 번 걸러 그 더러운 ‘욕정’을 쏟아내고는 했다·
그리고 그들이 어쩌다가 ‘욕정’을 참고 참았던 ‘욕정’이 터져 나올 때 그 강도는 평소보다 훨씬 강했다·
지금까지 얌전히 있던 노괴였다·
하지만 이제 참을 필요가 없으니 노괴의 손에 걸리는 이는 그의 엽기적인 ‘취미’의 일환이 될 터였다·
주마는 교염을 미친 듯이 욕하며 달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마는 상당히 달리기가 빠른 편이었다·
활공술이나 비둔술 등 허공을 날아다니는 게 금제로 불가능한 저물도 내부에서 주마의 속도는 가장 빠를 터였다·
아마 사축기 노괴가 작정하고 쫓아오는 게 아니라면 충분히 벗어날 수 있을 듯했다·
그때였다·
펑 퍼벙 파앙!
주마는 뒤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걸 눈치챘다·
오싹!
그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달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주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어떻게!?”
미치광이 노괴의 어깨에 붙어 있던 노괴의 희생자·
노괴가 부리는 귀물로 추정되는 것이 허공을 밟으며 그를 날아서 쫓아오고 있었다·
“비 비둔술도 활공술도 인력을 이용한 비행도 ‘금지’되어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날아오는 거야아아아!!!”
[오오오오오―]
노괴의 귀물은 듣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귀곡성을 내뱉으며 주마를 향해 날아왔다·
주마는 전신을 끝없이 강화시키며 더더욱 달렸다·
어느 순간 거리가 벌어지는 듯했으나 주마는 다시 뒤를 돌아보고 눈을 의심했다·
우우웅―
귀물이 손 위쪽으로 둥그런 환(丸) 같은 것을 띄우는 듯했다·
그리고 그 환을 자신에게 흡수한 귀물은 갑자기 열 배 이상 속도가 빨라지며 그와 점차 거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잡히면 죽는다! 잡히면 죽는다 잡히면죽는다잡히면죽는다잡히면죽는다잡히면····’
주마의 숨이 거칠어졌다·
하지만 뒤쪽의 귀물의 전신에 회로 같은 게 새겨지며 점차 그와 귀물의 격차가 좁아지고 있었다·
“히 히이익···! 오 오지 마! 오지 마아아아!”
‘아 안 돼···!’
그가 공포에 질려 외쳤다·
주마의 동공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무서워서··· 힘이 빠진다···!’
주마는 자신의 다리가 풀리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됐다!
더 빨리 달려야 했다!
‘생명을 불태워서라도···!’
그러나 주마는 똑똑히 들었다·
뒤쪽에서 수결을 맺으며 주언을 내뱉는 귀물의 목소리를·
“아 아아····”
귀물이 저주를 쓰려 한다·
방금 보았던 것과 같은 것을···!
[음혼·]
“흐아아아아아아!!!”
그리고 도망치던 요수들 중 가장 멀리 가장 빨리 가장 오래 도망치는 데에 성공했던 주마는 그렇게 잡혔다·
* * *
촤아아아아―
2층에서 3층으로 향하는 사슬들을 헤엄쳐 올라가며 교염은 이를 악물었다·
아마 그가 내팽개친 요족들은 잔인하고 악랄한 노괴의 손에 도륙당했을 터였다·
어쩌면 그 역겨운 취미를 만족시키기 위해 산 채로 머리통이 뽑혀 보관될지도 몰랐다·
혈교족은 인족에 비견될 만큼 냉혈한이고 잔인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이었다·
교염 역시 그만의 양심이 도덕이 있었다·
‘미안하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 대신 잔인하게 희생당했을 요족들에 대한 죄책감이 올라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교염은 눈을 충혈시키며 이를 꽉 악물었다·
“아내를 살려야 해···! 그를 위해서는 누구라도 희생시킬 것이다···! 반드시!”
이미 양심도 도덕도 의리도 모두 버리기로 맹세했다·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도 상관없다!
구할 수만 있다면!
촤아아악!
3층 봉양층에 올라온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1층과 2층의 거리는 꽤 길었지만 2층과 3층의 거리는 그 절반이 될까 말까였다·
듣기로는 본래 증룡진인의 저물도에는 3개의 층밖에 없었다고 했다·
1층 수류 2층 도거 3층 치제·
그러나 언제부턴가 증룡진인이 3층에는 올라가지 않고 2층과 3층 사이에 층을 하나 더 만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3층 치제층은 4층이 되었고 도거층과 치제층 사이에 생겨난 새로운 층 봉양층이 3층이 되었다·
1층이 도원도 2층이 저물도라면·
3층은 일종의 ‘제단’이었다·
이 이계는 증룡진인의 ‘저물도’라고도 불리지만 증룡진인은 그 밖에도 다양한 용도로 사용했다고 했고 증룡진인이 모시는 ‘어떤 존재’에게 제의를 올리는 용도로도 사용했다 알려져 있었다·
촤릉 촤르르릉!
1층과 2층을 연결하고 2층과 3층을 연결하는 ‘불타는 물의 사슬’이 사방에 늘어져 있었다·
이 사슬들의 종착지는 봉양층이었다·
4층인 치제층은 특별한 방식으로만 진입하거나 아니면 합체기만이 진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저물도 안에는 합체기 수사의 진입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합체기 태수는 진입할 수 없어 4층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교염은 뒤쪽에서 미치광이 노괴가 쫓아올까 두려워 서둘러 봉양층의 중앙으로 달려갔다·
봉양층은 아래의 1 2층에 비하면 그리 넓은 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여타의 1 2층과 달리 봉양층은 그렇게 뜨겁지도 않았다·
오히려 봉양층엔 수기가 가득했기에 바다 요족인 교염은 더더욱 생기가 돋아나는 듯했다·
‘하지만 생기가 돋아나는 건 귀도공법을 익힌 노괴도 마찬가지겠지·’
인족에서 귀도공법으로 유명한 것은 흑색귀골곡이었다·
노괴는 흑색귀골곡의 흑포를 입고 있었고 흑색귀골곡은 섭명함을 타고 곳곳을 떠돌아다니며 광한계의 바다나 심해 등에 가서 패악질을 부리는 종문으로 꽤 유명했다·
흑색귀골곡은 심해의 음기를 받아들여 힘을 강화하고는 했으니 그에게 유리할 것은 하나도 없었다·
‘빨리 천련과를 얻고 제단을 통해 나가서 도망치는 게 상책이다!’
3층 봉양층의 구조는 다음과 같았다·
중앙에 제단이 있었고 그 사방(四方)에 각각 명귀계 자금계 진마계 광한계를 상징한다는 탱화도가 그려져 있었다·
탱화도 아래로는 각각 아래층과 이어지는 사슬이 연결되어 있었다·
교염이 올라온 곳은 명귀계 방향의 탱화도 아래였다·
명귀계 방향의 탱화도는 서쪽·
진마계는 북쪽 자금계는 남쪽 광한계는 동쪽이었다·
그는 동쪽으로 달렸다·
증룡진인 생전에 이곳은 제단이었으나 증룡진인이 진마계의 어떤 존재와 싸울 당시·
그는 진마계의 존재의 힘을 봉하기 위해 진마계 존재가 다루던 힘 중 업화(業火)라는 권능을 빼앗아 봉양층에 본인이 키우던 멀구슬나무 아래로 봉인했다고 전해졌다·
탁탁탁탁탁―
광한계 방향 탱화로 달려간 교염은 마침내 저 멀리 거대한 나무가 보이는 것을 인지하였다·
멀구슬나무였다·
멀구슬나무는 커다란 연못의 중앙에 있는 작은 섬 위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 있었으며 멀구슬나무 뒤쪽으로는 거의 절벽만 한 크기의 탱화도가 걸려 있었다·
광한계를 상징하는 탱화도였다·
그러나 교염은 탱화도에는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탱화도의 기질을 제외하면 교염의 눈에는 탱화도 안쪽의 그림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사방의 탱화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탱화가 봉인되었다 했던가? 아무튼 그랬던 것 같군· 뭐 탱화는 내 알 바가 아니다·’
연못 주변으로 다가가자 연못 주변을 와르르 둘러싼 장승들이 보였다·
장승들의 몸에는 무수히 많은 탱화도가 그려져 있었다·
장승들의 몸에 붙여진 탱화는 교염도 볼 수 있었지만 교염은 그것도 관심 없었다·
오직 멀구슬나무의 열매 천련과만 있으면 된다·
천련과만!
“헉···허억····”
교염은 아가미로 숨을 들이쉬며 마침내 연못 앞에 도달했다·
그리고 교염의 동공이 흔들렸다·
“···당신들····”
장목족의 사축기 중기 녹주·
비익족의 사축기 후기 백위익·
두 명의 천족 수도자가 어느새 도착하여 멀구슬나무의 열매인 천련과를 들고 있었다·
멀구슬나무야 광한계에서 볼 수 있는 수종 중 하나였다·
열매인 천련과 역시 자주 볼 수 있는 열매였고 약재로도 많이 쓰였다·
하지만 교염이 찾는 것은 그런 평범한 멀구슬나무가 아니었다·
‘진정한’ 멀구슬나무·
오직 진선이 키워 낸다는 ‘진짜’ 멀구슬나무가 교염의 목표였고 그가 알기로 ‘진짜’ 진선들의 음식으로 유명한 멀구슬나무는 오직 증룡진인의 저물도에만 ‘진짜’ 멀구슬나무가 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진짜’ 멀구슬나무의 천련과였다·
그리고 ‘진짜’ 천련과의 경우 다른 멀구슬나무와 다르게 수천 년에 한 번 딱 하나의 열매만을 맺는다·
“···하하 녹 도우 백 도우·”
교염은 어색하게 웃었다·
얻어야 했다·
그의 아내가 다시 일어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영약이었다·
“실례지만 천련과는 제게 꼭 필요한 과실입니다· 혹 원하시는 법보나 단약이 있으시면 말하십시오· 제가 1 2층에서 전부 쓸어 왔습니다· 그도 아니면 영석도 두둑한 편이니 구매하고 싶군요· 혹 저와 교환하실 생각이 없으십니까?”
그러나 녹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음 미안하지만 교 수사· 그건 힘들 것 같구려· 이거 부끄럽지만 지난번 장목족의 광신도 한 명이 백운 성사를 숭배하신답시고 천련산의 영역에 함부로 들어가서 성사께서 노하셨소· 덕분에 장목족이 재액을 겪는 중이라 천련과를 바쳐 재액을 피해야 하니 이해해 주시오·”
교염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으음···!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하면··· 혹시 성사께 제물로 바친 후 제물 음복(飮福) 때에 즙이라도 나눠주실 순 없겠습니까? 즙이라도 세 방울 정도만 나눠주신다면 크게 보답하겠습니다· 단 세 방울이면 됩니다···!”
그러나 그 말에 백위익이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교 수사 한발 늦으셨소· 천련과의 즙 역시 우리 비익족에서 합체기 대원만 태수이신 백명 태수께서 구해오라고 하셨소· 천 년 후 쇄성기에 도전하실 때 쓰일 영액을 찾으셨고 그분께 가장 적합한 게 이 천련과의 즙이외다· 장목족에서 성사께 바치고 남은 즙은 이미 우리 비익족에 넘기기로 합의되었소이다·”
그 말에 교염이 목소리를 떨었다·
“백명 태수님의 명성은 익히 들었소· 하하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오· 미리 축하드리외다· 그건 그렇고 태수께서 가져오라 하신 영액이 ‘천련과 과즙’이라고 명확하게 명시된 거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솔직히 천련과만큼 그분께 효험이 좋은 영액은 손에 꼽지 않소?”
“하하 그중에서도 환홍화의 꿀이 사실 태수님께는 가장 좋지 않습니까? 제가 환홍화의 꿀이 있는 위치와 획득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위치를 알려 드릴 테니 과즙 세 방울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교염은 땀을 뻘뻘 흘리며 점점 더 목소리를 떨었다·
“으음··· 일단 대략적인 위치만이라도 알려 줄 수 있소?”
“난계 지역 훼말령에 있는 사령호에 있습니다· 획득 방법도 말씀드릴 테니 부디 과즙만이라도····”
그러나 교염의 말을 들은 백위익은 오히려 미간을 찌푸렸다·
“훼말령이면 심족 영역 바로 옆이잖소? 나더러 죽으러 가라는 게요? 비익족에서 부렸던 노예 종족이 한가득한 곳인데 그곳에 가면 분기탱천한 버러지 놈들이 바글바글하게 달려들겠지!”
“····”
“그런 건 정보라고 할 수 없소· 미안하지만 과즙은 우리로서도 중요한 일이니 넘겨줄 수 없소·”
교염은 뒤쪽을 흘긋거리며 목소리를 떨며 녹주를 바라보았다·
“녹 수사 정말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으음 미안하지만 백 수사와 이미 약조한 것인데 어찌하겠소·”
“원영에 대고 맹세까지 하신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저도 얼마든지 대가를 치를 수 있습니다!”
“원영에 한 맹세는 아니지만 백 수사와 본인은 여기까지 올라오며 동맹을 맺었소· 우리 천족은 후안무치하게 남의 뒤통수를 때리지 않소!”
“세 방울! 단 세 방울이면 됩니다!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이번에 저물도 탐사에서 얻은 기물과 영약을 전부 바치겠습니다!”
“지족의 영약과 법보를 내가 가져다가 어디에 쓰겠소·”
“천족에게 효험이 있는 것들도 많이 모았습니다!”
“흐흠····”
그러나 녹주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하지만 정말 어쩔 수 없소· 이건 우리 장목족을 위한 일이자 백운 성사의 진노를 풀기 위한 일이오· 대의(大意)란 말이외다· 광한계 전체에도 이게 더 좋을 거요· 어쩐 일인지는 모르지만 그만 탐욕을 물리고 물러나시오·”
“녹 수사도 그렇지만 나 역시 대의를 위함이오· 만약 백명 태수께서 천련과의 과즙의 도움으로 쇄성기 존자가 되시면 천지족의 힘이 늘어나 심족 놈들을 박멸할 수 있고 타 중경계에도 더더욱 강하게 나갈 수 있지 않소? 이 역시 광한계의 대의가 아니고 무엇이겠소·”
백위익은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왜 그리 천련과를 가져가려는지 이유나 말해 보시오· 만약 우리가 말하는 대의보다 중요하다면 세 방울쯤이야 드리도록 하겠소·”
그 말에 교염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부탁드리겠소· 내 아내가··· 죽을 위기에 달했소· 아내의 병은 천련과로밖에 치료할 수 없소· 대체할 게 없소···! 과즙 세 방울만 있으면 아내의 병을 치료할 약을 어떻게든 만들어 볼 시도라도 할 수 있소· 이 교 모가 이렇게 부탁드리오·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시오·”
교염의 말에 녹주와 백위익은 둘 다 고개를 저었다·
“어이가 없군· 지금 교 수사의 아내가 우리 장목족 전체에 닥친 재액보다 중하다는 것이오?”
“맞소· 우리 비익족의 흥망은 물론이고 존자의 탄생으로 인해 심족 세력을 눌러 버리고 노예들을 되찾을지도 모르며 혈음계에 대한 걱정을 아예 없애 버릴지도 모르는 중한 대의보다 본인의 사적인 일을 중히 여기다니! 부끄러운 줄 아시오!”
교염은 땅에 머리를 처박고 빌기 시작했다·
“세 방울· 세 방울만이면 됩니다· 부디 부탁드립니다· 땅을 기어 다니는 이 미천한 지족이 천족의 귀인들께 부디 간청합니다··· 제발····”
녹주와 백위익은 콧웃음을 쳤다·
백위익은 특히 노골적으로 교염을 무시하며 웃었다·
“웃기는 소리군· 광한계 전체 그리고 천지족에 득이 되는 대의에 훼방을 놓으려는 것 같은데 그대가 말하는 과즙 세 방울을 줬다가 세 방울의 영액이 부족해서 우리 태수께서 존자가 되지 못하면 그대가 책임질 게요?”
“····”
“아까부터 사사로운 마음으로 대의를 이해하지 못하다니· 그대는 혹시 심족 첩자가 아닌가?”
“흐하하하! 안 그래도 딱 우리 천족 이두가 노리는 천련과를 그대 아내가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게 이상하단 말이지· 아 어쩌면··· 그렇군· 이보시오 교 수사· 어쩌면 그대의 아내라는 자가 심족 첩자로서 당신에게 접근한 것일 수도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겠군·”
두 천족은 교염과 그의 아내를 보고 심족 첩자라고 놀리며 웃어 댔다·
사축기 중기인 녹주 사축기 후기인 백위익·
그리고 사축기 초기인 교염이었다·
숫자로도 경지로도 압도적인 우세였기에 이리 멸시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교염 역시 그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처지를 잘 이해해 왔다·
그렇기에 그는 스스로도 지금 상황에서 이성적으로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교염은 어째서인지 스스로의 입이 멋대로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쓰레기 같은 놈들····”
한 번도 이런 적은 없었다·
그는 냉혈하다는 소리를 듣는 혈교족의 일원이었으며 언제나 냉철하고 잔혹한 수사였다·
그러나 어째선지 교염은 자신의 입을 제어할 수 없었다·
“대체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잖아···· 세 방울··· 세 방울이면 된단 말이다···! 성사에게 바칠 제물은 천련과가 아니어도 되고 꼭 네놈이 바쳐야 하는 것도 아니잖냐· 그냥 네 자신의 공적치를 위해 천련과를 찾으러 온 거겠지···· 네놈들 장목족 새끼들이 병신같이 천련산에 마음대로 들어가서 재화가 덮친 게 한두 번이더냐···· 재화를 막으려 제물을 찾아다니는 걸 본 게 한두 번 같으냐···· 광한계 모두가 알고 있다· 너희는 굳이 천련과가 필요 없어···!”
교염의 눈이 백위익에게 향했다·
그의 눈은 잔뜩 충혈되어 있었다·
“네놈도 마찬가지야···· 천지족의 이득···? 천지족이 아니라 네놈들 비익족의 이득이겠지· 그리고 뭐 태수가 과즙 세 방울이 부족해서 존자가 못 된다고···? 애당초 과즙을 쪽쪽 빨아서 존자가 될 자였으면 한참도 전에 존자가 되셔서 명예롭게 다른 분들과 원정을 나갔겠지 왜 아직도 그러고 있다더냐···? 네놈 태수보다 한참은 어린 녹색 땅거지같이 생긴 심족 존자조차 훨씬 빠르게 태수가 되어 누구보다 강해졌거늘···· 과즙 탓이나 하는 놈이 무슨 존자가 된다는 게야· 애당초 과즙 세 방울로 경지에 못 오를 게 걱정된다면 그리고 정말 네가 종족에 충심이 있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심족들 앞마당에 가서 환홍화를 따 오는 게 맞지 않느냐···?”
백위익과 녹주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이 버러지 같은 놈이 뚫린 입이라고···!”
“교육이 조금 필요한 놈 같구나 지족들은 짐승에서 태어나서 애미애비가 누군지도 모른다더니 역시 그 말이 맞았어·”
녹주의 몸이 나무처럼 변하기 시작했고 백위익의 등에서 세 쌍의 날개가 돋아났다·
교염의 눈에서 혈광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조금 긁히니까 바로 쳐 죽이려 하는군· 오히려 네놈들이야말로 뚫린 입이라고 막말을 한 주제에 누구더러 뭐라 하느냐· 그래 막말이라고 했나? 끝까지 한번 막말을 해 보지· 네놈들 장목족이 말로는 광신도처럼 백운 성사를 숭배해서 천련산에 진입한다고 하지만 광한계 그 누가 진실을 모르겠느냐· 발정 난 장목족 몇몇이 백운 성사에게 수분(受粉)하고 싶어서 천련산에 몰래 들어가는 걸 누가 모르냐는 말이다· 자비로우신 성사께서 산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왜 재액까지 내리시겠냐· 네놈들이 항상 선을 넘기 때문에 재액을 내리는 게다· 그리고 과즙 세 방울로 존자에 못 오르는 백명 태수· 그 작자가 구현 4단계 시절이었던 심족 난쟁이 존자한테 두들겨 맞고 죽기 직전까지 몰려서 반 식물 상태가 되었다가 최근에야 가사 상태에서 깨어난 걸 누가 모른단 말이냐· 존자에 오르기 위해 천련과 즙을 가져간다고? 웃기지 마라 자는 중에 귓속말로 ‘함선멸천’이라고 속삭이면 오줌을 싸면서 발작하는 늙은이 요양을 위해서 과즙을 가져가려 한다는 걸 누가 모르냔 말이다!”
교염의 폭언에 녹주와 백위익의 얼굴이 시뻘겋게 부풀어 올랐다·
두 천족의 눈은 뒤집히기 일보 직전이었다·
교염에게서는 시뻘건 기운이 치솟아 올랐으며 녹주에게선 녹색의 기운이 백위익에게선 눈부신 새하얀 빛이 뿜어졌다·
그리고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저벅 저벅····
싸아아아아―
주변의 온도가 낮아지며 누군가가 걸어왔다·
18개의 머리를 가진 귀왕 서립이었다·
교염은 느낄 수 있었다·
서립에게서 느껴지는 저주의 잔향을·
그리고 피 냄새를·
아마 자신이 남겨 놓고 온 요족들 역시 잔인하게 살해했을 것이다·
‘올라오는 데에 시간이 걸린 것으로 보아 아마 ‘즐기고’ 온 거겠지·’
어쩌면 2층에는 지옥도가 펼쳐졌을지도 모른다·
그가 끌어모았던 요족들은 벌써 목이 뽑히고 가죽이 벗겨진 후 혼이 뽑혀 미치광이 노괴의 수집품이 되었을 터였다·
‘···미안하다·’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교염조차 그들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죄책감에 빠져 있을 시간은 없었다·
‘어쩌면··· 이 노괴도 이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지금 이 순간·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해야 한다·
교염은 동급 수사 17명을 격살해 어깨에 전시해 놓고 다니는 미치광이 노괴 서립에게 소리쳤다·
“노괴여 당신은 뭘 원하오!?”
서립이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는 천련과와 식죄탱화도만 있으면 된다만····]
“그래 잘 됐군· 당신까지 천련과를 원한다고? 나는 천련과 즙 세 방울만 있으면 되오!! 나와 합작합시다· 저 천족 두 명은 천련과 그 자체가 필요한 치들이니 그쪽과 협상할 수 없을 것이오·”
[흐음····]
서립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두 명의 천족 수사가 움찔거렸다·
교염은 혈광을 눈에서 폭사하며 말했다·
“일이 끝나고 나서 약간의 시간만 준다면 내 목도 내어 드려 그대와 하나가 되겠소! 당신의 그 욕정을 해방시켜 주시오! 눈앞의 천족들이라면 당신의 취향에도 적합할 터···! 동급 수사 17명을 죽이고 머리를 뽑아 어깨에 올려놓은 당신이라면 우리의 머리도 가지고 싶겠지? 특히 장목족과 비익족의 머리라면 구하기도 쉽지 않지 않소이까? 저들 영역에만 있는 특산품이란 말이요! 당신의 그 흉악한 강함을 이곳에서 해방시켜 주시오!!!”
교염은 각오를 다지며 외쳤다·
눈앞의 노괴는 완전히 자극했다·
이제 이 미치광이가 완전히 욕정해서 흥분 상태로 간악한 천족들의 머리통을 뽑는 일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희생시키더라도 천련과를 약을 구할 것이다·
그것이 교염의 각오였다·
[····]
그리고 서립의 침묵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