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인 (3)
명귀계의 귀물들은 하나같이 ‘산 자의 육신’을 갈망했다·
굳이 산 자의 육신이 아니더라도 강시의 몸이나 성벽귀처럼 혼체를 의탁할 수 있는 그릇이라면 오매불망하며 얻기를 바랐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귀물이었고 언제나 명계의 인력에 고통받고 있었으니까·
명계의 인력을 견디는 방법은 보통 크게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가장 단순하게 본인의 수행을 소모해서 버텨 내는 것· 최소 사축기 이상의 귀왕만 가능한 짓이었다·
둘째는 다른 귀물을 잡아 대신 제물로 바쳐 자신의 인력을 일시적으로 줄이는 것· 주로 원수를 진 원혼들끼리 행하거나 아니면 상당히 악랄한 악귀들이나 하는 마도의 제의였다· 그러나 이 제의는 한 번 치를 때마다 도리어 본인이 두른 죽음이 강해져 명계의 인력이 더욱더 강해지기에 마도라 해도 꺼리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셋째는 ‘몸’을 얻는 것이었다· 성벽귀의 성벽이나 강시의 썩어 가는 육신 그게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어느 정도 맞는 ‘그릇’을 구한다면 명계의 인력에서 상당히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산 자의 몸’은 대단히 가치가 높은 것으로 어지간히 강력한 죽음을 가진 귀왕이라도 ‘산 자의 몸’에 들어간다면 명계의 인력에서 어마어마하게 자유로워져 육신은 생기를 잃을지언정 생전과 다름없이 상당히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육신이 망자의 것이 되어 가기에 이것도 완전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명귀계에선 최고로 치는 수명 연장 도구가 바로 이 생자의 육신인 것이었다·
또한 산 자의 몸을 얻은 귀왕은 몸에 두른 ‘죽음’이 생자의 육신 안으로 숨어 쉽게 드러나지 않게 된다·
그런데 눈앞의 이 노괴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죽음’을 19개의 머리통으로 가공하고 다닌다·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명귀계의 깊은 곳에서 오래도록 수행을 하다 보면 저렇게 될 수도 있었고 까딱하다 하늘을 오래 쳐다봐서 마공을 익힌 개열기 진인에게 침식당한다면 저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개열기 진인의 꼭두각시라서 언제 폭주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상식선의 존재인 것이었다·
하지만 저런 미친 수준의 죽음을 몸에 두른 존재가 실은 생자의 육신을 지니고 있었다?
‘거 거기다 모습만 달라졌지 죽음의 기세는 하나도 죽지 않았잖아···!’
본인이 익힌 귀도공법의 기세로 인해 일부러 그 귀왕의 모습을 드러낸 게 아니라 ‘평시에 내뿜는 죽음의 기운’이 딱 그 정도였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짐작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경우·
첫째는 이 미치광이가 일부러 생자의 육신을 얻었다가 자살하기를 19번 반복해서 저런 미친 죽음을 손에 넣은 경우·
둘째는 다른 귀혼을 수십 수백만은 명계에 제물로 갈아 넣어 계속해서 자신의 죽음이 강해지는 걸 감수하고서라도 저 상태가 된 경우·
어느 쪽이든 상당한 미치광이이자 악귀였다·
‘아니지 첫 번째일 경우 저 정도로 죽음의 형상이 또렷하단 건 저 노괴가 치러 온 ‘자살 의식’이 일종의 공법이나 제사 같은 게 아니라 ‘진짜 죽는’ 정도의 자살이란 뜻이다· 그런 건 진선이나 사신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니···· 생자의 육신을 몇백 단위로 얻었다가 ‘자살 의식’을 행한 것일 터·’
망골은 흑류성의 성주가 된 이후로 처음 보는 미치광이 노괴를 상대하며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를 짐작할 수 없었다·
“대답해라 흑류성주· 왜 내 얼굴을 보고 다들 도망친 거지? 명귀계에서는 이 오히려 생자의 육신이 꺼려지는 건가? 아니면 이 얼굴이 뭔가 무서운 얼굴인 건가?”
망골은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며 질문하는 노괴를 보며 덜덜 떨던 도중 뭔가를 눈치챘다·
‘도대체 왜 내게 이런 질문을 하는 거지? 잠깐 이 노괴··· 진짜로 모르는 건가?’
망골의 머릿속에 퍼뜩 한 가지 가능성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군! 이 미치광이는 ‘자살 의식’ 같은 위험천만한 의식을 몇백 번이나 반복해 온 결과 기억이 날아간 게야! 귀공을 수련하다가 자아를 잃는 경우가 있다 들었는데 이 노귀 같은 경우를 일컫는 것이었군·’
그는 조심스럽게 노귀를 향해 질문했다·
“어 어르신· 혹 저를 제물로 공양하실 생각은 아니실지요···?”
“그럴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수백만 명을 제물로 공양해 댄 악귀는 아니란 뜻이다! 역시 내 가정이 맞았어!’
그는 살짝 가슴을 쓸어내리며 눈앞의 미치광이 치매 노귀·
서은현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 * *
“···그러니까····”
나는 상황을 이해했다·
결국 내가 생자의 육신을 드러낸 것이 더 문제였다는 의미였다·
19개의 머리가 달린 노괴까지는 공법의 유별성이나 진인의 위험성을 지닌 상식선의 괴물이다·
하지만 산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정도 죽음을 기본으로 뿜어내는 건 미치광이이거나 대량 제물을 즐겨 바치는 악귀이다·
‘어째 귀도공법하고만 얽히면 미치광이 노괴가 되는 거 같군·’
그리고 나는 이어서 어째서 명귀계 귀신들과 다른 계면 귀신들의 반응이 달랐는지도 알 수 있었다·
“명귀계는 늘 ‘윗분’들의 시선으로 인해 죽음의 기세가 항상 억눌려 있습니다· 그 덕에 명귀계의 귀물들은 보다 큰 귀신 앞에서도 조금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합니다만··· 대신 직관적으로 죽음을 판단하는 게 불가능해서 죽음의 형태나 크기 대략적으로 느껴지는 기세로만 상대를 판단해야 하지요· 그리고 노사께서는 솔직히··· 그 ‘대략적으로 파악되는 죽음의 기세’ 만으로도 상당히 위험하다고 느껴질 수 있어서····”
“····”
한마디로 내 존재 자체가 명귀계 귀신들에게는 치명적인 존재인 셈이었다·
‘···젠장· 차라리 19개의 머리를 단 그 모습으로 생활하는 게 더 낫단 말인가·’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눈앞의 흑류성주를 보며 인사를 했다·
“그래 좋은 정보 고맙다·”
광한계에 있었을 때는 모두가 생자의 육신을 지녔었기 때문에 상상도 못 해 봤던 문제였었다·
연위 역시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본인이 살아 있는 존재라 잘 몰랐는지 내게 가르쳐 주지 않았었다·
“아닙니다 어르신· 어르신 같은 분이라면 틀림없이 고명하신 귀맥의 일원이실 텐데 오히려 도움을 드릴 수 있어 기쁩니다·”
망골은 허리를 꾸벅 숙이며 웃었다·
처음 나를 두려워하던 기색은 조금 줄어들었고 이제 망골의 눈두덩이에서는 나를 잘 모시면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조금 살아나기 시작했다·
‘차라리 잘 됐다· 이 녀석 정도면 쓸 만하지· 세력을 만들 때 수하로 두는 것도 좋겠다·’
나는 천기가 바뀌는 느낌이 들어 하늘을 직접 보진 않고 지평선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 이제 ‘밤’이군·’
개열기 진인들의 눈 말고 ‘진짜 별’들이 무수히 떠오르며 하늘의 음기가 강해지고 있었다·
“명귀계의 밤은··· 아름답군·”
나는 하늘 가득히 차오른 음기와 그 음기를 뚫고 지상에 내리쬐는 무수한 별빛을 보며 작게 감탄했다·
명귀계는 낮보다 밤이 더 밝았다·
개열기 진인들의 시선 역시 별들의 인력에 가려져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에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걸 느꼈다·
‘잠깐 명귀계는 평소에 ‘죽음’이 진인들의 시선에 억눌려 있다 했는데··· 진인들의 시선이 별들의 인력에 가려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리고 그 의문은 곧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흐아아아아아! 큰 귀신이다!!!]
방금 전까지 은근한 기대감까지 내비치며 내 질문에 대답을 하던 망골은 지능이 낮아진 채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며 본인의 해골 육신을 내버려 두고 흑류성마저 버린 채 어딘가로 도망쳐 버렸다·
“····”
우우우웅―
문득 흑류성 성곽에 깃들어 있던 성벽귀 역시 내 죽음을 느끼고 성벽을 버린 채 도망쳤단 게 느껴졌다·
의식으로 흑류성 전체를 쓸어 보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귀신들의 잔치가 벌어지던 흑류성은 그렇게 나 하나로 인해서 모든 귀신이 도망쳐 버린 폐성이 되어 버렸다·
명귀계로 떨어진 첫날·
나는 흑류성을 전멸(全滅)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
* * *
“그래서 정보는 얻어 온 게 없다?”
“그렇습니다·”
“흐흠··· 뭐 어쩔 수 없지· 큰 상관은 없다· 어차피 내가 얻어 온 정보가 있으니가·”
다행히 연위와 홍범 전명훈과 김연 등의 활약으로 강의 하류에서 상당한 정보를 얻었다 한다·
“일단 우리가 떨어진 곳은 백음역· 유명귀궁과 봉래도의 영역권 사이에 위치한 영역으로 두 세력의 불가침 지역 중 하나다·”
그녀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운이 좋은 사실이 있다만··· 우리가 떨어진 백음역에는 오복기축을 쌓을 때 필수적으로 필요한 요소가 있다고 하더구나·”
난 아까 전 그녀가 해 줬던 설명을 떠올렸다·
오복기축을 쌓는 것에는 필수적인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진선 혹은 해당 축의 개념을 주재하는 중경계·
둘째는 축을 쌓을 재료를 모아 주는 ‘세력’·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공령지’였다·
당연하게도 첫째와 둘째는 자력으로 구하는 게 불가능하거나 도리어 너무 쉽기 때문에 연위가 호들갑 떨 만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여기에서 연위가 말하는 건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이 백음역이라는 곳에··· 공령지가 있단 겁니까?”
“후후 그래· 듣자 하니 애당초 이곳이 불가침 지역이 된 이유 중 하나가 백음역의 공령지를 두고 봉래도와 유명귀궁이 너무 쓸모없는 소모전을 오래 펼쳐서 두 세력이 한꺼번에 포기하기로 한 모양이다·”
공령지는 굉장히 중요한 자원이었다·
오복기축에 대해서 아는 세력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장소며 오복기축에 대해 모르는 세력에게도 어쨌든 하계에서 비승하는 천재급의 인재들을 쉽게 쉽게 거둬들일 수 있으니 어마어마한 인재 수급처인 셈이었다·
하지만 연위에 말에 따르자면 공령지를 고작 ‘인재 수급처로만’ 쓰는 행위는 어마어마한 낭비라고 했다·
“물론 낭비라곤 했지만 어마어마한 천재들을 쓸어 담을 수 있는 기회나 다름없기 때문에 이 역시 중요한 기능이다· 하지만 막상 백음역의 공령지는 크기가 많이 작아서 인재 수급처로써의 역할이 거의 안 되는 모양이다· 가끔 되기는 해도 종말로 가끔일 뿐이니···· 결국 두 종문은 이득이 안 되는 백음역의 공령지를 두고 서로가 불가침을 선언한 듯싶구나·”
‘흐음 만약 그렇다면 유사시에 명귀계를 탈출할 때에도 쓸 만하겠군·’
우리가 명귀계 백음역으로 떨어진 이유는 분명 공령지의 영향도 클 터였다·
그런 만큼 공령지라면 다른 장소보다 더욱 쉽게 샛길을 열 수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나저나 그럼 유명귀궁이나 봉래도가 아니라면 현 시점에서 백음역의 공령지를 관리하는 건 누구입니까?”
“그것도 말해 주려 했다· 백음역의 삼대 귀도종문인 백맥문· 위음문· 시후종이 공동으로 공령지를 관리하고 있다 하는군· 듣기로는 오복기축을 쌓는 게 아니라 인재 수급처로만 사용하고 있다는데 돼지 목에 진주나 다름없지·”
연위가 비릿하게 웃으며 나와 전명훈을 번갈아 보았다·
“알아들었겠지? 돼지 목의 진주를 뜯어 오고 서은현이 제안한 계획을 실행해서 세력을 키워 수축을 쌓자꾸나!”
나와 전명훈은 서로를 쳐다보며 빙긋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요·”
정보도 전부 모아졌고 계획도 세워졌다·
남은 것은 행하는 것뿐·
그렇게 나와 전명훈이 움직였다·
* * *
백골 관련 사령공법을 익히는 문파인 백맥문·
그림자와 귀왕 계열 공법을 익히는 문파인 위음문·
강시 계열 강시공을 익히는 문파인 시후종·
백음역은 위의 세 문파가 조화롭게 상생하며 운영되는 평화로운 구역이었다·
세 문파는 공령지 역시 각자가 돌아가며 사용했고 문주들 역시 친한 관계로 상당히 잘 돌아가는 편이었다·
하지만 평화도 영원하지 않은 탓인지·
어느 날 백음역에 이변이 일어났다·
19개의 머리를 가진 미치광이 노귀 그리고 6개의 그림자를 끌고 다니는 노귀의 수하가 나타나 백음역 삼대종문의 비지(祕地)인 공령지 일대를 점거해 버렸다·
그리고 그 악독한 괴수들은 그것으로도 모자라 백음역 곳곳에서 흩어져 평화롭게 살던 귀혼과 강시 백골들을 납치해서 자신들이 점거한 일대에서 노역을 시켰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노괴가 벌인 이 황당한 짓거리에 백음역 삼대종문은 비상 대책 회의를 소집하기로 했다·
각각이 사축기 수사들인 백음역 삼대종문의 문주들은 하나같이 딱딱한 기색으로 백맥문에 모였다·
그리고 그들을 백맥문으로 불러 모은 이번 대책 회의의 소집자 백맥문주 백린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다들 모여 달라 한 이유는 알 것이오· 오늘 우리는··· 갑자기 백음역에 나타나 공령지를 점거한 뒤 패악질을 벌이는 미치광이 노귀 그리고 그가 공령지 일대에 세운 후 마구잡이로 백음역의 귀령들을 납치해서 교도로 삼고 있는 사교(邪敎) 무극교단(無極敎團)에 대해서 논할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