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인 (5)
‘굳이 죽일 필요는 없겠지·’
나는 천천히 이 육신을 통해 본체의 인력을 끌어왔다·
이 녀석에겐 힘을 빌려주고 그 힘으로 뭘 하든지는 이 녀석의 자유일 뿐·
굳이 이 녀석의 은원에 내가 직접적으로 끼어들 이유는 없었다·
위이잉―
인력을 통해 기를 끌어모아 방어막을 만들었다·
급조한 막이라 조잡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축기기 위인이란 녀석은 방어막을 뚫지 못했다·
콰르르르―
“크윽 이놈! 무슨 사술을 쓴 거냐!”
시뻘건 불길이 방어막을 난타했다·
‘이 녀석은 무슨 영근을 가지고 있지? 아 수(水)와 금(金)인가· 다만 양쪽을 다 익히진 않았고 수 속성 기본공법으로만 축기에 올랐군·’
나는 내 방어막 위쪽에서 발광하며 불길을 토해 내는 불진을 휘두르는 노인을 무시하며 체내의 영기를 진동시켰다·
우우웅―
천인기 수사의 천기 유도는 결국 사축기의 인력의 하위 호환·
수 속성 법력을 매개체로 기의 계위에 인력을 발휘한다·
쿠구구구구!
삽시간에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것인지 주변의 축기기 수사들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우(雨)·]
그리고 내가 하늘에 손을 뻗자·
쏴아아아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방이 타오르던 주변 일대에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고정·]
나는 천기 현상을 하늘에 고정해 놓았다·
아마 칠일 밤낮으로 이 일대에 비가 내릴 터였다·
그리고 그제야 축기기 12대 위인은 뭔가 이상한 걸 눈치챘는지 눈을 부릅떴다·
“자 잠깐··· 네놈 누 눈이 뒤집혀 있어···? 그래 접신(接神)! 네놈 어떤 고위 존재와 접신해서 힘을 빌려오고 있구나!”
나는 사내의 육체를 움직여 축기기 수사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흠칫거리며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눈을 내리깔다가 다들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그림자가····”
“19개의 머리를 단 괴물로 변하다니····”
“쉿! 다들 일단 조용히 해라!”
축기기 12대 위인이란 자는 그래도 눈치가 있었는지 경거망동하지 않고 수결을 맺으며 입을 열었다·
“유휘 이놈! 기어코 사이한 존재에게 몸을 허락했느냐! 정신을 차려라!”
우우웅―
무언가 술법의 일환인지 축기기 위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의식이 자극받는 게 느껴졌다·
‘의식공법의 일종인가· 내가 차지한 이자에게 말을 걸려나 보군·’
내 의식이면 목소리를 전달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러진 않고 전달되게 놔두었다·
그러자 얼마 후 내가 차지한 몸에서 이 사내의 의식이 조금 깨어나는 게 느껴졌다·
“크 크흐····”
유휘는 자신의 입을 움직이며 웃었다·
“왜 그러나 늙은이? 계속 공격해 보아라· 나는 위대한 분과 접속하여 힘을 빌리는 데에 성공했다!”
“크윽 이놈! 이건 네놈 가문과 우리 가문 사이의 일일 뿐이다! 그런데 그사이에 그런 사악한 이계의 존재의 힘을 빌려오다니!”
노인은 분기탱천한 얼굴로 준엄하게 유휘를 꾸짖었다·
“어서 정신 차려라! 이 땅에 이계의 힘을 끌어올 셈이냐!”
“어쩌라는 거냐···! 어차피 내가 가지지 못할 땅이라면 상관없다!”
“크윽 그 이계의 존재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그 존재를 받아들였단 거야!”
‘···별짓 안 할 건데·’
나는 속으로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내뱉었다·
[잡담은 그만하도록 하지· 이만 물러나라·]
우웅―
나는 인력을 역전시켜 척력으로 전환했다·
쿠우웅―
“끄으으윽 유휘! 잘 생각해라! 그 존재는 사악한 이계의 존재다!!!”
대부분의 축기기 수사들은 수백 리 바깥으로 튕겨 나갔으나 축기기 위인은 끝까지 그 자리에서 버티며 고함을 쳤다·
의념을 보아하니 의외로 진심으로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듯했다·
“이계의 존재를 믿어선 안 된다! 단순히 적으로서 하는 말이 아니라 몽운대륙 수도자로서 하는 말이다! 그 존재들은 사악하고 악랄하고 눈물도 자비도 없으며···!”
‘···그 정도는 아닌데····’
“절대로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들이란 말이다!”
나는 조금 더 척력에 힘을 주었고 결국 축기기 위인은 더 버티지 못하고 날아가 버렸다·
휘이이이이―
축기기뿐만이 아닌 이 일대에서 행패를 부리던 연기기 수사들 역시 모조리 도망쳤다·
나는 유휘의 육신을 관조했다·
‘나라면 지금 당장 원영기로 만들어 주는 것도 가능하다만····’
천지영기를 욱여넣기만 하면 그 정도는 가능했다·
하지만 나는 유휘의 혼을 보며 혀를 찼다·
‘그 짓을 하면 바로 혼이 으스러지겠군· 당장 내 의식 한 줄기를 접한 것만으로도 부스러지기 일보 직전이거늘·’
아마 원영기가 아니라 결단기로 올려 주는 것조차 힘들 터였다·
우우웅―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이 녀석의 체내에 길을 활성화시켜서 축기기의 28수를 더 수월하게 만들 수 있게 축복을 주는 정도였다·
[나는 이만 가겠다· 그리고 힘을 빌려준 대가를 가져가마·]
합체기 쇄성기쯤 된다면 힘을 대여해 준 후 훨씬 다양한 대가를 받아갈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축기 수사들은 가져갈 수 있는 대가가 한정되어 있었다·
오복은 수 부 강녕 유호덕 고종명·
어째서 오복의 가장 앞에는 수(壽)가 오는가·
그 이유는 간단했다·
‘수명이야말로 오복축을 쌓는 데에 가장 기본적인 재화·’
수(壽)의 축은 수명과 관련된 소중한 것을 받아야 쌓을 수 있다·
그래서 아예 직접적인 수명을 받아 간다·
부(富)의 축은 부유함과 관련된 소중한 것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수명이 길수록 부를 축적할 기회가 많기에 수명도 부유와 관계되어 있다·
강녕(康寧)의 축도 마찬가지·
그리고 강녕은 곧 생명력· 그 역시 수명과 관계되어 있다·
유호덕의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이 역시 수명을 통해 어찌어찌 얻어낼 수는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오복기축을 쌓는 이들은 절대다수의 이들에게 수명 정도만을 받아 간다·
물론 절대다수는 힘을 한 번 빌려주면 남은 수명을 모조리 뺏듯이 받아가고는 했지만 나는 차마 그렇게까진 할 수 없어 10년의 수명만을 받아 왔다·
우우웅―
눈을 뜨자 공령지가 밝게 빛나며 그 안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빛났다·
유휘의 수명이었다·
나는 연위가 가르쳐 준 대로 진법에 유휘의 수명을 집어넣고 약식으로 제의를 바쳤다·
[명귀(冥鬼)의 계(界)이시여· 당신께 누군가가 소중히 여기던 수명을 바치나니 부디 제게 수(壽)의 축을 내려 주소서·]
우우웅―
명귀계 자체가 감응하며 유휘의 수명을 받았다·
그와 동시에 귀기가 움직이며 내 단전 한쪽에 빛살이 되어 틀어박혔다·
파아아앗!
‘이건····’
아주 작은 탑이라고 해야 할까·
이쑤시개라고 해야 할까·
그런 작은 막대기 같은 것이 내 단전 한쪽 부(富)의 축 옆자리에 꽂혀 자리를 잡았다·
‘이것이 수축의 토대····’
앞으로 이걸 약 1천 번 정도만 반복하면 수축을 쌓을 수 있을 듯했다·
‘1천 번이라····’
1만 년에 달하는 수명을 받아야 비로소 수의 축을 세울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곰곰히 앉아 생각해 보았다·
누군가에게서 1만 년에 달하는 수명을 빼앗는다·
아무리 조금씩 조금씩일지언정 과연 이게 맞는 것일까·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연위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찼다·
“보아하니 10년 정도의 수명만 받아 왔구나· 네게 힘을 빌린 대상은 무슨 경지였냐?”
“축기기더군요·”
“아니! 그러면 남은 수명을 전부 끌어오면 300년인데! 너 지금 300년 치 수명은 어디다가 팔아먹고 왜 10년 치 수명만 받아 온 거야!”
연위는 자신이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마구 잔소리를 해 댔다·
“뭐··· 굳이 그럴 필요야 없잖습니까·”
“뭐가 그럴 필요가 없어! 어차피 본인들이 동의한 공정한 거래의 결과잖느냐!”
“공정이라····”
확실히 본인들이 동의했으면 일견 공정해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소한만의 수명만을 받아서 축을 쌓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난 연위의 잔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다음에는 조금 생각해 보도록 하지요·”
“너 이놈 별로 내 말 들을 생각 없지!”
“어이쿠····”
그녀는 단단히 뿔이 난 듯 툴툴거리며 지하실을 나가려 했다·
그때였다·
쿠구구궁!
“음···?”
갑자기 무극교단 전체가 흔들렸다·
나는 황급히 귀왕화를 하며 눈을 빛냈다·
연위가 지하실 위쪽을 바라보며 눈을 흘겼다·
“호오 침입자들이 온 모양이구나·”
“끄음····”
나는 곧바로 나가서 응징할까 했지만 문득 슬슬 ‘밤’이 될 때라는 걸 깨닫고 다시 교좌에 앉았다·
“앉아 있어라· 난 어떤 간 큰 놈들이 쳐들어왔는지 구경이나 하고 오지· 호법들이 잘 쫓아낼 테니까 걱정은 말고·”
나는 그 말에 일단 강환 분신을 만들어 내 상황을 보고 오게 하며 그 자리에서 대기했다·
‘이 방까지 오지 않았으면 좋겠군····’
* * *
쿠구구구구―
무극교단·
교단의 영내 교도들의 훈련소 안쪽·
그곳으로 세 명의 인영이 나타났다·
백골로 이뤄진 육신을 입은 백맥문주 백린·
그림자로 이뤄진 망사를 뒤집어쓴 위음문주 음와·
전신에서 녹색의 시기를 뿜어내는 시후종주 위시혼·
세 명의 사축기 수사들은 훈련소에 발을 디디며 흠칫 몸을 떨었다·
“저런 흉악한! 납치한 귀물들에게 무슨 짓을 했단 말인가!?”
그들의 눈에 괴뢰에 들어 있는 몇몇 귀물들이 띄었다·
귀물들은 하나같이 괴뢰 겸 저주인형의 용도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하나같이 생김새가 조금씩 기괴한 편이었다·
“귀물들을 저 좁고 답답한 저주인형 안에 박제해 놓다니! 미치광이 교주의 취미를 알 법하군요!”
음와는 분기탱천한 듯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생긴 것도 흉하고 끔찍하군! 어떻게 저런 흉한 괴물을 만들 생각을 했단 말인가!”
위시혼은 서 장군을 닮은 꼭두각시를 보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서 장군을 닮은 꼭두각시를 하사받은 귀물은 분기탱천해서 고함을 질렀다·
[이놈! 감히 교주님이 가장 아끼시는 형상의 괴뢰를 부여받은 나를 모욕하는 거냐!]
“잠깐 그대는 분명··· 우리 백맥문 휘하의 소문파인 궁골문의 문주가 아니던가?”
백린은 그 귀물의 음성을 알아듣고는 흠칫 놀랐다·
서 장군을 닮은 꼭두각시 궁골문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나는 궁골문의 문주였지·]
“자네 문파에 대한 자부심도 없단 말인가!? 어찌 상위 문파인 우리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고 한 문파의 문주가 마교의 앞잡이가 되었단 말이야!”
[흥 문파에 대한 자부심? 분명 그런 게 있긴 했었지· 하지만 무극교단에 입교한 후 생각이 바뀌었다· 자부심이고 뭐고 당장 우리 문도들에게 가르치는 궁귀결부터 허섭스레기이고 평안한 삶을 바라는 문도들에게 진정 만족스러운 삶을 줄 수 있는 건 좋은 복리후생을 가진 집단이라는 걸! 네놈들은 휘하 문파에게 무슨 복지를 해 준 적이 있느냐 혜택을 준 적이 있느냐! 해 주는 것도 없으면서 위험할 때 지켜 주겠다는 소리 하나만으로 상납금만 받아 처먹는 네놈들에게 충성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최고의 복지와 혜택 만족스러운 삶의 질을 부여해 주는 무극교단에 충성하기로 했다·]
“이 무슨! 벌써 요사스러운 교단의 세뇌 술법에 단단히 돌아 버렸구나!”
백린은 광신도가 되었던 옛 수하를 보며 마교의 사악한 행위에 개탄할 수밖에 없었다·
“썩 비켜라! 아무리 세뇌되어 광신도가 되었다 해도 옛 수하를 죽일 순 없으니 기회를 주겠다!”
[옛 수하는 개뿔! 편히 부려먹던 노예가 복리후생을 찾으니 세뇌된 광신도다 이거냐! 이 더러운 착취자 놈들 오늘 여기서 끝장을 보자!]
궁골문주는 오히려 백린의 말에 분노하며 울부짖었다·
[이―리―오―너―라!!!]
쿠구구구구!
까가각 까각까각까각―
그와 동시에 서은현에게 괴뢰의 육신을 부여받은 귀물들이 궁무문주의 명에 그 자리로 집결했다·
삽시간에 무극교단 서쪽 훈련장이 무수한 저주인형들로 가득 찼다·
세 명의 사축기 수사는 긴장된 표정으로 그들의 앞을 막아선 무수한 저주인형들을 바라보았다·
창백한 피부에 새하얀 백골 튼튼한 강시의 몸이 아닌 딱딱하고 생기 없는 꼭두각시의 몸이었다·
거기다가 마음대로 표정을 조절할 수도 없어 언제나 같은 표정만 짓고 있어 어찌 보면 괴랄해 보이는 인형들·
그들은 인형이 되어 버린 가엾은 귀물들을 바라보며 더더욱 눈빛을 불태웠다·
하지만 그때 위시혼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봐 백린 음와!”
“무슨 일인가?”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네· 여기서 이 녀석들과 시간을 끌다간 결국 낮이 되어 버리고 교주가 이곳으로 친림할 것일세·”
“으음····”
“그런····”
백린과 음와를 보며 위시혼이 눈빛을 빛냈다·
“내가 이들을 막겠네· 자네들은 교주에게 달려가 사악한 교단의 근원을 끊어 내게!”
“으음···!”
“위시혼···!”
“어서 앞으로 가게!”
위시혼이 앞으로 나서며 점차 덩치를 키우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그의 몸에서 뿜어지는 시기가 털이 되었다·
위시혼은 점차 괴상한 짐승의 형태로 변화하며 울부짖었다·
[크아아아아!]
괴수의 형상으로 변한 위시혼이 저주인형의 군단을 막아섰고 백린과 음와는 그 광경을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결의를 다졌다·
“위시혼!”
“어서 오게! 위 종주가 희생하여 만든 귀중한 틈이야!”
백린은 음와를 이끌고 빠르게 훈련소를 지나 교단의 내부로 진입했다·
처음에는 기운이 없어 보였던 음와였지만 이내 기운을 차리고 백린과 함께 교내를 달렸다·
얼마나 교내를 달렸을까·
두 귀물은 문득 뭔가 이상하단 걸 눈치챘다·
“잠깐 백 문주· 주변이····”
“그렇군· 진법이야·”
파아아앗!
두 귀물은 어느새 뿌연 안개가 낀 초원을 달리고 있었다·
“진법은 내가 해체하지· 자네는 망을 봐 주고 있게·”
“예·”
백린이 수결을 맺으며 진을 돌파하려 할 때였다·
저벅 저벅····
안개 사이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웬 놈이냐!”
음와가 두 눈을 부릅뜨며 안개 사이로 온 인물을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 안개 사이로 걸어온 인물·
연분홍빛 궁장을 입은 여인 김연이 둘을 보며 다소곳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무극교단의 좌호법직을 맡고 있는 김연이라 합니다·”
“크윽 기묘귀왕!”
“하필 제일 사악하고 악랄하고 요사스러운 존재에게 걸리다니!”
백린과 음와는 당황했고 김연은 그 둘을 바라보더니 옅게 웃었다·
“두 분은 이곳을 지나가실 수 없으십니다·”
백린과 음와는 서로를 쳐다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가 가장 악독한 무극교단의 세뇌 담당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소· 하지만 그 말은 도리어 그대를 제압하면 선량한 귀신들의 세뇌를 풀 방도 또한 생긴다는 거겠지·”
벡린은 근엄한 목소리로 김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를 처치하고 모두의 세뇌를 풀어낼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