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교 (3)
‘···흑색귀골궁 소속이라····’
솔직히 지금까지 마교 짓을 하긴 했지만 계속 명귀계 공적으로 지낼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흑색귀골궁과도 대화를 나눠서 강민희의 증상에 대해서도 알아볼 필요가 있으니····’
나는 이 귀신은 흑색귀골궁과의 연락책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이거··· 귀빈이 오셨군· ‘특실’로 모셔라· 내 친히 아주 특별한 대접을 해 줄 것이야·]
내 말에 교전 안의 시종 괴뢰들이 움직여 그녀를 붙들었다·
소복을 입은 귀신은 눈물을 머금고 굴욕적인 얼굴로 외쳤다·
“나는 30번 섭명함장이신 차조귀 님께 모든 것을 바치기로 맹세한 몸! 네놈들에게 더럽혀지진 않을 것이야! 크읏···!”
[····]
뭔가 우리 사이에 심각한 오해가 있는 것 같았지만 어차피 이 꼴로는 아무리 설명을 해 봤자 믿지 않을 터였다·
나는 턱짓으로 그녀를 끌고 나가라고 한 후 눈을 감았다·
우우웅―
안 그래도 이제 수축도 벌써 7할이나 쌓았다·
‘7천 년치의 수명· 3천 년어치만 구하면 이제 수축도 완성된다·’
거기다가 이제는 무극교단이 하계 곳곳에 침투했기 때문에 ‘제의’가 바쳐지는 속도도 점차 빨라지는 중이었다·
이런 식으로·
츠츠츠츳―
나는 공령지를 통해 전해지는 제의를 느끼며 의식을 뻗었다·
* * *
‘이곳은····’
내 의식이 도달한 곳은 한 부해계였다·
수계와는 다르게 천지영기가 굉장히 풍족한 편이었고 상당히 넓은 편에 속한 부해계·
나는 그 부해계의 한 곳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를 따라 의식을 뻗었다·
부해계의 한 구석·
은밀한 계곡·
오싹!
나는 어쩐지 그 계곡에 의식을 뻗으며 어딘가 한구석이 싸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어쨌든 계곡에 숨겨진 동굴 안쪽을 찾아 들어갔다·
우우웅―
나는 한 소년의 몸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소년의 심상 안쪽·
나는 소년을 마주 보았다·
[네가 나를 불렀느냐?]
소년은 나를 마주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예 위대하신 분이시여· 부디 힘을 빌려주십시오·”
녀석은 내가 묻지도 않았건만 바로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는 한 마도 수련자의 실험체입니다·”
소년의 이름은 함진·
그는 시골 마을의 고아였다·
하지만 적당히 구걸로 잘 살아가고 있던 와중 그의 마을이 도적단에게 습격당해 망해 버렸다 했다·
도적단은 마을을 불태우고 거지들까지 모조리 잡아서 인신매매를 했다 한다·
그리고 그는 운 나쁘게도 한 마도 수련자에게 팔려갔다·
“그는 저희를 ‘제자’라고 부르지만 실상은 저희를 실험할 목적으로 구매했던 것뿐· 그자는 오로지 저희를 이용할 생각밖에 없습니다· 아니 저는 분명 그자의 계획을 들었습니다· 그자는 저희의 몸을 빼앗아 자신의 수명을 늘리려는 것입니다!”
[하여 나를 불렀느냐?]
“예 부디 저를 구해 주십시오· 원하시는 것을 바치겠나이다·”
[대가는 알고 나를 부른 것이겠지?]
“대가가 무엇이든 그 괴물에게 몸을 빼앗겨 비참하게 죽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좋다··· 하면····]
내가 막 이 소년의 수명을 받고서 소원을 들어주려 했을 때였다·
‘···잠깐· 뭔가 이상한데·’
나는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일단 이 동굴을 나가 보아라·]
“예?”
[시키는 대로 따를지라·]
나는 소년의 몸을 움직여 이 동굴 바깥으로 나갔다·
동굴 바깥은 커다란 계곡이었다·
계곡에는 곳곳에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었는데 그 구멍들 하나하나에서 인기척이 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계곡에 동부를 잔뜩 파 두고 그 마도 수련자라는 자가 제자들을 관리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동부들보다는 다른 것이 신경 쓰였다·
‘이 계곡····’
이 소년에게 강림하면서는 별로 신경 쓰지 못했지만 소년의 심상에 접속해 그의 무의식의 기억을 몇 가지 읽던 도중 나는 한 가지 기이한 점을 발견했다·
[너는 이 계곡이 어찌 만들어졌는지 아느냐· 네가 알고 있는 전설이나 신화가 있느냐·]
“아··· 듣기로는 먼 옛날 하늘에서 녹색의 신이 강림하여 거북이를 쪼개 죽이고 이 계곡을 만들었다 합니다· 그래서 거북이를 쪼갠 계곡이라 하여 절귀곡(切龜谷)이라 하옵니다·”
[····]
나는 의식으로 소년의 동부를 둘러보았다·
[잠시 네 몸을 내게 맡겨라·]
“예?”
[한 식경만 네 몸을 내게 대여해 준다면 네게 아주 특별한 능력을 선사해 주마·]
“아 알겠습니다·”
소년은 내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소년의 몸을 차지한 채 소년이 내게 제사를 지내는 데에 쓴 제사상으로 다가갔다·
콰드드득―
나는 제사상을 쪼갠 후 천지영기를 벼려 날카롭게 다듬었다·
쪼개진 제사상의 조각은 이내 한 자루의 나무로 된 박도가 되었다·
우우웅―
나는 천지영기를 끌어모아 도기(刀氣)를 형성해 박도에 씌웠다·
그런 후·
콰가가가각!
나는 소년의 동부에 박도를 휘둘러 참격을 날렸다·
콰지지직―
대충 휘두른 것이었기에 위력은 형편없었다·
기껏해야 소년의 동부에 작은 홈이 패인 정도·
그러나 나는 그 홈을 본 후 다시 계곡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계곡을 이루는 암반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계곡 안쪽에서 흐르는 용맥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 용맥은 마치 생물의 혈관과도 같았다·
“···일반적으로는 절대 이런 용맥이 형성되지 않지·”
녹색의 신이 거북이를 쪼개 만든 계곡·
“함천존자····”
바로 예상할 수 있었다·
이 계곡은 함천존자 장익이 어떤 생물을 죽인 후 그 생물의 사체가 변화하여 생성된 세계다·
그리고 나는 이 계곡에 들어올 때 느꼈던 싸함을 기억했다·
‘아····’
난 함진의 몸으로 월수궁무록을 사용하며 총천검과 몸을 동화시킨 후 소년의 몸으로 동굴 밖으로 나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녀석이 무의식 안쪽에서 이 광경을 공유하며 경악하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함진의 경악은 신경쓸 수조차 없었다·
‘역시····’
나는 부해계의 하늘 끝자락·
이 세상의 ‘천장’까지 날아올라 이 세계를 굽어보며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 세계는 전쟁터였다·
곳곳에 아주 곳곳에 장익이 날린 박도의 도흔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도흔을 보며 이곳에서 있었던 전투의 양상을 가늠할 수 있었다·
전투는 이 세계의 서북쪽 끝에서 시작되어 동남쪽 끝인 이곳에서 끝나 있었다·
그리고 전투의 결말은 장익이 이기고 전투의 대상이었던 생물이 죽어 버린 것이었다·
‘장익이··· 꽤 고전했다!?’
나는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도흔을 비롯한 이 세계에 남은 흔적으로 유추를 했다·
‘존자’의 이름을 달고 있는 장익이 고전했다·
그렇다는 말은 장익과 싸운 후 죽어 나자빠져 계곡이 된 그 생물 역시 쇄성기급이란 뜻이었다·
난 어째서 이 세계가 부해계답지 않게 수계보다 훨씬 천지영기가 짙은지를 이해했다·
쇄성기급 생물이 죽은 후 그 생물에게서 빠져나온 힘으로 인해 이 세계가 풍족해진 것이었다·
‘도대체 이 세계는 뭐지?’
나는 당황해서 이 세계를 둘러보았다·
어떻게 고작 부해계 따위가 쇄성기 존자들의 전투를 이토록 튼튼하게 견뎠단 말인가?
나는 거기다 뭔가 이상한 것을 느끼며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꾸구구국―
나는 천기를 유도시켰다·
소년은 토와 화 금 속성의 삼영근자였기에 나는 용맥을 뒤흔들어 일대에 가벼운 지진을 일으켜 보았다·
쿠구구구구!
계곡이 뒤흔들리며 곳곳이 쪼개지고 무너졌다·
‘어째서 장익과 대등하게 싸운 쇄성기 생물의 사체가 고작해야 천인기급의 힘으로 이렇게 뒤흔들린 거지?’
뭔가 기이하다·
그때였다·
찌이잉―
나는 죽은 후 계곡이 된 이 생물·
아니 이 지역에 깔린 용맥을 통해 뭔가를 알 수 있었다·
‘이건···!’
용맥 저 아래 깊은 곳·
그곳으로 무언가 상서로운 힘이 잔뜩 몰려 있었다·
‘그런가··· 존자의 사체가 약한 게 아니라 저 아래에 있는 힘에 존자의 모든 권능이 몰려 있어 나머지 껍질 부분은 물러 터져 있던 건가·’
꾸구국―
나는 인력을 끌어와 이 계곡 전체를 들어내 보려 했다·
그러나 그때였다·
찌이잉―
‘···쯧· 더 힘을 쓰면 이 녀석의 영혼이 붕괴해 버리겠군·’
처음 내 힘을 빌렸던 수사의 경우 일단 축기기에는 도달했었다·
그랬기에 미약하지만 인력을 끌어올 수 있었었다·
하지만 함진이라는 이 소년은 고작해야 연기기 1성에 겨우 입문한 꼬맹이였다·
내가 최대한 격을 조절하고 있는 지금도 내 혼을 버티기 힘들어하고 있었고 이 녀석의 혼을 통해 힘을 더 끌어올리면 이 아이의 영혼은 그대로 휘발될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영혼이 휘발되어 버리면 오히려 내가 이 몸을 차지해 버릴 방법이 많았기 때문에 더 좋긴 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지·’
무리에서 반인륜적인 짓을 저지를 필요는 없다·
저 아래에 아무리 보물이 잠들어 있다 한들 한 명의 삶만큼 귀하진 않다·
나는 소년의 동부로 들어와 녀석이 내게 제사를 지냈던 흔적을 지워 준 후 함진에게 말을 걸었다·
“네 덕에 확인할 것은 전부 확인했다· 하지만 네가 지금 더 이상 못 버틸 것 같으니 일단 물러나도록 하지· 하나 일단 나와 한 번 연결되었으니 다음부터는 제의가 없어도 나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다시 부르거라· 내가 너에게 힘을 빌려줄 것이다·”
함진은 내 영혼의 격에 견뎌 가며 겨우겨우 무의식 안쪽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우우웅―
나는 천지영기를 손 안에 끌어모았다·
“그리고 이는 네 몸을 잠시 빌렸던 대가이다·”
위이이잉―
나는 손안에 끌어모은 강기를 뭉쳤다·
강기는 강환이 되어 내 손 위에 나타났고 나는 이 강환을 그대로 삼켰다·
강환은 소년의 법화단전 안으로 들어가 그 중심에 자리를 잡고 내단이 되었다·
위이이잉―
파앙!
나는 내단과 이 아이의 상단전을 연동시켜 함진에게 요족의 시야를 부여했다·
내가 형성해 놓은 내단의 힘은 아직 다룰 수 없겠지만 지족의 시야는 얻을 수 있을 터였다·
“짐승들은 인간보다 예민하여 거대한 재난이나 사고를 미리 예견하곤 하지· 이는 전부 내가 네게 부여한 이 감각에 기반한 능력이다· 너에게도 짐승의 감각을 부여했으니 그를 이용해 살아남도록 하여라·”
츠츠츠―
나는 함진의 정신 세계에서 빠져나가며 말했다·
“네 혼이 치유될 시간이 필요하니 3개월 후에 나를 다시 불러라· 그때 다시 보도록 하자·”
내가 녀석의 육신에서 빠져나가자 함진은 탈진했는지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상당한 수확이다!’
생사결을 하다 절벽으로 떨어져 얻은 기연보다도 훨씬 어마어마한 기연이었다·
‘쇄성기 존자의 사체다!’
물론 존자의 사체라 하여도 대부분 기운이 쇠하였지만 그 모든 기운이 어디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한 점의 상서로운 기운에 몰려 있었다·
‘처음 들어섰을 때 느낀 싸한 기분은 죽었을지언정 존자를 앞에 두었기 때문에 느낀 것일 터·’
이러나 저러나 존자는 존자·
그 존자가 남긴 뭔가를 얻을 가능성이 생겼다·
나는 교좌에 앉은 본체로 돌아와 눈을 빛냈다·
[후후후 후후후후후···!]
난 19개의 입을 통해 기분 좋게 웃었다·
그때였다·
홍범이 다급하게 소식을 전해 왔다·
“교주님 현재 이 지역의 합체기 태수 한 명이 광음역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나는 의식을 뻗어 축복으로 전신을 감싼 광음역에 돌진하는 도마뱀 형상의 강시를 인지했다·
[기운을 보아하니 흑색귀골궁 소속인가· 기세도 좋군·]
난 안광을 빛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상관없다· 이럴 때도 대비해 놓았으니· 멸혼귀왕에게 시작하라 전하라·]
“예·”
홍범이 전음부를 들어 오현석에게 연락을 넣었다·
그리고 태수가 돌진해 오는 중인 광음역의 서쪽 방향·
그곳으로 오현석과 전명훈이 나섰다·
* * *
“흠 여기서 오르면 되는 거냐? 진법이 부서지지 않을까?”
“괜찮습니다 제가 다 제어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군····”
오현석은 전명훈을 바라보며 신기한 눈으로 말했다·
“몇 번을 봐도 신기하단 말이지· 그 전명훈이 이렇게 멀쩡해지다니····”
“···빨리 시작하시기나 하시죠·”
“알았다· 그럼····”
쿠구구구구!
오현석은 천지귀기를 빨아들이며 정신을 집중했다·
그의 전신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그가 가진 일문성체는 어떤 기운이든 전부 흡수할 수 있었다·
오행영기든 음양이기든 무엇이든·
모조리 흡수하여 혼원 안쪽에서 녹여 경지를 높이는 것!
그것이 일문성체였다·
그렇기에 그는 영기를 빨아들이든 귀기를 빨아들이든 경지를 올리는 것엔 아무 영향이 없었다·
처음 명귀계에 왔을 때엔 익숙치 않은 기운을 흡입했기에 잠시 기절했을 뿐!
[간다!]
쿠구구구구!
그리고 오현석이 천인기에서 사축기로의 경지 승급을 시도하였다·
쿠릉 쿠르르릉!
하늘에서 먹장구름이 나타나며 쌍색의 천뢰가 오현석에게 내리꽂혔다·
콰르르릉!
본래 그 정도 되는 이가 천겁을 맞으면 일대가 난장판이 되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전명훈이 옆에서 오현석이 맞고 남은 잔여 천겁을 옆에서 제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인근을 지배하는 흑색귀골궁의 합체기 태수 도마뱀 강시의 육신을 입은 귀왕 진귀시가 광음역에 도착해 몸통 박치기를 하려 할 때였다·
콰르르르릉!
전명훈은 손을 뻗어 그가 여태껏 모아 두고 있던 천겁을 진귀시에게 흩뿌렸다·
[크아아아악!]
진귀시가 울부짖으며 잠시 뒤로 물러섰고 전명훈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이곳은 무극교단의 영역이외다· 무슨 일로 방문하셨는지를 말씀해 주시지요·”
[방금 연락받았다 이 마교도 놈들· 백음역을 들어 올려 어딘가로 전송했다 하던데 여기로 오다니· 후회하게 해 주마!]
“하하 저희 교주께서 합체기 태수급 귀왕 몇을 상대로 분전했는지는 연락받지 못한 겁니까?”
[당연히 들었지· 하지만 보아하니 지금 이 진법을 유지하고 있는 중심이 그 교주 같은데 나와 싸울 수 있을 것 같으냐? 거기다가 방금 전송해 온 대가로 힘도 많이 떨어진 듯한데····]
진귀시는 전명훈을 보며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음충맞게 웃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였다·
서은현은 무극교전 안을 벗어날 수 없었고 계멸축지진 전까지 환하게 타올랐던 백란축성문의 광채는 한참 약해져 있었다·
그러나 전명훈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지금 조금 곤란한 상황이긴 합니다· 한데··· 저희가 그것도 예상을 못했겠습니까?”
척!
전명훈이 결인을 맺었다·
그의 결인에 따라 그의 의지에 따라·
콰지지지직!
오현석에게 내리치던 승급 천겁이 하늘에서 쪼개지며 사방으로 퍼졌다·
거대한 승급 천겁은 사방으로 퍼져 광음역을 한 바퀴 둘러싸는 듯하더니 다시금 오현석에게 날아들어 그에게 꽂혔다·
천겁의 방향이 전명훈에 의해 왜곡되어 광음역 전체를 그물처럼 둘러싸고 다시 오현석에게 내리꽂힌다·
분명 전명훈에 의해 왜곡되기는 했지만 ‘천겁이 방해’받은 게 아닌 ‘천겁의 경로가 살짝 수정’된 것 뿐이기에 천겁은 더 강해지지 않았다·
“얼마든지 공격해 보시지요· 파사현정의 기운을 듬뿍 머금은 천겁 결계입니다·”
[큭···! 천겁을 조종한다고? 도대체 무슨 사술을 부린 것이야!]
진귀시는 당황한 듯 크게 일갈하며 천겁 결계에서 한 걸음을 물러섰다·
그리고 문득 뭔가가 생각난 듯 전명훈을 보며 씨익 웃었다·
[확실히 천겁이 우리 귀물들에게 위협적이긴 하지만 생각해 보면 웃기는 방식이군·]
쩌억!
진귀시가 입을 벌리며 단전에서 법보를 뽑아냈다·
커다란 바퀴 형태의 법보를 뿜어낸 그가 바퀴를 회전시켰다·
끼야아아아아―
바퀴에서는 귀곡성이 울리며 어마어마한 귀화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콰르르릉!
진귀시는 귀화가 타오르는 바퀴를 천겁의 결계를 향해 던졌다·
번쩍!
콰아앙!
귀화를 머금은 바퀴는 결계를 뚫지 못하고 그대로 튕겨져 나왔다·
하지만 결계가 변화했다·
콰지지지직!
하늘이 노한다·
승급 천겁에 누군가가 간섭하였다·
외부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니 더더욱 더 강한 천벌로 응징한다·
천겁의 줄기가 더욱더 강해지고 두터워졌다·
천겁을 맞는 대상인 오현석은 더욱더 환한 천겁에 휩싸였다·
[하하 결국 천겁을 맞는 대상이 뒈져 버리면 끝이 아니냐? 내가 공격을 계속하면 결계야 더 강해지겠지만 그 뜻은 천겁도 갈수록 강해진다는 뜻일 터· 네 동료를 네 손으로 죽이고 앉았구나!]
진귀시는 껄껄 웃으며 결계를 향해 끝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천겁으로 이뤄진 결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두껍고 강해졌지만 진귀시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자아 동료를 위한다면 당장 이 멍청한 결계를 거둬라! 감히 천겁을 네 뜻대로 왜곡시키는 짓은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전명훈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진귀시는 그 모습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미치광이 마교도 놈들 같으니· 제 동료가 저렇게 천겁에 고통스러워하는데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거냐?’
천겁은 점차 두터워지고 있었다·
이제 천겁의 결계는 광음역을 둘러싼 그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커다란 뇌전의 바다같아 보였다·
진귀시는 의아해했다·
‘잠깐 그나저나··· 이쯤 됐으면 승급 천겁을 맞다가 죽을 때가 된 거 같은데···?’
* * *
천겁의 결계·
거대한 뇌전의 바다 안쪽·
그 안쪽에서 천겁을 불러온 근원인 오현석이 울부짖고 있었다·
[그아아아아아아!]
쿠구구구구구!
보랏빛 혼원을 줄기줄기 뿜어내는 오현석은 천겁에도 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전명훈은 그 모습을 보며 씨익 웃었다·
“미안하지만 우리 동료는 맞을수록 단단해지고 더 강해지는 체질이라 말이지·”
지난 200년간 오현석의 수련 장면을 보아 온 전명훈이었다·
‘오행체련이라니 창천개벽문 그곳은 도대체····’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점차 몸을 변화시켰다·
뇌전을 내뿜는 육비의 거신으로 변화한 전명훈이 뇌전의 바다를 헤치며 바깥으로 나갔다·
쿠구구구구!
진귀시는 천겁의 바다를 헤치고 나온 육비의 거신을 보며 두 눈을 부릅떴다·
[이 사악한 마교도 놈들! 동료를 천겁 결계를 위한 제물로 바쳐 버린 게로구나! 역시 상종 못 할 것들이야!]
[마음대로 생각하시지·]
콰지지지직!
전명훈은 주변에 즐비한 천겁의 기운을 끌어모으며 눈을 빛냈다·
[그만 떠들고 이제 나와 놀아 보는 건 어떤가· 아하하하!]
[크윽 한 줌의 동료애조차 없는 건가?]
[자아 이리 오너라· 무극교단에 방문한 걸 환영한다·]
콰르르르르르!
뇌전의 폭류를 쏟아내며 전명훈이 웃었다·
* * *
나는 의식 영역을 뻗어 승급 천겁을 겪는 오현석과 침입자를 저지하는 전명훈을 둘러보았다·
‘잘 하고 있군·’
오현석의 경우 끊임없이 천겁에 두들겨 맞으며 강철처럼 제련되고 있었다·
정말 합체기급의 천겁이 떨어진다면 오현석이라 해도 죽어 버리겠지만 아직까지는 죽지 않고 훈련에 적당한 도움이 되는 정도였다·
‘전명훈이 그 정도는 잘 조절해 줄 터고····’
이제 앞으로 몇 시진만 더 버티면 다시 계멸축지진을 발동시킬 수 있다·
‘그럼 남은 시간 동안··· 포로 심문을 해 볼까·’
나는 흑색귀골궁의 연락책으로 쓸 포로를 보러 가기 위해 무극교전의 위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덜컥―
흑색귀골궁의 소복을 입은 귀신 포로·
그녀가 머물고 있는 방문을 열자 안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녀가 화들짝 놀라는 게 보였다·
“크윽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할 셈이냐!”
[별 것 없다· 그냥 대화를 나눌 것이다·]
“이 사악한 마교주 같으니! 음식에 뭘 탄 거지!? 입이···! 이상하다···!”
[음····]
‘왜 저러는 거지· 그냥 평범한 차인데·’
홍범을 시켜 박하 맛이 나는 꿀차를 대접했는데 처음 먹어 보는 맛이라 당황한 듯했다·
‘강민희가 좋아하던 맛이라 귀신들은 다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군·’
[입은 다시 가라앉을 거다· 그럼 이제··· 조금 더 건실한 대화를 해 볼까?]
“크으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