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3)
파아아앗!
녹색의 불빛이 주변을 밝혔다·
함진은 식은땀을 흘렸다·
‘위 위험해!’
느껴진다·
이 진이 발동하면 그는 필시 죽는다!
그리고 진의 위험성은 흑릉 역시 느꼈는지 함진을 무시무시한 얼굴로 노려보았다·
“네놈 방금 뭘 한 거냐?”
“예? 아닙니다! 제가 하지 않았습니다!”
함진은 필사적으로 부정하며 그의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어···’
그러나 그의 그림자는 19개의 머리를 단 괴물의 것에서 다시 함진 본인의 것이 되어 있었다·
흑릉은 흉신악살 같은 표정을 한 채 함진에게 손을 뻗었다·
“안 되겠군 빌어먹을 것· 원래는 이 몸에 이상이 생기면 몸을 갈아탈 예정이었다만 이리된 것 아예 미리 혼백을 흩어서 제련해 놓아야 안심하겠구나!”
“뭣!”
함진은 이를 악물었다·
흑릉 노마가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문득 함진에게 손을 뻗던 흑릉 노마 염곡은 손을 멈칫했다·
오싹!
그의 등에 소름이 돋았다·
‘뭐 뭐지 이 감각은?’
어쩐지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흑릉은 떨리는 눈으로 그의 뒤쪽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누구일까·
흑릉이 뒤를 돌아본 곳에는 새하얀 백의를 입고 검은 머리칼을 가진 한 남성이 바닥에 앉아 뭔가를 관찰하고 있었다·
찌릿 찌릿!
흑릉은 식은땀을 흘렸다·
‘어 언제부터 저기 있었던 거지? 다가오는 느낌은 느낀 적이 없다! 은신술 같은 걸 익힌 존재인가?’
그는 함진에게 손을 휘저었다·
지금 죽이려 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 함진 따위나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휘익! 콰앙!
그의 손에서 쏘아진 마화가 사슬이 되어 함진을 휘감았다·
한 번에 함진을 제압한 흑릉은 떨리는 눈으로 백의의 남성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그리고 얼마간 용맥이 흐르는 바닥을 관찰하던 남성이 흑릉을 바라보았다·
찌릿 찌릿 찌릿!
흑릉은 전신에서 돋아오르는 소름 끼치는 감각에 숨을 쉬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뭐지? 눈앞의 존재는 연기기조차 아니야· 범인보다도 적은 양의 기운을 가지고 있어! 아니 잠깐···? 범인보다도 영기가 적다고? 그 말은···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란 게 아닌가!’
오싹 오싹!
남성의 정체를 유추할수록 흑릉은 소름이 돋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남자가 입을 열었다·
“혼의 계위에 완전히 걸쳐 있는데 어찌 나를 인식했나 했더니··· 그것 덕분이로군· 그것이 네 혼을 원영과 비슷하게 만들어 계위에 걸치게 해 주었구나· 훌륭한 기물이야·”
‘역시···!’
방금 전까지는 그가 인식하지 못하던 게 맞았다!
흑릉이 심장에 박아 넣은 영패 덕에 인식하고 있는 것뿐!
흑릉은 덜덜 떨며 남자에게 물었다·
“귀하는 누구십니까?”
그러나 남자는 흑릉을 쳐다보더니 관심없다는 듯 땅을 쳐다볼 뿐이었다·
“···그렇군 진법이야· 여러 계위에 걸쳐진 진이 펼쳐져 있는 건가· 단순히 사체인 줄 알았건만··· 이 진을 덮어서 가리고 있는 거였어· 이 모양새는 꼭··· 그렇군· 장익이 진에 진입하려 했고 이 존재는 장익이 진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다가 장익에게 갈려 죽은 게 아닌가?”
흑릉은 이 자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이 기물과 관련된 존재로군! 그래 이 영패를 지키던 수호령 같은 존재인가? 생각해 보면 방금 진을 발동시킨 목소리는 함진의 것이 아니라 이 남자의 목소리였다·’
흑릉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가 전력으로 비둔술을 펼쳐도 이 깊은 곳에서 다시 지상으로 도망치는 사이 진이 폭발할 터였다·
‘그렇게 둘 순 없어!’
흑릉은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렸다·
‘어차피 도망칠 시간은 없다· 그러니 이 존재를 제압하고 진을 취소시키라 명령하는 수밖에!’
평소라면 내리지 않았을 결정·
그러나 흑릉은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그만큼 그가 영패와 동화되어서 얻은 힘은 가공한 것이었다·
“당장 진을 취소해라 그렇지 않으면 네놈을 죽이겠다!”
“놀라운 진이야· 하지만 처음 보는 양식··· 강한 인력을 머금고 있는 진이군· 인력을 통해 진을 발동하면 무슨 결과가 나오는 거지?”
“제기랄! 무시하지 마라!”
쿠구구구구!
흑릉이 힘을 끌어올렸다·
그의 심장과 동화된 영패에서 무한한 권능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진신과도 같다! 아니 이 힘이라면 천인기 천외천(天外天)들조차 경시할 수 없는 권능이란 말이다!”
화르르르르!
구덩이 안쪽이 일순간 흑릉의 마화로 차오르는 듯했다!
그리고 흑릉이 그를 무시하는 남성에게 일격을 날리려는 순간이었다·
위이이잉!
피잉!
“···어?”
흑릉은 자신의 몸 안에서 뭔가가 어긋나는 듯한 소리가 들린 것을 알아챘다·
티잉 티잉! 피이잉!
다음 순간·
콰아아앙!
흑릉의 몸이 폭발했다·
“크아아아아악!”
그의 몸이 폭발한 부위에서부터 시퍼런 녹빛의 광채가 뿜어지고 있었다·
‘아 안돼! 이런 젠장할! 영패의 힘이 폭주하고 있어!’
그는 안간힘을 쓰며 영패를 제어하려 했으나 요지부동이었다·
그리고 그때 그 모습을 보며 백의의 남자가 눈을 빛냈다·
“그렇군···! 웬 잡스런 영패가 진법 위에 덩그러니 나돌고 있길래 뭔가 했더니 그게 열쇠였던 건가?”
남자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흑릉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다 다가오지 마라! 이 괴물아!”
“누가 누구더러 괴물이란 거냐 제자들을 잡아먹는 괴물아·”
“흐 흐아아아아!”
콰아아앙!
흑릉은 영패를 제어하려 애쓰며 동시에 남자에게 끝없이 마화를 뿜어 댔다·
그러나 남자는 전혀 영향받지 않는다는 듯 마화 속에서 흑릉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나 바로 그때·
티이이잉―
흑릉의 가슴 속에 있던 영패에서 한 차례의 음률이 울렸다·
그 소리를 들은 백의 남성의 표정이 달라졌다·
“이런 공간 신통인가· 이건 좀····”
쿠구구구구구!
주변이 용맥의 녹광에 의해 달아올랐다·
남자는 낭패했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고 흑릉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주변에서 끓어오르는 용맥과 남자를 바라보았다·
녹색의 빛이 세상을 덮었다·
* * *
쿠구구구구!
함진은 눈을 떴다·
‘여 여기는···!?’
“커헉!”
그는 쿨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이 먼지로 가득했다·
그러나 얼마 후 먼지가 걷혔다·
함진을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절귀곡이···!’
절귀곡이 사라져 있었다·
주변은 오로지 절귀곡이었던 것의 잔해로만 보이는 돌무더기뿐이었다·
함진은 당황해서 자신의 몸을 만져 보았다·
“내가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진의 폭발력이라면 법력을 전부 소진한 함진 정도는 순식간에 소멸해야 옳았다·
하지만 죽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일까?
그러나 함진이 당황할 때였다·
푸확!
돌무더니 아래에서 손이 올라왔다·
그것은 함진의 스승인 흑릉 노괴 염곡의 손이었다·
함진은 움찔거렸다·
“커헉 쿨럭!!”
흑릉이 돌무더기 아래에서 빠져나오며 숨을 헐떡였다·
그리고 그와 함진이 눈을 마주쳤다·
함진은 빠르게 고민했다·
‘용맥의 기운 덕에 단전에서 점차 정순지력이 차오르고 있다· 지금이라면 흑릉을 죽일 수 있을까?’
그러나 함진은 흑릉의 전신에서 은은한 녹빛의 광채가 피어오르는 걸 보며 살심을 죽였다·
‘아냐 아직 위험해· 흑릉에겐 아직 영패의 기운이 남아 있다· 그와 싸우면 내가 질 거야·’
그는 간신히 살심을 억누르며 말했다·
“스승님 제자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조금 더 용맥의 힘이 더 채워지면 그때 그를 습격하자·’
콰드드득!
함진의 법술에 의해 흑릉을 덮고 있던 돌무더기가 치워졌다·
흑릉은 피를 토하며 숨을 들이쉬었다·
흑릉이 함진을 노려보았다·
잠시 함진과 흑릉의 시선이 교차했다·
흑릉은 함진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주변을 둘러본 후 함진에게 말했다·
“이 스승이 날기가 힘들구나· 비행법기를 띄워라 함진· 절귀곡의 옆에 있는 흑릉곡에 내 동부가 하나 더 있다· 비행법기로 가면 금방이니 나를 태워라· 그곳에 가서 영약을 먹고 기력을 회복해야겠다·”
꿈틀―
그 말에 함진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제길 교활한 늙은이!’
그는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용맥을 통해 법력을 채우는 규토장성결의 특성상 몸이 땅에서 떨어지면 회복력이 굉장히 떨어졌다·
흑릉이 비릿한 모습으로 함진에게 물었다·
“왜 그러느냐 제자야· 이 늙고 다친 스승을 위해 비행법기를 움직이지 않겠다는 게냐?”
화륵 화르르륵!
흑릉의 주변에서 아른거리는 녹빛이 그의 의지에 따라 마화로 변하기 시작했다·
함진은 이를 악물며 저물도에서 비행법기를 꺼냈다·
그가 가진 비행법기는 전부 느린 속도의 법기였다·
흑릉이 함진에게 준 것들로 혹시라도 함진이 도망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함진은 오히려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알겠습니다 스승님· 다만 제자의 법력으로는 비행법기를 제대로 운전할 수 없으니 스승님께서 법력을 불어넣어 움직여 주십시오·”
그는 최대한 흑릉의 법력을 소모시킬 계획으로 말을 꺼냈으나 흑릉은 마화를 더 끌어올리며 함진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함진아· 말하지 않았느냐· 비행법기를 띄워라·”
치이이익―
마화의 열기가 함진의 피부를 지진다·
그는 침을 삼켰다·
“···알겠습니다·”
우우웅!
함진과 흑릉은 양탄자 모양의 비행법기 위에 올랐다·
함진이 법력을 불어넣자 비행법기는 느릿하게 허공으로 떠오르며 흑릉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갔다·
함진은 흑릉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법기를 조종했고 흑릉은 마화를 생성한 손을 함진의 등 뒤에 대고 있었다·
배신할 기미가 보이면 언제든지 그를 불살라 버리기라도 할 예정인 듯했다·
함진은 하늘을 날며 이를 악물었다·
‘동기들은 무사할까·’
방금 전의 폭음이라면 어쩌면 모두 죽었을지도 몰랐다·
‘도대체 투귀 대인은 어디로 사라진 거지? 방금 전 진을 발동시킨 건 투귀 대인이 아니신가? 설마 그분도 나를 이용만 하고 버릴 생각이셨던 건가···?’
그는 착잡한 마음으로 머리를 굴리며 문득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돌무더기가 되어 버린 절귀곡·
그리고 절귀곡의 천지영기의 흐름·
그리고····
‘어?’
문득 함진은 눈을 빛냈다·
천지영기의 흐름이 이상했다·
절귀곡의 흐름 중 한구석에서 꿈틀거리는 듯한 천지영기들이 마구 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장소에 있는 돌무더기들이 덜걱거리는 듯하더니 그 자리에서 함진의 동기들이 튀어나왔다·
“어 어?”
함진은 등 뒤에서 흑릉이 마화를 들이대고 있는 것조차 잊은 채 기쁨에 차서 외쳤다·
“스 스승님 보십시오! 사형 사제들이 전부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대부분 연기기 1 2성인 그의 사형 사제들은 전부 멀쩡한 모습이었다·
티끌조차 다치지 않은 모양새·
마치 누군가가 그들을 따로 보호해 주기라도 한 듯했다·
함진의 외침에 흑릉은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잔뜩 기뻐하는 함진과 다르게 흑릉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음?”
함진은 문득 이상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았다·
흑릉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스승님 스승님· 왜 그러십니까?”
우우웅―
그는 비행 법기를 몰며 질문했다·
쿠릉 쿠르르릉!
어쩐지 하늘에서 먹장구름이 이는 듯했지만 그가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그는 그저 흑릉의 태도가 궁금했다·
“스승님 스승님의 얼굴에 근심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흑릉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치이이이―
하늘은 어느새 먹구름이 차올라 주변이 어두워졌다·
툭 투둑 쏴아아아아!
빗방울의 세례에 어느새 그의 손에 들려있던 마화가 꺼졌다· 하지만 흑릉은 마화를 다시 피울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손가락으로 그의 제자들이 기어 나온 곳을 가리켰다·
“제 제자야· 함진· 너는 저 귀신이 보이지 않느냐?”
함진은 뒤를 돌아보았다·
흑릉이 가리킨 곳에는 그의 사형 사제들이 기어 나오고 있을 뿐이었다·
흑릉이 목소리를 떨었다·
“19개의 머리를 가지고 커다란 어둠의 옷을 입은 저 귀신이 안 보이느냐?”
“···!”
함진은 모르는 척 앞을 보았다·
그는 덤덤한 듯이 비행법기를 몰았으나 그는 흑릉에게 보이지 않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역시 그분은 나를 버리지 않으셨어! 내 사형 사제들도 구해 주신 거야!’
그는 태연한 목소리로 흑릉을 안심시키듯이 말했다·
“스승님 그건 빗줄기의 한 자락일 뿐입니다· 갑작스러운 폭우 때문에 헛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콰악!
흑릉의 양손이 함진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나 그것은 함진을 협박하거나 위협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도리어 기댈 것이 함진밖에 없는 상황에서 공포에 떨며 함진의 어깨를 잡은 것이었다·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귓가로는 큰 귀신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아이야 나에게 다오· 나에게 네 심장을 다오· 네 심장을 주면 아주 즐겁고 새로운 세계를 보여 주겠다· 나에게 네 심장을 주면 나와 함께 갈 수 있게 해 주겠다· 나와 가서 아주 재미난 삶을 살 기회를 주겠다·]
흑릉의 동공이 바싹 졸아들었다·
오고 있었다·
거대한 몸집을 가진 19개의 머리를 가진 어두운 귀신이 흑릉과 함진을 서서히 따라오고 있었다·
[어디에 가고 싶으냐· 너무나 아름다운 눈들이 하늘에 박혀 있는 곳이 있단다· 너에게 줄 예쁜 인형의 옷도 있단다· 네 공법에 아주 알맞은 곳으로 보내 줄 수 있단다·]
흑릉은 공황 상태에 빠져 함진을 붙잡았다·
“제자야 제자야! 들리지 않느냐? 저 귀신이 내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그는 공포에 떨고 있었다·
느껴진다·
저 귀신은 진신이나 천외천 따위가 아니다·
그보다 높은 존재다!
하늘 위 비승 이후의 세계에 존재하는 귀신이다!
함진은 느릿하게 하늘을 날며 흑릉을 위로하듯이 말했다·
“쉬고 계십시오 스승님· 그건 그저 바람에 빗방울이 흩날리는 소리일 겁니다·”
그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귀신은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한 발 한 발 다가올 때마다 그의 덩치도 더더욱 커지고 있었다·
그의 몸은 밤하늘 같았고 그의 눈은 38개의 붉은 진주처럼 보였다·
[아이야 나에게 심장을 다오· 나와 함께 갈 수 있게 해 주겠다· 나의 호법들도 새로운 신자를 기다리고 있단다·]
귀신이 손을 휘젓자 그의 검은 장포 안쪽에서 어렴풋한 환영이 아른거렸다·
[그들은 너와 함께 차원이 넘실대는 바다에서 은총을 베풀어 줄 거란다· 네게 훌륭한 시술도 해 주고 네가 우리와 하나될 수 있게 축하해 줄 것이란다·]
그의 장포 안쪽에서 여섯 개의 팔을 가진 붉은 괴물·
별빛의 몸을 가진 거인· 시커먼 암흑 속에 몸을 움츠린 지네·
무수한 저주인형들을 다스리는 마녀의 환영이 아른거린다·
흑릉은 당장이라도 장포 안쪽의 귀신들이 자신에게 손을 뻗을 것이란 생각에 기겁하며 함진에게 매달렸다·
“제자야 제자야! 저기에 보이지 않니? 귀신과 그의 사대호법이 서있는 것이 보이지 않니?”
함진은 빗속을 뚫고 나가며 웃었다·
“사부님 사부님· 보입니다· 아주 잘 보여요· 그러나 저건 그저 한 줌 돌무더기일 뿐입니다·”
두근 두근 두근!
흑릉의 동공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는 숨을 헐떡였다·
심장이 아려 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귀신은 그들의 바로 뒤쪽까지 쫓아왔다·
당장이라도 함진을 닦달하며 더 빨리 가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귀신의 모습에 절로 힘이 빠졌다·
[아이야 나에겐 네 심장이 필요하다· 네 심장의 영롱한 모습이 내게 기대를 주는구나· 네가 내게 심장을 주지 않는다면 나는 폭력을 쓸 수밖에 없단다·]
콰악!
마침내 19개의 머리를 가진 거대한 검은 귀신이 흑릉의 어깨를 잡았다·
“제자야! 제자야! 귀신이 나를 잡았다!”
콰드드득!
어둠이 흑릉의 몸을 파고들었다·
그것은 저주문이었다·
하나같이 끔찍하고 흉악한 저주들!
그 같은 평범한 마두는 생각조차 못 할 끔찍한 고문과 고통으로 점철된 저주들이었다·
흑릉은 이 귀신이 이 저주를 제련하기 위해 몇억의 생령들에게 고문을 행해 왔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끔찍한 저주문들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제자야! 귀신이 나를 아프게 한다! 제자야! 더 빨리 비행법기를 몰아라! 제자야! 함진아!”
함진은 비행법기에서 힘을 빼기 시작했다·
점차 비행법기가 느려졌다·
“흐끄아아아아아아!!! 끄아아아아아!!! 흐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아아!!!”
함진의 뒤쪽에서 끔찍한 비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생으로 거세를 당하는 환관들이 저런 비명을 지를까 싶은 비명·
함진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무한투귀가 그에게 들러붙은 이후부터 그의 제자들은 실험을 당할지언정 죽지 않았다·
하지만 함진은 분명히 기억했다·
그의 동기들·
그의 사형 사제들·
그가 무극귀왕에게 접신하기 전까지·
무수한 그의 벗들이 얼마나 이 악랄한 마두에게 실험체로써 희생당해 왔던가·
“끄아아아아악!!! 함진아!!! 함진아!!! 제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제발 나를 구해 다오! 여긴 어디야! 어머니이이!! 끄아아아악!! 흐끄아아아악!!!”
그 비명은 마치 귀곡성과도 같았다·
그는 아예 그 자리에 비행법기를 세우고 천천히 비행법기의 고도를 낮췄다·
콰악!
“이 개자식!!! 빨리 빨리 나아가란 말이다! 어서!!!”
뒤쪽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던 흑릉이 함진의 뒤에서 그의 목을 졸랐다·
그리고 그제야 함진은 뒤를 돌았다·
마신이라 불렸던 흑릉 노마·
염곡은 그의 뒤쪽에서 깨알 같은 저주문에 뒤덮인 채 죽어 가고 있었다·
“당장 비행법기를 움직이지 못해!! 제발 제자야 제발! 제에발!!!”
회광반조일까·
흑릉의 전신에서 마화가 타올랐다·
동귀어진이라도 하려는 듯한 모양새·
그러나 그때 함진은 아랫배가 꿈틀거리는 느낌을 느꼈다·
꿈틀 꿈틀··· 푸화아악!
다음 순간·
그의 아랫배에서 시커먼 어둠이 줄기줄기 뿜어지는 듯하더니 시커먼 뭔가가 튀어나왔다·
함진은 그것이 무엇인지 눈치챘다·
그것은 내단이었다·
무극귀왕이 그의 체내에 넣어 주었던 함진에게 여지껏 태극의 흐름을 보는 시야를 선사했던 신이한 기관!
그리고 함진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꿈틀 꿈틀····
내단이 허공에서 움틀거리며 누군가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그것은 백의의 남성이었다·
“···그렇군 이 내단은 당신의 분신이었습니까? 무한투귀··· 아니·”
그는 침을 삼키며 자신의 배에서 기어 나온 백의의 남성의 칭호를 정정했다·
“무극귀왕이시여····”
애당초 무한투귀는 무극귀왕의 수하 같은 게 아니었다·
무극귀왕 본인이 자신의 분혼을 한 줄기 불어넣었던 것이었다·
꾸득 꾸드드드득!
백의의 남성의 모습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스승님은 무극귀왕이 쫓아온다고 느꼈나 보군· 애초에 아니었어· 무극귀왕께서는··· 애초에 내 안에 숨어 계셨던 거야!’
그는 어째서 자신이 용맥의 폭발 속에서 멀쩡했는지를 이해했다·
꾸드드드득!
선한 모습의 남성의 어깨에서 18개의 머리가 튀어나온다·
머리는 하나같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피눈물이 흘러내리며 주변으로 저주의 꽃을 피워내었다·
흑릉은 함진의 뱃거죽을 뜯고 나타난 귀신을 보며 한 줄기 눈물을 흘렸다·
“히 히히 히히히히!!”
결국 그는 공포와 고통 속에서 정신줄을 놓은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19개의 머리를 가진 귀신이 흑릉의 머리통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헛웃음을 흘리던 흑릉은 그대로 한 줌 썩은 물이 되어 녹아 버렸고 그가 있던 자리에는 하나의 영패만이 남았다·
그것이 수많은 고아들을 납치해 잔혹한 실험을 하고 헌신짝처럼 무수한 목숨을 빼앗아 온 자·
유화국의 마지막 현인신·
마신 흑릉 노마 염곡의 최후였다·
함진은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눈을 감았다·
‘드디어····’
그는 무극귀왕이 누구인지를 이해했다·
여태껏 언제나 그를 옆에서 보호해 준 무한투귀와 동일 인물이었던 것이었다·
그는 소름 끼치는 외모를 가진 무극귀왕이야말로 믿을 만한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며 웃었다·
“나는··· 자유다·”
무극귀왕은 그런 함진을 잠시 쳐다본 후 녹옥빛의 영패를 들어 올렸다·
결단기인 흑릉의 손에 들렸을 때는 윙윙 울며 거부감을 표하던 녹옥의 영패는 귀왕에 손에 들리자 진동을 멈췄다·
그 정도라면 그래도 자신을 다룰 자격이 충분하다는 듯이·
위이이잉―
그가 영패를 쥐자 영패가 녹옥빛을 내뿜으며 주변으로 빛살을 흩뿌렸다·
* * *
나는 강환 분신에게 힘을 공급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함진에게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녹옥 영패의 힘에 의해 주변의 공간과 계위가 어그러지며 진법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진법은····’
진법은 결계를 형성해서 마치 물방울처럼 주변 일대를 뒤덮었다·
지이이잉―
경지가 낮은 이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진법이 발동하며 이 일대가 이 부해계와 분리된 걸 눈치챘다·
진법이 발동하는 동안 이 일대는 부해계와는 전혀 다른 이계(異界)였다·
나는 하늘을 보며 인력을 읽었다·
진법의 인력이 허공에서 얽히며 기묘한 문양을 그리고 있었다·
이 물방울 같은 이계 전체가 어떤 역할을 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하겠군·’
쇄성기 존자가 장익에게서 지키려고 했던 뭔가다·
조금 더 연구해 보면 재밌는 걸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위이잉―
나는 영패에 가하던 인력을 흩었다·
그러자 영패가 다시 빛을 잃으며 진법이 해제되었다·
동시에 부해계와 분리되었던 이계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다시금 주변의 천지영기가 이 세계와 동화되어 제대로 흐르는 게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함진을 보며 말했다·
[네게 부여한 내단은 내 강환 분신이었다· 하지만 오늘 힘을 전부 소비했으니 더 이상 천지영기를 보는 눈은 쓸 수 없을 터· 괜찮겠느냐?]
“···괜찮습니다· 대신 더욱 귀중한 걸 얻었으니 만족하나이다·”
스스스―
나는 귀왕화를 풀고 함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유란 소중한 것이지· 내 천기 유도 때문에 앞으로 사흘간은 이 근방에 폭우가 쏟아질 테니 어서 네 동기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피해 있거라· 그리고 이걸 잘 보관해 두어라·”
나는 녀석에게 영패를 맡겼다·
“내 이를 연구해야 하니 앞으로도 나를 계속 불러 다오· 그때마다 네게 도움을 주겠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나는 공령지가 아닌 감찰옥으로 이 세상을 주시하는 것이었기에 영패를 받을 순 없었다·
대신 앞으로 함진에게 맡긴 영패를 연구하러 자주 이 세계에 강림할 터였다·
“난 이만 가 보마· 집에 손님들이 더 찾아온 것 같군·”
나는 점차 의식을 거두기 시작했고 내게서 영패를 받은 함진은 내게 절을 올렸다·
“···감사했습니다 무극귀왕님· 아니····”
파아아아앗!
“···신이시여·”
나는 내게 절하는 함진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다시금 의식을 회수했다·
우우우웅!
파사사삭!
눈을 뜨자 다시금 서란과 시호의 앞이었다·
“이거 미안하군· 조금 시간을 오래 끌었구나·”
“아닙니다 하계에 필요한 일이라도 있으셨나 봅니다?”
“잠시 신경 써야 할 게 있어 말이지· 그것보다··· 나는 손님맞이를 하고 오마· 잠시 기다리거라·”
“예 알겠습니다·”
나는 서란과 시호를 방에 남겨 두고 무극교전을 나왔다·
바깥으로 나오자 새우와 자라 해마 등의 어족 요수들이 광음역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웬 놈들이냐·”
내 음성이 광음역 전체에 울려 퍼졌고 그들은 움찔거리더니 크게 외쳤다·
“우리는 위정해역의 지배자이시자 이 해역을 다스리는 정룡궁(政龍宮)의 궁주· 육린 궁주께서 보내셔서 온 사자들이다! 이계에서 온 존재들이여 그대들은 궁주님의 따님을 납치하여 구속하고 생명의 위협을 끼치는 심각한 무례를 저질렀다! 그러니 지금 당장 무릎을 꿇고 죄를 청하며 궁주님의 따님을 해방하라!”
“흐음··· 궁주의 이름이 육린이라· 하면 그 딸의 이름이 혹시 육요냐?”
“그렇다! 너는 지금 당장 따님을 데리고 오라! 그분께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시는 것이 궁주님의 법보에 관측되었다!”
‘서란을 꼬셔서 호위조차 없이 사기를 치는 방탕한 비단잉어가 궁주의 딸이라···· 어처구니가 없군·’
나는 조금 어이가 없긴 했지만 그러려니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손님으로 모신 것인데 시호에게 찢기도록 한 건 내 실수이자 무례였다·
“으음 그 점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되었다· 사과와 보상을 해 주지· 지금 그녀는 치료 중에 있으니 치료를 마치면 바로 돌려보내 주고 사과의 의미로 적절한····”
그리고 그때였다·
나에게 호통을 치던 자라 요수에게 새우 요수가 전음을 보내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자라 요수가 웃으며 외쳤다·
“저기 계셨군! 모두 총공격하라! 육요 님을 구출해서 데리고 간다!”
그리고 해수 요족들은 일제히 육요가 묵고 있는 귀빈각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콰과과광!
귀빈각이 무너졌고 그 안에서 일하던 선량한 저주인형들의 몸이 망가지는 게 보인다·
그리고 안쪽에서 치료받고 있던 육요가 깜짝 놀라는 게 느껴졌다·
그녀는 상공에 떠오른 해수 요족들을 보더니 화들짝 놀라 반대 방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육요 님 도대체 어딜 가십니까!”
꾸구구국!
자라 요수가 그녀에게 발을 뻗자 강력한 인력이 형성되며 육요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인력을 보아 사축기 대원만인 모양·
그러나 나는 강한 불쾌감을 느끼며 인력을 뿜어 그들의 힘을 중화시켰다·
“네놈들··· 죽고 싶은 게냐? 분명 치료가 끝나면 돌려보내 주겠다 했는데 감히 본교의 건물을 부수고 교도들을 해쳐?”
“닥쳐라! 본 해역에 함부로 침입해서 선량한 요족들이 살던 성란도의 주민들을 위협해 전부 쫓아냈으면서 무슨 적반하장이냐!”
“우리가 위협을 해? 쫓아냈다고?”
쿠그그그극!
나는 귀왕화를 하며 이를 갈았다·
[네놈들이 지금 내가 사축기라 어림짐작하며 본교를 깔아 보는구나·]
“네 이놈 지금 감히····”
[닥쳐라·]
퍼엉!
놈이 무어라 지껄이기도 전 나는 총천검을 날려 그대로 놈을 터트렸다·
사축기 대원만의 자라 요수는 그대로 터져 죽었다·
“····”
“····”
광음역을 둘러싼 해족 요수들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원래는 사과를 할 예정이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네놈들의 궁주가 본교로 찾아와 직접 본교의 교인들을 다치게 한 것을 사과하고 보상하여라· 그렇지 아니하면 궁주의 딸이라는 육요는 물론이고 네놈들도 다시 돌아갈 수 없을지어다·]
내가 흉험한 기세를 드러내자 그제야 그들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빠르게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그들은 빠르게 사방으로 흩어지며 줄행랑을 쳤다·
나는 직접 움직이지 않고 입을 열었다·
[대호법! 손 그만 만지작거리고 저 발칙한 놈들을 모조리 잡아 와라!]
나는 방금 쳐죽인 자라 요수의 혼이 혼의 계위를 통해 왔던 곳으로 가는 걸 보며 눈을 빛냈다·
저 자라 요수가 부활해서 궁주에게 내 말을 전해 줄 터였다·
그러니 나머지 잡것들은 모조리 인질이다·
나는 저 멀리 나름 열심히 도망치는 중인 육요에게 손을 뻗었다·
육요가 내 앞으로 끌려왔고 내 명을 받은 전명훈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콰르르릉!
합체기에 도달한 그는 붉은 적뢰를 내뿜으며 하늘에서 팔짱을 끼는 듯하더니 천둥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놈들을 잡으러 간 것이었다·
난 육요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거··· 그냥 서란 얼굴을 해서 서란의 위치를 알아볼 겸 현지 안내인을 구한 것이었다만····]
육요는 한껏 불안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꽤 귀한 몸이셨나 보군· 네 정체를 말해라·]
“그 그것이····”
[참고로 내 교도들이 다친 상황이라 심기가 조금 불쾌하군· 거짓을 고하면 죽일 것이다·]
“히 히익····”
그녀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자신의 신상 내력을 읊기 시작했다·
“저 저는 사실 위정해역을 다스리는 정룡궁 소속입니다· 아버님께서는 정룡궁주이신 육린 태수이십니다· 아버님이 저를 공주(公主)로 봉하신 이후 정략 결혼을 행한답시고 악명이 자자한 투귀족의 해적 두목에게 저를 팔아넘기신다길래 200년 전에 가출했었습니다!”
어째 아까는 협박을 해도 계속 거짓을 고하더니 귀왕화를 한 채로 협박하자 그녀는 기절할 듯한 안색이 되어 진실만을 늘어놓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격노하며 눈에서 귀화를 내뿜었다·
[과연 궁주의 딸이라 그렇게 대담한 것이었나? 자신이 절대 죽을 리 없다 생각해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숨겨 놓는 게 있는 것이냐?]
그녀의 말은 분명 진실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내게 뭔가를 숨기려 하는 게 느껴졌다·
육요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아무래도 조금 밝히기 부끄러운 진실이 있는 듯했지만 교도들이 다친 탓에 분노한 나는 그녀를 배려할 만큼 인내심이 남지 않았다·
그녀는 내 기세를 받아 내기 힘든지 숨을 몰아쉬다 내게 진실을 고하였다·
“사 사실 제가 먼저 정룡궁에 고용된 투귀족 해적단에 잠입해 해적단장이 구한 비술(祕術)을 훔쳤고 그 사실을 알게 된 그가 분노하며 아버님께 저를 달라고 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이런 추태가 어디 있느냐며 저를 혼인시키려 하셨길래····”
[····]
‘처음에는 정략혼을 하기 싫어 사랑을 찾아 떠난 서사인가 싶었는데 이건 뭐··· 본인이 잘못한 거였군·’
아마 그 자라 놈이 먼저 공격하지만 않았다면 그냥 육요를 던져 줬지 싶었다·
‘뭐 이런 망나니가 다 있지·’
나는 어이가 없어져서 물었다·
[무슨 비술을 훔친 거냐?]
“아··· 아까 보신 용형둔갑술입니다· 제가 볼 땐 제 잘못이 아니라 대성하면 진짜 용이 될 수 있게 해 준다는 비술을 훔쳐 가기 좋게 놓아 둔 그 해적단장 잘못이지 싶습니다·”
[····]
나는 진지하게 그냥 정룡궁에 사과하고 이 망나니 같은 잉어를 넘겨 버릴까 고민했다·
* * *
위정해역·
정룡궁·
그 안쪽에서 원영기 수행을 갖춘 자라가 헐레벌떡 어딘가로 뛰어갔다·
방금 전 서은현에게 죽음을 맞이했다 막 부활한 자라 요수였다·
그는 궁의 중심·
궁주를 알현하는 알현실로 뛰어들어가 궁주에게 방금 전의 상황을 소상히 고하였다·
얼마 후 자라에게 전말을 전해 들은 정룡궁주 육린이 노기를 풍기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쿠구구구구!
합체기 태수이기도 한 육린의 분노에 자라는 납죽 엎드리며 시선을 깔았다·
[그 망둥이 같은 것은 아직도 내 속을 썩이는군···· 그 망둥이는 둘째 치더라도 정룡궁의 수하들이 인질로 잡히면 본궁의 위신이 말이 아니겠지·]
그는 노기를 드러내며 당장이라도 무극교단이 있는 방향으로 향할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육린은 신중한 눈빛으로 자라에게 명했다·
[하지만 정체도 모를 이계의 괴물들과 함부로 상대할 순 없다· 먼저 선발대를 보내서 전력을 가늠해본 다음 본 궁주가 나서겠다· 대신들은 들으라!]
쿠구구구구!
그의 음성이 정룡궁 전체를 울렸다·
[전 해역에 소식을 전하라! 지금 정룡궁의 공주로 봉해진 나의 여식이 이계의 귀물들에게 잡혀 있다 하니 내 수하들과 여식을 구해 오는 이는 그게 누구든 공주와 결혼시켜 정룡궁을 이어받게 해 주겠다!]
육린의 명에 정룡궁의 요수들은 바삐 움직이며 전음 법기 등으로 각 해역에 그의 명을 전달했다·
그리고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정룡궁 앞으로 수많은 수사들이 모여들었다·
그들 중 가장 경지가 낮은 이도 천인기였으며 절대다수가 사축기였고 심지어 합체기 초기이기는 했으나 태수까지 있었다·
수많은 사축기 수사들은 육린을 쳐다보며 기대 어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듣자 하니 정룡궁의 공주께서는 그렇게 미색이 출중하시다지?”
“그리고 얼마나 상냥하고 천진한지 그 소문이 자자하시다더군·”
“그렇게 현숙하고 조숙하시다 하니 그분을 구하기만 하면 최고의 신붓감을 얻는 게로군·”
“하하 뭐 그것도 그렇지만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공주님을 구하면 바로 정룡궁의 후계자가 된다니! 벌써 가슴이 떨리는군·”
여러 기대가 가득한 소리가 울렸지만 그 중에서 입을 닫고 가만히 있는 이들도 있었다·
그중 이 자리에 있는 유일한 합체 초기의 태수·
투귀족의 태수이자 여러 해역에서 악명 높은 해적단의 단장 진마열이 정룡궁의 알현실에서 육린과 눈을 마주쳤다·
진마열이 육린을 쳐다보며 말했다·
“육 궁주· 약조는 지키시길 바라오·”
작은 목소리였고 무수한 요족들이 떠드는 소리 때문에 시끄러웠지만 육린은 그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마친 진마열은 따로 더 설명을 듣지 않고 바로 알현실을 나섰다·
육린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모인 사축기 수사들에게 간단한 설명을 해 주었다·
“미리 말하지만 공주 외에도 본궁의 수하들을 구해 오는 이들에겐 본궁의 명예 대신 직을 내릴 것이다· 만약 직접적으로 공주를 구하지 못해도 공주 구출에 일익을 담당한다면 충분히 보상할 것이다·”
“예!”
사축기 요족들은 하나같이 우렁차게 답했다·
“자 그럼 빨리 내 딸과 수하들을 구해 오라 용사들이여! 어서! 내 수하들이 이계의 존재에게 고문당하지 않도록!”
그 말에 알현실에 있던 무수한 사축기 천인기 수사들이 일제히 비둔술을 쓰며 알현실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육린은 알현실에 남아 있는 마지막 한 명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놀랍게도 알현실에 남아 있는 한 명은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잘 쳐 봤자 축기기 정도의 기운!
‘뭐지 이놈은?’
육린은 이 눈치 없는 벌레를 터트려 죽일까 생각하다가 문득 자신의 기세를 유연하게 받아넘기는 자가 보통 존재는 아닐 것이란 판단을 했다·
“···너는 뭐냐· 왜 남아 있는 거지?”
그 말에 흑색 무복을 입고 삿갓을 쓴 인영이 씨익 웃었다·
“안녕하십니까 궁주님· 일단 궁주님께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자 찾아왔습니다·”
“흠·”
‘감히····’
쿠구구구국!
육린은 눈앞의 벌레를 터트려 죽이려 공간을 짓눌렀다·
하지만 다음 순간·
붕 붕!
황금빛이 번뜩이는 듯하더니 육린의 힘이 그대로 잘려 나갔다·
육린은 눈앞의 존재를 노려보았다·
“실례했군· 기운이 너무 헷갈려서 벌레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려 함이니 너무 노하진 말게·”
“하하 그러실 수 있지요· 일단 저희가 만약 공주님과 궁주님의 수하들을 구출해 온다면 공주님과의 결혼이나 대신 직위 대신 다른 보상을 요구해도 되겠습니까?”
“흐음····”
육린은 눈을 찌푸렸다·
‘고기 방패 대신 보낸 거였어서 보상을 줄 생각 따윈 한 적이 없었다만····’
그나마 기대를 하는 건 합체 초기인 진마열이었으나 그에게는 애당초 딱 맞는 보상이었기에 큰 상관은 없었었다·
‘하지만 눈앞의 이 자··· 위험하군· 어디서 이런 자가 나온 거지?’
그는 긴장을 끌어올리며 물었다·
“원하는 보상이 뭐지?”
“별 것 없습니다· 저희가 최근 해역 하나를 점령했습니다만 해역의 궁주로 인정받으려면 이웃 해역의 인정이 필요하다 해서 말이지요· 궁주께서 인정을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에 육린이 눈을 부릅떴다·
“그렇군· 너는 설마 정복왕(征服王)의 수하인가?”
“으음··· 수하라· 동료 관계라 해 두지요· 그래서 수락하실 겁니까?”
“···내가 수락하면 정복왕의 무패 함대가 내 해역에 진입하는 건가?”
“전부 진입하는 건 아닙니다· 함대 전력의 3분의 1만 진입하기로 되어 있지요·”
“뭐 좋다· 그 정도라면···· 그런데 그 정도로 이계의 존재에게서 내 수하들을 구출할 수 있나?”
“충분합니다·”
“····”
고민하던 육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해 봐라·”
‘이 참에 정복왕의 세력이 가진 힘도 구경이나 해야겠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저벅 저벅····
평범하게 걸어서 알현실을 나서는 흑색 무인을 보며 육린이 말했다·
“빨리 가야 하지 않나? 늦어서 다른 이들이 공주를 구출하면 나는 그대들과 한 약조를 지킬 이유가 없다·”
“아하 괜찮습니다·”
허리춤에 낡은 도를 찬 그가 뒤를 돌아보며 웃었다·
그의 눈에선 일말의 황금빛이 번뜩이는 듯했다·
“제가 왔으니까 말입니다·”
알현실을 걸어나간 그는 육린이 눈을 한 번 깜빡이자 사라져 있었다·
“···!”
육린은 그자가 움직이는 순간을 보지 못했단 놀라움에 몸을 움찔거렸다·
“···위험하군 정복왕의 세력은····”
따악!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알현실의 바닥이 빛나며 위정해역의 전체 해도를 환영처럼 띄웠다·
해도에는 위정해역 전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실시간으로 띄워지고 있었다·
육린은 위정해역의 한 귀퉁이에서 자그마한 환영들이 무수히 나타나는 걸 보았다·
셀 수 없이 많은 함선들이 위정해역의 상공에 출현하였다·
===
작가의 말: 슈베르트의 <마왕>을 패러디해 보았습니다· 사실 이거 패러디를 너무 해 보고 싶어서 함진 에피를 만들었습니다;;
회귀수선전(回歸修仙傳) 36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