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잡고 (4)
육린에 대한 심문이 끝났다·
육린이 우리를 배신하려 한 방법은 두 가지·
첫째는 봉래도에 진입하면 모든 언약과 계약이 사라지는 특성·
그리고 둘째는 봉래도 내부의 또 다른 특성이었다·
‘정말 기이하군·’
육린의 말에 의하면 봉래도의 내부는 일종의 거대한 환상진법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환상진법에 진입하면 우리에게 맞춰 환상진법 내부의 세계가 재구성되고 우리는 환상진 내부의 등장인물이 되어 그 인물이 가진 힘과 능력으로만 진법 내부를 탐사해야 한다 했다·
‘그 ‘등장인물’에게 부여되는 힘은 원래 종족이 가지고 있던 힘이라 했으니···’
나나 다른 이들은 인간의 힘·
그리고 시호나 육린 등은 여우와 용의 힘을 얻을 게 뻔하였다·
한 마디로 그는 봉래도 안쪽으로 진입하면 봉래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언약과 계약을 무효화하는 특성’과 봉래도의 진법이 부여하는 ‘해당 종족이 원래 가진 힘을 제한 모든 힘을 무효화하는 특성’을 가지고 우리를 배신하려던 것 같았다·
‘꽤 낭패를 볼 뻔했군·’
그러나 아마 그의 뜻대로 속아서 봉래도에 진입했더라도 나와 김영훈은 그리 위험하지 않았을 것 같긴 했다·
원래 인간족이 가진 힘을 제하고 모든 수행을 쓸 수 없게 된다?
‘어차피 무공은 쓸 수 있었을 테니 말이지·’
쿠구구구구!
지금은 고력계의 밤이었다·
낮이나 밤이나 별자리의 유무로만 나뉘는 명귀계와는 달리 고력계는 확실하게 낮과 밤이 나뉘었다·
고력계의 하늘 위로 쭉 늘어진 고리 같은 것은 월광 비슷한 빛을 내뿜고 어두침침한 밤의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우리는 현재 정룡도를 지배한 후 일단 인근 해역의 북향함대와 합류하기 위해 육린을 생포한채로 타 해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마 송진도 곧 볼 수 있으리라·
나는 광음역의 끄트머리에서 고력계의 밤바다를 보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명귀계의 귀신들은 본래 낮보다 밤에 기력이 넘쳤기에 지금 신이 나서 귀신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정룡도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왔다니 다들 가슴이 뿌듯한 듯 했다·
나는 그들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만약 내 회귀의 고정 조건이 정말로 수계를 갔다 오는 것이라면··· 한 번 더 다녀올까?’
수계는 너무나도 두려운 곳이다·
그곳에서 소금산의 주의 흔적을 느꼈던 것만으로 나는 아득한 공포와 절망을 느꼈었다·
그 세계는 까마득한 악의와 불길함으로 가득찬 세계다·
하지만···
‘이들마저 사라진다면···’
내 가슴은 어떻게 미어질지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수축을 쌓기 위해 만든 교단이었으나 이제 저들은 나의 일부가 되었다·
우우웅-
내 의식이 광음역을 휩쓸었다·
정룡도에서 한 봉사활동을 자랑하며 귀신 잔치를 벌이는 귀물들·
연진의 육체를 잠시 빠져나온 연위의 분혼과 그녀를 마구 찬양하는 수호귀왕들·
2세 만들기에 열중인 위시혼과 음와·
육요의 상처를 간호하는 백린·
서란에게 안마를 받는 중인 시호·
연진과 단둘이 방에서 공법 수련을 하는 전명훈·
대창천개벽문의 방식으로 강해지고 싶단 귀물들을 단련시켜 주는 오현석·
술을 마시고 잔뜩 꼴아서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김연과 북향화·
‘평화롭군·’
수계가 아무리 불길할지언정·
그곳에 다시 다녀와서 이들과 계속 함께할 수 있다면 언제든지 다시 갈 것이다·
‘봉래도의 소금산에 대해서 조사하고 청문령을 치료할 방법을 알아낸 후·’
수계에 내려가 할 수 있다면 회귀를 고정할 것이다·
‘그래 이번 생에 수계로 갈 수 있으면 다시 가 보자·’
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고력계의 밤바다를 둘러보았다·
우우웅-
고력계의 밤바다는 굉장히 신비로웠다·
쏴아아아-
저칫 바닷물이 철썩이는 것처럼 들리는 이 소리·
그 소리의 안쪽으로 무수한 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 너머 고력계의 바다 전체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소근소근소근소근···
너울치는 바닷물 위쪽으로 수많은 인영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얼마나 그것을 보고 있었을까·
“은현아 고력계의 밤에는 심해를 보고 오래 보고 있으면 안 된다·”
“···영훈 형님···?”
나는 뒤를 돌아 나를 부른 김영훈을 바라보았다·
그는 한쪽 눈에 멍이 들어 있었고 옷이 몇 군데 찢어져 있었다·
치이이이-
김영훈은 치유부적을 몸에 붙여 몸을 치유하는 중인 듯했다·
“육린과 싸울 때는 상처를 입지 않으신 걸로 압니다만?”
“아 이건 오현석한테 입은 상처다·”
“예?”
“오현석이랑 술 먹다가 녀석이 익힌 수도공법을 보아하니 일전 내가 잠시 추구했던 길과 닮아있길래 어떻게 수련하느냐고 물어봤지· 그랬더니 놈이 나를 수련시켜 주겠다는 게 아니냐· 그래서 그러라고 했더니 이 미친놈이 나를 기둥에 묶어놓고···”
“···저런·”
대창천개벽문의 방식으로 잠시 수련당했던 것 같았다·
일전 김영훈은 무공을 수련하던 중 무공이 요수공법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되고 그걸 수련하려 했던 적이 있었다·
이번 회차의 김영훈도 그 길을 잠시 가보려 했었긴 했던 것 같았다·
“그런데 현석 형님을 회쳐놓고 빠져나오진 않으셨군요?”
“친한 동생한테 좀 맞을 수도 있지 그거 가지고 꽁해서 칼질하면 되겠느냐·”
“그럼 왜 저한텐···”
“너는 칼질 안하면 내가 죽을 것 같아서 말이다·”
김영훈은 낄낄 웃으며 치유 부적의 효과로 상처가 다 낫자 부적을 떼어버린 후 칼집에 손을 올렸다·
“한번 더 하시려고요?”
“하하 내 애병들도 다 박살났는데 너랑 한번 더 하면 이번에는 저항도 못하고 두들겨 맞기나 하겠지· 내가 온 건 다른 이유 때문이다·”
부웅-
그가 칼집에서 도를 뽑아 허공에서 휘둘렀다·
딱히 내게 참격을 날리거나 공격을 가한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한 줌의 살기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의 일수에 순간 눈 앞의 세상이 쪼개지는 듯한 환영을 보았다·
“···너와 싸우며 다음 경지를 넘보았다·”
“····!”
나는 그 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김영훈이 도달한 ‘다음 경지’라면 한 가지밖에 없었다·
‘어 어전 2보? 장익과 동일한 경지라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이내 김영훈의 특성을 생각하고는 피식 웃었다·
“그럼 50년 정도 후면 이젠 제가 영훈형님께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겠군요·”
“···글쎄 그건 아니야·”
“아 그럼 100년입니까?”
“그것도 아니야·”
“몇백 년 정도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
“······”
그러나 김영훈은 내 기대섞인 질문에 오히려 음울해지는 것만 같았다·
“···형님?”
“···일단·”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 재능으로도 이 깨달음을 얻고 수백년은 절착탁마해야 다음 경지에 오를 가능성이 보일 터다·”
“하하 아직 영훈형님께서는 수도계의 시간감각에 익숙해지지 않으셨나 보군요·”
“하지만·”
그러나 그가 입술을 짓씹으며 우울한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다음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
“예···?”
잠시 김영훈을 바라보던 나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하하!!!”
비웃음이 아니라 진심으로 재밌어서 나오는 웃음소리였다·
내가 김영훈에게 저 말을 몇 번이나 들어봤더라?
“형님! 자기 자신을 믿으십시오·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이젠 저 소리를 한 김영훈이 다음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공식이나 다름 없을 정도였다·
물론 이전에는 수명 문제로 많이 꺾이곤 한 김영훈이었지만 이 경지에 도달하며 수명이 만 년이나 추가된 그라면 충분했다!
그러나 김영훈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도를 들어올렸다·
난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무색유리검을 꺼내 늘어뜨렸다·
“그냥 순수하게 무(武)만 겨뤄보자꾸나·”
“좋지요·”
다음 순간 나와 김영훈은 서로에게 달려들어 무를 주고받았다·
둘 다 과한 내공이나 법력 등은 쓰지 않았다·
나와 그는 순수하게 인간에게 흐르는 생체력만을 검에 흘리며 기예를 겨루었다·
얼마간 합을 주고받던 우리는 점차 움직임이 과격해졌다·
김영훈이 우측에서 좌측으로 핑그르르 돌며 도를 휘둘렀다·
그의 칼끝이 내 뺨을 흝었다·
내 검이 오른발 위쪽에서 김영훈을 올려베며 그의 눈 밑에 세로로 실금을 그었다·
타닷!
타다닷!
우리는 기본적인 몸의 생기만을 사용했지만 그마저도 우리 수준의 고수가 사용하니 어마어마한 힘의 증폭률을 보였다·
김영훈과 나는 순식간에 광음역의 끝에서 끝으로 이동하며 서로의 그림자라도 베고자 춤을 추었다·
그는 너무 빨라서 좇기 힘들었고 나는 너무 자유로워서 맞기 힘들었다·
얼마간 광음역 전역을 쏘다니던 중 나는 문득 광음역에서 벗어나 거대한 허공·
고력계의 밤바다 위쪽에 도착했단 걸 알아챘다·
물론 허공을 밟고도 움직일 수 있었기에 대결에 문제는 없었다·
쿠구구구구!
어느새 광음역은 허공에서 열심히 칼질하는 우리를 지나 점차 해역의 수평선을 향해 나아갔다·
위정해역을 벗어나기 위해 공기방울과 같은 해역의 끝자락·
궁창으로 이뤄진 ‘벽’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타닷!
얼마간 그와 검을 주고받던 나는 김영훈의 공격에 순간 균형을 잃고 심해에 빠질 뻔하였다·
촤아아악!
다행히 심해에 빠지기 직전 총천검을 전신에 씌운 상태로 허공에 떠올랐기에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
나는 황당한 것을 보았다·
토옹-
맑은 소리가 들리는 듯 하더니 김영훈이 심해 ‘위’에 그대로 발을 디디고 선 것이었다·
“···어떻게 한 겁니까?”
“그리 어렵지 않다· 이건 진짜 물이 아니라 일종의 차원이니까 차원을 밟고 선다 생각하면 쉽다·”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하는 겁니까·”
“차원을 밟고 서 있으면 된다· 균형만 좀 잘 잡으면 돼·”
“······”
나는 이해를 포기하고 그냥 심해의 수면 근처에 떠 있었다·
잠시 피식 웃던 김영훈의 주변으로 문득 환영들이 떠올랐다·
내가 아까 광음역의 끄트머리에서 봤던 환영들이었다·
환영들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고 그저 희뿌연 그림자처럼만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문득 그림자들을 보던 도중 어쩐지 기시감이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그때 김영훈이 자신의 옆에 다가온 환영 중 하나를 그의 도로 겨누며 말했다·
“고력계의 바다는 대상의 과거를 비춰주지· 그래서 가끔 나도 밤바다를 보면서 지구 생각을 한다· 물론 항상 마음에 드는 얼굴들만 비쳐지는 건 아니라 짜증날 때도 있긴 하다만···”
“아···”
‘그렇군· 이 기시감은···’
난 고력계의 밤바다에서 느껴지는 기시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고력계는 내게 만상인연도를 비춰주고 있었다·
잠시 근처에 다가온 환영에게 칼을 들이밀던 김영훈은 경계하는 눈초리로 말했다·
“조심해라· 간혹 고력계의 평범한 환영인 척 하며 심해 마물들이 나타나서 흉내질을 하곤 하니까·”
내게 경고를 해준 그는 그대로 칼을 휘둘러 환영을 베어냈다·
스릉-
환영이 그대로 스러졌다·
김영훈의 주변에서 스러진 환영은 자신의 팔에서 튀어나온 채찍같은 걸 휘두르다가 사라졌다·
김영훈은 그 환영을 베어내며 내게 물었다·
“묻겠다 서은현· 너는 무(武)가 무엇이라 생각하지?”
“···모르겠군요·”
간단히 단정하기엔 너무 방대하고 너무 어렵게 짐작하기엔 쉬운 대답이다·
그것이 무(武)라는 것의 의미였다·
“어쩌면 저는 무인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게 무공이란 삶의 일부일지언정 모든 것은 아니었다·
동시에 내가 익힌 수많은 수도공법들과 함께 나의 힘 중 하나였기에 나는 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료하게 말할 수 있다 자신할 순 없었다·
그러나 김영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는 무인(武人)이 맞다· 내가 보증하지·”
“무공뿐 아니라 수도공법이나 요수공법도 같이 쓰는데 말입니까?”
“글쎄··· 그런걸로 너를 무인이 아니라 단정짓기에는 나는 이미 무인이 아닌 자를 봤기 때문에 도리어 네가 무인이라 확신할 수 있다·”
우우웅-
아까 김영훈이 베어버렸던 환영과 똑같은 환영이 다시금 일어나 그를 공격해 왔다·
조금 거슬려하던 그는 이제는 딱히 신경조차 쓰지 않고 그 환영을 무시했다·
환영은 그대로 김영훈을 스치고 지나갔고 나는 그 환영의 윤곽을 어딘가에서 봤다는 걸 깨달았다·
‘그 자군·’
투마해적단이라는 해적단의 단장이자 전명훈과 맞붙었던 진마열이란 이였다·
김영훈은 그 환영을 흘긋 보고는 말했다·
“고력계에 왔을 당시 나는 한 악명높은 해적단의 단장과 겨뤘다· 놀랍게도 그는 입천의 경지에서 수천년 동안 머문 자였지· 나 또한 처음에는 그가 무인이라고 생각하여 그를 예우하려 했다· 하지만 몇 합을 겨루니 알 수 있었다· 그 자는 무인이 아니었어·”
“무인이 아니라···”
기이한 일이었다·
분명 그 자는 답천에 올라 있었다·
어쩌면 김영훈과 맞서싸운 후 깨달음을 얻고 올라간 걸지도 몰랐다·
그런 그가 어째서 무인이 아니라는 걸까?
“나는 그랬기에 그 자의 무기를 빼앗았다· 무인도 아닌 자의 손에 있기에는 너무 좋은 칼이었거든· 네가 부순 칼 중 내 손과 융합해서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던 요도가 그의 것이었다·”
“아 기억나는군요·”
확실히 질긴 칼이었어서 갈갈이 찢어버리는 데에 시간이 조금 들긴 했었다·
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그 자가 어째서 무인이 아닙니까?”
육린이 그의 시선을 보호하려 법기까지 구했단 것은 그가 완벽히 심족의 시야를 가졌단 것이었다·
거기다가 합체기인 그가 답천에까지 올랐다면 그 노력은 감히 말할 수 없는 것일 터였다·
그런데 어째서 김영훈은 그를 무인이라 인정치 않는 것일까·
김영훈은 잠시 침묵하더니 도를 들어올렸다·
“···내가 왜 다음 경지에 도달하는 게 불가능한지를 보여주마· 그러면 너도 이해할 것이다·”
토옹 통-
그는 차원을 밟으며 도무를 추기 시작했다·
주변의 환영들이 과거의 잔상들이 그의 춤사위에 의해 그대로 베여나갔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그의 움직임은 전혀 잔상이 남지 않았다·
말 그대로 ‘지금 이 순간’에만 김영훈이 존재하는 듯 하다·
형이상학적인 표현이었지만 사실이 그러했다·
김영훈의 천지영기가 읽히지 않았고 그의 다음 행동이 예측되지 않았다·
역사와 운명 그 어느 경계에서도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기이한 공(空) 안에서 그의 칼춤이 끝났고 나는 탄성을 뱉었다·
재능이 일천하지만 그래도 수천 년간 검을 잡아온 자로써 알 수 있었다·
“···청문령 대인 때문에 다음 경지에 대한 이름을 짓지 않으셨다 했지요?”
“뭐 그랬지·”
“실상은 이미 지어 놓으셨군요·”
나는 방금 전 그의 춤에서 울려퍼진 이름을 나직히 뱉었다·
어전일보·
이 경지를 김영훈은 무엇이라 이름붙였는가·
“좌탈입망(坐脫立亡)이 아닙니까?”
회귀수선전(回歸修仙傳) 37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