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수선전(回歸修仙傳) 396화
들이키며 (6)
쿠구구구궁!
거대한 검광(劍光)이 빛나며 그대로 정룡도를 요격한다·
반대쪽에서는 황금빛 도광이 빛나며 정룡도를 썰어 낸다·
나와 김영훈의 합격이었다·
‘길었군·’
나와 그가 정룡도를 치는 데에 이렇게까지 오래 걸린 건 이유가 있었다·
일단 첫째는 배신이었다·
진마열의 본성은 나와 김영훈 모두 알고 있었고 언제든 기회가 되면 뒤통수를 칠 인물이란 걸 알았기에 그를 억제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진마열이 우리를 배신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나는 본래 육린과 우리 사이의 계약을 주재했던 ‘현고지’를 구해 봉래도 위쪽으로 천천히 올려 보내야 했다·
총천검을 통해 혼의 계위로 물질을 올려야 했기에 굉장히 난도가 높은 일이었고 그것이 꽤 시간을 잡아먹었다·
그리고 둘째로는 일단 백린을 구한다 쳐도 어떻게 봉래도까지 데려올까에 대한 계획이었다·
백린을 구해 봤자 육린이 다시 잡아가려고 하면 답이 없었기에 육린이 손을 쓰기 전에 다시 빠르게 봉래도로 데리고 와야 한다·
그에 대한 것은 고력계에서의 경험이 많은 진마열과 북향화가 도움을 주었다·
“염골호를 중간지대로 삼아서 해역을 건너뛰는 방식으로 데려오죠?”
아무리 심해 속을 잠수하는 게 가능한 염골호라 해도 봉래도까지 깊이 잠수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염골호가 잠수할 수 있을 때까지 잠수한 후 해역과 해역을 건너뛰는 방식인 ‘중간지대’를 만들어 건너는 방식을 통해 백린을 데려오라는 말이었다·
그녀의 조언과 진마열의 협조로 염골호를 중간지대로 사용할 수 있게 개조하기 위해 시간이 다시 걸렸다·
그 과정에서 투마해적단과의 마찰도 조금 있었고 진마열이 간혹 불쾌감을 느끼기도 했기에 개조하는 시간은 늘어졌고 그러한 이유들 덕에 80여 년의 세월을 거쳐서 겨우 백린을 구하러 오게 된 것이었다·
“잘되어 가는군· 계획에는 실수가 없어야 할 거다· 육린이 염해귀로옥을 대성할 만큼의 염정을 얻고 벌써 반올림해 10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났으니 그의 힘은 가히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일 거다·”
우웅!
내 옆에 나타난 진마열의 투영체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나는 그를 쏘아보았다·
“너희 해적놈들이 진즉에 협조를 해 줬으면 더 빠르게 올 수 있었는데 말이다·”
“부하 한 놈 살리겠다고 그렇게 시간을 들이는 네놈이 이상한 거다· 그리고 네놈이 내 배를 그따위로 개조해 놓는데 당연히 반발심이 들지 안 들겠나?”
“네놈도 이득이 됐으니까 결국 수락한 거겠지· 정복왕 북향화의 개조에 의해 네놈들 배는 이전보다 거의 열 배 가까이 성능이 좋아졌어·”
“그래 봤자 너희 북향함의 하위호환일 뿐이지·”
“사설은 됐다· 이제 시작된다· 너야말로 제대로 움직여라·”
“누가 할 소리·”
진마열은 툭 쏘아붙인 후 투영을 해제했다·
쿠구구구구!
정룡궁의 중심·
그곳에서 이제는 완전히 육웅의 몸에 익숙해진 듯한 육린이 거체를 드러냈다·
그의 주변으로 수 명의 사축기 신하들이 몸을 드러낸다·
지이이잉-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고력계의 바다 전체가 윙윙 울었다·
염해귀로옥이라는 것이 과연 고력계의 바다와 상성이 좋기는 한 모양·
찌릿찌릿-
‘미쳤군····’
반대편에서 김영훈이 심상치 않다는 둥 괜찮은 게 맞냐는 둥 심어를 보내왔다·
그러나 육린 본체를 마주한 나는 알 수 있었다·
‘고력계의 해역 하나가 사실상 놈의 영역이나 다름없다·’
천족은 합도영역을 펼치고 지족은 합도영역을 몸에 동화시킨다·
그렇다면 천지쌍수를 하는 이들은 어떨까?
단순했다·
합치는 것과 동화시키는 걸 ‘둘 다’ 할 수 있게 된다·
그것도 동시에·
[지난번에 그 알량한 분체로 내게 대적할 수 없었던 것을 잊었느냐? 한데 백여 년이나 지나고서 신공의 성취가 일취월장하는 나를 찾아오다니··· 그 알량한 분체조차 지워 달라는 것이겠지?]
우우웅!
육린의 몸체가 점차 푸른 바다를 형상화시킨 것처럼 변한다·
그의 갈기는 풍랑이·
그의 비늘은 파도가 된다·
지이이잉-
거기에 더불어 위정해역 전체가 육린을 중심으로 징징 울었다·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지금 사실상 저놈은 몸과 동화한 영역에 더불어 위정해역 전체를 영역처럼 삼을 수 있다·
그러므로 놈은 사실상의 천지쌍수 합체기 대원만이라는 의미였다·
‘내 본체에 거의 필적할 정도···!’
심지어 삼태극 수준이 아니라 천지심괴를 전부 꺼내야 할 터였다·
그러나 나는 싱긋 웃었다·
“그것 참 무섭군·”
부웅!
나는 녀석이 뭐라 지껄이든 아랑곳 않고 다시 한번 좌탈입망의 일격을 날렸다·
콰드드득!
육린의 몸에 투명한 상흔이 나는 듯했으나 순식간에 복원된다·
녀석이 달덩이 같은 눈을 빛내며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웃었다·
[어리석긴· 본 궁주가 도망칠 기회를 주었는데도 버틴다는 것이냐? 분명 너희는 잡기가 어려우나 해역 전체가 내 영역이나 다름없는즉· 너희는 위정해역을 전장으로 삼은 순간부터 내 뱃속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다·]
“확실히 염해귀로옥을 상당히 익힌 걸 보니 분체로는 조금 무섭긴 하군· 하지만 한 가지 착각한 게 아니더냐?”
난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합체경 정도 됐으면 승산 없는 싸움은 안 한다·”
[아하하하 너희가 뭔가 숨겨 온 게 있는····]
“주절주절 입으로 떠드는 건 이쯤 하지·”
나는 자세를 잡고 총천검과 함께 육린에게 다시 한번 좌탈입망의 일격을 먹였다·
그는 다시 한번 상처를 입었으나 콧웃음을 지었다·
이제 이 정도 상처는 그저 결단기가 머리통이 없어진 상처에 불과하다는 듯 그는 너무나도 멀쩡해 보였다·
[이게 무극교단 최강자 교주의 힘이더냐? 정말 백여 년 동안 변한 게 아무것도 없구나· 아하하하하!]
“아··· 그렇긴 하지·”
나는 빙긋 웃으며 육린의 주변을 마구 옮겨 다니며 그의 주위를 끌었다·
재밌는 일이었다·
분명 80여년 전까지만 해도 육린을 정면에서 상대하는 건 나고 김영훈이 속도를 이용해 그의 주위를 끄는 쪽이었다·
그러나 지금 오히려 내가 주위를 끌며 그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유야 간단했다·
쿠구구구구!
뒤쪽에서 정신을 집중하던 김영훈이 눈을 빛냈다·
장익의 깨달음과 교감하던 김영훈에게 강제로 좁은 땅에 갇혀 80여 년간 교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김영훈에게 장익의 박도를 박아 넣고 80여 년·
상상이 되는가?
드드드드드!
[뭐 뭐?]
해역이 진동한다·
장익의 깨달음에 나와 교감하며 얻은 내 대막사해성의 깨달음·
그리고 천인기 사축기 수사들과 깨달음을 나누며 그들의 천기유도와 인력에 대한 깨달음까지 얻어 자신의 무기에 접목시킨 한 사내가 있었다·
위정해역 전역의 빛이 일순간 자그마한 도에 몰리는 듯했다·
착각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 짧은 순간 위정해역 전역의 천지영기가 저 작은 도 안으로 빨려들어 갔으니까·
능광(凌光)이란 이름을 짊어진 도·
그 도는 한 사내의 손과 일체(一體)되어 있었다·
그는 곧 능광이었고 능광은 곧 그였다·
나는 일순간 한 마리 황금빛 붕조가 육린의 뒤쪽에서 울부짖는 환영을 보았다·
[이 이노옴!]
육린의 주변으로 새하얀 소금 결정같은 영기 알갱이가 피어났다·
그는 일순간 청룡에서 새하얀 백룡으로 변화한 것 같았다·
백룡이 된 육린은 김영훈을 노려보며 입을 벌렸다·
그의 입에서 해역 하나를 전부 공격권에 넣을 수도 있는 용파가 압축되어 튀어 나갔다·
명백히 백여 년 전보다 강해진 용파!
이것이 용의 힘이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가·
금시조(金翅鳥)라는 새가 있다·
이 새는 한 번의 날갯짓으로 우레를 일으키며 세계의 순환을 끊어 내고
용을 잡아먹는다고 전해진다·
능광개벽형(凌光開闢形)
제일식(第一式)
김영훈이 함천존자의 깨달음을 보고 만들어 낸 무공·
능광개벽도(凌光開闢圖)·
그 첫 번째 형태·
“금시멸광(金翅衊光)·”
천지간의 빛이 집중된 도가 휘둘러졌다·
다음 순간·
천지의 모든 빛이 끊겼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세계 전체에 월수궁무록이 걸린 듯 일순간 그 무엇도 인지할 수 없었다·
그리고 찰나간의 ‘불인지의 세계’가 마침내 사라지고 인식이 돌아왔을 때·
나는 황금빛 섬광이 세계 전체에 내려앉는 듯한 착각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금빛 날개가 잠시 동안 빛을 가렸다 다시 부드럽게 빛을 비추는 듯한 환영을 본 것도 같았다·
‘육린은····’
나는 육린이 있던 자리를 보았다·
육린은 그곳에 없었다·
난 도를 휘두른 김영훈이 서 있는 반대편의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저기 있군·’
육린은 김영훈의 일격을 맞은 후 해역의 수평선 끝자락까지 튕겨 나간 상태였다·
자기 영역 내부나 다름없는 곳에서 이렇게 형편없이 튕겨 나간 것이 믿기지가 않는 듯 멀리 보이는 육린에게서 어마어마한 치욕과 모멸의 의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모멸도 모멸이지만 꽤 유의미한 타격을 입혔어·’
결단기로 비유하자면 단순히 몸통이 베인 게 아니라 금단에 상당한 무리가 간 것이었다·
“이제 알겠나 육린?”
난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전력은 이미 네놈과 대등하다·”
내 말을 들은 건지 놈의 눈이 뒤집어져 새하얗게 백열하는 것이 보였다·
기운의 소모는 조금 있어 지구력이 달릴지언정·
심족 분신의 전력은 본체와 동일하다·
본래는 염해귀로옥을 익힌 육린의 힘이 예상외로 강하다면 내가 김영훈과 합공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방금의 일합을 보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타닷!
김영훈은 나를 지나치며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제 육린은 김영훈이 혼자 상대할 것이다·
난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방금의 일격을 믿지 못하고 정룡궁주가 튕겨 나간 방향을 보고 있는 정룡궁의 신하들을 향해 총천검을 들이밀었다·
“지금부터 열을 세겠다· 그 안에 항복하면 험한 꼴을 보진 않을 것이야·”
내 말에 정룡궁 소속의 사축기 수사들 여럿이 흠칫 놀라며 살기를 뿜었다·
아무래도 별로 항복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 모양·
어쩌면 김영훈에 비해 내 분체는 고작해야 평범한 합체 초기 정도로 판단되어서 저리 반항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나 둘 열·”
나는 금신천뢰문에서 배운 숫자 세는 법으로 열을 센 후 그대로 총천검을 휘둘렀다·
‘기다려라 백린·’
우리가 구하러 왔다·
* * *
저벅 저벅····
육요는 백린의 머리를 잡은 채 정룡궁의 깊은 곳까지 오는 데에 성공했다·
이미 그녀의 몸 곳곳에는 번쩍이는 패물들이 잔뜩 걸쳐져 있었다·
“···뭐지? 아버님의 성격이면 여기까지 온다면 분혼이라도 보내서 경고했을 텐데·”
그러나 그녀가 염려하는 영역까지 왔음에도 육린이 그녀를 제지하는 기색은 없었다·
육요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바깥에서 잘 싸워 주시나 보네요· 아버님이 제가 여기까지 진입했는데도 신경을 못 쓰시는 걸 보니····”
우우웅-
백린의 머리통이 울렸다·
“그래도 금제나 지키는 게 있을 거라고요? 걱정 마세요· 아버님 성격에 본인이 직접 지키면 지키셨지 남에게 뭔가를 맡기진 않으니까요·”
끼이이익-
육요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정룡궁 안쪽 밀실의 어떤 문을 열어젖혔다·
그녀의 눈에 커다란 제단과 그 제단 위쪽에 몇 가지의 기초적인 금제가 걸려 있는 영패가 들어왔다·
“아버님은 실력에 자신이 있으시는 데에다 남을 믿지 못하시다 보니 어지간한 보물들은 제 손으로 지키시고 금제나 수하의 도움은 잘 받지 않으세요· 저렇게 연기기만 되어도 풀 수 있는 금제만 놔둔 걸 보면 확실하잖아요?”
우웅- 우우웅-
“저게 뭐냐고요?”
육요는 빙긋 웃으며 영패를 향해 다가갔다·
“아버님의 백부· 제 종조부께서 자신의 ‘이름’을 각인한 현고패예요· 쇄성기 승급을 위해 만들어 둔 기물인데 안타깝게도 쇄성기 승급을 치르기 전에 무슨 역병에 걸려 돌아가셨다나·”
영패에는 요족의 언어로 ‘육웅’이라고 음각된 글자가 적혀있었다·
“이는 종조부의 존재를 증명하는 명패이자 동시에··· 자혼옥새에게 주인으로 인정받은 종조부님의 왕권을 증명하는 상징이에요· 이 명패는 신분패임과 동시에 종조부께서 고력계의 해룡왕(海龍王)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계약서! 그리고 아버님께서는 이 명패의 이름을 개명시켜 자혼옥새의 왕권을 넘겨받아 자신이 진정한 해룡왕이 되려 하는 중이시지요·”
육요의 눈에 짜릿한 희열감이 스쳐 지나갔다·
“이걸 가지면··· 드디어 아버님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어!”
우웅- 우우웅-
그녀는 현고패라는 영패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백린의 두개골이 마구 울렸지만 어쩐지 점차 현고패에 다가갈수록 그녀의 눈빛은 몽롱해졌다·
마치 홀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우우우우웅!
더없이 강하게 떨리며 음성을 전하려는 백린에 의해 육요는 흠칫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콰아아앙!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방금 자신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간 것이 적중한 곳을 뒤돌아보았다·
기다란 손톱자국이 밀실 벽에 나 있었다·
그 손톱자국에서는 자욱한 마기가 뿜어지는 중이었다·
저벅 저벅····
누군가가 밀실의 그림자에서 걸어 나왔다·
그것은 시커먼 마기를 풀풀 풀리며 눈이 반쯤 뒤집어진 위윤이었다·
[주인··· 님의··· 물건에··· 손댈 수 없다····]
육요는 굉장히 당황한 듯 헛숨을 들이켰다·
“아 아버님이 목숨만큼 소중히 여기는 현고패를 지키는 데 다른 자를 사용했다고?”
위윤은 제정신이 아닌 듯 마구 소리를 질렀다·
마치 귀곡성과도 같은 그 괴성에 육요는 칠공에서 피를 토하며 밀실까지 오는 와중에 훔쳤던 패물들을 발동시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