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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修道者)(3)
“허어···”
나는 자연스럽게 탄성을 지르며 주변 경관을 구경했다·
압도적이다·
건물의 외관과 곳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야 그냥 서경성의 번화가와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그것에서 느껴지는 본질이 완전히 다르다·
오기조원을 각성한 내 시야에 영도회 곳곳에서 일렁거리는 광대한 천지영기의 흐름이 잡혔다·
천지영기의 흐름이 이곳의 대지 전체를 감싸안고 있었으며 수천억 가지의 깨알같은 주술문들이 움직이며 결계를 이루고 있었다·
또한 건물 곳곳에도 역시 용도를 알 수 없는 주술문들과 법술들이 수십 중첩으로 겹쳐져 있었다·
사람 동물은 물론이고 길거리에 피어있는 잡초들마저 영기를 머금고 있었으며 건물들마저 웅혼한 기세를 품고 있었다·
‘거기에 이 의식들···’
어디를 둘러보아도 전부 의식을 가진 수도자들뿐이었다·
의식이 없는 범인들의 시장만을 보다 의식으로 자기 자신을 둘러싼 수도자들의 교류회에 오니 새삼 기이한 느낌이었다·
범인들의 시장은 자신의 의념을 제어할 수 없는 수많은 인간군상들의 의념 덕에 거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지만·
수도자들의 교류회는 모두가 자신의 의식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었기에 집중해서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어떤 의념을 흘리고 있는지가 잘 보이지 않았다·
영적(靈的)으로 훨씬 깔끔해 보인다·
나는 그 광경에 잠시 놀라면서도 주변을 둘러보며 대략 이곳의 상황을 파악해보기로 했다·
‘수도자들의 교역회는 뭘 파는 곳인지···’
영적으로는 굉장히 달랐으나 일단 육안으로 보기에는 기본적으로 화려한 번화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길 곳곳에 부적 등을 파는 노점상이 있었고 처음보는 약재를 파는 약재상이 있는가 하면 기이한 짐승들을 우리에 넣고 앉아있는 조련사도 보였다·
사고파는 물건과 그 화폐의 가치가 범인들의 시전과 비할 수 없이 높다는 것을 제외하면 크게 달라보이는 것이 없었다·
“자와홍 한 근!”
“선령호로 팝니다!”
“특대 저물(貯物) 법기 단 일곱 점 남았소!”
나는 신기한 기화요초와 기진이보를 파는 곳을 지나던 중 한 가지 법기에 시선이 갔다·
물건을 파는 수도자가 작은 주머니에 손을 넣자 그대로 어깨까지 들어가는 것이었다·
“허어··· 신기하군·”
나는 절로 모르게 그 상점으로 들어가 저물법기(貯物法器)라는 것을 구경했다·
“저 형장· 내가 시골뜨기 산수라서 잘 모르오만 그 저물법기라는 것 안에는 대충 얼마나 들어가는 것이오?”
“음? 흐음··”
수도상(修道商)은 나를 게슴츠레하게 흝어보더니 픽 웃었다· 그의 의식에 깔봄의 색조가 드러났다·
“본점에서 파는 저물법기 중 가장 성능이 안 좋은 것이 일석(一石:약180L)의 용적이 들어가외다·”
그는 작은 주머니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작은 것 하나에 당장 지금 내 봇짐을 전부 집어넣어도 되는 것이다·
‘엄청나군·’
저 작은 주머니 하나만 있어도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약독(藥毒)의 종류와 암기의 갯수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나는 것이다·
암기 역시 주로 사용하는 내게 있어서는 썩 군침이 도는 기물인 것이었다·
점포의 상인은 내 차림이 무언가 마음이 안 든 것인지 손짓을 하며 말했다·
“이거 하나에 영석 50개요· 돈 없으면 가게 가리지 말고 어서 저리···”
“제일 비싼 게 얼마요?”
나는 작은 저물법기들을 지나쳐 화려해보이는 저물법기로 시선을 돌렸다·
‘암기를 빨리 뽑아쓰려면 저게 좋겠군·’
나는 염주 형태의 법기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게 마음에 드는군· 저걸로 주시오·”
“이건 영석 300개··”
쿵!
나는 영석이 든 봇짐을 내려놓고 그 안에서 영석 300개를 골라 점포 주인에게 건냈다·
그는 순간 당황하는 듯 하더니 금세 안색을 바꾸고 살살 웃으며 내게 저물법기를 건내주었다·
“하하 아이고 손님· 역시 안목이 있으십니다· 이 저물탁(貯物鐲) 법기야말로 물건을 저장하기에 최고의 법기지요· 이 염주알 27개 하나하나에 3석 크기의 용적이 공간법술로 확보되어 있으며···”
나는 대강대강 설명을 듣고 저물탁 법기를 구매했다·
저물탁을 손목에 차고 기운을 불어넣자 저물탁이 빛을 뿜으며 내가 지정한 짐들을 빨아들였다·
다시 손가락으로 짐들을 저장한 염주알을 톡 건드리자 내가 원하는 물건이 바로 나왔다·
“저 손님· 저희 가게에는 더 좋은 법기류들도···”
그는 내게 다른 법기들도 구경시켜주었으나 저물법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상당량의 법력을 요하는 것들이었다·
‘법력이 없는 지금으로썬 대부분 쓰레기나 다름없다·’
거기에 연기기 수준의 중 하급 법기를 구매한다 하여도 어차피 내 강기보다 약한 것들이 대다수였다·
한마디로 내게는 그냥 비싼 사치품에 지나지 않았다·
“흠 미안하구려· 내 보니 더 살 건 없어보이는군·”
내가 헛기침을 하며 나가려 하자 점포의 주인은 입맛을 다시며 물어왔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요· 혹 뭔가 찾으시는 물건은 없으십니까? 단순 법기뿐이 아닌 부적 단약 등··· 제가 영도회에 자리를 잡은 상인들과 친분이 깊어 좋은 가게를 소개해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음 그럼 혹시 서책을 판매하는 서점도 있소이까?”
“아하 혹 수도공법(修道功法)에 대한 공법서적을 구매하시렵니까?”
“뭐 그것도 있고 그냥 수도계에 대한 전반적인··· 교양을 쌓을 수 있는 서적을 파는 곳이 있을런지··”
내 말에 주인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가게를 나와 영도회 길거리 한쪽을 가리켰다·
“저 거리로 쭉 가셔서 세 번째 교차로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청난서고’라는 서점이 있습니다· 온갖 잡다한 서적을 전부 판매하고 서점 주인인 노인네가 손님에게 필요한 서적을 그때그때 잘 추천해주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오 그렇구려· 고맙소이다·”
“아닙니다 손님· 추후에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또 저희 점포에 들려주십시오!”
나는 법기가게에서 나와 점주가 알려준 서점으로 향했다·
‘청난서고라···’
서점은 겉으로 보기에 굉장히 평범했고 존재감이 없었다· 거기에 어쩐지 영도회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지지 못하는 묘하게 이질적인 느낌이 있었다·
“주인장 계십니까·”
“콜록 콜록 콜록···”
서점의 문을 열자 서점 곳곳에 쌓인 먼지가 흩날리며 안쪽에서 기침 소리가 들렸다·
“아 손님인가? 굉장히 오랜만이구만 반갑네· 나는 엄씨 성의 청난이라고 하네·”
자신을 서점의 주인이라고 칭한 엄 노인은 수염을 허리까지 기른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었다·
엄 노인의 의식은 대략 연기기 정도로 보였으나 어째서인지 의식의 경계가 굉장히 흐릿해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노인이 가슴에 찬 여러 자루의 판관필들이 각각 내 시야를 흐리게 하는 것이 느껴졌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노인이 판관필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이거 말인가? 이건 자기 경지를 모호하게 해 주는 저계 법기로 본 서점에서 책을 5권 이상 사면 주는 사은품이네· 왠지 자네는 사은품을 하나 받아갈 것 같구만· 허허··”
“나쁘지 않군요· 그나저나 수도계에 대한 기본 교양상식서나 단수기에 대한 서적 그리고 연기기 수도자들이 익히는 수도공법에 대한 서적을 사고 싶습니다만··”
“음 좋군· 미리 사은품 하나 주겠네· 껄껄···”
엄 노인은 가슴에 매달려 있는 판관필 중 하나를 풀어서 내게 건내고는 서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몇 권의 서적을 가지고 왔다·
“보자 여기 ‘수도계의 기본교양’ ‘수도자로서의 예의범절’ ‘수도자가 알아야 할 100가지 상식’ ‘수도자의 경지에 대하여’ 등 기본 교양서 4권· 그리고 단수기에 대해 해석한 ‘단수분석전’· 각 영질에 따른 최적의 단수공법을 적어놓은 ‘만계단수권’ 등 단수기 관련서적 2권·
그리고 연기기 기초공법 총 13권·”
그는 19권의 서책을 내 앞에 쌓아놓고는 단수기와 기본교양 서적 6권을 내게 건낸 후 연기기 공법서적 13권을 내 앞에 펼쳐놓았다·
“13권 중에서 마음에 드는 걸 골라보시게··· 일단 이 대오행환세결로 말할 것 같으면···”
엄 노인은 내게 기초공법서들을 펼쳐놓고 대략적인 설명을 해 주었다·
“본 청난서고에는 대략 이런 서적들이 있다네· 하지만 알아둬야 할 게 이 기초공법서들은 전부 기초에 근간을 둔 공법인지라 각 수준의 개념에 대해서는 잘 설명이 되어있고 법력도 연기기 수준에선 상당히 정순하지만 특화된 분야가 딱히 없어·
예를 들어 진씨세가의 연기기 기초공법은 화염과 벽력계통에 특화되어있고 막리세가의 기초공법은 음기와 수류 그리고 풍 계통에 특화되어있네· 하지만 이것들은 우리 가게 말고도 다른 가게에서도 대부분 구할 수 있는 소위 저잣거리 기초공법이지·
물론 저잣거리에 그만큼 퍼진 이유는 그만큼 무난하고 정순한 법력을 가졌기에 퍼진 것이라네·”
“흐음 엄 노야께서 추천해주실만한 공법은 없으십니까?”
“자네는 무슨 영통을 지녔나?”
“오영통을 지닌 오영질자입니다·”
내 말에 엄 노인은 서적을 뒤적거리더니 ‘오월입도경(五越入道經)’이라는 공법서를 내밀었다·
“각각 영근에 맞는 지월입도 수월입도 화월입도 목월입도 금월입도의 다섯 공법이 수록된 공법서네· 하나하나가 전부 정순한 법력을 모으게 해 주는 공법서고
비록 특화된 부분은 없어서 연기기 자체의 법술만 쓸 수 있지만··· 다섯 공법 중 두 개 이상을 같이 익힌다면 법력의 회복속도가 빨라진다는 장점이 있네·
그리고 공법서 후반부에는 연기기 자체의 신통을 제외한 몇몇 기본법술 방어법술이나 염동술 은닉술 의식술 전음술 등 법술들을 수록해 놓았네·”
“흠 그럼 그걸로 주시지요·”
난 어차피 수도선술에 대한 지식은 하나도 없었기에 별 생각은 않고 서적들을 전부 구입했다·
“전부해서 영석 마흔아홉개만 주시게나·”
‘서적들이 어지간한 하품 저물법기 가격이군· 하긴 연기기 14성까지의 수행법이 적힌 수도공법인데 그럴만도 하지·’
나는 엄 노인에게 서적을 받아 저물탁에 집어넣고 한 가지를 질문했다·
“그나저나 엄 노야· 혹시 청문세가의 수도자들이 영도회의 어디쯤에서 머무는지 아십니까?”
“음? 숙박 등은 저 건넛거리쯤에서 자주 하는 걸로 안다네· 사실 나도 이번 영도회에 가게를 처음 들여온 거라 잘 모른다네· 본래는 책을 들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녔거든·”
“아 그렇군요· 그럼 잘 자리를 잡기를 바라겠습니다·”
“됐네 됐어· 사실 이번에도 그냥 재미삼아 서고를 연 거지 뭐 자리를 잡자고 연 게 아니거든· 나는 오히려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게 더 재밌다네· 서점 일 말고도 본업이 있기도 하고·”
“그러면 다행이군요· 사은품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엄 노인에게 인사를 하고 청난서고를 나와 엄 노인이 말한 건너편 거리로 향했다·
그러던 도중 난 뭔가 기이한 기분이 들어 청난서고를 돌아보았다·
‘그나저나 그 저물법기 가게 점주··· 이번에 영도회에 처음 들어왔다는 서점을 내게 무슨 좋은 서점으로 정평이 났답시고 추천해준 건가? 나 이전에 손님이 많이 왔다기에는 엄 노인의 반응이 영 그렇던데··· 쯧 서로 개인적인 친분이 있기라도 한 건가보군·’
나는 잡생각을 하며 숙박을 할 수 있는 주루들이 있는 거리를 거닐었다·
‘숙박할 장소가 특정되었다고 해도 상당히 넓은데 청문세가 사람들을 어찌 찾아야 할지···’
그러나 내 고민은 아주 짧았다·
“으아아아! 저기 청문세가 망나니 놈들이다!”
“이런 젠장 저 성질 더러운 놈들이 여긴 왜!”
“이보게 괜히 여기 있다가 걸려서 시비걸리지 말고 멀리 떨어져 있게나!”
“······”
나는 말없이 자리를 피하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저 멀리서 걸어오는 한 쌍의 남녀를 바라보았다·
둘은 짙은 남흑색 장포를 입고 있었고 투기(鬪氣)를 줄줄 흘리며 걸어다니고 있었다·
그중 남자쪽은 상당히 덩치가 큰 거한이었는데 팔목에는 나와 같이 비싸보이는 저물탁을 차고 있었다·
‘흠 뭔가 굉장히 기분 나쁜 일이 있나보군· 의념 대부분이 시뻘겋게 물들어있다·’
청문세가의 남녀는 무언가 화나는 일이라도 있었던 것인지 분노를 의미하는 피처럼 시뻘건 의념이 상단전 주변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툭-
“하하하 이것 참 잘 샀단 말이지···”
붉은 장포를 입은 사내가 주루 사이의 골목에서 튀어나와 청문세가의 거한과 부딪혔다·
‘저 옷 저 인장··· 진씨세가인가·’
진씨세가의 사내는 거한을 보더니 미안하다는 건지 고개를 까딱거리고는 다시 길을 가려고 했다·
그때 청문세가의 거한이 진씨세가 수도자의 어깨를 움켜쥐며 말했다·
“지나가다 부딪혔으면 사과를 해야지?”
“음? 사과했잖나? 뭐가 문제지?”
“너··· 이 새끼 내가 우습나?”
“뭐? 크윽! 끄으윽!”
갑자기 거한이 어깨를 쥔 손에 힘을 주자 진씨세가 수도자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이 이 개자식이···!”
틱 티틱!
진씨세가 수도자의 주변으로 화(火) 속성의 영력이 퍼지며 그에게서 불티가 튀기기 시작했다·
“이거 못 놓냐?”
“흠 자기가 먼저 부딪혀놓고 사과는 커녕 적반하장이구나· 맞아죽어도 할 말이 없겠지?”
“이 개 같은 놈이 뭐라는 것이야! 네놈이야말로 손을 떼고 당장 무릎을 꿇지 않으면 그 손을 다시는 못 쓰게 만들어주마··!”
‘일 났군· 거한의 성격은 모르겠다만 진씨세가 수도자들은 자존심이 세고 성격이 불같은데···’
그때 거한의 옆에 있던 여성이 입을 열었다·
“영도회의 규칙을 모르시는 건 아니시지요? 이 안에서는 연기기 2성급 이상의 법술을 통한 공격은 사용이 금지되어있습니다· 또한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는 행위도 금지되어있고요·”
“하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영도회의 규약을 이용해서 감히 나를 막아보겠다는··”
“그러니 ‘법술을 통한 공격’과 ‘상처를 입히는 행위’만 아니라면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저번에 본가의 자제 중 하나가 이를 이용해서 한바탕 한 적도 있었고요·”
여인의 말에 거한이 입꼬리를 씨익 끌어올렸고 진씨세가의 수도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그때였다·
번쩍!
거한의 주먹에서 밝은 빛이 터져나왔고 그대로 진씨세가 수도자의 얼굴을 가격했다·
콰아앙!
진씨세가 수도자가 펼치려 하던 화염법술이 그대로 박살나며 그가 1장을 넘게 날아가버렸다·
“크아아아악! 이 이 개자식! 감히 나를 상처입혀! 네놈이 이러고도 영도회 안에서 무사히 나갈 수 있을 것 같으냐!”
“흠 시끄럽군·”
퍼억! 퍼어억!
거한은 진씨세가 수도자에게 다가가더니 그의 멱살을 들어올리고 빛이 나는 주먹으로 계속 때리기 시작했다·
“끄 끄아악! 이 이 놈 좀 말리시오! 이 녀석이 지금 영도회의 규약을 어기고 있소!”
그러나 어느 수도자도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왜냐하면 진씨세가의 수도자는 상처를 입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거한의 주먹에 서린 빛무리에서 익숙한 기운을 느꼈다·
‘창호자가 내 팔을 고쳐주었던 그 법술이다·’
치유의 힘이었다·
그랬다· 거한은 지금 진씨세가의 수도자에게 치유의 법술로 구타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커헉! 왜 왜·· 연기기 2성급 이사으이 공격인데 왜 영도회 금제결계가 작동 안··커헉!”
그러나 맞는 입장에서는 그런 걸 알 겨를이 없는지 영도회의 규약을 계속해서 반복해 말할 뿐이었다·
“이 빌어먹을 놈이 지나가다가 부딪혔으면··”
“아 아악! 아아악!”
퍽! 퍽! 퍽! 퍽!
진씨세가의 수도자는 계속해서 무언가 법술을 쓰며 거한의 팔에서 벗어나려는 듯 했지만 거한의 손에서 나오는 푸른 빛이 그를 찐득찐득하게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쯧쯧 진가 수도자인 것 같은데· 임자 제대로 만났구만·”
“저쪽이야 막리세가 수도자만 신경써오다가 다른 국가의 수도자는 처음 만나본 것 같은데···”
“청문세가가 인성이 더러운 걸로 유명한 것도 몰랐던 건가···”
다른 수도자들은 한쪽이 한쪽을 치유해주며 구타하는 이 기묘한 싸움에 끼어들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멀찍이서 구경만 할 뿐이었다·
아무래도 구경꾼들은 대부분 연기기 3 4성쯤이었으나·
청문세가의 거한은 물론이고 그 곁에서 구경을 하는 여인의 의식영역만 보아도 연기기 5성은 되어보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시조인 창호자는 굉장히 사람이 호방하고 좋던데· 그 가문 방계들은 어째 좀 인성이 더럽나보군·’
나는 무지막지하게 진씨세가 수도자를 두들겨패는 청문세가 거한을 보며 혀를 찼다·
‘···쯧· 진씨세가도 별로 마음에 들진 않지만·· 어쨌건 지난 삶에선 같은 편이었는데 저렇게 두들겨 맞는 걸 보니 마음이 좋진 않군·’
나는 이젠 숫제 기절하기 직전인 진가 수도자를 아직까지 두들겨 패는 거한에게 다가갔다·
“이보시오 형장· 이제 진가 분도 교훈을 단단히 얻은 듯 하니 이만 용서해 주시지요·”
“음? 네놈은 뭔데 나와 이 놈 사이의 일에 끼어드느냐·”
“딱히 뭐가 아니더라도 형장의 태도가 좋아보이지는 않더이다· 이제 그만 용서하시지요·”
“하 마음에 안 들면 네가 내 손에서 이 건방진 놈을 빼내 봐라· 어디 연기기 3성 후반쯤 정도 되어 봬는 놈이···”
손을 쓸 필요도 없었다·
나는 월수궁무록 극의 노중로무궁의 일식(一式)을 간략화해서 위력을 조절한 다음 바로 거한에게 쏘아버렸다·
“크아아아아악!”
거한은 그대로 머리를 부여잡고 진가 수도자를 놓쳐버렸고 나는 기절하기 직전인 진가 수도자에게 다가가 통증을 완화시키는 혈을 눌러주었다·
“괜찮으시오?”
“허 허억···! 끄흑··· 고 고맙소· 정말 고맙소···”
연기기 4성에서 5성쯤 되어보이는 진씨세가의 수도자는 눈물을 흘리며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추후에 연국 첨벽성으로 오신다면 내 보답하겠소· 첨벽성에서 이 전음부를 사용하시면 될 거요· 나 나는 이만 가 보겠소· 오늘 일은 정말 고맙소!”
그는 내게 인사를 한 후 거한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때릴까 황급히 내게 부적 한 장을 쥐어주고는 달아나 버렸다·
“당신 감히 우리를 상대로 위해를 가한 건가?”
청문세가의 여인이 나를 노려보며 거한의 앞을 막아섰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 기술은 연기기의 법술 같은 게 아니니 딱히 영도회의 규약 같은 건 어기지 않은 것 같소만· 그리고 어디 저 분에게 상처가 있소?”
“흥! 무언가 의식을 이용한 법술을 이용해서 악의적으로 규약을 빗겨간 것 같은데· 감히 청문세가 자제들에게 싸움을 건 것을 후회하게 해 주마··!”
여인의 손에서도 푸른 빛이 퍼져나왔다·
방금 진씨세가 수도자를 두들겨 팬 치유법술과 같은 법술로 보였다·
그러나 나는 수도(手刀)를 휘둘러서 그녀의 법술을 그대로 잘라버렸다·
그녀의 손은 남아있었으나 푸른 빛만 그대로 허공에서 잘려나갔다·
“무 무슨···”
성큼 성큼
나는 그녀에게 빠르게 다가가며 두 손가락을 펼쳐들며 그녀에게 느릿하게 찔러들어갔다·
“방(防)!”
청문세가의 여식은 놀랐는지 황급하게 언령으로 투명한 방어막을 소환했으나 내가 순간 손 끝으로 강기를 뿜어내자 방어막은 그대로 으스러져 조각나버렸다·
나는 빠르게 다시 강기를 흩어버리고 그녀의 요혈을 짚었다·
“커헉!”
청문세가의 여식은 내게 짚힌 요혈을 움켜쥐고 신음을 내뱉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치유의 법술을 써서 사람을 구타하더군· 나 역시 사람 몸에는 정통한지라 어디를 때리면 치유가 되는 동시에 고통스러운지 잘 안다만··· 한번 해 보실테요?”
“이익 네놈···”
“잠깐·”
청문세가의 여식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내게 무언가 법술을 펼치려 할 때였다·
청문세가의 거한이 그녀를 막으며 머리를 움켜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크흠· 죄송합니다· 경지를 숨긴 선배님이셨군요·”
“음?”
내가 의아해할때 그가 내 허리춤에 찬 판관필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까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만 그 법기가 선배님의 경지를 흐릿하게 표현하여 제가 잘 인지를 못 하였습니다· 부디 후배들의 무례를 용서해주시지요·”
그는 정중히 내게 포권을 하며 용서를 구하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선선히 그의 사과를 받아주었다·
“오 오라버니· 저 자 아니 저 분은···”
“방금의 일격을 보지 않았느냐· 우리 법술을 손을 휘둘러서 무화시키고 나를 기절 직전까지 몰아가는 의식법술을 사용한다는 건 최소 연기기 7성 수준이시라는 거다·”
“그 그런··· 저 역시 무례를 사과하겠습니다·”
“······”
나는 괜히 뻘줌해져서 머리를 긁었다·
만약 내가 연기기 7성이 아닌 아무 법력도 쌓지 않은 무림인이라는 사실을 알면 나를 어떻게 할까·
아무래도 녀석이 경지 인식을 방해하는 법기를 보고 내가 경지를 낮아보이게 하고 돌아다니는 고수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실상은 반대인데 말이지·’
“···그나저나 혹여 이 문양을 알아보시오?”
나는 그들에게 내 손등에 남아있는 창호자의 추천권 문양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거한의 눈이 커졌다·
“이건 외부 가원 추천권이로군요· 최소 본가 장로 혹은 공봉급 이상의 추천권입니다· 저희 남매가 귀인을 몰라뵀습니다· 이 역시 용서해 주시기를·”
“다행히 알아보는구려· 사실 이것때문에 청문세가 사람들을 찾고 있었소만··· 그 이걸 가지고 외부 구성원으로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요?”
“아 간단합니다· 그냥 저희 가문의 영지로 오셔서 장로급 어른 한 분께만 확인을 받으시면 바로 외부 구성원이 되실 수 있으십니다· 하하 이리 된 것 영도회가 끝나고 바로 저희 영지로 뫼시겠습니다·”
“음 고맙소·”
나는 갑자기 얌전해진 청문세가 남매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 후 근처에 숙소를 잡고 영도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였다·
그렇게 20일이 지났고 영도회가 끝났다·
나는 청문세가 남매의 안내로
벽라국 청문세가의 영지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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