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수선전(回歸修仙傳) 418화
대면 (1)
쉬이이이-
마지막 남은 천공도인 뇌령도 위·
나는 페허가 된 인족의 영토를 내려다 보았다·
어쩐지 착잡한 기분이었다·
“어이 서은현·”
전명훈이 내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전명훈·”
“왜 그렇게 죽상이냐· 네가 해놓고·”
“······”
녀석은 조금 퀭한 눈동자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잘 한 걸까·”
“어차피 강민희가 곧 나올 거라고 하지 않았냐· 그럼 결국 잘 한 거지·”
“···내가 왜 뇌령도를 남겨뒀는지는 너도 알겠지···?”
전명훈은 음울한 눈빛을 띄우며 입을 다물었다·
그랬다·
나는 자신있게 인족 영토를 모조리 갈아버렸다·
총천검의 계위 무시 특성으로 인해 부상자가 있을지언정 사망자는 0명이었다·
하지만 나는 홍수령과 한때 우리의 문파였던 금신천뢰문의 옛 터전이 있던 곳·
뇌령도만은 갈아버리지 못했다·
너무나 이기적인 판단이다·
남의 터전과 고향은 갈아버려 쫓아내고 내 추억이 깃든 곳은 남겨둔 독선적인 행위·
내가 부순 대지 역시 누군가의 무덤이 있고 누군가가 추억하는 대지였을 터다·
모두의 고향은 으스러트리며 내 것만은 놓지 못하고 소중히 품는 내 모습은 내 자신이 보기에 너무나도 추해 보였다·
“답지 않게 뭘 질질 짜는 거냐·”
전명훈은 금소해의 손이 든 목함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고향 부둥켜 안고 있다가 뒤질 건지 다 박살나서 개똥밭에 구르더라도 살 건지· 어느 쪽이 나은지는 명백한 거 아니냐· 쓸데없이 질질 짜지 말고 강민희 대비나 하게 일어나라· 흑색귀골곡 측에서 와 있다·”
“···알겠다·”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 말대로 지금 감상에 빠질 시간 따위는 없다·
나는 뇌령도 인근·
흑색귀골곡과 창천개벽문 측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창천개벽문 측은 한쪽에서 열심히 신체단련을 하는 중이었도 흑색귀골곡 측은 상갓집에라도 온 것마냥 모두 입을 닫고 무릎을 꿇고 있었다·
나는 가장 앞에 있는 흑색 원로 허곽을 보며 말했다·
“허 원로· 일어나시오· 왜들 그러고 계시오·”
“······”
쿵!
허곽은 대답은 않고 오히려 내 말에 머리를 바닥에 찧었다·
“일단 저희가 총연맹의 부름을 받고 어르신과 맞선 것은 절대 자의가 아니었음을 밝히나이다·”
“뭐··· 대충 알고는 있었소·”
동력장치가 멀쩡한 섭명함 2척에 사축기 귀왕 수십마리다·
거기에 우리 쪽은 동력장치가 없는 섭명함 1척 사축기 요수 둘· 사축기인 오현석과 창호자· 이렇게 해서 수십대 일로 싸운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창천개벽문과 시호 서란 등이 순식간에 흑색귀골곡에 포로로 잡히지 않았단 건 흑색귀골곡 측에서 상당히 봐줬기 때문이리라·
“흑색귀골곡은 애당초 우리와 적대할 생각이 없었던 거겠지?”
“···어찌 저희가 어르신을 적대할 수 있겠습니까· 개미 한 마리가 일국의 왕을 적대하겠다는 말과 다를바 없습니다·”
“···?”
나는 허곽의 태도에 살짝 의아함이 들었다·
“도대체 왜 그리 예를 차리는 것이오? 인족 영토를 갈아버린 것 때문에?”
조금 이상했다·
태수회조차 내가 아무리 강한들 합체기 수준으로 보고 전의를 불태웠건만 흑색귀골곡은 이상하리만치 저자세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어진 말에 나는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명귀계 본종과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아···”
그렇다면 내가 명귀계에서 무슨 짓을 벌였는지가 전부 이들의 귀에 들어갔다는 말이었다·
“저희는 감히 어르신의 그림자조차 쳐다볼 자격이 없는 미물들이옵니다· 어르신께서 본종에서도 만약 어르신을 다시 만나면 상황을 보아서 어르신의 말에 따르라는 명이 내려왔습니다·”
그러니까···
개열기 진인 50명을 쫓아낸 사건 때문일까· 아무래도 흑색귀골곡 측에서는 나를 진선의 화신이나 선보 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무어라 빈박하려다가 시간이 없다는 걸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일단 알겠소· 그럼 일단···”
흑색귀골곡 측에 뭔가를 시키려 할 때였다·
나는 흠칫 몸을 떨며 주변을 노려보았다·
전명훈 역시 느껴지는 것이 있었는지 몸을 떨었고 흑색귀골곡 측과 귀도공법을 익힌 서란 역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늘에 음기가 충천하고 있었다·
주변의 용맥의 기운이 점차 귀기로 변화한다·
나느 표정이 안 좋아졌다·
용맥의 기운이 변하는 곳· 그리고 하늘의 음기가 몰리는 곳·
그 현상들의 진원지를 쫓아가 보니 이전 흑색귀골곡이 있던 천공도 지대 아래쪽의 공간이 출렁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늦게 인족을 대피시켰다면 큰일 날 수도 있었겠군·’
나는 인족이 도망친 곳을 바라보았다·
광한계의 인간 중에는 범인이 없다·
그런 만큼 내 난동에 인족들은 모두 비행법기를 타고 한 곳으로 몰려서 빠르게 자신들의 터전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한때는 범인들이 없어서 무공이 발전할 수 없어 조금 아쉬워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천만다행인 것이었다·
이토록 빠르게 도망칠 수 있으니 말이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말은 편하게 하겠다· 일단 너희가 받아들인 귀도음화선근의 제자· 그녀가 곧 폭주할 것이다·”
“예 예?”
“음기가 느껴지겠지? 곧 있으면 그녀가 너희 문파가 있던 곳에서 튀어나올 터· 명계의 외곽 ‘샛길’에서 빠져나와 광한계에 강림할 것이다· 그녀의 경지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준 쇄성기· 아니···”
나는 장익이 전성기의 강민희를 판단했던 걸 떠올리며 입술을 씹었다·
“이성이 없을 뿐인 사실상의 쇄성기라고 보는 게 좋을 것이다·”
“그 그런···”
허곽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인족 영토의 한 곳에서 무시무시한 귀곡성이 울려퍼졌다·
“커헉!”
“크으윽···”
귀도공법을 익힌 이들은 나를 제하고 모두 피를 한 움큼씩 뱉었다·
나는 굳은 얼굴로 귀곡성의 진원지를 보았다·
아마 한두시진 후면 강민희가 강림할 터·
“섭명함의 진짜 용도에 대한 것은 알고 있다·”
나는 허곽을 보며 말했다·
“종말이 찾아왔을 때 천역 전체의 혼백을 수거하는 것· 그리고 그를 위한 공간 전송과 차원이동 등· 애당초 공격용이 아닌 ‘이송용’으로 만들어진 법보지· 안 그런가?”
“흑색귀골곡 제자에게만 전승되는 사실을 어찌··· 아 아닙니다· 어르신이시라면 당연히 아시는 사실이겠지요·”
그는 순순히 사실을 인정했고 나는 강민희가 강림하려는 장소를 보며 기세를 가다듬었다·
“지금 당장 전속력으로 인족이 도망친 방향으로 날아가 인족 전체를 섭명함에 태워라·”
나는 굳은 얼굴로 그들에게 말했다·
인족 총연맹에 속한 광한계인들의 인원수는 시운도에서 판단하기를 대략 300억·
지구 인류 70억을 전부 미국의 주 하나에 몰아넣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섭명함에 걸려있는 공간 압축은 답천사막 하나를 능히 집어넣기에 충분한 압축량이었다·
답천사막의 크기는 내가 아는 미 대륙과 비슷했으니 300억이라는 정신 나간 인구도 이론상 집어넣을 수 있을 터였다·
내 말에 허곽은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오나 그리하면 동력장치가 두 배가 되지 않는 한 속도를 보장하기는 힘듭니다· 그리고 공간 전송이라고 해봤자 다른 지역인데 말씀하신 것처럼 이성을 잃은 제자가 쇄성기 수준이라면 축지법으로 충분히 따라잡힐 겁니다···”
“상관 없다· 어차피 차원이동을 하먼 되잖나·”
“차원이동이라고 하셔도 어디로 이동해야 할지··· 진마계는 현재 인마대전 때문에 인족을 미워하고 자금계는 멀고 명귀계로 갈 거면 인족이 전부 죽어야 하고 고력계로 갈 거면 특수한 인력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다른 계가 아니라 난계지역으로 가라· 난계지역이라면 공간 좌표가 뒤죽박죽이라 그녀도 함부로 축지법으로 못 쫓아올 테니···”
“그··· 그러려면 난계지역에 고정된 공간좌표가 필요합니다만··· 애초에 난계지역에는 고정된 공간좌표가 없고 또···”
“있다·”
나는 허곽의 말을 끊고 내가 아는 공간좌표를 그에게 건내주었다·
“여 여기는···”
내게 좌표를 받은 허곽의 얼굴이 새하얘졌고 그것을 확인한 허령은 얼굴이 시뻘개졌다·
“이 이···”
“불만 있나?”
내가 허령을 내려다보자 허령은 옆구리를 어루만지며 고개를 숙였다·
“···어르신의 말에 따르겠습니다·”
“좋다· 그럼 결정됐으면 빨리빨리 움직여라! 당장 인족이 피난을 간 방향으로 날아가 공간 도약을 준비해라!”
흑색귀골곡은 창천개벽문의 사람들을 챙겨 인족이 도망친 방향으로 날아갔다·
내가 그들에게 준 좌표는 장익의 박도에 있던 좌표·
즉 심족 영역의 좌표였다·
나는 뇌령도의 부유진을 해제해 부유진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런 후 영역에서 김영훈을 꺼내고는 김영훈과 전명훈에게 부탁했다·
“두 분이 잠시 인족 영역을 돌아보며 남은 이들이 있는지를 확인해 주십시오·”
내 말에 전명훈과 김영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각자 빛과 같은 속도와 번개와 같은 속도로 눈 앞에서 사라졌다·
남아있는 자들을 확인했다·
흑색귀골곡과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듯한 서란· 그리고시호·
창천개벽문을 먼저 보내고 남은 창호자· 그리고 오현석·
강민희의 상태를 봐야겠다는 김연과 그녀를 따라 남은 북향화·
나를 따라 남은 홍범 등이 남아있었다·
위시혼과 음와 연진 등은 일단 섭명함에 타서 흑색귀골곡을 따라갔다·
나는 그들을 보며 말했다·
“남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제가 하려는 건 그저 시간끌기일 뿐입니다· 다시말해 제가 시간이나 끌어야 할 정도로 상대는 지금 무시무시한 상태입니다· 그러니 모두들 위급한 상황이 되신다면 제 명령에 반드시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동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정 급박한 상황이 되면 동료들은 전명훈의 영역에 넣은 다음 전명훈과 김영훈의 힘으로 먼저 출발한 흑색귀골곡 섭명함 쪽으로 보내버릴 요량이었다·
쿠르르릉!
번쩍!
적뢰와 금광이 번뜩이며 김영훈과 전명훈이 돌아왔다·
전명훈은 자신의 영역 안쪽에 있는 무수한 인간들을 보여주었다·
“폐관하고 있거나 사정이 있어 미쳐 못 대피한 사람들이다· 전부 영훈 형님과 힘을 합쳐 잡아왔다·”
어느새 김영훈을 형님이라 부르기 시작한 전명훈은 자신의 영역 안쪽에 있는 사람들을 보여준 후 짜증나는 표정으로 영역 내의 한 사람을 가리켰다·
“흐 흐아악!”
전명훈의 인력에 의해 영역 바깥으로 끌려온 여자가 흐악 거리며 아둥바둥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
태열전·
아니···
지난 회차에 ‘태열전이었던’ 여자였다·
“그 와중에 이 여자는 너를 안다면서 자기는 이곳에 남겠다고 발버둥치길래 그냥 묵살하고 잡아왔다만· 아는 사람이냐·”
“흐 흐아악 어르신! 저 저 기억하십니까! 살려주십쇼 이 이분이 저를 이상한 곳으로 잡아가서 단약으로 만드려는 게 분명···”
“모른다· 그리고 전명훈은 그런 놈 아니니까 조용히 해라·”
난 그녀를 무시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녀는 다시 전명훈의 영역 한쪽으로 튕겨져 들어갔다·
홍범은 그녀를 보며 짜증난다는 듯 코를 막고 고개를 절레절레 거렸다·
아무래도 무서운 분위기를 풍기며 나타난 전명훈이 대뜸 잡아가려 하니 인간 단약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수집하는 마도 수사인 줄 안 게 분명했다·
어쨌든 그녀 덕분에 우리는 잠시 분위기가 풀려 너털웃음을 지었다·
난 전명훈에게 유사시 동료들을 섭명함으로 데리고 가라고 전한 후 강민희가 강림하려 하는 땅을 바라보았다·
“자 그럼· 모두 긴장해라·”
그리고·
쿠구구구구!
어마어마한 존재감과 함께 강민희가·
강림하던 중·
파앗!
나는 웬 이상한 공간으로 이동해 있었다·
청아한 영기가 가득한 곳·
오싹!
광한계 전체가 내려다보일 것 같은 높은 산 위쪽·
나는 그곳에 있는 거대한 백옥의 누각 앞으로 이동해 있었다·
[이리로 오라·]
누각의 안쪽에서 맑은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백운· 잠시 그대와 이야기를 하고자 그대의 의식만을 이곳으로 불렀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