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1)
두근 두근 두근····
심장 고동 소리가 들려왔다·
깜빡―
나는 눈을 깜빡였다·
어쩐지 부드러운 감촉이 머리 뒤편에서 느껴졌다·
“아 일어나셨군요·”
“···!”
나는 순간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벌떡!
북향화였다·
그녀가 내게 무릎베개를 해 주며 뭔가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자세히 보니 무슨 법기들의 도면을 그리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는 어디요? 상황은?”
나는 의식을 펼치려 했으나 아직 혼(魂)에 무리가 간다는 걸 인지하곤 그녀에게 질문했다·
‘탁혼만천을 벨 때 너무 심력을 많이 쏟았어·’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자신을 들여본다는 말· 혹은 괴물을 벤 자는 그 자신도 괴물이 되어 간다는 등의 이야기·
그것은 분명 맞는 말이었다·
영유월감의 식 자체가 탁혼만천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고 아무리 탁혼만천을 상대하기 위한 것이었다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정신적으로 많이 심력을 쏟았던 것 같다·
서휼의 탁하고 어두우며 공허한 마음은 너무나도 내 심상과 닮아 있었으니까·
그 덕에 나는 탁혼만천을 벨 때 심마에 빠지지 않도록 심력을 상당히 써야 했다·
지끈―
나는 머리를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북향화가 나를 부축해 주며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현재 이곳은 심족 영역 삼목총(杉木叢)의 객실 중 한 곳입니다·”
“삼목숲···· 잘 찾아왔군· 현 상황은 어떻지?”
“심족 최고지도회가 인족이 전송해 오자 급습해 왔기에 전쟁이 벌어질 뻔했습니다만··· 일단 영훈 대인과 연이 언니 등 심족으로서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중재하고 있는 와중입니다· 특히 교주님께서는 훌륭한 심족이라는 말씀이 돌아 심족 최고지도회는 일단 교주님을 뵙고 인족의 거취를 판단하겠다고 전해 왔습니다·”
“···어깨가 무겁군····”
나는 씁쓸하게 웃고는 북향화에게 말했다·
“그건 그렇고 이제 교주라는 호칭은 그만하도록 하시오· 교를 잃은 것이 무슨 교주란 말이오····”
“그럼····”
“그냥 편하게····”
나는 나를 ‘편하게’ 부르라고 하려다가 문득 이번 생의 북향화와는 줄곧 ‘교주’와 ‘산하 정복왕’의 관계로 연을 맺어 왔음을 인지했다·
그리고 나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북향화와 만나고 나서부터 줄곧 애써 무시해 왔던 한 가지 사실을 인지했다·
‘애초에 편할 수가 없는 관계군·’
나는 북향화를 잠시 껄끄럽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게 복잡한 관계였다·
10회차 당시의 그녀와 동일인이지만 동시에 동일인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녀와 함께한다는 건 늘 그녀의 뒤편에 있는 10회차의 그녀의 그림자를 봐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전과 이후의 그녀는 타인이지만 나 역시 사람인지라 완벽한 타인으로 볼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를 대함에 있어 순수한 ‘이번 회차의 북향화’로 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제껏 마주할 기회 자체를 안 만들려 한 거였다만····’
어쩌다 보니 이렇게 둘이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어 버렸다·
나는 입을 뻐끔거리다 적당한 호칭을 하나 입에 담았다·
“도우(道友)· 서 도우라고 부르시오· 아니··· 이제는 교주가 아니니··· 부르시지요·”
나는 내 위치를 생각하고는 이전에 부르던 대로 그녀를 존대했다·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어색한 듯 말했다·
“그냥 말을 놓으셔도 됩니다만· 어차피 저보다 연장자에 선배님이시기도 하니····”
“····”
연장자라는 말에 어쩐지 조금 서글퍼졌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전까지는 조직에서의 상하 관계였기에 일부러라도 예를 취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같은 수선의 길을 걷는 도우의 입장이니 예를 취하는 게 맞지요·”
“음··· 그걸 원하신다면··· 알겠습니다· 서 도우····”
그녀는 살짝 어색한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도우’라고 불렀다·
그리고 나와 그녀 사이에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음··· 뭔가 하실 말 있습니까 선자?”
나는 그녀의 미묘한 감정을 읽으며 질문했다·
내 질문에 그녀는 머뭇거리는 듯 하더니 말했다·
“저···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서··· 도우·”
그녀는 내 옆에서 그리던 법기의 도안을 보여 주며 말했다·
‘이건····’
자세히 보니 그것은 법기의 도안이라기보단 괴군의 회로와 같은 일종의 ‘체계’였다·
다만 괴군의 그것에 영향은 받았으되 전혀 독자적인 무언가로 보였다·
“훌륭한 법기 체계로군요· 대략 무엇에 쓰는 법기 체계입니까?”
“이것은··· 기(氣)를 분석해서 장면을 투영하기 위한 체계입니다·”
“호오 영상 같은····”
“수백년 전 서 도우가 제게 이것을 주셨지요·”
그녀는 허리춤에서 비췻빛 노리개를 쓰다듬었다·
“····”
“저는 서 도우가 제게 이것을 준 날부터 쭉 이것을 연구해 왔고 이 노리개가 늘 어딘가와 연결되어 있단 걸 알아챘습니다· 그리고 의식을 집중하면 저는 노리개를 통해 희뿌연 안개가 가득한 어딘가로 의식을 이동할 수 있었지요· 최근에 서 도우를 만나며 그 희뿌연 안개속이 서 도우의 ‘만상인연도’ 안쪽이란 걸 알았습니다·”
북향화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까지는 서 도우가 그 이유에 대해서 제대로 대답을 해 주시진 않으셨지요· 그 때문에 지금껏 연구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괴군 선배님을 만나며 상당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지요· 기를 분해하여 대상의 과거를 추적하는 기술·”
“···!”
“저는 이것을 통해 서 도우의 만상인연도와 제 노리개 사이에 있는 인과를 추적할 예정입니다·”
나는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를 눈치챘다·
오혜서가 그랬듯·
혹은 선수 흑룡이 그랬듯·
내 과거를 추적해서 노리개의 진실을 풀어보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선수 흑룡이나 오혜서의 경우에서 봤듯이 만상인연도의 비밀은 쉽게 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선수와 오혜서 모두 과거를 추적하는 권능을 가졌음에도 실패했던 것이다·
즉 북향화의 능력이 선수 흑룡의 것을 뛰어넘지 못하는 이상 내 비밀이 들킬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내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이유를 눈치챘기에 함부로 그녀의 행위가 ‘소용없을 것이다’라고 단언할 수 없었다·
“서 도우의 눈이라면 제가 왜 지금 도우에게 이런 말씀을 올리시는지 아시겠지요· 영훈 대인과 같은 눈을 가지셨으니····”
“····”
그녀의 미묘한 심상 뒤편에는 어마어마한 절망과 슬픔·
그리고 결의가 깃들어 있었다·
“이유는 제게 직접 묻지 마십시오·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노리개에 대한 진실은 제 비원(悲願) 중 하나이기에 쉬이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란 겁니다·”
한 마디로 그녀의 말인즉슨 자신이 도전해서 나와 노리개의 과거를 파내게 하기 싫다면 제대로 진실을 털어놓으란 소리였다·
그러나 말할 수는 없었다·
이 세계에서 무언가를 [입 바깥으로 낸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가졌다는 걸 뼈저리게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이는 진선과 관련된 일인지라 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 자칫하면 선자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에····”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목숨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이 나를 보며 말했다·
“상관없으니 말해 주실 수 있는 것이라면 말씀해 주십시오·”
“···말할 수 없는 성질의 것입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녀는 씁쓸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 손이 닿는 데까지 제가 노력해 볼 수밖에 없겠군요·”
“북 선자····”
“그럼 실례했습니다· 저는 이만 나가 볼 터이니 서 도우도 몸을 추스르시고 나와 주시지요·”
말을 마친 북향화는 고개를 돌리고 바로 객실을 나가 버렸다·
나는 그녀의 심상을 보고 마음이 복잡해졌다·
우웅―
나는 점차 의식 영역과 권능들이 돌아오는 걸 느끼며 공간을 뛰어넘어 객실의 바깥·
기와 의념의 충돌이 느껴지는 곳으로 나갔다·
그곳에서는 김영훈을 중심으로 22인의 그림자들이 무수한 의념을 부딪히고 있었다·
촤라라라락!
그들이 그려내는 무(武)의 그림에 일순간 예지가 흔들릴 정도였다·
‘한 명 한 명이 능히 무의 극점에 이르렀다고 할만한 고수들····’
속도에 특화된 김영훈을 자신들만의 비의로 상대하며 김영훈의 속도에 절대 뒤쳐지지 않는 절기들을 그에게 퍼부어 대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김영훈 주변으로 심족 최고지도회의 투영체들이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혼의 계위에 이른 시야를 가진 내게는 어마어마한 의념의 격류가 일어나고 있었다·
본래라면 의지만으로도 현실에서 무지막지한 풍랑이 일어야 하건만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기운을 좁쌀만큼도 흘리지 않고 절제하여 기교를 겨루는 중이었기에 혼의 계위에서 벌어지는 의념의 대련은 절대로 현실로 흐르지 않고 있었다·
“연아·”
“네·”
나는 내 말과 동시에 어느새 스르르 옆에 나타난 김연을 보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녀의 체내에 생긴 요핵을 중심으로 의념이 완벽하게 9갈래로 균형을 이룬 것이 보였다·
‘이전이었다면 움직임을 놓쳤다·’
무공이나 경지의 수준 문제가 아니었다·
무인들은 등봉조극을 통해 정신을 가속시키지만 원영기 이상의 수도자들은 그냥 광대한 의식을 통해 정신을 가속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의식을 강환분신의 형태로 나눴다가 다시 합할 필요도 없이 의식을 그냥 압축시키기만 하면 정신이 점차 가속된다·
원영기 이상 수도자들이 비둔술을 통해 빠른 속도로 싸우는 것 등은 전부 그러한 원리를 통해 가동되는 것이었다·
괴군이 준 ‘은식술’ 역시 내 의식을 압축시켜 ‘영근을 통해 영기를 느끼는’ 감각을 가속시키는 것이었으니 ‘의식을 압축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정신을 가속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재 김연은 요핵을 중심으로 ‘요족과 같이’ 자신의 몸에 맞게 의식을 ‘압축’시키며 그 압축된 의식에 더해 10배의 가속을 행하는 중이었다·
경지의 문제 이전에 조금 기형적인 성장이긴 할지언정 그녀는 현재 탈 합체기 수준의 속도를 보유한 것이었다·
‘단순히 의식의 크기가 속도가 되는 등봉조극임에도 이 정도라면····’
의식을 직접적으로 ‘힘’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되는 월도입천에 도달한다면 김연은 도대체 무슨 권능을 휘두르고 다닐까·
문득 그것이 궁금해졌다·
‘물론 월도입천에 도달하는 건 단순히 시간만 퍼부어 해결되는 건 아니니 아직은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만····’
나는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상념은 마치며 그녀에게 말했다·
“혹시 내가 기절한지 얼마나 됐는지 알아?”
“정확히 사흘째에요· 민희 언니를 피해 심족 영역에 온 지도 꽤 되었고 인족들은 심족 영역에 자리를 잡기 위해 최고지도회와 신경전을 벌이며 당신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
‘뭔가가 변했다·’
나는 김연을 살짝 보며 의아함을 품었다·
나를 부르는 호칭이 묘하게 달라진 것이었다·
이전부터 편하게 불러 왔던 ‘은현 오빠’가 아니었다·
묘하게 거리를 두는 듯하면서도 어쩐지 더욱더 내게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김연의 설명이 이어졌다·
“민희 언니에 의해서 원래의 인족 영역은 명귀계처럼 생명체는 살 수 없는 귀신들의 땅이 되어 버렸어요· 인족이 살기 적합하던 인족 영토 근방의 다른 영토도 매한가지가 되었고··· 그 덕에 현재 명귀계 쪽에서는 광한계를 침공해 오려고도 하고 있죠· 영토를 원상 복구 하려면 천 년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고 해요· 하지만 현재 태수회에서의 판단에 따르면 폭주한 민희 언니··· 그러니까 ‘귀도성모’는 결국 광한계와의 인력에 의해 수백 년 내로 다시 광한계로 돌아올 거라고 하더군요·”
결국 원래의 터전은 완전히 잃어버렸단 셈이 되었다·
그리고 터전을 잃어버린 짐승은 결국 새 터전을 찾게 되어 있다·
“인족은 새 터전으로 심족 영역을 원하나 보군·”
“네· 심족 영역은 난계에 있어서 민희 언니가 돌아오더라도 쉽게 찾을 수 없고 난계 중에서도 안정된 땅이라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예요· 그래서 지금 심족 영역에 있는 심족들을 모조리 몰아내고 인족이 자리 잡자는 것이 태수회의 의견이었어요·”
“···어리석긴·”
나는 혀를 찼다·
애당초 장익이 안정시켜놓은 땅이거늘 장익이 돌아오면 뭘 어쩌려는 심산인 걸까·
애당초 장익도 수백 년 후면 다시 돌아올 것이거늘·
내가 혀를 찼고 김연의 설명이 이어졌다·
“다만··· 심족 최고지도회에 의해 지금 태수회 전체가 처참하게 패배하고 인족 전체가 심족 최고지도회에 의해 몰살당할뻔한 것을 영훈 선배 혼자서 뒷수습 중이시죠·”
“····”
누울 자리도 제대로 못 보고 발부터 무작정 뻗댔단 것이었다·
‘심족을 무시해도 너무 무시했군·’
최고지도회 22명·
‘아마 장익 22명의 제자들이겠지·’
느껴졌다·
저들 하나하나가 좌탈입망의 초고수다·
‘즉··· 유사시 합체기 대원만급 일격을 날릴 수 있는 이들이 22명이라는 소리·’
거기다가 저들 중에서도 격이 높은 이는 합체기 대원만급 일격을 난사하는 것도 가능할 터였다·
나름 광한계 삼대 세력으로 분류받는 것이 심족이었다·
천족의 세력 중 육대종족이 천족 세력의 6할을 나머지 기타 종족이 4할을 차지한다는 걸 생각해 보면 현 인류의 저력은 천족의 십분지 일 수준이었다·
아무리 심족이 삼대 세력 중 최약체라 해도 ‘천족의 일부’인 인류 정도는 제압할 저력이 되는 것이었다·
저벅 저벅····
내가 속으로 인족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있을 때 멀리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보랏빛과 하얀빛의 경장을 입은 채 백발에 홍안을 지닌 소녀였다·
“일어나셨습니까·”
나는 잠시 그녀가 누군지를 기억해 내던 중 기억 속에서 그녀의 정체를 찾아냈다·
“···골 수사?”
그녀의 정체는 태수 골맥이었다·
항상 우락부락한 뼈 갑옷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지라 몸만 남은 상태에서의 그녀는 아무래도 연상이 잘 안 되었던 탓에 그녀를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김연이 그녀를 보며 설명해 주었다·
“태수회 전체가 지금 심족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만··· 골맥 태수만은 갇히지 않았어요· 유일하게 심족과의 일전을 격렬히 반대했기 때문이죠·”
골맥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합리적인 판단이었을 뿐입니다· 저 말고 다른 태수들은 헌원과 위령선을 제하고는 전부 심족과 직접적으로 전투한 적이 없습니다· 그나마도 위령선이 싸운 이들은 구현 2단계 이하의 심족들밖에 없고 헌원은 조금 제대로 된 심족과의 전투경험이 있으나 지금 체내의 음양이기가 발작해서 혼절 중에 있습니다· 그 때문에 심족의 무시무시함을 인지하지 못해서 무작정 달려들다가 갇혀 버렸지요·”
“···이상하군· 태수들은 최소 수천 세 이상 살아왔을 텐데 심족들과의 전투 경험이 없고 그들의 무서움을 모른단 건가?”
나는 의아해했으나 이어지는 골맥의 말에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구현 3단계 이상의 심족과 한 번이라도 싸웠던 이들은 절대 다수가 태수까지 올라오기 전에 죽었기 때문입니다·”
“····”
하기사 일반인들도 합체기 승급에만 천겁을 2400줄기 맞는다·
그런데 구현 3단계의 심족과 한 번이라도 싸운 전적이 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천겁이 3600줄기가 되어 버린다·
설령 합체기가 된 이후에 싸운다 하더라도 한 번 싸우고 나면 다시는 승급을 시도할 수가 없게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태수의 자리까지 올라왔단 건 어쩌면 심족과 싸우지 않아야 가능한 것일 수도 있을지 몰랐다·
“···여하튼 현재 태수회 전원이 처형당할 뻔한 것을 영훈 대인께서 심족 최고지도회와 ‘소통’하시며 막아 주시고 계십니다·”
“소통이라····”
나는 미친 듯이 의념으로 장면을 주고받으며 깨달음을 섞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나름 소통이긴 하지·’
“그리고····”
“음?”
내가 김영훈과 최고지도회를 잠시 바라볼 때 골맥이 내게 허리를 숙였다·
“어르신의 진의를 헤아리지 못하였던 점 부디 이해해 주십시오· 결국 당신이 맞으셨습니다· 어르신께서는··· 인류 전체의 구원자이십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외다·”
결국 태수회도 내가 한 일에 대해서 알게 된 모양이었다·
“인류 구원이 어찌 ‘마땅히 해야 할 일’이겠습니까··· 당신의 공적은 후세에 길이길이 남겨질 것입니다·”
“고맙군·”
“그리고··· 한 가지 부탁드리자면··· 영훈 대인이 무사하도록 비호해 주십시오·”
그녀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현재 최고지도회와 소통하는 것 같지만 일이 틀어질 경우라면 어르신께서 구해 주셔야만 저희 인족의 미래가 있습니다·”
“흐음····”
확실히 아무리 김영훈이 뛰어난 무인이라도 인족에게 학대당한 경험이 있는 심족 무리의 수장이라면 김영훈과 대련하다가 그를 죽이려 할 수 있을 수도 있었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그럴 것 같진 않다만····’
현재 김영훈과 대련하는 심족 최고지도회는 하나같이 희열과 감격 존경을 느끼는 중인지라 그런 부탁은 딱히 없어도 될 듯했다·
“일단 알겠소· 김영훈이 위험에 빠지면 내가 나서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나는 태수회에게 빚을 지워두는 느낌으로 일단 제안을 수락했다·
골맥은 내게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한 후 태수회에게도 좋은 소식을 전해 주겠다며 총총거리며 떠나갔다·
나는 잠시 김연과 함께 서서 김영훈의 대련을 쳐다보았다·
기묘성심전으로 인해 입천의 시야를 어느 정도 가진 김연·
그리고 나·
우리 둘에게는 의념의 대련이 훤히 보였기 때문에 마치 불꽃놀이를 보는 것처럼 김영훈과 심족 최고지도회 사이의 의념의 교류를 구경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불꽃놀이를 앞에 둔 채 김연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연아·”
“네·”
“할 말이 있는 거지?”
“····”
나는 김연의 감정을 느끼며 질문했다·
그녀는 현재 괜찮은 척을 하고 있었으나 지금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정신이 피폐해져 있었다·
내 호칭을 갑자기 바꾼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터였다·
김연은 내 옆에서 심호흡을 했다·
어쩐지 북받치는 감정을 조절하려는 것 같았다·
얼마간 감정을 조절한 김연은 느릿하게 충격적인 진실을 말해 주었다·
나는 어째서 아까 북향화가 내게 그런 태도를 취하며 부탁을 해 왔는지를 이해했다·
“···향화 이제 곧 죽을 거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