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라· (2)
티잉-
아무런 내공도 법력도 인력도 싣지 않은 첫 번째 검격은 북향화가 쏘아 보낸 첫 번째 법술에 의해 튕겨 나가 버렸다·
‘뭐지?’
나는 그녀에게서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다시 자세를 바꿨다·
-정말로 괜찮겠습니까?
허공분쇄에 이른 후부터는 상대가 입천이 아니더라도 상대가 허락하기만 하면 심어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녀의 대답이 내게 들려왔다·
-정말로 괜찮습니다·
후웅!
난 날듯이 그녀에게 뛰어갔다·
원영기 수준인 그녀를 상대로는 순수하게 무색유리검만 잡고 휘둘러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나 스스로 모든 법력과 내공을 봉한 후 그녀에게 맞섰다·
피잇!
나는 찰나간 그녀에게 달려들어 북향화의 목에 검을 겨누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오싹한 느낌을 느끼며 근력만을 이용해서 궁신탄영의 수법을 사용했다·
투웅!
발목이 찌릿거렸다·
내 머리카락 한 올이 베여져 나간 게 느껴졌다·
‘뭐였지 방금?’
방금 전 기초법술 중 하나가 소름 돋는 속도로 북향화의 주변에서 회전하며 내 머리카락을 베어 냈다·
그녀에겐 미안했지만 그녀는 법기 장인일 뿐 법술 실력은 일천했기에 나는 괴리감을 느꼈다·
‘그녀의 법기인가? 법기로 싸우는 중인 건가? 아냐··· 이건····’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숨겨진 법기를 찾다가 마침내 알아챘다·
‘저거였군·’
즈우웅-
그녀의 손에 들린 노리개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은은한 비췻빛이 그녀의 주변에서 법술을 대신 전개해 주고 있었다·
‘괴리감의 정체는 이것이었나· 그녀 대신에 법술을 써 주는 법기····’
그러나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냐· 이게 끝이 아니야·’
내가 모르는 뭔가가 더 숨겨져 있었다·
‘···그런가·’
나는 그제야 북향화가 내게 대결을 신청한 이유를 알아챘다·
이 기시감·
그녀는 내가 이 기시감을 통해 ‘뭔가’를 깨닫길 바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울려 줘야겠지·’
내 현재 실력이라면 북향화를 상대로 1초도 쓰지 않고 터트려 버리는 게 가능하다·
그러나 나는 북향화가 이 대결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더욱더 힘을 봉인했다·
내공과 법력 인력 등을 봉인한 상태에서 나는 내 식(識)을 봉인했다·
동시에 시각을 봉인했고 잠시 고막을 뚫어 청각을 봉인했다·
코가 아닌 입으로 숨을 쉬며 후각을 봉인하고 그 외에 미래예지와 요족의 감각 의념의 시야도 모두 봉인했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단순히 촉각·
나는 검을 쥔 느낌을 느끼고 땅의 진동을 느꼈다·
바람결의 흐름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그 상태에서 무색유리검을 잡고 다시금 북향화에게 쏘아져 나갔다·
슈르륵-
느껴진다·
북향화의 노리개로부터 진동이 일어났다·
그 노리개에 각인된 수천수만 개의 회로가 일사불란하게 힘을 주고받으며 법술을 짜내는 게 느껴졌다·
‘한 개가 아니었군·’
나는 생각보다 엄청난 노리개의 효능에 놀랐다·
노리개는 북향화로부터 영력을 전해 받으며 1초에 수만 개의 법술을 토해 내 그녀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촤라라락!
공기의 진동을 통해 느껴졌다·
현재 그녀의 주위에서 수만 개의 법술들이 생성되어 주술문자의 형태로 북향화를 감싸고 있었다·
동시에 주술문자들은 그녀를 중심으로 윤회(輪回)하기 시작했다·
마치 목성이나 토성 주변에 암석들이 공전하며 거대한 ‘고리’를 만들 듯·
그녀의 주변으로 주술문자의 ‘고리’가 나타났다·
피이이잉-
‘고리’의 회전이 공기를 밀어내며 살벌한 기세를 뿜었다·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법술 운용이었다·
‘노리개에 무슨 짓을 해 놓은 겁니까·’
나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숨을 들이쉬었다·
후읍-
전신 근육에 일순간 산소가 잔뜩 공급되었다·
내 근육이 일순간 팽창하는 듯하더니 폭발적인 힘을 끌어내었다·
퍼엉!
다음 순간 나는 신체의 순수한 힘만을 가지고 음속을 돌파했다·
연체공법이나 요수공법이 가진 신체강화의 힘은 진즉 봉인하고 ‘인간 서은현’의 힘으로만 극속을 초월한 것이었다
‘내가 상대해야 하는 건 북향화가 아니야·’
그녀의 손에 들린 그녀의 작품이었다·
파앙 파앙 파앙 파앙!
나는 삼목숲의 나무와 나무 사이를 빠르게 뛰어다니며 노리개가 있는 곳을 향해 공격을 할 듯 말 듯 허초를 섞어 검을 뻗었다·
그때마다 노리개는 나를 감지하고 극속에서 주술문자들을 움직여 북향화를 방어했다·
‘어디 제대로 방어가 가능한가·’
파앙!
다음 순간 나는 그녀의 정면에서 검을 흩뿌리는 허초를 펼치려다가 그녀의 후로 이동하여 노리개를 향해 검을 뻗었다·
노리개의 법술 운용은 조금 꼬이긴 했지만 순식간에 내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내 발아래 발목 고간 명치 목 인중 등을 향해 각각 열여섯 개의 주술문자가 날아온다·
‘더 빨리·’
후으읍!
난 한 호흡 동안에 숨을 들이쉬며 근육을 더더욱 혹사시켰다·
퍼버버벙!
일렬로 날아오던 주술문자들을 향해 찌르기를 펼친 후 그녀를 감싼 ‘고리’의 흐름을 끊어 버렸다·
콰아앙!
음속을 넘어선 내 검과 ‘고리’가 부딪히며 커다란 폭음이 일어났다·
그사이 노리개는 방어법술을 펼쳐 북향화를 보호했고 방어법술에서 동시에 공격법술을 생산해 내 나를 공격하는 공방일체를 보여 주었다·
‘이건 또 무슨····’
실시간으로 법술을 변형시켜 사용하는 건 법술의 종사(宗師)쯤은 되어야 할 수 있는 묘기!
나는 그 묘기를 일개 노리개가 펼친다는 게 어이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동시에 기시감이 강해졌다·
나는 노리개와 공방을 주고받았다·
분명 감정이 없는 법구와 싸우는 것이었으나 나는 이상하게도 사람과 전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티잉 팅팅 퍼벙!
내 검이 세 개의 법술을 쳐 내고 북향화의 방어법술을 폭발시켰다·
노리개는 다시금 일곱 겹의 방어법술을 북향화에게 뒤덮으며 북향화를 중심으로 광범위한 금제법술을 걸었다·
대련장 전체가 금제에 휩싸여 몸이 무거워졌다·
‘왜일까·’
분명 전투하는 순간이건만 나는 춤을 추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가····’
나는 춤을 추고 있었다·
검결 사이로 비가 내리던 그때의 풍경이 비춰지는 듯했다·
‘환각이 아니었군·’
처음 검초를 펼칠 때 봤던 비가 내리는 풍경·
단순히 내가 추억에 빠져서 본 것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쿠과과광!
원영기 수준인 그녀의 법력이 노리개에 공급되고 노리개는 그것을 받아 준천인기 수준의 법술로 증폭시켰다·
주변의 지형이 변화한다·
염계 법술에 의해 땅이 녹아내려 용암 바다가 된다·
척!
나는 한 발로 용암 바다 중 발 디딜 곳을 찾아 선 후 그대로 몸을 회전시키며 검풍을 통해 용암을 빠르게 식혀 버렸다·
사라락-
‘눈을 감았는데··· 보이는군·’
눈앞에 비치는 건 용암과 폭우 한파를 쏟아 내는 북향화가 아니었다·
죽어 가며 나와 춤을 추던 그녀였다·
꿈결 같은 그때의 기억이 내 눈앞에 비치고 있었다·
쏴아아아아아-
비가 다 그치고 나와 그녀의 춤사위도 마침내 멎었다·
나는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
저주를 풀풀 풍기며 고통에 겨워하며····
그녀는 내게 무어라 말을 해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속에서 입을 맞춰 주었다·
파아아아앗!
저주가 반전되기 시작했다·
토옥 토옥····
빗방울이 땅에 닿아 터져 나가듯이 시커먼 저주가 터져 나가며 새하얀 빛의 축문이 되었다·
나는 그 과정을 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雨)는 하늘에서 태어나 땅으로 내려와 죽는다·
비를 내린 하늘은 공활하게 비게 되며 어둠이 흩어진다·
‘···생각해 보면 그녀는 늘 내게 물을 줬지·’
사막에서 첫 만남을 가졌을 때도·
두 번째 만남을 가졌을 때도·
마지막에 이별하며 비를 내려 줬을 때도····
그리고 지금도·
쏴아아아아!
나는 노리개에서 뿜어지는 우천(雨天) 법술의 빗방울을 무색유리검으로 하나하나 전부 튕겨 내며 생각했다·
비(雨)는 무엇인가·
비는 흩어짐이다·
동시에 내린 후의 공활함이다·
····
그게 끝일까?
촤라라라락!
내 품 안에서 우(雨)의 신통이 활성화된 게 느껴졌다·
북향화와 겨루며 노리개로 인해 그때 그 순간을 추억하며 합체기 육신통을 전부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왠지 이게 끝이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마음은 곧 죽음
[그녀]의 말이 내 귓가를 맴돌았다·
쏴아아아····
비가 그쳐 가고 있었다·
난 검으로 물방울을 튕겨 내고 마지막 한 방울의 빗방울을 향해 검을 내밀었다·
토옹-
내 검 끝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그러나 나는 빗방울이 떨어진 검 끝을 회전시켰다·
빙글빙글 돌아가며 검무(劍舞)를 추었다·
점차 검 끝은 땅으로 내려갔다·
처음 검 끝에 맺혔던 빗방울이 터지지 않게 힘을 조절하며 나는 마침내 빠르게 검 끝의 빗방울을 땅에 흘려보내 주었다·
빗방울은 하늘에서 떨어져 내 검을 거쳐 땅에 흘러갔다·
그리고 주변의 무수한 물줄기와 합쳐져 대련장 바닥에 고인 호수의 일부가 되었다·
나는 그 호수를 잠시 느꼈다·
시각도 청각도 후각도 모든 지각도 전부 사용할 수 없는 지금이었다·
촉각을 제한 모든 감각이 무의미한 지금·
나는 피부에 닿는 진동을 통해 호수 전체를 지각했다·
파아아아앗!
노리개가 내게 또다시 주술문자를 쏘아 냈다·
-마음은 곧 죽음·
빗방울은 하늘에서 태어나 땅에서 죽는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
이 세상에 태어나 모든 풍파를 겪고 마침내 무색이 되어 흩어진다····
마치 빗방울처럼·
10회차 당시 나의 저주와 고통처럼····
-제가 당신에게 방금 드린 것도 저주였나요?
번쩍!
나는 눈을 떴다·
촤악!
내 일검(一劍)은 그대로 주술문자를 가르고 법술로 생성된 호수를 반으로 갈랐다·
그리고 나아가 마침내 그녀의 ‘고리’를 잘라 냈다·
파아앗!
그 검풍(劍風)에 북향화의 머릿결이 마구 흔들렸다·
나는 검을 잡고 웃으며 북향화에게 심어를 보냈다·
-이것이었군요· 제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
그녀는 말없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갈라졌다가 다시 합쳐지는 호수의 물을 보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빗방울은 하늘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땅으로 내려온다·
그러나 죽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서 태어난 비는 땅에 내려와 개울이 호수가 바다가 되는 것일 테니까·
저주가 축복이 되고 비가 바다가 되듯이
마음의 끝도 죽음이 단지 끝은 아닐지 몰랐다·
우우우웅!
나는 어째서 법술들이 모여 북향화의 주변에서 ‘고리’를 형성하는지를 이해했다·
위이이잉!
뇌리에서 광한 천원의 구결들이 빛나기 시작한다·
봄은 만물을 낳고(春則萬物始生)·
여름은 만물을 기르고(夏則萬物長養)·
가을은 만물을 숙성하고(秋則萬物成熟)·
겨울은 만물을 감춘다(冬則萬物閉藏)·
이는 사시의 공이 아닐 수가 없다(無非四時之功也)·
사시(四時)는 끝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춘하추동이 원영의 흐름에 새겨지니 천인기에서의 사시는 곧 인간의 삶에 대응하는 것·
사시(四時)에 공을 돌렸다는 ‘무비사시지공야’의 구절은 곧 사람의 삶에 공을 돌렸다는 의미·
고종명(考終命)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닌 끊임없이 이어지는 삶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
꾸웅!
나는 우(雨) 양(陽) 욱(燠) 한(寒) 풍(風) 시(時)의 여섯 구결이 서로 살아 있는 것처럼 광한 천원의 구결과 공명한다는 걸 알아챘다·
‘시(時)로 시작한 구결은 흐림(雨)으로 끝난다· 그리고 비가 내리면 구름은 흩어지고 또다시 시간이 흐른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
흐림으로 시작한 구결은 시간으로 끝나도 결국 다시 흐림이 돌아온다·
끊임없는 순환!
구결들이 윤회(輪回)하기 시작했다·
꽈르르르릉!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다시금 날씨가 흐려지고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불러 모은 호풍환우였다·
나는 비를 맞으며 북향화에게 물었다·
-그분과 닿으셨습니까?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웃었다·
그리고 동시에 눈물을 흘렸다·
북향화는 마침내 [노리개와 이어진 곳]에 도달하는 것에 성공했다·
서란도 시호도 김영훈도·
그리고 김연도·
모두가 빗속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남은 마지막 삶을 불태워 청문령이 있는 세계로 가는 길을 열어 낸 것이었다·
파아아앗!
그녀가 쥔 노리개가 일순간 새하얗게 백화(白化)하였다·
마치 소금과도 같은 새하얀 빛이었다·
그녀는 절뚝거리며 내 앞으로 걸어와 내게 노리개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눈빛은 흐리멍덩하고 전신은 마구 떨렸으나 그녀는 천천히 목소리를 뿜어냈다·
“청문령··· 선생님께선··· 살아 계십니다·”
“···알고 있습니다·”
나는 심어와 목소리를 둘 다 내며 북향화와 다른 동료들이 다 알아들을 수 있게 해 주며 노리개를 받아 들었다·
“그분의··· 몸에서 나온··· 돌을··· 노리개에 봉했을 때부터 다시 꺼낼 법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 돌은 수상한 공간으로의 통로만을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도우를 만났을 때 저는 그 돌과 연결된 것이 도우의 신통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철퍽!
그녀가 힘을 잃고 자리에 쓰러졌다·
나는 그녀를 부축해 주었다·
“그러나 연이 언니의 도움을 받아··· 광한 천원과 함께 힘을 해석하며 알 수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청문령 선생님의 몸에서 나왔던 그것은 다른 세계와 연결된 통로였을 뿐입니다· 그 통로가 노리개와 동화되었을 뿐····”
우우웅!
그녀가 내 손에 노리개를 쥐여 주며 말을 이었다·
“그 노리개는 도우의 신통과 연결된 것이니··· 도우의 신통은 곧··· 청문령 선생님이 계신 세계와 연결된 것입니다·”
츠아아아아-
나는 만상인연도를 펼쳤다·
주변으로 희뿌연 안개가 퍼져 나갔다·
나는 북향화의 말을 들으며 노리개를 더욱더 꽉 쥐었다·
‘그렇구나····’
북향화가 노리개에 청문령의 괴석을 넣고 시간이 흐른 후·
내 만상인연도는 그 자체로 ‘어딘가’로 통하는 통로가 되었던 것이었다·
나는 만상인연도의 머나먼 한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너무나도 익숙한 기운이 풍겨지고 있었다·
봉래도·
육요와 백린이 향했던 소금산 위의 세계·
육요의 말에 의하면 아마 청문령이 있는 곳은 ‘다른 꿈속’이겠지만····
아마 그 본질은 같으리라·
나는 그제야 김연이 어떻게 유호덕제사서를 가져왔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우웅 우우우웅!
노리개가 북향화의 몸을 고리 형태 법술들로 둘러쌌듯이 애당초 소금산의 꿈속 세상은 저 윤회(輪回)의 힘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날 누구도 봉래도 내에서 보물을 챙기지 못했으나 오직 김연만이 바라던 것을 손에 넣은 이유는 그녀가 광한 천원을 가졌기 때문이리라·
“저는··· 어렸을 때부터 줄곧 커다란 새에게 깔리는 꿈을 꾸었습니다·”
점차 동료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서란 시호 김영훈 김연 등·
북향화와 친분이 깊은 이들은 전부 주변에 모였다·
“생각해 보면··· 그건 깔리는 꿈이 아니었습니다· 새가··· 저를 바라보았던 것이지요· 그 위압감에 깔렸다고 착각했던 것뿐··· 그 위대한 새는 제게 늘 영감을 속삭여 주었고··· 죽을 때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츠츠츠츳!
북향화의 얼굴에 두 개의 문양이 떠올랐다·
하나는 금빛의 문양 하나는 은빛의 문양이었다·
“그건··· 제 명(命)이었습니다· 노리개를 통해 청문령 선생님과 상담하며··· 그분께 물어 알게 되었지요· 어떤 위대한 존재가 살아 있는 명을 낳고 이 명이 세계 곳곳에 깃들어 ‘자란 땅 안에서는 최고의 장인이 되나 땅을 벗어나면 각기 다른 이유로 죽어 가게 되는’ 존재들을 낳은 것이지요· 이 살아있는 명(命)이 바로 기문법재의 실체입니다····”
북향화의 숨이 가빠졌다·
점차 그녀의 신경 전체가 마비되는 게 느껴졌다·
“제 저주··· 천형이 최근에 발작하게 된 것은 그때 만났던 재앙 탓이 아닙니다·”
그녀가 나를 보며 말했다·
“당신 탓도 아닙니다· 그저··· 제가 노리개를 연구하며 제 명(命)을 벗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물질적인 고향을 벗어나는 것만이 명이 정한 범위를 벗어나는 게 아니에요· 진정으로 저희에게 씌워진 명(命)을 벗어나는 게 저주의 발동 조건이었던 겁니다····”
츠츠츠츳-
점차 그녀의 몸이 빛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는 그녀의 빛이 노리개 안으로 흘러 들어가는 걸 느꼈다·
아니 더 정확히는 노리개 안·
만상인연도의 안쪽·
그 너머 ‘소금산의 세계’로 혼이 이동하는 것이었다·
“저는··· 청문령 선생님이 있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제 명을 벗어나 진정 해방되어····”
김연은 울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북향화의 손을 꼭 잡았고 나는 지금껏 숨기고 있던 인력과 법력 내공 모든 감각과 힘을 동원해 그녀의 혼을 잡으려 해 보았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그녀는 마치 바닷물에 녹아 흩어지는 소금과 같이 만상인연도 너머 청문령이 있다는 세상으로 떠났다·
“그러니····”
파사사사사-
북향화가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은 소금이 되었다·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그것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눈을 완전히 감았다·
“당신들 모두··· 진정으로 사랑했습니다·”
“가지 마···!”
김연의 외침과 함께 그녀는 완전히 소금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나는 허망하게 소금이 된 북향화를 바라보았다·
김연은 울부짖었고 나는 몸을 덜덜 떨었다·
그녀가 변한 소금은 청문령의 것처럼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그저 평범한 소금일 뿐이었다·
나는 그 평범한 소금을 어루만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늘에서 내리던 비는 금세 멈췄다·
김연은 소금을 가슴에 껴안고 울었지만 소금은 그저 흘러내리고 또 흘러내렸다·
홍범이 내 옆에서 씁쓸하게 입을 열었다·
“향화 선자는··· 이미 죽었어야 정상이었습니다· 다만 최후의 최후까지 청문령 대인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노리개의 비밀을 풀겠다는 일념으로 노리개의 힘을 빌려서까지 수명을 연장했습니다·”
“····”
“아마 다른 세계의 힘을 빌린 대가로 소금이 되어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그는 침음성을 흘리며 내 옆에서 함께 북향화를 애도했고 나는 새하얗게 변한 노리개를 움켜쥐었다·
노리개는 익숙한 물질로 변해 있었다·
염정(鹽晶)!
마치 소금산 위의 대궐과 같이····
다른 세계로 향하는 통로가 된 것이다·
시호가 조심스레 김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김연 대인··· 이제··· 놓아 주시지요· 장례를 치러야 합니다·”
“닥쳐! 아직 아직 뭔가··· 희망이····”
“김연 대인····”
그리고 나는 뒤를 돌며 말했다·
“아직 안 죽었다·”
내 말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빗물이 땅으로 내려와 호수가 되던 것을 떠올렸다·
형태가 바뀌었을 뿐 절대로 어떤 것도 멸하지 않는다·
마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형태가 바뀔지언정 영원하다·
그리고 그와 같이··· 북향화의 혼 또한 다른 세계로 갔을 뿐·
“다시 만날 수 있어· 장례는 치르지 말아라·”
김연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손에서 소금이 부스스 떨어져 내렸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하죠···? 향화가 말한 세계로 갈 방법이 있단 건가요? 거긴··· 죽어서밖에 갈 수 없는 곳이에요· 향화의 연구가 증명한단 말이에요!”
“맞아· 우리는 갈 수 없지·”
“그럼 어떻게····”
“그러니 ‘저 세계’를 불러와야겠지·”
“···예?”
그녀를 포함해 다른 이들은 이해가 가지 않는단 눈으로 나를 보았다·
만상인연도를 통한 노리개를 통한 세계는 봉래도의 세계와 다르단 게 느껴졌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소금산과 거대한 염정·
그리고 봉래도 진법의 도움을 받아서야 겨우 들어간 것이 봉래도의 세계였다·
그에 반해 이 노리개는 너무 작다·
기껏해야 사람의 영혼 정도만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
그렇기에 살아 있는 사람은 이 노리개와 이어진 세계에 갈 수 없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우리가 갈 수 없다면 그쪽의 세계를 이 세계에 불러 버리면 된다·
그리고····
완전히 다른 시공간을 우리가 있는 시공간에 불러내는 술법이라면 이미 알고 있다·
“따라와·”
연의 연·
그것이라면····
북향화를 다시 불러낼 수 있으리라·
나는 체내에 완전히 자리잡은 여섯 신통을 느끼며 알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천지족의 수행으로도 준쇄성기였다·
“괴군을 끝내 주러 가자·”
수천 년 동안 이어진 가엾은 괴군의 연극·
그 막을 내릴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