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라· (4)
괴군 성불 작전이란 다음과 같았다·
우선 내가 허공분쇄의 일검을 날려 괴군의 기묘성채를 반쯤 쪼개 놓는다·
어차피 장익 때 확인한 것과 같이 괴군의 성은 반으로 갈려도 연의 연만은 발동되니 문제가 없다·
다음으로 쪼개진 성 안쪽으로 김연이 들어가 대성한 기묘성심전을 통해 괴군의 연의 연을 발동시켜 준다·
그러면 괴군은 연의 연 속에서 성불하고 기묘성채는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된다·
기묘성채에는 자가 수복 기능이 있으니 내가 박살 내 놓은 부분도 곧 돌아오리라·
여기서 변수는 기묘성채와 [그녀]의 힘이었다·
‘이번 생 괴군의 기묘성채엔 계멸축지진이 추가되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광한계 안에선 쇄성기 수준의 기동력이 생기는 것이다·
‘거기다 쇄성기 전력인 강민희를 눈앞에서 직관했으니··· 그 정보를 토대로 [그녀]를 얼마나 개조했을지도 알 수 없어·’
즉 괴군이 내게서 도망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를 위한 또 다른 계획을 세워 두었다·
[역할은 숙지하고 있겠지 서란?]
“예 선배님·”
서란은 섭명함을 타고 있었다·
서란의 섭명함에는 동력장치가 들어 있었다·
일전 강민희에게 부서진 섭명함의 동력장치를 서란의 섭명함으로 옮겼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건 일시적으로 옮겨 놓은 것이었기에 차후에 흑색귀골곡에게 반납해야 한단 조건이 붙어 있었다·
‘괴군을 치러 간다 하니 쌍수를 들고 동력장치를 내주다니····’
흑색귀골곡에게 있어 괴군이란 50만여 년에 달하는 역사에 오점을 남긴 끔찍한 괴수나 다름없었다·
그런 괴수를 처치하러 간다니 그들은 섭명함뿐이 아닌 무수한 귀왕들 역시 같이 빌려주었었다·
끼아아아아아!
키야아아아!
덕분에 섭명함 안쪽에선 무수한 귀왕들의 귀곡성 역시 같이 울리고 있었다·
나는 서란을 보며 고갯짓을 했고 서란 역시 고갯짓으로 답했다·
내 동료들은 신호에 따라 빠르게 섭명함에 탑승하였다·
[계멸축지진을 발동하는 데엔 5초 정도가 걸린다· 그러니 그사이에 기묘성채에 침투해야 할 것이야·]
만약 나와 싸우다 괴군이 도망친다면 내가 괴군을 추격하며 기묘성채에 잠입한 동료들이 연의 연을 발동해 줄 것이다·
“예! 꼭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스승님의 원한을 이어받아서라도···!”
씩씩하게 외치는 서란의 뒤쪽에 어렴풋이 송진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괴군에게 치욕스럽게 당했던 흑색귀골곡의 원로·
송진의 복수가 서란에게 이어져 와 오늘 실행될 것이다·
[좋아 그럼 가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다시 돌렸다·
쿠구구구궁!
섭명함이 움직였다·
섭명함은 그대로 공간을 쪼개고 공간 도약을 했다·
다음 순간 섭명함이 나타나는 곳은 기묘성채의 내부일 터!
나는 귀기를 내뿜으며 먹장구름을 끌고 기묘성채로 날아갔다·
천지영기를 발판으로 삼는 요족의 활공술은 일정 경지 이상 되면 천지영기가 요족에게 도움을 주기 시작한다·
천지영기가 자발적으로 밀려들어 요족을 더 빨리 이동시키는 것이다·
밀집된 천지영기는 구름의 형태로 변하고 요족은 마치 구름을 타고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콰르릉!
나는 활공술을 이용해 먹장구름 위쪽에서 빠르게 기묘성채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츠츠츠츳!
전신에서 저주가 흐르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꽈아아앙!
나는 기묘성채 주변을 뒤덮은 방어결계에 부딪혔다·
방어결계가 출렁였다·
동시에 내가 닿은 부분의 결계진이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기묘성채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나는 피식 웃으며 양손을 뻗쳤다·
단악검법
제 구 초·
산수화!
참격이 사방으로 뻗친다·
투명한 검기가 그대로 괴군의 방어결계를 일거에 박살 낸다·
‘이걸로 섭명함은 문제없이 기묘성채 안쪽에 도달한다·’
적의 전송을 막는 부분도 포함된 결계였을 테니 이제 작전은 원활하게 수행될 터·
남은 것은····
쿠웅!
[···저희 꽤 오래 만나 온 사이지요·]
기묘성채 위쪽에 나타난 [그녀]!
쿠구구구구!
기묘성채가 떨리는 게 느껴졌다·
괴군은 미쳐 있을지언정 바보가 아니었다·
물론 상황 판단이 잘 안되긴 했다·
그렇기에 괴군은 자기 몸에 ‘상황 판단용 법기’를 이식했다·
덕분에 그는 위험한 적을 만나면 적당한 선에서 도망칠 줄도 알았다· 괴군은 싸우고 싶어 해도 그에게 이식된 판정용 법기가 환영들로 모의 전투를 벌여 본 후 승률이 없다 판단되면 반강제로 도주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애당초 사리 분별이 잘 안되는 미치광이인 그가 비선대에서 처음으로 도망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지금 괴군에게 이식된 판정용 법기는 나를 상대로 승률이 없다고 판단한 듯 계멸축지진을 발동시키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공간이 구부러지는 게 보였다·
‘뭐야··· 내 예상보다 빠르잖아·’
아무래도 약간의 계산 오차가 있었던 듯 계멸축지진이 발동되는 데엔 3초 정도만 있으면 되는 듯했다·
그사이에 괴군이 계멸축지진을 한 차례 더 개조해서 성능을 끌어올린 모양·
‘이제 남은 건 [그녀]의 성능인데····’
나는 찰나의 시간대로 진입하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3초·
짧으면 짧다지만 합체기 이상의 실력자들에겐 굉장히 긴 시간이었다·
[그동안 꽤나 악연도 많았습니다만····]
나는 [그녀]를 보며 웃었다·
등선향에서 [그녀]를 통해 다른 모든 수도종문을 겁박하던 괴군이 떠올랐다·
한쪽 손만으로 나를 미친 듯이 쫓아와 자살하게 만들었던 [그녀]가 떠올랐다·
괴군과 함께 천 년의 세월을 함께하며 기운만큼은 쇄성기 크기에 올라갔었던 [그녀]가 떠올랐다·
언제나 내게 [그녀]는 두려운 존재였다·
나는 10회차 서악 마을에서 나와 춤췄던 북향화와 같이 얼굴을 무명천으로 가린 [그녀]를 바라보며 읊조렸다·
[오늘 얼굴을 확인하고 이 악연을 끊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찰나·
나는 [그녀]에게 일직선으로 달려들었다·
꽈아아아앙!
어마어마한 굉음과 충격파가 울렸다·
섭명함이 무사히 기묘성채 내부에 전송된 게 느껴진다·
이제 내가 할 일은 [그녀]를 잡아두는 것뿐!
첫 일격에서 느껴졌다·
‘미쳤군 괴군····’
천 년 이후 시점의 [그녀]보다 강했다!
쇄성기와 같은 별의 힘이 이미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힘의 소모가 빨라·’
나는 이 무지막지한 힘의 파도가 곧이어 잦아들 거란 것을 인지했다·
‘아마 길어 봤자 5초? 그 후엔 가동이 멈춘다·’
힘은 강력하지만 5초밖에 안 된다·
물론 쇄성기 수준에서 5초는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이지만 그게 끝이다·
‘불완전하군·’
출력도 그렇고 [그녀]는 나와 같은 시간대에서 움직일 수 없다·
의식을 가속시키는 것도 이 경지쯤 되면 가히 초월적인 속도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럼 안녕히 가시길····]
한때 내가 두려워했던 [그녀]여····
철컹!
정지된 세계·
그곳에서 [그녀]의 등 뒤로 원반 같은 것이 떠올랐다·
‘뭐···?’
그것은 고리였다·
그녀의 등 뒤로 후광처럼 마치 광배처럼 동그란 ‘고리’가 나타났다·
동시에 딱딱한 기음(機音)이 [그녀]에게서 들려왔다·
[천기계산장치 발동· 대인전 형태로 전환· 쇄성기 수준 적에 대응키 위한 연산 속도 승인·]
위이이잉!
마치 수정으로 된 듯 반투명한 ‘고리’ 안쪽에는 어쩐지 검은 무언가가 꿈틀대고 있었다·
[반격하겠습니다·]
콰앙!
나는 [그녀]의 창이 내 검을 후려치는 걸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천기계산장치? 또 뭘 만든 거요 괴군!’
우우우웅!
[그녀]의 창술은 내 기준에서는 형편없었다·
김영훈이 개량하기 전에 내가 써 왔던 단악검법 정도 수준의 완성도를 지닌 무공·
하지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력이····’
꾸그그극!
[그녀]의 체내에서 별의 힘이 느껴진다·
그와 동시에 인력이 척력으로 전환되며 우주적인 힘으로 나를 튕겨 내어 버렸다·
꾸우웅!
나는 그 우주적인 척력에 그대로 튕겨 나갔다·
다음 순간 내 위쪽에서 축지법을 통해 이동해 온 [그녀]가 창끝에 인력을 집중시키며 나를 내리찍어 왔다·
번쩍!
휘광이 번뜩인다·
[그녀]의 일격에 천지간이 빛의 기둥으로 연결되는 듯하더니 그대로 저 아래쪽에 ‘구멍’이 뚫렸다·
광한계의 공간 자체가 우그러지며 차원에 구멍이 뻥 뚫려 버린 것이었다·
척!
찰나의 틈새 그녀가 ‘천기계산장치’라는 것을 통해 자세를 바꾸며 나를 향해 두 자루의 단창을 휘둘렀다·
나는 그대로 단창의 참격을 유곡의 초식으로 흘려 낸 다음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놀랍군·’
괴군은 정녕 5초에 한해서지만 쇄성기 수준의 괴뢰를 만들어 냈다·
콰드드득!
내 왼손이 [그녀]의 허리를 파고들었다·
[그녀]는 아슬아슬하게 내 일격을 피한 후 커다란 바위산 위쪽으로 올라가 자세를 바꿨다·
찰나 나는 [그녀]의 앞에 도달했다·
[그녀]가 반응하려 했으나 난 동시에 세 개의 초식을 쏟아 내며 바위산째로 그녀를 저 아래로 내다 꽂았다·
쿠광!
[그녀]는 채 반응하지 못하고 저 아래로 내다 꽂혀 다시 튕겨 올라온다·
나는 [그녀]의 몸 위에 올라타 양손을 뻗었다·
손에 검(劍)을 씌운 채 그대로 다시금 내다꽂는다·
단악검법
용맥
능곡지변
왼손은 크게 내리치며 [그녀]를 베었고 오른손은 검기를 [그녀] 내부로 침투시켜 지형을 변화시킬 듯 안쪽에서 힘을 발작시켰다·
콰칭 콰칭!
괴뢰 신체의 내부에서 기관장치들이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기능에 문제가 없는지 [그녀]가 내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찰나의 세계·
그곳에서 나와 [그녀]는 수많은 공방을 주고받았다·
푸확!
우리는 구름을 뚫고 올라가 천공에서 격돌했다·
[그녀]가 비익창의 초식을 통해 나를 밀어붙이려 했다·
변초를 통해 내 헛점을 끌어내려 했으나 산명곡응의 초식으로 내부를 다시 진탕시켜 준다·
비익창의 환결(幻訣)과 패결(覇訣)을 섞어 환초 속에 패도의 힘으로 나를 적중시키려 했으나 공곡전성의 초식으로 힘을 받아 되쳐 버렸다·
양손에서 광선을 뿜어 주자 나 역시 42개의 눈에서 귀기의 광선을 뿜어 응수한다·
인력을 통해 공간 전체를 우그러뜨려 죽이려 하자 적진성산의 초식으로 공간 전체를 베어 버린다·
슈콰아앙!
적진성산의 초식은 공간을 베고도 모자라 계속해서 뿜어져 나갔다·
[그녀]는 적진성산의 검기를 막아 냈으나 그 힘에 의해 그대로 끝없이 광한계의 천공 위쪽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나는 [그녀]를 쫓아가며 총천검을 몸에 덧씌웠다·
어느덧·
쩌어어엉!
[그녀]는 적진성산의 초식에 밀려 광한계 천공의 끝·
‘하늘’의 차원장막이 있는 곳에 도달해 버렸다·
차원장막·
혹은 세계순력이라고도 불리는 막·
그곳에 도달한 [그녀]를 향해 나는 검을 몸에 씌운 채 몸통 박치기를 했다·
꽈아아앙!
광한계 전역이 울리는 듯했다·
그와 동시에 세계순력이 우그러지는 게 육안으로 보였다·
단악검법
심산!
본래는 상대의 안쪽으로 파고들어 가 올려 베는 심산의 초식·
그러나 이번에는 몸통 박치기를 하며 베는 초식으로 변형시켰다·
즉 몸통 박치기가 끝이 아니다·
스릉!
나는 우그러진 세계순력에 꽂혀 버린 [그녀]를 향해 검기를 올려 베었다·
번쩍!
그와 함께 우그러질 대로 우그러진 광한계의 세계순력이 그대로 폭발했다·
콰과광!
[그녀]는 광한계 바깥으로 튕겨 나가 버렸다·
[그녀]가 자세를 잡고 내게 대응하려 했다·
그러나 나는 더욱더 의식을 가속하며 양손을 뻗었다·
검진(劍陣)
일만이천(一萬二千)!
내 전신에서 무색유리검들이 뿜어졌다·
홍수령과 함께 완성시킨 검진이 [그녀]를 감쌌다·
삼천 자루의 무색유리검이 각각 세 자루의 분영을 더 만들며 일만 이천 자루의 검이 되었다·
검진은 [그녀]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듯하더니 점차 좁아지기 시작했다·
[끝이다!]
나는 크게 일갈하며 검진을 빠르게 좁혔다·
그리고 휘광이 터져 나왔다·
번쩍!
새하얀 빛과 함께 어마어마한 인력이 한곳에 밀집된다·
그리고 [그녀]가 검진에서 빠져나왔다·
[그녀]의 단창 중 한 자루는 부러져 있었고 한쪽 팔도 너덜거려 거의 쓰기가 불가능해진 상태였다·
몸 곳곳이 해져 버린 상태·
그리고····
나는 마침내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