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怪), 군(君)(4)
콰득····
나는 남은 박도를 움켜쥐었다·
칠대존자의 투영을 없애기 위해 19개의 박도를 소모해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세 자루의 박도뿐이었다·
‘파괴’ 그 자체에 특화된 장익의 박도이니만큼 존자들을 대량으로 쓸어버리는 데엔 이것만 한 것이 없는 듯했다·
쿠웅!
거기에 기묘성채는 이제 천련산에 도달했다·
다행이라면 5명의 존자들은 전부 쓸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장익의 박도는 혼의 계위를 넘어 공격하는 것이었기에 한번 ‘인지’했다면 그 자체로 본체에까지 충격을 준다·
그렇기에 투영들만 타격했어도 아마 본체들 역시 수년은 상처 회복에만 전념해야 하리라·
나는 남은 존자들을 바라보았다·
혈음계 선봉장 쇄령 존자·
그리고 혈음계 최강의 존자 규천 존자였다·
‘하필 제일 까다로운 놈들만 남았군·’
나는 쇄령 존자를 바라보았다·
전신에 산호가 돋아난 붉은 거인·
꿈뻑!
붉은 거인의 몸에는 눈알 같은 것들이 잔뜩 돋아나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전에 봤던 것처럼 존자들을 상대로 의념은 잘 읽히지 않았다·
예전에 봤을 때는 혈음계 생물 특유의 기괴함이라 생각했지만 이 경지까지 오르자 오히려 알 수 있었다·
‘혈음계 생령의 특징이 아니라 존자 이상 존재들의 특성이었군·’
쿠웅!
쇄령 존자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는 가부좌를 튼 채 수결을 맺기 시작했다·
‘놈이 힘을 쓴다!’
광한계에는 혈음계의 침공을 대비하기 위해 혈음계 존자들의 외모와 이름·
그리고 능력에 대한 조사를 전부 해 놓았다·
모든 중경계의 존자는 뇌성해로 떠났으나 혈음계에만 존자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때문에 태수 이상이라면 누구든 혈음계 존자들에 대한 정보는 제공받았다·
쇄령 존자의 능력은 저주와 심마 그리고 강신 및 환경 제어 능력이었다·
저주와 심마 환경 제어 같은 것 따윈 별로 무섭지 않았다·
저 존재에게서 제일 무서운 것은 강신(降神) 능력!
쇄령 존자는 혈음계 자체의 힘을 강신해서 사역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쿠그그극!
쇄령이 가부좌를 튼 자리에서 붉은 산호가 잔뜩 돋아난다·
오오오오오-
부정적인 힘들이 그를 주변으로 몰려들더니 심천마들이 무수히 탄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심천마들은 쇄령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며 어떠한 의식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저게 완성되면 혈음의 일부가 본격적으로 쇄령에게 강신하여 권능을 발휘하리라·
‘중간에 막으면 된다만 역시 문제는····’
나는 나를 노려보고 있는 규천을 바라보았다·
내게 장익의 박도가 남은 것을 보고 먼저 달려들진 않았으나 내가 쇄령에게 달려든다면 언제든지 달려들 기세·
안 그래도 강력한 것으로 소문이 자자한 황룡족이다·
그런 황룡족이 악랄한 마공을 익혀 혈음계의 존자까지 되었다·
‘육린 따위와는 절대 비교할 수 없는 괴물이겠지····’
투영체지만 혈음계의 지원을 받는 덕인지 둘의 기세는 본체에 못지않았다·
‘할 수 있을까·’
존자 두 명을 내가 상대해야 한다·
나는 정신을 극도로 예리하게 벼려 냈다·
‘할 수 있다·’
아니 해야만 한다·
드드드드드드드!
내 전신이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나는 21개의 머리와 별빛의 거체를 꺼냈다·
규천과 쇄령은 그런 나를 보면서도 별로 경계하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도 그들의 관심사는 장익의 박도 쪽·
‘나는 아직도 신경 쓸 가치는 없다 이건가·’
신경 쓰게 만들어 주마·
울컥 울컥 울컥!
[끄아아아아아!]
내 전신에 ‘눈알’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몸에 산호와 눈알이 돋아난 쇄령 존자처럼 내 몸에 ‘깃발’과 ‘눈알’들이 돋아났다·
눈알들은 뒤룩거리며 내 눈치를 봤고 깃발들에선 끊임없는 고통 소리가 울려 퍼졌다·
멸계요주번이 전신에서 돋아나며 주변으로 흉악한 기세를 흩뿌렸다·
끼야아아아아!
끄아아아!
흐아아아아아!!!
무시무시한 귀곡성이 울리며 쇄령 존자의 주변에서 샘솟던 심천마들 중 절반이 미친 듯이 내게서 도망쳤다·
나머지 절반도 도망치고 싶어 하는 듯했지만 쇄령 존자와 주술적으로 묶여 있어 못 도망치는 것 같았다·
내 저주와 고통의 기운을 느끼던 쇄령 존자와 규천 존자의 눈빛이 변했다·
의념은 읽을 수 없었지만 눈빛으로 감정이 전해져 왔다·
황당함·
‘아직 황당함 정도라는 건가·’
긴장감으로 바꿔 주마·
나는 선수진혈의 힘을 끄집어냈다·
치이이이이-
주변으로 만상인연도의 안개가 희뿌옇게 피어올랐다·
내 육신의 힘이 더더욱 팽창한다·
장익의 박도가 다 떨어진 이상 이제 저 존자 둘은 순수히 내가 쌓아 온 것으로 승부를 볼 차례·
광한 천원 지축기 선각후통으로 쌓아 온 그 모든 것을 다하여 놈들을 상대한다!
명각 지각 성맥안 천지심 삼계위의 시야를 전부 눈에 담는다·
경지가 일치되지 않아 삼태극은 꺼낼 수 없었으나 괴(怪)의 회로가 내 몸을 뒤덮었다·
더 이상 ‘서 장군’의 회로가 아니었다·
이젠 사축기 ‘서 장군’ 정도로는 내 힘을 증폭시킬 수가 없으니까·
내게 새겨진 회로는 방금 전 내가 한참 헤집었던 [그녀]의 회로였다·
싸우면서 [그녀]를 파악했기에 전신을 [그녀]처럼 일순간 개조하는 건 문제가 없었다·
천지심괴가 내 몸에 씌워지자 무지막지한 힘이 내 몸에서 폭증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규천과 쇄령의 눈에 ‘경계심’이 깃든다·
나는 무색유리검을 꺼내 들었다·
하나하나가 사축기 규격 외 법보 수준·
츠츠츠츠츳!
삼천 자루의 무색유리검이 합쳐지기 시작했다·
삼천 자루가 삼백 자루가 된다·
규격 외 법보가 사축기 정상 수준 법보로·
삼백 자루가 삼십 자루가 된다·
사축기 정상 수준 법보가 명실상부한 연허법보· 합체기 수준 법보로·
삼십 자루가 세 자루가 된다·
합체기 수준 법보가 합체기 대원만 수준 법보가 된다·
세 자루가 완전히 합쳐진다·
합체기 대원만 수준 법보가 탈합체기 수준으로 변모한다·
그리하여 완성된 총천(總天)!
위이이잉!
나는 무색유리검을 부여잡으며 42개의 안광을 밝혔다·
‘여태껏 법보에 의지한 적은 거의 없었지·’
이제까지의 무색유리검은 솔직히 유리의 강도에서 단화로 정련한 것이었다·
그랬기에 내가 무색유리검의 힘을 빌린다기보단 언제나 무형검이나 총천검으로 무색유리검을 ‘강화시켜’ 싸우느라 오히려 내 집중력을 감소시키는 것이 무색유리검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번쩍!
총천의 형을 개화한 무색유리검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10회차 당시 그녀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했다·
무색유리검에 존재하는 3개의 형(形)·
제일형인 색은 무색유리검에 기운을 변화시키는 능력·
제이형인 연은 무색유리검의 기운을 연동시키는 능력·
그리고 최후형인 총천은 무색유리검으로 하여금 내 마음을 힘으로 전환시키는 능력이었다·
총천형의 무색유리검에 총천검이 뒤덮혔다·
연허법보화되어 내 심상과 동화된 무색유리검 위로 총천검이 겹쳐졌다·
드드드드드드!
‘이게··· 무색유리검인가·’
수많은 세월 끝에 드디어 내 손에서 힘을 발휘하는 무색유리검이 느껴졌다·
나는 무색유리검을 얻게 된 이후 처음으로 총천의 출력을 10할 완전히 끌어내며 웃었다·
마치 손에 별(星)이 들린 것 같다·
백운의 재천성이 주었던 위압에 뒤지지 않는 검압이 내 검에서 흘러나온다·
‘고맙습니다·’
10회차의 당신이여·
무색유리검에 증폭된 총천검이 뿜는 새하얀 빛이 내 오른손에서 튀어나와 천지를 잇는 기둥이 되었다·
규천과 쇄령의 눈에 경계심이 더해지는 게 보였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나는 영역에서 ‘또 하나의 검’을 꺼냈다·
새하얀 순백의 검신(劍身)·
염정(鹽晶)으로 만든 선보의 모조품·
개력(改曆)!
선보 남극보의 영승의 분체이자 모조품·
남극반의 부품인 개력!
회귀한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은 언제나 찜찜하게 생각해 왔던 기물·
그러나 지금은 찜찜하고 뭐고 가릴 때가 아니었다·
개력검은 왼손에 총천검은 오른손에 쥐어 쌍검(雙劍)의 태세를 취한 채 두 검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끌어올렸다·
개력 쪽에서도 총천 쪽에 못지않은 힘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두 존자의 눈에 긴장감이 서린 것을 보았다·
두 존자와 내 눈빛이 부딪혔다·
직후 나는 두 존자를 향해 돌진했다·
‘빨리 연의 연을 발동해라!’
괴군 그리고 김연!
* * *
쿠구구구궁!
하늘이 울렸다·
촤악!
“허억··· 헉····”
김영훈은 전신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허공의 무언가를 베어 냈다·
털썩!
그러나 그는 그것을 끝으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자신을 괴롭히던 심마들을 베는 데엔 성공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기력이 없어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제길·”
쾅!
그는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손이 떨려 오고 있었다·
서은현은 허공분쇄라 칭한 경지·
그곳에 이르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그러나 이 경지만은 쉽지 않았다·
좌탈입망의 극의에 이르러도 마찬가지·
도대체 어떻게 저기에 도달한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단순한 노력 따위로 되는 게 아니란 건 알았다·
자기 자신을 불태워 파멸시킬 정도의 의지가 필요했다·
하지만····
‘어떻게 하란 말이냐!’
그는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이 경지 위로 올라가려면 공(空)을 체현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소중한 걸 전부 잊지 않고서는 공을 체현할 수 없었다·
‘내가 무를 수련하는 이유를 내팽개치라고!’
김영훈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평범한 군 생활을 지나고 적당한 수도권 대학을 졸업해서 적당한 기업에 들어가 평생을 바쳤다·
기업 이사진 중 한 명인 오영철의 딸 오예린과 만나 결혼도 했고 평범한 결혼 생활을 해 왔다·
가끔은 싸우기도 가끔은 화목하게도 가끔은 행복하게도 지냈던 일상들·
평범한 나날들이었다·
그는 평생을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평범함을 수호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쳐 왔던 사람이었다·
김영훈은 가장(家長)이었다·
“어떻게! 포기하란 거냐!”
그는 기묘성채의 바닥을 두들기며 소리를 질렀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도를 집어 들었다·
“포기할 수··· 없단 말이다·”
서은현은 인연을 품에 안아 보는 건 어떠냐는 식으로 조언을 했지만 김영훈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의 깨달음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서은현처럼 마음이 넓어 모두를 받아들일 순 없었다·
전명훈처럼 집요해서 한 가지를 부서져라 밀고 나갈 수도 없었다·
강민희처럼 똑똑해서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도 없었다·
오현석처럼 체력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김연처럼 스펙이 좋지도 않았고
오혜서처럼 눈치가 빠르지도 않았다·
그랬기에 그는 모두와 함께 모이기를·
집에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라 왔다·
그리고 그는 경천동지라는 말로도 부족한 서은현과 두 존자의 전투를 보며 알 수 있었다·
서은현이 밀리고 있었다·
규천이라는 타락한 황룡이 너무나 강했다·
일대일이라면 서은현에게 승기가 있었겠으나 이 대 일이라는 상황이 서은현을 몰아넣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서은현이 패배하고 그들 모두가 몰살당할 상황·
물론 김영훈은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다·
월수궁무록도 능광도도·
정말 도망치기 좋은 무공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포기··· 할 수··· 없단 말이다····”
가족도 가족 같은 동료들도·
무엇 하나 포기하기에는 그 역시 인연의 소중함을 사무치게 깨달았으니까·
철컥!
그는 도를 잡고 일어나 울었다·
그리고 자신이 쌓아 온 무(武)에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느 쪽도 포기할 순 없다·
그러나 언제까지도 울면서 주저앉아 있을 순 없다·
그는 어른이었으니까·
‘서은현은 어찌했는지 모른다!’
어차피 남의 깨달음을 쉽게 쉽게 이해할 순 없다!
그렇다면 자신의 방식을 쓴다·
‘내 방식으로 다음 경지에 도달한다!’
파아아앗!
김영훈의 뇌리에서 수많은 인연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도 안쪽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자신의 무(武)를 제외한 모든 것이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는 공(空)을 마음속에 체현시키며 눈을 빛냈다·
‘다음이나 내일 같은 건 필요 없다· 지금!’
파아아아앗!
황금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 지금 이 순간! 도달해야 한다!!!’
붉은 하늘 아래·
황금빛의 태양이 떠올랐다·
능광개벽형
두 번째 형태
금효위개(金曉爲開)!
금빛의 새벽이 열렸다·
김영훈의 몸이 불탔다·
황금빛이 그의 전신에서 타올랐다·
찰나·
단 한 순간의 찰나였으나 그는 공(空)에 진입했다·
그의 계위가 올랐다·
‘이것이··· 네가 보는 세상이냐·’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김영훈이란 존재는 세상에서 사라졌다·
남은 것은 한 자루 날카로운 황금빛 광채!
섬광(閃光)이 혈음의 힘을 강신하며 서은현을 요격하던 붉은 산호의 거인을 갈랐다!
[——!]
어마어마한 비명이 일대를 뒤덮었다·
파사사사-
그리고 산호 거인의 뒤쪽으로 황금빛이 흩어지는 김영훈이 다시 나타났다·
‘보고 있냐 서은현·’
그는 황룡과 일대일로 전투하게 된 서은현을 보며 주먹을 뻗었다·
‘나도 한 발 걸쳤다·’
그 생각을 끝으로 김영훈은 기절했다·
* * *
콰르르릉!
나는 무지막지한 괴력으로 나를 찍어 누르는 규천을 상대하며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믿고 있었습니다·’
비로소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내 한 발 걸친 모양·
깨달음을 정립하진 못해 완전히 도달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완전히 감을 잡은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내 쪽·
나는 나와 대등하게 싸우는 규천을 보며 21개의 입으로 웃었다·
[이제 어쩌나· 저주를 해주해 줄 자가 없어져 버렸군·]
[···!]
나는 내 멸계요주번의 저주를 비틀어 다른 곳으로 옮겨 버리던 쇄령 존자가 쓰러진 걸 보며 히죽 웃었다·
꿈틀!
내 전신에 박힌 멸계요주번이 꿈지럭거린다·
동시에·
끼야아아아아아!
비명을 지르는 깃발들이 내가 규천에게 접근한 틈을 타 그의 몸체 안쪽·
내성(內星)에 꽂혔다·
번뜩!
규천이 두 눈을 부릅떴다·
[조금 따끔할 거다·]
다음 순간 규천의 두 눈이 뒤집어졌다·
버텨 봐라·
그 백운 성사의 정신조차 헤집었던 멸계요주번이다!
나는 미친 듯이 내 전신에서 뿜어지는 멸계요주번을 규천의 몸에 박기 시작했다·
규천의 칠공에서 피가 뿜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존자는 존자인지 고통에 몸에 겨워할지언정 못 버텨 자살하거나 죽지는 않았다·
그러나 못 움직이고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나는 개력과 총천을 든 채 히죽 웃었다·
[사라져라 황룡족의 망령아!!!]
단악검법
오의
단악!
22초의 절기가 두 신검을 통해 펼쳐지며 규천의 뼈와 살을 분리했다·
투영체에 불과하지만 소용없다·
나는 혼의 계위에서 그의 혼(魂)과 육(肉)을 동시에 베어 냈다·
인지한 순간 본체가 어디에 있든 베인다·
그것이 바로 허공분쇄에 도달한 심족의 공격이다!
내 검격은 혼의 계위를 넘어 규천의 본체가 있는 곳까지 전달되었다·
본체를 식별할 수만 있다면 무조건 벨 수 있다!
얼마 후 규천의 투영은 완전히 갈려 나가 소멸되었다·
나는 21개의 머리를 180도 돌리며 뒤쪽에서 김영훈에게 한 방 먹은 쇄령 존자를 쳐다보았다·
‘긴 악연이지·’
수인과 홍연부터 시작해서 진마계에서 맺었던 무수히 많은 인연들·
쇄령 존자의 손에 죽었던 많은 이들····
‘이제 끝낼 때다·’
나는 그들을 기억하며 개력과 총천을 손에 들고 쇄령에게 뛰어내렸다·
쩌엉!
내 일격에 천련산 전체가 흔들렸다·
김영훈에 의해 잠시 정신을 잃었던 쇄령 존자는 그대로 나에 의해 완전히 의식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
나는 쇄령 존자의 투영에서 느껴지는 흉악한 위압감에 몸을 떨며 한 발을 물러섰다·
: : 방해치 말라· : :
찌이이잉!
머리가 하얘진다·
다음 순간 나는 쇄령 존자가 마지막 순간 강신해 낸 혈음(血陰)의 권능 일부에 순간 머리가 아찔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쿠르르릉!
하늘에서 붉은 번개가 쳤다·
전명훈의 것이 아닌 혈음의 권능이 점차 세계를 장악하고 있단 신호였다·
콰릉 콰르르릉!
혈뢰가 땅 위로 일곱 줄기 떨어졌다·
동시에 혈뢰가 떨어진 곳에서 차원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하 하····]
혈음계 칠대존자·
그들의 본체가 소환되기 시작했다·
나는 검을 휘둘러 차원문을 으스러뜨리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혈음의 권능이 그들을 수호하는 듯 내 일검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느껴지는 기운이 다들 허약한 걸 보아 장익의 박도와 내 공격에 다들 충격을 받은 것 같긴 했다·
그러나 치명상을 감안하고 싸워도 저들 일곱의 전력은····
‘존자 3명분····’
존자쯤 되는지라 차원문을 넘는 데 저항이 큰지 소환에는 꽤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지금 문제는 그딴 것이 아니었다·
방금 전 내 머리가 아찔해졌던 이유·
‘혈음의 분혼이 정신공격을 했다!’
나는 황급히 기묘성채로 돌아가 동료들의 근황을 살펴보았다·
모든 동료들은 발작을 하고 있었고 멀쩡한 것은 오직 김연 서란 홍범 정도였다·
나머지는 모두 칠공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정신공격만으로 뇌가 곤죽이 되어 죽어 가는 중이었다·
멀쩡하다는 서란조차도 그냥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수준이었고 김연은 가부좌를 틀고 아직도 뭔가를 하는 중이었다·
난 기묘성심전으로 김연에게 접속해 물었다·
-김연 연의 연은 발동할 수 있겠어?
다행히 김연 쪽에서는 그게 가능하긴 한 듯 긍정의 대답이 왔다·
하지만 문제는 괴군 쪽이었다·
나는 기묘성채 상층·
괴군이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괴군은 그곳에서 뇌가 곤죽이 된 채 죽어 가고 있었다·
우리 정도 경지라면 뇌를 재생시키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방금의 정신공격은 영혼 자체를 타격하는 것이었기에 재생조차 힘든 듯했다·
나는 아연한 표정으로 괴군의 몸에 축문을 불어넣으며 소리쳤다·
“젠장! 안 돼!”
연의 연은 강대한 의식을 지닌 인형술사 둘이서 펼쳐야 한다·
한쪽은 바깥에서 한쪽은 안에서·
그리고 ‘안쪽’의 연의 연 발동 방법은 오직 괴군만이 알고 있었다·
내가 머리를 굴리며 방법을 찾으려 할 때였다·
저벅-
“···!”
나는 내 옆에 나타난 인영을 보며 흠칫 놀랐다·
서휼이었다·
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설마 제 생전에 괴군을 치료하게 될 줄은 몰랐군요· 뭐··· 급하니 어쩔 수 없지요·”
꿈뻑!
그가 괴군을 향해 손을 뻗자 그의 손에서 ‘눈알’이 돋아났다·
“탁혼만천···?”
“방금 혈음이 사용한 것은 자혼만천의 응용입니다· 자혼만천은 아시겠지만 전승(傳承)의 비술· 지금 혈음은 ‘자기 자신’을 광한계에 ‘전승’시키는 방식으로 이 세계를 차지하려는 중이지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세계의 일부’인 당신들에게 자신의 의식 일부를 불어넣은 겁니다·”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즉 혈음의 자혼만천에 당한 이들 중 지금 뇌가 곤죽이 된 이들은 얼마 후 혈음으로 변해 버린다는 겁니다·”
“···!!!”
난 괴군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나는 서휼을 보며 말했다·
“네가 그 얼굴인 걸 보니 방법은 있나 보군·”
그는 여전히 평소와 다름없이 웃고 있었다·
“서 도우도 고력계에서 자혼만천을 얻으시지 않으셨습니까? 거기다가 이번에 보니 그걸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셨고요· 제 탁혼만천과 도우의 자혼만천을 통해 괴군의 정신이 혈음에게 침식되는 걸 막을 겁니다· 그리고 강대한 의식으로 정신을 각성시킨 후 제 부인의 권능으로 기억을 되새겨 주면 됩니다· 이전에 했던 건 기억하시지요?”
이전·
서휼의 말인즉슨 강민희를 상대하기 위해 서휼 김연 오혜서가 힘을 합쳐 괴군의 기억을 엿보았던 순간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때는 기억을 잠시 지웠지만 이번에는 되살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구현 5단계 심족이신 서 도우의 힘이 필요하지요· 제 부인의 권능으로 괴군의 역사를 훑을 것이고 그러면 괴군의 제자가 기묘성심전으로 괴군의 의식을 자극해 기억을 살아나게 할 겁니다· 제가 탁혼만천으로 혈음의 침식을 막을 테니 도우가 그 아심검으로 괴군의 기억을 그의 혼에 다시 새겨 주십시오·”
“좋아· 협력하지·”
“시원시원하니 좋군요· 그럼····”
따악!
서휼이 손가락을 튕기자 괴군의 주변에 피로 그려진 주술진이 나타났다·
나와 서휼은 서로를 마주 보고 서서 각각 화혼만천과 탁혼만천으로 괴군의 정신을 잠식해가는 혈음의 힘을 막아 냈다·
나는 그 와중 동료들에게도 화혼만천의 힘을 흘려 내 잠시 혈음의 자혼만천을 막아 냈다·
따악!
서휼이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그림자에서 오혜서의 투영이 나타났다·
그녀는 음울한 눈빛으로 나와 서휼의 중간에 섰다·
나는 잠시 오혜서를 본 후 김연에게 신호를 보냈다·
츠츠츠츠츳!
김연의 의식 분신이 오혜서의 맞은편에 나타났다·
우리 넷은 괴군의 사방을 점한 후 각각이 수결을 맺었다·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아심검을 김연은 기묘성심전을 오혜서는 권능을 꺼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금 괴군의 혼에 접속하였다·
오혜서의 양손 안에 태극이 떠올라 역전하기 시작했다·
파락파락파락파락····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오며 나는 새하얀 빛을 보았다·
김연의 기묘성심전이 괴군의 의식을 자극하자 괴군의 첫 기억이 나와 김연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의 첫 기억·
태어났을 당시의 기억이었다·
괴군(怪君) 조연(早緣)의 과거가 나와 김연의 눈앞에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