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의 마음(2)
조연은 눈을 부릅떴다·
콰앙!
‘그녀’의 창강이 일순간 그의 방어법술을 터뜨렸다·
‘훌륭하군·’
그는 광소를 지으며 그녀와 맞섰다·
똑같이 구 형태의 의식영역을 가진 둘이었으나 사용법은 판이하게 달랐다·
그녀는 의식영역을 통해 공기의 흐름과 영기의 흐름 그리고 법술의 흐름을 읽어 내어 법술을 파괴했다·
그리고 유려한 초식을 사용해 조연에게 쏘아 냈다·
조연은 무수히 많은 법술을 쏘아 냈으나 그녀에게 닿는 것은 별반 없었다·
‘읽고 있군!’
느껴졌다·
그녀는 조연의 의념의 색조를 읽으며 공격을 모조리 회피하고 있었다·
‘지금 만들고 있는 그 공법으로 대적해 볼까·’
조연은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이내 포기했다·
‘그건 미완성 공법··· 아직도 완성되려면 한참 남았어· 그런 어설픈 건 아직 쓸 수 없다·’
그는 대신 수도자가 무림인을 이기는 정석적인 전법을 선택했다·
체급!
압도적인 체급을 앞세워 초식을 짓뭉개 버린다!
콰아앙!
전각의 한쪽 벽이 터져 나갔다·
동시에 조연의 법술이 그녀의 몸에 직격했고 그녀는 그대로 저 멀리 튕겨 나가 버렸다·
‘조금 흥분했군· 구해 줘야겠어·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꽤나····’
그러나 조연의 눈이 커졌다·
파앙!
그녀가 허공을 밟고 날아올랐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의 벗인 월비도 저런 건 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시간을 쏟으면 할 수 있단 얘기를 듣긴 했다·
단지 날아다니는 보법 같은 잡기에 익숙해지는 데에 시간을 쏟고 싶지 않았단 대답을 했을 뿐·
하지만 그녀는 딱 봐도 월비보다 어렸다·
갓 이십 대가 되었을까 싶어 보이는 생기(生氣)·
고작 저 나이에 월비와 같은 경지에 오른 건 둘째치고 월비조차 시간을 들여야 익힐 수 있다는 허공답보를 익혔다는 말인가!?
조연은 그녀의 재능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인 걸 인지하며 맑게 웃었다·
“하하 아하하하하!”
‘좋구나 월비·’
타앗!
그는 전각을 박차고 비행법기에 올라타 그녀에게 법술을 퍼부었다·
그녀는 두 자루의 단창에 창강을 씌운 채 조연의 법술을 쳐 내고 흘리며 점차 그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아주 좋은 제자를 두었어·’
“이게 끝이냐!!!”
콰앙!
조연은 그녀에게 염룡의 법술을 작렬시키며 외쳤다·
“월비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녀석은 허공에 강기를 씌우고 날렸던 녀석이야! 그 제자라는 놈이 허공답보 같은 잔재주나 익히고 제대로 배운 게 맞긴 하냔 말이다!”
“크윽····”
“더 보여 봐라! 더 월비에게 배운 걸 펼쳐 보란 말이다!!!”
그는 품속에서 법기까지 꺼내 들었다·
불진 형태의 법기가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그녀를 덮쳐 갔다·
콰아앙!
그녀는 전신에 호신강기를 두른 후 쌍창을 휘둘렀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조연은 월비가 펼쳤던 창의 초식을 기억하며 그녀의 공격을 피하고 더욱더 그녀를 몰아붙였다·
어느새 둘은 허공에서 전투하며 최초로 전투를 시작했던 기창각의 상층이 아닌 외딴 숲에 도달하였다·
“목(木)!”
조연이 수결을 맺자 나무들이 급격히 생장하며 촉수처럼 그녀를 향해 돌진했다·
그녀는 창을 움직여 춤추듯이 허공에서 나뭇가지들을 갈랐다·
‘점차 기력이 소모되는군····’
조연은 그녀를 보며 웃었다·
전성기 월비 수준은 아니지만 썩 강했다·
하지만 저 나이에 저 정도라면····
어쩌면 세월이 더 쌓이면 월비를 초월할 수 있을 터였다·
그는 정말로 즐거웠다·
그의 벗은 그녀 안에 죽지 않고 남아 있었다·
무(武)의 형태로!
점차 그녀와 조연은 가까워졌다·
처음에는 그녀가 조연에게 상처를 내기 위해 접근했다면 이제는 조연이 그녀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이라도 더·
월비·
그의 최초의 벗의 흔적을 느낄 수 있도록····
콰아앙!
조연은 불진을 휘둘러 불꽃의 새를 그녀에게 쏘아 낸 후 그녀의 지근거리에 근접했다·
위험할 거란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축기기 극초기였던 월비 시절과는 달리 조연도 많이 성장했다·
지금은 축기기 초기 원만 각항저방심미기 칠수를 전부 형성했다·
이제는 정순지력이 몸을 빼곡히 덮고 있기에 강기 같은 것에 다칠 염려는 절대 없었다·
그는 월비의 창을 더욱더 느끼기 위해 그녀의 창권 이내로 들어섰다·
마침내 그녀의 간합 내로 조연이 들어왔을 때였다·
오싹!
조연은 가면 너머 그녀의 투지를 보며 등골이 오싹한 것을 느꼈다·
‘잠깐 이건····’
창이 변화한다·
월비의 비익창이 진화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는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극한에 몰린 그녀가 비익창을 진화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초식이 변화한다·
아니 진화한다!
콰아아앙!
그녀의 창강이 조연의 정순지력 호신강기를 때렸다·
조연은 심장이 튀어나올 만큼 놀랐지만 동시에 흐뭇하게 웃었다·
월비를 뛰어넘는 재능의 제자였다·
월비는 이미 이 세상에 없었지만 조연은 월비가 마지막에 어떤 심정으로 죽었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이 아이에게··· 모든 걸 맡기고 죽었구나·’
이 정도 재능이라면 월비는 분명 미련 없이·
홀가분하게 돌아갔으리라·
그의 제자는 분명 자신의 은원을 모두 갚아 줄 정도의 실력을 지녔으니까·
“훌륭하다!”
조연은 소리쳤다·
가면 너머로 그녀가 숨을 헐떡이는 게 느껴졌다·
이제 그녀 역시 진기가 거의 고갈된 모양·
조연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월비의 모든 것을 훌륭하게 물려받다 못해 진화했구나· 너는····”
그리고·
오싹!
‘잠깐 무슨 투지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창식을 가다듬었다·
찌릿!
일순간 조연은 그녀의 의식영역이 압축된다고 느꼈다·
파앗!
“···어?”
그는 멍하게 자신의 가슴을 보았다·
조연의 가슴에 머리카락 굵기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커 커헉···!”
조연은 피를 토했다·
“이 이게··· 잠깐····”
무슨 짓을 했는지를 알아챘다·
일반적인 무림인의 강기로는 수도자의 호신강기를 뚫을 수 없다·
그래서····
강기를 실처럼 압축해서 찰나간 위력을 극대화해 조연의 심장을 관통했다·
‘폐 폐동맥이 찢어졌어···!’
심장이 박살 나지는 않았지만 조연은 폐동맥이 찢겨져 나간 것을 느꼈다·
“커헉!”
그는 집중력을 잃고 비행법기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어처구니없게도 그녀 역시 모든 기력을 소진하고 떨어지는 중이었다·
‘이런 대책 없는···! 둘 다 허공에 있는 상태에서 어쩌려고····’
조연은 억지로 정신을 부여잡으며 요상용 단약을 저물법기에서 한 움큼 꺼내 집어삼켰다·
그런 후 응급 처치용 법술과 요상부를 가슴에 붙였다·
그런 후 그는 떨어지는 그녀를 잡아당겨 끌어안은 다음 부유법술을 시전했다·
쿨럭!
‘제길! 고통 때문에 법술이····’
그러나 그녀에게 당한 덕인지 법술이 흐트러졌고 결국 조연의 부유법술은 불완전하게 완성되었다·
‘주 죽는 건····’
조연의 머릿속으로 주마등이 스쳐 지나갔다·
콰아앙!
그는 숲의 한쪽 어귀·
오솔길 한 곳에 자라나 있는 한 늙은 나무 위로 떨어졌다·
콰당탕!
나뭇가지가 꺾였고 안 그래도 죽어 가고 있는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러나 천운으로 조연과 그녀는 살 수 있었다·
“허억··· 헉····”
조연은 식은땀을 흘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무 위였다·
우지끈!
그리고 그걸 인지한 순간 두 사람이 떨어진 나뭇가지가 부러지며 둘은 다시 땅으로 떨어졌다·
“커헉! 어억!”
조연은 피를 토하며 벌벌 떨리는 손으로 단약을 한두 개 더 집어먹고 겨우겨우 일어나 운기요상을 하였다·
치이이이-
아무리 축기기 수사라도 심장은 위험한 부위였다·
결단기 수사가 되지 않는 한은 인간의 생명에 붙잡혀 있으니 말이었다·
‘죽을 뻔했군·’
아마 그녀의 창끝이 조금 더 조연의 심장 중심으로 향했다면 분명 죽는 건 조연이었다·
목숨의 위기를 넘긴 셈이었다·
연분홍빛 꽃이 핀 노목(老木)을 보며 조연은 감사 인사를 했다·
“고맙다····”
그는 나무둥치에 몸을 기대며 숨을 돌렸다·
그리고 껄껄 웃기 시작했다·
“하 하하하하! 아하하하하!”
조연은 울었다·
마구 울었다·
나의 벗이여·
보고 있는가·
‘그대 뜻을 이어받은 제자는 그대를 이미 뛰어넘었다네·
그대에게 주려던 선물 제자에게 주어도 불만은 없겠지····’
그는 저물법기에서 월비에게 주려던 단창을 꺼내 아직도 기절해 있는 그녀의 옆에 놓은 후 그녀의 몸을 진맥했다·
아직 죽진 않은 듯했다·
조연은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떨어지던 도중 가면은 어딘가로 날아간 것인지 사라져 있었다·
얼굴에는 어릴 때 병이라도 앓았던 것인지 곰보가 가득했다·
그리고 한쪽 눈 위로는 화상 자국이 크게 나 있었다·
얼마 후 그녀가 눈을 떴다·
“어 어엇!”
그녀는 조연과 눈을 마주치더니 당황하며 얼굴을 가리고 주변을 둘러보다 자신의 가면을 찾아냈다·
그녀는 황급히 가면을 써서 얼굴을 가린 후에야 조연을 마주보았다·
“음 일단 내상은 치료해 놓았다· 내 요상부를 통해 다른 상처들도 치료해 놓았으니 몸에 문제는 없을 것이야· 다만 진기를 전부 소모해서 기운이 없는 건 감안하거라· 그리고····”
조연은 그녀가 누워 있던 자리 옆에 놓아 둔 단창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이겼다· 저건 이제 네 무기다·”
그 말에 그녀는 잠시 단창과 조연을 번갈아 보더니 물었다·
“···실례지만 존함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혹 스승님과 아는 사이셨습니까?”
조연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내 이름을 듣기 전에··· 저 창으로 비익창을 펼쳐다오· 그걸 본 다음에 말해 주마·”
“···알겠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연의 창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마치 춤사위 같은 비익창이 그녀의 손에서 펼쳐졌다·
조연은 그것을 보았다·
월비의 것과 비슷하되 다른 창·
더욱더 뛰어나지만 월비의 의(意)가 끊기지 않은 창·
그는 마치 이전에 월비가 자신의 앞에서 자신이 만들어 준 무구로 무공을 펼치며 무공을 해설해 주는 듯한 그때로 돌아간 착각을 느꼈다·
뚝 뚝····
조연은 다시금 눈시울을 붉히며 웃었다·
“최고구나 월비는 분명 저승에서도 기뻐할 것이야····”
“···감사합니다 선배님·”
“내 이름은 조연(早緣)· 네 이름은 무엇이냐·”
“아···! 익히 들었습니다·”
그녀는 조연에게 예를 취하며 말했다·
“저는 천하제일창 월비의 제자이자 양녀· 월하은(月下恩)이라 합니다· 스승님의 붕우(朋友)께 처음 인사 올립··· 윽!”
그녀 월하은은 조연에게 인사를 올리던 중 자리에서 다시 쓰러졌다·
조연은 웃었다·
“이거 미안하군· 안 그래도 지친 상태에서 무리하게 창을 펼쳐서 지쳤던 거로구나·”
“···예· 부끄럽게 됐습니다·”
“아니다··· 내가 무리한 부탁을 한 거지·”
말을 마친 조연은 나무둥치 아래에 기대며 두 사람을 받아 준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혹시 이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아느냐?”
“꽃을 보아하니 모과나무군요· 모과꽃이 흐드러지게 필 계절인데 별로 안 핀 걸 보아하니 늙은 나무인가 봅니다·”
“이 나무가 우리를 구해 줬다·”
조연은 잠시 나무를 올려다보다 하은에게 말했다·
“월비의 시체는 어디 있느냐?”
“···화장해서 태워 달라 하신 후 유골은 복수를 끝마친 자리에 뿌려 달라 하셨습니다·”
그녀는 품속에서 작은 목함을 꺼냈다·
조연은 모과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여기에 뿌려 주자꾸나· 어차피 기창각의 전각이 있는 곳에 뿌려 봤자 또다시 무림문파들이 들어와서 밟고 다닐 테니까· 차라리 복수 끝에 우리 목숨을 구해 준 나무에게 뿌려 주는 게 어떠냐· 아마 내 부탁이면 그 친구도 괜찮다 할 게야·”
“음··· 좋습니다·”
하은은 유골함을 들고 와 조연과 함께 모과나무 아래에 뿌려 주었다·
그 봄날의 어느 하루·
월하은과 조연은 모과나무 아래에서 처음으로 통성명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