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의 마음(6)
약 육백여 년이 흘렀다·
그동안 수도계에는 무수한 일이 생겼다·
절벽에서 비급을 주운 한 소년이 창천개벽문이란 문파를 세워 조씨세가 세력에 대항했고 금신천뢰문과 흑색귀골곡이 세대교체를 하며 조씨세가와 맺었던 혼인 동맹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즈음·
조씨세가의 가주 및 원로원은 다시금 회의를 열었다·
“우리 조씨세가의 시대가 도래했소·”
금신천뢰문과 흑색귀골곡 및 다른 요족세력의 천인기 수사들은 모두 금번 승천문 개방으로 인해 비승했다·
그러나 기문법재인 조씨세가의 천인기 수사들은 비승하지 않았다·
그들이 가진 천형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자연히 조씨세가는 가장 많은 천인기 수사를 지닌 대륙제일세력이 되었다·
육백 년간 시간이 흘러 천인기 수사의 수도 열 명으로 많아진 조씨세가였다·
가주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명실상부 대륙제일은 조씨세가요· 어떤 문파도 무력으로 무릎 꿇릴 수 있지· 하지만 금신천뢰문 및 흑색귀골곡 등··· 유서 깊은 종문들은 상계로 비승한 선배들을 가지고 있는 문파· 억지로 병탄했다가 상계의 선배들이 혹여라도 강림하면 큰일 날 것이오· 그러니 조금 더 온건한 쪽으로 흡수해야 옳소·”
“어떤 방식이 가장 좋겠소?”
“육백 년 전 했던 단체 혼인 동맹· 그때는 가문과 문파의 하급 자제들을 단체로 맺어 주어 가벼운 혼인 동맹을 광범위하게 맺었지· 하지만 이번에는 더욱더 무거운 동맹을 맺을 것이오· 이번에는 각 문파와 가문의 결단기 이상 장로들끼리 혼인 동맹을 맺어 그들을 조씨세가로 서서히 집어삼킬 것이오!”
“허어··· 그거 좋군·”
“역시 가주요!”
“과연 삼문법재를 역대 최단기간에 이문법재로 진화시킨 천재··· 가주의 덕택에 조씨세가는 역대급 전성기를····”
콰앙!
가주 및 원로회의 회의장 안·
회의장의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가주가 얼굴을 와락 찌푸리며 소리쳤다·
“네놈은 또 뭐냐! 감히 원로전에 함부로····”
“모두 조용!”
그리고 회의장에 들어온 곱사등이는 크게 소리쳤다·
“지금부터 조씨세가의 후예 이 조연이 한 말씀 올리겠소·”
“음···?”
조연이었다·
그는 번들거리는 눈으로 회의장을 둘러본 후 자신의 얼굴을 쓸었다·
츠츠츠츠츳!
이윽고 조연의 얼굴에 드러난 문양에 회의장 내의 인물들이 모두 경악했다·
“이 이 일····”
“일문법재!!!”
그들은 하나같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환희의 미소를 지었다·
“놀랍군! 일문법재가 탄생하다니····”
“이게 도대체 몇천 년 만인가!? 하하! 하하하하하! 진정 조씨천하가 오는구나!”
가주는 기쁨에 찬 얼굴로 소리쳤다·
“일문법재가 있다면 혼인 동맹이고 뭐고 필요 없다· 우리가 그냥 싹 다 병탄해 버려도 문제없다! 으하하! 장하구나 장해! 네 이름이 그래· 조연이었지! 장하구나 이 녀····”
“잠시 닥쳐 봐라· 잘 안 들린다·”
“···?”
그러나 조연은 가주의 말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어딘가 데고 자신의 손을 귀로 가져갔다·
마치 누군가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느낌이었다·
조연은 눈을 번뜩 뜨며 말했다·
“좋아 좋아· 그럼 마지막 기회를 주겠소· 가주! 그리고 원로회 여러분! 육백 년 전 죽은 내 아내· 월하은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시오?”
그 말에 가주와 원로원은 이해가 되지 않는단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조씨세가의 어른들이었기에 결단기 이상 장로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기억에 조연이 결혼을 했단 정보는 없었다·
“···그게 누구지?”
가주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조연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그래· 무지가 죄는 아니지! 내가 알려 주리다· 내 아내는 무림인이었소· 벽라국 월씨세가의 오기조원 무인 월비의 제자이자 양녀로서····”
“잠깐 잠깐····”
가주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조연의 말을 끊었다·
“네 말은 지금··· 육백 년 전 그 애완동물이 네 아내란 말이냐? 그래 뭐 취향이 이상한 건 이해한다만 그래도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수간 같은 행위는 언급하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어른들이 있는 자리가 아니더냐·”
가주는 불쾌한 듯했지만 조연의 얼굴에 떠오른 단 하나의 문양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니 조금만 더 격식을 차려 주면····”
“그대들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소·”
조연은 팔짱을 끼며 당당하게 말했다·
“첫째 내 아내를 다시 볼 수 있는 방법을 나와 함께 총동원해서 찾아낸 후 내 아내에게 용서를 비는 것· 둘째 내 아내가 있는 곳으로 그대들이 가서 직접 용서를 비는 것이오·”
“····”
조연의 말에 회의장에는 한기가 감돌았다·
“그러니까 죽은 자를 부활시키거나 우리가 죽으라는 건가?”
가주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하 녀석· 농담이 심하구나· 애완동물 하나 잃····”
콰득!
다음 순간 가주가 반으로 쪼개져 죽었다·
몸은 물론이고 원영마저 일격에 반이 되었기에 회생 가능성조차 없었다·
“···!”
“이 무슨····”
“습격인가!?”
원로원이 당황할 때 조연이 다시 외쳤다·
“모두 조용! 조용! 자리에 앉아!”
“이 버릇없는 놈 가문의 어른이 죽었는데 지금····”
콰앙!
원로 중 한 명이 조연에게 쏘아붙이려 하던 찰나·
그 원로의 몸 역시 가주와 같이 갈라져 죽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원로들은 조연을 바라보며 침묵했다·
조연의 손길에 따라 원로가 죽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한 원로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 너··· 지금· 네가 가주와 원로 한 명을 죽인····”
푸콱!
입을 열었던 원로 역시 갈라져 죽었다·
조연이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원로원을 둘러보며 뇌까렸다·
“조용히 하라고 했다· [목소리]가 잘 안 들리잖느냐·”
“····”
“마지막 기회다· 내 아내를 부활시킬 방법을 나와 함께 찾겠느냐 아니면 전부 죽겠느냐·”
잠시 원로원에 침묵이 맴돌았다·
바로 그때였다·
콰아아앙!
회의장의 천장이 날아가며 조씨세가의 열 명의 천인기 태상 원로들이 나타났다·
“가주가 죽어서 와 봤더니 이 무슨···!”
천인기 태상원로들의 등장에 원로들의 눈에 희색이 돌았다·
“어 어르신들!”
“마침 잘 오셨습니다! 이 미친놈이 반란을 일으키려 합니다!”
“저 조연 녀석이 지금 가주를 죽였나이다! 어르신들께서 벌해 주십시오!”
조씨세가의 천인기 수사들은 조연을 노려보며 일갈했다·
“네 이놈! 네가 네 죄를 알렸다!”
쿠르르릉!
하늘이 울렸다·
천지영기가 진동한다·
무시무시한 압박이 일대를 짓눌렀다·
그러나 조연은 압박을 받으면서도 비릿하게 웃었다·
“···나는 분명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그렇지 않소 당신?”
다음 순간 천인기 태상원로와 원영기 원로원은 어느새 조연의 등 뒤 그림자 안에서 나타난 한 명의 여인을 보며 흠칫 놀랐다·
“천인기 대원만!”
“저런 고인이 언제 나타났단····”
시끄럽게 떠드는 조씨세가의 상층부를 뒤로하고 조연은 뒤를 돌아 여인의 뺨을 어루만졌다·
여인은 하은을 닮아 있었다·
그가 하은과 함께 했던 마지막 순간의 모습과 같이·
그녀의 얼굴에는 화상이 없을지언정 곰보가 있었고 지모가 돋보일지언정 각져 있는·
그리 미인은 아닌 얼굴·
그녀의 옷은 새하얀 천옷이었고 그녀의 얼굴에는 조연과 처음 연인이 되었을 때처럼 무명천이 씌워져 있어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조연은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차갑다·
조연은 하은의 형상을 한 괴뢰를 쳐다보며 나직히 읇조렸다·
“그냥 다 끝내 주시구려· [당신]·”
다음 순간 [그녀]는 그대로 빛이 되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양손에 단창을 거머쥔 [그녀]는 그대로 천인기 태상원로 한 명에게 달려들어 일격에 태상원로를 반으로 갈라 죽였다·
“허 허억···!”
“이런 미친····”
본신의 경지는 결단기 대원만에 불과했으나 육백 년의 시간 동안 천인기 대원만을 일부 초월한 괴뢰·
자신의 모든 집념을 바쳐 완성해 낸 역작·
[그녀]를 완성한 조연은 광소를 터트리며 외쳤다·
“자아 그럼· 싹 다 망해 버려라! 내 가문이여!!!”
* * *
조씨세가가 불탔다·
그리고 대학살이 벌어졌다·
그것은 단 한 기의 천인기 대원만 괴뢰·
[그녀]라는 인형에 의해 벌어진 참극이었다·
“사 사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조연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앞에 끌려오는 가문 장로들을 보았다·
“넣 어주시오·”
조연은 [그녀] 외에도 원영기 수준에 이른 괴뢰들을 통제해 착실하게 가문을 멸망시키기 시작했다·
결단기 대원만 장로 하나가 원영기 괴뢰에 의해 통째로 연단로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끄아아아아아악! 끄르릅··· 꺼억····”
얼마 후·
결단기 대원만 장로는 조씨세가의 연단로 안쪽에서 하나의 단약이 되어 나왔다·
조씨세가가 자랑하는 정진단이었다·
꿀꺽!
조연은 정진단을 꿀꺽 삼켰다·
본래는 범인들을 갈아 만드는 단약이기에 정제에 몇 년은 걸리지만 수도자들을 갈아 만들자 순식간에 정제가 완료되는 단약을 보며 조연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 이봐 조연· 나 나 기억하지? 내 내가 너를 얼마나 잘 대해 줬는····”
조연은 눈앞에 끌려온 하은을 자신에게 먹였던 후기지수를 보았다·
조연은 푸근한 표정을 지으며 괴뢰에게 명했다·
“혀를 뽑아라·”
그리고 그는 조씨세가의 보물창고에서 가져온 요상용 단약과 영약들을 잔뜩 꺼내며 말했다·
“그리고 다시 이걸 먹여서 재생시켜라· 놈의 정신이 망가질 때까지 계속 반복시켜라·”
조연은 편안한 눈으로 자신의 가문 전체를 단약으로 달여 먹기 시작했다·
‘그녀는 삼백 개의 단약이 되어 각 후기지수와 상층부에게 먹혔다 했지·’
그리고 정확히 하은이 누구에게 먹혔는지를 아는 이들은 없었다·
그렇기에 조연은 가문 사람들의 뱃속에 들어간 하은을 다시 되찾기 위해 한 가지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너희 모두 나와 하나가 되자꾸나·”
오로지 하은을 완전히 자신과 하나되게 하기 위한 결정·
조연은 끊임없이 수도자로 만들었기에 최상등품조차 초월한 정진단을 먹어 치웠다·
“걱정 마라·”
그리고 정진단을 먹을수록·
자신의 가문을 잡아먹을수록 조연의 뇌리에 자리 잡은 광증의 크기가 커졌다·
“너희 모두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조연은 자신의 의식을 총동원하여 자신의 앞에서 절규하며 비명을 지르는 자신의 가문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기억했다·
이러니 저러니 하여도 결국 그들은 조연의 혈족·
“너희는··· 내 세계에서 하나될 것이야·”
조연은 자신의 의식 속에 비명을 지르는 이들의 형상을 또렷이 박아넣었다·
가문을 잡아먹은 자신의 원죄(原罪)를 등에 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한 명을 먹어 치우면 먹어 치울수록·
조연은 머릿속이 시끄러워지는 걸 느꼈다·
그의 뇌리 속은 점차 끊임없이 고함치는 함성과 비명 소리로 가득하게 되었다·
와드득!
조연은 마침내 모든 가문 사람들을 잡아먹었다·
혀를 뽑고 또 뽑다 못해 미쳐 버린 후기지수는 맨 마지막으로 조연의 배 속에 들어갔다·
“히 히히····”
반쯤 미쳤던 육백 년 전과 달리 조연은 완전히 미쳤다·
그는 가문 사람들의 원망과 환청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거기서 괜찮소 당신?”
그는 [그녀]를 사랑스러운 듯이 껴안으며 말했다·
“보시오 보시오· 내가 말했잖소· 우리 가문 사람들은 정말 극악한 사람은 아니라고· 이거 보시오· 결국 나와 함께 머리를 싸매고 당신을 다시 만날 방법을 강구해 보겠다 하고 있잖소? 그렇지?”
조연은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귀를 기울이는 체하며 웃었다·
“아아 우리 가문사람들은 책임감이 있다니까· 이렇게 나와 함께 당신을 다시 만나 사과를 하겠다고··· 당신을 다시 만나··· 다시····”
허공을 향해 실실거리며 헛소리를 내뱉던 조연은 [그녀]의 몸을 잡았다·
그리고 그가 외쳤다·
“다시··· 다시 만나고 싶어!”
그는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다시 다시 그때를· 그때 당신을 만났던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절대 망설이지 않을거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도망치며 식을 올릴 거야· 한날한시에 죽자고 같이 맹세했잖소· 그렇지? 그러니까 나는 나는 다시····”
그의 눈에 하은과 처음 만났던 그 순간이 비춘다·
그녀와 함께했던 모든 순간이 비춘다·
그녀가 해 주었던 말들이 떠올랐다·
-괴기(怪奇)하다고 인식하기에 괴기하다고 여겨지는 것뿐··· 제 눈에는··· 그래· 기묘(奇妙)해 보이는 것이 상당히 신기하고 예뻐 보여요·
괴기(怪奇)와 기묘(奇妙)함은 결국 인식의 차이·
어째서일까 조연의 뇌리에는 그 말이 떠나질 않았다·
조연은 고통스러운 목소리를 토해 냈다·
“다시! 다시 단 한 번이라도 그때 그 순간을··· 만들어 내겠소!”
조씨세가의 폐허에서 모든 것을 잃고 미쳐 버린 한 곱사등이는·
그렇게 한도 이상의 정진단을 먹고 일문법재를 초월(超越)한 어딘가에 도달했고 그렇게 자신의 생에서 가장 가치 있었던 단 한 순간을 재현하겠노라·
[그녀] 앞에서 맹세하였다·
“단 한 번이라도!!!”
그날·
조연은 [그녀]를 품에 안고 결심했다·
괴기와 기묘 사이에 차이가 없다지만 나는 앞으로 괴기한 괴물이 되겠노라고·
자신을 괴물로 인식하여 무수한 희생을 쏟아 낼지라도·
그녀를 다시 볼 그날을 기다릴 것이노라고·
그때에서야 자신은 괴기한 괴물이 아닌 기묘하고도 아름다웠던 그때의 조연으로 돌아갈 것이노라고····
그리 결심하였다·
“나는····”
그는 품에 안은 [그녀]를 보며 뇌까렸다·
“괴물(怪物)의 부군(父君)이다·”
괴기하고 추악한 자기 자신을 광기 속에서 관조하며····
조연은 그렇게 괴군(怪君)이 되었다·
작가의 말: 어제 공지에는 괴군 에피소드가 1화 안에 끝날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결국 감정선을 추가하는 과정에서 분량이 늘어나게 되어 3화가 되었습니다·
자캐딸이라고 하셔도 할 말이 없습니다만·
그래도 괴군이란 캐릭터에 대해서는 너무 독자님들께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신파 요소가 회귀수선전의 단점이란 건 잘 인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파가 덕지덕지 묻었을지언정 저는 이 괴군이란 인물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작가 자신의 욕망과 독자님들을 생각하는 마음 중 작가의 욕망을 참지 못했던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군요·
혹여라도 지루하셨던 독자님이 계셨다면 웹소설 작가로서 스피드 있는 전개를 보여드리지 못해 진심을 다해 사과드리며····
여기까지 봐 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또 사랑한다는 말씀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늘 감사 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