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을 찾을 수 없는 곳(1)
“놈! 운 좋게 내 목을 벤 주제에 기고만장하구나!”
촤르륵!
녀석이 입을 벌리고 시뻘건 기운이 도는 독무를 뿜어낸다·
나는 숨을 참은 상태로 검을 움직였다·
촤악!
세 합·
세 번의 동작 안쪽에서 바람이 터져 나오며 독무를 모조리 몰아낸다·
나는 뇌에 과부하를 걸어 몸의 근육을 모조리 사용하기 시작했다·
‘근섬유가 조금 찢어지려나? 기가 없는 상태에서 이 정도 녀석을 상대하려면 어쩔 수 없지·’
나는 티끌만 한 진기를 모조리 목검에 불어넣어 검을 강화시켰다·
현 상황에서 검강은 물론 검기 같은 것도 언감생심이다·
검이 부러지지 않게라도 강화한다·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의 결과를 내야 한다·’
척!
나는 검의 무게를 확실히 인지하며 눈을 빛냈다·
무게·
혹은 인력이라고도 불리는 힘·
인력이 있는 이상 운명도 있다·
운명이 있는 이상 나는 언제든 총천검을 부르는 게 가능했다·
이전 뇌성해의 소형 차원 안에서 갇혔을 때 빠져나간 것도 그 방식이었으니 말이었다·
하지만····
‘아예 세계의 법칙이 뒤틀려 있는가··· 인력이 있을진데 총천검이 잘 잡히지 않는다·’
이 세계에도 혼의 계위 등 물질계보다 ‘높은 차원’이 존재하는 건 대략 육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높은 차원에 접속하는 방법은 이전 세상과 조금 다른 느낌이기에 원래의 내 능력을 잘 쓸 수 없었다·
‘뭐··· 당장 큰 상관은 없나·’
앞으로 내 능력을 찾고 이 세계를 벗어날 방법을 궁구해야겠지만····
지금 당장 눈앞의 뱀을 상대하기에는 조금 강화된 목검 정도만 있어도 충분했다·
촤르르륵!
뱀의 머리 하나가 터져 나간 곳에서 독혈이 잔뜩 뿜어지더니 수백 마리의 독사의 형태로 변해 내게 쇄도한다·
독사를 전부 피해서 뱀의 목을 베는 건 쉽지만 뒤쪽엔 동료들이 있었다·
‘한 명도 중독되면 안 되지····’
그렇다면 독사를 전부 잘게 갈라 버리고 뱀에게 접근한다·
꾸구국····
난 칼끝을 손으로 잡은 후 검 손잡이에 힘을 주었다·
기를 사용할 수 없으니 이런 식으로 편법을 써서 초식의 위력을 강화시켜야 한다·
목검의 검신이 순간 활처럼 휜다·
하지만 내 기로 강화된 검신은 끝끝내 부러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독사들이 전부 내 검권(劍權) 내로 들어온 순간·
투웅!
난 칼끝을 놓아 버리며 목검과 함께 회전하기 시작했다·
검의 탄력과 함께 몸을 움직이며 수백 마리의 독사를 모조리 쳐 낸다·
단악검법
괴암기석
요산요악
합식응용기
괴릉(壞陵)
공방일체의 괴암 변초에 특화된 기석 종횡의 검기를 날리는 요산요악이 합쳐지며 내 주변으로 쏟아지는 모든 것을 갈아 버리는 무지막지한 절기가 완성된다·
피이이잇!
퍼버버벙!
독사들을 전부 터트린 나는 검과 함께 회전하던 그 회전력에 힘입어 그대로 땅을 박차고 나와의 거리를 벌리고 있는 뱀을 향해 궁신탄영의 수법으로 쫓아갔다·
“근접전을 통해 우위를 점하는 요족이 거리를 벌리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라·”
보인다·
놈의 몸을 빼곡히 뒤덮은 방어요술들이·
녀석의 기혈 안에 휘몰아치는 수십 가지의 요술들이 놈의 비늘과 위에 덮히며 미늘 갑옷처럼 그 몸을 완전히 뒤덮고 있었다·
그러나 같잖다·
나는 그 미늘 갑옷 같은 요술들의 결을 전부 읽어 내었다·
분명 훌륭한 요술이지만 상대를 잘못 만났다·
파앙!
나는 뱀 앞에서 멈춰 서며 방금 전까지의 모든 흐름을 이 목검 안에 욱여넣었다·
우드득!
목검이 바스라질 듯 진동한다·
‘여기에 더한다·’
“이··· 범부 놈 주제에!”
갑작스레 근접전을 강요당하게 된 뱀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꼬리를 내게 휘둘렀다·
단악검법
공곡전성!
찰나·
나는 뱀의 꼬리에 검을 마주 대었다·
그런 후 꼬리에 실린 힘을 내 검에 더한다·
동시에 뱀의 꼬리에 실린 힘과 흐름을 읽어 내 다시 한번 녀석의 약점을 확인한다·
‘끝이다·’
피잇!
일순간·
내 움직임은 음속을 돌파했다·
공기가 내 검속에 밀려 나간다·
전신에서 파공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단악검법
산수화!
총 일곱 번의 공격이 뱀의 몸 곳곳 법술갑옷의 틈과 틈 사이를 난도질하며 녀석을 무력화시킨다!
음속을 돌파한 내 검이 법술갑옷을 헤집자 이어진 충격파에 인근의 살과 비늘이 폭발한다·
목 허리 꼬리 배 세 곳 옆구리·
총 일곱 부위가 폭발하며 뱀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치이이이-
나는 마찰열 때문에 화상을 입은 양팔의 팔뚝과 양어깨를 바라보았다·
음속을 돌파하던 와중 몸이 버티지 못한 것이었다·
‘고작 이 정도 속도에 몸이 버티지 못하고 부상을 입다니····’
아무리 미약한 기를 아끼느라 검만을 강화했다지만 꽤나 신박한 경험이었다·
현재의 내 몸은 등선향에 떨어진 시점과 완전히 같은 몸이었기에 더더욱 그리 느껴지는 걸지도 몰랐다·
‘단련이 전혀 안 된 직장인 몸이다보니 근육도 쑤시는군·’
다행히 전신 근육을 완벽하게 제어한 덕택에 근육이 찢어지거나 한 곳은 없었다·
‘일단 육체 단련도 좀 해야겠어·’
나는 내 몸상태를 파악하며 뱀의 눈 앞에 칼을 들이밀었다·
치이이이-
아무리 기로 강화를 했다지만 너무 미약하게 강화한 탓인지 내 검은 겉면이 타서 숯이 되어 있었다·
“이젠 내가 너를 이겼으니 내가 이 숲의 주인인가·”
“커 커헉··· 꺽····”
“많이 아픈 것 같은데··· 뒈지기 싫으면 인간형으로 화형해 봐라· 화형하면 응급 처치는 해 줄 수 있으니·”
내 말에 녀석은 요술을 써서 천천히 다시 인간으로 화형하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녀석을 보다가 빠르게 다시 동굴로 돌아갔다·
동굴에선 나와 뱀의 대결 소리 때문에 동료들이 깨어나고 있었다·
파밧!
나는 다시 동료들의 머리를 후려쳐 잠재운 다음 전명훈의 옷을 북북 찢어 천을 만들고 다시 뱀이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뱀은 완전히 화형을 한 후였고 나는 뱀의 몸 곳곳에 난 상처를 동여맨 후 점혈을 해서 피를 멈춰 주었다·
“커 커헉··· 으으····”
남자 머리는 날아간 덕인지 뱀의 머리에는 여자 얼굴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웃기게도 얼굴은 여성형이지만 몸은 남성형이었다·
나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듯한 뱀의 뺨을 몇 대 때려서 정신을 차리게 해 주었다·
퍽 빠악! 빡!
“자 잠깐! 정신이 들었습니다 어르신· 그만 때려 주십시오·”
“오냐· 그래서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수 숲의 주인 건 말씀이십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뱀은 내 눈치를 보는 듯하더니 말했다·
“저··· 숲의 주인 자리를 드리고는 싶지만 이 비승림은 제 주인님께 하사받은 것이기에 함부로 드릴 순··· 없습니다····”
스르륵····
녀석은 술법으로 옷을 만들어 입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목검으로 손을 탁탁 후려치며 목검에 붙은 숯 조각들을 털었다·
뱀은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을 때릴 거라 생각했는지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그래 네 주인··· 그자에 대해서도 물어볼 게 있긴 했지· 네 주인이 시호라고 했느냐?”
“예 예· 시호 어르신이십니다· 육미호이시자 축기기 대원만 경지에 이르셨고 사실상 금단경의 실력자이시지요·”
“흐음··· 좋다· 네게 물을 게 많겠군· 따라와 봐라· 동굴로 가서 네게 이 세계에 대해 좀 들어 봐야겠다·”
“저··· 제가 지금 걸을 수가 없습니다만··· 혹시 부축을 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뭬야? 어째서!”
“어르신이 제 발목을 부러뜨리셔서··· 걸을 수가 없습니다····”
“····”
나는 뱀을 부축하여 동굴로 데려가 이 세계에 대해 질문했다·
뱀의 다리에 덧댈 수 있는 부목을 만들어 주며 이 세계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흑색귀골곡이 없다고?”
“예 그렇습니다· 시호 님께 듣기로는··· 고서에는 그런 종문이 있었다고 전해지긴 합니다만··· 10만 년 전에 금신천뢰문 창천개벽문 등과 비승하여 상계로 갔다고 합니다·”
“···그렇군·”
일단 이 세계의 배경은 그 당시 비승에서 10만 년 이후의 상황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금신천뢰문은 어느 날 다시 하계에 내려왔다가 약 만여 년 후 다시 다른 세계로 떠나 버렸고 청문세가가 갑자기 성장하며 다시 창천개벽문을 세웠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세계의 천지영기가 줄어들기 시작해 세계의 강자들이 많이 사라졌고 점차 평균적인 경지가 낮아졌다고 한다·
그렇게 예전에는 천인기들이 득시글댔던 대륙이었지만 현시점에서 대륙 삼강(三強)이라 불리는 최고수들은 전부 축기기 대원만에서 결단기 초기 정도라는 것이었다·
“대륙 삼대 강자는 누구누구가 있고 그들의 특징은 뭐냐·”
“예 그것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현시점 대륙 최강의 세력이라고 일컬어지는 창천개벽문의 태상 장문인 창운자(漲雲子) 청문선우· 그리고 예전에는 창천개벽문의 제자였지만 창천개벽문에서 나가 버린 은둔고수 함해자(鹹海子) 청문령· 마지막으로 저의 주인님이시자 가장 아름다우신····”
“미사여구는 적당히·”
“옛! 대륙제일미 천기자(天棋子) 시호 님께서 대륙 삼대 강자로 불리우십니다·”
“그렇군··· 일단 고맙다·”
나는 뱀에게서 이 세계의 상황을 전해 듣고 눈을 감았다·
‘창호자와 시호는 각각 잘 살고 있고 그리고····’
함해자 청문령·
별호는 생소한 것이었다만 그 이름만은 내게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었다·
‘이 세계에 계십니까····’
역시나····
북향화가 있는 이 세계와 청문령이 온 세계는 같은 세계인 모양·
내 뇌리에 얼마 전 내 기억 속에서 나타나 가르침을 주었던 청문령의 환영이 나타났다·
‘만나러 가겠습니다·’
나는 내 몸을 바라보았다·
기운이 한참은 미약한 몸·
솔직히 예전에 거느렸던 권능에 비하면 너무나 미약한 육신이었지만····
지금만큼은 오히려 좋다고 느껴졌다·
청문령을 만나러 갔을 때 그의 앞에서 ‘선배님’으로 불리지 않을 테니까·
‘좋아· 일단 등선향에서 나가 청문령을 찾아가자· 청문령 밑에서 몇 년간 수학하고 그다음에 창호자와 시호를 만나서 안면을 다진 후 셋의 힘을 빌려 북향화와 만난 후··· 그다음에 이 세계를 나갈 방도를 찾아봐야겠어·’
나는 이 세계에서의 대략적인 계획을 세우며 모닥불에 나뭇가지들을 집어넣어 주었다·
“서란 기억은 좀 찾아가고 있나?”
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음··· 사실 제 것이 아닌 것 같은 기억들이 꽤 섞여 들어오는 중이라 그 기억들을 정리하는 중입니다·”
“음 알겠다· 얼마 정도면 정리가 될 것 같지?”
아무래도 ‘이 세계에서’의 강민희 역할인 서란의 기억이 섞여 오는 것 같았다·
“말씀드리기 어려운 것이··· 기억이 아닌 감정까지 함께 섞여 들어오는 중이라··· 전부 정리하려면 조금 오래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감정이라면 어떤···?”
“아···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뭐랄까··· 짜증 나는 것도 같고 소유하고 싶다는 것 같기도 하고 귀찮은 것 같기도 하고··· 뭐랄까··· 애틋한 것 같기도 합니다·”
“···음····”
‘서란이 ‘강민희 역’이면 설마····’
나는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끼며 헛기침을 했다·
“됐다· 그건 굳이 말할 필요 없어· 일단 나머지 동료들이 깨어나는 거나 기다리도록 하자·”
“예·”
“그리고 넌····”
나는 부상을 당한 뱀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잠시 동료들이 깰 때까지 기다려라· 동료들이 다 깨고 네 몸이 전부 회복되면 네 몸을 타고 등선향을 벗어나도록 하지·”
“예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요단 좀 토해 낼 수 있나?”
뱀은 내 말에 무슨 미친 소리를 하냐는 눈빛으로 나를 보다가 흠칫하고는 고개를 조아렸다·
“어 어르신· 제발 살려 주십시오· 등선향 바깥까지 정말로 안전하게 모셔 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반응을 보니 요단을 뽑으면 죽는 모양이었다·
‘시호는 안 죽던데··· 결단기와 그 이하 경지 차이인 건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아 동료들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뱀과 서란은 각자 기력 회복과 정신 정리를 위해서 모닥불 옆에 잠시 잠들었고 나는 모닥불을 지키며 해가 떨어져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춥군····”
나는 바닥에서 자는 김영훈 전명훈 오현석 김연 서란 붉은 뱀 등을 바라보며 모닥불에 나무토막을 하나 던져 넣었다·
“뱀과 같이 들어왔더군·”
“예 뭐··· 다친 것 같아서 말입니다· 바깥에 내버려 둘 수도 없고 말이지요·”
“이번이 아니라 저번에 말이다· 처음 들어왔을 때· 뱀의 흔적이 남은 걸 봤다·”
“예···? 흠···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수계를 입구로 들어왔으니 어쩔 수 없지· 그곳은 너무도 흉한 곳이니까· 하지만 다음부터는 이곳에 뱀을 들여오면 참지 않겠다· 조심해라·”
“네 조심은 하겠습니다만··· 뱀이란 게 혹시 은유 같은 겁····”
나는 내게 충고를 해 준 분께 대답하려다 문득 동굴에는 나 혼자밖에 없단 걸 알았다·
‘뭐지·’
어쩐지 예전에 들어 본 적 있는 목소리였다·
나는 무슨 일인지 등골에 오한이 돋는 걸 느끼며 목검을 잡으며 주변을 경계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음 날이 밝을 때까지 이변은 없었다·